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 언젠가 만경대에 갈때부터

만경대에서 비박이 좋지 않은 추억으로 새겨지기 시작했다.

그때는 정말 무더운 날씨였는데,

산꼭대기까지 그 무더위는 그대로였고,

밤이 되어도, 새벽에도 마찬가지였다.

 

 



올해는 지난달엔가 만경대로 갔는데,

이번에는 날자를 잘못 택했는지,

계속 안개비가 부슬거리고, 무더운것도 변함이 없었다.

그래서 위문에서 겨우 비만 피하고 쪼그리고 앉았다가

만경대에는 가지도 않고 새벽에 서둘러 내려왔다.

 

토요일 지역위원회에서 만경대에 가자고 해서

같이 갔다. 에프티에이 반대 집회와 행진을 하고

선전전이 끝날 즈음에 모여서 밥먹고 출발했는데 9시가 다될즈음이었다.

어른 넷에 아이 한명(준혁이는 지난번 안개비 올때 잘도 앞서가던 꼬마였다)이

대성산장위에서 출발한 시각은 9시 50분쯤

바람은 없었지만, 날씨가 제법 선선해 져서 산에 오를만했는데,

산오리는 저녁밥을 너무 배부르게 먹은 탓에

계속 물이 쓰여서 벌컥벌컥 물만 들이켰다.

 

그런데 저번에 그리 잘 가던 준혁이가 이번에는 출발하기 전부터

졸린다고 하더니, 오르는 내내 아빠에게 졸립다고 하고,

아빠는 이제는 돌아갈수 없으니까 힘내서 올라가라고 다그치고..

 

만경대에 도착하니 12시 반쯤 되었던가?

이미 남녀 한쌍이 자리 펴고 앉아서 술을 겸한 음식을 먹고 있었다.

애가 졸린다고 계속 그랬기에 자리 펴고 애를 재우는 게 급선무 였다고 생각하고,

이 한쌍에게 부탁을 했다.

약간 한쪽으로 자리를 좀 옮겨 달라고... 그랬더니, 그런 무례한 부탁이 어디 있느냐고

되레 짜증을 내는 거 아닌가. 산에서 만나면 당연히 서로를 배려하고, 누구랄 거 없이

애나 약한 사람 있으면 먼저 챙겨야 할 거 같은데, 이 남녀는 그러고 있다.

여기밖에 자리가 없느냐? 다른데 가면 될거 아니냐?이런 식이다.

그래서 또 좋게 얘기하고, 원래 이자리가 열명도 더 잘수 있는 곳이니까 조금씩 양보해서

함께 있어야 한다고 했더니, 겨우 자기네 짐만 머리 위로 옮겨놓는다.

그래서 우리는 이쪽저쪽 두곳으로 찢어져 자리를 폈고,

한쪽에 애를 눕혀서 잠자라고 했다.

 

그리고는 이 두남녀와 우리팀은 모른척하고 서로들 음식을 펼쳐놓고 먹고, 마시고, 떠들고...

조금 지나니까 이 두남녀는  자기네들이 참기 어려웠던지, 슬며시 일어나서 바위뒷편으로

가서 얘기하는 소리가 들린다.

손님이 주인을 쫓아낸 꼴이지만, 우리는 그들의 처음 대응이 내내 못마땅했기에 오히려 잘되었다는 듯이 먹고 마시고 떠들고, 나중에는 노래까지 부르고...

그러고는 2시가 되어 가길래, 산오리는 먼저 자야겠다고 드러누웠다.

 

잠이 좀 들었는데, 손발과 얼굴은 물론이고 침낭 속에 들어 있는 발까지도

모기가 물어 뜯어서 잠이 깼다. 모기도 모기인데다 우리 팀 두명이 계속 술마시고 떠들고 있었던 것도 잠이 깬 원인이기도 했다.

잠이 깨서는 조금 듣고 있었더니, 두 친구가 술이 좀 된 모양이다.

(했던 얘기가  녹음기 틀어놓은 거 처럼 뱅뱅 돌고 있는 걸 보면...)

 

그런데, 따로 떨어져 있었던 두 남녀가 자기네 자리에 와서 잠을 청했던 모양이다.

계속 시끄러우니까 여자가 '저기요, 저기요..'하고 조용히 좀 해달라고 말을 걸려고

시도를 하는데, 우리 팀의 술취한 두 친구는 아예 무시하고 더 목소리를 높이다.

가망이 없다고 생각한 두 남녀중의 남자가 여자에게 자리를 옮기자고 하더니,

일어나서는 바위 뒷쪽으로 사라졌다.

처음 고분고분하게 대하지 않는 댓가 치고는 가혹한 것이었다.

 

우리팀의 두 친구는 두 남녀를 쫓아 냈다고 신나한 것도 잠시였고,

두 친구는 계속 했던 얘기를 계속 반복했고,

(그렇게 물은 이유가 무엇이냐? <->그건 생각해 보면 아는거 아니냐?)

옆에서 듣고 있는 산오리도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견디다 못해 일어나 앉아서, '이제 좀 그만하고 잠좀 자자'고 달랬는데,

두 친구는 전혀 그럴 생각도 없이, 둘만의 술취한 놀이(?)를 즐기고 있는 듯했다.

 

실제로 한 친구는 술이 꽤 취했는지 비틀거리기도 했는데,

이 높은 산꼭대기 바위 위에서 잠간 실수해서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끔찍한 노릇이었다.

준혁이 아빠는 평소의 모습대로 그렇게 착하게 둘의 술주정시중(?)을 드느라 고생하고 있고...

 

그러거나 말거나 다시 누웠는데, 이번에는 한 친구가 내 배 위로 확 쓰러졌다.

순간 열이 받쳐서 일어나서는 쌍욕을 들이 붓고서는,

내가 먼저 내려가겠다고 배낭을 꾸렸다.

분위기 싸해 졌겠지만, 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랬더니, 두 친구 중의 한친구도 자기가 내려가면 된다면서 아예 먼저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친구 사라졌으면 좀 나아질까 했는데, 남은 한친구는 아직 얘기 끝나지 않았다는 듯이

계속하고 있었고...

 

배낭 메고 일어섰다. 더이상 잠을 잘수도 없을 거 같고, 머리가 지끈거리기도 하고,

이렇게 기분좋게 산꼭대기까지 와서 이런 술주정을 감내하고 있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

 

앞서내려간 한 친구를 위문까지같이 왔는데, 그 이후에는 나보러 먼저가라해서,

혼자서 산성매표소까지 내려왔다.

중간에 혹시 내려오나 해서 기다리기도 했지만, 소식도 없었고...

 

위에 있는 준혁아빠에게 미안해서 전화를 두어번 했지만,

불통지역인지 어쩐지 전화도 안받기에 포기하고..

 

집에 와서 라면 하나 끓여 먹고서 좀 쉬려 했건만,

집은 또 난리북새통이라 하루종일 잠들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뭘 어쩌지도 못하고,

그렇게 일욜이 지나갔다.

 

여름 만경대는 다시 가고 싶지 않다.

그리고 그런 멤버들과도 다시 산에 가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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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04 13:14 2006/09/04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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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준혁맘 2006/09/04 17:31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안그래도 집회 끝나고 가는데다 시간이 늦어서 준혁이가 내심 불안했거든요.
    그래서 집에 둘까도 싶었는데, 간다고 하길래 보냈더니 자신도 힘들고 다른 사람들도 힘들게 했나봅니다. 폐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준혁이는 정확히 얼굴만 50군데 물렸더라구요. 오늘 학교 안간다고 보채는 걸 보냈습니다.

  2. 산오리 2006/09/04 18:10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준혁맘/애 고생만 엄청시켜서 제가 죄송해요...어른들도 밤에는 힘들어하는데, 어린애를 어른처럼 생각했으니..
    얼굴만 50군데라.. 희생이 넘컸어요.

  3. 2006/09/04 21:23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사람들이 하도 음식을 많이 먹어서 모기들이 좋아하는 장소가 됐나봐요. 새로운,,조용한 장소를 찾아야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일욜 산으로?? 자원봉사 안 하신다면...^^

  4. 민주애비 2006/09/04 23:06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죄송합니다. 정상에서의 자리펴기에서 꼬이기 시작하여 결국엔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고 말았군요저는 본시 등산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자리이기에 어디든 따라 나서곤 합니다.앞으로는 산이든 어디든 심사숙고 한 연후에 저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세운 연후에 참여하는게 올바른 참여의 모습일것 같다는 반성에 기초한 소득을 얻은 산행이었던것 같군요. 산에 오를 기회가 있다면 제 자신을 온전히 보듬고 난 뒤에 합류하도록 하겠습니다. "산에 오르는 법"을 잘 연구해본 연후에 따라나서도록 하겠습니다. 그때는 내치지 말아 주세요^&^

  5. 산오리 2006/09/05 09:47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단/일욜 자원봉사(?)는 계속되고 있어요..
    민주애비/'산에 오르는법'이 문제가 아니라, '술을 마시는 법'이 문제이라고 생각합니다. 술을 마시는 법이 잘 연구되면 산에 갑시다..ㅎ

  6. 남정석 2006/09/08 22:07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어찌 되었든 억수로 죄송합니다. 며칠 인너넷을 사용 할 수 없는 형편이라 지금 발견 했네요.저가 주길 넘 입네다. 당분간 지역위에서 자중하는 모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