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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금자씨

씨네21에서 이미지가져옴

 

 

절대악당


백선생과 금자씨
악당도 인간인 것이지만 감독은 절대악당으로 인간의 무엇을 드러내고싶은 것일까?
숨겨도 숨겨지지 않는 진실이 있듯이 죄는 덮어도 덮어지지 않는다.
끝까지 쫓아가 단죄하는 것이 복수의 시작이자 끝이다.
복수의 주체는 금자씨말고도 백선생을 증오하고 있는 유괴된 아이들의 부모들이다.
아이들은 백선생의 죄를 사하여 주었을까?
그들의 부모가 자신들을 대변하여 구원해주기를 바랬던 것일까?
마지막 화장실신에서 커버린 아이의 무표정은 모호하다. 금자씨만이 환상을 본 것이 아닌 그녀의 딸 또한 아이를 본 것이다.

 

금자씨, 본능적인 모성으로 영혼을 구원받다?

모성적 본능은 지구 끝까지 쫓아가 복수해야만 하는 신성하고 강력한 힘인가?

글쎄...


이 시대의 한국적 악당은 전두환이지.

 

 

 

 


시공간을 넘나드는 독특한 스타일의 미술
왕가위의 스타일이 연상되는 단점.
자신이 하고 싶은 스타일은 모두 실험해본 듯한 영화였다.

 

키치적 미술은 감독이 관객들을 향해 이건 영화야라고 솔직하게 내뱉는 자신감으로 보였다.

금자씨의 방은 금자의 환타지와 복수심리를 보여주는 중요한 공간으로 드러난다. 특히나 벽지의 이미지장식은 왕가위의 <화양연화>를 연상하게 하는 반복적 패턴과 자연이미지의 문양을 사용함으로 클래식한 스타일로서 금자씨의 감정상태와 환타지적 분위기를 풍기는 장치가 된다.

또한 복수극을 모두 마친 금자씨가 화장을 지우는 화장실 공간은 가장 인상적인 곳이었다.

벽면의 재질과 반복적 패턴 스타일은 미래지향적 공간임을 암시하는 듯해서 스토리와 미술이 절묘하게 접합하는 인상적 장면이었다고 생각한다.


<올드보이>에서 가장 인상적이 장면은 오대수가 학교에서 몰래 남매를 엿보게되는 회상신이었다. 핸드핼드로 오대수를 따라가는 듯하다(현실) 어느새 어린 이우진을 따라가고 있는(과거) 기법은 과거와 현실을 교묘하게 겹치게 만드는 절묘한 플래쉬백이었다.

<친절한 금자씨>에서도 흑백대비가 명확한 계단신이 등장하나 <올드보이>에 비해 스토리와의 연관성이 떨어지며 심리적 긴장감 또한 약하다는 생각.

 

뱀발.

씨네21을 보다 <친절한 금자씨>의 미술감독 이력이 역시나 예사롭지 않았다는 걸 알았고(<올드보이>에서 부터 <살인의 추억>, <피도 눈물도 없이>-->꽤나 특이나 세트라는 생각이 들었던 영화였다. 등등)  그녀의 재능이 무척이나 부러워졌다는 거다. 흑흑..부러비~

씨네21 기사 "류성희 미술감독"

 

 


극의 전개를 거스르는 카메오
임수경, 여성교도소내부의 자문이었다고는 하나 양심수였던 임수경과 유괴범으로 오인된 범죄자 금자씨와의 오버랩에는 무리가 있었다. 여성교도소를 보여주고 여성이 주인공이라 하여 여성적 의미의 영화표현이라는 것은 무리한 접근방식이라 판단됨.
류승완
송강호, 복수극시리즈와의 연결. 꼬리의 꼬리를 무는 연결고리.
신하균
유지태


박찬욱감독의 세계적 명성과 감독적 자질을 뽐이라도 내듯이 유명인들이 줄줄이 카메오 출연하는 형식은 잔혹극의 내용에는 아무래도 거슬린다.
히치콕의 영화제작방식을 차용한 듯한 유명인의 카메오출연은 블랙유머라고 피식대기에는 씁쓸한 웃음만이 입가를 번지는 기분이다.

 

김현희를 연상시키는 유괴장면 재현극, 미모의 여성이면 모두 이런 분위기를 풍기는 건 아니겠지. 풀리지 않는 과거의 청산에 대한 상적적 재현인건지...

 


잔혹극과 복수
불편하다. “한국사회가 그렇게 한가하고 평화롭지 않다”는 감독의 표현처럼 한국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드러내는 이 영화는 보는이로 하여금 보여주기 싫은 치부를 드러내는 것처럼 심기가 불편해진다. 드러내는 방식이나 형식이 부정적인 것에 대해 불편해하는 개인적 취향을 빼면 이 영화는 확실히 박찬욱감독만의 영화적 스타일이 잘 드러나는 영화인 듯하다.
한국내 만연한 과거에 대한 이루어지지 않은 수많은 청산과제들과 쉽게 잊어버리는 안일함, 가장 근본적인 측면. 인간적 본능인 모성본능으로의 회귀. 이런 쉽지 않은 상징들을 영화는 저변에 깔고 있는 듯하다.

과거의 역사를 통해 미래를 내다봐야 한다.

 

복수가 필요한 사회.
약자들의 의미있는 반란.

 

복수=청산, 치유
이런 공식이 성립가능할까?


복수가 아닌 다른 그 무엇은?
폭력이 폭력을 양산하는 악순환의 시스템을 지양하는 사회가 좀더 진보한 사회일 것이다.
중동의 역사가 대변자구실을 하고 있으며 테러리즘과 미국의 일방주의 외교가 그 대표적 예가 될 것이다.

복수가 무엇을 해결해줄 것인가?

인간의 간사함이나 폭력성만을 드러내는 이야기구조로 보여 불편하다.


판타지와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금자씨 뒤의 배경 조각은 금자씨의 복수에 대한 상징적 이미지로 보인다. 자세한 형태는 기억이 가물하나 머리체를 잡은 여성의 강인한 형상을 조각은 보여줌으로서 금자씨의 심리를 대체하고 있는 듯하다. 미술의 상징성을 잘 드러내는 장면이다.

 

 

 

강렬하고도 아름다운 비발디
눈발날리는 어두운골목의 세사람을 배경으로 음악이 흐른다.
개인적으로 강렬한 대비효과와 독특한 양식의 미술보다, 이영애의 소름돋는 발작연기보다 편곡된 클래식음악이 훨씬 좋았다.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가장 적절한 방법이 영상을 보완하는 음악이 주는 조화로운 힘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박찬욱감독은 음악을 적재적소에 영리하고 감각적으로 사용하는 감독중의 한명이라는 생각.

 

 

 

 

뱀발.
처음 15분정도를 놓치고 영화를 접한지라 맥락의 이해를 쫓아가기 조금 힘들었다. 마지막 두부모양의 케익을 얼굴에 부벼대는 이영애의 연기가 어찌나 어색한지 “저게 모냐?”며 비웃었는데 “두부”의 상징을 읽어내지 못한 것은 나의 무지함 탓이었다. 이유는 처음 교도소출옥 장면을 놓쳤던 때문이었던 게다. ㅠ_ㅠ

한번정도 더 봐 주어도 좋을 영화라고 생각되어진다. 처음은 아무런 정보없이 순수하게 접근하고 두번째는 평론가의 글들, 관객들의 평, 처음 본 나의 느낌들을 모두 모아 한번 더 봐준다면 영화의 상징들을 읽어내고 뜯어보는 재미가 한층 더할 것이니 말이다.

 

그나저나 <친절한 금자씨> 보다는 <건방진 금자씨>가 더 강렬하게 기억되는건 왜일래나요?

ㅋㅋ

 

 

붉은사랑님의 [친절한 금자씨] 에 관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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