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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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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12/09
- 밥 먹다 상에서 일어나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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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12/09
- 음악에 빠진 미루(2)
부모님이랑 같이 살 때
저는 큰 아들이라고
장남 대우 받는 데 익숙했습니다.
지금은 물론 많이 변했지만
최근에 들어서야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에이...제육볶음 더 뎁혀야겠다.."
"괜찮어, 상구. 그냥 먹자..."
"아냐, 20초만 더 뎁히자..."
전날 먹고 남은 제육볶음을 뎁히기 위해서
저는 밥 먹다 말고 그릇을 들고 전자렌지로 갔습니다.
평소 같으면 거기서 기다릴텐데
너무 배가 고파서 그새 식탁으로 가서 한 숟갈을 입에 퍼넣었습니다.
"띠띠..."
"다 됐다~"
다시 전자렌지로 가서 그릇을 들고 식탁에 옵니다.
"국도 좀 차다. 그치?"
"응..."
"미안, 잠깐만 기다려..."
역시 전날 남았던 어묵국이 덜 뎁혀져서
전자렌지에 갔다 왔습니다.
"낑...끼잉..."
멀리서 미루가 우지짖는 소리가 들립니다.
"알았어~미루야, 기다려~~"
계속 놔두면 안 될 것 같아서
거실로 가서 미루를 안고 옵니다.
"내가 안고 있을까?"
"아냐..현숙이 너 먼저 밥 먹어..그리고 교대하자.."
사실 이럴 땐 미루를 안고 있는 사람 보다
그 앞에서 밥 먹는 사람 마음이 더 급해지긴 하지만
기왕 제가 안고 온 거니까 그냥 주선생님한테 마저 밥 먹으라고 했습니다.
"다 먹었다..교대하자.."
"응..그래...자, 받아..."
"앗, 근데 물 안 마셨다.."
"물 갖다 주까?"
전 밥 먹기 시작하고
여섯번째로 자리에서 일어나
컵에 물을 따라왔습니다.
문득,
자꾸 왔다갔다 하는 게
참 힘들었습니다.
평소엔 안 그러다가 이날 유난히
저만 혼자 왔다갔다 했는데
이런 것도 참 불편한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옛날생각이 났습니다.
어머니는 식사 때마다
몇번씩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으셨다 하셨습니다.
그러셨다는 게 이제 겨우 생각납니다.
나머지 남자 4명은
거의 30년 동안 밥 먹다가
자리에서 일어난 숫자가 손에 꼽습니다.
나중에 미루한테는
이런 작은 일부터 평등해야 한다는 걸
확실히 보여줘야겠습니다.
"으앙~으아앙~"
밖에 데리고 나갔다 들어와서
바닥에 눕힐려고 했더니
미루가 완강히 거부합니다.
"미루야~아빠 힘들어..인제 좀 쉬자...응?"
미루는 아빠가 이렇게
좋은 말로 차분히 설명을 해주면
더 웁니다.
"으으아으아~으아앙~"
"알았어, 알았어...잠깐만 기다려~!!"
미루를 우는 대로 그냥 눕혀 놓고
재빨리 음악을 틀어 줍니다.
스피커에서 감미로운 발라드가 흘러나오자
미루는 순식간에 눈을 크게 뜨고 울음을 뚝 그칩니다.
6개월 조금 넘은 아이한테
이런 고상한 취향이 있는지 몰랐는데
미루는 발라드만 틀어주면
하던 일을 다 그만두고 스피커쪽을 바라봅니다.
"어머...형부 감성을 닮았는가보네..."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미루는 평소 제 분위기와 꼭 어울리는
부드럽고 유치한 노래들만 나오면
애가 달라집니다.
몸짓은 느려지거나 아예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바닥에 천천히 내려놨다 합니다.
무엇보다도 눈이 우수에 가득찹니다.
처음엔 너무 걱정했습니다.
6개월짜리가 하기엔
너무 부담스러운 눈빛과 표정 때문에
애한테 무슨 문제가 있나 싶었습니다.
"괜찮을까?"
의사선생님한테 가서
"선생님 애가 발라드만 들으면 우수에 차요..."라고 말할 수도 없고 해서
주선생님한테 말했더니, 주선생님은 이런 대답을 저에게 건넸습니다.
"6개월쯤 되면 소리에 민감해져서 음악 틀어주면 좋대..."
약간 안심이 됐습니다.
그래도, 다른 노래도 많은데
왜 하필 발라드인지 완전히 걱정이 없어지진 않았습니다.
"동요 틀어주면 완전 무반응이잖아..."
"그렇긴 하지...진짜 너 닮아서 그런가?"
"쿵쿵짝 쿵짝 오~예...랩랩랩~"
집에 놀러온 친구가 저의 얘기를 듣더니
미루한테 발라드와는 다른 세상의 노래를 틀어줬습니다.
그랬더니 미루는 발라드를 들을 때와는 달리
더욱 우수어린 표정과 몸짓을 선보였습니다.
나중에 말귀 완전히 알아들을 때가 되면
그 표정은 아무때나 쓰는게 아니라고 알려줄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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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자기의 불편에서 남의 마음을 헤아리시는 마음씨.. 참 곱습니다. 이게 '배려'의 기본이겠죠^^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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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이 아빠는 배려심도 많고 그런데 30년 넘게 몸에 밴 습관 때문에 결혼 4년째인 지금도 가끔 "밥 좀 더 퍼줘"라던가 "물 좀" 혹은 "반찬 다른 것 좀 꺼내지"라고 합니다. 전 그를 무섭게 쨰려보고 절대 안 일어나요. 제가 먼저 다 먹었을 때를 빼고는.그는 큰아들, 대우 받고 자라 아내(며느리)에게 짐을 지우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지요. 저는 그 짐을 정중하고 단호하게 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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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준호/남 불편한 줄 모르다가 자기가 불편하고 나서야 알아차리는 마음씨라서 사실은 반성하고 있는 중이예요...^^;;단정/ 맞아요. 그런 지속적인 투쟁이 있어야 남자들이 조금씩이라도 고쳐지는 것 같아요. 사실 주선생님도 매일매일 투쟁의 연속이었대요. 전 잘 몰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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