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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랑 저녁 시간 보내기

6시 30분이 넘어서

미루를 찾으러 갔습니다.

 

"으아앙~~~"

 

미루가

현관으로 나오더니

입을 있는대로 벌리고 웁니다.

 

3분 전에 다른 아이 엄마가 왔었는데

자기 아빠가 아닌 걸 알고는

미루가 놀이집 응접실에 엎드려서

대성통곡을 했답니다.

 

그러다가 제가 나타난 걸 보고

감정이 북받쳤나 봅니다.

 

"미루가 평소엔 안 그러는데, 오늘 유난히..."

"야아아~어어.."

 

얼른 안아줬더니

선생님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얼굴이 폈습니다.

 

"미루야~토마토~~"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토마토를 하나 주면

미루는 그걸 쭉쭉 빨아 먹느라고

조용해집니다.

 

이 때 옷도 갈아입고

미루 먹일 밥 준비도 합니다.

 

오늘은 특별히 닭 백숙을 끓였습니다.

 

사실 특별한 건 아닙니다.

지난 일주일간 세번째 입니다.

 

"어~어~어~~"

 

전체적으로 밥이 늦어지자

미루 얼굴이 좀 까매졌습니다.

 

"미루야~미루 자리로 올라가..."

 

탁자에 있는 의자 하나를

미루 자리로 정했더니

미루는 배가 고프면 그 자리에 가서 앉아 있습니다.

 

닭국물에 밥을 말고

백숙을 잘게 찢어서 같이 먹였습니다.

 

얼마나 배고팠던지 삼키지도 않고

막 넘깁니다.

 

"미루 니가 먹어볼래?"

 

자기 숟가락이 있는데

꼭 어른 숟가락을 듭니다.

 

밥과 고기를 푹 푸더니

입으로 가져갑니다.

가져가는 도중에 숟가락이 90도가 되면서

밥이 후두둑 떨어집니다.

 

그 전에 숟가락이 입에 닿으면 밥을 먹는 거고

안 그러면 흘립니다.

 

밥 그릇에 있는 밥과

탁자 위에 흘린 밥 양이 거의 똑같아졌습니다.

 

"밥 다 먹었으면 씻자"

 

온 몸이 닭국물로 범벅이 되어 놓고

안아 달랍니다.

 

대충 안아서 욕실로 들어갑니다.

한참을 씻고 나와선

또 한참을 놀아줬습니다.

 

지난 며칠이 똑같습니다.

열심히 먹이고, 씻기고 놀아주면서

저녁시간을 보냈습니다.

 

역시 낮에 일하는 것 보다

밤에 미루랑 있는게 더 힘이 듭니다.

 

미루가 좀 일찍 자면 좋겠는데

그건 잘 안됩니다.

 

이걸 잘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내일

한국에 들어옵니다.

 

인제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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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

일이 끝나자 마자

득달같이 달렸습니다.

 

가정 집을 개조해 만든 놀이집은

현관으로 가기 전에

대형 통유리를 통해 응접실을

볼 수 있습니다.

 

"미루야..."

 

응접실 여기 저기를

왔다갔다 하면서 놀던 미루가

저를 발견하더니

양 팔을 흔들면서

유리쪽으로 다가옵니다.

 

내내 웃던 얼굴이었는데

그새 우는 모습이 됩니다.

 

현관에서 만난 미루는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를 얼굴로

저에게 안겼습니다.

 

"미루야, 잘 놀았어? ...보고 싶었어"

 

여기까지가

미루가 가장 이쁠 때입니다.

그 다음부터는 미루와의 전투가 시작됩니다.

 

어제 너무 고생을 해서

오늘은 옆 동에 있는

후배를 불렀습니다.

 

사람이 와 있으면

미루가 더 잘 놉니다.

 

백숙을 끓여서 먹고 시간을 보내다가

후배가 일어나면서 이야기합니다.

 

요새 아이 아빠가 바빠서

주말에도 일을 나간답니다.

 

"근데 그게 참 외로워..."

 

아...듣고 보니까

요 며칠 제가 느끼고 있던 게

이런 거였나 봅니다.

 

"왜 맨날 밤에 하루 동안 있었던 일 수다 떨잖아..."

"우리도 그랬는데, 오늘은 미루가 이걸 했고, 저걸 했고..."

 

미루는 안방에서 재우고

작은 방에 조그만 불 켜놓고

주선생님이랑 밤마다 얘기하던 게

참 좋은 재미였나봅니다.

 

꼭 밤늦게까지 얘기하느라고 잠을 충분히 못 자서

다음날 피곤했지만

 

지금은 그걸 안 하니까

많이 외롭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좀 있다 주선생님이 돌아오면

베트남 얘기를 밤새 할 거고

저는 옆에서 분명히 졸겁니다.

 

그때가 되면

지금이 그리울 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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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선생님 베트남에 가다

주선생님이 일하러

베트남에 갔습니다.

 

여행 가기 전에

이것 저것 챙기느라 바빴습니다.

 

어젯 밤엔 둘이 엎드려서

일주일간 미루 먹일 식단을 짰습니다.

저는 굶더라도 미루는 잘 먹여야 합니다.

 

오늘 제가 출근한 사이

주선생님은 집도 깨끗이 청소해놓고

닭백숙도 해놓고

냉장고 정리도 했습니다.

 

남자가 여행 갈 땐 자기 짐도 자기가 안 싸는데

그냥 짐만 챙겨서 가지 꼭 이럽니다.

 

"미루야~엄마가 어디 갔다가 일주일 있다가 오거든? 그러니까..."

 

주선생님은 달력을 펴놓고

미루한테 설명을 해줬습니다.

 

요새 말귀를 정말 잘 알아듣는 미루는

듣기 싫은 말에는 못 들은 체 하거나 딴 짓 하는데

일주일 있다가 온다는 엄마 말에 자꾸 딴 짓을 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7 일치 포옹 일곱번을 꽉 하고

놀이집으로 가는 미루한테 열심히 손을 흔들고

그러고는 내내 정신 없이 바빴을 주선생님은

가방 세개를 가지고 공항 버스를 탔습니다.

 

"잘 갔다와. 화이링~"

"미루랑 재미나게 지내, 알았지? 아자, 아자"

 

배웅하고 돌아오는 마을 버스 안에서

밖을 쳐다 보는데 갑자기 비가 내립니다.

그 비를 맞고 5살 쯤 돼 보이는 형이

2살 쯤으로 보이는 동생 손을 잡아 끌고 걸어갑니다.

 

비가 더 퍼붓습니다.

차 뒷유리로 보니까 형이 동생을 안고 뛰는데

둘이 덩치가 비슷하고, 뛰어봐야 비는 다 맞습니다.

 

30미터 쯤 떨어진 정류장에서 내려

아이들한테 뛰어갔습니다.

 

요새 부쩍 걷기 좋아하는 미루 생각이 나서

우산이라도 받쳐줘야겠다 싶었습니다.

 

그 사이 8살쯤 된 누나가 온 모양입니다.

 

5살 형한테 우산을 하나 주고

자기는 2살 동생을 업고 한 손으로 우산을 들고

걸어 옵니다.

 

"꼬마야~ 힘들지? 아저씨가 동생 업어줄까?"

 

아이들의 눈이 반짝 빛났습니다.

 

"아니요"

 

저를 보는 눈이

유괴범을 보는 눈입니다.

 

예전에도 애들 맛있는 거 사주려고

애들 엄마한테 "애가 너무 이뻐서요"라고 했다가

주선생님이 그건 유괴범 대사라고 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뭔가 신뢰가 가는 말을 더 해야 했습니다.

 

"아까 버스에서 봤는데 비를 많이 맞더라..."

 

애들은 벌써 저 만큼 가고 있습니다.

내 말은 더 듣지도 않습니다.

 

그래도 비를 더 안 맞아서 다행입니다.

애들이 내 맘을 몰라줬지만

전 미루랑 놀면 됩니다.

 

그리고

베트남 잘 다녀오길 바라는 제 맘을

주선생님은 잘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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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직장에 복귀하고 두 달이 흘렸습니다.

 

육아휴직이 끝나더라도

일기는 계속해서 써야겠다고

마음 굳게 먹었는데,

머리랑 손이 굳었습니다.

 

"오호~상구~두 달 사이에 많이 둔해졌는데?!"

 

며칠 전 어떤 잡지사 기자가 인터뷰를 왔는데

제가 영 안 생생한 얘기를 늘어놨습니다.

 

두 달 전에는

아이 키우기의 흔적이

온 몸에서 파닥파닥 거렸었습니다.

 

굳이 말로 열심히 설명을 안 해도

제 주변에 육아의 기운이

예식장에 드라이 아이스 깔리듯 했는데

 

이제는

열심히 생각해야

겨우 몇 마디 합니다.

 

근데 그 동안에

미루는 아주 부쩍 커버렸습니다.

 

어느날 벌떡 서더니

막 걷기 시작했습니다.

 

느닷없이 말귀를 알아듣기 시작하고

여러 사람이 "이게 뭐야"로 해석한 소리를 내고

작은 감정 표현들이 늘었습니다.

 

예전엔 미루가 내보이는 감정이

모 아니면 도였는데

이제는 그 사이에 다른 게 잔뜩 생겼습니다.

 

"일단 종이에다가 대충이라도 써 놓자"

 

처음엔

시간 없으니까

종이에라도 일기를 써놓으면

나중에 블로그에 옮길 수 있겠지 싶어서

맹렬한 기세로 그날 그날 미루와의 일을 적었습니다.

3일 썼습니다.

 

있었던 일을 전해줄 때는 항상

동화구연사가 되는 주선생님은

밤마다 저한테 그날의 스토리를 얘기해줬습니다.

 

"상구~육아 일기 다시 써라...응?"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지가 쓰지..."

  

요새 좀 많이 무기력한데

육아 뒤끝에 겪었던 우울증이

남아 있는 듯 합니다.

 

힘 내야겠습니다.

그러다가 머리도 풀리고 손도 풀렸으면 좋겠습니다.

 

미루랑 주선생님이 주인공인 일기는

여러번 봐도 재밌는데

이 재미를 끊을 순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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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어요.

 

 

저희들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습니다.
이런 신나는 일이~~^^
 
책이 나오고 다시 찬찬히 읽어보니까
정말 제 육아휴직 기간은
생애 가장 아름다운 365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아름다운 365일을 만들기 위해서
계속 함께 아이키우기에 매진해야 겠습니다.
 
혹시 책을 사실 분은 여길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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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휴직 끝~

"휴..."

"상구 왜 그래?"

 

쇼파에 누워있는 주선생님 앞으로

갔습니다.

 

"이틀 남았다."

"그러게, 상구 진짜 고생 많았다."

"너도"

 

미루는 자고 있습니다.

"근데 기분이 어때?"

 

눈물이 날 것 같습니다.

처음 미루를 안고 집에 들어오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큰 일을 마치고 나면

보통 시원섭섭하다던데

그런 느낌하고 비슷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합니다.

 

"그냥 너무 허전하다"

"똥 싼 것처럼?"

 

...

 

 

육아휴직

마지막 날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미루야, 이유식 먹자~인제 당분간 아빠가 이유식 못 주니까..."

"끼약~~~"

 

"......"

"우바바바"

 

"......"

"까따까따까따"

 

"상구~또 울려고 그러지?"

"오늘 아니면 인제 이유식 먹일 날도 없잖아..."

 

"왜 없어. 일요일도 있고, 휴일도 있고, 저녁에 일찍 와서 먹여도 되구.."

 

이유식을 다 먹이고

미루를 놀이집에 데려다 주었습니다.

"미루야, 이건 진짜 오늘이 마지막이야.

내일부터는 엄마랑 잘 다녀, 알았지?"

 

딴 데 보는 데 정신이 팔려 있던 미루가

저한테 얼굴을 푹 파묻습니다.

마음이 울컥해집니다.

 

"너...

 

졸리는구나"

 

미루를 맡기고

내일 출근을 위해

머리를 깎았습니다.

 

미용실에서 나오는데

바로 옆에 중국집이 보입니다.

 

힘들고, 갈 데는 없을 때

항상 이 근처를 배회했었습니다.

 

중국집 안에서 주선생님이 짜장면을 먹고 있고

저는 미루를 유모차에 태우고 흔들고 있습니다.

 

그 옆 창 너머 일식집에선

주선생님과 제가 무슨 날인가를 기념하면서

그 비싼 회를 먹고 있습니다.

 

건너편 아이스크림 가게를 쳐다봤습니다.

두 사람이 아이스크림 1인분을 시켜서 먹고 있고

유모차 안에서 미루는 잠이 들었습니다.

 

맞은 편 푸드 코트 구석 의자에선

제가 혼자 메밀국수를 먹습니다.

주선생님은 유모차를 끌고 푸드코트를 한 바퀴 돌고 있습니다.

 

엘리베이터 옆 화장실에 들어갔더니

미루 기저귀를 갈고 있는 제 모습이 보입니다.

 

지하 마트랑 떡볶이 코너에 가볼까,

지쳐서 벤취에 앉아 있던 바로 앞 공원에 가볼까 하다가

마음이 너무 지칠 것 같아 그만뒀습니다.

 

1년이 금세 갔습니다.

그 사이 미루는 훌쩍 컸고

주선생님과 저도 컸습니다.

 

세 사람이 지난 1년 처럼 꼭 붙어서 지지고 볶을 일이

앞으로는 다시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

 

별 생각없이 적기 시작했던 일기는

오늘로 300개가 됐습니다.

 

미루 덕에 일기를 쓰게 됐고

일기 덕에 300개의 기억을 갖게 됐습니다.

이 기억들은 미루가 우리에게 준 선물입니다.

미루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참 아름다운 365일을 보내고

저는 내일부터 출근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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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만의 데이트

미루를 낳고 처음으로

주선생님과 저 둘이서

영화를 보기로 했습니다.

 

"흐흐...떨려"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서,

미루를 놀이집에서 찾는 4시까지

그야말로 실컷 놀기로 했습니다.

 

"점심은 뭐 사먹을까? 초밥 어때?초밥?"

 

뭐든지 좋습니다.

 

둘이 같이 놀러간다는 것 자체가

감격스럽습니다.

 

열심히 부지런을 떨었지만 우리는

이런 저런 사정으로 결국 12시가 넘어서야

가까운 극장으로 출발했습니다.

 

"현숙아, 어떡하냐. 이렇게 늦어져서..."

"괜찮아, 괜찮아...일단 우리 둘이서 극장에 간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기뻐할 일이야"

 

버스를 두 대 갈아타고

극장 앞에 도착했습니다.

 

뛰다시피해서 6층 매표소에 도착했습니다.

 

"지금 몇 시지?"

"12시 40분"

"그래?그럼 1시 10분 영화 끊자"

 

영화 시작까지 남은 시간은 30분

또 열심히 뛰어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한층 밑으로 내려갔습니다.

 

"식당이 어디지?"

"저기 돌아가면 있잖아"

"우리 쌀국수 먹는거지?"

"그렇지, 어서 뛰자"

 

쌀국수 집엔 사람이

득실득실합니다.

 

"안되겠다! 저기 스파게티집 가자"

"그러자"

 

스파게티집에 도착하자

12시 45분입니다.

 

가장 빨리 나오는 스파게티를 시켰습니다.

"최대한 빨리 먹어야겠다."

"그러게"

"이렇게 자꾸 쫓겨서 어쩌냐"

"괜찮아, 그래도 이게 어디야"

 

스파게티는 55분이 되어 나왔습니다.

거의 마시다시피 먹었습니다.

5분이 남았습니다.

 

"뛰자"

"상구 나 돈 찾아서 팝콘 살테니까 기다려"

 

"..."

"샀어. 어서 가자"

 

영화는 상당히 재밌었습니다.

오랜만에 스트레스가 풀립니다.

 

영화가 끝났습니다.

 

"상구, 우리 영화 잘 골랐다. 그치?"

"응. 근데 이 영화 되게 길다."

"그런가?"

"지금 시간이...어?! 3시 50분이다"

 

우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극장 계단을 성큼성큼 내려왔습니다.

 

"현숙아, 놀이집 전화해서 늦는다고 해야겠다"

"알았어. 근데, 여의도 가서 소고기 분쇄육도 사야 되는데..."

"그래? 그럼 어떡하지?"

"둘이 찢어지자. 상구는 여의도로 나는 놀이집으로.."

"그래 알았어. 급해도 조심해서 다녀"

 

둘은 다시 뛰기 시작했습니다.

열심히 뛰고 또 뛰어서

한 사람은 미루를 찾았고,

한 사람은 고기랑 브로콜리를 샀습니다.

 

오늘 1년 만의 데이트의 주제는

달리기였고

부제는 영화보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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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뭘 들고 다니다

1.

 

필요 없는 걸 들고 다니기 분야의 1인자는

역시 저 입니다.

 

미루를 막 놀이집에

맡기기 시작했을 때의 일입니다.

주선생님과 저한테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주선생님은 사무실에 있다가 먼저 손님을 만나고

저는 집을 치우다가 약속 시간에 늦었습니다.

 

급히 의자에 걸쳐놨던

잠바를 집어 입고 뛰어나갔습니다.

 

마을버스에서 내려서

약속장소로 걷고 있는 길

햇살이 따뜻합니다.

 

손님이랑 주선생님이 있는 식당이

바로 10미터 앞인데

햇살을 좀 더 쬐고 갈까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어?"

 

다리에 뭐가 걸리적 거려서

아래를 쳐다봤습니다.

기절할 뻔 했습니다.

 

어디서 많이 본 여자 추리닝이 다리 앞에서

털럭 거리고 있습니다.

다행히 주변엔 아무도 없습니다.

다시 자세히 살펴봤습니다.

 

잠바에 교묘하게 걸려서 다리로 흘러내려와 있는 추리닝은

주선생님겁니다. 아까 의자에서 잠바를 급히 집어 입을 때

추리닝까지 같이 입었던 게 틀림없습니다.

흘러내린 추리닝을 말아서

잠바 안쪽 팔 사이에 끼웠습니다.

 

식사 내내 추리닝 신경 쓰여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2.

 

"상구 이게 뭐야?"

 

놀이집에서 미루를 데리고 왔는데 보니까

가방 속에 겨울털실 모자가 들어 있습니다.

 

"어? 아까 놀이집 데려가기 전에

미루가 서랍에서 털실 모자 꺼내서 놀고 있었는데..."

 

미루를 아기띠로 안으면서

털실모자까지 통째로 들어서

안은게 틀림없습니다.

 

참 여러가지 합니다.

 

3.

 

저는 필요없는 걸 주로 들고 다니지만

미루는 필요한 걸 들고 다닙니다.

 

놀이집에서 미루만 따로 밥 먹이는 게 힘든지

자꾸 이야기를 합니다.

 

"요리하시는 할머니가 서운해하셔요"

 

주선생님과 저는

미루가 약간 아토피 기운도 있고 해서

아침마다 이유식 도시락을 쌉니다.

 

놀이집에서는 2-3살 아이들이 먹게

음식에 간을 다 하는데

미루는 좀 나중에 먹여야겠다고 생각을 해서입니다.

 

"음식을 따로 먹이니까 애가 더 예민한 게 아닐까요?"

 

별로 과학적이지 않은 말에

주선생님 열 받았답니다.

 

"그래도 일단은 도시락 먹여주세요..."

 

열만 받고 말은 공손하게 한 뒤 돌아서는데

선생님이 그러더랍니다.

 

"어? 볼펜이 또 없어졌네. 비싼 건데"

 

놀이집 현관에

매달려 있는 볼펜이 없어졌다는 소리인데

주선생님은 신경쓸 일이 아니라서

바로 나왔답니다.

 

"앗! 미루야~~너 이 볼펜?"

 

집에 와서 보니까

미루가 볼펜을 한 손에 꽉 쥐고 있습니다.

주선생님과 놀이집 선생님이

이야기할 때 미루가 볼펜을 슬쩍 한 겁니다.

 

"히힛! 잘 했어 미루야~"

 

이유식 문제 때문에 기분이 상했는데

미루가 볼펜을 확 가져와 버리다니

주선생님 매우 상쾌해 합니다.

 

딱 적당한 때

미루가 주선생님 기분풀이를 위해

볼펜을 챙겼습니다.

 

그 볼펜

써보니까 잘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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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다 일어나서

자는 데 낌새가 이상합니다.

고개를 들어 옆을 쳐다봤습니다.

 

이런!

미루랑 눈이 마주쳤습니다.

미루, 파닥파닥거립니다.

 

"에이..잘못 걸렸다"

 

새벽부터 놀아주기가 시작됐습니다.

눈이 안 마주쳤어야 하는데

완전히 실수입니다.

 

미루는 분명히 졸린 얼굴인데

여기 저기 기어다니면서 꽥꽥 소리를 지르고

저는 마지못해 놀아주기를 시도합니다.

 

한참을 놀던 미루가

앉아서 눈을 비비고 머리를 긁습니다.

졸리다는 신호입니다.

 

"미루야. 자자~"

 

6시 30분부터 시작해서

30분 동안 노력해서 겨우 재우고

방을 나옵니다.

 

"끼잉..."

 

뒤를 돌아보면 안됩니다.

또 눈 마주치면 다시 깹니다.

 

방문을 닫으려다가

문틈으로 살짝 쳐다봤습니다.

 

미루가 눈을 뜨고 이 쪽을 쳐다봅니다.

이 좁은 틈으로 제가 보일리가 없습니다.

 

"자라~자야지...자야 해"

 

혼자 주문을 외우고 나왔습니다.

시간이 흘렀습니다. 30분쯤.

 

"상구 일로와봐~~"

"왜?"

"빨리 와 봐"

 

이럴수가!

미루가 잡니다.

침대 위에 올라가서, 모서리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자고 있습니다.

이제 드디어 잠결에 침대에 올라가는 경지에 도달한 겁니다.

 

"내가 너무 힘이 들어서

그냥 토닥토닥하다가 잠이 들었거든?"

 

주선생님이 상황을 설명합니다.

 

"칭얼대다가 조용해지더라구.

그래서 자는 줄 알았는데...

한참 있다가 눈 떠 보니까 여기 있는거야"

 

앞으로는 정말 미루가 

어디서 어떤 자세로

자고 있을 지 모르게 됐습니다.

 

미루를 가운데 눕히고

양쪽에서 압박해서 자야 하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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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닮다

"끼야아아악~~~~~"

 

미루는 틈만 나면 

소리를 지릅니다.

 

"미루야 밥 먹자"

"끼야아악"

 

"미루야 뭐 해? 책 봐?"

"끼야아악"

 

"안 되겠다. 아빠 힘들어서, 침대 위에서 놀아라"

"끼야아아악~~"

 

목청이 어찌나 좋은지

계속 그렇게 소리를 질러도

힘도 안 드는 모양입니다.

 

소리를 지르는 중간 중간에

미루는 뭔가를 계속 중얼거립니다.

 

요즘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이겁니다.

 

"까따까따까따까따"

 

식탁 다리를 잡고도 까따까따 거리고

엄마한테 기어갈 때도

가습기 물 떨어져서 빨간 불 들어온 걸 보고도

계속 까따까따 합니다.

 

"미루는 도대체 누굴 닮아서 저렇지?"

"현숙이 너 닮은 거 아냐?"

"그런가?"

 

주선생님

부정은 안 합니다.

 

주선생님은

아플 때 빼고는 항상 말을 하고

가끔 소리를 꽥 지르면

귀를 퍽퍽 때리는 음파가 발사됩니다.

 

"상구랑 내가 평소에 대화를 자주 해서

미루한테 영향을 준 게 아닐까?"

 

맞는 말 같은데

왠지 비겁한 변명으로 들립니다.

 

어제는 놀이집에서 찾아 오는데

선생님이 이러십니다.

 

"미루가 하루 종일 떠들어요"

 

가정통신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미루가 요새 말이 많아졌어요.

활동하는 내내 말을 해요'

 

결국 놀이집에서 까지

미루가 제일 많이 떠든다는 소리를 듣더니

주선생님이 과거의 진실을 실토했습니다.

 

"나 초등학교 5학년 때 반장이었거든?

그때는 공부도 잘 했었어.

근데 선생님이 생활기록부에 뭐라고 적었었는지 알어?"

 

반장에 공부도 잘 했으면

'품행이 방정하고, 타의 모범이 되며..'등등을

적는게 보통인데 선생님은 반장 생활기록부에

이렇게 적었답니다.

 

'목소리가 매우 큼'

 

"내가 조용히 해~~~!!!! 이러면 교실이 조용해졌다니까."

 

미루가 엄마를 닮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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