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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내 권력 들여다보기_<룩앳미>

이 글은 자일리톨님의 [룩앳미 - 아네스 자우이(2004)] 에 관련된 글입니다.

 


Look at me

감독 : 아네스 자우이 

(이미지는 모두 맥스무비에서 퍼옴)

 

롤리타
실비아
애티엔느
피에르
카린
세바스티앙

 



인간관계로 권력의 속성을 드러내다


관계맺기에서 권력이 작용한다는 건 나이들어 자연스럽게 터득된 거 같다.
사회생활을 통해 순수한 관계맺기가 가능할까?

 

부전녀전이라 했던가.
딸인 자신과의 점심식사동안 20번이나 전화통화를 했다고 투덜대는 롤리타는 남친과의 스킨십중에도 전화가 오면 꼭 확인하고야 마는 어쩔수없는 아빠딸이다.
하지만 그녀가 아버지(에티엔느)와는 다른 방식의 관계맺기가 가능해질까?

 

에티엔느는 롤리타를 사랑하는 걸까?
나의 꽃돼지라며 항상 뚱뚱한 롤리타를 아버지의 애정으로 부르지만 딸이 들어보라고 권한 롤리타의 노래테이프는 6개월이 지나도록 책장에 쑤셔놓았다. 딸과의 식사에서는 다정하게 눈을 바라보며 딸의 근황을 물어보질않고 재차 따르릉 거르는 전화와 씨름이다. 신경써서 차려입은 드레스를 입고 나오는 딸에게 지나가는 말로도 “우리딸 이뿌다. 최고!”라는 애정어린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오랜만에 발견한 딸의 재능이 맨처음 발휘되는 음악회에서 그는 딸이 노래를 부르자말자 자신의 문학적영감을 놓치고 싶지 않아 자리를 떠버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주변인들에게 항상 그녀의 걱정을 늘어놓는다.

관심을 드러낸다.
사랑은 표현해야만 전달가능한가? 그렇다.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진실도 있지만 말하지 않고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다는 건 그닥 쉬운일이 아니다. 사랑을 전달하는게 어찌나 서툰지 에티엔느의 이기적이고 독단적인 성격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부인의 돌봄이 없다면 그는 한낮 칭얼대는 미성숙하고 괴팍한 인간일 뿐이다. 롤리타 또한 세바스티앙의 순수하고 인내심있는 사랑이 없다면 주변의 인간들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의심하기만 했겠지.

 

Tip> 나란히 앉은 좌석

레스토랑에서의 장면은 롤리타와 에티엔트가 관계맺기 방식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에티엔과 롤리타의 점심식사중 둘만의 식사인데도 에티엔은 롤리타의 맞은편에 앉지 않고 옆에 앉는다. 또한 롤리타 또한 세바스티앙과의 첫만남에서 둘은 나란히 앉아 있다. 모두 마주 앉아 차를 마시는데 말다. 재밌는 상징이다. 마주보지 못하고 일방통행만 하는 인간관계. 쯧..


 

 

권력의 맛이란 얼마나 달콤한가.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으로만 식탁을 채울 수도 있고, 합리적이지 못한 논리에도 반박은커녕 칭찬해주는 아부쟁이가 즐비하고, 스트레스 쌓여 짜증나면 받아줄 친구가 항상 대기조로 받쳐주고, 자신의 외모에는 쳐다보지도 못할 예쁜 여자(남자?)의 아찔한 유혹이 있어 좋고, 파티에선 누가 되었든지 자신이 움직이지 않아도 알아서 직접 인사와 주고..

<룩앤미>는 권력에 기생하는 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권력의 찌꺼기에 기댄 친구를 향해 내뱉는 에티엔느의 대사는 의미심장하다.
“비겁하다는 걸 알면서도 참는거지” (대사가 정확하진 않을 듯..기억가물가물)


같이 본 친구의 얘기는 더 의미심장했다.
“에티엔느는 친구의 비겁함을 알면서도 모른척하는 더 비겁한 사람이 아닐까?”

 

여성감독의 섬세한 시선이 느껴지는 시퀀스들


비교되는 두 부부의 주방 씬.


실비아와 그의 남편 피에르. 자연스럽게 둘이서 같이 주방에서의 가사노동이 행해진다. 다년간의 분담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가능하지 않을 풍경. 상대적으로 비교되는 에트엔느의 부부. 돈은 남편이 벌고 탁아나 가사노동은 자신의 일이 아니라 부인의 몫이다. 하루종일 아이에 시달리는 카린은 풍성한 식탁을 위해 장보고 무거운 짐 때문에 식당에서도 핀잔을 들어야 하며, 음식을 만들어 놓고도 음미할 기회도 없이 아이와 실갱이에 남편의 일방적이고 억압적인 대사에 어떤 대꾸도 하지 못한다. 둘에게 일상적 대화가 가능할까? 남편은 끊임없이 전화와 대화하고 부인은 아이들의 꽁무니 쫓아다니기에 바쁜데말다.

 

사실 나의 주변에도 두부부와 비슷한 케이스가 있다.
A부부, 연상부인의 연하남편. 자그마한 벤처회사에 다녀 연봉은 그닥 많지 않지만 주말이면 특별식도 만들어주고 다정하게 손붙잡고 영화에 쇼핑까지 같이하는 남편을 둔 부인.
결혼10년차가 넘어가나 2세 계획은 없고 여전히 둘사이엔 시댁문제가 살짝 걸쳐져있지만 둘사이의 관계에 해가 될만큼 큰 문제로 여겨지지 않고 대체적으로 평탄하다.
B부부, 일본도쿄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같이 따고 한국으로 돌아와 남편은 벤처회사 일본지사장, 부인은 지방대학 시간강사. 일본지사장이라 남편얼굴은 월2번도 보지 못한다. 50평이상의 큰아파트에서 혼자 매일매일 상 차려 우아하게 밥을 먹는다. 조만간에 분당의 주상복합아파트로 이사한다하고 스카우트 1순위인 남편, 연봉은 억이 넘는다. 인센티브까지 합치면 몇억이 되겠지.
돈이냐 남편이냐의 선택을 강요하진 못하겠지만...만약 선택해야 한다면?(초등생들은 이때 '선택한다'라고 답할까?ㅋㅋ)

여성들의 삶이 보인다.

당당한 실비아.
실비아의 남편은 권력의 맛을 알아가고 그녀는 롤리타의 엄마처럼 남편곁을 떠난다. 어려울 때 함께한 인간적 유대감이라는 건 권력이 주는 달콤한 욕망들로부터 항상 지켜지기 힘든 것들인가? 사회적 성공과 더불어 부를 꾀찬 남성들이 조강지처 버리는 또는 내쳐지는 상황들은 자연스런 절차처럼 보여진다. 내쳐지기 전에 실비아처럼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위해 떠나는 여성들. 멋있지.


 

하지만 권력자의 집을 박차고 떠나는 실비아 또한 속물적 인간이다.
Only악인, only천사일 수 없는, 상황에 맞게 다양한 인간의 모습이 드러날 수도 있다는 다면성에 감독은 주목하는 듯하다.
재능이 보이지 않는 제자 롤리타에게 냉담하고 무심하게만 대하던 실비아는 롤리타의 속물적 친구들처럼 그녀의 아버지가 자신이 좋아하는 유명한 극작가라는 말에 드러날 정도로 표정이 환해진다. 그리고서 그녀에게 노래할 기회를 부여하고 인간적 관계맺음도 한단계씩 진행이 가능해지는거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항. 실비아 또한 음악선생으로서의 권력을 사적으로 살짝 이용하는데 너무나 자연스러워 인식하기 힘들다. 이건 사회생활이나 인간관계에서 일상적으로 드러나는 방식처럼 느껴져서 오히려 섬뜻하다. 왜냐하면 재능이란 것도 가진자에게 기회부여가 더 많다는 것. 이런 논리는 부가 세습되는 철저히 자본주의적 시스템안에서만이 가능한 방식이기 때문.

 

 

사랑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여성 카린.
에티엔의 두번째 부인 카린. 그녀는 젊은데다 아름답고 너그러움에 인내심까지 겸비했다.
뚱뚱한데다가 성격까지 삐뚫어져서 누구나에게 끊임없이 투덜대고 짜증내는 롤리타를 데려다 끈질긴 설득과 회유로 예쁜 옷을 사게 하고 애정을 주려노력하는 그녀는 가사노동이라고는 손꼽만큼도 도움이 없고 게다가 친구들앞에서 자신을 면박주는 권위적인 남편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권위적이며 독선적인 남편을 이해하고 인내심을 발휘하는 그녀지만 또다른 모습의 속물적 여성일지도 모른다. 에티엔느의 권력과 부가 아니었다면 젊고 아름다운 그녀가 성질더럽고? 2세까지 책임져야 하는 상황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 하지만 이러한 방식의 남녀의 결합은 몇세기동안 공고해진 법칙처럼 보인다.
남편감으로의 남성은 사회적 권력과 경제적 부에, 부인으로서의 여성은 미모와 2세를 낳고 교육할 수 있는 젊음과 약간의 두뇌.
그녀의 순수한 마음을 의심하는 나의 시선에 속세의 때가 묻은 때문인건지도 모르지.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냉정한 걸.


재밌는 장면.


사랑하는 이의 칭찬은 지나쳐도 항상 좋다.
소설가로서의 사회적 성공이 미지수인 남편을 북돋우기 위한 칭찬. 남편에겐 누구의 칭찬보다 사랑하는 이의 입바른 칭찬이 에너지의 근원처럼 보인다.

 

취향에 대한 감독의 여전한 시선.


자신이 주최한 친구들과의 파티에서 힙합보다는 재즈에 더 편향적인 그녀의 음악취향이 여실히 드러난다. 롤리타를 파티에 데려다 준 실비아. 그에게 자꾸 추파를 던지는 멋진? 젊은청년을 마다하지 못하고 음악에 맞춰 같이 춤의 향연에 심취했었으나 힙합이 흘러나오자 그 자리를 떠버린다. 전작 <타인의 취향>에서도 드러나지만 남녀간의 취향이라는 문제는 관계맺음과 관계유지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함을 얘기하는 대목이다. 그런데 다른 측면에서는 미국의 가장 대중적인 최신 힙합에 대한, 문화에 대한 유럽인의 자존심과 함께 문화제국 미국에 대한 감독의 혐오증을 스리슬쩍 드러내는 부분처럼 보이기도 한다.

 

권력에 대한 풍자


유명 소설가로 뜨기전 피에르가 신랄하게 비판했던 TV프로에 얼떨결에 출연해버린 그가 TV안에서 희화화되어 바보되는 장면. 권력은 그렇게 우아하지도 멋지기만 한게 아니란걸 상징하는 상황연출. 미디어의 꼭두각시가 되어버리는 과정은 유명소설가가 되기 위한 까다로운 행보를 예고하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소비되어져야만 문학도 사회적 성공이 가능하다 모 이런걸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해보인다.

 

 

롤리타 진정한 인간관계를 보다


멋진 남친은 데이트에서도 죽죽빵빵의 여자를 데리고 나타난다. 파티에서도 둘은 신나게 춤을 함께 추지만 키스는 다른 여자와 엉켜있다. 그녀는 그걸 바라볼 뿐이다.
롤리타는 왜 자신을 이용하는 멋진 남자를 뻥 차버리지 못하는 걸까? 자신을 이용하더래도 옆에 있어주기를 바라는 외로움의 발현? 그녀의 사랑에 대한 갈구는 엄청 구차하다. 정신차리라고 한대 때려주고 싶을만큼..옆을 돌아봐! 멋진 세바스티앙이 있자나!
세바스티앙는 항상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데 왜 그녀는 그맘을 못 알아보는 걸까.
돈을 빌려주고 일자리를 알아봐주는 그녀는 사심없이 도움을 주는것으로 보인다. 그도 과연 그럴까를 의심하는 건 어찌보면 끊임없이 외모로 인해 거부당하고 아버지의 권력을 미끼로 이용만 당한 상처입은 그녀로선 당연한 거리두기식 관계맺음이다.
세바스티앙이 세속적 미끼?들을 다 버리고 그녀곁을 떠나고서야 그녀는 그의 진정성을 깨닫는다. 세바스티앙은 추운날씨에 떨고있는 그의 어깨에 쟈켓을 걸치는 그녀의 모성애?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세바스티앙은 아직 순수함을 가진 영혼임에는 틀림없으나 세상이 그를 가만히 두지 않을 것같다. 아님..내 머릿속을 갈아엎거나..쩝...

 


넘 잼나다.
곳곳에는 섬세한 유머가 빠지지않고 등장한다.
결코 가볍지 않게 일상적 상황들로 무거운 주제를 자연스럽게 끌어내는 감독의 연출력은 여성감독이기에 가능하지 않았을는지.
딱 내 스탈의 영화. 강추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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