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로 2년동안의 임기가 끝났다.

시작할때도 별 생각없이(?) 시작해서인지 마치면서도 별다른 생각이 없다.

그나마, 그래도 생각나는 것, 기억하고 싶은 것, 기록해 두고 싶은 것이 있다면....



1. 재미가 없었다.

   노동조합 전임자를 재미로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전임자로서의 재미가  없다면 단 하루도 전임자 노릇하기 힘들 것이다. 나는 그 재미를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기' 정도로 정의 하고 있다.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한지가 이미 16년이 거의 지나갔지만 그동안 노동조합 활동에서 만난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회사에서 서로를 경쟁상대로 보거나, 서로를 비난 하는 회사 동료들보다 훨씬 편하고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지난 97년 연맹에서의 전임 이후 5년이 지난 다음에 들어선 노동조합 전임에서 만난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에서 멀어진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물론 그동안의 상황변화나 사업장에서의 어려움 등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노동조합 활동의 근본을 벗어난 전임자와 간부들이 너무 많아졌고, 이것도 오히려 당연시 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사용자와 싸워야 하고, 더 나아가서는 거창하게 자본과 정권과 싸워야 하는데, 안에서 조합의 간부들과 싸우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날이 많았다. 그래서 재미가 없고 힘들어 한 날들이 많았다.

 

2. 임기를 겨우 마쳤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노동조합이고, 또 정부의 탄압이 심해지다 보니, 산자부 산하 사업장의 조직을 많이 잃어 버렸다. 산기원 200여명, 산기평과 건자재 100여명씩 어림잡아도 400명이 넘는 조직원(조합원)을 잃어 버렸다. 우리 집행부가 들어서기 전에 전자통신연구원과 한국과학기술원을 잃어버렸는데, 이런 조직을 복원하겠다고 들어선 집행부가 그건 못하고, 그에 더해서 또 잃었으니...

   그럼 당연히 조직을 책임지고 있는 임원들은 책임을 져야 했다. 그래서 사퇴해야 겠다는 충동(?)에 고민했다. 그때 사퇴하는 것이 잘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임기를 채운 것이 잘 한 것이었는지 여전히 평가의 대상이다.

 

3. 엉거주춤한 자리...

  수석부위원장이라는 자리는 참으로 엉거주춤한 자리였다. 의사를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는 자리도아니고, 실무적으로 이것저것을 기안하고, 챙기고, 맡기는 자리도 아니었다.

  위원장이 시간이 없어서 못하는 일을 대타로 때우거나, 사무처장이 일손이 달릴때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거나 그게 대부분이었다. 물론 공식적으로 결정된 무슨 투쟁위원회 같은 것을 맡아서 운영해 나가는 것은 있었지만, 뭔가 잘 안되거나 하고 싶은 일이 있을때 이를 추진해 내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잘못하면 위원장의 권한이나 사무처장의 업무영역을 침범하게 될 거 같아서....

   그래서인지 몰라도 위원장, 사무처장 보다는 편안한 자리임에는 틀림없다. 

   그래도 자리가 있어도 못한 일도 있다. 비정규직 특위를 하라 했는데, 회의 구성 제대로 한번 못하고, 어정쩡한 설문조사나 하고 말았으니...(이건 욕먹을 만하다..)

 

4. 노동자 의식은...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이 있기도 하고, 또 이나라 전체의 문제이기도하지만, 사무전문직으로서 비교적 좋은 대우를 받고 있는 연구소의 정규직들의 의식은 여전히 '이기적'일수 밖에 없다.

  현장을, 조합원의 요구를 수렴하고 반영해야 하기에 또 조합원들의 힘이 그기에 있기에 별다른 고민이나 대안 없이 '이기적인' 요구에 맞춰서 노동조합 활동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안팎이 함께 고민하고 바꿔나가야 할 일이다.

 

5. 작은 조직에서도 나눠져서...

   4천명 조합원에 중앙위원 40명의 작은  조직이다. 그 안에서도 서로 감정적인 앙금으로 갈라져서 비판인지 비난인지 모를 논쟁이 가끔은 일어난다. 그리고 잘 섞여지지 않는다. 10명도 안되는 사무처 안에서도 실무자들이 2-3명씩 나눠져 있는게 눈에 보인다.

의견이 다른 것은 당연하고, 또 논쟁이 벌어지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의견차이가 아니라 '감정'적인 것처럼 문제제기를 하거나, 일상에서도 '패거리'처럼 편가르기를 하는 것은 정말 가슴아픈 일이다. 2년동안 이 문제도 시원하게는 아니더라도 별로 해결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나처럼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또 절감했다.

 

6. 같이 한 동지...

    임원 못구한다고 해서 별 생각 없이 나서서 2년을 때웠는데, 임기를 마쳐도 새로 일할 임원이 없다. 연맹에서는 3팀이나 나와서 피나는 싸움을 벌였는데, 여기는 왜 아무도 하겠다는 사람이 없는지 모를 일이다. 역시 '재미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세월이 지나면 또 임원도 만들고, 내가 있을 때보다는 훨씬 잘하는 집행부가 되겠지...

    그래도 아쉽고 미안한 것도 있다. 함께 일한 위원장은 연맹으로 보냈고, 사무처장은 아쉬움 속에 또 현장으로 보내야 하는 게 맘에 걸린다.

    대전과 서울의 무시할 수 없는 지리적인 거리를 위원장이 앞으로 2년동안 오가게 만드는데 나도 일조를 했는데, 앞으로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을라나 모르겠다.

    사무처장은 동지들을 향한 그의 마음 씀씀이가 대갓집 맏며느리처럼 넓고 편하고 좋았는데, 정작 본인의 고충이나 고민은 한자락도 털어놓지 않았다. 그 고민 한자락이라도 같이 하지 못한 점이 아쉽고 미안하다.

 

임원출마하면서 조합원 들에게는 '민주노조의 근본을 지키는 노동조합을 만들어가겠'다고 했는데, 돌아보니 ...................  

  

<2년 전에 쓴 출마 결의문>

 

  민주노조의 근본을 지키는 노동조합을 만들어 가겠습니다.


존경하는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 조합원 동지 여러분!
제 6대 임원선거에 수석부위원장 후보로 출마한 한국건설기술연구
원 지부의 곽장영입니다.

1990년부터 노동조합 간부를 맡았고, 꾸준히 노동조합과 민주노동
당 활동 을 해 왔지만, 과기노조 중앙의 간부로 활동한 경험이 없는
제가 이번에 임원으로 출마하게 되었습니다. 출마하면서 제 스스로
다짐했던 것은 '민주노조의 근본을 지키는 과기노조를 만들어 가자'
는 것입니다. 물론 그동안 과기노조가 민주노조가 아니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최근에 많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근본적
인 문제를 소홀하게 여겼기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민주노조를 세우고, 민주노조를 지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
가는 조합원 동지 여러분들도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지난
몇 년간 우리 민주노동조합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은 정권과 자본의
극심한 탄압 때문이며, 더 나아가 IMF를 빌미로 정부출연기관 노동
자와 노동조합을 무력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한 편으로
는 노동조합을 이끌어가고 있는 간부들이 조합원과 함께 문제를 토
론하고 해결해 가는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
다.
현재 과기노조가 어려움에 처해 있지만, 우리가 민주노조를, 그리
고 과기노조를 세우고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싸웠던 처음을 되돌아
보고, 노동조합 활동의 기본적인 원칙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 본다
면, 그 어려움을 슬기롭게 해결해 나갈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습니
다.
노동조합의 기본은 '단결과 투쟁'입니다. 저는 과기노조가 이러한
근본을 지키는 노동조합으로 새로 태어날 수 있도록 한 사람의 조
합원으로서, 그리고 수석부위원장으로서의 역할을 다해 나갈 것입니
다.
이를 통해 과학기술노동자의 권익을 높이고, 정부출연기관의 올바
른 위상을 정립하고, 더 나아가 민주노동당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대우 받는 사회, 소외받는 사람들이 제대로 대우 받는 세상을 만들
어가는 데 중심에 서는 노동조합, 자랑스런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을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조합원동지 여러분의 적극적인 지원과 아낌없는 질책을 기대합니
다.


2002년 12월 2일
제6대임원선거 수석부위원장 후보 곽장영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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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18 11:59 2004/12/18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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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2년 임기중. 1년을 마치고

    Tracked from 2004/12/21 10:42  delete

    * 이 글은 산오리님의 [2년 전임을 마치고...] 에 관련된 글입니다. 나는 올해로 노동조합 전임 4년차다. 그리고 1년차 사무국장이다. (작년까지의 내 직책은 정책부장이었다) 얼마전 지부장

  1. kanjang_gongjang 2004/12/18 12:32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고생많으셨습니다. 박수 짝짝짝~~~
    앞으로도 위 출마결의문과 같은 삶을 살아가겠죠.
    자전거로 출퇴근하시구 그동안 못했던 산오리님 조합에 속한 동지들과 함께 나가는 자리를 마련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내 뭐 갈라져 보았자 그나물에 그밥 아닙니까?

  2. 바다소녀 2004/12/19 14:52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이젠 대전에 안 오세요?

  3. sanori 2004/12/19 21:32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간장공장 / 자전거 기름칠 하려고 카센터에서 윤활유 한통 구해 두었습니다.
    바다소녀 / 바다소년 보러 가끔은 가야죠...

  4. 바다소녀 2004/12/19 21:48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바다소년? 누구? 제 애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