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분류 전체보기

2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4/07/09
    민주노동당, 어디로 갈 것인가?
    180˚
  2. 2004/07/09
    노동자들의 학교
    180˚
  3. 2004/07/09
    나를 괴롭히는 문제들
    180˚

민주노동당, 어디로 갈 것인가?

앞의 글에서 당을 "혁명정당"과 철저하게 분리시킨 것은
그 성격을 명확히 하고 난 후에야 비로소 당과 나의 관계를 설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나는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책임감만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너무 오래 해석없이 지내왔던 것이다!)

99년 발기인으로 당에 들어섰을 때
나는 (새로운-이 얼마나 정확한 표현인가?)"사회주의"적 강령에 의지하고 있었고, 그래서 (계급으로서)"노동"이라는 명칭을 선택했다.
2000년 이후 당의 성격을 의심할 만한 일들이 웹상에서 발견되곤 했지만 역시 강령에 의존하여 스스로 위로하곤 하였다.
2002년 선거를 전후한 시기에도 
당의 사회주의적 성격을 주장하는 토론을 벌이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얼마지나지 않아 내 꿈은 산산이 깨지고 말았다.
첫번째 징후는 당선자수련회에서 발견되었다.
그 날 만난 울산 당선자들의 면면은 내게 큰 충격을 주었다.
(결국 그들 중 한 명은 당선되자마자 한나라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사상의 부재, 실천의 부재, 노동조합 지도부의 관료주의화, 출세주의 등등..
게다가 당에 만연하고 있는 종파주의는 정파간의 사상대결과 검증의 기회를 앗아가고 그 자리에 정치적 야합과 권모술수를 밀어넣고 있다.
당은 이미 오래 전에 "사회주의적" 성격을 잃어버린 것이다.



"개량"을 할 수는 있지 않을까?
내 기대는 이렇게 소박해졌다. (그 결정체로서 기능하고 있는 내가 얼마나 고통스럽게 개량을 수행했는지는 <나를 괴롭히는 문제들>을 참고하시길..)
하여간 그렇게 마음을 잡아가고 있던 중 어느날 느닷없이 "당의 사회주의적 성격을 강화한다."는 거다.
성격이라는 것은 선언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역사적 배경과 구성원들의 의지, 실천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다.
폐쇄된 비밀조직에서는 지도부의 의지가 곧 조직의 의지가 되기도 했지만(물론 그마저도 온전한 것은 아니었다.) 개방된 대중조직에서 그것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말이다.
당에 과연 사회주의자가 얼마나 있는가?
사회민주주의자들, 주체주의자들에게 "새로운" 사회주의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면 거의 "없지!!"않은가?


이제 당은 정체를 밝힐 때가 되었다.

당의 사회민주주의적 성격을 강화!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말이다.


늦은 밤의 글쓰기가 혼돈스러운 머리를 조금은 차분하게 빗질해주는 것 같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노동자들의 학교

새로운 세계를 일구어낼 조직으로서
민주노동당은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은 변질을 이야기하지만
태생적 한계가 있었다.
제도권 진입을 목표로 할 때부터 이미 예견된 일이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이 노동자대중의 정치교육의 장은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내 판단은 확실히 빗나갔다.
노동자들이 민주노동당에서 가장 쉽게 접하는 것은
출세주의와 의회주의이고
그 한계를 벗어나기에 민주노동당은 너무 국민적이다.
국민승리21의 연속으로서 민주노동당을 봤어야 했다.
양자를 억지로 분리시키는 것이 아니었다.

&&&&&&&&&&&&&&&&&&&&&&&&&&&&&&&&&&&&&&&&&&&&&

90년대 초반에 내가 노동자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단체에서 일한 건
순전히 내 선택이었다.
물론 내가 선택한 단체는 아니었지만
난 교육의 전문성을 획득할 필요가 있었고
그 속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하지만 단체의 위상은 내 생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변해갔다.
끝까지 싸웠다면 변했을까?
천번 만번 생각해도 천만의 말씀이다.
정보기관의 공격으로 허겁지겁 합법공간으로 뛰쳐나온 무리들에겐
그들의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을 공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내가 아무리 정당한 논리로 대적하더라도 결론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왜 그렇게 간절히 노동자전문교육기관을 원했는가?
바로 일상적 교육의 필요성 때문이다.
강연회나 일회적 교육으로는 아무것도 바꾸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난 교육으로 노동자들의 생활 전반을 바꿀 수 있기를 기대했다.
혁명정당이라는 무기가 아직 노동자들의 것이 아닐 때에는 단체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노동자들이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는 주체로 서기 위해서는 아주 사소한 문제에서도 노동계급의 관점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속에서도 정치적 이슈를 찾아내고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해석할 뿐만아니라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계급의 정당에서는 당 활동 자체가 이런 교육의 과정이 될 것이다.
한국의 노동자들은 민주노동당 안에서 계급적 관점을 체득할 수 있는가? 노동조합에서 얻는 것 보다 높은 수준의 것을, 혹은 더 다양한 경험을 얻을 수 있는가?

몇몇의 지역조직에서는 그런 실천이 가능할 지도 모른다.
몇몇의 부서에서는 그런 실천이 가능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직이란 부분적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그 조직이 역사적으로 부여받은 임무가 무엇인지, 구성원들의 의지가 어떠한지에 따라 규정될 뿐이다.
당에 가입한 노동자들의 의지는 어떠한가?
민주노총 간부들의 의지는 어떠한가?
그들이 당 속에서 정치적으로 단련될 수 있는가?

어떤 이들은 말한다.
조금 밖에 전진할 수 없으니 앞으로 안 나가는 게 낫다고 말하는 건 머리로만 혁명을 그리는 몽상가들의 태도라고..
점진적 변화라고?
예끼 여보슈~
돈이 인간성을 지배하는 자본주의가 점진적으로 변해서 새로운 사회로 나아갈 거라는 거유?
새로운 사회는 안 만들어도 좋으니 지금보다 조금 나은 세상으로 만들자는 말씀이슈?
만약 그런 생각이라면 노동자니 뭐니 그딴 소리는 집어치우슈.
영국의 노동당처럼 노동자들을 이용해 권력을 잡을 생각이 아니라면..
괜히 노동자들 머리 속에 자본가의식이나 집어넣지 말고..
만약 당신이 진심으로 자본에 분노한다면 자나깨나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생각만 해야 된다우.
그게 진짜 노동자의식이라우.
혁명과 개량사이에서 우왕좌왕하는 활동가들이 결국 당의 미래를 말아먹고 말 거라는 사실을 기억하슈.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나를 괴롭히는 문제들

나를 괴롭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나 자신이 개량의 결정체라는 것이다.
내가 의원이 아니었을 때에는
'개량'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사회변혁의 분위기가 무르익지 않은 일상적 시기에
노동자, 민중의 삶을 자본의 미친 회오리 속에 마냥 던져둘 수는 없으므로..
그러나 내가 막상 개량의 시술자가 되고보니
미칠 노릇인 거다.
특히 대중투쟁이(심지어는 소박한 운동조차) 없는 지점(무풍지대)을 개량하는 일은 더욱 그렇다.
2년가까이 관심을 가져달라고 그렇게 매달렸던 "학교급식조례"를 거들떠도 보지않던 이해당사자들이

성명서라도 발표한 건
타협적 개량의 산물로서 조례안이 발의되고 난 뒤였다.
조례 건은 비교적 큰 사건이었지만
내가 의회에서 다루고 있는 (수십 건이 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의 대부분이

이해당사자들의 무관심(혹은 무반응)속에 진행되고 있다.
- 예를 들면 대중교통수단 확충 문제, 도청 내 비정규직 문제, 기금 개혁문제 등등..
단체와 개인들에게 문제제기하는 일만으로도 난 녹초가 되곤 했다.
지금은 그로기 상태..

나도 가끔은 대중투쟁을 지원하는 개량을 하고 싶다.
하지만 그런 일이라 하더라도 고민없이 매달리지는 못한다.
특히 주체적 역량에 의지하기 보다
의원의 영웅적 개량에 기대려는 분위기가 느껴질 때마다 심각한 고민에 빠지곤 한다.
"내가 정말 이 일을 해야 하는 걸까?"하고 말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