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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단 한 명이라도 있으면 공부방 수업은 계속됩니다

철대위 사무실에서 박향에게 전화가 왔다. 아이가 얼마 없으니 오늘은 그냥 쉬는게 좋지 않겠냐는... 순간 박향의 표정이 잠시 생각할 때의 그 깊은 골똘함에 빠져있었다. 그리고 이어서 그래도 갈 거라고 단호히 말한다. 철대위 사무실에서 난타 수업을 듣는 아이는 미래 하나 뿐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하고 어린 미래는 감기기운으로 몸이 안 좋아 어른들을 따라 나설 수도 없었다. 사무실에 가니 컴퓨터 게임을 하는 아이 몇 명이 보인다. 카메라로 찍으니 아이들이 난 찍으면 안된다고 단호히 말한다. 저 아이들이 같이 합류했으면 좋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난타수업보다는 컴퓨터 게임에 더 열중해 있다. 그 아이들은 난타 수업을 거부했다. 왜일까? 다른 선생님들의 학교 과목 공부방 수업에는 들어간다고 하는데 왜 난타수업은 하지 않으려 하는 것일까? 해 보면 정말 재밌는데... 지식에 대한 추구 때문에? 몇 몇 어른들도 학교 수업 가르치는 공부방만 선호하신다던데 아직도 이 시대에 예술은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다. 사실 길게 보면 학문의 추구가 예술과 거리가 멀지 않은데...


미래 혼자 난타수업을 할 뻔 했는데 금방 초등학생 다은이가 왔고 엄마 따라온 준하도 함께 난타 수업을 시작했다. 선생님이 가르쳐 주시는 데로 숫자리듬을 배우고 올챙이송을 숫자리듬에 맞춰 따라했다. 다은이는 뭐든지 빨리 배우고 흡수한다. 뭐든 한 번 가르쳐 주면 척척 잘 한다. 다은이를 보면 얘는 커서 뭐든 저 하고 싶은 일은 다 잘 해낼 것 같아 흐뭇하다. 미래는 보기보다 수줍음이 많고 잘 따라하는 다은이언니 옆에서 약간 기가 죽었는지 열심히 따라하지만 곧잘 생각이 다른 곳으로 살짝 빠지는 것 같다. 어린 준하도 열심히 하려고 하지만 조금 지나니 제 멋대로 춤을 추듯이 두들기고 다닌다. 그래도 선생님의 리듬에 맞춰 따라한 올챙이송은 훌륭하게 마무리 되었다.


난타수업을 마치고 선생님과 아이들은 종이를 오려 공부방을 예쁘게 꾸미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만드는 것을 참 좋아한다. 방금 전에 약간 기가 죽어 보이던 미래도 만들기에 푹 빠져서 작품들을 만들어 내고 준하는 언니들 따라 다니며 창문에 예쁜 꽃을 붙인다. 박향미 선생님도 만들기를 좋아한다고 하시면서 자신의 어린 시절 동생들과 놀던 기억을 떠올리며 몇가지 추억을 들려 주신다. 그러다가 내게 질문을 던진다.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지 생각해 보신 적 있으세요?” 나는 “네” 라는 답만 하고 머뭇거렸다. 선생님은 이내 창문에 붙여놓은 푸른 산 사이에 집을 붙이면서 “나는 동생들이랑 준하랑 이런 집에서 살고 싶어요.”라고 한다. 준하 이모는 건강이 그다지 좋지 않다.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맑은 공기다. “사실 산에서 살면 쌀만 있으면 먹는 건 대강 해결할 수 있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WTO 쌀 개방이 생각났다. 그래. 그 나라에서 난 신토불이 음식을 먹고 사는 것이 밖에서 농약 팍팍 쳐서 들여온 음식보다 좋은 건 비교할 것도 아니다. 누구나 아는 것인데 우리에게 농약 팍팍 쳐서 들여온 외국 음식을 먹으라고 강요하는 사회는 분명 문제가 많은 사회다. 더군다나 요즘 아이들이 공해로 인해 선천적으로 면역력이 약해져서 태어나고 많은 아이들이 아토피로 고생하고 있는데 먹는 것 갖고 장난치는 것들은 정말 없어져야 한다. 외국의 주류 음식 산업들의 공략은 간단하다. 처음엔 원조형식으로 나중엔 저가의 음식으로 밀가루며 햄버거 콜라 피자 같은 음식을 맛 보인 후 아이들 입맛이 거기에 맞춰지면 그 후엔 고가의 식품회사들이 공략할 수 있는 터전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박향미 선생님의 공부방 수업이 끝난 후 최금례 선생님이 와서 만들기 수업을 했다. 그 사이 잠깐 철대위 어르신들이 준비해 주신 저녁식사를 하면서 노래패 왕언니의 아버님을 뵈었다. 많은 분들이 그 부녀가 노래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하신다고들 하기에 은근슬쩍 말을 붙여본다. 사실 질문은 박향이 하고 나는 찍기만 했다. 노래패에 합류하시지 않으시겠냐는 박향의 제안에 왕언니 아버님은 선뜻 찬성표를 던지신다. “내가 다른 건 몰라도 노래 하나는 자신있네” 하시면서... 정말 기대가 되는 노래패다.


최금례 선생님은 양말로 귀여운 뱀을 만들고 다은이는 귀여운 생쥐를 만든다. 미래는 철대위 아저씨의 도움을 받으며 긴 머릿결을 지닌 여자인형을 만든다. 최금례 선생님이 툭툭 던지는 말이 정말 재미있다. 나 같으면 애들이 뭘 해도 무조건 잘한다고 할 것 같은데 선생님의 조언은 아이들의 생각을 끌어내는 말씀들이다. 만들기 수업이 끝나갈 무렵 철대위 어른 몇 분이 내려와서 선생님한테 ‘쇠’ 치는 법을 배운다. ‘땅도 땅도 내 땅이다. 조선땅도 내 땅이다.’ 풍물을 칠 때 박자 맞추는 말이다. 쇠를 치면서 어른들이 진지해 진다. 만들기를 마친 다은이가 어느새 어른들 사이에 끼어들어 쇠를 만진다. 그리고 어른들께 핀잔을 듣는다. 어른들 하는데 아이가 버릇없이 끼어들었다는 것이다. 다은이는 어떤 행동을 할 때 주저함이 별로 없다. 그래서 별로 공손해 보이지 않는가 보다. 내 스타일이긴 하지만... 좀금 뾰로통해진 다은이가 난타수업 때 사용한 스틱을 가지고 혼자 난타 북을 두들긴다. 정말 놀라운 것이 아까 박향미 선생님이 가르쳐준 것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다. 그런 다은이를 보며 또 다시 놀라워하고 오늘 수업 끝.

 

- 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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