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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UT-39]향촌 사람들

 

철거대책위원회 건물안에서

말없이 불편을 감수하며 여러 가족이 함께 생활해야하는 향촌 주민들도 힘들고

그들을 촬영하고 편집해서 공개하려고 작업중인 우리도 힘들다

힘든 여름이다

 

 



재원이는 지금 [우리의 노래를 들어라]의 촬영감독이지만

내가 제작비를 벌기 위한 아르바이트라든가 '불타는...'처럼 다른 작업을 병행하는 동안

혼자 촬영내용을 결정하거나 촬영일정을 잡아야 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향촌 주민들에게 애착을 가진 재원이 찍은 테잎이 점점 늘어났고

지난 3월 이후 '향촌 사람들'이라는 짧은 동영상을 두 편 같이 만들어보기도 했지만

민중언론 참세상에 동영상을 올리는 것만으로는 파급력이 부족했다

 

이제 어떻게 하나

경인일보와 다음 미디어에서 기사가 나가긴 했지만 향촌 철거에 대한 소식은 극히 제한적이고

이 나라에선 어찌나 대형사고들이 많은지 다른 사건들에 밀려 향촌은 취재대상에서 늘 제외된다

인천에도 영상패가 있고 영상활동가들이 있을텐데 아직 별다른 움직임이 없고

주민들은 3탄을 기다리면서 만날 때 마다 언제 나오냐고 궁금해하는 상황에서

매달, 혹은 정기적으로 동영상을 만들 여건이 되지 않는 우리로서는 대안이 필요했다

[우리...]를 제작하는 것 만으로도 힘에 부치는 나로선

같은 내용을 다루는 두 가지 영상을 동시에 편집한다는 게 불가능했다

 

이왕에 [우리...]와 따로 한 편 만들거면 방송을 통해서 알려야겠다

'KBS 열린채널'도 있고 '시민방송 R-TV'도 있으니까

방영료를 받으면 투쟁기금도 전달할 수 있고

[우리의 노래를 들어라] 제작비도 마련할 수 있고...(과연?)

그래서 나는 향촌 상황을 가장 잘 아는, 누구보다 자주 찾아왔던 재원에게

직접 편집을 해서 영상물을 하나 만들어볼 것을 권했고

지금 그 작업이 마무리되어간다

 

그런데

6월 중순부터 한 달 이상 편집과정을 지켜보면서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누가 보더라도 이 영상을 통해서 향촌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프롤로그에서 에필로그로 이어지는 각 장면들이 자연스럽지가 않았다

 

나는 제작경험이 많은 대신 향촌 상황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고

구체적인 정보를 가진 재원은 제작경험이 부족하다

각자의 문제를 극복하면서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일단 내기로 했으니까 정해진 날짜에 내야하는데

과연 방영이 될 지 자신이 없다

 

그리고 '자연스러운 구성'이나 방영가능성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새록새록 다가왔는데

우리가 과연 '열린 채널'에 참여해도 될까, 하는 것

 

다른 감독들이 '열린 채널'에 영상물을 낼 때 대본 작업을 하긴 했지만

사실 나는 아직 내가 만든 영상을 그 프로그램에 제출하지 않았다

낼 줄 몰라서가 아니라 그러면 곤란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열린 채널'은

시청자로 제한되던 시민들이

직접 영상을 제작해서 방영할 권리도 있다는 것을

여러 시민단체와 독립영화감독들과 영상활동가들이 함께 오랫동안 힘을 모아서

방송사를 대상으로 설득도 하고 집회를 통해 싸우기도 하면서

힘들게 마련한 프로그램이다

 

방송일에 참여하기 어려웠던 사람들

그동안 방송 프로그램에서 외면했거나 미처 관심갖지 못했던 내용에 대해

보다 다양한 의견을, 보다 많은 시민들이 제작하고 방영기회를 가지길 바랬다

방송일을 몇 년동안 했던 나같은 사람은 나서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한 달 동안 '돌 속에 갇힌 말' 방영취소 문제로

'독립영화관' 제작진에게 사과를 촉구하는 연대서명을 조직했던 나로선

KBS에 일거리를 들고 간다는 것이 불편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일단, 가는 데까지 가보기로 한다

우리가 잃는 것이 무엇이건, 얻는 것이 무엇이건

시작했으니 책임을 져야 한다

지금, 그 곳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 옳다

누가 대신할 수도 없다

그러니 괜한 고민을 사서 하지 말자

 

마무리를 확실하게, 지금은 그것만 생각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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