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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11/23
    공각기동대 S.A.C 2nd GIG (Ghost In The Shell S.A.C 2nd GIG, 2004)(5)
    레니
  2. 2006/10/20
    게드전기 : 어스시의 전설 (ゲ-ド戰記, 2006)(4)
    레니
  3. 2005/08/16
    신카이 마코토,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2)
    레니
  4. 2005/08/15
    SICAF 2005(2)
    레니
  5. 2005/05/31
    Boogiepop Phantom(2)
    레니
  6. 2005/03/28
    박희정, <FEVER>(9)
    레니
  7. 2005/03/02
    Ghost in the Shell - Stand Alone Complex(8)
    레니
  8. 2004/08/14
    만화잡지(8)
    레니
  9. 2004/07/31
    미야자키 하야오, 잃어가는 것들
    레니

공각기동대 S.A.C 2nd GIG (Ghost In The Shell S.A.C 2nd GIG, 2004)

전작을 뛰어넘는 후속작은 드물다. 제작 전부터 전작의 경계 안에서 이야기를 전개해야 하는 제한을 안고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겠지만, 그것보다는 전작의 아우라가 대단하면 대단할수록 오히려 그 아우라에 짓눌리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우리가 보아온 숱한 후속작들이 그렇게 제작되었고, <에일리언>, <매트릭스>, <스크림>, 그리고 갖가지 "맨" 시리즈들이 그랬듯이 참신했던 전작의 설정과 캐릭터를 다른 스토리로 한 번 더 반복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의미에서 <공각기동대> 시리즈는 상당히 특이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겠다. 이전에 언급한 적이 있듯이 원작 만화와 오시이 마모루의 극장판 애니메이션, 그리고 TV판 <공각기동대 S.A.C>(이하 ) 사이의 복잡한 원작 관계도 그렇지만, <공각기동대>와 는 일반적인 전작-후속작 관계라고 하기엔 애매한 뭔가가 있기 때문이다. 둘은 분명 원작 만화의 설정과 캐릭터를 안고 출발했다는 공통점이 있으나, 전뇌화된 사회에 대한 해석과 철학에는 분명 차이점이 존재한다.

예를 들면 극장판 <공각기동대>는 조작된 기억을 사실로 믿고 있던 남자의 에피소드와 고스트에 대한 쿠사나기의 집착 등은 모두 전뇌화 시대의 자기 정체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자신이 사회 전체에서 고유한 개체임을 증명해 주는 것은 오로지 고스트 뿐인데, 이 고스트라는 것이 미시세계의 쿼크 입자처럼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거니와 그 실체를 증명할 방법조차 모호하기 때문이다. <공각기동대>에서 일련의 사건들은 쿠사나기 개인의 고민으로 수렴해 가고, 쿠사나기는 인형사와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자아를 탄생시키면서 결말지어진다. 결국 <공각기동대>는 쿠사나기라는 한 개인에 대한 스토리이다.


반면 의 경우에는 쿠사나기 개인보다는 "공안 9과"라는 팀에 주목하고 있다. 물론 여기서도 쿠사나기의 비중은 매우 높지만, 개별 에피소드에는 공안 9과의 멤버들이 그 못지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또한 는 전뇌화 사회에서 충분히 발생 가능한 테러 사건인 "웃는 남자笑い男" 사건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웃는 남자"를 사이에 두고 공안 9과와 "세라노 게노믹스"라는 거대 마이크로 머신 회사, 그리고 여기에 이해관계가 강하게 얽혀 있는 정치권이 벌이는 싸움이 주요 스토리 라인이지만, 제목인 Stand Alone Complex의 의미대로 "웃는 남자"라는 오리지널의 부재, 카피들의 등장, 그리고 이 카피들의 영향력 등 사회적으로 생각해 볼 만한 이슈를 같이 다루고 있다. <공각기동대>와 비교하면 는 매우 사회적이며 정치적이며, 동시에 철학적이다. 결국 세라노 사장의 죽음-스캔들의 발각으로 인한 정권 교체-공안 9과의 해체로 가  결말 지어지는 것은 보통 사회적인 문제가 봉합되는 방식 그대로를 보여주고 있으며, 결말부에 나오는 도서관에서의 "웃는 남자"와 쿠사나기+아라마키의 대담(및 스카웃제의-_-)은 가 지닌 철학적 문제제기를 총정리하는 마당이라 할 수 있다.


 

<공각기동대 S.A.C GIG>(이하 )는 이보다 스케일이 크다. 대신 전작에 비해 사회적인 비중이 줄어들고 대신 정치적인 비중을 크게 키운 모습이다. 은 복잡한 아시아 난민 문제가 주요 스토리 라인이다. 여기서 아시아 난민이란 비핵대전(헉 <애플시드>?)으로 인해 한반도가 황폐화되었고 이들이 보트피플이 되어 주변국으로 몰려가 생긴 것인데...뭐 한국인이라고 보셔도 무관하겠다-_- 의 제작에 우익 성향의 오시이 마모루 군국주의 성향의 시로 마사무네가 참여했다는 것을 상기해 볼 때 이해가 갈 만한 설정이기도 하다.

여튼, 난민 문제를 둘러싼 스토리는 매우 복잡하다. 크게는 "난민을 배척하려는 일본 정부 + 개별 11인을 위시한 우익적인 일본 국민" vs "한 때는 개별 11인이었지만 어떠한 이유로 난민의 지도자가 된 쿠제 히데오 + 아시아 난민"의 대립구도이면서, 쿠제, 그를 추적하는 공안 9과,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프로듀스하려는 고다 카즌도와의 쫒기고 쫒는 관계가 핵심이다. 만약 현실 세계에서 일어났더라도 큰 정치적/사회적 이슈인 난민 문제를 다루다 보니까 얘기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서, 나중에는 미국과 중국의 개입이 나오고 핵을 쏘네마네하는 민감한 주제까지 등장하는 등, 은 웬만한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못지 않은 큰 스케일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다만 에서의 철학적인, 또는 사회적인 문제의식은 에 다소 못미치는 듯 하다. 에서는 사이버 토론방에서의 네티즌 찌질이-_-들의 토론과 앞에서 설명한 도서관에서의 대담 등에서 Stand Alone Complex라는 주제에 대해 다소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로 인해 전뇌화 사회의 Stand Alone Complex를 과연 있을 법한 현상이고 현재 네트워크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다...라고 인식할 수 있었다.

에서도 쿠제의 난민과의 소통 방식이나 그의 혁명론을 통해 다소 철학적인 내용들을 끌어낼 수는 있긴 하다. 하지만 전공투 세대에서 더 이상 진보한 것이 없는 것 같은 오시이 마모루의 혁명론 탓인지 의 철학은 그다지 깊이가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사람의 마음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명제를 쿠제가 긍정하는 대목에서 드러나는데, 그는 이 말을 함으로써 "난민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기를 원하는 계몽적인 혁명 지도자"로서의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네트워크에 난민들의 고스트를 업로드-_-한다면서 이것을 (맑스의 의미와는 사뭇 다른) 상부구조로의 상승이라는 이상야릇한 말로 포장한다. 개인적으로는 고다보다 비중이 높다고 생각하는 이 쿠제라는 캐릭터는, 좋게 말하면 다면적인 캐릭터이고 나쁘게 말하면 모순적인 캐릭터이다. 그리고 이것은 큰 스케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빈약한 철학이 빚어내는 불협화음의 결과가 아닌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보는 것처럼, 화려한 액션과 숨막히는 긴장감, 물 흐르는 듯한 사건 전개, 그리고 다치코마의 자기 희생에서 나오는 감동의 물결까지, 무척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대사가 너무 많아서 뒤로 돌려가며 봐야 했던 에 비해 조금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다.

...물론 이건 전적으로 취향의 문제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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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드전기 : 어스시의 전설 (ゲ-ド戰記, 2006)

얼마 전에 지브리의 새 애니메이션 <게드전기>가 스크린에 걸렸다. 미야자키 할배의 이분법적인 세계관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지만, 상상 너머의 세계를 그려내는 그림과 신비로운 음악, 탁월한 연출로 인해 하야오 옹과 스튜디오 지브리라는 이름에 나름의 신뢰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게드전기>를 개봉 전부터 눈여겨 보게 된 것은 "지브리"라는 이름보다는 "어슐러 르 귄"이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아직 르 귄의 작품으로는 <빼앗긴 자들>과 <바람의 열두방향>밖에 읽지 못했지만, SF 문학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탄탄한 세계관과 고유한 사회구성, 그리고 그러한 사회 구조에서 도출되는 캐릭터 등이 매우 인상적이었기 때문에, 이미 개봉 전부터 <게드전기>를 기대한 사람들은 매우 많았으리라.

...그러나-_-

<게드전기>의 평을 검색해보면 대충 분위기가 짐작되겠지만, <게드전기>는 (웬만해서는 이런 평을 하지는 않는데) 엄청난 졸작이다. 일단 연출 자체가 너무나 어설퍼서 긴장감있게 스토리를 끌고나가기는커녕 개연성을 맞추기에도 급급해 보인다. 캐릭터들은 역시 지나치게 평면적인데다가, 그들의 히스토리를 설명해 주는 것이 거의 없어서, 작품과 캐릭터가 따로 노는 느낌이다. 영화는 주인공인 아렌이 그의 아버지를 칼로 살해하고 도망쳐나오는 장면에서 시작하는데, 난 영화가 끝날때까지 아렌의 이 행동이 설명되기를 기대했으나 결국 끝까지 납득하지 못했다. 다만 전형적인 지브리 풍의 아름다운 미술과 배경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간 3D만큼은 인정받을만 하지만, 예쁜 그림을 보고 싶으면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을 보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 (한숨)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원작은 4편으로 이루어진 르 귄의 <어스시의 마법사> 시리즈다. 같은 배경을 공유하면서 서로 다른 이야기인 이 시리즈는, 르 귄이 어린이와 어른 모두가 읽을 만한 작품으로 썼다는 말처럼, 그녀의 작품 중 그나마 어렵지 않고 재밌게 읽을 수 있다고 한다-_- <어스시의 마법사>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하이타카, 즉 게드로서, 원작에서는 <게드전기>에 등장하는 나머지 인물들인 아렌, 테루, 거미 등이 같이 나오지 않는다 한다. 또한 자신의 그림자에 쫒기는 아렌은 원작에서 하이타카의 어린 시절 이야기라고 하니, 독자적인 세계관을 지닌 4편이나 되는 판타지 소설을 한 편의 애니로 압축하는 것이 분명 쉽지는 않았을 것이고, 너무나 성급한 일이었음이 분명한다. (또 한숨)

그래서 하야오 할아버지가 아들은 미야자키 고로에게 감독을 맡긴 것이 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다. 뭐 속설에는 하야오 옹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고로가 감독을 맡았다고 하는데, 아무리 잘 봐 줘도 지브리 식의 전형적인 성장 스토리에 짜맞춘 듯한 <게드전기>를 보면, 하야오 옹도 자신의 실수를 통감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르 귄은 지브리 스튜디오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름을 믿고 <어스시의 마법사>를 영화화하기로 했다 한다. 그러다 낮은 완성도의 <게드전기>를 보고 이에 대해 자신의 홈페이지에 답변을 실었다는 뒷 얘기가 있다. 잉글리시의 압박이 느껴지신다면 번역글(#1, #2)을 보시라.

결국 지브리는 강력한 이 한 방으로 <센과 치히로의 모험>과 <하울의 움직이는 성>으로 쌓았던 신뢰를 다시금 무너뜨리고 새로운 우려를 낳게 하고 말았다. 이와 더불어 극장에서 본 애니메이션은 90% 확률로 실패한다는 나의 징크스도 재현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_-; 애니의 세계는 핏줄로 어떻게 되는 것이 아닌가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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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카이 마코토,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SICAF 2005의 장편 경쟁부문 출품작이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소개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이미 올해 5월에 DVD로는 출시가 되었었더군-_-

 

SICAF의 인기가 대단한 것인지, 이 작품을 상영한다는 소식을 듣고 예매 상황을 살펴보니 모든 회가 이미 매진이었다.(대부분의 장편 경쟁부문 작품들이 매진이긴 했지만) 그러나 노력하는 자에게는 결실이 있는 법. 3일 동안의 F5 신공...-_-으로 인터넷 예매 종료 15분 전에 결국 성공했다-_-v (정말이지 못 보는 줄 알았다니깐)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사유리가 열차에서 내린 후 철도를 따라 걷는 장면이다.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은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를 보았고, <별의 목소리>는 아직 못 봤다. <그녀와...>는 5분 가량의 짧은 단편이고 흑백 화면에다 캐릭터의 얼굴이 나오지 않는 작품이라 신카이 마코토의 내공을 제대로 확인하기 힘들었다. 소문에 의하면-_- <별의 목소리> 역시 25분 가량의 단편이라고 했으니 사실상 장편은 <구름의 저편...>이 처음이 아닐까 한다.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탑을 배경으로 얘기하고 있는 사유리

 

처음 시작하면 일단 화려한 배경에 놀라게 된다. 탄성이 나올 정도로 배경이 세밀하고 아름답게 그려진다. 캐릭터 얼굴의 엉성함(...이라고 해야 하나, 뭔가 포스가 느껴지지 않는 얼굴 모양)에 비해, 배경이나 인체 비례, 색조 등은 정말이지 대단하다. 약간 오바해서 스토리 하나도 없이 배경만 본다고 하더라도 괜찮을 정도로 이 사람, 그림 잘 그린다.( -_-)-b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히로키와 타쿠야가 비밀 창고에서 뱅기를 만들고 있다.

 

<그녀와...>를 보고 나서 생긴 편견일지도 모르겠지만, 난 신카이 마코토가 왠지 메카닉을 잘 못 그릴 것 같단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웬 걸. <별의 목소리>에서도 좋은 메카닉 디자인이 나온다고 들었지만, <구름의 저편...>에 나오는 메카닉들은 대단하다. 히로키와 타쿠야가 만드는 뱅기인 "벨라실러"의 독창적인 디자인 하며, 아마도 (밀리터리에는 관심이 없어서-_- 어떤 기종인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를 모델로 그린 것이 분명한 전투기들과 함정들은, 신카이 마코토가 캐릭터 얼굴 빼고는-_- 못 그리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듯 했다.ㅋ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대충 그려도 고양이처럼 생겼다.ㅎㅎ

 

<그녀와...>를 볼 때 음향이 상당히 좋았다. 컷의 전환을 자연스레 도와주면서 은근히 깔리는 매력적인 음향은 <구름의 저편...>에서도 빛을 발한다. 그러고 보니 <구름의 저편...>에서도 고양이가 한 마리 나오는데, 위의 고양이보다 조금 더 자세하게 생겼다.ㅋ

 

<별의 목소리>

도입부의 멋진 배경이다.

 

<별의 목소리>도 그렇다고 하지만. <구름의 저편...>도 그리움과 고독에 대한 이야기다. 사실 1/3 쯤만 보면 전체적인 스토리는 짐작 가능하지만, 일단 그림이 좋기 때문에 별로 지루하지 않고 연출도 나쁘지 않다. 신카이 마코토는 그림과 더불어 동작을 표현하는 기술이 대단한 것 같다. 아무리 잘만든 애니라 해도 뛰는 모습같이 비선형적인 동작은 뭔가 어색한 작품들이 많은데, <구름의 저편...>에서는 모든 동작이 자연스럽게 보인다. 사실 이 부분이 가장 맘에 들었다.

 

<그녀와...>와 <별의 목소리>는 거의 신카이 마코토 한 사람이 다 만들었다고 하는데, <구름의 저편...>은 장편이라 많은 사람들의 참여가 있었다.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가는 것을 유심히 봤는데, 그럼에도 제작, 작화, 색채, 음향, 작사까지...신카이 마코토가 끼지 않은 부분이 거의 없더군-_- 정말 대단한 인간이다.


...얼굴만 잘 그렸으면 정말 좋았을텐데.ㅎㅎㅎ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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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CAF 2005

SICAF 2005 갔다.

 

신카이 마코토의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를 봤는데

천신만고 끝에 간신히 표를 구한 덕분인지 너무 재미있었음=_=

이 사람 정말이지 그림 너무 잘 그린다.

감상평은 내일-_-

 

다음은 전시관 사진 몇 장.

 

서울문화사 부스 안에 있던 "친절한 윙크씨".ㅋㅋㅋ

천원의 압박에 잠시 망설였음.

 

아마 대원 부스에 있던 BL들(이라고 jineeya가 설명해 줌-_-)

"19세 미만 판매불가"가 인상적 ( -_-)-b

 

아아 이 캐릭터. 이름은 모르겠지만 너무너무 갖고 싶었음=_=

몰래 들고올 껄 그랬나;;;

 

코엑스가 원래 좀 그렇긴 하지만

전시장이 너무 넓은 데 비해 부스가 산만해서 돌아다니다 보니 다리가 아팠다.

판매 부스는 왜이리 많은 것이야. 값도 결코 싸지도 않으면서;;;

"저항만화전"은 볼 만 했음. 이두호 스페셜-_-하고.

 

그래도 역시

휴일의 코엑스몰은 갈 만한 곳이 못 되는 듯-_-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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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giepop Phantom

난 이런 분위기를 매우 좋아한다.

 

뭔가 음산한 것 같으면서도 신비롭고

 

차갑고 비밀스러운 캐릭터들이 배회하는

 

외롭고 쓸쓸한 자들의 공간

 

 

솔직히 말하면 "부기팝은 웃지 않는다"의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너무나 강렬한 이미지.

 

 + 미갱님의 "Boogiepop Phantom"에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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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정, <FEVER>

박희정이라는 작가의 이름이 머리 속에 새겨진 것은 (이건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호텔 아프리카>보다 <피버>의 영향이 크다. 영화를 볼때도 그렇지만 나의 경우 배경이 외국인 작품에는 쉽게 자신을 동일화하기 힘들어 한다. 아직 제대로 비교한다는 것은 무리인 것 같긴 하다만, 캐릭터나 스토리 상으로 <호텔 아프리카>가 현재까지의 <피버>보다 훌륭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호텔 아프리카>에서 <피버>만큼의 강렬한 동질성을 느껴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호텔 아프리카>가 감동적이지 않은 작품이란 얘긴 아니란 거...알고 계시겠죠? ㅎㅎ)

 

 


<호텔 아프리카>가 제목 그대로의 "호텔 아프리카"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들을 풀어내는 스토리였던 것처럼, <피버>역시 "피버"라는 대안학교에 찾아오게 되는 다양한 인간들의 이야기이다. 초반의 스토리는 "형인"이 "피버"로 찾아오게 되는 과정이 중심이 되었으나, 현재는 "지준"이 "아립"과 "아인"과 맺는 관계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사실 스토리만 보면 <피버>는 질풍노도의 시기-_-를 보내는 틴에이저의 이야기로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을 수도 있다. 다만 <피버>가 나에게 특별하게 다가왔던 데에는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코드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대단히 사소한 대사들이고 사소한 아이템들이고 스토리 상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아닌 경우가 많지만, 그런 것들이 작품 전체에 퍼져 특별하게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이 대사에 난 200% 공감한다. @_@

 

<피버>의 가장 큰 장점은 절망 속에서 어떻게든 희망을 발견하는 방식을 경쾌하지만 진지하게 보여준다는 점이다. 여기 나오는 인간들은 하나같이 우울한 인생들이지만 어떻게든 의미를 발견하고 살아가는 것을 보면, 작품 밖에서 바라보는 나 역시 기분이 좋아진다. 특히 스스로 절망적인 상황에 처했을 때, <피버>는 분명히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작품인 것 같다.

 

덕분에 바나나우유를 좋아하게 되었다.

 


<호텔 아프리카>의 캐릭터가 전반적으로 쿨함을 지향하고 있는 것 같이, <피버>의 캐릭터들도 쿨한 인간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초반부의 <피버>는 그런 쿨한 관계보다는 솔직하고 디테일한 관계가 많이 보인다. 사실 나에게 있어 영화나 애니, 만화 등에서의 쿨함은 더이상 새롭지도 못하고, 그런 관계에서 별로 긍정적인 영향을 받지도 않는다. 오히려 솔직한 감정과 이야기들에 감동을 받고 좋은 영향을 받는 것 같단 생각이다.
"형인"의 밝은 표정을 보면서 한편으로 매우 부럽기도 했지만, 나 역시 기분이 좋아진다. 3권 이후부터 "지준"을 중심으로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그런 맛이 조금 떨어졌지만, 어쨌든 <피버>는 그런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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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host in the Shell - Stand Alone Complex

 

소설이나 만화를 원작으로 하여 제작된 영화나 속편으로 나오는 영화가 흔히 그렇듯이

원작이 존재하는 작품은 언제나 원작과 비교되는 슬픈 운명을 타고난다.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 극장판이 원작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TV판으로 나온 "공각기동대 - Stand Alone Complex"(이후 "SAC")는

(뭔가 부당해 보이지만)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와 비교될 수밖에 없다.

 

한데 극장판 "공각기동대"는 시로 마사무네의 만화가 원작이라

시로 마사무네가 "SAC"에 참여하면서 오히려 재해석된 작품과 비교되게 된 셈인데,

극장판 "공각기동대"의 지나치게 무겁고 암울한 분위기 때문에

시로 마사무네의 팬들에게 따돌림-_-당한 것을 생각해보면

뭔가 아이러니한 상황이긴 하다.

 

오시이 마모루가 재해석한 세계는

감정과 인간성 등이 배제된 매우 건조하고 차가우며

동시에 자신의 기억조차 신뢰할 수 없는 암울한 분위기임에 비해

시로 마사무네는 이보다 조금 더 따뜻하고 유머러스하며

정보화에 대해 오시이 마모루와 조금 다른 문제를 제기한다.



사실 처음 "SAC"를 봤을 때에 나 역시 원인모를 반감이 들었었는데

(마치 "건담 SEED"를 처음 봤을 때와 비슷하다)

아마도 극장판 "공각기동대"를 기준으로 작품을 보려고 했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크게 차이가 나는 부분은 캐릭터들에 있다.

 

극장판에서는 중성적이고 카리스마 있는 쿠사나기 "소령"이

"SAC"에서는 여성성(성별분할적인 단어지만 적당한 단어가 없군)이 상당히 강조되어 나온다.

복장, 억양 등 전반적인 분위기도 그러하고

후반부에 잠깐 나오는 바트와의 야릇한 분위기(허억-_-) 등

'이건 내가 알던 쿠사나기가 아냐!'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일단 옷차림부터 뭐하지 않은가-_-

 

적응안되기는 바트도 마찬가지이다.

극장판 "공각기동대"는 물론이고 거의 주인공급으로 등장하는 "Innocence"에서도

바트는 무겁고 감정이 없으며 건조하기 짝이 없는 인물이다.

하지만 "SAC"에서의 바트는 여전히 난폭하고 쿠사나기에 대해 희생적인 점은 같지만,

헬스가 취미이고 다치코마("SAC"에 등장하는 AI를 지닌 전차)에게 인기가 좋으며

동료에게 웃음을 지어줄 줄 아는 인간적인 캐릭터로 그려진다.

 

바트에게 이런 웃음은 어울리지 않는다-_- 넌 이런 인간이 아니잖아!!!

 

일단 메인 캐릭터에 실망하고 극장판과는 생소한 분위기 때문에

세 편 정도 보니까 중도포기의 유혹이 닥쳐왔는데

이런 나약한-_- 나를 일으켜 준 것은 다름아닌 다치코마였다.

육중하고 보기에도 쌈 잘하게 생긴 전투용 전차이지만

얘들 하고 있는 걸 보고 있으면 피식 미소가 나올 정도로 귀엽다!!

특히 본편이 끝나고 마지막에 나오는 "다치코마의 하루"는...

그 자체로 너무 기다려질만큼 귀여움의 결정체-_-라 할 수 있겠다;;;

아 말로는 더 이상 어떻게 설명할 수 없는 다치코마의 귀여움이란.

 

얘네들이 다치코마. 아아 귀여워~

 

"SAC"의 초반부는 이들이 주축이 되어 사건 중심으로 경쾌하게 전개된다.

그러다 중반부에 나오는 "웃는 남자" 사건을 계기로 분위기는 일변하여

결국 작가가 의도한 것으로 보이는 주제를 드러내는데,

쿠사나기가 다치코마를 병기로 사용하지 않게 된 사건과 "웃는 남자" 사건은

시리즈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다치코마는 매일마다 그들의 경험을 "병렬화"하는데

AI를 지닌 로봇으로서 개체화하는 것을 막고 기억과 경험을 공유하려는 의도를 지닌

일종의 공동 성장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그럼에도 다치코마들이 개성을 지니고 개체화하기 시작했단 점인데

(심지어는 "책을 읽고 사고하는" 다치코마도 나온다)

쿠사나기는 이를 우려하여 다치코마들을 실험실로 돌려보낸다.

 

어떻게 보면 다치코마들은 네트에 접속해 있는 우리들의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

어떤 정보를 통해 특정 집단이 같은 판단을 하고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있기도 한데

이를 두고 "병렬화"된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네트를 통해 경험과 기억이 공유되기도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웃는 남자" 사건은 매우 재미있는 사건인데

"SAC"에서 가장 비중이 큰 사건인만큼 간단히 설명하기 힘들다.

다만 "웃는 남자"가 성공하게 된 요소들은 시사하는 바가 분명 있는데

특출나게 뛰어난 해킹 실력과 아이콘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마스코트,

실체가 사라짐으로써 남겨진 신비로움과 가능성,

그리고 이후 활동하게 된 수많은 복제들이 바로 그것이다.

제일 마지막 회에서야 "Stand Alone Complex"라는 말이 대사로 사용되는데

실체가 사라진 상황에서 복제들이 실체처럼 행동하고

그것이 실체로서 받아들여지는 현상에 대해 설명할 때 이 말이 나온다.

이것이 시뮬라크르를 설명하는 건지 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결국 작가가 말하고 싶어한 부분이 이것인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웃는 남자"의 마스코트. 뭔가 있어보인다.

 

결국 "SAC"는 "웃는 남자" 사건의 종결과 더불어 1기가 끝나게 되는데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와는 또다른 재미가 있는

결국 잘 만든 애니라는 처음과는 다른 평가를 하게 되었다.

 

2기도 끝났다고 알고 있는데...

DVD를 구입해야 한다는 지름신의 유혹을 어떻게 견뎌야 할 지-_-

 


♪ 공각기동대 Stand Alone Complex 오프닝 - Inner Univers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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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잡지

jineeya (님을 붙이려니 너무 어색해요)의 "[허브] 잘되기를 부탁해!"에 대한 트랙백입니다.

 

여동생의 영향인지 순정만화를 많이 봅니다.

대부분 단행본으로 구해서 보긴 하는데

그 중 "윙크"라는 만화잡지만은 한 달에 두 번 꼬박꼬박 보고 있죠.

 

 

 

 

(흐흐, "궁"은 안 보는 만화이긴 합니다만...)



윙크에서 "사각사각"을 연재하던(지금은 끝났습니다만) 김나경이란 작가가 있습니다.

언제부턴가 타이틀 페이지에 "만화를 당당하게 사서 볼 권리"라는

주제의 캠페인 배너(?)를 요.(하핫 무의미한 링크;;;)

이 캠페인의 주 타격 방향은 만화대여업소와 그 고객들(?) 입니다.

단행본이나 잡지를 볼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만화방에 가거나 / 대여점에서 빌려보거나 / 사서 보는 것인데,

만화를 사서 보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은

경험적으로도 잘 알 수 있죠.

따라서 만화가에게 직접적인 수익(인세)이 돌아가는 구조를 방해하는 요인인

만화대여업소에 대해 직접 비판의 칼날을 들이댄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운동들이 넷상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대표적인 것이 반(Anti)청보법 운동과 함께 반(Anti)대여체제 운동을 하고 있는

"자유의 검은 리본"입니다.


 

 

이 논쟁은 mp3 및 소리바다에 대한 논쟁과 상당히 유사합니다.

지금와서 음반업계는 음반시장의 불황을 얘기하면서

대부분의 책임을 mp3 공유에 돌리고 있습니다.

이 얘기가 너무도 말이 안 되는 소리라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미 음악적 가치보다 상품적 가치를 더욱 중요하게 고려하고

스타 시스템에 의존하여 음반을 팔아온 음반업계와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은

스스로 음악의 유통 구조를 허약하게 만들었고

지금 그 결과가 돌아온 것 뿐이죠.

 

그렇다면 만화시장에서도 같은 논리를 적용할 수 있을까요?

음... 저 자신도 대여업소를 통해 만화잡지를 빌려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단행본으로 산 만화의 대부분은 일본만화입니다.

한국 만화가들의 수익에 전혀 기여를 하고 있지 않은 것이죠.

하지만 만화대여점이 없어진다해도 저는 윙크를 사지 않을 것 같습니다.

대신 한국 작가들의 단행본을 구입하게 되겠죠.

그러나 박희정을 제외한 한국 작가의 매력은

제가 좋아하는 몇몇 일본 작가의 매력에 비해 떨어지므로

그 우선순위가 한참 밀릴 것이 분명합니다.

결국 결과적으로 못 보는 만화가 많아질 뿐이란 얘기가 되는군요.

 

일본에서는 만화가 종합적인 문화 컨텐츠로 인식되는 것처럼

한국에서도 만화가 그러한 힘을 가지기를 바라는 것 같습니다.

음반 시장에서 항상 미국이나 일본의 예를 드는 것처럼 말이죠.

그러나 무조건 구입해야만 문화 컨텐츠가 소비될 수 있다고 한다면

음악보다 접근성이 떨어지는 만화의 매체 특성상

독자층을 현저하게 줄일 것임이 분명합니다.

 

차라리 만화방이나 대여업소와의 빅딜을 통해

적절한 수입분배구조를 확립하는 것이 어떨까요. (쉽지는 않겠지만)

단행본 값은 나름대로 부담되는 값인데

여유가 있는 사람이 문화 컨텐츠를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된다면

이 또한 부당한 일이고,

수입의 많고 적음이 만화사랑의 척도가 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무조건 사서 봐라. 빌려보는 놈은 도둑놈.

뭐 이렇게 얘기한다면 에잇, 안보면 그만이지. 이렇게 대답할 것 같아서

약간은 자기 변명적으로 포스트를 쓰게 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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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 잃어가는 것들

neoscrum님의 파시스트가 되느니 차라리 돼지가 되겠다에 트랙백한 글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통해 '아니메'를 알게 된 사람이 많습니다.
저도 그 중 하나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군요.
어릴 적 보던 만화들이
(특히 마징가나 그랜다이저 같은 거대 로봇 만화들,
그리고 코난이나 은하철도 999같은 SF도 그랬죠)
당시에는 일본 만화였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던 바,
최초로 일본 만화라는 인식을 가지고 본 애니메이션은
세운상가에서 복사를 뜬 "천공의 성 라퓨타"였습니다.
이미 여러 번의 복사를 거친 후라 조악한 화질+음질을 자랑하는 데다
요즘 DIVX 같이 자막이 같이 붙어 나오는 게 아니라서
당시 활발했던 PC 통신에서 구한 대본(!!!)을 구해 같이 읽어가며
간신히 내용을 이해했던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라퓨타"를 통해 작품마다 독특한 철학들을 지닌
아니메의 세계를 경험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후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을 모조리 구해가며 보기 시작했는데
오시이 마모루를 만나기 전까지
저에게 있어 미야자키 하야오는 최고의 애니 감독이었죠.

 



제가 느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는
권력과 과학기술 문명에 저항한다는 측면에서 진보적(아 이 단어는 너무 애매하군요)이지만
가족관과 젠더적인 측면에서 보수적(이 단어는 명확해서 좋습니다ㅡㅡ;)이라는 것입니다.
"나우시카"나 "라퓨타", "원령공주" 등에서 등장하는 가족들의 구성원은
전통적인 가족 내에서의 역할에 충실하며 그들은 그 자체로 행복해 합니다.
그리고 "라퓨타"와 "원령공주"에서는 여성이 리더를 맡고 있는 집단이 등장합니다.
"라퓨타"에는 해적(공적인가???) 집단의 삐삐머리 할머니,
"원령공주"에는 제철마을의 군주인 에보시가 리더인데,
이들은 남성화된 여성 캐릭터로서 중성적이죠.
만약 에보시가 남성이었어도 그의 행동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분명 이 작품들의 주인공 여성들은 전통적인 여성성을 탈피한 모습입니다.
일부 캐릭터에서도 역시 이러한 모습은 드러나죠.
하지만 이 작품의 남성들은 하나같이 강인함을 요구받고 여성을 보호하려고 합니다.
주인공급 남성 캐릭터들은 그 과정에서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죠.
그래서 저는 그의 작품 자체는 매우 재미있게 봤지만
그가 만든 캐릭터를 좋아할 수 없었습니다.
아, "원령공주"의 코다마를 제외하곤 말이죠. :)

 

 

뭐 이러니저러니 해도
미야자키 하야오는 분명 훌륭한 감독이고 작품도 매우 재미있습니다.
"붉은 돼지", "마녀배달부 키키" 등 역시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있는 무척 훌륭한 작품들입니다.
하지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볼 때

미야자키 하야오와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붉은 돼지"만큼의 사회성을 지닌 작품이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의 애니에서 사회성이 제거되고 남는 것은
불편한 캐릭터들과 판타지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사라지는 것들이
너무나 아쉬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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