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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 X의 헌신 (容疑者Xの獻身, 2006)

히가시노 게이고(東野圭吾)의 <용의자 X의 헌신>은 매우 성공한 추리소설이다. 일본 대중문학 신진작가들의 등용문이라 할 수 있는 나오키상 2006년 수상작이고, 한국에서도 처음 출판된지 1년만에 적어도 8쇄 이상을 찍어내는 데 성공하는 등 큰 인기를 끌었다. (책을 누구 빌려주는 바람에 정확한 수치는 알 수가 없지만)

작가는 책 곳곳에서 단서들을 흘리고 독자들은 최대한의 두뇌를 동원하여 결말을 맞추려 하는 것이 추리소설인만큼, 추리소설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극과 극일수밖에 없다. 추리소설의 트릭이란 어린애도 눈치챌 수 있을만큼 허접해도 욕먹고, 누구도 맞출 수 없을만큼 복잡해도 욕먹고, 논리적으로 비약해도 욕먹는 게 당연하다. (그래서 결말 부분에 앞의 스토리에 나오지 않은 근거를 갑자기 꺼내는 김전일은 재미가 없다.) 게다가 <용의자 X의 헌신>은 처음부터 범인의 정체를 드러내놓고 시작하기 때문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한 번씩 돌려가며 범인을 찾는 쏠쏠한 재미도 없다. 이 책은 트릭 자체가 재미없으면 끝장나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Notice : 아래 내용은 스포일러입니다. 책을 읽으시려는 분은 절대 읽지 말아주세요.

이렇게 위험한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용의자 X의 헌신>은 매우 성공적인 추리소설이다. "달마" 이시가미는 연정을 품고 있는 야스코 모녀의 살인을 은폐하기 위해 모종의 트릭을 꾸민다. 이시가미의 트릭은 매우 대담해서 원래 시체는 잘게 분리하여-_-;;; 딴 데 감추고, 자신이 노숙자 "기사"를 살해하고 그 시체를 원래 시체인 것처럼 위장하는 것이다. 이 트릭의 전모는 스토리의 가장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데, 이 트릭을 눈치채기 위해서는 다음 두 가지 사실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첫째, 살인이 일어난 시점이 경찰이 시체를 발견한 날의 전날인 3월 10일이 아니라 3월 9일이었다는 점, 둘째, 노숙자 "기사"가 살인이 일어난 이후 갑자기 사라졌다는 점.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중요한 사실들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는 않는다. 하지만 스토리 곳곳에 이를 추리할 수 있도록 교묘한 장치를 해 놓았는데, 그 중 스토리의 제일 처음 부분이 매우 중요하다. 스토리는 이시가미가 "출근 길"에 노숙자들이 모여사는 강가를 지나가며 "기사"를 보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이 장면은 그 다음 이시가미가 도시락 집에서 야스코를 만나는 장면으로 전환되며 금방 기억에서 사라져버렸는데, 만약 이 장면을 기억하고 있었다면 이시가미가 3월 10일, 11일 오전에 휴가를 냈다는 사실이 드러났을 때, 야스코 모녀의 살인이 이시가미가 출근한 날인 3월 9일이 일어났다는 점을 추리할 수 있었을 것이며, "기사"가 매일 앉아있던 벤치가 비어있다는 묘사를 통해 "기사"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추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이를 추리할 수 있었으면 마지막 장면의 충격도 훨씬 덜했겠지만...

Notice : 스포일러 끝

물론 <용의자 X의 헌신>이 미덕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시가미의 트릭이 워낙 정교한 나머지 이시가미의 의심하며 그의 범행을 밝혀내는 유가와 마나부의 추리는 논리적이라기보다 직관적인 면이 강하다. 그리고 야스코를 헌신적으로 사랑한 나머지 자신이 살인을 저지르는 이시가미나, 이시가미에 지나치게 집착하여 그를 끝까지 의심하는 유가와 역시 이해하기 힘들다. 그래두 얘들은 천재니깐 뭐...(천재면 용서된다-_-)

이 책의 리뷰 중 많이 지적되는 부분이 오자와 탈자 문제이다. 하지만 난 그닥 오자 때문에 불편하단 느낌을 받지 못했는데, 판을 거듭하며 개정된 결과인지 아님 오자에 신경쓸 여유도 없이 스피디하게 책을 읽어서 그런지 잘 모르겠다. <용의자 X의 헌신>은 결점도 많이 가지고 있는 책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시가미의 훌륭한 트릭과 히가시노 게이고의 치밀한 구성은 추리소설 본연의 재미를 느끼게 하는데 충분하다.

사실 <용의자 X의 헌신>은 "감성적인 추리소설"이라는 점을 크게 어필하며 인기를 끈 부분이 있다. 분명 야스코에 대한 이시가미의 말 그대로 헌신(獻身, 몸을 바침)적인 사랑은 다른 추리소설과 색다른 점이긴 한다. 하지만 <용의자 X의 헌신>은 정교한 트릭 자체만으로도 대단히 훌륭한 추리 소설이라 생각한다. 역시 추리소설의 진정한 가치는 "누구나 맞출 수 있으면서도 쉽게 맞출 수 없는 트릭"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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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사이(關西) 여행기 #6 - 교토 난젠지(南禅寺)와 철학의 길(哲学の道)

Notice : 본문의 내용은 정구미/김미정의 <오사카 고베 교토>를 상당부분 참조했음을 알립니다.

먼 길을 걸어 난젠지(南禅寺)에 도착했다.


난젠지의 산몬(三門)이다. 지온인의 그것만큼이나 거대하단 느낌은 들지 않지만 꽤 크다. 여기에 올라가면 주변 경관이 한 눈에 보이는 절경이라 한다. 보수 공사 중이라 올라가진 못했다. (물론 입장료를 내야 하기 때문에 어짜피 안올라갔겠지만;)

난젠지의 산몬은 가부키에 등장하는 전설적인 대도 이시카와 고에몬(石川五右衛門)의 일화로 유명하다. 고에몬은 지금도 일본의 애니메이션과 게임 등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다. 아케치 미쓰히데(明智光秀)-혼노지의 변(本能寺の變)을 일으켜 전국시대를 통일할 뻔한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를 자결케 하는데는 성공하지만, 결국 노부나가의 가신이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게 토벌당한다-의 아들의 반란 세력에 참여했단 기록이 있는 걸로 봐서 실존인물임을 틀림없는 것 같으나, 역사적인 자료가 거의 남지 않아 그의 모습은 후세의 상상력에 의해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고에몬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암살하기 위해 그의 거처에 침입했다가 향로가 소리를 내는 바람에 붙잡혀 불가마에 볶아-_- 죽이는 형별로 처형당했다고 한다. 도요토미를 암살하려 했던 이유는 아내와 자식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라는 설과 독재자 타도-_-를 위해서...라는 설이 있는데, 어느 쪽이던 간에 고에몬의 이야기는 가부키에서 많이 그려지므로 아마 스토리 전개상 고에몬을 의적으로 미화시킨 경우가 아닐까 한다. 고에몬이 잡혔을 때 도요토미가 "도둑을 잡아라!"라고 외치자, "너야말로 천하를 훔친 도둑이 아니더냐"라고 호통치는 장면이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고에몬이 난젠지 산몬에 올라 절경에 감탄하는 대목이 있어서 난젠지의 산몬이 더욱 유명세를 탄 것이다.


고등학교 교사 한 분이 학생들을 인솔해 다니고 있다. 꽤 문제아처럼 보이는 학생들이었지만, 알고보니 선생님의 말씀에 경청하며 잘 따라다니는 착한 학생들이었다. 마침 난젠지의 산몬에 얽힌 고에몬의 이야기를 해 주는 중인 것 같았다.


난젠지의 본당인 핫토우(法堂)다. 1895년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09년에 재건했다고 한다.


당연한 말씀이오나, 경내는 금연이다. 교토시 소방국에서 제작한 이 금연 표지판은 표준 제작된 것인지 어떤 곳에 가더라도 같은 모양이다. 간판 하나도 제법 고풍스럽게 만들어 놓은 센스가 돋보인다.


난젠지의 특이한 점은 경내에 수로각이 있다는 것이다. 교토의 만성적인 물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메이지 유신 이후 건설되었다. 교토 근교의 비와코(琵琶湖)라는 호수에서 물을 끌어와 공급한다. 신성한 사찰 내에 수로각이 들어서 있는 모습이 조금 어색한데, 이건 메이지 시대에 펼쳐진 불교배척운동(廃仏毁釈, 하이부츠키샤쿠)의 흔적이라 한다. 현재 남아있는 사찰의 규모만 봐도 짐작할 수 있겠지만, 당시 불교는 너른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으며 언제라도 승병으로 전환될 수 있는 승려들을 보유하고 있어서 그 권세가 상당했다 한다. 사찰의 강력한 힘을 경계한 것과 동시에 신도(神道)를 중심으로 국민을 통합하기룰 원했던 메이지 정부는 불교를 정책적으로 억압하기 시작했는데 이를 하이부츠키샤쿠라 한다. 일본의 사찰엔 이러한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는 곳이 많은데, 난젠지의 이 수로각도 메이지 정부의 근대화 사업임과 동시에 하이부츠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난젠지의 별관격인 난젠인(南禅院)이다. 여기도 별도로 입장료를 받아서 평소 같음 안들어갔겠지만, 계속 걸어왔더니 너무 다리가 아파 좀 쉬어 가려고 들어갔다. 연못과 수목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일본식 정원이 펼쳐져 있다. 밖에는 꽤 더운 날씨였음으로 불구하고 수풀으로 둘러싸여 정원 안은 매우 시원했다.


난젠인은 손님을 맞는 장소인지 마치 회의실 분위기다. 하지만 여기 앉아 정원을 내다보면 연못과 연못을 둘러싼 수목들이 한 눈에 보인다. 이런 곳에서 회의를 한다면 아무리 재미없는 회의라도 할 만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난젠인에서 나와 수로각 위로 올라가면 아직도 사용되고 있는 수로가 나온다. 비와코에서 출발한 물이 수로를 통해 흐르고 있었는데, 물은 깨끗해 보였으나 수로 자체가 워낙 오래되어 여기 물을 마셔보라 하면 한사코 거절할 듯 싶다.


수로를 처음 봤을 땐 비와코와 교토의 해발 차이를 이용해서 무동력으로 물을 흐르게 하는 건 줄 알고 감탄했었는데, 역시나 펌프장이 있었다-_- 기계를 보면 생기는 본능적인 호기심에 의해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다보니, 삐-삐- 하는 경보음과 함께 뭔가 엄청난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오호~ 이거 엄청난 일이 일어난 것인가! 하는 마음에 들떠 있었는데...


펌프장 바닥에 고여있는 부유물이나 쓰레기를 치우는 레일이 돌아가는 소리였다-_-


펌프장을 지나 더 내려가면 수로의 건설책임자인 다나베 사쿠로(田邊朔郞)의 동상이 있다. 메이지 유신에 의해 일본의 수도가 도쿄로 바뀌게 되면서, 헤이안(平安) 시대 이후 약 1000년 동안 일본의 수도였던 교토는 그 지위를 상실하게 되었다. 이렇게 활력이 떨어진 교토의 분위기 쇄신과 근대화를 위해 수로 건설이라는 대공사를 하게 되었는데, 이 수로 건설의 책임자로 약관 21세의 막 대학을 졸업한 다나베 사쿠로가 임명된다. 현장 경험이 전무함에도 불구하고 교토의 수로에 대한 그의 졸업 논문을 높이 샀고, 무엇보다 그의 열정이 대단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인데, 결국 다나베는 1890년 공사를 성공적으로 마치게 되었다. 공돌이의 성공담을 듣는 것 같아 왠지 뿌듯하다-_-;;;


지금은 쓰이지 않는 철로가 시원하게 뻗어있다. 왠지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철로였으나, 한 번 가면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아 옆에 나 있는 도로로 내려갔다.


철학의 길(哲学の道, 데츠카쿠노미치)로 접어들기 전에 잠시 휴식을 취한 카페인 후제(ふうじえ)다. 사실 여기까지 오는데 무진장 고생했다. 난젠지의 뒷길로 해서 철학의 길로 들어가려 했는데, 아무래도 펌프장을 통과하는 길이 제대로 된 게 아니었나 보다-_- 골목길을 엄청 헤메다가 이 카페를 발견하고 겨우 안심했다.


잼 토스트와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잠시 휴식. 일본의 아이스커피는 꽤 맛있다. 난 한국의 카페에선 아이스커피를 마시지 않는데, 너무 쓰거나 너무 달아서 먹기가 힘들다. 하지만 일본의 유후인(湯布院)에서 아이스커피를 마셔본 다음부턴 일본의 아이스커피는 잘 마시게 되었다.




참의원 선거 기간인지, 정당의 후보들 포스터가 붙어 있다. 여성의 정치 참여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여성 후보가 제법 보인다.




철학의 길 입구이다. 철학의 길은 총 2km정도 되는 산책 코스다. 일본의 철학자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郞)가 즐겨 찾았다 해서 철학의 길이라 불리운다. 비와코에서 수로를 통해 흘러온 물이 개울을 이루어 산책로 옆으로 흐르는 조용하고 시원한 길이다.


냥이 한 마리가 사색하듯 앉아 있는 모습이...지만 사실은 벤치에 앉은 사람이 먹이 주는 걸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다-_- 철학의 길 주변엔 거리의 고양이;;;들이 자주 눈에 띈다.




철학의 길은 유후인의 산책로와 분위기가 비슷하다. 하지만 뭔가 상점들로 가득차 장사속이 보이는 듯한 유후인보다 산책로 본연에 가까와 보이는 철학의 길이 더 맘에 든다. 철학의 길 주변에도 상점들이 있긴 하지만 비교적 소박하고 손님들도 많지는 않다. 그래서인지 돈달라고 손내밀며 웃는 인형이 왠지 얄미워 보인다.


길 옆으로는 골목이 나 있어서 큰 길로 나갈 수 있다. 철학의 길 주변으로는 상점들도 있지만 민가도 꽤 보인다. 관광객들로 인해 조금 소란스러울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곳에서 한 번 살아보고 싶단 생각도 든다.


오호 대형 잉어(인지 붕어인지) 발견! 책에서 가끔 놀랄 정도로 큰 붕어를 발견할 때가 있다고 했는데, 수심이 얕아 물고기가 살 것 같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제법 큰 놈들을 볼 수 있다. 뭐 별로 놀라진 않았다;;;




한국에선 생소한 일본공산당의 포스터다. 자위대의 해외 파병을 금지시킨 헌법 제9조(평화헌법)를 지키자는 내용과, 서민에게는 세금을 늘리고 대기업엔 감세를 해 주는 정부의 정책을 지적하고 있다.


여기도 요지야가 있다. 정원처럼 잘 꾸며놓은 앞마당이 인상적이다.


각종 고양이 캐릭터 상품을 파는 노비공방(のび工房, 노비코보)이다. 고양이를 좋아하신다면 아마 맘에 드는 물건이 많을 것이다. 엽서 두 장을 골라 안으로 들었갔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냥이 한 마리에게 약을 먹이고 있었다-_- 이 냥이가 엽서의 모델이라고 하는데, 사진을 찍게 해 달라고 하자 포즈를 취해주고 있다. 아픈 몸인데도 불구하고 사진 촬영에 응해주는 모습이 투철한 직업의식을 느끼게 한다-_-


노비코보 옆에 있는 포무(ポム)라는 카페다. 여기 애플 케이크가 맛있다. 포장해서 판매하길래 하나 사서 걸어가며 먹었다.




점집도 보이고 치과까지 있는데, 뭔가 조금 생뚱맞아 보인다.

철학의 길은 은각사(銀閣寺, 긴카쿠지) 앞 도로에서 끝난다. 시간이 늦기도 했고 지난 번에 한 번 가 본 적 있어서 긴카쿠지까지는 들어가 보지 않았지만 이 코스는 매우 괜찮다고 생각한다. 좀 더 이른 시간에 출발한다면 긴카쿠지까지 다 볼 수 있을 것이다. 긴카쿠지 앞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가와라마치로 다시 돌아간다. 이로써 2일째도 끝~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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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사이(關西) 여행기 #5 - 교토 헤이안진구(平安神宮)에서 난젠지(南禅寺)로 가는 길

Notice : 본문의 내용은 정구미/김미정의 <오사카 고베 교토>를 상당부분 참조했음을 알립니다.

지온인에서 헤이안진구(平安神宮)로 이동한다.


교토의 거리는 대부분 낮은 건물들로 이루어진 소박한 모습이다. 월요일 한낮이라 그런지 드문드문 마주치는 관광객들을 제외하곤 한적하고 조용하다.


어느 골동품 가게 앞에 서 있던 너구리 두 마리를 만났다. 그런대로 귀여운 모습이긴 한데, 밤에 마주치면 좀 무섭겠단 생각이 든다.


일본은 비교적 흡연이 자유로운 나라다. 패밀리마트나 로손 등의 웬만한 편의점에서 담배를 구입할 수 있고 골목마다 들어서 있는 담배 자판기도 매우 많다. 간혹 담배를 파는 구멍 가게도 보이는데, タバコ(타바코)라고 담배를 판다는 표시를 크게 써 놓는다.


2 차 목적지인 헤이안진구의 입구(..라 해야 하나? 여기서 헤이안진구까진 꽤 멀다)이다. 빨간색 초대형 도리이(鳥居)가 서 있다. 도리이는 한자를 보면 알겠지만, 새가 머무는 곳이란 뜻이다. 일본에선 새를 신의 사자라고 여겨 신성하게 생각했는데, 신의 사자가 앉을 수 있게 하기 위해 홰처럼 만들어 놓은 것이다. 신사(神社)는 보통 도리이를 경계로 안과 밖을 구분한다.


헤이안진구 주변엔 교토시립미술관, 국립근대미술관 등의 미술관이 있다. 일본 화가의 전시회가 있다고 써 있었으나 일본도 월요일이 휴관일이다-_-(제길슨)


일본 만화 등에도 자주 나오는 니노미야 킨지로(二宮金次郞) 동상이다. 이 동상은 일본의 소학교에서 흔히 볼 수 있다고 하는데, 등에는 나무지게를 메고 있고 책을 보고 있는 모습이 면학(勉學)과 노력을 상징한다. 원래 이름은 니노미야 손토쿠로 실존 인물이라고 한다.


경찰서 앞에 수배전단이 붙어있다. 뭔가 무시무시한 사람들이다-_- 한국의 수배전단에 비해 느낌표의 남발이나 문구, 디자인 등이 뭔가 만화스럽다. 수배전단의 문구는 "자세히 봐!! 유유히 도주중!! 의외로 가까운 데에 숨어있을지도..."라고 써 있다.


헤이안진구 입구 앞에 있는 오카자키공원(岡崎公園, 오카자키코엔)이다. 잔디인지 잡초인지가 듬성듬성한게 마치 까마귀가 풀뜯어먹다 만 느낌이다.


누가 공원에 벤또를 먹고 버려놨다. 이런 모습을 보면 왠지 안심이 된다. 처음 일본에 갔을 땐 신호등도 파란불 켜져야 건너고 길거리 흡연도 안하고 줄도 잘 서는 일본인들을 보고 대단하다고 느꼈는데, 이 사람들도 자꾸 보다보니 결국 사람 사는 데는 다 똑같단 생각이 든다.


헤이안진구의 광활한 앞마당이다. 5월인데도 땅에서 올라오는 열기가 장난이 아니다. 한여름에 왔으면 쓰러졌을지도...


멀리서 봤을 땐 벚꽃이 피어있는 줄 알았다. 운세를 점치는 종이를 나무에 묶어 놓은 모습이다.


나이와 성별에 따라 운세를 보는 법이란다. 한자와 히라가나가 뒤섞여 있다. 뭐..운세따위;;;

헤이안진구의 한 쪽에는 신엔(神苑)이란 정원이 있다. 입장료를 받길래 안 들어갔는데, 나중에 책을 보니 들어가볼껄 하는 후회가 들더군.


이제 헤이안진구에서 난젠지로 이동하자. 난젠지까지 30-40분 정도 꽤 걸어야 한다. 하지만 가는 길이 매우 아름답고 편안하기 때문에 일단은 도보로 이동하는 것을 추천한다. 하지만 주택들 사이의 골목으로 가는 길은 좀 복잡해서 길을 잃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교토시립동물원도 월요일은 휴관이다. 그래, 동물들도 좀 쉬어야지-_-


배가 고파서 길가에 있는 소바집에 들어갔다. 정원처럼 꾸며놓은 마당에 깔끔해 보이는 외관이다. 사실은 입구 오른편 팻말에 영어 메뉴가 있다고 써 있어서 안심하고 들어가게 되었다.


덴뿌라 소바다. 소바는 그런대로 맛있었는데, 덴뿌라가 좀 눅눅한게 별루였다. 외국인 관광객 대상 음식점은 역시 믿는 게 아니다-_-


큰 길을 따라 쭉 가다 보면 골목길로 접어들게 되는데, 사진같은 골목길이 이어져 있다. 좌우에는 민가가 있고 나무들이 많아서 매우 상쾌하다. 약간 돌아가는 코스이긴 하지만 이 골목길을 통해 가는 것이 더 좋다.


길 옆으로 시내물이 흐르고 좁은 길이 나 있다. 표지판엔 노무라 미술관으로 가는 길이라 되어 있는데, 접어들자마자 날벌레들의 공격이 시작되어 굴복하고 빠져나왔다-_-


일본의 전통 가옥엔 간혹 이렇게 창문 아래 툭 튀어나온 것이 있다. 이걸 이누야라이(犬矢來)라고 하는데, 길가의 벽에 비가 튀거나 개가 오줌을 싸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라 한다. 술집 같은 곳에 있는 이누야라이는 밀담을 엿듣지 못하게 하는 목적도 있다래나 뭐래나...


열심히 걸어서 드디어 난젠지(南禅寺)에 도착했다. 차가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놓은 금속봉 위에 새들을 앉혀놓은 센스! 함부로 걸터앉지 말란 뜻인가...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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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사이(關西) 여행기 #4 - 교토 가와라마치(河原町)에서 지온인(知恩院)까지

Notice : 본문의 내용은 정구미/김미정의 <오사카 고베 교토>를 상당부분 참조했음을 알립니다.

이틀째는 교토를 돌아보았다. 지난 번 교토 여행은 계절도 겨울이고 해서 버스를 타고 많이 알려진 곳을 중심으로 다녔다면, 이번 교토 여행은 도보로 다니며 교토의 산책길을 느껴보기로 했다.

사실 교토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관광지인데다가 니죠성(二條城, 니죠죠)이나 금각사(金閣寺, 킨카쿠지), 청수사(淸水寺, 기요미즈데라) 등의 명승지로 알려진 곳이라, 전반적으로 화려한 곳이란 인상이 있었다. 하지만 교토를 도보로 돌아보게 되면 그런 화려함의 이면에 있는 조용하고 소박한 멋을 볼 수 있는 것 같아 매우 좋았다. 개인적으론 버스를 타고 하루만에 교토 시내를 돌아보는 것보다 3-4일 정도 일정으로 이곳저곳을 걸어다니는 것이 더 괜찮은 여행 방법이란 생각이다.

일단 우메다에서 한큐(阪急)전철로 종점인 가와라마치(河原町)역까지 간다. 가와라마치는 교토 시내의 최대 번화가로 역 밖으로 나오면 백화점들과 상점들이 주위를 압박한다. 시죠도리(四條通り)를 따라 다이마루(大丸), 한큐(阪急) 등의 백화점들이 늘어서 있어 여느 쇼핑가와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일단 복잡한 시내를 빠져나오기 위해 기온(祇園) 방면으로 탈출을 시도해 보자.

 
가모가와(鴨川)를 건너면 바로 기온 거리가 나온다. 여기까지 오면 높은 건물들은 어느덧 사라지고 낮고 고풍스런 건물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사진은 기온에서 가와라마치 방면을 찍은 것이다)




오래된 가부키 극장인 미나마자(南座)의 정면 모습이다. 미나미자는 2차대전 중에도 공연을 멈추지 않았다고 하는 전통의 극장이다. 시간적인 여유가 된다면 공연도 한 번 보고 싶었으나, 지금 공연을 하는 건지 안하는 건지도 모르겠어서-_- 사진만 찍고 지나쳤다.


교토의 화장품 가게 요지야(よじや)다. 요지야는 100년 전통을 가진 화장품 가게다. 원래는 요지(이쑤시개) 등 생활 잡화를 생산하는 가게였기 때문에 이름이 좀 그렇지만, 여성분들(+일부 남성분들)의 필수품인 기름종이를 처음으로 생산해서 히트를 쳤다. 이 기름종이를 책처럼 묶어 판매하는데, 써 본 사람의 말로는 정말 잘 닦인다고 한다-_- 가게 안에는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기념품을 사가려고 하는지 북적북적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교토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사람은 외국인(특히 서양인)과 학생들이었다. 5월에 가서 그런지 유난히 수학여행 온 듯한 학생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기온에서 매우 가까운 곳에 위치한 야사카신사(八坂神社, 야사카진자)다. 야사카신사는 교토 최고(最古)의 신사로서, 일본의 3대 축제라 불리는 교토의 기온마츠리(祇園祭)의 무대가 되는 곳이다. 신라신을 모시는 곳이라 한국과도 약간의 인연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신사는 일본 전통 종교인 신도(神道)의 사당이다. 여기엔 특정한 신을 모시는 것이 아니라, 창조신, 자연신, 조상 등, 신성이 있다고 여겨지는 신(神, 가미)을 모셔놓고 섬기는데, 모셔놓은 신이 어떤 성격이냐에 따라 신사의 성격이 나타난다. 그래서 신사 중에는 독특한 특징을 가진 신사들이 꽤 있는데, 이것이 약간의 장사속과 합쳐져서 관광객들을 끌곤 한다.


야사카신사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신라신보다는 아름다움의 신을 모시는 사당(美御前社, 우츠쿠시고젠샤)이었다. 앞엔 뭐라뭐라 설명이 써 있는 푯말이 있긴 했지만..가뜩이나 읽기 힘든 한자를 휘갈겨 놓았다-_-


사당 옆에는 플라스틱 파이프에서 샘물이 나오고 간판에 미용수라 써 있다. 이 물을 바르거나 마시면 아름다움을 지켜준다고 하지만, 내가 갔을 땐 웬 아저씨가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있는 설득력 없는 상황이었다.


야사카신사의 뒷문으로 나가면 마루야마공원(円山公園, 마루야마코엔)이 나온다. 봄에는 벚꽃이 절경이고 가을엔 단풍이 절경이라는 곳인데, 물론 내가 갔을 땐 벚꽃은 다 지고 없었다. 훗 벚꽃따위 ( -_-)y-~ 그래도 나무가 많고 시원해서 꽤 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휴식을 취하기 좋은 장소이다. 역시 여기에도 학생들이 우글거렸다-_-


1차 목적지인 지온인(知恩院)의 산몬(三門)이다. 일본의 절은 위와 같이 세 개의 문이 입구를 지키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세 가지 번뇌(탐욕, 분노, 어리석음)을 벗어나 해탈하는 과정을 나타낸다고 한다. 지온인은 정토종의 사원으로, 정토종이 절실한 신앙심만 있으면 누구나 극락에 갈 수 있다고 하는 종파인만큼, 지온인은 서민들과 친밀한 사원이라 한다. 일본 최대라고 하는 거대한 산몬이 당시 사원의 위세를 보여주는 것 같다.


산몬을 통과하면 높다란 언덕이 나온다. 이 언덕을 올라가는 두 갈래 길이 있는데, 짧고 굵게 가는 길과 약간 길지만 좀 편하게 가는 길이다. 전자를 남자언덕(男坂, 오토코자카), 후자를 여자언덕(女坂, 온나자카)이라 부른다. 난 물론 여자언덕으로 올라갔다-_-


지온인의 본당이다. 신발은 벗어서 비닐봉지에 담아 올라가야 한다. 본당 안에는 여느 사찰처럼 큰 불상이 있고 불공을 드리는 사람들이 여럿 보인다. 뭐 당연하지만 경내는 촬영 금지다.


본당의 지붕 위를 자세히 보면 벽돌 두 개가 나란히 올려져 있다. 이 벽돌은 아직 공사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표시하기 위함이라 한다. 지온인이 영원히 공사중인 이유는 워낙 거대한 건축물이라서 완성되었다가는 큰 일이 날 것 같아서..라는 설이 있는가 하면, 지온인을 건설하게 한 도쿠가와(德川) 가문에서 건설비를 더 뜯어내려 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_-


지온인의 본당은 걸으면 휘파람새 소리가 나는 복도, 천장 위에 숨겨져 있는 우산과 밥주걱 등의 7가지 불가사의가 있다고 한다. 일본의 유적은 뭐랄까...별 것 아닌 것에도 사연을 잘 붙이는 것이 일종의 마케팅이 아닌가 싶다.


본당 앞마당에 구석진 곳에 다리가 있다. 다리를 건너가면 진한 향냄새와 함께 납골당이 나오는데, 참배하러 온 사람들이 가져온 꽃과 향등이 있다. 여기에 특이하게도 무간도에 나오는 것처럼 음료수 캔 위에 담배를 올려놓은 흔적이 있었다. 장발을 뒤로 묶은 야쿠자 필 나는 아저씨가 두목의 명복을 비는 것처럼 보이길래 사진은 찍지 못했다-_-


다리 옆에 위로 올라가는 길이 있길래 가 봤더니 거대한 종루가 덩그러니 있다. 주위에 아무도 없는 조용한 분위기라 한 번 쳐 볼까 했지만, 야쿠자 아저씨의 보복이 두려워 사진만 찍고 내려왔다.

지온인은 매우 큰 사찰이다. 본당 뒤로 연결되어 있는 건물은 수리중이라 들어가지 못했는데, 그것 외에도 여기저기 볼만한 것들이 꽤 많다. 산 밑자락에 있어 꽤 시원하고 특히 본당은 목조 건물이라 그늘진 곳은 서늘하기까지 했다. 시간만 충분하다면 쉬엄쉬엄 둘러봐도 좋을 듯 하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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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피디아의 중립성 신화

얼마전 위키피디아와 관련된 재미있는 기사를 봤는데, 많은 사람들에 의해 작성되고 있는 위키피디아조차도 소수 의견이 쉽게 묵살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처음 위키라는 툴을 봤을 때에는 든 생각은 참 개발자스러운-_- 도구란 것이었다. 사용자 편의성을 지향하면서 갈수록 복잡해지는 게시판이나 블로그 등과 비교해 보면, 위키는 단순한 기능이지만 필요에 따라 확장시키기 쉬운 구조로 되어 있다. 몇몇 룰만 알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에디터, 문서 제목을 기준으로 한 단순하지만 막강한 인덱싱,  필요에 따라 붙여 쓸 수 있는 매크로 등은 위키가 심플하지만 강력한 기능이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이와 함께 위키를 주목하는 또다른 이유는 바로 공동 편집 시스템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한 물 갔지만 웹2.0이 뜨면서 새삼스레 주목받던 집단지성이란 키워드에 의해 위키 시스템과 위키피디아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솔직히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이 라는 용어는 상당히 아카데믹한 용어라 정확히 이해하기는 힘들다. 오히려 개인적으로 관심있는 부분은 "브래태니커(1인 편집) vs 위키피디아(집단 편집)"의 대결 구도였는데, 이 구도는 "지식을 수집하고 정리하는 데 있어 어떤 방법이 더 합리적인가"라는 흥미로운 논점을 낳게 되었다.

위키의 편집 시스템은 공동작업을 할 때 상당한 위력을 발휘한다. 실제로 내가 속한 팀에서도 기본적인 프로젝트 문서 작성은 위키로 하고 있고, 지식 공유, 일정 관리 등 다양한 일을 병행하고 있다. 기존 문서의 내용에 이의가 있다면 정중하게-_- 줄을 긋고 편집자의 이름과 함께 새로운 설명을 단다. 문서를 통합하거나 재배치를 할 때면 관련자들에게 노티를 하고 일괄적으로 문서를 정리한다. 기본적인 룰만 지켜주면 위키를 통한 문서 관리와 지식 축적은 다른 어떤 툴보다 쉽고 강력하다.

하지만 이 방식이 유효한 것은 일정한 규모의 공동체 내부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팀원들이 서로를 알고 있고 위키를 합리적으로 사용할 책임이 모두에게 있기 때문에, 위키를 통한 지식 축적과 정리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중소규모 이상의 공동체에서 과연 이런 방식이 문제없이 통용될 지 의문이다. 특히 익명성이 보장되는 공간에서 모든 참여자의 의견을 존중하고 최대한 합리적인 문서를 만들어내려는 노력을 누구나 할 수 있을 지 의심되는 것이다.

이것은 컨텐츠의 종류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위키피디아에서는 정치적 문제에 대한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중립적 시각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으며, 토론이 가능한 페이지를 만들어 놓기도 한다. 그러나 황우석 사태에서도 드러났듯이 순수한 학문적 중립성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 의문이며, 모든 지식은 정치적으로 쟁점화될 여지가 있다. 모든 논쟁 사안에 대해 익명의 다수파가 소수파에 대한 예의를 지켜줄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위키피디아의 가장 위험한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위키피디아는 "키워드=설명"로 지식을 정의한다. 다양한 의견을 받아들이는 페이지도 존재하지만, 위키피디아의 기본 포맷이 키워드와 1:1로 대응하는 설명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런 시스템에서 다른 의견을 제시하기 위해선 앞선 의견을 부정해야 가능하다. 물론 별도의 키워드로 가지를 치는 방식도 가능하겠지만, 위키의 기본 운영 형태인 계층형 구조에서는 상위 키워드의 순서가 더 중요하게 다뤄지기 때문에 다른 의견을 개진하는 데 있어 그닥 효율적이지 않다. 물론 위키피디아는 기본적으로 "사전"이기 때문에 이견들을 통합해 하나의 페이지로 만들고, 비주류 의견들은 링크 등으로 참조하도록 되어 있지만, 사전에 최우선으로 등재되기 위한 정치적 투쟁이 벌어질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분명 위키가 가지는 도구적인 합리성과 별개의 것이다. 분명 위키는 다른 어떤 툴보다 빠르고 쉽게 지식을 찾을 수 있는 툴이다. 하지만 현재 일반적인 위키의 구조는 (특히 대규모의) 논쟁을 벌이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건 어떤 툴도 마찬가지라는 생각도 든다. 게시판의 무한 리플 논쟁은 체계적으로 따라가기 힘들고, 블로그의 트랙백은 논쟁이 산만해지기 쉽다. 그나마 체계적인 지식 축적이 가능한 위키가 논쟁에 그나마 적합한 툴일지도 모른다. 이런 의미에서 "논쟁형 위키"를 한 번 고안해 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ps. 포스팅을 하려고 봤더니 이미 다섯병님이 포스트를 써 놓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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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사이(關西) 여행기 #3 - 오사카 아메리카무라(アメリカ村)

도톤보리에서 신사이바시(心濟橋)로 이동한다.

신사이바시는 전체가 거대한 상점가다. 일본의 상점가는 한국의 명동 + 영등포 시장 같단 느낌이 드는데, 명동 같이 골목골목마다 상점들이 늘어서 있으면서도, 우천시에도 불편없이 쇼핑을 즐길 수 있도록 영등포 시장 같이 골목 위로 지붕을 씌워 놓은 것이 특징이다. 일요일 밤인데도 불구하고 신사이바시는 엄청난 인파로 붐비고 있었다.

오사카 젊은이들의 집합소라고 하는 아메리카무라(アメリカ村)를 따라가 보았다. 아메리카무라는 10대~20대들이 많이 이용하는 상점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이름과는 달리 그닥 아메리카스럽지는 않고, 보세 옷가게와 화장품 할인점, 악세사리 가게 등 이대 앞 상점가와 비슷한 분위기가 난다.


미츠야(みつや)라고 쓰여 있는 가게다. 뭐하는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곱게 차려입은 젊은 여성 세 명이 그네를 타고 빙글빙글 돌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_- 가끔 일본인들의 정서를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세일가 3600엔(대략 28,800원)짜리 기모노가 나와 있다. 간사이 지방엔 기모노를 입고 다니는 사람이 꽤 있다(특히 교토). 물론 현지 체험을 해 보는 관광객들도 있긴 하겠지만, 기모노가 한복보단 더 대중적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상점가에는 이렇게 기모노를 파는 가게들이 꽤 있다.


맥 스토어다. 역시 젊은 사람들로 붐비는 것을 보면, 일본에서도 맥의 인기가 대단하다는 걸 느끼게 된다. 어두운 거리에서 혼자 빛나는 모습에, 절대반지에 의해 모르도르로 끌려들어가는 프로도처럼-_- 나도 자칫하다가 안으로 끌려들어갈 뻔 했다;;;


포스가 느껴지는 미샤 매장이다. 묘하게도 미샤는 국내보다 외국에서 더 자주 눈에 띈다. 홍콩의 미샤도 그랬지만, 메인스트리트를 벗어난 의외의 장소에서 미샤를 발견하게 된다.


눈을 돌리다가 우연히 발견한 빌딩 꼭대기의 자유의 여신상이다. 회사 근처에서 에펠탑을 닮은 전파탑이 빌딩 위에 달려있는 것까진 봤지만, 너무나 자연스럽게 진부한 이런 발상이 오히려 신선하다-_-


아메리카무라의 명소인 산카쿠코엔(三角公園)이다. 약속 장소 등으로 자주 이용되는 명소라고 하는데, 꽤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잘 놀 것 같은-_- 10대들로 북적북적했다. 여기저기 앉아서 술을 마시거나, 친구들을 만나거나, 헌팅-_-을 하는 등 꽤 자유로와 보이는 분위기다. 유난히 힙합스타일을 한 10대들이 많이 보인다.

공원 바로 앞에 코가류(甲賀流)라고 하는 타코야키 가게가 있다. 처음으로 마요네즈 소스를 사용한 30년 전통의 타코야키 가게라고 한다. 예상과는 다르게 매우 좁은 가게에 밖에서 주문하고 받아가야 한다. 300엔짜리 일반 타코야키와 400엔짜리 파가 들어간 타코야키가 있는데, 오사카의 타코야키는 한국에서 먹는 것보다 좀 느끼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론 파가 들어간 타코야키를 추천한다. 산카쿠코엔에서 타코야키를 우물거리며 보면, 나같이 타코야키를 먹고 있는 사람들도 보이고 술안주로 타코야키를 먹는 친구들도 보인다.


돌아오는 길에 호텔 앞에서 열창하고 있는 무명 가수의 모습이 보인다. 일본 거리에는 이런 무명 가수들이 꽤 있다. 이 분들의 특징은 관객들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열심히 노래를 부른다는 건데, 그 중 가장 압권은 후쿠오카(福岡)의 나카스(中洲)에서 토토로 주제가-_-를 부르던 가수였다. 다행히도 위의 분은 고개를 까딱거리며 나름 열심히 듣고 있던 관객들이 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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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사이(關西) 여행기 #2 - 오사카 도톤보리(道頓堀)

여행 1일째는 (당연하지만) 오사카에서 보냈다. 장시간-_- 비행과 전철을 무거운 짐과 함께 타고 와서 숙소에 도착하니 어느덧 오후 6시. 맛난 걸 먹겠다는 의지 하나로 난바를 행했다.

저녁은 당근 도톤보리(道頓堀)에서 먹는 거다. 도톤보리는 맛난 것으로도 유명한 오사카에서도 유명한 음식점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이다. 이 곳에 가 보면 정말 "오사카 사람은 먹어서 망한다"는 말이 실감나게 느껴진다. 지하철 역으로는 미도스지(御堂筋)선의 신사이바시(心濟橋)와 난바(なんば)의 중간 쯤에 있기 때문에 아무데서나 내려 걸어가면 된다.

일단 너무나 배가 고픈 상태라 만사 제쳐두고 밥부터 먹으러 갔다.


이마이(今井)이라는 우동집이다. 책에 소개된 바로는 유부우동(기츠네 우동)이 맛있다고 하길래 한 번 주문해 봤다.


큼지막한 유부 두 개가 파와 함께 얹어져서 나온다. 이 유부가 우동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 -_-)-b 일본 우동은 보기엔 한국 우동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뭔가 맛의 차이(특히 국물의 맛)가 확실히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일본 음식점의 메뉴판은 정말 알아보기 힘들다. 가타카나나 히라가나로 써 있으면 읽기라도 하겠는데, 대부분 메뉴판은 한자로 쓰여 있어서 어떻게 발음하는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우리는 튀김이 "덴뿌라"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天ぷら", 더 나아가 "天婦羅"라고 써 있으면 대체 이게 뭔가-_- 하며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참고로 덴뿌라의 어원)

일단 허기를 달랜 다음 도톤보리 일대를 돌아보았다.


도톤보리의 입구에 위치한 고급 게 요리집 카니도라쿠(かに道楽)다. 카니는 일본어로 "게"를 뜻한다. 저 게의 다리가 꿈틀꿈틀-_- 움직이는데, 도톤보리는 문어, 복어 등 이런 식의 큰 간판들이 많아 매우 휘황찬란하다. 무지무지 비싸다고 하길래 입구 근처에도 안 가봤다;;;




유명한 (특히 한국인에게) 라멘집인 긴류라멘(金龍ラーメン)이다. 아마도 돈코쓰(豚骨) 라멘으로 여겨지는 라멘인데, 그닥 느끼하지 않고 결정적으로 김치가 무한 리필이다-_- 울트라 느끼한데다 냄새가 좀 나는 큐슈(九州)의 돈코쓰 라멘에 비해 한국인들의 입맛에 비교적 잘 맞아서 인기가 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론 큐슈의 돈코쓰 라멘도 좋아한다) 가게 앞에 있는 자판기에서 먹고 싶은 메뉴를 골라 식권을 뽑도록 되어 있는데, 오사카에는 이런 시스템의 가게들이 꽤 있다. 참고로 저 용은 안움직인다-_-


일본엔 자판기가 참 많다. 음료수부터 시작해서 담배 및 기타 생필품까지 자판기 안에 들어가 길거리에 늘어서 있다. 한국처럼 미성년자의 흡연을 막기 위해 길거리 담배 자판기를 없애는 바람에 담배를 구하기 위해 한밤중에 편의점을 찾아을 헤메이는 일이 별로 발생하지 않아 편하다. :)


음료수 자판기 옆에는 반드시 이렇게 생긴 쓰레기통이 있다. 처음엔 생긴게 재떨이를 닮았길래 담배 꽁초를 집어넣곤 했는데, 알고보니 빈 캔을 수거하는 재활용 쓰레기통이었다-_-


꽤 유명한 쿠이다오레(くいだおれ) 인형이다. 뭔가 허접해 보여도 나름 자동 인형이라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한다. 쿠이다오레는 앞에서 말한 "먹다가 망한다"는 뜻이라고 한다-_- 일식 레스토랑으로 알고 있는데, 카니도라쿠 정도까진 아니겠지만 그닥 싼 것 같진 않아서 역시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은 없다.


구리코(グリコ) 간판이다. 구리코, 즉 글리코는 일본의 한 제과업체인데, 예전에 몸에 좋다고 알려진 글리코겐 함유 과자를 만들었기 때문에 회사 이름이 저렇게 구리다. 간판의 유래에 대해서는 이지님의 설명을 참조하시라.


도톤보리 고쿠라쿠 쇼텐가이(道頓堀極樂商店街)는 도톤보리에서 즐길 수 있는 것들을 모아놓은 곳이라고 한다. 꼭 가봐야지 하며 벼르고 있었지만 결국 시간이 늦어 들어가 보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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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사이(關西) 여행기 #1 - 간사이 공항에서 우메다까지

5월 20일~23일, 일본 간사이 지방으로 여행 다녀왔다. 일본은 이번이 세 번째인데다 간사이 지방으로는 두 번째 여행이라 여러모로 수월하리라 예상했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예상대로 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_-

전체적인 여정은, 숙소는 오사카(大阪)에 잡고 교토(京都) 1일, 나라(奈良) 1일로 계획했는데, 가면서 읽은 책에 낚여-_- 나라 대신 고베(神戶)로 행선지가 바뀌었다. 나라는 항상 여행 일정 계획할 때는 꼭 들어가는데 막상 현지에 가면 안가게되는 이상한 동네다. 이 "가면서 읽은 책"은 뒤에 소개하겠지만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아마 간사이 지방 여행 하시려는 분들께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불편함을 잘 견디는 편이라 언제나 비행기도 젤 싼 거, 숙소도 저렴한 곳을 고르곤 했는데, 이번엔 나름 쉬러 가는 건데 잠이라도 제대로 자고 싶어서 처음으로 별 4개짜리 호텔을 예약했다. 바로 이름도 거창한 오사카 다이이치 호텔(大阪 第一 ホテル)이다. 호텔 예약하는 사이트마다 쉽게 볼 수 있는 호텔이고, 그래서인지 한국인들이 많이 보인다고 한다-_- 개인적으로 (외국어도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외국까지 가서 한국말 듣는 건 좀 별로라고 생각해서 첨엔 리스트에서 제외했었는데, 이것 저것 따지다 보니 결국 여기로 결정하게 됐다. 우려와는 달리 비성수기에 여행을 가서 그런지, 한국인은 한 명도 못 봤지만.ㅎㅎ


공항이나 역 같은 공공 시설에서 의외로 한국어가 자주 눈에 띈다. 간사이 국제 공항도 예외는 아니어서, 공항 내부에서는 영어나 일본어를 전혀 못하더라도 크게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한국어 안내가 잘 되어 있다.




간사이 공항에서 시내까지 이동할 땐 보통 난카이(南海) 공항선을 이용한다. 난카이 공항선의 열차는 종류가 여러개라서 선택해서 탈 수 있는데, 빠른 순서대로 특급(特急, 라피도ラピ-ト), 급행(急行), 보통(普通) 등이 있다. 이 중 특급인 라피도(젤 위의 사진)는 젤루 빠른 데다가 지정 좌석제인지라 추가 요금이 필요하다. 근데 뭐 급행만 타도 적당히 빠른 데다가 웬만하면 앉아 올 수 있기 때문에, 시간이 맞는다면 급행 열차를 추천 드리고 싶다. 위의 사진은 돌아올 때 찍은 거라서 간사이 공항행 열차로 나와 있다.ㅎㅎ

난카이 공항선은 대부분의 코스를 지상으로 해서 오는데, 처음엔 한자와 가타카나로 뒤범벅된 간판들에 신기해 하다가도 건물이나 도시의 모습이 뭔가 한국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왠지 국철 타고 인천이나 수원가는 느낌이라고 할까나-_-

난 카이 공항선을 타고 종점인 난바(なんば)까지 온 후 오사카 시영 지하철로 환승해야 한다. 지난 번에도 그랬고 이번에도 그랬지만, 난바는 상당히 큰 역이라 환승하는데 꽤 애를 먹는다. 매번 안내원에게 헬프를 요청해 보지만, 지난 번엔 안내원이 영어를 잘 몰라서 난감했었고, 이번엔 영어 발음을 알아 들을 수 없어서 난감했었다-_- 그나마 환승할 때 가장 쉬운 방법은 일단 지하도로 내려가 보는 것이다. 지하철 표시가 있건 없건 지하도로 내려가면 각종 표지판들이 길안내를 해 주기 때문에 지상에서 헤메는 것보다 백만배는 나을 것이다.

다이이치 호텔을 찾아갈 때는 지하철 미도스지(御堂筋)선이 지나가는 우메다(梅田)역보다 요쓰바시(四つ橋)선이 지나가는 니시우메다(西梅田)역이 훨 가깝다. 난바역에서는 두 선 모두 탈 수 있기 때문에, 빨간색 미도스지선 보다는 파란색 요쓰바시선을 타고 가는 것이 나중을 위해 좋을 것이다. 다만, 요쓰바시선을 타려면 미도스지선을 탈 때보다 많이 걸어야 하기 때문에, 나중에 우메다역에서 호텔까지 가깝다는 거리상의 이점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다-_-


니시우메다역에서 다이이치 호텔까지는 매우 가깝지만 우메다 지하 상가가 보통 복잡한 게 아니기 때문에 길을 잘 찾아가야 한다. 난바에서 좀 걷더라도 요쓰바시선을 타는 것을 권장하는 게 바로 이것 때문이다. 미도스지선 우메다역에서 다이이치 호텔까지 오려면 엄청나게 복잡한 지하도를 헤치고 나와야 한다. 다이이치 호텔은 디아모르(ディアモル) 근처에 있기 때문에 디아모르 표시를 쫒아가는 것도 한 방법이다 .

다이이치 호텔은 위치상의 이점이 상당한 호텔이다. 지난 번 오사카에 갔을 때는 난바에 숙소를 잡아서 먹고 마시는 데는 좋았지만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게 상당히 귀찮았는데, 다이이치 호텔은 교통의 요지인 우메다 한 가운데 있어서 매우 편리하다. 다만 시설만 보고 따진다면 썩 좋다고는 할 순 없다.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각도가 저것밖에 안나온다. 화장실 사진이 없는 것이 아쉬운데, 방과 화장실이 매우 좁다는 점과 방음이 안된다는 점 등의 단점이 있다. 하지만 일본의 비지니스급 호텔이 다들 고만고만하기 때문에 특별히 실망스러울 정도는 아니다. 그리고 이 모든 단점을 커버할 수 있을만한 엄청난 접근성은 분명 대단한 장점이다.


호텔 정문이다. 1층에 별다방, 지하 2층에 타워레코드 등이 있다. 별다방은 저녁만 되면 평일에도 붐비는 모습이 한국과 그닥 다르지 않다.

마지막으로 "가면서 읽은 책"을 소개하면... 정구미의 <오사카, 고베, 교토>이 다. 저자는 재일교포인데 예전에 한 포털 만화 섹션에 연재한 만화를 보면서 알게 되었다. 일단 만화로 되어 있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데다가 여행 정보와 더불어 일본의 역사/사회적 배경 등을 함께 다루고 있다. 서점을 떠돌다가 우연히 발견한 이 책을 비행기와 난카이 전철 안에서 다 읽었는데, 개인적으로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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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로그인의 무거움


요즘 포털들의 때아닌 이메일 서비스 경쟁이 한창입니다. 몇 년 전 G메일의 등장으로 인해 촉발된 기가바이트(GB) 단위 메일 서비스 경쟁을 마지막으로, 그간 이메일 서비스 시장는 특별한 변화가 없이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최근들어 난데없이 이메일 서비스 시장은 다시금 포털들의 치열한 각축장이 되고 있는 것이죠.

이메일 서비스는 지금처럼 웹이 활성화되기 이전부터 존재하던 전통적인 서비스입니다. 초기 포털들은 이메일 서비스와 함께 성장하기 시작했고, 온라인에 적용된 최초의 광고 플랫폼도 이메일 기반의 광고였죠. 최초의 배너광고가 출현하기도 전에 스팸 메일의 존재가 있었다는 것이 이메일의 오래된 역사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초 기 웹에서 이메일 광고는 효과적인 광고 플랫폼이었으며, 많은 이메일 계정(즉, 고정적인 사용자)을 보유하는 것 자체가 가치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웹은 검색이나 블로그 등의 개인 미디어를 통한 불특정 다수의 사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광고 플랫폼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예전처럼 메일 서비스를 통해 충성스러운 사용자군을 형성할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이메일 서비스가 더이상 매력적인 플랫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포털들의 지속적인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이메일 서비스가 가지는 또 하나의 특징인 "로그인 기반" 서비스라는 점 때문입니다.

포털이든 특정 사이트든 간에, 사용자가 한 번 로그인을 하고 나면 그 다음부터 사용자는 로그인 된 상태로 돌아다닐 수 있게 됩니다. 이는 웹서버와 사용자의 브라우저 사이에 세션Session이 생성되기 때문입니다. 웹이 기반하고 있는 HTTP 프로토콜은 기본적으로 요청(사용자)-응답(웹서버)의 연속으로 이루어지는데, 통상적인 HTTP 통신에서는 이러한 요청이나 응답의 결과들을 별도로 저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로그인 정보 같이 특정한 정보를 사용자가 요청할 때마다 저장해서 사용해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를 위해 사용되는 것이 바로 쿠키Cookie와 세션입니다.

네트워커에서 한 번 쿠키에 대해 설명드 린 적이 있는데요, 쿠키가 사용자 측에 텍스트 파일 형태로 정보를 남겨 저장하는 반면, 세션은 웹서버에서 정보를 저장하고 관리합니다. 만약 사용자가 로그인을 해서 세션이 생성되었다고 하면, 웹서버에는 특정한 세션을 구분해 주는 세션 ID를 발급하고 파일 하나를 웹서버에 생성합니다. 그리고 사용자에게 이 세션 ID를 전달해 주면, 사용자는 이후 이 세션 ID를 통해 저장된 정보를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쿠키는 사용자 컴퓨터에 파일로 남기 때문에 그 파일에 접근할 수만 있다면 다른 사용자의 정보를 알아낼 수 있는 반면, 세션은 세션 ID만을 사용자에게 넘겨주기 때문에 비교적 안전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세션 ID만 알아낼 수 있다면 역시 다른 사용자의 정보를 빼 올 수 있다는 점(세션 하이재킹)에서 세션 역시 아주 안전하다고는 할 순 없겠습니다.

세션이나 쿠키에는 보통 매우 중요한 사용자 정보들이 들어있습니다. 인증 정보(아이디 및 패스워드)는 물론이고, 사용자가 사이트에 가입하면서 기록한 정보(주소, 전화번호, 생년월일 등)나 사이트에서 임의로 저장한 정보들(최근 접속시간, 방문 이력 등)이 모두 세션이나 쿠키에 기록되게 되죠. 어떤 사이트에서 로그인을 하고 나면 보통은 초기화면으로 이동하게 되는데, 그 짧은 사이에 사용자에 대한 정보들을 세션에 쑤셔넣는 작업을 합니다. 이렇게 집어넣은 정보는 기본적인 인증 이외의 많은 부분에 사용되게 되죠.

최 근 포털들은 사용자 정보 축적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아무리 복잡한 수식을 통해 알고리즘을 잘 세운다 하더라도 실제 사용자들의 행동과 괴리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용자들의 행동 이력을 축적하고 분석하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는 의미겠죠. 빅브라더에 대한 구글의 야망이 새삼스레 부각되는 것도 이런 맥락과 닿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메일 같이 전통적인 로그인 기반 서비스에 대한 관심을 버릴 수 없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기도 하구요. 아마 포털들의 입장에선 다음과 같은 웹서핑 프로세스를 가장 좋아할 겁니다.

브라우저를 켠다 -> 포털로 접속 -> 로그인 -> 이메일 확인 -> 웹서핑

웹 서핑을 할 때 로그인을 한 것과 하지 않은 것은 큰 차이를 보입니다. 물론 로그인 하지 않은 상태라 할지라도 쿠키를 통해 사용자 정보를 수집할 수는 있지만, 데이터의 양과 질적인 차원에서 세션 정보를 활용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죠. 사용자 입장에서는 무심코 하는 로그인 한 번이지만,  일단 한 번 하고 나면 그 이후의 사용자의 행동은 사이트에서 마음껏 수집할 수 있으니깐요. 개인적인 서핑 이력이 드러나는 것을 참을 수 없다면, 메일만 확인하고 바로 로그아웃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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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의 당혹스런 선언과 DRM

애플의 CEO인 스티븐 잡스는 2007년 2월 디지털 저작권 관리, 즉 DRM을 폐기하자는 내용의 서신을 발표했습니다. 잡스도 어떤 꿍꿍이가 있어 한 말이겠지만, 온라인 뮤직 스토어인 iTMS를 통해 많은 이익을 내고 있던 애플이기에, 잡스의 이 선언은 약간 의외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물론 비슷한 온라인 뮤직 비지니스를 하고 있던 MS나 야후의 입장에서는 잡스의 선언이 매우 황당했으리라고 짐작됩니다. 하물며 불법복제되는 mp3 탓에 CD가 안팔린다는 하소연을 몇 년째 되풀이 하고 있던 한국의 음반제작사들은 더욱 당황스러웠겠죠. :) 뒤이어 EMI가 No DRM 행렬에 동참하면서 잡스의 선언은 더욱 현실감을 얻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온라인에서 음악으로 장사를 하기 위해서는 DRM(Digital Rights Management)이 필수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였습니다. DRM은 음악, 이미지, 문서 등의 디지털 컨텐츠에 대해 배타적인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 또는 솔루션 패키지를 일컫는 말입니다. DRM이 걸린 디지털 컨텐츠는 특정 사용자가 특정한 조건 하에서만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마치 암호를 걸어놓은 압축 파일이나 문서 파일처럼 말이죠. 하지만 DRM의 인증 방식은 알집을 통해 암호를 설정해 놓은 zip 파일보다 훨씬 정교한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습니다.

DRM 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암호화 기술입니다. DRM 인증을 통하지 않은 사용자는 사용할 수 없도록 파일을 암호화시켜 변형해야 하고, 만약 사용자가 인증을 통과하면 이를 다시 복원시킬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DRM의 가장 핵심적인 기술이 여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여기에 암호화된 파일을 다시 원래의 파일로 복원시켜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키가 필요합니다. 만약 그 키가 패스워드처럼 단일한 키로 되어 있다면, 그 패스워드가 유출되었을 경우 거의 모든 사람이 DRM을 무시하고 컨텐츠를 사용할 수 있게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보통 사용자마다 서로 다른 키를 통해 암호화하는 방법을 씁니다. 예전에 많이 사용하던 방식은 사용자의 컴퓨터마다 있는 고유번호를 쓰는 것인데요, 예를 들면 CPU의 일련번호나 랜카드의 맥어드레스 등을 적절히 변형시켜 사용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컴퓨터의 일련번호는 다른 사람이 쉽게 알아낼 수 있는 번호이기 때문에 보안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엔 사용자마다 공인인증서 같이 별도의 키를 발급하고 이를 컴퓨터 어딘가에 내장시켜 놓고 쓰는 방식이 일반적입니다. 이렇게 개인키를 통해 암호화 했을 경우에는 제3자의 컴퓨터에서는 복제된 컨텐츠를 사용할 수 없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러한 암호화 기술 외에도 DRM은 컨텐츠에 대한 사용 제한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특정 컨텐츠는 얼마 동안의 기간만 볼 수 있다던지, 몇 번 이내로만 재생 가능하다던지 하는 제한을 걸 수 있게 되죠. 또한 결제 시스템과 연동하여 결제를 거친 후 재생 권한을 주는 것도 가능하게 합니다. 예를 들어 인터넷으로 드라마를 본다고 하면, 일단 결제를 해야 드라마를 볼 수 있게 되고, 3번 이상 재생할 수 없으며, 4번째로 드라마를 재생하려 할 때에는 다시 결제를 해야만 한다...는 식으로 사용 제한을 걸 수 있게 됩니다. 또한 만약 다운로드 방식으로 드라마를 구입한 사용자의 경우 다른 컴퓨터에서는 재생시킬 수 없도록 할 수도 있구요.

하지만 암호화시킨 컨텐츠를 다시 복호화 한다는 것은, 다른 누군가가 암호를 깰 수 있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널리 사용되는 DRM은 끊임없는 해킹 시도를 당해 왔고, 실제로 해킹에 성공한 사례들 도 꽤 있습니다. 또한 DRM은 전세계적인 표준이 없고 웬만한 큰 기업들은 자기만의 DRM을 가지고 있어서 이들 사이의 호환이 되지 않습니다. 애플 것이 다르고 M$ 것이 다르고 소니 것이 다르기 때문에, 사용자는 여러모로 불편함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물론 M$의 영향력이 막대한 한국은 미디어플레이어를 기반으로 한 WMRM을 많이 사용하지만요.)

DRM은 이렇게 컨텐츠의 사용을 엄격하게 제한하기 때문에 많은 사용자들이 불편을 느낄 수밖게 없습니다. 또한 컨텐츠를 완전하게 소유할 수 없고, 비록 유료로 구입한 컨텐츠라 할 지라도 사용성에 많은 한계가 있으며, 보통은 특정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종속되는 형태로 DRM이 구성되기 때문에, 잡스의 선언은 많은 사용자들의 환영을 받았죠. 스톨만 아저씨가 (반드시 GPLv3 때문만은 아니더라도) DRM을 싫어하는 이유가 어떻게 보면 사용자들의 반감과 맞닿아 있는 것 같군요. 하지한 이제까지 잡스가 한 발언 중 가장 정의로워 보이는 이번 선언을 두고도 의혹이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 역시 잡스의 장사꾼 이미지는 참 벗기 힘든 게 아닌가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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