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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옥 "나를 마귀로 보는 기독교인...이번에 다를 것"

 

 

 

김용옥 "나를 마귀로 보는 기독교인...이번에 다를 것"
기자회견서 "정통 신앙인" 고백…"기독교의 심오함 알려주겠다"
텍스트만보기   주재일(bomgil) 기자   
 
 
 
▲ 요한복음 강해를 앞두고 1월 31일 기자들과 만난 김용옥 교수는 성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쉽게 풀어주었다.
ⓒ 신철민
 
요한복음 강해를 앞두고 1월 31일 기자들과 만난 김용옥 교수(세명대 석좌)는 성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쉽게 풀어주었다. 19세기 이후 기독교를 주체적이면서 전폭적으로 수용한 우리나라의 처지에서 기독교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 시대를 바로 보지 못하는 일이라며, 죽어서 천당 가려고 믿는 천박한 기독교가 아닌 심오한 진리를 담고 있는 기독교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리고 자신의 강해 작업은 기독교인은 물론 비기독교인들도 기독교를 바르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자부했다.

특히 김 교수는 기독교를 거침없이 비판했던 것을 이번 강연에서는 자제하고 차분하게 설득하며 기독교인들과 함께 나아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는 예수를 믿고, 보수 기독교인이 신앙하는 인격유일신을 받아들이는 입장이다. 소통을 위해 위장한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정통에 가까운 신앙인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가 말하는 '예수와 유일인격신에 대한 믿음'은 보수 기독교인의 이해와는 분명 차이를 보인다. 기자설명회의 짧은 시간에 이러한 차이를 모두 설명하지 못했다. 그의 강연과 책을 읽으며 차근차근 확인하는 것도 유익할 것이다.

   오늘의 브리핑
 
"독점 폐해 무시하는,
정부가 더 큰 문제"
'비MS' 운동 김기창 교수
 
 
"손학규, 여권 대선후보될 자격 있다"
피켓 들고 거리 나선 여성 아나운서
'왕따' 루아얄, 이대로 주저앉나
노회찬 "민주노총 할당제 없애야"
집나간 '시대정신' 김영환, 돌아오라
"임대주택으로 2마리 토끼 못 잡는다"
'판사 명단 공개' 논쟁은 무지의 소치
'인혁당 질문' 가로막는 박근혜 캠프
'IMF 괴물', 자살 3번 결심케한 요물
 
다음은 김용옥 교수가 기자들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어떤 사람들을 대상으로 강의하는 건가.
"최근 고등학생들을 상대로 논술과 철학을 강의한 적 있다. 이번에는 대학생들이 많이 들어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주로 기독교 교회에 출석하는 지성인이 내 강의를 들을 것이다. 그렇지만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들도 관심이 많다."

-고전을 강의하면서 우리 시대의 이슈에 대한 발언을 쏟아내 화제를 모았다. 이번 강의에서도 우리 시대의 문제를 다룰 생각인가.
"우리 민족의 역사를 반추해보자. 이렇게 종교를 전폭적으로 받아들이는 민족이 세계 어디에 있는가.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불교를, 조선시대는 유교를, 19세기 말부터는 기독교를 전폭적으로 수용했다. 우리 민족의 특수성으로 봐야 한다. 기독교를 어떻게 이해하느냐가 중요하다. 기독교는 외국 선교사가 던져준 종교가 아니다. 우리 민족이 주체적으로 수용했다. 이제 남북통일의 문제와 함께 종교 화합의 문제를 포괄적으로 논의할 시점에 왔다. 인구까지 줄어드는 마당에 기독교가 팽창할 시기는 지났다. 기독교 입장에서도 새로운 틀을 정립할 때가 되었다. 내 강의가 한국 기독교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는 이미 대선 정국에 들어섰기에 교수님의 발언에 더욱 민감할 것 같다.
"좋은 대통령이 뽑히면 좋겠다. 노무현 대통령에 관해서는 최근 4개월 간 정보를 모은 게 없어서 잘 모른다. 노 대통령이 인기가 없다고 해서 우리 시대를 잘못 이끈 대통령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단지 인기가 없을 뿐이지 큰 죄를 지은 사람은 아니다. 우리는 5년 동안 긍정적인 성과를 잘 살펴 이어가야 한다. 대통령의 권위가 많이 떨어졌다는 것은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었다. 노무현 정권 5년을 너무 각박하게 평가하지 말자. 우리 사회는 진보했고 민주 세상을 향해 가는 길이다. 크게 불행한 시기는 아니었다. 우리 시대를 폄하하지 말자."

 
▲ 김용옥 교수는 "기독교가 생명력을 가지려면 정치적 입장과 거리를 두고, 신앙 공동체의 본래적인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했다.
ⓒ 신철민
 
-기독교의 사회책임이나 한기총 등 기독교인들의 정치 활동 어떻게 보는가.
"기독교를 수용한 배경에는 억압 받았던 우리 민족의 고통과 이스라엘이 겪은 고통의 역사라는 공통분모가 있다. 그래서 기독교가 감동을 주었다. 처절한 우리 민족에게 기독교는 굉장한 힘을 주었다. 한국기독교장로회, KSCF,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같은 기독교 단체가 한국의 민주화를 주도했다. 지금 이런 물줄기가 다 사그라지고 보수화되는 시대로 갔다. 보수화되는 게 상당히 염려스럽다.

종교는 보수와 진보를 뛰어넘을 수 있는 좋은 점들이 많다. 기독교는 정치적인 문제에 있어서 어느 한편에 서면 곤란하다. 정치와 종교가 결부되면 급속히 망하는 첩경이다. 로마와 결탁한 교회 권력도 망했는데, 지금 우리나라라고…. 종교와 정치의 결탁은 교회 자멸하는 길이다. 기독교가 생명력을 가지려면 정치적 입장과 거리를 두고, 신앙 공동체의 본래적인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종교는 문명통합적이어야 한다. 어떤 종교든지 민족을 분열해서는 안 된다."

-강의는 어떻게 진행되는가.
"요한복음은 21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에 1장이 가장 난해하다. 1장을 지나면 그다음부터는 쉽다. 1장에서 만들어진 인식론적 틀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10강을 녹화했는데 1장에서도 10절까지 나갔다. 요한복음 전체를 하려면 최소한 100강 규모는 되어야 한다.

강의 초반에는 철학적인 설명이 많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20강 이후에는 영어 강독 형식으로 진행된다. 철학적인 설명을 충분히 해야 하는 이유는, 헬라 철학을 특히 로고스 사상이라는 배경을 설명하지 않으면 요한복음 해설이 안되기 때문이다. 요한복음은 희랍 세계, 특히 희랍의 지식인들을 향해 쓴 책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신학계는 요한복음을 구약과의 관계에서만 해설하려는 경향이 짙지만, 요한복음은 희랍과의 관계에서 이해하는 게 좋다.

강의 형식은 고전 강독이다. 구닥다리 영어가 아니라 현대적 영어를 구사할 것이다. 한 단어에 담긴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해설도 내 평생 배운 것을 녹여서 충분히 할 생각이다."

-인터넷에 댓글이 올라오면 반응할 생각인가.
"지식의 전수는 쌍방향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일일이 대응할 생각 없다. 내 일 하기도 바쁜데, 창조적인 일을 해야지. 그런 것은 취사선택하는 게 민주 사회의 정도다. 사람들이 민주를 자기들의 요구만 들어달라는 식으로 오해한다. 지식의 세계는 그런 게 아니다. 나는 내 지식을 제시하는 것이다. 강요가 아니다. 나는 독자들하고 채팅하는 그런 지저분한 짓을 절대 안 한다. 평생 그렇게 생각해 왔다. 집에 컴퓨터도 없고, 자판을 두드려본 적도 없다. 난 컴맹이다. 너무 불편해서 배워볼까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정말 인터넷 문명이 대단하다. 내가 30년 동안 모아야 할 책을 며칠 만에 샀다. 아마존은 남의 서재에 꽂힌 책도 가져다주더라."

-과거 논어 강의를 끝마치면서 다시 대중 강의는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런 일은 하사관이 해야지 장교가 할 일은 아니라고 표현했는데.
"그렇게 말했다. 텔레비전에서 대중 강좌를 하다보면 불필요하게 신경 쓰이는 일이 많았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새로운 시도다. 공짜로 강의가 뜨는 게 아니라 돈을 내고 홈페이지에 들아와야 내 강의를 볼 수 있다. 그 정도 열심을 내 들을 정도면 소위 이상은 된다고 생각한다. 내 신념에 어긋나는 일은 아니라 생각했다. 또 관객 없이 카메라 앞에서 강의하니 청중에게 쏟던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었다. 그 에너지를 강의에 집중하니 한 번에 다섯 강좌를 연속으로 녹화해도 끄떡없고 재미있더라. 과거 텔레비전 강의는 지나가면 끝이었지만, 이제는 내 작품으로 남으니까 나도 보람을 느낀다.

나는 인류의 3대 지혜서로 노자의 도덕경, 인도 문명의 금강경, 중동의 요한복음을 꼽으면서 이 문헌들을 강의하고 싶다고 밝힌 적 있다. 당시는 막연했지만 그 계획대로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우수한 신학자들이 얼마나 많은데...요한복음을 강해하는 것은 떨리는 일이다. 그래서 안 하려고 애쓰기도 했다. 그렇지만 불트만이나 다드의 주석 못지않은 작품을 내놓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내 강의와 책이 결코 경박한 작품은 아니다."

 
▲ 김용옥 교수는 "우수한 신학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요한복음을 강해하는 것은 떨리는 일이다. 그렇지만 불트만이나 다드의 주석 못지않은 작품을 내놓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내 강의와 책이 결코 경박한 작품은 아니다."
ⓒ 신철민
-과거 교수님은 불트만 신학을 토대로 성서를 해석했다. 현대 신학은 불트만 이후 엄청나게 발전했는데,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지.
"한국 기독교는 불트만을 이해한 적 없다. 불트만의 책을 제대로 번역하지도 못했다. 허혁 선생이 불트만을 깊게 연구했는데 기독교 내부에서 배척받다가 외롭게 돌아가셨다. 불트만은 한국에 비신화화 신학자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는 지독한 정통신학자다. 신앙 형태도 지극히 보수적이다. 불트만은 성서의 신화적 표현 때문에 기독교가 진리를 잃어버린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성서에 나오는 신화는 신화로 해석해야 전통적 신앙을 이해하고 보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불트만을 넘어선다. 불트만 이후에 나온 각종 고대 문헌들을 섭렵했고, 불트만 이후의 현대 신학에 대해서도 자료를 모았다. 그리고 불트만이 요한복음을 영지주의적 문서로 이해하지만 난 그렇게 보지 않는다. 오히려 내 접근은 정통신학에 가깝다. 철저하게 성서가 말하려는 본래 의도, 예수의 말씀 자체로 돌아가야 한다는 입장에서 강해한다. 정통신학에 가까울수록 더 자유로워야 한다."

-교수님은 기독교의 내세적인 특성을 강하게 비판한다. 그렇지만 초월은 종교의 중요한 특징이다.
"묵시록과 종말론은 다르다. 묵시록은 미래의 한 시점에 어떤 특별한 계시가 있다는 기대다. 종말론은 시간의 끝이라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종말론적 긴박성은 오늘 여기 나의 문제다. 지금 여기라는 실존적 상황을 벗어나서 말하는 종말론은 없다. 요한복음은 이러한 종말론이 강렬하게 드러난다. 예수는 너희는 나를 믿지 않기에 이미 심판을 받았다고 말한다. 최후의 심판은 미래의 일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다. 요한복음은 초월적 측면과 묵시론적 측면을 깊이 있게 종합하려고 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나 복음서 기자들이 하나님이 누구라는 걸 말한 적 없다는 점이다. 하나님은 규정할 수 없는 세계다. 하나님은 인간의 언어를 초월한 분이고, 인간은 하나님을 묘사할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경건은 인간의 문제로 귀결된다. 절대 규정할 수 없는 분, 그렇지만 우리에게 말씀을 보내시는 존재가 하나님이다. 기독교 사상도 깊이 들어가면 동양 사상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나는 인격신이라는 입장을 벗어나지 않는다. 유일인격신이라는 정체를 깔아뭉개면 기독교에서 이단으로 찍힌다. 나는 유일신 사상에 기독교의 강력함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유일신에 대한 해석을 잘해야 한다."

-기독교인을 배려하는 측면이 많다.
"내가 그토록 비판했는데 안 되니까. 이젠 북돋아서 함께 가자는 입장이다. 나도 늙었다. 죽기 전에 반론이 아니라 정론을 내놓고 싶다. 내 인생의 모드가 그렇게 바뀌고 있다. EBS에서 나에게 좋은 기회를 주었다. 감사한다."

-이번 강연이 기독교계에 파문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파문이 일면 좋겠다.(웃음) 그렇지만 나는 성서 입장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나를 마귀로 보는 기독교인들이 있었지만, 이번 강의를 두고 그렇게 보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같은 집단이 무조건 까지 말고 협조해서 기독교를 잘 알려야 할텐데…."

-한때 기독교인이었고 신학도 전공했는데.
"나는 장로교 집안에서 자랐다. 예장 목회자들 가운데 훌륭한 분치고 우리 집 안 거쳐간 분들이 없었다. 그렇게 우리 부모님은 목사님들을 대접했다. 우리 집 가까이에 씨알농장이 있어 함석헌 선생의 설교도 많이 들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자랐고 한 때 목사가 되겠다고 신학대학에 들어갔다. 그렇지만 1년 후 신학대학을 떠나 철학을 공부했다."

-그럼 신앙을 버린 것인가.
"신앙을 버렸다고 하기는 어렵다."

-지금은 기독교인이 아니지 않는가.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그럼 누가 기독교인가. 교회를 다닌다고 다 기독교인인가. 아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 기독교인이다. (예수를 믿는가)그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면, 나는 예수를 믿는다. 내 안에 예수에 대한 심상이 있다."

 
▲ 김용옥 교수는 "다락방 같은 교회에서 성령 충만한 신앙 공동체가 나온다. 그런데 한국에는 살아 있는 신앙 공동체를 보기 어렵다.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 신철민
 
-예수의 심상이 어떤 건가.
"짧게 말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예를 들면, 성경에 오병이어 사건이 나온다. 예수 주변으로 5000명이 모인 것이다. 그것도 배고픈 사람들이다. 예수는 진지하게 사태를 파악한다. 우리에게 뭐가 있는지.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를 도시락으로 싸온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는 그것을 들고 축수(두 손을 모아 빎)한 다음 나누어 먹었다. 뭐 음식이 계속 불어났다는 둥,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둥 하는 말이 없다. 그저 나눠 먹었다. 내가 생각하는 예수는 그렇다."

-신학대를 떠난 뒤 신앙의 진보가 있었나.
"지금도 방황하고 있다. 도마복음서에 보면, 방황하는 자가 되라는 예수님 말씀이 있다. 성경에는 내가 평화를 주러온 것이 아니라 분란을 주러 왔다고도 말한다. 세속적인 인간관계를 떠나야 한다는 말이다. 방황하라는 것은 세속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다. 모세도 40년 동안 방황하다가 부름을 받았다. 그가 민족을 이끌 수 있었던 힘은 방황에서 왔다. 예수는 광야에서 유혹을 받았고, 사도 바울도 아라비아 사막에서 방황하는 시절을 거쳤다. 부자가 천국에 못 들어가는 것은 자기 부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나는 40년의 세월 동안 신앙적으로 크게 자랐다고 자부한다. 나의 체험이 한국 기독교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한국교회가 퇴보했다고 아쉬워했다. 무엇을 두고 한 말인가.
"대한성서공회가 발행한 성서에 명백한 오자가 엄청나게 많다. 내가 다 써놓았다. 성경의 축자무오류설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타임즈에서 1년에 몇 번 없는 오자가 나도 엄청난 일로 처리하는데, 수천만 명이 보고 엄청나게 많이 판매한 성경에 그렇게 많은 오자가 있다는 게 말이 되는가. 한문학자로서 보기에 관주성경에 나오는 한문이 틀린 게 많다. 말하면 지적해줄 수 있다. 여기에 대해 할 이야기가 많다.

한국교회는 해외 선교할 사람 말고 기독교 명전들을 번역할 인물을 키워야 한다. 그런 작업은 출판 논리로는 불가능하다. 교회들이 재정을 지원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기라성 같은 인물들의 책을 번역 안 하고 건물만 지으려 한다. 건물은 절대적으로 비게 되어 있다. 그렇게 크게 지어서 100년을 버틸 수 있겠나. 유럽 교회를 봐라. 21세기 기독교는 내실을 기해야 한다. 지금 규모로도 충분하다. 배타만 하지 말고 여유롭게 포섭하면서 어른 노릇해라. 기독교가 가장 강력한 종교 아닌가. 다락방 같은 교회에서 성령 충만한 신앙 공동체가 나온다. 그런데 한국에는 살아 있는 신앙 공동체를 보기 어렵다. 반성해야 한다."

-그럼 한국교회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보는가.
"한국교회는 억압받던 일제강점기에 감동의 여파로 만들어진 조직력에 의존해 여태 기생하고 있다. 이런 수준을 벗어나야 한다. 조직력에 의존해 교회를 유지하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러려면 설교가 감동적이어야 한다. 목사가 공부해야 한다. 자신이 배운 것을 끊임없이 새롭게 하지 않고는 절대 남에게 감동을 줄 수 없다. 많은 목사들이 성경 몇몇 구절을 암기해서 일상에 버무려 구라를 친다. 학문적으로 깊게 들어가야 한다. 그러면 여기저기서 위대한 기독교가 솟아날 것이다. 요한복음 주제는 생명, 빛, 진리, 자유, 영생이다. 한국교회에 끊임없는 성령의 감화와 은혜가 솟아나야 한다."

 
▲ 김용옥 교수는 "한국교회는 해외선교할 사람 말고 기독교 명전들을 번역할 인물을 키워야 한다. 그런데 건물만 지으려고 한다"며 질책했다.
ⓒ 신철민
 
-한국 기독교의 뿌리 가운데 명동촌에서 형성된 전통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강원룡 목사님을 생전에 만나지 못한 게 아쉽다. 그를 만나 명동에 관한 인터뷰를 하고 싶었다. 내가 너무 늦게 명동에 대한 이야기를 알았다.(문익환 목사의 사모인 박용길 장로님이 살아계신다) 그런가. 꼭 한번 만나러 가고 싶다."

-여전히 기독교계는 곱지 않은 시선으로 교수님을 평가한다.
"나의 강의는 신도들에게 엄청 감화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기독교를 깽판 놓으려는 사람이 아니다. 기독교가 새로워지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다른 종교에서는 나에게 집회를 맡기는데, 왜 기독교만 마귀 취급하는가. 기독교를 통해서 위대한 물줄기를 만들어야 한다. 이제는 기독교가 제대로 끌고 가야 한다."

-현대 신학에 대한 평가를 한다면.
"자유주의신학의 오류는 아기 목욕물을 버리라고 했는데 아이까지 버린 일이다. 나는 그들에 비해 훨씬 보수적이다. 기독교를 강력하게 비판하지만, 기독교의 장점을 평범하게 만들어선 안된다는 생각한다. 기독교의 장점을 살리면서도 다른 종교와 깊게 대화할 수 있는 우리 나름의 신학을 만들어야 한다. 정치적 상황에 천착한 해방신학과 민중신학은 보수 종단의 반감을 샀고, 오히려 보수 쪽을 도와주는 꼴이었다. 해방신학과 민중신학은 소중한 노력이지만, 이론적 기초가 없었다. 한국 신학의 과제는 우리가 해야 할 것을 어떻게 한국에서 새로운 신학을 세우느냐 하는 것이다."

-후속 작업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강연이 끝나면 대형 교회를 돌아가며 방문해보고 싶다. 한국교회가 어느 수준인지 직접 확인해보고 싶다."

-다양한 층의 기독교인을 만나는 건 어떤가.
"좋다. 청년들과도 만날 수 있는 자리가 있다면 불러 달라."

-교수님의 강의와 관련된 후속 논의가 진행되면 참여할 의사가 있는가.
"언제든지 좋다. 격조만 지켜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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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기독교 대안 언론 <뉴스앤조이>(www.newsnjoy.co.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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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숙 새 책 나오자마자 '십자포화'

 

 

 

조기숙 새 책 나오자마자 '십자포화'
<조선>-심재철 맹비난... 조 교수 "책이나 읽고 비난하라"
텍스트만보기   손병관(patrick21) 기자   
 
 
▲ 심재철 한나라당 홍보위원장은 2일 오전 당직자회의에서 최근 책을 출판한 조기숙 전 청와대 홍보수석에 대해 "여당이 싫다는 여론은 무시하는 게 최고라는데, 참으로 오만하기 그지없다. 이거야말로 건방죄를 물어야 한다"고 비난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참여정부의 청와대 홍보수석를 지낸 조기숙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의 저서 <마법에 걸린 나라>(cafe.naver.com/chomagic)가 출간되자마자 <조선일보>와 한나라당의 공격을 받았다.

<조선>은 2일자 4면에 '여당 싫다는 여론은 무시하는 게 최고'라는 제목으로 조 교수의 책 내용을 소개하는 기사를 실었다. 보수성향의 인터넷신문 <데일리안>도 <조선> 기사와 거의 동일한 내용으로 책 내용을 보도했다.

한나라당 홍보기획위원장을 맡고있는 심재철 의원은 이날 오전 주요당직자 회의에서 이에 대해 "여당이 싫다는 여론은 무시하는 게 최고라는데, 참으로 오만하기 그지없다. 이거야말로 건방죄를 물어야 한다"고 비난했다.

또한 심 의원은 <조선> 보도를 근거로 이렇게 말했다.

"(조 교수의 책) 내용이 오늘 보도됐는데, 전형적인 노빠(노무현 대통령의 열성적인 지지자를 비하하는 말 - 기자 주) 류의 사고방식을 잘 보여주는 것 같다. 노 대통령이 저지른 것이라고는 '국민정서법 위반죄'라고 했는데, 이것이야말로 '국민정서 오판죄'다. 또 '노 대통령이 여론에 편승하지 않았다'며 이것을 '여론편승 거부죄'라고 한다. 이거야말로 민심순응 거부죄라고 얘기했다. '노빠' 류의 지독한 아집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심 의원은 "조 교수가 또 '학자가 정부에 협력하는 것은 국민에게 봉사하는 것'이라며 희한한 어용론을 펼쳐서 어안이 벙벙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심 의원의 말이 끝나자 장윤석 인권위원장은 "법률가도 모르는 죄들이 이렇게 많은지 몰랐다"고 뼈있는 농담을 던졌다.

그러나 <조선> 보도와 심 의원의 주장처럼 조 교수의 책은 '노빠'의 아집만을 보여준 것일까? 조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조선>을 필두로 한 수구언론과의 담론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진보진영이 민심을 얻기가 쉽지 않은 현실을 짚어냈다.

조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조선>의 왜곡된 기사와 곧바로 이어진 심 의원의 발언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조동문 프레임'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반론을 폈다.

실제로 <조선> 기사와 조 교수의 책을 대조해보면 어감에서 차이가 나는 대목들이 적지 않다.

<조선> 기사는 "그는 '열린우리당이 오만하고 편가르기를 해서 싫다는 여론조사는 무시하는 것이 최고'라며 더욱 오만해질 것을 주문했다"고 했고, 이는 "여당 싫다는 여론은 무시하는게 최고"라는 제목으로 채택됐다.

책의 원문은 이렇게 되어있다.

 
 
"한 언론사의 여론조사에서 열린우리당이 왜 싫냐고 했더니 오만하고 편가르기 하기 때문이란다. 이런 여론조사는 무시하는 것이 최고다. 리프만의 명언을 인용할 필요도 없이 미디어가 만든 이미지가 사람들의 행동과 말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매일 이런 조사 결과를 진실처럼 읊조리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도 참 괴로운 일이다."

조 교수는 "특정 언론사 여론조사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인데, 의도성 있는 여론조사를 여론으로 비틀어 소개한 것은 심각한 왜곡"이라고 지적했다.

<조선>에 "학자가 정부에 협력하는 것은 국민에게 봉사하는 것"이라고 인용된 대목도 원문은 이렇게 되어있다.

"과거 독재정권에 협력했던 학자들에게 어용의 낙인이 찍히듯, 앞으로는 수준 낮은 언론에 협력한 부끄러운 학자로 기록되는 것은 아닐까. 국민들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정부에 협력하는 것은 오히려 국민에 대한 봉사이며 중립적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의 정책은 정권이 바뀌어도 다음 정권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정치언론을 위해 봉사하는 교수들은 특정 정파를 위해, 혹은 특정 자본가를 위해 일했다고 기록될 수도 있다."

국민들의 선택으로 집권한 정부에 학자들이 협력하는 것은 독재시대 어용 학자들의 그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게 조 교수의 설명이다. 학자가 정부에 협력하는 것을 무조건 어용으로 몰아붙인다면 한나라당이 향후 집권을 하더라도 한나라당 정권에 참여하는 모든 학자들이 어용 시비에 휘말릴 것이라는 논리로 이어진다.

조 교수는 "대통령의 가장 큰 잘못은 헌법보다 무섭다는 국민정서법 위반죄, 여론편승거부에 따른 괘씸죄라고 할 수 있다"고 한 대목에 대해서도 "대통령이 국민들의 정서적인 부분을 무시하고 이성과 논리와 합리로만 정치를 한 것이 꼭 올바르지 않다고 얘기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답했다.

조 교수는 "심재철 의원이야말로 책을 읽어보지도 않고 <조선> 기사만 보고 신문사의 지시대로 로봇처럼 움직인 것 아니냐"고 직격탄을 날렸다.

조 교수는 8일 영풍문고(저녁 7시)에서 '저자와의 대화' 시간을 갖는다. 조 교수는 "<조선> 기사만 읽고 책에 거부감을 느낀 분들과 이 자리에서 토론을 하고싶다. 책을 집필하는 데 도움을 주신 '개혁 네티즌들'에게는 책을 무료로 드리겠다"고 덧붙였다.
 
 
2007-02-02 11:42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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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사회주의자 25] '미래소년 코난'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문화] 닉슨과 FBI가 입국을 막은 '불온한 좌파' [새창] 장석원 객원기자 2006-12-09
·[국제] 선(禪)-맑스주의자를 꿈꾼 20세기의 아이콘 [새창] 윤재설 기자 2006-07-03

 | 세계의 사회주의자
       
 
자신의 꿈을 두려워하지 않는 애니메이터
[세계의 사회주의자 25] '미래소년 코난'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만화 영화는 재미로 본다. 이런 재미도 있고 저런 재미도 있지만, 미국 디즈니의 장편 애니메이션이 주는 재미는 경쾌함과 발랄함, 그리고 무엇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누릴 수 있는 재미이다. 물론,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에도 나름의 ‘교훈’이 있지만 미국의 상업 영화들이 대체로 그러하듯이 ‘속 보이는 감동’이기 쉽다.

디즈니의 만화 영화에 익숙한 관객이 본다면 놀랄 만한 애니메이션이 있다. 바로 일본의 애니메이션이다. 그 장르가 다양해서 재미도 여러 가지인데, 사회와 삶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면서도 극적 긴장감 또한 뒤지지 않는 애니메이션 작품들이 여럿이다.

그 중에서도 기술 문명의 위태로움, 인간 사회의 갈등, 인간과 자연의 긴장을 역동적이고도 재미있게 연출하기로 유명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은 그 철학적 깊이에 놀랄 만하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재미로만 볼 수는 없게 한다.

   
  ▲ 에니메이션계의 거장이라 불리는 미야자키 하야오
 
SF와 마르크스 주의의 결합

미야자키는 1941년에 도쿄 부근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와 큰아버지는 비행기 공장을 운영했다. 이 비행기 공장은 미야자키의 애니메이션에서 자주 등장하는 날아다니는 것에 큰 영향을 미쳤다. 비행은 미야자키의 거의 모든 작품에서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수직 상승과 하강이라는 미야자키만의 역동적 애니메이션은 기계와 등장인물의 비행으로 표현된다.

한편으로는 그 비행기 공장에서 산업 사회의 계급적 차별을 목격하기도 했다. 이는 그의 작품에 고도로 산업화된 문명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미야자키는 어린 시절 만화가가 되길 원했다. 그래도 그림을 배우기 위해 미대에 진학하지는 않고 정치경제학부에서 일본산업론을 전공했다. 대학 시절에 일본 최초의 컬러 장편 애니메이션인 <백사전(白蛇傳)(1958)>에 감동을 받고 애니메이터가 되고자 했다. 대학 시절 아동문학 연구회라는 서클에서 활동하면서 동서양의 많은 문학을 접한 것이 이후의 작품 활동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림을 전문적으로 배우는 과정이 없었음에도 미야자키는 ‘그림을 그리는’ 애니메이션 감독이 되었다. 스스로는 그림에 재능이 없다고 했지만 작화, 원화를 그릴 뿐 아니라 때로는 동화도 직접 수정한다. 애니메이터로 시작했으나 다양한 인문적 지식과 철학적 성찰이 연출 능력을 키웠다고 해야 할 것이다.

청년 시절 사회주의에 큰 관심을 가졌던 미야자키는 대학에 다닐 무렵 일본공산당의 기관지인 '아카하타(赤旗)'의 청소년판인 <소년소녀신문>에 <사막의 백성>이란 제목의 만화를 연재했는데, 그가 밝혔듯이 이 작품은 SF와 마르크시즘을 결합시킨 것이었다.

노동조합의 의뢰를 받아 만들어진 이 만화는 ‘단결하면 큰 힘이 된다’는 주제를 담고 있다. 중앙아시아를 배경으로 잔인한 강대국에 맞서는 소수민족의 항쟁을 그리고 있다. 그 그림을 변형해 만들어낸 것이〈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라고 한다. 무엇보다 ‘힘을 합친다’는 연대의식은 많은 작품에서 공동체 사회(마을)로 등장한다.

학교 졸업 후 한때 노동조합 서기로 지내기도

미야자키는 대학 졸업 후 애니메이터로 일하게 된 도에이동화의 노동조합 서기로도 활동하였다. 노조활동은 그의 정치적 성향과 무관하지 않은데 이는 작업 공간에 대한 태도가 반영된 것이었다. 미야자키는 도에이동화에서 만난 다카하타 이사오와 사상적 교감을 나누며 노동조합 활동도 함께했다. 1985년 그들은 스튜디오 지브리를 만들었고, 1990년 일반적인 애니메이션 제작 방식과는 달리 스태프를 월급제로 고용하였다.

스태프를 작품마다 계약하는 방식이 아닌, 상시적으로 고용하여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이는 고용을 안정시킴으로써 작품의 질을 높이겠다는 의도였다.

물론 이는 스태프들을 한 자리에서 일하게 하여 관리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이점도 있었다. 또한 이는 적지 않은 스태프들을 월급제로 고용할 자금을 투자 받을 수 있을 정도의 브랜드 가치가 있었기 때문에 실현될 수 있었다.

이런 ‘파격적’ 고용 방식을 두고 <공각기동대(1995)>의 감독 오시이 마모루는 지브리를 소비에트의 크렘린에 비유했다. 그는 지브리의 조직화된 구조가 다른 곳에서는 불가능한 양질의 작품을 만들어 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개인의 창조성을 저해한다며, “그들이 영화를 만드는 것을 아직도 노조운동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여기는 것 같다”고 했다.

오시이의 발언은, 지브리의 고용 방식이 작업 효율보다는 그 설립자들의 활동 궤적에 기인한다고 여기는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시선이 있다는 걸 보여준다.

지브리라는 제작사를 통해 미야자키는 다카하타 이사오와 하나로 이해되기도 한다. 도에이동화에서 만난 다카하타는 사회주의 사상에 밝았는데 미야자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렇지만 두 사람의 작품 성격은 다르다.

다카하타는 <반딧불의 무덤(1988)>, <추억은 방울방울(1991)> 등 상당히 사실주의적인 작품을 연출했다. 미야자키가 기획한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1994)>은 우화적이기 하지만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이 강해서 다카하타다운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 때문에 다카하타의 작품이 미야자키의 작품보다 사회주의적인 성향이 강하다는 평가도 있다.

다카하다는 <알프스 소녀 하이디(1974)>, <엄마 찾아 삼만리(1976)>, <빨강머리 앤(1979)> 등 TV애니메이션들도 연출했다.

맹목적인 기술 추종의 위험성

   
  ▲ <미래소년 코난>
 
미야자키는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미래소년 코난(1978)>,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 <천공의 성 라퓨타(1986)>, <이웃집 토토로(1988)>, <붉은 돼지(1992)>, <모노노케 히메(1997)> 등을 연출했다. 이 작품들은 고도로 산업화된 문명의 위협과 어리석음, 파괴적인 전쟁과 독재 권력, 이상적인 공동체의 모습, 인간과 자연의 갈등과 공존을, 때로는 무겁게 때로는 경쾌하게 그리고 있다.

이와 달리 최고 정점에 오른 작품성을 보여주면서 베를린 영화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0)>과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은, 한편으로는 미야자키의 면모를 이어가고 있지만, 사회, 정치적 문제 등과 같은 다소 무거운 주제에서는 벗어났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미래소년 코난>은 초강력 전자력 병기가 세계의 절반을 일순간에 소멸시킨 2008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는 인간이 만든 ‘거신병’이라는 무기로 세계가 불타버린 먼 미래가 배경인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로 이어진다.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도 기술을 맹목적으로 추종할 때의 위험성을 보여준다.

전쟁과 파괴 기술 때문에 인간 사회가 위기에 처했지만 여전히 인간들은 그 파괴 기술을 독점하여 남은 세계를 지배하려는 야욕을 버리지 않는 어리석음을 보인다. 이들 작품들은 인간적 가치가 발전할 수 있도록 기술이 사용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착취 사회와 공동체 사회의 대비

미야자키의 작품은 억압과 착취의 사회와 조화로운 공동체 사회를 대조하기도 한다. <미래소년의 코난>의 인더스트리아와 하이하바, 애니메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원작인 만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도르메키아, 도르크와 바람계곡이 그러하다.

인더스트리아, 도르메티아, 도르크와 같은 도시와 국가는 <붉은 돼지>의 주인공이 스스로 사람이길 포기하고 차라리 돼지가 되어버린 이유를 제공한 전쟁과 파시즘 국가와 관련이 있다. 그것들은 악독한 계급 사회일 뿐만 아니라 다른 사회나 국가를 폭력으로 지배하고자 하는 제국주의이기도 하다.

이런 대군사 제국에 저항하는 사회는 다분히 중세 유럽의 분위기를 연상케 하는 하이하바와 바람계곡과 같이, 개인이 상품가치를 지니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사회로 그리고 있다. 미야자키는 “일정한 공동체 속에서 일정한 일을 하고 있으면 능력차가 그다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사회가 된다. 어지간한 게으름뱅이가 아닌 한에는, 마을이 굶주릴 때에는 함께 굶주리고 마을이 풍요로울 때에는 자신도 풍요로워지는” 사회상을 그리고자 했다.

미야자키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 또한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마스크를 뒤집어쓴 채 곰팡이로 뒤덮인 음침한 폐허를 지나는 한 여행자의 독백, “마을이 또 하나 죽었군.” 이 대사로 시작하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1950년대 발생한 미나마타병이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미야자키는, 대표적인 ‘공해병’을 낳은 이 사건에서, 인간이 만들어낸 오염 물질의 끔찍함을 목격함과 동시에, 강력한 복원력으로 그 오염 물질을 빨아들여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는 자연을 보았다.

미야자키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개봉 10주년 기념으로 하게 된 한 잡지사와의 인터뷰에서, “당대를 반영하지 않은 예술작품이란 없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70년대에 등장한 환경론적 세계관이 반영된 작품이다”라고 했다.

당대를 반영하지 않은 예술작품은 없다

이처럼 미야자키는 인간과 자연의 긴장감을 많이 다루었다. 그렇다고 인간과 자연의 대립을 평면적으로 그리지는 않았다. <모노노케 히메>는 인간도 자연의 일부로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라는 걸 뚜렷하게 보여준다. 인간은 숲을 파괴하고 무기를 만들지만 그것도 살아가기 위한 방편이라는 것이다.

자연은 인간의 그러한 행위에 저항한다. 인간이 자원을 이용하고,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산업 기술 문명을 이룩했다는 것 자체가 자연과의 대립을 영원히 피할 수 없게 한다. 대립적인 관계에도 불구하고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이웃집 토토로>는 전후에 사라져가는 일본의 숲을 소재로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방식을 동화적이고도 신비롭게 그리고 있다.

   
  ▲ <이웃집 토토로>
 
미야자키는 젊은 시절 사회주의자가 되길 원했다. 그러나 소련과 중국의 국경 분쟁은 과연 그 국가들의 사회주의가 진실한가를 의심하게 했다. 그래도 그는 1990년대 이전까지는 마르크시즘에 경도되어 있었다고 스스로 밝힌 바 있다. 결국 동구권의 몰락은 그에게도 고통이었다.

왜냐하면 현실 사회주의가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붉은 돼지>를 제작한 후에는 “정치를 좌우로 가르지 않는다. 다만 물질문명에 비판적이라는 진보적 경향은 남아 있다”고 했다.

미야자키는 평화롭고 조화로운 공동체를 이루고 자연을 착취하지 않는 인간 사회의 이상을 작품을 통해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는 작품을 통해 이상주의적인 사회주의를 그렸을 뿐 그다지 실천적 활동을 보여 준 사회주의자는 아닐 지도 모른다.

꿈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

게다가 그의 어느 작품에서도 ‘흑인’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인종주의’의 혐의를 받고 있다. 미야자키는 단지 ‘색감의 문제’라고 하지만 오히려 이 말이 ‘검은 피부색’은 아름답지 않다는 뜻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또한 그와 교감으로 평생 동료로 지내고 있는 다카하타 이사오의 <반딧불의 무덤>이 전쟁의 가해자인 일본을 마치 피해자인 양 그렸다며 비판을 받기도 한다.

배급을 위해 미국의 거대 미디어 재벌 디즈니사와 제휴를 맺은 점, 무엇보다 지브리의 설립자들은 상업적 성공을 위해 노력했다는 점, 이 때문에 그들의 작품에 드러나는 주제의식과는 별개로 그들이 과연 사회주의 사상을 실천하는 이들인가 의심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후에는 이러한 주제의식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고 평가 받기는 하지만- 미야자키의 작품에 드러나는 주제의식, 이상적 사회상이나 인간관계는 사회주의 철학에 가깝다.

미야자키는 자신이 꿈꾸고 있는 바를 작품에 담았다. 오히려 미야자키는 현실 사회주의나 사회주의 정당과의 관계를 중시하지 않아 자신의 꿈에 충실한 작품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이상적’이라는 비판을 받을지라도 자신의 꿈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어쩌면 자칭 사회주의자들이 미야자키에게 배워야 할 덕목은 그의 작품 속 주제의식보다 자신의 꿈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일지 모른다.

 
2007년 02월 01일 (목) 14:55:27 문성준 / 객원기자 redian@redia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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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왜 판결 공개를 반대했을까

 

 

 

조선은 왜 판결 공개를 반대했을까
긴급조치 9호 발표하자, 사설로 “이정표는 제시됐다”
 
 
하니Only 구본권 기자
 
 
» 1월 31일 한겨레 그림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위원장 송기인 신부)가 1월31일 1970년대 ‘긴급조치 위반 사건에 대한 판결문 분석 보고서’를 공개했다. 판결문 분석보고서에는 1412건 긴급조치 판결의 내용과 담당 판사의 이름도 실려 있다. 법원공보 및 판결집에 실리는 판결은 판결내용은 물론 판사의 이름도 실려 있다. 대법원 홈페이지에 공개된 수많은 판결들의 경우에도 모두 판사 이름이 실려 있다. 공개법정에서 이루어진 판결 내용은 결코 비밀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진실화해위가 긴급조치 판결을 분석한 것을 보면 더욱 당시 판결문 분석보고서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유신 당시 긴급조치 판결을 진실화해위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음주 및 대화 도중 대통령과 유신 비판’이 전체의 48%를 차지하며, 유신독재에 항거한 ‘학생운동’이 32%, ‘반유신 재야운동’이 14.5%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작 간첩행위를 처벌한 사건은 2건뿐이었다.

 

▶▶관련기사: “박정희 운좋아 대통령됐다” 12년 징역형

조·중·동, 긴급조치 판결 분석공개에 일제히 ‘강한 비난’




 

하지만, 일부 언론은 사설과 기사를 통해, 긴급조치 판결문 분석 보고서 공개를 강하게 비난했다.

<조선일보> 31일자 [사설] ‘과거사위의 ‘인민재판’에 끌려나온 판사들’
<동아일보> 31일자 [사설] 反화해 과거사委 본색 드러내기
<중앙일보> 2월1일자 [사설] 진실 규명도 화해에도 도움 안된 명단 공개

 

왜, 이들 보수언론은 진실화해위의 판결문 분석 보고서를 일제히 비난했을까?

 

긴급조치는 민주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독재정권 유지의 초법적 조처임을 부인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긴급조처는 정권이 국민을 영장없이 체포·구속·압수·수색하고 민간인에게 비상군법회의 재판을 받도록 했던 박정희독재정권 유지를 위한 제도였다.

 

긴급조치 위반 사건 중에서도 ‘기념비적 판결’은 사형판결 18시간 만에 8명의 형을 집행한 인혁당 재건위 사건(75년 4월8일)이다. 하지만 지난달 2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는 인혁당 사건 재심 선거공판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반공법 위반, 내란예비음모 등의 혐의를 모두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무죄 판결했다.

 

 

동아일보 “본보는 유신정권에 저항하다 백지광고” 사설에 민언련 “파렴치한 동아일보”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선명한 ‘적반하장’의 태도를 취했다. “본보는 유신정권에 저항하다 언론사에 유례가 없는 백지광고 사태를 겪었다. 그럼에도 이번 판사 명단 공개가 옳지 않다고 보는 것은 진정한 화해에 역행한다고 믿기 때문”이라는 사설을 31일치로 실었다..

 

민언련은 31일 성명을 내어 이날치 동아일보의 사설을 “파렴치한 주장”이라며 “‘백지광고 사태’의 진실을 왜곡하는 동아일보의 행태를 접하며 우리의 낯이 뜨거워질 정도의 모욕감을 느낀다”고 비판했다.

 

동아일보가 ‘유신정권에 저항’하다 겪었다는 이른바 ‘백지광고 사태’는 동아일보가 쫓아낸 기자들의 자유언론실천선언 운동에서 비롯한 것이기 때문이다. 74년 10월 24일 동아일보 기자들은 중앙정보부 요원의 언론사 상주와 편집권 간섭 등을 거부하는 ‘자유언론실천선언’에 나섰고, 정권은 광고주들에게 동아일보사에 광고를 주지 못하게 해 이른바 ‘백지광고 사태’가 벌어졌다. 시민들은 지지 광고를 통해 동아일보 기자들의 자유언론 투쟁을 성원했지만 동아일보사는 유신정권과 한 편이 되어 75년 3월 17일 자유언론실천선언에 나선 113명의 언론인을 쫓아낸 것이 이 사태의 전말이다. 당시 해직된 113명의 동아일보 기자들은 32년이 지난 지금까지 동아일보로부터 한마디의 사과도 받지 못하고 있다.

 

 

조선일보 “대통령에게 긴급조치권 준 국민책임 물어야 할 판”이라고?

 
» 유신시절 대통령 긴급조치 3호가 발표됐을 때(1974년 1월14일)의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는 문답식 풀이를 통해 긴급조치3호로 인해, 월 7만원 받는 월급쟁이가 매달 5252원의 혜택을 입게 된다고 보도하며, 그 필요성과 유익함을 적극 홍보했다. 온라인뉴스팀
 

조선일보는 31일치 사설에서 “명단이 정식으로 공개되면 정권의 ‘과거사 캐기 바람’에 올라탄 세력들은 해당 판사들을 ‘독재정권에 순응한 반민주 판사’로 몰아붙일 게 뻔하다”며 “과거사위의 이번 결정은 판사들더러 법전을 보지 말고 나중에 욕먹지 않을 판결만 궁리하라고 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고 비난했다. 조선일보 사설은 “결국엔 유신헌법 국민투표에서 90% 넘게 찬성해 대통령에게 긴급조치권을 줬던 국민의 책임까지 물어야 될 판”이라고 결론지었다.

유신시대 긴급조치 발동의 책임이 박정희독재정권이 아니라, 유신헌법 국민투표를 통해 90% 이상 지지로 찬동한 국민들에게 있다는 논리를 조선일보는 21세기에 와서도 펼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유신헌법에 대한 국민투표가 ‘타당하고 공정했다’는 전제 아래서나 가능한 주장이다. 유신헌법을 통해 종신집권을 획책한 박정희정권의 국민투표 홍보는 야당과 민주시민들의 반대와 저항이 철저하게 통제당한 채 일방적으로 정권이 홍보하는 ‘유신헌법 개정필요성’이 전달됐을 따름이다.

그 핵심적 역할은 <조선일보>를 비롯한 당시의 언론이 맡았다.

긴급조치 9호가 공표된 75년 5월15일치 당시 <조선일보> 사설이 32년이 지난 뒤의 진실화해위의 긴급조치 판결 분석문 공개에 대한 조선일보사의 ‘불쾌함’을 설명하는 가장 강력한 이유가 된다.

 

조선일보, 긴급조치9호 공표에 사설로 “이정표는 제시됐다” 적극 지지

 

 

긴급조치9호가 시행됨으로써 한국사회는 전시상태나 다름없는 비상체제로 진입했다. 박 정권은 반정부활동을 언론이 보도하거나 전파하는 일까지 금지했고 조치 위반자에 대해서는 영장 없이 체포ㆍ구금할 수 있게 했으며 이 조치를 비방하는 행위 역시 1년 이상의 징역형에 10년 이상의 자격정지가 부과됐다. 긴급조치9호는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사망 후 같은 해 12월 8일 0시를 기해 해제됨으로써 끝이 났다.

 

조선일보의 긴급조치 판결문 분석 공개에 대한 비난 사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긴급조처 9호 발동 당시 조선일보의 논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독자들의 이해를 위해 조선일보의 당시 사설(1975년 5월15일)을 다시 보자.

 

[조선일보 1975년 5월15일치 사설] 새 질서 확립의 이정 -긴급조치선포를 보고

 
» 유신헌법에 대한 일체의 반대를 금지한 긴급조치 9호 발표에 대한 조선일보의 사설. 조선일보는 이 사설에서 ‘이정표는 제시됐다‘며, 긴급조치의 필요성을 극력 옹호했다. 온라인뉴스팀
 

“…이상과 같은 긴급조치 내용에 따라 우리는 분명히 새로운 생활체제에 직면했다. 헌법이 부여한 권한에 따른 대통령 긴급조치권에 의한 새로운 생활질서가 요구된 것이다. 변화된 생활질서에 익숙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물의 변화과정이 그러하듯이 적지않은 시간을 필요로 하리다. 그러나 그 과정에 있어서라도 결코 의외의 또는 애매한 질서이탈의 착오현상이 있어서는 안될 것을 우선 바라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착오현상의 빈발은 변화된 질서에서 오는 긴장을 더욱 가중시키는 작용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정표는 제시됐다”는 한마디로 요약되는, 긴급조치 9호에 대한 조선일보사의 ‘굳은 결의’를 다짐하는 사설의 마지막 부분은 자못 비장하기까지 하다.

 

4. 우리에게 가해지고 있는 잠재적 또는 현실적 위협이 용이한 것이 아니라는 시국관에 이의를 달 선량한 국민은 한 사람도 없으리라. 그러한 위협이 우리에게 새 질서의 생활을 요구한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분명하게 확인하는 것이며 또한 현실을 직시하려 한다.

우리 사회에는 각종 이익단체와 기능이 존재하고 활동하고 있다. 그 것은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사회, 곧 반공산주의 이데올로기사회의 조건이며 특징이다. 그러나 그것들을 포용하고 있는 전체이며 유일한 국가의 존재를 보위하고 유지하는 데 심각한 양상이 제기됐을 때 개개 이익단체는 국가존립을 위한 이익에 우선적으로 종속돼야 한다는 이치와 현실을 우리는 이미 익혀오기도 했다.

이러한 우리의 입지조건을 지양하는 날을 가져온다는 이념과 결의에서 유신을 지향한 헌법이 마련됐고, 그 헌법이 우리에게 요청한 새로운 생활질서를 외면하고 우리가 달리 갈길이 없음을 우리는 이 시점에서 거듭 확인하는 것이다. 그 길이 우리가 처한 여건에 의해 이상적이고 최선의 길은 아니라 하더라도 불가피한 길임을 우리는 확인하는 것이다.

문제는 다함께 새로워져야 한다는 데 있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히 모든 지도계층의 생활자세의 더한 변화의 시범에서부터 비롯돼야 할 것이다. 긴급조치의 정신이 지향하고 요구하는 이념적 체득이 얼마만큼 절실하며, 그 것이 생활실천을 통해 얼마만큼 참되게 표현되느냐에 오로지 애타게 추구하는 국민총화의 관건은 좌우됨을 우리는 명심코자 하는 것이다.

이정표는 제시됐다. 그곳을 가는 도정에서의 소득이 결코 부 아닌 승의 결과로 요청돼야 한다는 숙제가 남았을 뿐이며 우리가 기대하는 모든 새로운 생활변화에 의해 그 숙제가 풀릴 것은 우리는 확신코자 한다.

 

 

“이정표는 제시됐다”며 조선일보가 그 정당성과 불가피성을 옹호한 유신헌법 아래서의 대통령 긴급조치 9호는 어떤 내용이었나?

 

 

 

1975년 5월13일 공표된 긴급조치 9호의 주요내용

1. 다음 각호의 행위를 금한다.

(가)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거나 사실을 왜곡하여 전파하는 행위

(나)집회와 시위, 또는 신문, 방송, 통신등 공중전파 수단이나 문서, 문서, 음반등 표현물에 의해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 반대 왜곡 또는 비방하거나 그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청원,선동 또는 선전하는 행위

(다)학교 당국의 지도,감독 하에 행하는 수업,연구 또는 학교장의 사전 허가를 받았거나 기타 의례적 비정치적 활동을 제외한 학생의 집회, 시위 또는 정치관여 행위

(라)이 조치를 공연히 비방하는 행위

2. 제 1에 위반한 내용을 방송,보도 기타의 방법으로 공연히 전파하거나 그 내용의 표현들을 제작, 배포, 판매, 소지 또는 전시하는 행위를 금한다.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관련기사]
 
 


 
기사등록 : 2007-02-01 오후 02:30:00 기사수정 : 2007-02-01 오후 02:5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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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조동문 프레임' 깨지 못해 지지율 낮아&quot;

 

 

 

참여정부, '조동문 프레임' 깨지 못해 지지율 낮아"
'한국판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펴낸 조기숙 전 청와대 홍보수석
텍스트만보기   손병관(patrick21) 기자   
 
 
 
ⓒ 지식공작소
"열린우리당은 무슨 잘못을 했기에 선거마다 패배를 거듭하는가? 별로 잘한 것같지 않은 한나라당은 왜 그리 선전하는가? 참여정부에 대한 지지도는 왜 일관성 없이 널뛰기를 하더니 바닥으로 주저앉아 움직일 줄을 모르는가?"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낸 조기숙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신간 <마법에 걸린 나라>(지식공작소, 사진)를 펴냈다. 그의 책은 독자들에게 이런 물음을 던지는 것으로 시작한다.

조 교수가 올해 12월 대선에서 진보진영의 대응을 염두에 두고 쓴 책의 원제는 <진보는 죽었다>였다. 그의 시각에서 참여정부가 출범한 뒤 '나 몰라라' 뒷짐을 진 진보진영을 질타하고 반성을 촉구하는 데 책의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그러나 책은 출간을 앞두고 보다 상징적인 제목(<마법에 걸린 나라>)으로 바뀌게 됐다. 지난해 5·31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은 성추행 사건을 일으켜도, 공천헌금 비리가 발각되어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 마술에 걸린 것 같다"고 푸념한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말에서 영감을 얻은 제목이다.

조 교수는 이 책에서 참여정부가 보수진영과의 담론 경쟁에서 패배한 과정을 상술했다. 지난해 정가에 화제를 모은 책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를 쓴 조지 레이코프 교수의 '프레임 이론'을 한국의 현실에 대입한 것이다.

그는 특히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 수구성향의 조간신문에서 만들어낸 프레임을 석간신문 <문화일보>가 확대재생산하는 이른바 '조동문 프레임'을 깨지 못한 것을 참여정부의 가장 큰 실패 원인으로 꼽았다.

조 교수는 이러한 보수언론에 맞서 대항담론을 만들어내지 못한 진보언론과 시민단체에도 책임을 물었다. "노 대통령은 여론을 거역했으므로 선거에 의해 뽑힌 독재"라고 비판한 최장집 교수도, "참여정부와 언론의 싸움은 어른과 애의 싸움"이라고 주장한 강준만 교수도 그의 비판을 피해갈 수 없었다.

진보언론과 시민단체가 어용시비를 피하기 위해 보수언론보다 더 가혹하게 노무현 정부를 비판했고, 열린우리당도 여기에 가세하는 등 결과적으로 진보진영의 분열이 참여정부의 위기를 자초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주고, 탄핵으로부터 구해주고, 열린우리당에 국회 과반수 의석을 몰아준 국민들이 참여정부를 질책하며 등을 돌리는 것에도 그는 "당신은 대통령만 달랑 뽑아놓고 뭘 했냐?"고 오히려 반문하고 있다. 참여정부가 탄생한 것은 국민들이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을 인정한 것이지, 새로운 패러다임의 손을 들어준 것이 아니라는 항변이다.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과 노 대통령을 비교하며 두 사람의 성패가 엇갈리는 환경을 비교한 대목도 흥미를 끈다. 두 사람 모두 ▲언론과의 불편한 관계 ▲기득권 세력과의 대립 ▲여소야대 국회라는 악재를 안고 출발했지만, 클린턴의 경우 노 대통령만큼 언론환경이 불리하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조기숙 교수가 지적한 노 대통령의 3가지 잘못

그렇다고 해서 조 교수가 노 대통령에게 면죄부를 부여한 것은 아니다. 그는 "참여정부가 낮은 평가를 받는 데 노 대통령이 가장 큰 책임이 있다"며 대통령의 세 가지 잘못을 꼽았다.

"첫째는 대통령에 당선되기까지의 성공신화에 매몰된 것이 대통령으로서 성공하는데 오히려 장애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둘째는 지역주의를 극복하고자 하는 필생의 신념이 오히려 지역주의를 한국정치의 상수가 되도록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셋째는 초유의 실험이라고 할 수 있는 민주적 당청관계에 있어서 한국적 정서를 무시함으로써 바람직한 관계설정에 실패한 것이다."

대통령이 국민이 원하는 '대통령상'을 거부하고 '노무현스러운' 대통령이 되길 원했기 때문에 참여정부의 청와대에서 참모들이 대통령의 리더십 스타일이나 바람직한 대통령상에 대해 조언하는 것을 꺼렸다는 뒷얘기도 소개했다.

그의 여당에 대한 평가는 한층 혹독하다. 대통령의 문제가 스타일에 있다면 여당의 가장 큰 문제는 '콘텐츠의 부재'에 있다는 점에서 열린우리당의 죄질이 더 나쁘다는 지적이다.

그는 "여당은 5·31 지방선거에서도 핵심 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 교육·복지 정책이 존재하지 않았고 '부패는 용서해도 무능은 용서할 수 없다'는 보수언론의 프레임을 스스로 받아들여 '오만과 독선을 반성하니 싹쓸이만 막아 달라'고 읍소하는 등 제 발등을 찍는 선거운동으로 일관했다"고 비판했다.

"열린우리당의 현재 위기는 탄핵 여파로 뜻하지 않은 횡재를 한 데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된다. 잡탕정당의 문제라고나 할까. 탈지역정당의 한계라고나 할까. 당내 성공적인 의사소통이 없는 것도 문제다. 초선의원이 108명이나 되니 위계질서가 없고 팝콘처럼 튀어서 의견조율이 여간 어렵지 않다. 한 발씩 양보하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를 오기와 감정싸움으로 끌고 오다보니 결국엔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것이다. 당내 지역갈등까지 겹쳐서 열린우리당의 문제는 쉽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결국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은 정당의 이념적 정체성이 불명확하다는 데에 있다. 개념 없는 정당에게 누가 표를 주겠는가."

최근의 통합신당 논의에 대해서도 그는 "콘텐츠에는 큰 관심이 없고 스타일만 바꿔보려는 시도이기 때문에 국민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했다.

조 교수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앞서가는 가장 큰 이유는 여권이 우왕좌왕하기 때문"이라며 "2002 대선이 무너뜨리는 선거였다면 2007 대선은 쌓아 올리는 선거가 될 것이다. 혼란과 갈등에 종지부를 찍고 업적의 축적을 통해 새로운 질서를 보여주는 쪽이 이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2007-02-01 09:22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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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의 '백지광고 사태' 호도 파렴치하다

 

 

 

동아>의 '백지광고 사태' 호도 파렴치하다
[민언련 논평] 진실화해위원회 보고서 관련 <동아> 사설에 대해
텍스트만보기   민주언론시민연합(ccdm1984)   
 
<동아일보>가 언론민주화의 진실을 왜곡하면서까지 '진실화해위원회 흔들기'에 나섰다.

31일 <동아일보>는 사설 '반(反)화해 과거사위 본색 드러내기'를 싣고 과거사위원회가 '긴급조치 위반 사건에 대한 판결문 분석 보고서'를 공개하기로 결정한 데 대해 맹비난했다.

그러면서 "본보는 유신정권에 저항하다 언론사에 유례가 없는 백지광고 사태를 겪었다. 그럼에도 이번 판사 명단 공개가 옳지 않다고 보는 것은 진정한 화해에 역행한다고 믿기 때문"이라는 파렴치한 주장을 폈다.

진실화해위원회의 보고서에 대해 '재판관 실명 공개'만 의제로 삼아 반(反)화해, 정략적 의도, 편가르기 등 억지 주장을 편 것도 문제지만,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백지광고 사태의 진실'까지 멋대로 끌어다 붙이는 행태는 그야말로 기가 막힐 노릇이다.

   오늘의 브리핑
 
"보수언론은 왜
사법부 반성 가로막나"
[판사 실명 공개]
 
 
참여정부, '조동문 프레임' 못깨 실패
'IMF 괴물', 자살 3번 결심케한 요물
중국의 모든 길은 올림픽으로 통한다
"핀란드 들어오려면 한국어시험 봐라"
"한국 드라마 모르면 북한서 '왕따'"
박태환 선수 훈련파트너 소개합니다
인기검색어 전파 속도 빛보다 빠르다?
"석궁 습격은 판·검사 오만의 반증"
 
<동아일보>가 "유신정권에 저항"하다 겪었다는 이른바 '백지광고 사태'는 <동아일보>가 쫓아낸 기자들의 자유언론실천선언 운동에서 비롯된 것임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74년 10월 24일 <동아일보> 기자들은 중앙정보부 요원의 언론사 상주와 편집권 간섭 등을 거부하는 '자유언론실천선언'에 나섰다. 그러자 정권은 광고주들에게 동아일보사에 광고를 주지 못하게 했고 이 때문에 '백지광고 사태'가 벌어졌다.

시민들은 지지 광고를 통해 <동아일보> 기자들의 자유언론 투쟁을 성원했지만 동아일보사는 유신정권과 한 편이 되어 75년 3월 17일 자유언론실천선언에 나선 113명의 언론인을 쫓아냈다.

어디 그 뿐인가? 당시 <동아일보>는 지면을 통해 자유언론 수호투쟁에 나선 언론인들에 대해 "일부 과격한 사원들의 제작 방해" 운운하며 사태의 진상을 호도하려 들었다. 그리고 3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날까지 자신들이 쫓아낸 언론인들을 철저하게 외면했다.

도대체 누가 유신정권에 저항했고, 누가 탄압을 받은 것인가? 언론자유를 위해 싸우는 언론인들을 쫓아냈던 <동아일보>가 이제 와서 무슨 염치로 '백지광고 사태'를 자신들의 '민주화운동 전과'로 내세우고, 그것도 모자라 과거청산 작업을 공격하는 데 악용한단 말인가?

당시 <동아일보>가 쫓아낸 언론인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단체가 바로 민언련의 전신 '민주언론운동협의회'이다. 우리는 백지광고 사태의 진실을 왜곡하는 <동아일보>의 행태를 접하며 우리의 낯이 뜨거워질 정도의 모욕감을 느낀다. 아울러 철저한 과거청산이 왜 필요한 것인지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동아일보>의 오늘 사설은 사과해야 할 사람들이 '피해자'인 양 나서는 적반하장과 역사 왜곡을 더 이상 방관해서 안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현재 진실화해위원회는 박정희 정권시절 <동아일보> 광고탄압과 대량 기자해직 사태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있다. 우리는 진실화해위원회가 '동아일보의 진실'을 낱낱이 밝혀 국민 앞에 투명하게 공개해주기를 당부한다.

덧붙여 재판관의 이름을 공개하는 것조차 "반(反)화해"라며 과거청산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 <동아일보>에게 거듭 촉구한다.

잘못된 판결을 한 사람들이 누구인지조차 모른다면 국민들은 누구와 '화해'를 해야 한단 말인가? 또 반성할 사람들이 최소한의 반성을 하지 않는데 국민들은 무조건 '용서'부터 해야 하는가?

국민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공개하는 것을 두고 '반(反)화해', '정략적 의도' 운운하며 과거청산 작업을 흔드는 일을 즉각 멈추기 바란다. 지금 <동아일보>가 벌이고 있는 '언론민주화의 역사 왜곡', '진실화해위원회 흔들기'가 모두 후대에 청산해야 할 과거로 남는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2007-01-31 21:15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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