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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년 만에 지부장. (6) 2011/07/06

7월부터 건기연 지부장이다.

만신창이가 된 노동조합을 지켜줄 적임자인 거 같지는 않지만,

돌고, 밀리고 이러다가 어쩔수 없이 맡게 된 것이다.

어쩔수 없지는 않더라도 해야 할 일이다.

 

4일 취임식을 했다.

 

노동조합 상황이 외부에 쪽팔리기도 해서

바깥 사람들 초대하지도 않았는데,

진보신당에서 심상정 전의원과 많은 당원들이 와 주셨고,

우리 식구인 공공연구노조 간부들이 많이 와 주셨다.

조합원들도 꽤 많이 와서 분위기는 좋았다.

밖에서 문자로도 축하의 인사를 보내주신

동지들께도 감사를 드린다.

축하 받을 일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지만..ㅎㅎ

 

어디든 연설할 게 있으면 할 말도 별로 없어서

몇마디 안하고 마는데,

그동안 하고픈 말이 좀 있었는지,

아니면 그냥 말로 하면 상소리나 할 거 같아서

원고를 열심히(?) 써서 길게 읽었다.

 

조금씩 상황이 나아지고 있지만,

아직도 별로 변하지 않는 사측 사람들을 보면 한심함이 느껴진다.

누군가 잘못을 저질러서 한번 뒤틀어진 모습을

바로잡는데는 두배 세배의 힘이 들수 있다는 걸 실감하는 요즘이다.

 

조합원 동지 여러분께!

 

지난 3년간 노동조합은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400명이 넘던 조합원이 60여명으로 줄어 들었고, 단체협약은 해지되었고, 노사간 대화는 완전히 단절되었습니다. 이와 함께 단지 노동조합원이라는 이유로 유무형의 탄압을 받았고, 승진과 급여, 연구과제 참여, 인센티브, 평가 등 모든 부분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이런 무자비한 탄압 속에서도 조합원으로 남아 노동조합을 지켜주신 동지 여러분께 먼저 무한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조용주 원장 3년을 지나면서 우리는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습니다. 어쩌면 영원히 치료하지 못할 고질병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저는 하고 있습니다. 옆의 동료를, 선배를 후배를 그리고 본부장을 실장을, 팀장을, 팀원을 어느 누구도 믿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연구도 팀워크이고 협동이 중요한 것이고, 행정이나 지원업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누구도 믿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어떻게 연구를 하는지, 업무를 처리하고 있는지, 또 앞으로는 어떻게 할 것인지 참으로 암담합니다. 노동조합 간부를 만나기만 하면 조용주 원장과 그 하수인들을 비난하던 사람이 어느 날 하루 아침에 보직자가 되어서 노동조합을 탄압하는 사람으로 바뀌는 현실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저는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지난 3년간 건기연에서는 주위의 동료를 서로 감시하고, 이를 거짓으로 보고하고, 이런 것으로 업무능력을 평가 받아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건기연이 기관평가에서 2년 연속 미흡을 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연구나 업무를 제대로 하지 않고, 서로를 헐뜯고 감시하는데 열중하면서 어떻게 제대로 된 실적이 나올 수 있겠으며, 어떻게 평가를 잘 받을 수 있겠습니까? 밥 한끼 사거나 안면 있는 평가위원들에게 전화해서 부탁하는 것으로 평가 결과가 잘 나올 거라면 무엇 때문에 다른 기관들이 연구에 매진하고 있겠습니까?

 

지난 3년간 건기연에는 엄청난 변화가 있었습니다. 원장의 말 한마디가 법이나 규정보다 앞선다는 웃지 못할 논리가 그대로 활개를 치는가 하면, 얼마나 많은 규정이 바뀌고, 원장의 방침이 제정되었는지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직원들의 의견수렴을 통해 합리적인 방안을 찾는 것이 아니라 원장이나 또는 누군가가 필요한 것이 있다거나, 누구를 못살게 만들 거리가 있다면 아무 거리낌 없이 규정을 바꾸고 방침을 만들어 왔습니다. 규정을 바꾸기 위해서 부서장이 직원들 회의를 열고 문 앞에 지키고 서서 직원들에게 서명하라고 강요하는 이런 행태는 기관운영의 문제에 앞서 심각한 인권유린이라고 생각합니다.

되돌아 보면 이런 행위들이 연구원의 발전을 위해서, 또는 직원들의 일할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 한 것은 단언컨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있었다면 노동조합에 좀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직원을 못살게 굴기 위해서, 조직운영의 근간을 이루는 원규와 방침을 마음대로 만들고 바꾸고 해 온 것입니다.

 

저는 지난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건기연의 직원으로서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진 적도 있었습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연구사업을 확대하고 오늘의 건기연으로 만들어 온 헌신적인 직원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건기연이 있었고, 나름대로 어느 공공기관과 비교해 보더라도 나름대로 비리나 부정에는 깨끗한 풍토를 유지하고, 직원들 간에 신뢰와 활기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조용주 원장 3년 동안 이런 자부심은 완전히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운영되는 기관이 공공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지조차 의심스럽기도 했습니다. 동료야 죽든 말든, 부하들이야 죽든 말든 오로지 내 것만 챙기면 된다는 흡혈귀 같은 사람들이 넘쳐 나게 되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성과 양심을 버리고 이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가 3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동안에 건기연은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어려운 때일수록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필요하지만, 건기연에는 이런 사람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만신창이가 된 노동조합만이 메아리 없는 절규를 내보내고 있었습니다. 노동조합은 노동조합일 뿐입니다. 노동조합이 기관을 살리거나 죽일 힘도 권리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엉뚱하게 노동조합에 화살을 돌려 모든 것을 노동조합의 탓으로 돌리는 눈 먼 사람들도 문제이지만, 그들의 거짓과 폭력에 눌려서 그들의 손발이 되어준 건기연의 주인들이 더 문제였다고 생각합니다. 건기연 직원으로서 오래 된 시니어로서의 제대로 된 역할을 앞으로 기대해 보겠습니다.

 

세상이 어렵습니다. 누구나 하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옆의 동료들을 팔아서 몇 푼의 돈을 더 챙기는 건 비열한 행위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내 것을 더 챙기기 보다는 더 열악하고 어려운 환경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직급이 더 낮은 동료들을 챙겨주는 풍토를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노동조합이 깨지면서 몇 년째 임금협상도 못하고 있습니다. 물가는 천정부지로 오르는데 임금은 동결이거나 평가를 잘 못 받아서 깍이고 있으니 누군들 불만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혼자서 동료들을 제치고 내 임금 조금이라도 더 받아가겠다는 지금의 풍토로 계속 가면 함께 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조용주 원장이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났습니다. 그 동안 달라지거나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지금의 원장직무대행을 비롯한 경영진은 조용주 원장 시절의 완장에 대한 향수가 너무도 그리워서인지 다른 무슨 이유가 있어서 인지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 노사간에 몇 사람씩 만나서 이런저런 문제를 협의하고 작성한 회의록을 게시판에서 보셨을 것입니다. ‘노력한다, 추진한다, 강구한다’ -- 이런 것 밖에 없습니다. 단 한 건의 문제도 해결할 의지도 없고, 해결하고 싶은 마음도 없어 보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새로운 원장이 누가 오든 간에 지금의 직무대행이나 경영진과 얼마나 달라질 것이라고 믿을 수 있겠습니까? 아마도 새로운 원장도 조용주 원장의 ‘제왕적 권력’을 쉽게 버리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또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도 전임 원장 시절에 일어난 일이라면서 끝까지 법적인 판단을 받아 보자고 할 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의 직장인 건기연을 남의 일로 여기는 원장직무대행과 경영진이라는 이름을 쓴 사람들에게 내맡겨 둔 채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채 떠내려 가고 있는 꼴입니다. 실패한 사람들이 계속 경영을 하고 있는 마당에 무슨 비젼을 말 할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지부장으로 취임하면서 앞으로 2년 간의 그럴 듯한 사업계획을 내세우고 조합원 여러분께 함께 싸워 나가자는 얘기를 해야 하는데, 만신창이가 된 노동조합으로서는 지금 거창한 사업계획을 낼 수 도 없습니다.

다만, 임금인상은 물론이고, 건기연의 조직을 정상화 시킬수 있는 집단은 노동조합 밖에 없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그동안 뼛 속 깊이 느꼈을 것이기에, 노동조합을 다시 복원하고 정상적인 활동을 할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말씀을 취임약속으로 드리고자 합니다.

이는 동지 여러분들이 함께 조합원 배가운동을 해 주셔야 가능한 일이기에, 여기에 한 마음으로 함께 해 주실 것을 간곡하게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와 함께 앞으로 직원들간의 신뢰를 회복하고, 서로를 믿고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가기 위해 노동조합이 노력하겠습니다. 누구를 탓하기 보다는 서로를 격려하고 새로운 건기연을 만드는데 여러분이 함께 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동안 수백명의 조합원이 조합사무실로 찾아와서 미안한 눈빛으로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탈퇴서를 내 밀고 갈 때 이것들을 한 장 한 장 받으면서 억장이 무너지고, 심장이 막히는 안타까움과 분노와 상처를 입었을 박근철 전 지부장과 박희성 전 사무국장님께 무한한 위로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들이 없었다면 이 작은 노동조합도 남아있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분들게 그리고 끝까지 조합을 지키고 계신 상집위원들께, 대의원들게, 그리고 조합원 여러분께 서로 힘찬 격려와 응원을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1. 7.4.

전국공공노동조합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지부

지부장 곽장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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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06 10:07 2011/07/06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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