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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한때는 책 많이 읽었는데-_-

9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7/08/30
    흑과 다의 환상 (黑と茶の幻想)(2)
    레니
  2. 2007/06/21
    용의자 X의 헌신 (容疑者Xの獻身, 2006)(4)
    레니
  3. 2006/12/19
    어스시의 마법사 (A Wizard of Earthsea, 1968)(4)
    레니
  4. 2005/09/22
    조지 오웰, <1984>(8)
    레니
  5. 2005/05/31
    Jasper Fforde, <제인 에어 납치사건>(5)
    레니
  6. 2004/10/02
    눈먼 자들의 도시(6)
    레니
  7. 2004/09/06
    Cheval Noir
    레니
  8. 2004/09/01
    보르헤스(5)
    레니
  9. 2004/07/13
    마그리뜨(4)
    레니

흑과 다의 환상 (黑と茶の幻想)

개인적으로 난 온다 리쿠(恩田 陸)의 팬이다. 아마 지금까지 국내에 나온 온다 리쿠의 작품은 거의 다 읽었을 것 같은데, 확실히 이 사람 소설은 색다른 뭔가가 있다고 느껴진다.

온다 리쿠의 작품을 특징 짓는 단어는 "미스테리"와 "초감각"이다. 온다 리쿠의 모든 작품이 미스테리물인 것은 아니지만, 그의 역량이 가장 빛나는 장르가 바로 미스테리물임은 분명하다. 미스테리물에서 그녀의 스토리텔링 기술은 매우 뛰어나다. 정체모를 무언가에 대한 긴장감, 적절히 배치한 복선 등 최소한 클라이막스까지 숨쉴 틈을 주지 않는 그녀의 기술은 책장 넘기는 속도가 점점 가속되며 소설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요인이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그녀의 단점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온다 리쿠의 미스테리는 결말을 잘 짓지 못한다. 터질 듯 팽팽하게 부푼 긴장감을 한 방에 터뜨리는 지나치게 충격적인 결말은 생뚱맞게 보일 때가 많다. "지나침이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처럼, 지나친 결말이 작품의 전체적인 균형을 깨뜨리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다. 이는 <황혼녘 백합의 뼈>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이다. 이 소설은 반전에서 반전을 거듭한 결말을 제시하는데, 최후의 반전만 없었으면 최소한 수작으로 남을 수 있었을텐데, 너무 지나친 마지막 반전이 결국 이 소설을 범작으로 만들고 말았다. (물론 개인적인 평가지만)

이런 의미에서 <흑과 다의 환상>은 긴장감과 결말이 절묘하게 균형잡힌 수작이라 할 수 있다. 상/하권으로 나뉘어 제법 무시못할 분량을 자랑하지만, 이 작품을 읽으며 한 순간이라도 지루하게 생각되었던 것이 없었던 것 같다. 네 명의 동창들이 Y섬의 태고적 삼림으로 전설의 벚나무를 보기 위해 투어를 떠나는데, 한 명씩 화자가 되어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이들 사이의 숨겨진 관계들이 드러난다는 꽤 단순한 내용이다. 하지만 시점이 바뀔 때마다 이들의 숨겨진 비밀이 드러나고, 그 비밀들은 의문의 죽음을 당한 또다른 동창을 매개로 하나로 연결된다.

<흑과 다의 환상>은 장이 바뀔 때마다 사람이 하나씩 죽어나가고 보이지 않는 공포에 심장이 조여드는 류의 미스테리는 아니다. 오히려 <밤의 피크닉> 같이 여러 사람이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며 나누는 대화가 중심이라 잔잔한 분위기를 풍긴다. 하지만 서로가 숨겨왔던 비밀이 하나씩 공개되는 과정과 이들의 숨겨진 관계에서 오는 갈등은 결코 무시못할 긴장감을 가져다 준다. 이 작품은 확실히 다른 미스테리물과는 차별되는 매우 고급스러운 작품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작품이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하 <삼월>)이라는 온다 리쿠의 전작에 나오는 액자 소설이라는 것이다. 물론 설정이 약간 바뀌긴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삼월>에서 먼저 예고편이 나온 후 발간된 본편 같은 느낌이다. 온다 리쿠는 자신의 작품과 등장 인물들로 이런 장난을 곧잘 친다. <흑과 다의 환상>의 중요한 인물인 의문의 죽음을 당한 동창 카지와라 유리도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에 등장한 인물이다.

에구 초감각까지 더하면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온다 리쿠의 초감각 이야기는 다른 작품 소개 때 써야겠다. 여튼 이 작품, 강추다( -_-)-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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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 X의 헌신 (容疑者Xの獻身, 2006)

히가시노 게이고(東野圭吾)의 <용의자 X의 헌신>은 매우 성공한 추리소설이다. 일본 대중문학 신진작가들의 등용문이라 할 수 있는 나오키상 2006년 수상작이고, 한국에서도 처음 출판된지 1년만에 적어도 8쇄 이상을 찍어내는 데 성공하는 등 큰 인기를 끌었다. (책을 누구 빌려주는 바람에 정확한 수치는 알 수가 없지만)

작가는 책 곳곳에서 단서들을 흘리고 독자들은 최대한의 두뇌를 동원하여 결말을 맞추려 하는 것이 추리소설인만큼, 추리소설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극과 극일수밖에 없다. 추리소설의 트릭이란 어린애도 눈치챌 수 있을만큼 허접해도 욕먹고, 누구도 맞출 수 없을만큼 복잡해도 욕먹고, 논리적으로 비약해도 욕먹는 게 당연하다. (그래서 결말 부분에 앞의 스토리에 나오지 않은 근거를 갑자기 꺼내는 김전일은 재미가 없다.) 게다가 <용의자 X의 헌신>은 처음부터 범인의 정체를 드러내놓고 시작하기 때문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한 번씩 돌려가며 범인을 찾는 쏠쏠한 재미도 없다. 이 책은 트릭 자체가 재미없으면 끝장나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Notice : 아래 내용은 스포일러입니다. 책을 읽으시려는 분은 절대 읽지 말아주세요.

이렇게 위험한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용의자 X의 헌신>은 매우 성공적인 추리소설이다. "달마" 이시가미는 연정을 품고 있는 야스코 모녀의 살인을 은폐하기 위해 모종의 트릭을 꾸민다. 이시가미의 트릭은 매우 대담해서 원래 시체는 잘게 분리하여-_-;;; 딴 데 감추고, 자신이 노숙자 "기사"를 살해하고 그 시체를 원래 시체인 것처럼 위장하는 것이다. 이 트릭의 전모는 스토리의 가장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데, 이 트릭을 눈치채기 위해서는 다음 두 가지 사실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첫째, 살인이 일어난 시점이 경찰이 시체를 발견한 날의 전날인 3월 10일이 아니라 3월 9일이었다는 점, 둘째, 노숙자 "기사"가 살인이 일어난 이후 갑자기 사라졌다는 점.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중요한 사실들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는 않는다. 하지만 스토리 곳곳에 이를 추리할 수 있도록 교묘한 장치를 해 놓았는데, 그 중 스토리의 제일 처음 부분이 매우 중요하다. 스토리는 이시가미가 "출근 길"에 노숙자들이 모여사는 강가를 지나가며 "기사"를 보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이 장면은 그 다음 이시가미가 도시락 집에서 야스코를 만나는 장면으로 전환되며 금방 기억에서 사라져버렸는데, 만약 이 장면을 기억하고 있었다면 이시가미가 3월 10일, 11일 오전에 휴가를 냈다는 사실이 드러났을 때, 야스코 모녀의 살인이 이시가미가 출근한 날인 3월 9일이 일어났다는 점을 추리할 수 있었을 것이며, "기사"가 매일 앉아있던 벤치가 비어있다는 묘사를 통해 "기사"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추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이를 추리할 수 있었으면 마지막 장면의 충격도 훨씬 덜했겠지만...

Notice : 스포일러 끝

물론 <용의자 X의 헌신>이 미덕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시가미의 트릭이 워낙 정교한 나머지 이시가미의 의심하며 그의 범행을 밝혀내는 유가와 마나부의 추리는 논리적이라기보다 직관적인 면이 강하다. 그리고 야스코를 헌신적으로 사랑한 나머지 자신이 살인을 저지르는 이시가미나, 이시가미에 지나치게 집착하여 그를 끝까지 의심하는 유가와 역시 이해하기 힘들다. 그래두 얘들은 천재니깐 뭐...(천재면 용서된다-_-)

이 책의 리뷰 중 많이 지적되는 부분이 오자와 탈자 문제이다. 하지만 난 그닥 오자 때문에 불편하단 느낌을 받지 못했는데, 판을 거듭하며 개정된 결과인지 아님 오자에 신경쓸 여유도 없이 스피디하게 책을 읽어서 그런지 잘 모르겠다. <용의자 X의 헌신>은 결점도 많이 가지고 있는 책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시가미의 훌륭한 트릭과 히가시노 게이고의 치밀한 구성은 추리소설 본연의 재미를 느끼게 하는데 충분하다.

사실 <용의자 X의 헌신>은 "감성적인 추리소설"이라는 점을 크게 어필하며 인기를 끈 부분이 있다. 분명 야스코에 대한 이시가미의 말 그대로 헌신(獻身, 몸을 바침)적인 사랑은 다른 추리소설과 색다른 점이긴 한다. 하지만 <용의자 X의 헌신>은 정교한 트릭 자체만으로도 대단히 훌륭한 추리 소설이라 생각한다. 역시 추리소설의 진정한 가치는 "누구나 맞출 수 있으면서도 쉽게 맞출 수 없는 트릭"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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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시의 마법사 (A Wizard of Earthsea, 1968)

얼마 전 포스트에서 지브리의 완성도 지지리도-_- 낮은 <게드전기>에 대해 혹평을 했었는데, 원작도 안 읽어보고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게 좀 민망스러워 <어스시의 마법사>를 읽기 시작했더랬다. <빼앗긴 자들>과 <바람의 열두 방향>에서 르 귄이라는 작가의 책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이번엔 마음 단단히 먹고 스타트를 끊었다. 그런데 이게 웬 걸. 생각보다 책이 술술 읽히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4권인 <테하누> 전까지의 얘기였지만-_-

(네오스크럼님이 알려주신대로) 르 귄의 <어스시> 시리즈는 5권의 장편과 7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국내에는 <테하누Tehanu: The Last Book of Earthsea>까지 장편 4권만 번역되어 들어와 있다. 단편 중 두 편은 <바람의 열두 방향>에 실려있는데, 나머지 단편들은 아직 번역 안된 듯하다.

주의 : 이하 스포일러성입니다.

<어스시> 시리즈에서 주인공은 "새매"라 불리우는 "게드"다. <게드전기>를 보면서 상당히 궁금했던 점 중 하나가 주인공은 아렌인데 왜 작품 이름은 "게드전기"인가...하는 것이었는데, 사실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게드의 활약상은 3권인 <머나먼 바닷가The Farthest Shore>까지가 마지막이다. 4권인 <테하누>에서 게드는 마법사로의 힘을 잃고 자신감까지 잃어버려 존재감이 매우 희박해진다. 대신 2권인 <아투안의 무덤The Tombs of Atuan>에서의 "아르하"가 성장한 "테나"와 화상입은 꼬마아이 "테루"가 <테하누>의 스토리를 끌어가게 된다.

위의 설명만 봐도 <어스시> 시리즈가 상당히 방대한 스토리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리즈의 미덕은 스토리의 덩치만 큰 것이 아니라 치밀하게 잘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어스시>라는 또 하나의 세계는 "칼과 마법과 용"으로 대표되는 판타지의 형식을 따르면서도, 독자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 진부한 전형성을 탈피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어스시>의 이름의 법칙을 들 수 있겠다. <게드전기>에도 이 내용이 다뤄지기는 하지만 그닥 중요하단 느낌을 받지는 못했는데, <어스시의 마법사>에서 게드가 로크에서 거의 유일한 친구가 되어준 들콩이 자신의 이름을 알려줄 때, 자신의 진짜 이름을 알려준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행위인지 느낌이 팍 온다. 또한 용의 존재 역시 여타 판타지 소설들과 다르다. <어스시> 시리즈에서 용은 인간의 적도 아니고 친구도 아닌,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아예 다른 존재다. 하지만 <테하누>에서 용과 인간이 사실은 한 종족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것을 암시하는 노래가 나오는데, 이러한 발상들 자체가 <어스시> 시리즈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구성하는 요인이 아닌가 한다.

<어스시> 시리즈의 평을 검색해 보면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3권인 <머나먼 바닷가>를 최고의 작품으로 친다. <머나먼 바닷가>는 악의 화신인 거미과 맞선 게드의 이야기이도 하고, 고귀한 핏줄을 타고난 소년 아렌의 성장기이도 하다. 어떻게 보면 <머나먼 바닷가>는 판타지 소설의 공식에 상당히 충실한 작품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나 싶은데, 어떻게 보면 르 귄의 작품치고는 상당히 의아한 작품이 아닌가 한다.

개인적으로는 시리즈 중에서 <테하누>를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꼽고 싶다. <테하누>에서 르 귄은 마법사 세계의 뿌리깊은 가부장적 가치관을 다루고 있다. 시리즈에서 처음으로 주인공의 위치를 게드가 아닌 테나와 테루가 담당하고 있는데, <테하누>는 이들이 마초스런 남성들-마법사, 불량배, 심지어는 테나의 아들까지-에게 당하는 고난이 스토리의 대부분이라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이 과정을 거치면서 테나는 가부장적인 부조리한 세상을 인식하게 되고,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1~3편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바른 사고방식을 가진 것처럼 묘사되었던 게드마저도 자신이 지닌 가부장성을 드러내는 부분이 재미있다.

<테하누>에서는 분명 전편이 지닌 경쾌함-주인공이 악의 무리를 해치우는-은 발견할 수 없다. 대신 테나와 테루가 여성-장애인으로 겪게되는 갖은 고난을 따라가며 분노와 함께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답답함의 시간이 길어서였는지, 마지막에 칼레신이 등장하여 악당들을 쓸어버렸을 때의 통쾌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던 것 같다-_-ㅋ

스포일러 끝

이건 달군의 이야기였지만, <게드전기>의 개봉을 계기로 <어스시> 시리즈의 나머지 번역판이 나와주길 바랬는데, 흥행 실패 때문인지-_- 영 소식이 없는 듯 하다. <테하누> 이후의 이야기인 는 2001년에 출간되었는데, <테하누>의 부제에서 "어스시 마지막 이야기"라고 해 놓고 후속작을 낸 이유도 심히 궁금하다. 얼렁 번역되어 나와 줬으면 하는 바램이 있네~

* 번역안된 단편들과 에 대해 싸락눈님이 쓰신 글들이 있다. 원서를 마음껏 읽을 수 있는 분들, 부럽기 짝이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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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 <1984>

감시사회를 얘기할 때 빼놓지 않고 인용되는 <1984>를 최근에야 읽게 되었다.(생각해보면 이런 책들이 무지 많지 않은가. 인용된 회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원전은 읽기 싫어진다.) "빅브라더"는 각종 글이며 매체에 등장하는 일반명사이며, <1984>의 감시/통제 시스템은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트루먼쇼> 등 수많은 영화에서 그려지고 있다. 어쩌면 <1984>의 디스토피아는 미디어에서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CCTV, 도청, 네트워크 감시 등을 통해 이미 현실화 되어가고 있다고 할 수도 있겠다.

 

물론 <1984>가 처음 출간되었을 때에는 이러한 감시사회의 모습이 큰 이슈가 되었음이 틀림없다. 하지만 감시사회에 대한 논의가 일반화된 요즘 이 책을 읽어서인지,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과거"의 의미에 대한 해석 방식이었다.

 

소설에서는 세 개의 초강대국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유라시아, 동아시아, 그리고 소설의 무대가 되는 런던이 속한 오세아니아가 그들인데, 이들은 모두 전체주의 국가들로 언제나 서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들 전체주의 국가의 지배방식을 거부하고 프롤라타리아 혁명을 주장하는 반체제 단체 "형제단"을 대표하는 골드슈타인의 저작에 따르면, 이 세 초강대국은 대중들을 국가에 헌신적으로 몰입시키기 위해 언제나 전시상태를 유지한다고 한다. 실제로 대규모의 전투는 벌어지지 않고 국경 근처의 국지전만이 벌어지고 있지만, 전쟁의 승리를 보도하고 광적인 애국집회를 열고 스파이단 같은 애국적인 자치단체들의 활동을 통해 국가에 대한 충성을 보장받는다는 것이다.

 

오세아니아에는 세 개의 정부기관이 있다. 그들은 계획경제를 총괄하는 풍요부, 대중을 감시하고 사상을 통제하는 애정부, 그리고 현재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 역사를 날조해내는 진리부인데, 주인공인 윈스턴은 진리부에 근무하면서 누군가가 숙청되면 과거의 신문, 서적 등의 모든 문헌에서 그 사람의 자취를 없애버린다던지, 풍요부에서 계획된 할당량을 채우지 못해 배급을 줄인다는 발표를 하면 과거의 발표 기록을 수정한다던지, 또는 빅브라더의 예언이 사실과 달랐을 경우 과거의 발언 기록을 바꾼다던지 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이러한 진리부의 활동은 매우 인상적이다. <1984>의 오세아니아에서 "과거"는 더 이상 "이전에 실제로 있었던 일"이 아니다. 국가의 판단에 따라 과거의 기록은 일괄적이면서 체계적으로 변조되고 가공된다. 또한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던 과거의 사실들은 "이중사고"라는 정신훈련을 통해 왜곡되고 잊혀진다. 영화 <메멘토>에서는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라고 하지만, 기록과 기억을 동시에 왜곡시키는 이러한 시스템에서는 과거란 의미없는 것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서로 상충되는 단어들을 대비시켜놓은 진리부의 모토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 전체주의 국가가 시스템을 유지하는 방법은 모순적인 것 같으면서도 가장 확실한 대중통제를 가능하게 한다.

 

책 말미에 왠지 익숙한 문장이 나온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 Who controls the past controls the future. Who controls the present controls the past." 바로 RATM의 "Testify"에 나오는 말이었다-_-

 

ps. <1984>에 대한 레퍼런스를 찾아보려고 구글을 뒤져봤는데,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는 얘기지만) <1984>는 정보사회의 감시와 통제를 이야기할 때 많이 인용되고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우파들 역시 이 텍스트를 많이 인용하고 있다는 사실인데, 이 머리나쁜 인간들은 <1984>가 스탈린주의 체제의 공산주의 국가에 대한 비판으로만 보고 얼씨구나 한 것으로 짐작된다. <1984>가 분명 스탈린주의에 대한 비판의 의미를 담고 있지만, 조지 오웰이 지향했던 사회는 머리나쁜 우파들이 생각하는 사회와는 다르다고 보여진다. 조지 오웰은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경력이 있으며 민주적인 사회주의를 지향했다. CRM이나 RFID를 통한 소비자 행동 분석은 대기업 말고는 누가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나...

 


♪ Rage Against The Machine - Testify ♪



Testify

Rage Against The Machine

 

The movie ran through me
The Glamour subdue me
The tabloid untie me
Im empty please fill me
Mister anchor assure me
That Baghdad is burning
Your voice it is so soothing
That cunning mantra of killing
I need you my witness
To dress this up so bloodless
To numb me and purge me now
Of thoughts of blaming you
Yes the car is our wheelchair
My witness your coughing
Oily silence mocks the legless
Boys who travel now in coffins

On the corner (corner)
The jurys sleepless (sleepless)
We found your weakness (weakness)
And its right outside your door

Now testify
Now testify
Its right outside your door
Now testify
Yes testify
Its right outside your door

With precision you feed me
My witness Im hungry
Your temple it calms me
So I can carry on
My slaving, sweating,
The skin right off my bones
On a bed of fire Im choking
On the smoke that fills my home
The wrecking ball is rushing
Witness your blushing
The pipeline is gushing
While here we lie in tombs

While on the corner (corner)
The jurys sleepless (sleepless)
We found your weakness (weakness)
And its right outside your door

Now testify
Yeah testify
Its right outside your door
Now Testify
Now Testify
And its right outside your door

Mass graves for the pump and the price is set, and the price is set
Mass graves for the pump and the price is set, and the price is set
Mass graves for the pump and the price is set, and the price is set
Mass graves for the pump and the price is set, and the price is set

Who controls the past now controls the future
Who controls the present now controls the past
Who controls the past now controls the future
Who controls the present now?

Now Testify
Testify
Its right outside your door
Now Testify
Testify
Its right outside your do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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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sper Fforde, <제인 에어 납치사건>

주의 : 스포일러성입니다

 

웨일즈 작가인 재스퍼 포드(Jasper Fforde)의 SF 소설입니다. 원제는 "The Eyre Affair"로 "에어 사건" 정도가 되겠지만, 자극적인 제목과 판매량 사이의 상관함수를 의식한 출판사 측의 배려로 저런 제목이 붙었나 봅니다. 이 제목만 봤다면 아마도 읽을 마음이 들지 않았을 것 같은데, 다행히도 책을 빌리게 된 우연한 기회가 있어서 접할 수가 있었죠.

 

다른 리뷰들에서도 많이 언급하지만, 이 소설은 정말 잡다합니다. 외계인만 나오지 않는다 뿐이지, 타임슬립, 뱀파이어/늑대인간, 시간의 조정자, 평행세계(parallel universe), 대체역사 등, SF에서 사용할만한 재료들이라고는 모조리 섞여서 등장하죠. 사실 저로서는 전혀 내용을 예상하지 못하고 읽기 시작했기 때문에 소설 초반에 100년동안이나 지속되는 크림전쟁이나 특수작전망(Special Operations Network) 이야기 등을 보면서 어리둥절하기도 했었는데, 결국 나중에는 이런 분위기에 익숙해져서 뱀파이어와 뱀파이어 헌터가 등장했을 때에도 '그런가 보군'하면서 납득해버리기도 했었죠.ㅎㅎ

 

이 소설은 스토리 자체로만 봐도 재미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당대의 악명높은 범죄자와 그를 쫒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타입의 캐릭터인 여성 특작망 수사관의 이야기인데,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 진행도 좋고 서스펜스물의 핵심(!)인 클라이막스 부분도 좋습니다. 그러나 이 소설의 또다른 장점은 SF의 다양한 구성요소를 섞어 또다른 세계를 만들었다는 것인데요. 덕분에 (서구)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나 (서구)역사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문학"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작가의 말장난이 자주 나오는데, 영어를 잘 하시는 분이라면 아마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겠죠.ㅡ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리처드 3세"의 공연 모습을 묘사한 부분입니다. 소설에서 이 연극은 매우 특이한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일단 리처드 3세를 비롯한 주인공급 인물을 관객 중에서 선발합니다. 그 날 공연은 이렇게 선발된 관객이 이끌어가게 되는데, 당연히 이 관객은 자신의 역할에 대해 대사는 물론 극을 전체적으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선발된 관객 뿐만 아니라 다른 관객들 역시 대부분 "리처드 3세"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극이 진행되는 동안 대사를 같이 말하거나 극중 인물의 대사에 대꾸를 하면서, 배우들과 함께 공연을 이끌어갑니다. 심지어는 극중의 전쟁에 직접 참여하기도 하는데, 어떤 경우에는 부상자가 나오기까지 한다고 하네요. 극은 무대를 벗어나 극장 전체를 돌아다니며 진행되며 이 날은 극장의 홀에서 마지막을 장식하고 끝나게 됩니다.

 

배우와 관객, 무대 위와 무대 아래의 경계가 무너진 이런 공연은 당연히 존재하기 힘들겠죠. 관객들은 극을 수십번 넘게 본 사람들이어야 하고, 누가 통제하지 않더라도 상황에 따라 역할을 알아서 맡을 수 있어야 하며, 극도로 산만한 상황에서도 주인공은 극이 중심을 잃지 않도록 이끌어 갈 수 있어야 합니다. 매니아 중에서 가장 매니악한 사람들만 긁어모은다 하더라도 이런 공연을 만들어내긴 쉽지 않겠죠. 그럼에도 누구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자신이 판단하여 적극적으로 뭔가를 만들어내는 모습은 상상만해도 즐거운 것 같습니다. 이 소설이 가지는 장점은 이런 즐겁고 유쾌한 상상력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단 점인 것 같기도 하구요.

 

이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이 번역되어 올해 내로 출간될 것이라는 소문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매우 기대가 됩니다.

 

관련 링크

Jasper Fforde, The Eyre Affair (2001)

'제인 에어 납치 사건'을 읽고

제인에어 납치사건

알라딘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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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주의 : 스포일러성 포스트입니다. :)

 

사슴벌레님이 진보블로그에 데뷔ㅡㅡ;;했을 때

블로그 제목이 "눈먼 자들의 도시"였다.

네오스크럼님이 붙인 덧글들을 보고 한 번 읽어봐야겠다고 생각은 했는데

지난 번 폭주 때 마침 책을 사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시각이라는 가장 빼앗기기 싫은 감각을 모두가 잃게 되었을 때 드러나는

인간들의 숨겨진 본성과 비도덕성, 잔혹성 등의 "인간성"에 대한 내용보다

어떻게든 "집단"을 이루어 살아가는 모습들에 더 흥미를 느꼈다.

 

운좋게도 눈이 보이는 데다가 강한 의지력과 포용력을 지닌 여성 리더가 있는

주인공급 집단은 사마라구가 말하려 하는 "희망"을 보여주는 존재다.

그러나 중간중간 나오면서 주인공급 집단과 관계를 맺는 집단들도 많다.

눈이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자들에 대한 극한적인 공포를 갖고 있는 군인 집단과

수용소의 무법자로 한 때 군림하던 잘 조직된 조폭 집단, (동어 반복인가?)

새로운 사이비 종교의 교리를 설파하던 집단 등

특징있는 집단들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지만

아쉽게도 사마라구는 주인공급 집단에 모든 초점을 맞춰 기술하고 있어서

다른 집단들에 대한 상세한 묘사는 나오지 않는다.

 

"인간성"(이 단어 별론데)에 대한 불신,

그럼에도 연대의식을 통한 희망을 찾으려 하는 소설의 주제는

약간 진부할 수도 뻔할 수도 있지만

픽션임에도 섬뜩하다 할 정도로 현실적인 기술과

역시 현실적인 인물들, 숨가쁘게 전개되는 사건들이

금새 결말을 볼 수 있게 해 주는 원동력인 듯 하다.

 

특이하다고 생각한 점 두 가지.

등장 인물들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의사, 의사 아내, 도둑, 검은 색안경을 쓴 여자...

"따옴표"가 절대, 절대로 나오지 않는다. 첨엔 약간 당황.

 



♪ 언니네 이발관 - 태양 없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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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val Noir

나만 볼 수 있는 글이 첫 화면으로 뜨는 건

여간 꿀꿀한 게 아니군.

밀어내기를 위한 포스트.

 

사슴벌레님의 오후만 있던 일요일에 트랙백.

 

 

더 많은 작품을 보시려면. 단, 일본 사이트라 무지 느림.

근데 도대체 이 사람이 그리고 싶은 게 뭐야. 검은 말...

 

 


이러다 member서버를 mp3로 다 채우는 게 아닐까.

♪ B.T. - Namista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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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

 

얼마전에야 이름도 거창한 보르헤스 "전집" 중 한권을 가까스로 다 읽었다. 내가 소설을 많이 읽는다고 절대 말할 수는 없지만, 이 사람 소설은 읽어왔던 소설에 비해 좀 특이하다. 허구와 사실을 뒤죽박죽으로 섞어 놓고 천연덕스럽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건 뭐 그렇다고 치자. 소설이란 그럴 수도 있는 거니까. 하지만 고대 로마, 아랍, 중세 유럽, 당연하지만 남미를 오가며 역사적 사실에 구체적인 장소까지 들먹이며 주석이 페이지의 반을 차지하는 소설을 읽고 있자면, 하, 뻥 한 번 제대로 칠려고 이렇게까지 지적인 열정을 쏟아부어야 하나. 하는 약간은 허무한 생각이 든다. 뭐 그래도 재미있긴 재미있다.

 

보르헤스 "전집"(백과사전이냐)은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개인적으로 특이하다 생각한 것은 "절대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인물의 이야기가 많다는 점이다. "불사"를 추구하는 사람("죽지 않는 사람들")이나 "절대적"인 동전("자이르"), 재규어의 무늬로 나타난 "신의 암호"("신의 글"), "알렙"("알렙") 등. 신비주의적인 소재로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일이 많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 결국 이렇게 절대적인 가치들을 찾거나 찾아 나서는 사람들의 결말은 항상 허무하다. 종종 비참해지기도 하고. 어쩌라구요...

 

그래서 그런지 아침마다 지하철에서 눈빠지게 보르헤스를 읽고 난 느낌은 그다지 깔끔하지가 못하다. 누구나 그러한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래도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절대적인 가치는 있다고 생각하는데(그게 뭔지 설명하긴 아주아주 힘들지만), 보르헤스를 읽고 나니 뭔가 허무해 진다고나 할까나. 뭐 혼자 멋대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긴 소설이 삶에 활력을 주는 경우는 아주아주 드무니까. 일단 재미있었다는 점에서는 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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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리뜨

중학교에 다닐 시절이었던 것 같다.

나름대로 성실하고 학구적이었는데,

어느날 평소 놀던 대로 동아대백과사전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삘이 오는 그림 한 장을 발견.

바로 마그리뜨의 유명한 '피레네 산맥의 성채'다.

이후 달리의 몽환적인 그럼을 더 좋아하게 되어서

마그리뜨의 그림을 볼 기회는 별로 없었지만

이 사람의 작품은 볼 때마다 섬뜩할 정도로 기발하다.

익숙해질 수 없는 상상력.

 

... '집합적 발명'이란 작품에 나온 머리가 물고기이고 하체가 사람인

   인어 아닌 인어는 한 번 꿈 속에서 만난 적이 있다...

 

You w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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