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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2007/02

트로츠키와 다른 한국의 ‘트로츠키주의’

 

 

트로츠키 논쟁을 자주적 사고의 계기로"
  [기고] 역사적 오류와 논쟁의 현실화
 
  2007-02-16 오후 3:16:51
 
   
 
 
  정성진 경상대 교수(경제학)의 <마르크스와 트로츠키>를 계기로 3주 가까이 트로츠키주의가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놓고 논란이 진행 중이다. 찬반 공방이 진행되는 가운데 불가피하게 국내외 트로츠키주의자의 현실 인식과 활동에 대한 평가도 부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 논쟁과 관련해 모스크바대에서 정치학을 공부한 뒤 현재 러시아 과학아카데미사회학연구소의 박사 과정에 있는 정다신 씨가 논평을 보내왔다. 정 씨는 소련 몰락 후 공개된 볼셰비키 당시의 비밀문서 등 사료에 입각해 논쟁 과정에서 제기된 크론시타트 반란과 일부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의존하는 국가자본주의론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시도했다.
  
  
특히 정 씨는 이 글에서 "지금 필요한 것은 외국 이데올로그가 발행한 교재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발 딛고 선 곳에 대해 독립적이고 객관적이며 자주적으로 사고하는 것"이라며 "과거 혁명가의 주장에서 취할 것은 취하되 현실에 맞지 않는 것은 과감하게 버리는 것이 진정한 트로츠키주의자로 거듭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편집자>
  
  시대가 많이 변했지만 이러한 논쟁들을 접하면서 답답함을 느끼게 되는 부분이 몇 가지 있다. 그 중의 하나는 단 몇 마디로 '다함께' 류의 역사 왜곡을 교정해 줄 능력이 있는 역사학자들이 그럴 필요조차 없다고 여겨서인지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이러한 논쟁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함께가 '국제사회주의자(IS)'라는 이름을 가지고 활동하던 시절, 그들은 그나마 학계에서는 유일하게 자신들의 이론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는 정성진에 대해 IS 그룹에 속해 활동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입만 살아있는 지식인 분자'로 취급했다. 그랬던 그들이 이제는 이토록 정성진을 옹호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바로 관념론의 소산이자 자신들의 지주 격인 국가자본주의론을 자신의 조직원도 아닌 이가 풍부하게 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식인 분자의 입은 어느새 범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그 누구보다도 저들에게 힘을 실어 줄 이데올로그로 전화하여 칭송받게 됐다. 이번에 <프레시안>을 통해 제기된 논쟁에 이들이 이렇게 핏대를 세우게 된 이유도, 그 동안 타 정파나 집단들이 무시해 오던 다른 때와는 달리, 본격적이지는 않지만 다함께가 신주처럼 모시는 국가자본주의론을 공개적으로 비판했기 때문이다.
  
  토니 클리프에 의해 발명된 국가자본주의론은 저들이 항상 자신들이 트로츠키 교조주의가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 애호하는 무기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건, 자신들이 비판에 열려 있고 심지어 트로츠키주의 그 자체까지도 비판하는 융통성 있는 활동가들임을 보여 주려고 애용하는 부분은 철저하게 클리프와 그 계승자들인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교과서에 나온 부분일 뿐이라는 것이다.
  
  누가 진정 역사를 왜곡하는가?
  
  이정구를 비롯한 다함께 그룹, 아니 저들이 암송하는 영국 SWP의 이데올로그들은 러시아 혁명 이후의 모든 혁명을 국가자본주의 혁명으로 만들기 위해, 유일무이한 노동자 혁명이었다는 러시아 혁명을 계속 왜곡해 왔다. 그러다 보니 그 과정에서 늘 혁명 계급이 노동자 계급인지, 또 '무슨 무슨 주의'에 오염된 이들인지가 강조돼 왔다.
  
  노동자 계급은 거의 예외 없이 볼셰비키를 지지했고 문맹에 가까운 농민을 비롯한 여타 계급은 철저하게 무슨 주의에 물들고 무슨 주의자들인 양 과장, 왜곡하는 나쁜 습관은 이런 왜곡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이 시기 러시아 혁명의 과정에서 노동자 계급은 볼셰비키 지지 세력이고 농민을 비롯한 여타 계급은 철저하게 반 볼셰비키였다는 특유의 이분법 논리로 역사를 과장, 왜곡하는 일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드러난다.
  
  크론시타트 반란자들이 이전 수병들과는 다른 농민 출신 신병들이 주가 되었던 것은 맞다. 그런데 이정구는 소련 붕괴 후 공개된 비밀문서 운운까지 하며 이 점을 무슨 엄청난 일인 양 하고 있다. 바로 그 비밀문서에 나와 있는 당시 노동자 계급 주도의 수많은 반 볼셰비키 파업, 반란 등에 대해서는 아예 침묵하고 말이다.
  
  페트로그라드에는 푸틸로프 공장 하나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한반도의 수십 배는 더 되는 러시아에 도시가 페트로그라드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페트로그라드에는 노동자 계급 중에 상대적으로 볼셰비키 지지 세력이 많았다. 그럼에도 심지어 최대의 볼셰비키 지지 기반인 푸틸로프 공장마저 잔혹한 전시 공산주의 기간 내내 반 볼셰비키 파업이 진행된 사실을 이정구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인 이유를 주로 식량 부족에 있는 것으로 축소, 왜곡시키는 버릇도 영국 이데올로그의 그것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 소비에트 선거에 대한 부분이 들어 있기는 하지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면서 박정희까지 빗댄 부분을 보며 이정구가 진정으로 노동자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사람인지조차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크론시타트 반란은 일부 반 볼셰비키 세력에 철저하게 조종된 농민 출신 신출내기들의 반란이 아니었다. 그것이 그 당시 전국적으로 줄을 이었던 노동자 계급의 요구였다는 사실은 학계에서는 정설로 인정되었다. 당시 푸틸로프 공장은 친 볼셰비키 노동자들의 주도 하에 간신히 파업이 마무리되었지만, 그 외 수많은 페트로그라드 공장들에서의 파업은 이정구의 주장과는 달리, 크론시타트 반란 당시에도 이어졌었다.
  
  무엇보다 이 사건에서 중요한 것이 있다. 이 때 내전은 유럽, 러시아 지역에서는 거의 종결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인구 대다수를 차지하던 농민을 아사 직전으로 몰고 가던 곡물 징발은 계속되었고, 볼셰비키가 주장했던 소비에트 민주주의를 비롯한 민주주의 약속은 파괴되었다. 크론시타트 반란을 비롯한 일련의 파업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일어난 지극히 정당한 노동 대중들의 항의 행동이었다.
  
  지지하기 애매한 집단마저도 '비판적 지지' 운운하는 다함께가 감히 굶어 죽어 가는 생존권과 관련된 항의 행동을 억지로 노동자와 농민으로 나누어 한 쪽을 반동으로 몰 수 있는가? 이와 관련해 당시 여타의 공장에서의 파업과 시위에는 볼셰비키 지지 노동자들의 볼셰비키에 대한 항의 행동이 즐비했다는 것만은 꼭 알아 두기를 바란다.
  
  이정구가 정직한 활동가이고 진정한 유물론자라면 크론시타트 반란은 크론시타트에서만의 일부 농민 출신 수병의 반란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아 두어야 할 것이다. 크론시타트 반란은 크론시타트 외의 전 러시아에서까지 벌어졌던 노동자 계급의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이기도 한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크론시타트 수병들의 반란은 정당했다. 진압 이후 볼셰비키가 전적으로 전시 공산주의를 폐지하고 수병들의 주장 중 중요한 부분인 농업과 가내 공업 등의 자유시장경제 요구 등의 맥락에서 시장 요소를 도입한 신경제 정책을 채택한 것은 이정구의 말과는 정반대로 그들의 요구가 옳았음을 증명해 준다. 농민뿐 아니라 노동자들 역시 볼셰비키에 대한 실망과 반감은 극에 달해 있었다.
  
  완전한 흑백 논리로 이 당시부터 소련 붕괴 때까지 지속되었던 크론시타트 반란에 대한 거짓을 그대로 인용하여 크론시타트 반란을 왜곡하는 것이야 말로 자신이 트로츠키주의이기는커녕 스탈린주의의 교조에서 한 발 자국도 못 벗어났음을 보여 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만약 크론시타트 반란의 주역들이 노동자 계급 출신이면 다함께 동지들은 또 무슨 이유를 댔을까? 혁명의 대의를 이해하지 못 한 후진 노동자들, 멘셰비키 영향 하 노동자들 뭐 이런 게 아니었을까?
  
  제발 현실로 돌아오라!
  
  트로츠키가 주장했던 노동자의 군대화, 노동조합의 국가 기관화 등등 명백한 반사회주의적 조치들을 옹호하려거든 똑같은 맥락에서, 아니 맥락은 그만 두더라도 역사적 사실만이라도 알고 주장하기 바란다. 지금 필요한 것은 영국 SWP와 같은 외국의 이데올로그가 발행한 교재가 아닌 사료들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며, 자신이 발 딛고 선 곳에 대해 독립적이고 객관적이며 자주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기초를 갖는 것이다. 영국에서 내려 온 거 그냥 아무거나 무조건 외지 말고 사료를 근거로 이야기를 하라는 것이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영국 SWP의 이론은 트로츠키가 주장했던 가장 핵심적인 주장들과 거리가 멀다. 트로츠키를 비판적으로 계승하였다고 자평하는 클리프의 주장만 절대적으로 따르는 다함께에 그들이 좋아하는 '~주의'를 갖다 붙이자면, 트로츠키주의자라기보다는 클리프주의자라고 하는 것이 더 나을 듯 싶다. 하루라도 빨리 국가자본주의를 비롯한 관념론의 극치에서 벗어나는 것이 자신들을 클리프주의가 아니라 트로츠키주의라고 치장하는 데에도 조금 더 나을 듯 싶다.
  
  이재영이 틀린 건 단 한 가지다. 저들은 마르크스 훈고학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트로츠키주의와도 별 상관이 없다. 그저 클리프 교과서를 암송하는 관념론 집단일 뿐이다. 이미 오래 전에 파산 선고를 받은 국가자본주의론은 그 자체로는 하나의 이론일지는 몰라도 현실 사회주의의 모습과 하나도 일치하지 않는다.
  
  러시아에서의 70년은 우리가 그리던 사회주의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지만, 자본주의와 닮은 점은 더욱 없었다는 점을 이 땅의 그 누구도 증명할 수 있다. 영국 SWP에서 소련 붕괴 직후 파견한 전문가들조차 소련 땅에 발을 디딘 직후 현실과 맞지 않는 자신들의 관념론을 뼈저리게 깨닫고 자기비판하고 다른 트로츠키주의 조직의 조직원으로 전환하였고, 지금까지도 유독 이들만이 최소한의 뿌리조차 내리지 못 하고 있다. 그 이유를 정녕 모르겠는가?
  
  이정구를 비롯한 다함께는 이번처럼 공개적으로 논쟁에 나서는 경우가 드물었는데, 이번 논쟁이 더욱 많은 활동가들, 연구자들로 하여금 국가자본주의론과 그를 뒷받침하는 역사 왜곡 등에 반박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랄 따름이다.
  
  투쟁에 헌신하는 이들은 많다. 문제는 제국주의가 무엇인지,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사회주의가 무엇인지조차 헷갈리는 이들이 반제국주의, 반자본주의 투쟁을 한다는 것은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이다. 혁명을 외친다고 해서 운동권적 도덕률에 있어서 우위를 점한다는 착각해도 되는 시대는 지났다. 소련 체제를 지키고자 했던 트로츠키조차 저들의 논리에 의하면, 그저 오류 정도가 아니라 국가자본주의를 옹호하고자 하는 반동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 자신들이 트로츠키주의자라고 그의 이름을 빌려서 그나마 '오류' 정도로 완곡하게 표현할 뿐, 사회민주주의보다 훨씬 날선 용어로 비판했을 것은 자명하다.
  
  다함께가 진정한 변혁 운동가 집단이라면 과거 혁명가들의 사상과 주장에서 취할 것은 취하되 현실에 맞지 않는 것은 과감하게 버릴 수 있는 진정성을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오히려 그들 자신을 진정한 트로츠키주의주의자로 거듭나는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정다신/러시아 과학아카데미사회학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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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츠키와 다른 한국의 ‘트로츠키주의’
[새책] 정성진의 『마르크스와 트로츠키』…"눈에 거슬리는 과장들"
 
 
 

책읽기는 즐거워도 책에 대한 글쓰기는 즐겁지 않다. 글쓰기를 작정하고 책을 드는 순간부터 책읽기가 숙제가 되어 버리니, 소란스런 지하철이나 쾌적한 화장실에서 가끔 책 꺼내 보는 소소한 재미는 사라지고, 책상 위에 책 펴두고 밑줄 긋는 고역이 시작된다.

더군다나 나처럼 게으른 사람에게 『마르크스와 트로츠키(한울)』 같이 두툼하고 묵직한 책은 족히 반 년 거리인데, 출판사 영업팀이나 언론 편집자의 시간 관념이 그런 ‘장구한 세월’을 용납할 리도 만무하다. 그래서 이 글은 어쩔 수 없이, ‘서평’이 아닌 ‘책소개’다.

경상대 경제학과에 정성진 교수가 내놓은 『마르크스와 트로츠키』의 첫째 가는 장점은 그 필자가 한국 사람이라는 점이다.

   
 
한국에 트로츠키주의를 소개한 이들은 크리스 하먼, 토니 클리프, 알렉스 캘리니코스 같이 영국 사람들이었는데, 트로츠키가 영국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아는 ‘교양인’이라 할지라도,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당원들의 눈으로 번역된 트로츠키보다는 한국 사람이 쓴 트로츠키가 훨씬 손쉬울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 당원에게는 나름의 특수성이 있어 마땅하므로 정성진의 책은 공간적 시간적 번역을 해야 하는 독자의 수고로움을 덜어 준다.

하지만 『마르크스와 트로츠키』가 한국 경제에 대한 트로츠키주의적 해석은 아니다. 부지런한 독자라면, 정성진이 ‘영구군비경제론’이나 ‘장기파동론’이라는 방법틀을 이용해 한국 경제를 분석한 『마르크스와 한국경제(책갈피, 2005)』를 이미 읽어 보았을 것이고, 아직 읽지 않은 독자라면 여러 가지 주의(主義)를 다루고 있는 이 책, 『마르크스와 트로츠키』를 먼저 읽은 후에 그 책을 보는 것이 더 좋을 듯 하다.

『마르크스와 트로츠키』의 1부에서 3부까지는, 요즘은 찾아 보기 힘든 경제사상사 책 삼아 읽어도 훌륭하다. 정성진은, 리카르도, 제2인터내셔널의 이론가들, 레닌, 포스트모너니즘과 알튀세르,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 브레너의 세계경제위기론, 네그리의 『제국』, 그리고 신정완, 이병천, 장상환 같은 ‘케인즈주의’ 학자들에 비판의 칼날을 겨눈다. 19세기 초 이래 정치사회운동의 이론적 토대가 됐던 경제이론을 일별하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은 대학 학부 수준에서 정치경제학 기초를 이수한 분들이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쟁점들을 공부하는 ‘고급 정치경제학’ 과정이나, 대학원 수준의 ‘마르크스주의 연구’ 과정의 교재로도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머리말).”

4부는 트로츠키의 사상에 대한 소개인데, 물론 ‘트로츠키주의’의 눈으로 해석된 트로츠키 사상이다. 이를 위해 정성진은, 러시아혁명이 일어난 해에 태어나 2000년에 사망한 토니 클리프의 생애를 되짚으며, 트로츠키를 추종하는 사람들 사이의 분열과 투쟁을 통해 ‘트로츠키주의’를 도출해낸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인 15장 ‘21세기 사회주의와 참여계획경제를 위하여’에서는 계산 가능성, 기술 혁신 문제 등을 다루며 사회주의 대안 경제의 원칙을 제시한다.

정성진의 책에는 눈에 거슬리는 과장이 적지 않다. “요즘 세계 진보 진영의 화두는 …… 차베스가 제창한 21세기 사회주의”라거나 그로 인해 “사회주의라는 단어가 다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11장)”는 언급은 ‘국제사회주의자들(IS)’끼리의 유행인지는 몰라도, 내가 알고 있는 ‘세계 진보 진영’에서는 과히 그렇지 않다.

“스탈린주의는 청산되기는커녕 알튀세르주의, 포스트모더니즘, 사회민주주의, 시장사회주의, 자율주의 등 ‘포스트스탈린주의’ 경향으로 변이되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진보 학계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다(머리말)”는 인식도 과장스럽다.

그런 조류들이 스탈린주의 흥망성쇠와 무관하지는 않겠지만, 내게 24시간쯤의 시간만 주어져도 포스트모더니즘이나 시장사회주의 같은 온갖 조류들과 트로츠키 이론의 연관성도 능히 증명해낼 수 있다. 비판의 대상이 스스로 무슨 주의라거나 무슨 주의가 아니라는 관념에 묶여 있지 않는 한, 무슨 주의라는 낙인은 요즘 시류에서는 비판 논거로 별 쓸모가 없을 듯하다.

여러 진보적 사회운동에 간여하고 있는 진보학자들이 거시적 변혁 전망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는 정성진의 비판은 타당하다. 민주노동당의 대표적 이론가인 장상환 교수(경상대 경제학과, 진보정치연구소장)는 “규모가 크고 복잡한 경제에서는 계획의 한계가 명확하다. 정확한 정보 수집의 불가능과 동기 유발의 어려움, 개인의 개성적 발전의 저해 등의 문제가 있는 것이다(「한국경제의 위기와 민주노동당의 대안」, 2005)”라며, 전통적 시각을 고수하지 않고 있음을 드러낸다.

하지만, “정보화의 핵심인 네트워크 경제의 발전에 따라 아래로부터 참여 계획의 실행 가능성이 20세기보다 오히려 더 높아졌다(11장)”라거나, “가령 모든 기업의 재무제표를 웹사이트에 공개하는 것을 의무화한다면, 구글과 같은 검색엔진을 통해 이를 수집 분석하여 전국적 및 전세계적 규모에서 생산과 투자를 계획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15장)”는 정성진의 주장도 장상환과 마찬가지로 사회주의를 계산 가능성으로 치환한 것은 아닌가?

트로츠키뿐 아니라, 혁명적이든 개량적이든 모든 사회주의자들은 계산 가능성 같은 행정적 요소가 아니라, 사회주의적 경제 제도의 지배적 지위에서 나타나는 자연사적 경제운동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정치적 권능을 사회주의의 요체라고 보지 않았는가?

스탈린주의가 트로츠키를 곡해한 것처럼, ‘트로츠키주의’ 역시 읽고 싶은 트로츠키만을 읽는다. 정성진은 후기 레닌을 ‘경제주의로의 후퇴’라며, 레닌의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론’과 신경제정책을 예로 든다(4장). 그런데 트로츠키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 하에서는 - 오로지 그 밑에서만! - 민주적 문제의 사회주의적 문제로의 성장이행이 불가피한 것이 되었다(「러시아혁명사」, 1932)”며 긍정한다.

정성진은, 신경제정책이 “진지하게 장기간에 걸쳐 실시될 것”이라는 레닌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인용한다. 그런데 트로츠키도 “퇴각이되 항복은 아니(「신경제정책과 세계혁명의 전망에 대한 보고」, 1922)”라며 신경제정책을 과도단계로 인정하고, 그 과도기가 “한 세기 또는 반 세기 동안(「코민테른 강령초안 - 기초 비판」, 1928)” 계속되리라는 예측도 제시한다. 레닌과 트로츠키의 실천적 문제의식에서 신경제정책은 ‘과도단계, 시장요소, 유럽혁명과의 관계’로 동일하게 존재했었다. 그래서 트로츠키는 ‘트로츠키주의’와 다르다.

정선진의 책은 그가 비판하는 ‘스탈린주의 교과서’의 문법을 따른다. “참여계획경제에서는 …… 배분할 수 있다 …… 참여계획경제에서는 …… 신속할 수 있다 …… 참여계획경제에서는 …… 귀결될 것이다(15장).” 트로츠키주의 경제이론대로 따르면 다 해결되고, 잘 될 것이다!?

이 인용문의 ‘트로츠키’를 ‘스탈린’으로만 바꾸면 국가사회주의체제론의 자동 해결론과 본원적 우월론에 완벽하게 일치한다. 매사가 그리 잘 풀린다면야 뭔 걱정이 있겠는가?

“트로츠키가 추구한 ‘아래로부터 사회주의’의 관점에서 경제학비판을 중심으로 마르크스의 방법과 마르크스주의 역사를 복원하고, 이에 기초하여 최근 우리나라 진보 진영의 지배적 경향들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내용이다(머리말).”

그래서인지 정성진은 이 책의 초교지를 ‘다함께’에 보내 조언을 구했다. 나는 ‘다함께’가 트로츠키의 주장을 잘 실천하고 있는지 의문스러울 때가 많다. 그들이 트로츠키를 잘 알고 자주 인용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주체사상파와 어울려 논다는 추문이 ‘트로츠키주의’의 반스탈린주의 투쟁과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인지, 자유게시판도 없는 ‘다함께’의 독특하고 해괴한 문화가 어떤 식으로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것인지를 모르겠다.

레닌이나 스탈린보다 ‘아래로부터’를 더 많이 강조한 트로츠키는 크론슈타트 반란과 노동자 파업의 파괴자이기도 하다. 또, 현실 정치인으로서의 트로츠키는 노동조합과 평의회의 자율성에 반하는 결정과 실천을 했다. 내가 굳이 트로츠키의 과거를 끄집어내는 것은 걸출한 혁명가였던 그를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트로츠키주의’ 교과서의 문구들을 신봉하는 것보다는 트로츠키의 실천적 굴절을 연구하는 것이 트로츠키가 꿈꾸었던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를 살려내는 바른 방법이라고 주장하기 위해서이다.

*이 글은  <프레시안>에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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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영 서평 반론] "너스레보다 정독이 중요하다"
 
 
 

정성진 교수의 책 『마르크스와 트로츠키』에 대한 서평 형식으로 쓴 이재영 씨의 글은 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일관된 문제의식을 포착하지 못했다. 그는 그 동안 스탈린주의(NL과 PD)와 각종 포스트스탈린주의(포스트모더니즘, 자율주의, 케인스주의 등)에 맞서 트로츠키를 지렛대로 고전 마르크스주의의 혁명적 전통을 새로운 대안으로 구체화하려는 정 교수의 노력을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

물론 정 교수의 문제의식과 논의 과정, 그리고 잠정적 결론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정 교수의 노력에 대한 객관적 평가 정도는 할 수 있을 법한데, 이재영 씨가 찾아낸 이 책의 장점이라곤 “한국 사람이 쓴 트로츠키에 대한 책”, 혹은 엉뚱하게도 “요즘은 찾아 보기 힘든 경제사상사 책”이라는 것뿐이다. 그런 다음 이재영 씨는 “서평이 아닌 책 소개”를 하겠다는 자신의 말을 어기고, 정 교수와 그가 지지하는 ‘다함께’를 “트로츠키와 다른 한국의 트로츠키주의”라며 비난하는 것으로 지면을 채웠다.

이재영 씨는 “정성진의 책에는 눈에 거슬리는 과장이 적지 않다”며 먼저 “요즘 세계 진보진영의 화두는 (…) 21세기 사회주의”라거나 “사회주의라는 단어가 다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고 보는 것은 ‘다함께’나 정 교수와 같은 “국제사회주의자들(IS) 끼리의 유행”일 뿐이라고 치부한다.

하지만, 1991년 소련, 동유럽 붕괴 이후 이른바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자본주의 이외 대안 부재론’(TINA)이 득세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난 듯했던 ‘마르크스의 유령’이 지난 1997~98년 세계경제 위기와 함께 다시 살아나면서 ‘마르크스로 돌아가자’(Return to Marx)가 지난 세기말 “세계 진보진영의 화두”였음은 이재영 씨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1999년 시애틀 전투 이후 반신자유주의 대안세계화 운동, 그리고 21세기 들어 반전 반제국주의 운동이 고양되고 라틴아메리카에서 차베스를 비롯한 좌파 정권이 들어서면서, ‘마르크스로 돌아가자’에서 더 나아가 ‘21세기 사회주의’가 요즘 세계 진보진영의 화두로 되고 있음은 마르크스와 사회주의에 대한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인터넷을 조금만 서핑해도 금방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21세기 사회주의’를 제창하고 있는 차베스의 인기가 전세계적으로 높은 사실에서 뿐만 아니라, 올 가을 예정된 ‘제5차 국제마르크스대회’(Congress Marx International V)의 대회주제가 ‘대안 세계화/반자본주의’이고, 우리나라 좌파 논객들의 대표적 연합체인 ‘맑스코뮤날레’의 올해 대회주제 역시 ‘21세기 자본주의와 대안 세계화’인 데서 알 수 있다.

게다가 최근 <파이낸셜 타임스>(2006.12.28)나 <중앙일보>(2007.1.4) 같은 대표적인 국내외 보수 언론들조차 세계화의 진전과 함께 마르크스주의, 특히 트로츠키주의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음을 보도한 데서 알 수 있다.

심지어 한국에서도 옛 소련식 '국가사회주의'의 오류와 서구 사회민주주의의 한계를 넘어서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민주노동당이 등장했다. 물론 '민주적 사회주의'의 내용에 대한 이해는 저마다 다르지만, 한국 사회의 대안 사회 모델 중의 하나로 사회주의가 거론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또,이재영 씨는 정 교수가 “~주의”라고 낙인을 찍는다고 힐난하지만 정 교수의 책, 특히 제3부 ‘마르크스주의적 비판의 자원들’을 조금만 훑어보아도 정 교수가 자신과 다른 이론적 정치적 입장들에 대해 풍부한 논거에 입각한 논리적 비판을 하고 있음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재영 씨가 계획경제의 불가능성을 반박하는 정 교수의 주장을 1930년대의 사회주의 계산 논쟁과 비교하고 더 나아가 이와는 무관한 1921년의 신경제정책과 연결시키는 것을 보면 어이가 없다.

그러나 정 교수는 이재영 씨가 주장하듯이 “사회주의를 계산 가능성으로 치환”하고 있지 않다. 정 교수는 오늘날처럼 고도로 발달한 복잡한 현대 경제에서는 시장 없이는 계산이 불가능하다며 시장 폐지(즉, 사회주의)의 불가능성을 주장하는 ‘자본주의 이외 대안 부재론’을 논박하기 위해 시장의 매개 없이도 참여계획경제 방식으로 계산과 경제의 조절이 가능함을 보였을 뿐이다.

또,이재영 씨는 레닌과 트로츠키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신경제정책을 정 교수가 경제주의라고 비판한 것을 거론하며, 트로츠키 자신과 정 교수의 트로츠키주의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1920년대 소련의 신경제정책과 관련하여 정 교수가 문제삼은 것은, 이 책 14장에서 보듯이, 신경제정책의 시장사회주의론적(부하린) 혹은 일국사회주의론적(스탈린) 정당화였으며, 당시 혁명의 고립과 노동자계급의 해체의 조건에서 신경제정책과 같은 전술적 후퇴의 필요성 자체를 부인한 것은 아니었다.

또,이재영 씨는 “레닌이나 스탈린보다 ‘아래로부터’를 더 많이 강조한 트로츠키는 1921년 크론슈타트 반란의 파괴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크론슈타트 수병 반란 당시 트로츠키는 우랄산맥 지방에 출타 중이었고, 그곳에서 곧바로 모스크바로 가서 제10차 당대회에 참가했다. 진압 책임자는 서부전선 담당 적군 사령관 미하일 투하체프스키였다.

1917년 10월 혁명 당시 혁명의 최정예 부대였던 크론슈타트 수병과 1921년의 수병은 계급 구성이 달랐다. 페트로그라드의 공업 노동자들과 가장 선진적인 농민들로 이루어진 1917년의 수병들은 내전 동안 혁명을 방어하며 전투를 이끌었기 때문에 대부분 죽거나 부상당했다. 반면 1921년의 수병은 새로 징집된 농민 신병들이었다.

1921년 크론슈타트 수병 반란은 반혁명 위협이 사라진 뒤 노동자와 농민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벌어진 사건이었다. 소비에트 내에서 볼셰비키를 제거하자고 주장하는 크론슈타트 수병들의 요구는 반혁명 세력의 복귀를 부르는 신호나 다름없었기에, 볼셰비키가 이를 들어줄 수는 없었다. 더욱이 백군과 제국주의 열강의 지배계급들은 크론슈타트 수병들의 반란을 반혁명의 발판으로 여기고 있던 참이었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 벌어진 크론슈타트 수병 반란을 진압한 것은 '아래로부터' 사회주의 노동자 혁명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비극적 결정이었고 불가피한 폭력이었다.

이재영 씨의 논법은 역사적 사실을 구체적 맥락에서 떼어내 그 자체로만 파악하고 논의해야 한다는 역사적 추상주의의 전형이다. 그러나 이것은 마치 사람이 죽은 뒤 앙상한 뼈만 남은 것을 두고 '같은 뼈조각이니 사람과 원숭이가 같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트로츠키에게도 약점과 실수가 있었고 또 1956년 헝가리혁명에 대한 소련의 진압을 옹호하거나 1989년 톈안먼 항쟁을 진압한 중국 지배자들을 옹호한 일부 트로츠키주의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국제 노동계급의 아래로부터 자기해방이라는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정수를 보존하고 후대 사회변혁 운동가들에게 전수하려 한다는 점에서 트로츠키와 정 교수는 근본적으로 일치한다.

한편, 이재영 씨는 ‘다함께’가 “주체사상파와 어울려 논다는 추문” 운운하며, ‘다함께’가 “트로츠키의 주장을 잘 실천하고 있는지 의문스러울 때가 많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함께’가 북한을 사회주의가 아닌 국가자본주의라고 주장한다는 사실과 북한 지배자들의 억압에 반대하고 탈북자들을 환영한다는 사실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남한의 범자민통 동지들은 대체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하고 피착취·피억압 대중의 민주적 권리를 옹호하며 사회 변화를 위해 투쟁하는 우리 운동의 일부다. ‘다함께’가 이들의 전략과 사상에는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이들과 함께 연대해서 투쟁하는 것은 전혀 잘못이 아니다. 오히려 ‘다함께’는, 이재영 씨의 주장과 달리, 트로츠키가 말한 공동전선 정신에 부합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는 셈이다.

이재영 씨는 또 “자유게시판도 없는 ‘다함께’의 독특하고 해괴한 문화” 운운하며 ‘다함께’가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를 실천하지 않는 것처럼 몰아갔다. 그러나 자유게시판이 없는 것이 ‘다함께’만의 “해괴한” 특징인가? 또,자유게시판이 없다는 것이 ‘다함께’와 그 정치적 청중 사이의 관계가 민주적이지 않다는 근거가 될 수 있는가? 자유게시판이 있는 그 수많은 단체와 기관들이 과연 ‘다함께’보다 민주적인가?  ‘다함께’ 홈페이지에는 대표 연락처와 메일 주소가 있고, ‘다함께’의 주장과 그 청중과의 의사소통을 위해 <맞불>을 발간하고 있다.

오히려,정치 사상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공공연히 드러내지 않고 뒤에서 쑥덕공론을 펼치거나 지지하고 연대해야 할 운동을 그 지도 세력의 정치사상을 핑계되며 지지하지 않는 종파주의가 진정한 문제가 아닐까?

물론 진보진영 내부에도 다양한 차이들, 상충되는 정치적 노선들이 존재하며, 이들 간의 비판과 토론은 역사의 진보를 앞당기는 것으로 존중되고 고무되어야 한다. 『마르크스와 트로츠키』가 입장이야 어떻든 우리나라 진보 학계에서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정말 오랜 만에 나온 역작임은 이재영 씨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재영 씨는 자신이 지지하지도 않는 트로츠키의 '아래로부터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척하며 너스레를 떨 것이 아니라, 최소한 “24 시간 쯤”은 투자해서 책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는 것이 우선순위였을 것이다.

그런 다음 자신이 속한 사회민주주의 혹은 케인스주의의 입장에서 '다함께'에 대해서든 정 교수에 대해서든 인식과 대안에서의 차이와 논리적 비판을 분명하게 제기했더라면, 21세기 우리나라 진보의 대안 모색을 위한 토론의 발전에 약간이라도 기여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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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2월 02일 (금) 08:56:12 이정구
 
2007년 01월 29일 (월) 14:06:38 이재영 기획위원

누가 역사를 날조하는가?
[트로츠키 논쟁] 추락할 것이 뻔한 고물 비행기에 동승하라니
 
 
 

이재영 씨(이하 존칭 생략)는 내가 “악질적인 역사 날조”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한다. 누가 그런지 크론슈타트 반란 문제부터 살펴보자.

1921년 크론슈타트 반란과 그 진압은 우익과 자유주의자, 이재영을 비롯한 온갖 사회민주주의 경향은 물론 일부 아나키스트들이 애호하는 쟁점이다. 이 사건이 볼셰비키가 자기 자신의 지지자들을 공격한 대표적 사례이자 러시아 혁명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레닌, 트로츠키 정치와 스탈린 공포정치의 연속성 명제를 가장 잘 뒷받침해 주는 호재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재영은 “크론슈타트 반란자들이 ‘농민 신병’이라서 반란이 일어났다는 말은 거짓”이라고 단정한다. 그런데 내가 크론슈타트 반란자들 대부분이 ‘농민 신병’이라고 말한 것은 실은 크론슈타트 반란 연구의 고전인 <1921년 크론슈타트>의 저자이자 반란군에 호의적인 아나키스트 역사가 폴 아브리치 저작에 근거한 것이다. 그리고 최근 소련 붕괴 후 공개된 비밀 문서들은 이 통설의 타당성을 입증하고 있다.

또, 이재영은 크론슈타트 반란 직전인 “2월 페트로그라드에서는 푸틸로프 공장을 비롯한 노동자 파업이 줄을 이었고, 크론슈타트 반란자들은 파업 노동자들과 연계하며 그들의 요구 사항을 봉기에 내걸었다”고 주장하면서 크론슈타트 반란을 마치 ‘제3의 노동자 혁명’처럼 미화하는데 이 역시 사실과 다르다.

아브리치에 따르면, 크론슈타트 반란이 일어났을 때는 페트로그라드의 파업은 마무리되고 있었고, 노동자들은 반란을 지지하기는커녕 반란 진압에 동조했다. 최근 공개된 러시아 문서들도 크론슈타트 기지의 노동자들이 반란에 반대하는 파업을 벌인 사실을 확인하고 있다.

사실, 내전 말기에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인 것은 주로 식량 부족 때문이었는데, 이들이 식량 배급을 더욱 악화시킬 게 뻔한 ‘곡물 징발 중단’을 요구했던 크론슈타트 반란을 지지할 리는 만무하지 않은가?

   
 ▲ 1921년 크론스타트 반란 당시의 자료사진 
 
이와 관련해, 이재영은 당시 “‘노동자 반대파’들이 트로츠키를 짜르 시대 반동 장군이었던 트레포프에 견주어 비아냥댔”다면서, 그 증거로 바로 그 문장 다음에 “총알을 아끼지 말라” 운운한 <크론슈타트에 관한 진실>을 인용한다. 그런데 이재영은 그 인용문을 쓴 것은 ‘노동자 반대파’가 아니라 크론슈타트 반란 지도부인 ‘임시군사혁명위원회’인 것 정도는 알고나 인용했어야 했다.

또, 이재영은 자신이 크론슈타트 반란군과 함께 노동자 민주주의의 구현체로 애지중지하는 ‘노동자 반대파’조차 크론슈타트 반란 사태가 터지자 당시 10차 당대회에 참석했던 ‘좌익공산주의’ 등 다른 반대파들과 함께 투하체프스키의 진압 부대에 자원 입대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어야 했다.

이재영은 또, “크론슈타트 반란자들이 ‘볼셰비키 없는 소비에트’를 주장했다”는 내 주장도 “거짓”이며 “악질적인 역사 날조”라고 공격한다. 하지만 볼셰비키와 공산당에 호의적일 리 만무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도 반란군이 “경제 개혁 이외에도 ‘볼셰비키 없는 소비에트’와 … 공산당 독재의 종식 … 등을 요구했다”고 서술한다. 실제로, 반란군은 군대, 공장 등에서 볼셰비키 기구들을 폐지하라고 요구했고, 당시 크론슈타트 함대에 있던 볼셰비키 정치위원 등 수백 명을 체포 구금했다.

물론 반란군이 내건 15개 강령에 “소비에트 선거”가 포함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이 그 반란군들이 “아래로부터 사회주의”를 지향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는 되지 못한다. 어떤 초짜 운동가도 어떤 조직이나 운동의 정치적 성격을 그들이 내건 슬로건만을 갖고 판단하지 않는다. 진지한 역사가는 박정희와 공화당이 “한국적 민주주의” 기치를 내걸었다고 해서 그들을 민주주의자라고 보지 않는다.

크론슈타트 반란은 다름 아닌 그 크론슈타트 기지의 노동자들조차 반대했던 반란이고, 1920년 노동조합 논쟁에서 트로츠키에 맞서 당시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가장 강력하게 옹호했던 ‘노동자 반대파’까지 무력 진압에 동참한 반란이다. 그런데 그 반란을 도대체 무슨 근거로 “아래로부터 사회주의”를 지향한 ‘제3의 노동자혁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재영의 주장처럼 크론슈타트 반란군이 “자유로운 소비에트 선거”와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를 요구하고 실현하려 했다면, 도대체 왜 서방 제국주의 열강들, 로마노프 왕조의 복귀를 노리는 러시아 왕당파들, 자본가들의 자유주의 정당인 입헌민주당,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 등이 모두 크론슈타트 반란을 지지했을까? 그들이 언제부터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지지자들이 된 것일까?

이재영의 주장은 이처럼 역사적 사실을 구체적 맥락에서 이해하지 않고 따로 떼어내 그 자체로만 파악하려는 역사적 추상주의의 발로이다. 예컨대 이재영은 내전 시기 트로츠키가 제기했던 노동자의 군대화나 노동조합의 국가기관화 주장과 관련해 이 주장들이 제기된 역사적 맥락은 고려하지 않고, 당시 출판된 트로츠키의 <테러리즘과 공산주의>의 구절(트로츠키 자신은 곧 자기비판을 하며 이 주장을 철회했다)을 인용하면서 마치 트로츠키가 내내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부정”한 사람인 양 암시한다.

비판 대상에 대한 무지

이재영은 트로츠키가 1920년대 스탈린주의 관료에 맞서 당내 민주주의, 소비에트 민주주의의 부활을 위해 투쟁하고 1936년 <배반당한 혁명>에서는 다당제를 주장한 사실(이는 정성진의 <마르크스와 트로츠키>에 잘 서술되어 있다)은 피해 간다.

‘다함께’는 물론 정성진도 트로츠키 사상의 적잖은 부분에 대해, 또 다양한 정설파 트로츠키주의자들에 대해 비판을 제기할 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가 입지하고 있는 국제사회주의 경향의 이론과 정치에 대해서도 중요한 쟁점들을 제기하고 있는데, 이재영은 이 역시 전혀 “보지 않는다”. 이재영의 억측과는 반대로 “흠집 없는 권위로의 도피”만큼 ‘다함께’의 정치와 거리가 먼 것은 없다.

‘다함께’는 이재영이 주장하듯이 우리와 다른 정치적 입장들에 대해 “트로츠키주의가 아니기 때문에 옳지 않다”고 결코 매도하지 않는다. 예컨대 정성진은 <마르크스와 트로츠키>에서 그가 21세기 사회주의의 대안 구상을 위해 중요한 자원으로 고려하는 참여계획경제의 세 가지 모델(‘파레콘’, ‘협상조절’, ‘노동시간 모델’)이 모두 트로츠키주의에 대해 적대적임에도 그들로부터 배울 것은 배운다.

또, 같은 책에서 정성진은 때로 ‘다함께’보다 더 나아가, 소련 국가자본주의론의 이론적 발전을 위해 심지어 알튀세르주의자들로부터도 수용할 것은 수용한다.

정성진과 ‘다함께’는 북한의 사회 체제를 노동자 권력과 혁명으로 타도되어야 할 국가자본주의적 착취․억압 체제로 규정하지만, 남한의 주사파가 북한 체제를 지지한다고 해서 이들을 이재영처럼 하나의 적으로 대하는 종파적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그러기는커녕, 이들이 반신자유주의, 반제국주의, 반전 투쟁에 적극 참여하는 한 이들과도 연대한다.

이재영은 “‘다함께’ 같은 자칭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스탈린주의’에 대항하여 투쟁한 망명객 시절의 언행에 더욱 주목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성진은 <마르크스와 트로츠키>에서 트로츠키 사상의 정수는 1906년에 발표한 영구혁명론에 있는가 하면, “망명객 시절”, 즉 1930년대의 “언행” 중에도 ‘관료적으로 퇴보한 노동자국가’론이나 섣부른 제4인터내셔널 창건과 같은 오류들이 적잖이 있다고 지적한다. 물론 반나치 공동전선의 필요성에 대한 글이나 프랑스, 스페인 인민전선 비판에 대한 글은 실로 탁월하다.

이재영은 “스탈린주의라 불리는 체제의 이론적 기초와 정치적 토대의 상당 부분은 트로츠키 자신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라는 자유주의자들과 일부 아나키스트들의 주장을 반복한다. 그런데 정성진이 각종 자료와 논거를 동원해서 비판하고 있는 대상은 바로 이와 같은 종류의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마르크스-레닌-룩셈부르크-트로츠키)과 스탈린주의 간의 연속성 명제이다.

1989~91년 붕괴된 소련권 사회의 실체가 사회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변형인 관료적 국가자본주의일 뿐임을 논증하는 작업은 정성진의 책이나 ‘다함께’의 이론적 작업의 핵심적 부분인데, 이재영은 이에 대해 완전한 노코멘트이다. 그러고는 사회주의 실험의 역사적 실패를 이유로 “실존하는 구체에서 검증되지 않은 추상으로 내려 앉았”다고 주장한다.

정성진이 옛 소련의 국가자본주의적 본질을 논증하려는 시도, 그리고 이를 매개로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과 스탈린주의 간의 질적 단절을 논증하려는 시도, 그리고 이를 기초로 21세기 조건에서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의 창조적 발전과 한국적 착근을 모색하는 것에 대해 사회민주주의자인 이재영은 물론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왜 어떤 점에서 동의하지 않는지를 논리적으로 근거를 대며 지적해야지, 이런 시도와 모색이 마치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애써 간과하며 논쟁을 원점으로 되돌려서는 우리 진보 진영의 이론과 정치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분파주의

한편, 이재영이 ‘다함께’와 범자민통의 “야합” 또는 “연대” 운운하면서, ‘다함께’가 당당하다면 “‘주사파와 어울려 논다’는 지적에 그저 ‘그렇다’ 라고만 답하면 되는 것”이라고 다그친다. 그러나 이재영이 인용했듯이, 나는 지난번 글에서 ‘다함께’가 범자민통 동지들과 “함께 연대해서 투쟁하는 것은 전혀 잘못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다. 광범한 대중운동을 건설하려면 자신과 이데올로기가 다른 사람들과도 기꺼이 함께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야합’이라면 ‘다함께’는 ‘야합’을 결코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분파주의에 눈이 멀어 연대와 투쟁의 대의를 종파적으로 외면하는 것은 ‘다함께’의 정치와 거리가 멀다. 게다가 ‘다함께’는 민주노동당 선거에서 범PD 계열일지라도 지난해 하반기 이래 최대 쟁점인 북핵과 일심회 사건과 사회연대전략 문제에서 우리가 보기에 올바른 입장을 취하는 사람이면 그를 지지했고, 민주노총과 현 금속선거에서는 NL계열이 아니라 노힘 등 옛 PD계열 내 좌파를 지지하고 있다.

이재영이 ‘다함께’의 정치를 “마르크스로 돌아가자”는 “마르크스 훈고학”이라고 딱지를 붙이는 것은 번지수를 잘못 찾아도 한참 잘못 찾은 것이다. ‘다함께’ 신문이나 홈페이지(www.alltogether.or.kr)를 잠깐 둘러보아도 ‘다함께’가 “마르크스 훈고학”자들이기는커녕 ‘지금 여기에서’ 구체적인 정세 분석과 반전․반제국주의․반자본주의 투쟁에 헌신하는 투사들임을 금방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재영 자신이 경멸해마지 않는 “마르크스 훈고학”도 이재영처럼 “아래로부터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척하면서도 역사와 사상을 그 전체 역사적 맥락 및 진화 과정 속에서 판단하지 못하고, 뻔히 보이는 것조차 보지 않고, 자기 맘에 드는 것만 골라 보고, 그것도 멋대로 날조해서 진보를 호도하는 사람들을 교정하기 위해서는 때로 유용하다.

사회민주주의적 본질

이재영은 “우리는 마르크스주의라는 지평에서 이륙을 위한 가속을 시작해야 한다. … 우리의 이륙이 성공했을 때 그 비행기에 어떤 이름이 새겨질지를 알 필요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재영의 문제의식을 추적하다 보면 이재영이 타고 있는 ‘비행기’의 이름을 짐작할 수 있다. 이재영은 “지난 150여 년을 거슬러 반추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말했지만, 지난 역사를 돌아보면 이 비행기의 이름은 분명히 사회민주주의다.

이는 이재영이 민주노동당의 집권이 “겨우 한두 걸음을 내딛는 것이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로의 대장정이 아니다”라거나, 국유화 계획을 “앞으로 오랫동안 가질 필요도 없다”는 말에서 분명히 확인된다. “낡은 마르크스주의에서 벗어나자”며 이재영이 제시한 것은 전혀 새롭지 않은 사회민주주의행 비행기 티켓이다.

그러기에 이재영에게는 “요즘 세계 진보 진영의 화두”로 “사회주의라는 단어가 다시 인구에 회자하고 있다”는 정성진의 지적이 “현실과 동떨어진 상황 파악”처럼 “눈에 거슬렸던” 모양이다.

이재영은 글 끝 부분에서 “무엇이 혁명을 배반케 했는가?”하고 자문하고 그 답은 “세상에 대한 무지, 무엇보다도 자신의 무지에 대한 무지”라고 주장하고, “우리는 사회혁명을 이룰 정보와 지식, 확신과 권위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우리의 어림과 나약함, 무지를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이재영은 고전 마르크스주의 유물론적 방법을 버리고 계급투쟁과 역사 발전을 지식의 문제로 환원하는 관념론을 채택했음이 분명히 확인된다. 이재영이 이륙을 시도하고 있다는 그 개량주의적 관념론의 비행기는 이미 지난 20세기 동안 무수히 되풀이된 이륙 실험에서 형편없이 실패한 바 있다.

이재영이 글 끝 부분에서 “아직도 멀었다”며 일갈하며 자신의 “무지”를 시인한 것이 진심이라면, 그 이륙은커녕 추락할 것이 뻔한 고물 비행기에 동승하라고 어쭙잖은 말장난과 거짓말로 호객하는 짓은 당장 그만 두고, 먼저 마르크스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역사에 대한 자신의 “무지”부터 깨쳐야 할 것이다.

 
2007년 02월 12일 (월) 09:03:31 이정구 / '다함께' 회원 redian@redia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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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세대의 해방구 '강촌'에 가다

 

 

 

7080세대의 해방구 '강촌'에 가다
강원도 춘천 신남면 강촌에서 옛사람의 흔적을 찾다
텍스트만보기   강기희(gihi307) 기자   
 
 
 
▲ 경춘선 기찻길, 혼자 걸어도 좋던 시절이 있었다.
ⓒ 강기희
 
강촌에 간다. 오랜만의 일이다. 강촌으로 가는 길에 떠오르는 이미지가 많다. 그렇게 생각하니 우리의 언어 중에서 생각만 해도 식욕이 돋거나 그리워지고 또는 마음이 따듯해지는 것들이 많다.

강촌이란 말도 그렇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강촌은 내게 청춘의 해방구이자 첫사랑 같이 아련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오랜 세월 잊고 살아도 가슴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고 또 불현듯 가보고 싶은 곳이 강촌인 것이다.

80년대 강촌과 함께 해방구 역할을 했던 백마는 일산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숱한 사연들도 함께 사라졌다. 신도시가 생기기전 나는 일산 백마역 인근인 풍동의 한 농가에 살았다.

 
▲ 북한강을 끼고 달리는 경춘선 기차, 다음 내리실 역은 강촌역입니다.
ⓒ 강기희
 
걸어서 십여분만 가면 백마역과 카페 '화사랑'이 있었고 '숲속의 섬'이 있었다. 그곳에 모인 청춘들은 당시의 시국에 대해 토론하며 울분을 토했다. 당시 쏟아냈던 수많은 언어들은 신도시의 화려함 속에 묻혔다.

그 시절 백마역으로 오기 위해 신촌역에 모여 있던 젊은이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형체가 사라진 신촌역은 그에 대한 답을 하지 못한다.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 강촌리, 강촌으로 가는 길은 아무래도 경춘선 기차를 타고 가는 것이 옛추억을 되살리기에 좋다. 기차 안의 풍경은 예전 같지 않지만 기찻길과 강촌역은 그 자리에 있다.

 
▲ 기차에서 내리는 여행객들.
ⓒ 강기희
 
예전 서울 성북역에서 출발하는 비둘기호를 타면 기차 안은 물론이고 통로와 계단까지 젊은이들로 가득 찼다. 실내는 담배연기로 인해 숨쉬기조차 힘들었지만 소박한 게임만으로도 모두들 즐거웠다. 그러나 통근 열차로 명맥을 유지하던 그 기차마저 얼마 전 운행을 멈추었다.

성북역에서 출발한 승객의 절반은 대성리역에서 내렸고 나머지는 강촌역에 내렸다. 요즘도 그러하지만 그 모습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통기타를 둘러메고 다니는 젊은이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고 라면상자를 등짝에 지고 내리는 신입생들도 보이지 않는다.

M.T 문화가 바뀌며 강변에 둘러앉아 통기타를 치는 젊은이도 없으며 기타소리에 맞춰 부르는 노랫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고전이 되어버린 당시의 문화는 빛바랜 사진 속에서나 확인이 가능하다.

예전의 모습을 잃어버린 대성리와 강촌

 
▲ 자전거 대신 4륜 오토바이가 더 인기다.
ⓒ 강기희
 
2인용 자전거를 타고 구곡폭포나 등선폭포 또는 강변길을 달리는 청춘남녀의 모습도 예전 같지 않다. 강변길이 넓게 포장되면서 차들이 속도를 내는 까닭이다.

강촌의 모습도 많이 변했다. 예전 민박집 아주머니를 따라 가던 길은 꼬리를 무는 차량으로 인해 산만하기 그지없다. 여관과 노래방 또 음식점들은 얼마나 생겼는지 강촌만이 가지고 있던 예전의 이미지는 사라지고 없었다. 강촌역을 빠져나오는 남녀에게 말을 건다.

"강촌까지 놀러온 이유라도 있어요?"
"기차타고 갈 만한 곳이 여기밖에 더 있나요?"


남자의 말을 들으니 사실 그러했다. 서울에서 가까운 기차여행지가 많이도 사라졌다. 20대 초반의 남녀는 허리를 감싸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강촌역도 많이 변했다. 플랫폼 공사가 있은 이후 풍경이 예전만 못하다. 강촌에서 변하지 않은 것은 낙서문화이다. 벽을 가득채운 낙서는 기다리는 이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 낙서는 그 시절의 역사다. 누군들 한 때 뜨겁지 않았던 사람 있었을까.
ⓒ 강기희
 
강촌에서 변하지 않은 것은 또 하나 있다. 강촌역 플랫폼을 나와 골뱅이처럼 생긴 철제 계단을 내려가면 오래된 카페 하나가 있다. 80년대부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윌 카페'다.

윌 카페는 몇 해 전만 해도 대학가요제 출신 그룹사운드들이 자주 공연을 했던 곳이다. 그때만 해도 카페는 <나 어떡해>나 <구름과 나> 같은 노래가 매일 연주되었다. 지금은 올드팬이 된 당시의 젊은이들은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나 어떡해>를 따라 불렀다.

요즘엔 그러한 공연마저 자주 열리지 않는다. 다들 먹고 살기 바쁜 탓이다. 무대엔 아직도 그들이 치던 드럼과 전자 기타가 남아있다. 요즘엔 윌 카페의 주인인 가수 최영엽씨가 혼자 라이브 공연을 한다.

 
▲ 드럼은 오늘도 제 스스로 소리를 내지 못한다.
ⓒ 강기희
 
최영엽씨는 본인의 노래가 있지만 들국화 멤버 전인권씨의 노래를 즐겨 부른다. 전인권씨와는 친구 사이란다. 노래방 문화가 강촌까지 밀려들면서 라이브카페를 찾는 이들이 많이 줄었다. 강촌까지 와서도 노래방을 찾기 때문이다.

요즘 윌 카페를 찾는 이들은 7080 세대들이다. 이미 사십대가 되어버린 당시의 젊은이들이 추억 한 자락을 찾기 위해 윌 카페를 찾는다. 간혹 혼자 오는 손님도 있다. 흐르는 북한강을 바라보며 추억에 젖었다 조용히 떠난단다.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는 80년대 그룹사운드 공연 무대...'윌 카페'

 
▲ 가수 나훈아의 '강촌에 살고 싶네' 노래비, 비 앞에 설치된 버튼을 누르면 노래가 흘러나온다.
ⓒ 강기희
 
강촌역을 떠나 등선폭포로 간다. 등선폭포로 가는 길은 북한강을 끼고 있기에 산책하기에도 좋다. 등선폭포 입구는 벌써 겨울을 맞았다. 빙어 튀김이 만들어지고 갓 만든 도토리묵을 선보인다.

등선폭포는 지각변동에 의해 산이 갈라지면서 생긴 협곡이다. 삼악산에서 흘러내리는 계곡물은 맑고 차다. 눈 내리는 날 차 한잔을 두고도 지루하지 않을 그런 곳이다.

군밤 한 봉지를 사 입 안에 넣는다. 고소함과 따스함이 입안에 감돈다. 군밤을 먹으며 다시 강촌역으로 향한다. 강변길을 걸으며 옛 사람의 흔적을 찾아본다. 강변길에서 솜사탕을 파는 아저씨가 보이지 않는다.

당시엔 분홍빛 솜사탕이 인기였다. 몰래버린 솜사탕 막대와 기념으로 숨겨 놓은 십원짜리 동전은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없다.

 
▲ 등선폭포 입구, 작은 입구를 지나면 누구나 신선이 된다.
ⓒ 강기희
 
강촌 다리 옆에는 교각만 남은 다리가 있다. 출렁다리가 있던 곳이다. 강촌의 명물이던 출렁다리는 지난 80년대 초 끊어졌다. 출렁다리와 함께 놀러왔던 남녀 대학생 둘도 세상을 떠났다. 슬픈 사연을 간직한 곳이다. 강촌을 찾는 이들은 죽음을 맞은 남녀의 몫까지 사랑해야 한다.

강촌역 플랫폼에 오래 서 있어 보지만 기다리는 사람은 오지 않는다. 무심하게 떠나는 기차를 바라보며 추억 하나를 접는다. 낙서를 하고 있는 젊은 친구에게 펜을 빌려 '2006.11.12. 옛 추억을 찾아 강촌에 왔다감'이라 쓴다. 돌아가는 길이 너무 멀다.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 북한강변의 억새, 오래된 추억은 꺼내지 말고 가슴 속에 고이 간직하라 한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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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18 11:55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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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조희연의 최장집 비판을 읽고] 차라리 '반개혁국민후보'가 답?

 

 

 

두려움의 동원정치’를 넘어서자
[조희연의 최장집 비판을 읽고] 차라리 '반개혁국민후보'가 답?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가 있다. 그러나 요즈음 우리 사회, 아니 진보진영은 ‘죽은 이론가의 사회’라고 할 만하다. 언제부터인가 이론적 논쟁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 점에서 최근 최장집 교수의 논쟁적 문제제기, 이에 대한 조희연 교수의 비판적 논평은 손뼉을 쳐 반가워해야 할 경사이다. 조교수는 최교수의 논지를 다음과 같이 잘 요약하고 있다.

최교수의 인식의 근저에는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정당정치의 활성화와 정상화라고 하는 문제의식이 존재한다. 민주주의의 공고화의 핵심적 과제라고 할 수 있는 ‘대표체계의 민주화’를 포함하는 ‘제도정치의 정상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 그리고 참여정부는 이를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는 것이 최교수 인식의 근저에 놓여있다.

최교수는 ‘사회의 광범위한 갈등이나 이해관계가 정당에 의해 대표되고 의회가 민의의 대표기구로 구실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근본인데, 참여정부는 “정당정치를 통한 사회적 이해관계를 수렴하지 못하고 대통령이 당과 국회를 우회했다”고 평가한다.

또한 민주주의가 공고화되려면 사회적 갈등들이 제도정치 내로 수렴되어야 하는데 여전히 거리의 정치가 지배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운동의 동력에 의한 민주화’가 진전되어 왔지만, 이제 시대가 전환되었음에도 사회운동 나아가 제도정치에 진입한 운동 출신 민주진보세력(그 일부로서의 386 정치인들)이 관성적으로 운동에 기대는 방식으로 행위하고 있기 때문에, 정작 민주주의의 공고화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최교수는 ‘운동으로서의 민주주의의 위기’, 즉 제도정치의 정상화를 위협하는 운동정치의 과잉을 우려하고 있다

이런 인식 위에서 사회적 갈등을 흡수하는 제도정치의 안착이 중요하고 그 제도정치적 룰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참여정부의 실패를 인정하고 정권교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운동정치 과잉 탓으로 보는 건 잘못

우선 위기의 원인으로 운동정치의 과잉과 제도적 정당정치의 무시로 보고 있는 최교수의 입장을 비판한 조교수에 동의한다. 운동정치와 제도정치를 배타적으로 보는 것도 문제지만 현재의 위기를 운동정치의 과잉의 탓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오히려 문제는 운동정치의 부족이다. 최근 반핵반김모임, 뉴라이트 등이 보여주듯이 냉전적 보수세력의 운동정치가 활성화되면서 자유주의진영의 운동정치, 진보진영의 운동정치를 압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같은 운동정치의 위기, 운동정치의 힘의 관계의 역전이 위기의 원인일 것이다.

물론 화염병으로 상징되는 기동전의 시대는 끝났는지 모른다(물론 기동전과 진지전을 배타적으로 이해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러나 거리의 정치, 운동정치가 기동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기동전이냐 진지전이냐가 아니라 시민사회(운동정치)냐, 정치사회(제도정치)이냐이다.

다시 말해, 최교수는 시민사회는 문제가 없는데 그 같은 시민사회의 힘이 정당정치가 제대로 제도화되지 않아 그리고 정당과 국회를 우회하는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포퓰리스트적 정치행태에 의해 민주주의의 위기가 온 것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 손호철 교수
 
운동정치 힘 관계 역전이 문제의 핵심

그러나 그것은 아닌 것 같다. 물론 현대정치에서 정당이 중요하고 정치사회가 중요하지만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그것들의 참호인 시민사회이다. 그리고 문제의 핵심은 시민사회에서의 힘의 관계, 운동정치의 힘의 관계인데 그것이 역전된 것이다. 이 점에서 답은 조교수의 지적대로 사회의 급진화(를 통한 시민사회의 힘의 관계의 재역전)에 있다.

그러나 최장집 교수의 문제제기 중 경청해야 할 부분이 있다. 최교수는 정당과 정치사회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는데 그같은 문제의식의 핵심은 오히려 제도정치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에 있다.

구체적으로, 최교수는 정당과 제도정치를 중심으로 한 정치사회가 시민사회의 균열을 반영해 이를 조절하고 풀어나가야 하는데 우리의 경우 진보정당의 부재와 보수정당의 독점으로 정치사회가 시민사회로부터 분리되어 제멋대로 움직여 온 것을 비판하기 위해 정치사회에 주목해 왔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의 경우 당정분리, 열린우리당의 창당, 임기 초기의 이라크 파병으로부터 시작된 보수적 정책 등을 통해 정권과 열린우리당이라는 집권당을 시민사회의 지지세력(개혁세력과 호남)으로부터 분리시킴으로써 개혁도 실패하고 지지층도 잃어버렸다는 것이 최교수의 비판 중 경청해야 할 합리적 핵심이다.

다시 말해, 최교수의 논지의 합리적 핵심은 조교수가 주목한 제도정치 중심적 시각에 기초한 제도정치의 후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제도정치(노무현정부와 열린 우리당)의 시민사회(개혁지지세력)로부터의 분리에 있는 것이다.

자유주의 세력 대안 없으면 한나라당에 정권 내줘야

두 번째 핵심적인 쟁점은 노무현 정부라는 개혁세력이 실패했으니 한나라당이 집권하는 것은 당연하고 이 같은 정권교체가 반복되는 것이 민주주의의 발전이라는 최교수의 주장이다. 이 문제 역시 개인적으로 최교수와 조교수의 중간 입장이다.

내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 그리고 공감하는 것은 최교수의 주장 중 정권교체가 반복되는 것이 민주주의의 발전이라는 부분, 즉 집권당의 책임을 묻는 정권교체의 제도화가 민주주의의 공고화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함의가 아니다. 오히려 “권력상실에 대한 두려움이 있으면 열린우리당이든, 새로 만드는 정당이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최교수의 주장이다.

다시 말해, 나 역시 최교수와 마찬가지로, 아니 최교수보다 한 발 더 나가, 열린우리당이건 통합신당이건 자유주의세력(소위 개혁세력)이 신자유주의 그리고 그에 따라 자신들이 군사독재시절보다 더 악화시켜 놓은 사회적 양극화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한, 차라리 집권을 하지 말고 정권을 한나라당에게 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김대중, 노무현 정부처럼 사회적 양극화를 가속화시키고 민중들을 생존의 위기에 몰고 갈 바에는, 차라리 국정책임을 한나라당에 떠넘기고 자신들은 책임이 적은 야당을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한나라당 집권의 역설적 긍정성

이와 관련, 우리의 민중들이 한나라당과 그 전신인 냉전적 보수세력 하에서 경험한 것은 개발독재일 뿐 신자유주의는 아니라는 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결과 국민들은 신자유주의, 그 폐해인 사회적 양극화하면 한나라당과 냉전적 보수세력이 아니라 김대중, 노무현정부와 자유주의 개혁세력을 연상하고 있다.

또 오히려 박정희 시절이 더 살기 좋았다고 박정희를 그리워하고 있다. 따라서 한나라당이 집권해 한나라당식의 신자유주의정책에 의해 사회적 양극화와 민중생존의 파탄을 경험하고 문제의 핵심이 김대중, 노무현정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에 있다는 것을 민중들이 직접 체험해야 한다.(그럴 리가 없지만 ‘일자리 창출이 최고의 복지이고 분배’라는 한나라당식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나의 예상과 달리 사회적 양극화를 해소하고 민중들을 파탄하게 구할 수 있다면 한나라당 집권은 그 나름대로 충분한 의미가 있는 것 아닌가?) 그렇게 될 때, 한국정치는 단기적으로는 후퇴할지 몰라도 중장기적으로는 발전할 수 있다.

이를 두 가지 다른 각도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그것은 지난 해 지방선거 그리고 잇따른 재보궐선거의 결과이다. 기록적인 열린우리당의 참패의 핵심에는 노무현정부의 신자유주의정책에 의한 민중생활을 피폐화가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민중들은 그 대안으로 반신자유주의 정당인 민주노동당이 아니라 또 다른 신자유주의 정당인 한나라당을 선택했다. 이같은 정치의식의 한계를 깨기 위해서는 민중들이 한나라당의 신자유주의와 한나라당의 사회적 양극화를 직접 경험해 봐야 한다.

또 다른 하나는 노무현 대통령이 한나라당과 연정을 제의하면서 한 발언이다. 즉 일반적 통념과 달리 한나라당과 열린 우리당이 그리 차이가 크지 않다는 지적이다. 사실 맞는 이야기로 그 말이 맞다면 열린 우리당과 별 차이가 없는(둘다 신자유주의 세력이라는 점에서) 한나라당이 집권한다고 호들갑을 떨 필요가 있는가?

한나라당 집권 호들갑 떨 필요 있나

물론 노대통령이 주목하지 않은 차이가 있다. 그것은 냉전문제이다. 그 때문에 자유주의적인 보수세력인 열린 우리당과 달리 한나라당은 냉전적 보수세력이다. 그러나 현 정세에서 신자유주의가 주전선이고 냉전문제는 부차적인 전선이다.

그리고 김대중 전대통령과 노대통령이 잘 지적했듯이 한나라당이 집권한다고 한반도에 전쟁이 나고 큰 틀의 햇볕정책의 기조를 포기하고 북한을 고립시켜 붕괴시키는 전략으로 나갈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점에서 특히 사회적 양극화 등 실정에 대한 자기반성과 이에 대한 대안적 처방을 제시하지 않은 채 기간당원제냐, 기초당원제냐 하는, 국민들이 관심도 없는 말단지엽적인 문제 등을 가지고 탈당 등 소동을 벌리며 신당창당으로 상황을 반전시키거나 허구헌 날 가만히 있다가 선거를 1년도 채 남겨 놓지 않고 갑자기 개헌을 제기해 이를 중심으로 반한나라당전선을 만들어 볼까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최교수의 비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또 시민사회와 시민운동 내에서까지 한나라당에 권력이 넘어가도 좋으냐는 식으로 윽박질러(최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두려움의 동원”으로) 문제를 풀려는 것은 한마디로 코미디이다. 이제 유치한 ‘두려움의 동원정치’는 끝내야 한다.

차라리 반개혁국민후보가 답이다?

이와 관련, 최근 시민운동 내에서 한나라당의 집권을 저지하기 위한 반(反)수구 국민후보 운동이 일고 있는데 이는 잘못이다. 아직도 한국에서 초계급적인 국민후보가 가능한지 모르지만 설사 가능하더라도 현 정세에서 필요한 것은 반(反)신자유주의 국민후보, 반(反)사회적 양극화 국민후보, 반(反)부동산 폭등 국민후보이지 반수구 국민후보가 아니다. 아니 신자유주의가 (경제) 개혁이라는 이름하에 진행되어 온 점을 고려하면, 필요한 것은 반수구국민후보가 아니라 ‘반(反)개혁국민후보’인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조교수가 지적한 대안문제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하고자 한다. 물론 대안은 중요하다. 그러나 나는 정당이 아닌 진보진영(진보적 학계, 진보적 운동단체들)의 주된 임무가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최근 유행하고 있는 지나친 대안에 대한 강조는 마치 진보진영이 대안을 제시하지 못해서 위기인 것과 같이 문제를 단순하고 왜곡할 우려가 있다. 사실 많은 경우 문제는 대안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있는 대안도 관철시킬 수 있는 사회적 힘이 없는 것이다.

국가보안법 폐지가 그러하고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대체근무제가 그러하다. 경제문제도 마찬가지다. 민주노동당이 제안한 부유세는 일단 논외로 하더라도, 많은 대안을 생각할 수 있다. 97년 경제위기 당시에도 일방적인 정리해고 대신 민주노총과 진보진영은 일자리 나누기를, 한전 등 공기업의 민영화(사유화) 대신에 국민대표들로 구성된 공기업개혁위원회를 통한 공기업 개혁을, 재벌개혁에 대해서도 소액주주운동 대신에 노동자 경영참여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새로운 대안을 생각하기에 앞서 민중운동과 진보진영이 이미 제시한 대안들만이라도 관철시킬 수 있다면 우리나라는 지금보다 백배 살기 좋은 나라가 될 것이다. 다시 말해, 나는 소수 지식인들에 의한 지적 기획에 대한 대중의 힘의 우위, 지적 기획에 대한 사회적 힘의 관계의 우위를 믿는다.

대안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새로운 대안이 아니라 기존의 대안이라도 실현시킬 수 있는, 사회의 급진화에 의한 사회적 힘의 관계의 전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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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1월 31일 (수) 15:01:24 손호철 교수 / 서강대 redian@redia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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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위기 진단’ 진보학자들 논쟁 불붙었다

 

 

 

정치위기 진단’ 진보학자들 논쟁 불붙었다
 
[한겨레 2007-02-09 08:18]    
 

[한겨레] 한국 정치 위기 진단을 놓고 진보학계의 지도급 학자인 최장집 고려대 교수(정치학),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사회학), 손호철 서강대 교수(정치학) 사이에 논쟁이 불붙었다. 논쟁에 불을 댕긴 쪽은 조희연 교수다. 조 교수는 <한겨레> 인터뷰(1월22일치 4면) 등 여러 매체에서 최장집 교수가 한 발언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장문의 글을 인터넷 진보매체 <레디앙>에 기고했고, 이에 대해 손호철 교수가 조 교수의 주장을 일면 동조하고 일면 비판하는 글을 같은 매체에 기고하자 조 교수가 다시 손 교수를 반비판하면서 논쟁의 판이 커졌다.

애초 쟁점을 제공한 최 교수의 논지를 요약하면 노무현 정부는 무능력과 비개혁 때문에 실패했으며, 실패한 이상 특단의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한나라당으로 정권을 넘기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노무현 정부의 실패 원인으로, 사회적 갈등을 제도정치 안에서 해결하지 못한 채 운동정치(포퓰리즘=민중주의)에 지나치게 의존함으로써 정치를 무력화한 데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한나라당 집권에 대한 ‘대중의 두려움’을 동원하는 방식으로 정권을 재창출하려는 것은 민주주의 원리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의 이런 주장에서 출발한 세 학자의 논쟁을 진행 순서대로 정리해본다.

 

조희연의 최장집 비판=조 교수는 최 교수가 한국 정치의 위기에 대한 ‘지적’은 올바르게 했지만 ‘진단’에서는 원인과 결과를 혼동했다고 포문을 열었다. 노무현 정부가 실패했다는 지적에는 동의하지만, 원인은 잘못 짚었다는 것이다. 참여정부가 정당과 국회를 배제한 데 실패 원인이 있다는 최 교수의 주장과는 반대로, 조 교수는 사회적 힘을 이끌어내는 ‘진보적 민중주의’ 전략을 구사하지 못한 데 참여정부 실패 원인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제도정치로 갈등을 수렴하는 노력을 안 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보수적 저항을 돌파하는 제도정치 바깥의 사회적 힘을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확언했다. 민중주의란 정당이나 국회 등 제도권 정치를 뛰어넘어 대중에게 직접 호소하고 대중과 결합하는 전략을 가리킨다. 진보적 민중주의는 ‘사회경제적 개혁’을 급진적으로 구현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데, 그러려면 신자유주의 확산에 따르는 대중의 분노를 급진적 방향으로 키워야 한다고 조 교수는 주장했다. 그는 제도정치가 정상화하고 그 제도적 틀로 사회적 갈등을 흡수하기 위해서라도 ‘민중주의적 사회운동’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조 교수는 노무현 정부의 실패 문제를 진보세력과는 아무 상관 없는 ‘타자의 문제’로 바라보아서는 안 되며, 민주노동당 등 진보세력과 열린우리당 등 중도자유주의세력을 포함한 진보·개혁 세력 전체가 지닌 본질적 문제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 문제의 하나로 그는 노무현 정부가 ‘헤게모니 정치’를 실행하지 못한 것을 들었다. 참여정부는 지나치게 정체성에 집착해 집권 기반을 협소화했을 뿐, 보수적 대중의 동의를 얻어내 함께 가는 기반확대 전략을 쓰지 못했다는 것이다.

손호철의 반론=손호철 교수는 조 교수의 최장집 비판에 대체로 동의하면서도, “자유주의 세력이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면 한나라당에 정권을 내줘야 한다”는 최 교수의 주장에 더 무게를 실었다. 손 교수는 한나라당의 집권이 역설적으로 긍정적 요소가 있다며, 정권이 넘어가면 오히려 한국정치가 발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나라당이 집권해 한나라당식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사회적 양극화와 민중 생존의 파탄을 경험”하면 “문제의 핵심이 신자유주의에 있다는 걸 직접 체험”하게 될 것이고 그럴 때 민주노동당 등 진보세력에게서 대안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최 교수가 말한 ‘두려움의 동원 정치’를 다시 거론한 손 교수는 “시민사회와 시민운동 안에서까지 ‘한나라당에 권력이 넘어가도 좋으냐’는 식으로 윽박질러 문제를 풀려는 것은 코미디”라며 “이제 유치한 ‘두려움의 동원 정치’는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조 교수이 논리에 ‘두려움의 동원 논리’가 여전히 있다는 인식이 깔린 반론인 셈이다.

조희연의 재반박=이에 조 교수는 “우리 현실의 복합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다시 말문을 열었다. 그는 손 교수의 한나라당 집권 긍정 논리는 최 교수보다 한걸음 더 나아간 것이며, “한나라당 집권 촉진 운동을 해야 한다는 오해도 나올”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손 교수의 논리는 “한국 자본주의가 더 파국적인 상황을 맞아야 대중이 더욱 급진화하고 변혁운동 기반이 강화된다는 1980년대식 인식을 떠올리게 한다”며 매우 위험한 논리라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한나라당의 집권은 한국에서 ‘신보수주의 시대’가 시작되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1930년대 독일에서 바이마르 공화국이 붕괴한 뒤 긴 파시즘 시대가 열린 것처럼 진보세력에게 불리한 상황만 안겨줄 것이라고 진단했다. 조 교수는 2004년 탄핵반대 투쟁에서 확인됐듯이 올바른 일반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은 진보세력의 공간도 확장시킨다며, “탄핵반대 투쟁이 열린우리당에게만 혜택이 돌아온 것이 아니라 민주노동당의 대약진에도 결정적 계기였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2007년 대선도 마찬가지”라며 “현재와 같은 구도로 지속되는 것이 좋은가, 한나라당의 패권적 구도가 흔들리는 것이 진보정당의 약진에 좋은 것인가 한번 생각해보라”고 주문했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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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berto Bobbio 가 생각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Norberto Bobbio 가 생각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                                                                                                                                        맑은샘.

1.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정의)

모든 형태의 독재체제와 구별되는 정치형태로써의 민주주의에 관한 의미 있는 논의는 오로지 민주주의를 다음과 같이 파악하는것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즉, 민주주의를 누가(who) 종합적인 정책결정권을 행사하는가의 문제와 그것은 어떤 절차(procedures)에 의거해서 이루어지는가의 문제를 규정하고 있는(주요한 혹은 기본적인)일련의 규칙들로서의 특성을 갖는 것으로 이해하는 일이다.
어떠한 사회집단이든 대내외적인 존립을 보장받기 위하여 모든 구성원을 구속시킬수 있는 결정을 내릴 필요가 있다.
모든 결정은 설사 그것이 집단적 결정의 형태를 띠고 있다 하더라도 사실상 개인들에 의해 내려지게 마련이다. 즉, 집단 그 자체는 어떠한 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들에 의해 그것이 한사람이든, 몇몇 사람이든 아니면 모든 사람이든 간에 내려진 한 결정이 집단적 결정(collective decision)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그 결정이 누가 결정권자이며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를 명시한(성문으로든 관습으로든)규칙에 근거를 둔 것이어야 한다.
전체적 결정권을 내리는 주체(persons)를 기준으로 하자면 민주주의란 대다수 성원들에게
이러한 결정권-(결정할수 있는힘(power)은 기본적인 헌법의 보장에 의해 결정권(right)이 된다)--이 부여되어 있는 정치형태를 말한다.
사실 여기서의 '대다수(a large number)'란 개념은 모호한 개념이긴 하다.
정치적 결정들은 '거의" "대부분"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접어두더라도 선뜻 "모두"란 말을 쓰는 것은 잘못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완전한 민주체제를 가진 나라라 하더라도 일정한 연령에 도달해야만 투표할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인의 지배(omnicracy)는 최상의 이상일 뿐이다. 민주주의라고 불려질 만하기 위해서 얼마만큼의 사람들이 투표권을 가져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어떤 추상적인 원칙에 의해 미리 결정될수 없다. 역사적인 상황들과 어떤 판단을 하기 위한 기준의 필요성 따위를 고려하지 않을수 없다.
기껏 말할수 있는것은 성인남자들만 투표권을 가지고 있는 사회는 유산자들만 투표권을 가지고 있는 사회보다 더 민주적이지만, 여성들에게 까지 투표권이 주어진 사회보다는 덜 민주적이라는 정도이다. 지난 19세기에 몇몇 국가에서 지속적인 민주화의 진전이 있었다는 진술은 투표권을 누릴수 있는 사람들 수가 꾸준히 증가했음을 의미한다.
결정이 이루어지는 양식(mode)을 기준으로 말하자면 민주주의란 그 기본규칙을 다수의 지배에 둔 양식이라고 할수 있다. 다시 말한다면, 결정권을 가지는 사람들 대다수에 의해 승인될때 그 결정은 전체의 결정으로 간주될수 있고, 그럼으로써 모든 성원을 구속할수 있는 결정이 될수 있음을 의미한다. 만일 다수의 결정이 유용한 것이라면 만장일치는 훨씬더 유용한 것이다. 그러나 만장일치는 구성원의 수가 제한되어 있거나 또는 동질적인 집단 내에서만 가능한 것으로써 극단적인 두가지 상충되는 경우에만 그 요건이 충족될수 있다.
모든 구성원이 거부권을 가지고 참여해야할 만큼 매우 심각한 결정사안이 생겼을 경우나 아니면 결정사안이 별로 중요치 않아 명백히 반대의사를 표하지 않는한 이를 찬성으로 간주해도 무방한 경우, 이른바 묵시적 동의의 경우이다. 당연히 만장일치는 결정권자가 오직 두사람일 경우에만 필요한 방식이다.
이점이 완전한 합의에 토대를 둔 결정과 법(통상 다수의 승인을 요구하는)에 따라 이루어지는 결정과의 명백한 차이이다.
내가 여기서 내리고 잇는 민주주의의 기본정의는 이상에서 말한 두가지 요건, 즉 상당수 시민들에게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전체의 결정에 참여할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어야 한다는것, 그리고 다수결의 원리(극단적인 경우에는 만장일치제)같은 절차적 규칙이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는것 이상의 또다른 요건이 필요하다.
민주주의의 기본조건에 들어갈 세번째 요건으로는 결정권자나 혹은 결정권자를 선출하는 사람들앞에 실질적인 선택대안들이 주어져야 하며, 이 대안들 가운데에서 어느 것을 선택할수 있는 여건이 보장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에게 이러한 요건이 의미있는 것이 되기 위해서는 여론형성의 자유,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집회 결사의 자유등 이른바 기본권(basic right)이 보장되어 있어야 한다.
이러한 권리들은 자유주의국가 초기부터 그 토대가 되었던 권리들로써 법치국가(Rechtsstaat)의 기본 교의를 구성하는 것들이다.
여기서 말하는 법치국가는, 본래적 의미를 따를때, 법에 의거하여(sub lege)권력을 구성하는
국가를 의미할뿐만 아니라 이른바 인간의 불가침의(inviolable)권리들에 대한 헌법적 승인으로부터 적법하게 내려진 제한 속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국가라는 의미도 포함한다.
이러한 권리의 철학적 바탕이 무엇이든간에 이것들은, 민주주의체제의 특징을 이루는 주요한 주요 절차적 기제가 적절히 작동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전제조건이다. 이러한 기본 권리들을 부여하는 입헌적 규범들은 그 자체로써 게임의 규칙이 아니라 그 게임을 가능하게 해주는 전제들로써의 규칙들인 것이다.
이렇게 볼때, 자유주의 국가(Liberal state)는 민주주의 국가(democratic state)의 역사적인 전제일뿐 아니라 법적인 전제이기도 하다.
자유주의국가와 민주주의국가는 완전히 상호의존적이다.
자유주의가 민주적인 권력의 적절한 행사에 필수적인 자유를 마련해 주는것이라면 ,민주주의는 이러한 기본적인 자유의 존재와 지속을 보장해준다. 바꿔 말하면, 비자유주의국가에서는 민주주의가 적절히 작동될수 있을것 같지 않으며, 역으로 비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기본적 자유들이 효과적으로 보장되기 어렵다는 말이다. 자유와 민주의 이러한 상호의존은 자유주의 국가와 민주주의 국가가 흥망성쇠의 궤적을 같이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통해서도 입증될수 있다.



(대의제 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

민주화의 과정이 점점 확산되고 있는것을 우리가 직접 보고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먼저 완전히 새로운 의사결정능력에 참여하고자 하는 요구에 의해 성취된 성공을 지적하는것이 필요하다. 너무 단순화시키는 것이기는 하지만 권력은 오직 두방향으로만 흐른다.
그것은 하향적, 즉 위에서 아래로 흐르거나 상향적, 즉 아래에서 위로 흐르는 것이다. 현대국가에서 전자의 전형적인 예는 관료적 권력이고, 후자의 전형적인 예는 정치적 권력인데, 이때 정치적 권력이란 시민으로서의 개인보다는 시민전체를 위하여 시민의 이름으로 국가, 지역, 지방의 모든 차원에서 실행되는 권력을 의미하는 경우이다.
근래의 민주화과정, 즉 상향적 권력의 확장은 개개인들이 그들의 역활 내에서 시민으로서 고려되고 있는 정치적 관계의 영역에서부터, 개인들이 특정한 상황에서 각기 다르게 가질수 있는 다양한 기능과 다양한 역활이라는 면에서 고려되는 사회적 관계의 영역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중이다. 부모, 어린이, 배우자, 감독, 노동자,교사, 학생의 관계들과 의사와 환자간의, 장교와 사병간의, 공무원과 탄원자간의, 생산자와 소비자간의, 공공시설과 관리자와 고객간의 관계들이 이에 포함될수 있다.
이상의 논의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수 있을것 같다.
즉, 만약 현재의 민주화과정에 대해 이야기할수 있다면,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종종 잘못이해하고 있는,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직접민주주의로 옮아가는 데 관한것이 아니라, 엄밀히 말해 정치적 민주주의에서 사회적 민주주의로 옮아가는데 관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거의 대부분 국가적 차원의 정치영역에(작고 하찮고 정치적으로는 무관한 자발적 결사에) 한정되었던 상향적인 권력은 학교에서 공장에 이르는 시민사회의 다양한 영역에까지 확산되고 있다. 여기서 학교와 공장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이곳이 현대사회의 대부분을 보내는 곳이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의도적으로 교회를 무시했는데, 왜냐하면 종교적 사회는 설사 민주화에 대한 절박한 논란으로 인해 혼란에 휩쓸린다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정치적이지도 시민적이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우리는 현대사회가 발전하는 노정을 새로운 민주주의 유형이 이제껏 계급제도나 관료조직에 의해 장악되었던 공간들에 침투해가는 과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단순한 공식, 즉 국가 민주화에서 사회민주화로의 발전으로 요약할수 있는 민주적 제도의 발전에서 진정한 전환점이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정당하다.
만일 전체로서의 공동체에 영향을 끼치는 결정이 이루어지는 영역을 '정치"로 본다면, 역사적으로 정치적 민주주의가 사회적 민주주의보다 앞서 도래했다는 사실을 쉽게 이해할수 있다.
사람들은 대개 의회제도의 확립을 통해 실현될수있는 국가의 민주화와 사회의 민주화는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는 가족에서의 학교, 기업에서의 공공사업의 경영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제도들이 그 역활을 민주적으로 수행하지 못하는 사회에서도 당연히 민주국가는 존재할수 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이는 정치적으로 이미 민주적이라고 불리는 나라에서의 민주발전의 현 단계를 뚜렷이 특징짓는 물음을 제기한다. 즉 민주국가가 비민주적사회에서 생존할수 있는가?
이를 또한 다른 방법으로 묻는다면, 정치적 민주주의는 국가가 독재정권의 희생물이 되는것을 방지하는데 필요했고 계속해서 필요할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말인가?
오늘날 민주발전의 지표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투표권을 가지는 사람의 수에 의해서는 충족될수 없고 정치의 범위를 넘어서서 투표권이 행사될수 있는 영역의 수에 의해야만 한다.
이를 설명하는 간결하지만 효과적인 방법은 기존 국가의 민주화의 상태를 판단하기 위한 기준이 더 이상 “누가(who)" 투표하는가가 되어서는 안되고 ”어디에(where)"투표 할수 있는가가 돠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그리고 투표한다는 것이 가장 전형적이고 보편적인 참여방식을 의미하기는 하지만, 참여를 투표권 행사에 국한하려는 의도는 없다는 것이 여기서 지적되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지난몇년간 민주주의가 얼마나 발전되었는지에 대한 물음이 던져졌을때 우리는 유권자가 얼마나 더 많아졌느지를 살펴서는 안되고 시민들이 투표권을 행사할수 있는 범위가 얼마나 늘어났는지를 살펴야만 한다.
보통선거권이 획득된 마당에서 민주화과정의 확대문제가 거론된다면 그것은 흔히 주장되고 있는 대의제 민주주의로부터 직접민주주의에로의 이행보다는 정치적 민주주의로부터 사회적 민주주의에로의 이행이 될 것이다.
“누가 투표하는가?” 하는 것보다 “어디에 투표하는가?” 하는 것이 보다 문제이다.
환언하자면, 어느 나라에서보다 큰 민주화에로의 진전이 있는지를 알고자 한다면 우선 관련있는 정책결정과정에 참여할 권한이 있는 참여권자의 수가 얼마나 증대되었느냐 하는 것 보다는 이러한 권리를 행사할수 있는 상황이나 영역의 폭이 얼마나 증대되었는지를 알아보아야 한다.
선진사회에 존재하는 상층부의 두개의 커다란 권력블럭 즉 대기업과 관료기구에 대한 민주화의 길이 열리지 않는다면 이것이 가능한 것이라 하더라도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하는점은 일단 젖혀두고 민주화과정은 종결되었다고 말해질수 없다.


(현대민주주의의 패러독스)
내가 일부러 직접민주주의의 한 형태인 국민투표를 예로 든 것은 대의제 민주주의에 만족하지 않고 직접민주주의를 “체제”의 결함에 대한 즉효요법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이, 직접민주주의의 장점을 극구 칭찬하기(물론 이는 정당한 측면을 가지고 있다) 때문이다.
그러나 누차 지적했듯이 민주주의가 어렵다면 직접민주주의는 더욱 어렵다.  
나아가 나는 그것이 이전보다도 점점 더어려워지고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이주장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현대의 모든 정치체제가 당면하고 있는 현대 민주주의의 진정한 패러독스(Paradox)“라 불러야 할 몇가지 문제를 들고 싶다.
민주주의는 인민의 통치를 의미하고 인민의 이름을 붙인 통치가 아니라고 한다면 완전한 민주주의, 이상적 사회주의가 직접민주주의임에는 틀림없다.
그것이 루소가 영국인민은 투표함에 표를 넣는 순간에만 자유롭다고 말한 이유이다. 하지만 루소의 언급에 대해 제기할 수 있는(그리고 수천번이나 제기되었던)반론은, 다른 나라의 인민들은 투표하는 순간조차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루소는 직접 민주주의, 즉 아우라(Aura)의 민주주의에 대치되는 아고라(Agora)의 민주주의가 소국가, 곧 모든 시민이 광장에 집합할수 있을 정도의 크기를 가진 국가에 적합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몽퇴스키외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그러한 소국가는 어디에 있는가?
국가는 거대화 되고 있으며 이제 광장은 참가하는 시민이 아니라 동원된 군중조차 수용할 수 없다. 몽퇴스키외도 민주주의의 원리는 국가애(國家愛)로 이해되는 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작은 국가만이 자발적인 사랑을 받을수 있다.
그러므로 로베스피에르는 거대한 프랑스국가에서 바로 국가를 구하기 위해 덕(德)과 테러를 결합시켜야만 했다.
고대인의 민주주의에 대비되는 현대인의 민주주의의 첫 번째 패러독스는(유명한 구별을 모방한다면) 다음과 같은 점에서 발생한다.
즉, 우리는 객관적 조건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상황속에서 끊임없이 점점 더 많은 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있다. 어제오늘 시작된 일은 아니지만 커다란 조직 내에서 민주주의의 게임의 규칙을 존중하도록 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다.
국가조직을 비롯한 여러조직은 점점 커진다. 이러한 불길한 흐름-(그것은 과두제의 철칙:iron law of oligarchy)이라 불린다.) 에 맞닥뜨린 사람은 누구나 끊임없이 대의제 민주주의에 관해서 문제를 제기한다.
직접민주주의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1960년대와 70년대 학생운동이 부활시킨 직접민주주의 혹은 “아테네식” 민주주의에 의해 서술한 규칙의 정확한 작동이라는 견지에서 보면 언제나 기만적이었다. 그것은 한편에서는 동의로써 표현되는 집행부의 결정을 비준할(자주 박수에 의해)뿐이며, 다른 한편에서는 카리스마적인 (기술적인 의미에서, 곧“민주주의적”에 반대되는 의미에서 “카리스마적” 이라는 뜻이다) 권력기초를 지닌 집행부가 있고, 그 권력은 대의단체의 어떤 집행부보다 훨씬 경고하며 항거할수 없는(위임권의 소환 따위는 아무데도 없다) 최악의 의회보다도 더욱 나쁜 집회로 구성되었다. 이것을 말하는 목적은 민주주의가 미봉책과 안이한 일반화 및 간교한 혁신을 거부하는 극히 복잡한 “실천”이고, 조그만 충격에도 무너질수 있는 대단히 섬세한 기구(mechanism)임을 다시 한번 지적하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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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라(Aura):회의장소, 강당을 의미하는 언어.
*아고라(Agora):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의 중심지에 있는 광장.
*아우라의 민주주의: 강당과 같은 곳에서 대표자들이 모여서 논의하는 대의제(간접)민주주의
*아고라의 민주주의:열린광장에서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직접민주주의
*과두제의 철칙: 과두제란 1인이나 다수 또는 전체가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소수가 지배하는 정치체제. 독일의 사회학자 R.미헬스가 그의 저서(정당사회학)1921에서 독일과 이탈리아

의 사회민주당을 분석하고 국가뿐만 아니라 정당, 회사, 노조, 대학, 종교단체등의 사회집단에서도 소수의 지배가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을 보고 “과두제의 철칙”이라는 표현을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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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제와 테크노크라시)
더욱 성가신 두 번째 패러독스는 현대국가가 규모만이 아니라 기능의 범위에서도 증대하며, 어떤 국가기능의 증대도 관료적 장치, 즉 민주주의적이지 않은 위계적 구조를 가진, 아래로부터 위로가 아니라 위로부터 아래로 향하는 권력장치의 증대로 귀결된다는 사실로부터 발생하고 있다. 카부르 시대의 장관은 7,8명 이었는데, 지금은 거의 네배가 되었다.
각 장관이 자기 자신의 관료군을 필요로 한다.--준 국가기관(para state)은 계산에 넣지 않지만, 이것도 끊임없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면 현대국가가 관료주의적이며 그 법률이 본질적으로 반민주주의적인 권력조직으로 나아가는 경향이 얼마나 강하고 또 자연스러운가를 알 수 있다. 같은 시대에 이들 국가 내에서 대체로 이것과 동시에 민주주의화 과정도 진행되고 있는것도 사실이지만, 민주주의화 과정과 관료주의화 과정이 같은 보조로 진행되고 있을뿐만 아니라 후자가 전자의 직접적 귀결임도 역시 사실이다.
선거권의 확대에 따라 점점 더많은 새로운 대중이 자기의 요구를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제기하는데, 이러한 요구는 거의 언제나 국가에게 새로운 과제와 부담을 떠안도록 하기 때문에 국가는 그 활동영역과 장치를 부득이하게 증대시키지 않을수 없다.
관료주의국가와 민주주의국가가 동시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현대국가의 성장을 목도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어떤 사람은 만족스럽게도 또 어떤사람은 걱정하면서)의 오랜 생각이며, 지금은 습관적으로 쓰는 문구가 될정도이다. 곧 민주주의(사회주의는 더욱 더하다)가 확대될수록 관료주의도 확대된다.
적어도 이제까지는 그러했다. 그것을 알아야만 우리는 민주주의 논쟁의 배경을 이루는 거대한 난점을 과소평가하지 않을수 있으며 또한 그 마술적인 해결에 속지 않을수 있다.
세 번째의 패러독스, 이것은 매우 중요한 함의를 갖는 장기적 과정의 산물이다. 자본주의경제에 근거하든 혹은 사회주의경제에 근거하든 상관없는, 공업사회에 특유한 기술적 발전의 결과이다. 즉, 이사회 내에서는 유자격자가 아니면 맡길수 없는 기술적 해결을 요하는 문제들이 점점 증대하고 있다는 사실의 결과인 것이다.
따라서 전적으로 전문가에 의해서 통치하려는 유혹, 혹은 테크노크라시(technocracy)를 창출하려는 유혹이 계속 생겨난다.
테크노크라시와 민주주의가 충돌한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큰 통찰력이 필요치 않다.
테크노크라시는 유자격자, 즉 어떤 사물에 관해서 잘알든지, 또는 알도록 되어 있는 사람들의 지배이다. 민주주의는 모든사람, 즉 그 전문지식에 의해서가 아니라 경험에 기초하여 결정해야 하는 사람들의 지배이다.
공업사회의 주역은 과학자, 전문가, 숙련자이다. 민주주의사회의 주역은 평범한 시민, 보통사람, 모든 민중이다. 고대사회의 사람이 당면해야 했던 문제의 어려움과 우리가 일상적으로 당면하고 있는 어려움 사이의 비교는 불가능하다.
일례를 든다면, 거대국가의 경제문제에 정통하고, 일정한 목적이 세워진 경우에 정확한 해결을 제시할수 있는 사람들의 숫자가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더욱 나쁜 경우에는, 주어진 수단아래에서 도달 가능한 목적을 지적할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 것인가?
그러나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이 모든 일을 결정할수 있다는, 명백히 한계를 갖는 이상에 토대를 두고 있다. 즉, 민주주의적 이상에 따르면 정치문제에서 유일한 권능자는 시민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시민은 주권자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결정이 점점 기술적으로 되고 점점 비정치적으로 됨에 따라 시민적 권능의 영역, 따라서 그 주권은 좁혀지지 않을까? 점점 기술화되어가는 사회속에서 더 많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것은 모순이 아닌가?
나는 테크노크라시 사회를 변호하는 것이 아니다. 그 이유는 더욱 정교한 기술적 해결을 요구하는 문제가 확실히 증대하더라도 전통적 정치문제의 전 공간을 점할 만큼 증대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술적 진보는 끊임없이 정치문제를 만들어 내고 있다. 하지만 바보가 아닌 이상 누구나 할 수 있는 하나의 사실을 확인해두고 싶다.
더 많은 민주주의를 요구한다는 것은 현대사회의 객관적 발전조건에 의해 점점 권능을 잃고 있는 사람들의 권능에 속하는 결정의 확대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것은 특히 자본주의경제는 물론 사회주의경제에서도 이제까지 사실상 어떤 형태의 인민통제도 제거되었던 영역이자 민주주의적인 도전이 승리했거나 패배했던 영역인 생산의 영역에서 그러하다.
편견이나 과도한 환상없이 사실을 확인하는것이야말로 즉흥적이지 않고 실행가능한 방책을 생각해낼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이다.

(문화산업과 정치산업)
마지막으로 민주주의의 과정과 대중사회의 대립으로부터 발생하는 패러독스를 생각해보자.
민주주의는 인간능력의 자유롭고 충분한 발전을 전제로 한다.
모든 거대사회가 겪고있는 대중문화의 결과는 순응주의의 일반화이다.
대중사회의 특징인 피교화성(indoctrination)은 민주주의사회를 떠받치는 토대가 되는 개인의 책임감을 억누르고 압박하는 과정을 가지고 있다.
잘 조직된 선전은 개인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이 여지를 점점 줄이고, 순간적인 감성적 반응이나 타인의 행동에 대한 수동적인 모방에 기초하지 않는 확신의 여지를 점점 줄여가는 경향이 있다.
대중의 최소한의 동의 없이는 통치할 수 없는 그것은 곧 이들 나라에서 민주화의 과정이 진행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모든 나라에는 많은 비판을 불러 일으키는 문화산업과 함께 정치산업이 존재한다.
더많은 개인이 문화의 산물을 이용하는 데 필요한 도구를 쉽게 소유함에 따라 문화산업이 발생하는것처럼 정치산업은 권력기반의 확대와 함께 등장하며 인민주권의 추상적 원리를 신화로부터 현실로 옮기는 제도들(보통선거권으로부터 조직정당의 형성에 이르기까지) 이 실현됨에 따라 번영하고 성장한다.
우리는 어떤 민주주의도 여러 가지 형태의 정치산업없이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이해하고 있다. 모든 성년시민이 정치적 결정의 형성에 직접,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원리를 가진, 그리고 그들이 권력의 소유자들에 의해 많든 적든 고려대상이 되는 사회가 존재할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적어도 현재의 사회적, 지적 발전단계에서는 비현실적이고 터무니 없다.
모든 사회는 동의를 조직하기 위한 기술들--(그 강도와 강제성의 정도에는 차이가 있지만)--을 사용하는 것을 요구받는다.
누차 지적했듯이 이러한 기술의 사용은 불가피한 것이다.


교도민주주의(directed democracy)와 구별하기 위해 참여민주주의(Participatory democracy)로 정의되는 민주주의의 이상에 어떤 귀결을 수반하는가를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분명히 참여민주주의의 특징중 하나는 광장의 집회나 행진등과 같이 이른바 대중의 의지표시운동이며, 이는 역사적인 사건이나 또는 커다란 여론의 방향을 불러일으키길만한 사건에 즈음하여 행해진다. 이러한 운동에 참가--(나는 개인적으로 이것을 어떤 상황에서는 시민적 의무로 간주한다)---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이것이 집단의 단결과 연대를 촉진하고 유지하기위한 자극으로 기능하는 가치를 가진다고 인정하지 않을수 없다.
그러나 또한 그것들의 효과가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의지표시운동이 산회(散會)하면 그것이 불러일으킨 흥분은 급격히 가라앉고 행동의지도 소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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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민주주의(directed or guided democracy) :
인도네시아의 정치가 A.수카르노가 제창한 민주주의.
인도네시아의 정당난립과 민족분열상을 극복하고자 1957년 서구정치제도의 모방이 아닌
인도네시아에 적합한 민주주의로 일반대중에 대한 엘리트의 교도적 역할을 강조한
민주주의. 지도자의 교도에 의한 질서있는 토론과 만장일치를 원칙으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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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 있는 것들에의 마지막 호소)
이제 결론으로, 환상과 절망에 쉽게 빠져드는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에 의해 자주 제기되는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해답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된다.
만약 민주주의가 주로 일련의 절차적 규칙들이라면 민주주의가 어떻게 “적극적인 시민들”에게 달려 있다고 주장할수 있겠는가?
적극적 시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아마 어쩌면 굳이 필요한 이상이 아닐는지도 모른다.
물론 이상이라는 것은 필요하다.
그렇다고 어떻게 위에 들어온 일련의 규칙들을 획득하기 위해 바쳐온 투쟁들, 이상에 도달하기 위한 그 위대한 투쟁들을 무시해버릴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는 그것들을 낱낱이 상기해보려 한다.
우선 첫째가 관용의 이상인데 이 이상은 수세기에 걸친 참혹한 종교전쟁들을 치른이후에야 획득되었다.
만일 오늘날 세계평화에 대한 위협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또다른 광신주의, 다시 말하면 자기네만이 진리를 독점하고 있다는, 그리고 이를 타인에게 강요하는데 필요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맹목적 믿음 탓이다.
굳이 예를 들 필요도 없이 이는 여러분의 눈앞에서 매일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둘째는 비폭력의 이상이다.
민주주의체제와 독재체제의 본질적 구분은 오직 민주주의 체제에서만이 시민들이 피를 흘리지 않고 정부를 갈아치울수 있다는 사실이라고 했던 칼 포퍼의 언명을 나는 결코 잊지 않고 있다. 아주 빈번히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던 민주주의의 형식적 규칙들은 사회적 갈등을

폭력에 호소하지 않고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공존의 테크닉을 역사위로 최초로 선보여 주었다. 이러한 규칙들이 존중되는 곳에서만 적대자가 전멸되어야 하는 원수로서가 아니라 내일 우리를 대신 해줄지도 모르는 반대자로서 존재할수 있게 된다.
셋째는 사고의 자유로운 토의를 통한, 그리고 삶의 태도와 양식의 수정을 통한 사회의 점진적 개선의 이상이다. 오로지 민주주의만이 아마도 우리시대의 최고의 혁명이라 할 수 있는 성의혁명과 같은 조용한 혁명들이 발화하고 확산될수 있도록 허용한다.
마지막으로 형제애(프랑스혁명에서의 박애)의 이상이다.
인간의 역사는 골육상쟁의 역사로 메워져 있다.(역사철학)에서 헤겔은 역사를“거대한 살육의 집”이라고 정의했다. 부정할수 있겠는가?
세상 어느 나라에서고 민주주의적 방법이 하나의 습관이 되었을때 비로소 그것은 영속해갈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인류를 하나의 공동 운명체로 연대하는 형제적 띠에 대한 인정없이
민주적 방법이 하나의 습관으로 정착할수 있을 것인가?
이 운명공동체라는 인식이 나날이 실감을 더해가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이러한 형제적 띠에 대한 승인이 더욱 절실하다.
우리는 아직 어렴풋이나마 우리의 길을 비추고 있는 이성의 희미한 등불을 따라서 의미 있는 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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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베르토 보비오 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시민이 참여하는 대의민주주의가 답이다) 에서 ..............

2. 노베르토 보비오(Norberto Bobbio 1909--) :
교조적 맑스주의에 반대하여 자유와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역설한 정치학자.
1909년 이탈리아의 공업도시 투린에서 태어난 노베르토 보비오는 이탈리아가 배출한 유럽최고의 정치사상가, 이론가중의 한사람이다.
튜린대학에서 법철학을 전공한 그는 변호사이며 대학교수로서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사회당(psi)소속의 종신상원의원으로서 이론적 실천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유로코뮤니즘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좌파적인  이론적, 실천적 조류와의 논쟁속에서 자신의 정치이론을 형성했다.
이렇게해서 정초된 그의 실천적 당 이론은 psi로 하여금 독특한 방법으로 현실적인 사회주의 노선을 추구하도록 주도하였다.
또한 그는 이탈리아 정치의 고질적인 병폐의 하나인 이권정치, 즉 혼탁한 부패사슬에 동참하기를 거부하는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의연한 본보기이기도하다.
어찌보면 한국의 정치현실도 보비오가 실천속에서 자신의 이론을 전개한 이탈리아와 유사한 점이 많다 . 한보사태, IMF외환위기, 기아, 선경, 대우사태와 정경유착의 부패는 오늘 우리에게 과연 무엇을 보여주는가?
이러한 점에서도 그의 지적 성과물들은 우리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지난한 민주화과정을 거쳐 이제 그 공고화단계에 들어선 한국의 정치현실 역시 이탈리아와 비슷하게 지역주의와 고위공직자들의 부정부패문제에 얽매여 진퇴양난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저작들은 단순한 정치이론이 아니라 실천현장에서의 논쟁의 산물이기 때문에 더더욱 가치가 있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민주주의의 미래)(자유주의와 민주주의)(민주주의와 독재)그리고(어떤 사회주의인가? Which Socialism?)등은 모두 한결같이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이상적인 사회를 추구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전제로서 강조고 있다. 즉, 그의 저술들은 진보적인 사회체제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그리고 민주주의의해 보장되는“자유”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지를 날카로운 분석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또한 그의 이론적 통찰은, 이탈리아라는 특정사회의 정치노선 문제를 넘어 21세기를
살고있는 인류가 현대적 조건에서 정치제도로써의 “민주주의”를 어떻게 이해하고 발전하는지, 즉 민주주의의 미래를 전망하는데 있어서도 상당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주요저서: 정치와 문화, 민주주의의 미래, 어떤사회주의인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제3의길은 가능한가?(좌파냐 우파냐)등이 있다.

3. 작품소개:
생산수단의 공적소유를 통해 물질적 분배의 평등을 추구하고 나아가 노동해방을 기치로 내걸었던 거대한 세계사적 실험, 사회주의는 20세기가 그막을 내림과 동시에 실패로 끝났다.
여전히 사회주의체제를 고수하고 있는 국가들도 공산당 주도의 집산주의(collectivist)계획경제체제에 수정을 가하고 자본주의적 자유시장경제체제에 대한 수용의 폭을 확대하고 잇는 것이 20세기 후반부터의 세계사적 흐름이다.
그러나 인류가 자신의 공동체를 정치, 경제적으로 어떻게 조직할것인가의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이라면 인간해방이라는 것을 목표로 사회체제의 변화를 모색하던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 사상 및 그와 관련된 무수한 논의들을 부단히 되돌아보면서 현재의 사회체제를 관찰할 필요가 있다.
맑스주의자들로 하여금 “시민사회”라는 개념에 주목하게함으로써 유로코뮤니즘의 사상적 토대를 제공한 20세기초반의 맑스주의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보비오의 논의 역시 현대민주국가의 시민사회를 이해하는데 잇어 건너뛸수 없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현대사회에 이르러서도 민주주의는 인류에게 여전히 중요한 화두의 하나이다.
그러나 사회주의체제가가 몰락하면서 그것과 대비되던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이 오히려 퇴조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통하지 않고서는 어떠한 사회변혁적 이상이나 시도도 환영받을수 없는 민주주의시대에 민주주의에 대하여 다시금 관심을 가지고 새롭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노베르토보비오 역시 바로 그정점에 서있는 정치 사상가이다. 그렇다면 그람시처럼 이탈리아에 뿌리를 둔 정치사상가 보비오는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민주주의와 자유에 대하여 어떠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가?
맑스주의를 옹호하는 수많은 서유럽의 공산주의, 사회주의자들이 맑스는 옳앗지만 맑스주의가 틀렸다고, 맑스주의는 옳았지만 맑스주의자들이 틀렸다고, 그리고 맑스주의자들은 옳았지만 맑스주의적 실천이 틀렸다고 하면서 맑스와 맑스주의에 면죄부를 부여하려할 때, 보비오는 “도데체 어떻게 오류로써 자유로울수 있는 인간이 존재할수있단 말이냐”면서 “맑스의 비판은 옳았지만 그의 이상은 잘못되었다”고 과감한 비판을 제기한다.
맑스의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정신은 유효하지만 그의 공산주의사회에 대한 설계이상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자유민주주의적 “자유”만을 강조하면서 마냥 자본주의체제를 옹호했던 이론가는 아님은 물론이다.
그는 인류가 어우러져 살만한 이상적인 정치체계를 이룩하기 위한 여정은 “민주주의”를 탄탄히 구축하는 작업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자유사회주의(Liberal socialism)또는 “다원사회주의” 라는 개념으로 집약된다.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체제가 역사적인 시행착오를 거쳐 보존해온 개인주의적 신조와 노선을 바탕으로 사회주의적인 가치와 물질적 재화의 평등한 분배와 균등한 기회등 분배적 정의를 수용하는 법의지배, 활발한 대의주의 그리고 경쟁적 복수정당정치의 실질적 제도화가 그내용이다. 요컨대 그는 “자유”와“평등”을 역관계가 아닌 정관계로 구현하는 이른바“사회주의적 자유(Socialist liberty)를 강조한다.
이와같은 기본적인 발상위에서 그는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그리고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관계들을 역사적으로 그리고 철학적으로 해부하고 있다.
수많은 사회주의자들은 “부르죠아 민주주의가 자본주의를 지지하는 반면에, 진정한 민주주의는 생산수단의 공유를 통한 경제적 권력의 광범위한 차이를 좁혔을때만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보비오는 이러한 생각을 민주주의를 단순한 의사결정수단으로만 보는 것이라 비판한다.
이렇게 단순한 사고는 맑스주의자들이 자유주의적 권리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일뿐이다.
자유주의적 수단과 양립할수 있는 방법으로 사회주의를 추구해야 한다.
“정치적 해방은 근대민주주의를 낳았던 모든 제도를 발전, 확대, 강화”를 요구하며, 단한순간이라도 그러한 제도가 정지한다면, 다시 말해서 시민적 자유와 정치적 자유의 문제를 과소평가한다면 전혀 이로울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의의 결론격으로 보비오는 “생산자의 자치정부”를 자유사회주의의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황주홍 옮김, Norberto Bobbio, 문학과지성사 1992년, 7,000원

Bobbio는 매력적인 사람이다. 소신이 있지만, 경박하지 않다. 묵직한 사려를 품은 학자이자 정치사상가로 보인다. 일전에 <좌파냐 우파냐>라는 책을 단순요약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그래야 할 듯 싶다. 천천히 두루살피고 싶은 마음 없지 않지만, 중간고사생에게는 발등의 불이 있는지라 '효용'을 무시할 수가 없다. -_-;

한국에 살면서 정치체의 이름 중,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말이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이다. 워낙에 익숙하기에 자유는 으레히 민주주의 앞에 붙는 말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자유를 핵심으로 삼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관계는 반드시 친화적인 것만은 아니다. 외려 상충하는 면이 없지 않다. 그래서 Bobbio는 그 양자간의 관계맺음을 살펴보기 위해 타임머신을 탄다. 일반적인 정의를 언급하고 시작한다. "자유주의(liberalism)는 국가에 대한 어떤 독특한 태도를 일컫는 개념으로서, 국가의 권력과 기능은 제한적이라고 보는 신조이다.(≠절대국가,사회국가) 민주주의(democracy)는 통치형식의 하나로서, 통치의 힘, 즉 통치권이 한 개인이나 몇몇 소수의 수중에 장악되어서는 안된다고 믿는 신조이다.(≠군주주의,과두주의)"(p.11) 때문에 자유주의 국가가 반드시 민주주의 국가인 것은 아니며, 민주주의 정부가 자유주의 국가내에서만 성장하는 것도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자유의 고전적 개념과 현대적 개념의 차이를 최초로 언급한 사람이 Benjamin Constant이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대립적으로 설정한 시도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 그대로 재인용한다. "고대인들은 한 국가내의 모든 시민들에게 권력이 분배되는 것을 목적으로 했으며 이것을 그들은 자유라고 생각했다. 현대인들의 목표는 각자의 사적인 소유에 대한 보장이다.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자유는 제도에 의해서 획득된 이 소유의 보장을 일컫는다."(p.12) 그리고 Constant은 이들은 양립불가능하며, 후자의 손을 들어준다.

자유주의의 '철학적' 전제는 자연권(이론)에서 비롯된다. '철학적'이라는 수식은, 그것이 실재했던 것이 아니라 가설의 형태를 취하기 때문이다. 자연법 사상의 매력이라면 매력인 것은, 그 논리전개가 실제의 진행방향을 뒤집어놓는 다는 것에서 찾을 수도 있다. 절대군주의 억압하에 있던 개인이, 이 사상체계에서는 자유로운 자연상태에 있었던 것으로 가정되기 때문이다.

자유주의와 관련해 언급되는 것들은 거진 다 교과서를 통해 한 번쯤은 들어보았다는 점에서 한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임을 절감케하는 부분이다. 어쨌거나. 모든 개인은 천부인권을 갖는다. 국가나 지배자는 이 기본권을 침해해서는 안되며, 타인에 의한 권리의 침해로부터 개인을 보호해야 한다. 이것이 자유주의의 기본 논리이자, 자유주의 국가가 제한국가(the limited state)이게 하는 근거다. John Locke가 대표적인 자연법 이론가인데, 미국의 <독립선언서>, 프랑스 혁명기의 <인권 선언문>은 이를 반영한다.(p.17)

사회계약이론의 핵심단어는 '계약'에 있다. 그리고 계약을 위해서는 독립된 개인이 전제되어야 한다. 결정권이 개인에게 존재해야만 논리전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자연권사상을 통해 뒷받침된다. 개인이 등장하므로. 인간의 권리, 그리고 사회계약이론은 개인주의(individuality)를 매개로 연결된다.(p.19) 개인주의 없이 자유주의는 불가능하다는 명제가 도출된다.

자유주의 이론에서 국가는 권력과 기능의 측면에서 한계를 갖는다. 전자는 권리존중주의 국가(right-based state), 후자는 최소국가(minimal state)로 이어진다. 권리중심주의 국가는 공권력이 기본법이나 헌법 등과 같은 일반적 규범들에 의해서 규제되고 있는 국가로 이해된다.(p.22) 이는 소극적인 의미로 '사람이 아니라 법에 의해서 통치되는' 비독재(non-despotic) 국가정도로 정의될 수 있지만, 외연이 매우 광범위하기에 개념으로서의 의의가 퇴색된다. 자유주의 이론에서는 권리중심주의 국가를 적극적으로 살핀다. 자의적이고 정통성이 결여된 권력행사를 방지하고 예방하는, 그리고 권력의 남용과 탈법적인 권력행사를 제동걸고 분쇄하는 모든 '헌법적인 장치'를 포용하면서 정의된다. 이는 ⓐ입법권우위(-행정권) ⓑ사법부에 의한 입법부 감시 ⓒ지방정부의 자율성(-중앙정부) ⓓ행정관료의 자율성이 핵심적 장치가 된다.(p.24)

상기한 장치는 최종적으로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존재한다. 이 때의 자유는 소극적 자유(negative liberty)이다. 자유주의에서 '자유'와 '권력'은 대립항이다. 양립불가능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다른 사람의 자유가 확대된다는 말은 한 사람의 권력이 그만큼 축소된다는 것을 말한다."(p.25) 그래서 국가는 권리존중주의적일 필요가 있을 뿐 아니라, 그 연장선상에서 국가역할이 제한될 필요가 있음이 정당화된다. 개인의 입장에서 국가는 필요악이다. "가부장적 국가(imperium paternale)는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독재체제"라고 한 Kant와, "외부의 적이나 타인으로부터의 손상으로부터 개인을 지켜주고, 사적영역에서는 실현될 수 없는 공공사업의 필요성"으로 국가역할을 한정한 Smith는 이에 부합한다. Humboldt는 개인이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다양성(variety)의 가치를 중시한다.(갈등을 긍정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국가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안전(security)'일 뿐이라는 것이다. 헤겔이 상상한 국가는 더이상 자유주의에서 존재할 수 없다.

이처럼 자유주의는 근대적인 것이다. 반면 정부형태로서의 민주주의는 고대적이다.(p.36) 어원상 민주주의는 다수인민(the people)에 의한 통치이다. 자유주의자들은 민주주의를 불신한다. 그리스에서 볼 수 있었던 직접민주주의 형태를 말한다. 이는 인민에 대한 불신과 동일하다. Madison의 말을 인용한다. "인민들에 의한 통치는 이러한 위험스러운 악성의 경향성을 띠게 된다는 것을 고려하면서도 이 통치 형태의 지지자들은 결코 그 통치의 성격과 운명에 대한 경각심을 지니지 못하고 있다." 미국헌법에도 드러나듯이, 자유주의자들이 두려워한 것은 민주주의가 결국 다수에 의한 지배가 전제정(tyranny)이 되고 말 것이라는 점에 있었다. 이들은 논리상 대표가 통치하는 대의제 민주주의를 지지할 수밖에 없었고, 사회의 규모는 이를 뒷받침했다.(Bobbio는 이들의 생각에 반감을 표명한다.)

하지만 루소가 "진정한 민주주의는 결코 존재해보지 못했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고, 그 이유는 ⓐ작은규모의 사회 ⓑ간단한 사안 ⓒ부의 평등 ⓓ검소한 생활이라는 전제가 실현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듯이 이미 직접민주주의는 비실현태이고, 현실적으로 대의제민주주의만을 경험할 수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양자는 모두 인민주권의 어떤 원리에 입각하고 있음 또한 사실이라고 Bobbio는 지적한다.(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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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논술, 사교육과 관련 없다&quot;, 믿어도 되나

신뢰성을 얻으려면 군(郡) 출신 합격자수와 서울과 광역시 출신 합격자수가 제시돼야 한다. 아울러 군(郡) 출신 합격생들이 사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증거 또한 필수다

 

 군 지역의 상위 소수와 서울과 광역시의 상위 다수를 놓고 평균을 잰다는 것 자체가 문제인 데다가, 군(郡) 출신 합격생들은 공교육이나 자신의 능력만으로 논술고사를 치렀다는 것을 전제하는 잘못된 발표다. 또한 수능이 끝나면 전국 상위권 학생들이 사교육 현장에 장사진을 이룬다는 사실이 숨겨져 있다.

 

서울대 논술, 사교육과 관련 없다", 믿어도 되나
논술교육, 단위 학교는 준비중..."교육청 지원과 현장 연구 결합 필요"
텍스트만보기   박병춘(hayam) 기자   
 
서울대가 지난 1일 놀랄만한 발표를 했다. '2007학년도 정시모집 합격자 논술 점수 분석결과, 군(郡) 출신 합격자의 평균 점수가 25점 만점을 기준으로 23.58점인데 서울(23.42점)과 광역시(23.41점) 출신 합격자 평균보다 오히려 높았다'고 말이다.

더욱 놀랄만한 사실은 '이 같은 결과로 논술고사에서 사교육 효과가 없다는 것을 반영한다'며 논술과 사교육의 관계를 떼어놓으려는 의도가 듬뿍 담겨 있다는 것. 논술과 사교육의 상관관계를 분리하려는 그 의도의 순수성이야 충분히 환영하지만 현실을 외면한 판단이니 비난 받아 마땅하다.

이 발표가 최소한 신뢰성을 얻으려면 군(郡) 출신 합격자수와 서울과 광역시 출신 합격자수가 제시돼야 한다. 아울러 군(郡) 출신 합격생들이 사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증거 또한 필수다. 또한 논술고사에서 어떤 채점 방식을 적용했는지도 참고 되어야 할 것이다.

군 지역의 상위 소수와 서울과 광역시의 상위 다수를 놓고 평균을 잰다는 것 자체가 문제인 데다가, 군(郡) 출신 합격생들은 공교육이나 자신의 능력만으로 논술고사를 치렀다는 것을 전제하는 잘못된 발표다. 또한 수능이 끝나면 전국 상위권 학생들이 사교육 현장에 장사진을 이룬다는 사실이 숨겨져 있다.

공교육이 논술교육을 진행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학문에 왕도가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논술을 잘 하는 왕도 또한 마땅치 않다. 많은 독서활동으로 배경지식을 쌓고 많이 써 보는 것 정도가 비법이라면 비법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공교육이 논술교육을 주도할 수 있게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하는데 단위학교마다 소위 통합논술을 지도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논술 사교육 광풍이 불자 교육부가 나서 지원에 나섰다. 교육부가 지난 겨울방학을 앞두고 단위학교마다 5백만 원씩 예산을 지원하여 논술교육의 단초를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아직 그 성과물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인데 이것만 보더라도 준비 자체가 안 됐다는 증거다.

필자는 이번 겨울방학 전에 뜻을 같이 하는 교사 9명과 논술팀을 꾸렸다. 마침 시교육청이 공문을 보내 논술 교육 프로그램을 공모하여 함께 참여했다. 우리는 겨울 방학 중 십여 차례 모임을 갖고 교과별(주로 국영수사과 교사)로 주제를 정해 100분짜리 수업용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모두 12개의 주제를 정했다. 주제마다 학생들이 통합적 사고를 할 수 있게 다양한 정보를 주고 글쓰기를 하게 하는 형식이다. 사진, 만평, 동영상 등을 동원했다. 한 교사가 프로그램을 만들면 세미나 형식으로 발표를 하고 장단점을 토론하여 보완했다.

이 과정에서 교사마다 개별 교과의 창의적 수업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공감했다. 또한 정보와 지식을 창의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교사가 정보전달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고, 교실 수업을 개선하는 것이 결국 통합논술을 대비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번 겨울방학 때는 단위학교마다 많은 교사들이 이곳저곳 논술교사 연수에 참여하고 있다. 그 동안 얼마나 논술교육 여건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물론 오래 전부터 논술교육을 실시하여 앞서가는 일부 고교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논술교육에 참여했던 교사들이 논술교육 연수에서 강사로 활동하여 경험적 사례를 전하고 있다.

아무튼 서울대학교를 비롯한 서울 소재 상위권 대학들이 좋은 학생을 선발하려고 밀어붙인 논술고사로 사교육 광풍에 시달려야 하는 현실이 아쉽다. 단위학교는 여전히 준비 중이니 말이다.

논술, 대학입시 대비라기보다는 수업 개선의 차원으로 고민해야

여전히 논술고사 시행을 밀어붙이는 대학들이 밉다. 언제가 될지 모르나 3불 정책(고교등급제, 본고사, 기여입학제)도 깨질 확률이 많다고 우려하는 분들도 많다. 고려대는 최근 500개 고교를 줄세워 내신 등급을 조절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대학이 가르쳐야 할 글쓰기를 일선학교 현장에 책임을 전가한다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많은 분들이 입시경쟁 속에서 논술까지 가세해 우리 학생들이 짊어져야 할 과다한 학습량을 걱정하기도 한다.

논술이라고 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읽기를 토대로 한다고 볼 때, 독해력은 기본이다. 또한 배경지식이 없다면 어떻게 글을 쓸 수 있을까. 결국 독서량이 글쓰기를 좌우한다. 교사마다 보다 창의적으로 수업 방식을 개선하여 토의 토론식 수업을 엮어내야 한다. 이미 주입식 교육에서 환골탈태한 학교도 많이 있지만 현재와 같은 문제풀이식 수업은 지양해야 한다.

지난 1일 서울대가 미세한 차이로 군(郡) 지역 합격자 평균이 우위를 점했다고 하여 논술고사와 사교육의 관련성을 부정하고 있으나, 이는 위에서 밝힌 대로 몇 가지 숨어 있는 전제를 배제한 채 발표한 것이다. 최근 고려대 논술에서도 강남·북·지방간 논술 점수 격차가 없다고 말하고 있으나, 중요한 사실은 여전히 논술을 사교육에 기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번에 서울대가 발표한 내용은 논술과 사교육의 상관관계를 끊어보려는 차원이라고 이해한다. 대학서열화가 존재하는 한 사교육이 사라질 수 없겠으나 여전히 단위학교는 '준비 중'이다. 우리 교사들이 논술을 입시대비용으로 다루지 않고 토의와 토론을 통한 창의적인 수업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자부한다. 교육부나 교육청의 지원 속에서 현장 교사들의 끊임없는 연수와 연구가 엮어질 때 논술교육은 성공할 수 있다.
 
 
2007-02-05 14:23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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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명 “부동산 치부 이명박이 1위? 국민 반성해야”

 

 

 

김진명 “부동산 치부 이명박이 1위? 국민 반성해야”
 
실명 대선소설 <나비야...> 작가, 여의도통신과 인터뷰서 주장
 
입력 :2007-02-05 18:07:00   안성모 (momo@dailyseop.com)기자
 
 
유력 대선주자를 비롯한 정치인들의 실명이 등장하는 소설 <나비야 청산 가자>의 작가 김진명 씨는 “한국 사회의 여러 성향을 분석했을 때 충분히 일어날 수도 있다는 차원에서 가상의 대선전략 보고서를 통해 하나의 시각을 보였을 뿐이다”며 선거법 위반 논란을 일축했다.

김 씨는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로 유명한 밀리언셀러 작가. 이번 소설에는 한나라당 대선주자인 손학규 전 지사가 범여권 경선에 참여해 대통령 후보로 확정되는 것이 여권의 필승전략이라는 가상의 ‘대선 전략 보고서’를 담아 화제가 됐다.

소설 내용을 놓고 보면, 한나라당 내 대선주자인 이른바 ‘빅3’ 중 손학규 전 지사에 호의적인 반면,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비판적 입장을 보인 셈이다. 이에 이명박·박근혜 캠프 측에서는 정치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느냐며 시큰둥한 입장을 보인 바 있다.

“손학규 여권후보 현실화 가능…이명박·박근혜 내게 고맙다 해야”

   
 
  ▲ 김진명의 소설 <나비야 청산가자>의 책 표지   
 
김진명 씨는 5일 발행된 <여의도 통신>과 인터뷰에서 “손학규 전 지사가 한나라당에서 뛰쳐나올 가능성은 매우 높다”며 “충분히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이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소설에서 ‘한나라당에 쓴 소리를 할 수 없는 박근혜, 이명박과 달리 손학규는 소속당인 한나라당의 잘못에 대해서도 말을 아끼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소설에 대한 이명박 캠프의 ‘시큰둥한 반응’에 대해 “도리어 이명박 전 시장은 나에게 고맙다고 해야 된다”고 밝혔다. “이명박 같은 사람은 상당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선거의 공정성을 감안해서 많이 순화시켰다”는 것이다.

“책에서도 부드럽게 언급했는데 원래는 더 세게 언급할 수도 있었다”는 김 씨는 “많은 국민이 ‘이명박이 희망이다’라고 하고 있는데 다른 측면을 봐야 할 것 같다”며 “이명박 전 시장이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벌었다는 것은 틀림없는 얘기다”고 주장했다. “그냥 일반 국민이 부동산 투기한 것하고 이명박 전 시장의 행위는 다르다”고도 했다.

박근혜 전 대표의 반응에 대해서도 “기분이 좋지는 않겠지만 도리어 좋아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표로서는 현재의 구도가 바뀌어야 하는데, 이명박 전 시장이 워낙 강세이기 때문에 무기력할 뿐 방법이 없다”고 평가한 그는 “이른바 이명박 표는 여권이 지리멸렬하면서 붙은 것이 많다”며 “현재 여권 후보들이 빈약하지만 손학규 전 지사하고 같이 하게 돼서 힘이 커지면 이명박 표는 자연스럽게 빠진다”고 내다봤다.

손학규 전 지사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인지도’라고 했다. 김 씨는 “사람들이 손 전 지사에 대해서 제대로 알면 심각한 양심의 갈등에 빠질 것이라고 본다”며 “객관적으로 딱 올려놓고 보면 많은 국민들은 ‘이명박, 박근혜에 비해서 우리가 이제까지 못 가져본 후보’라고 생각할 것이다”고 내다봤다.

“부동산 플레이로 돈 번 이명박이 대통령후보 1위…국민들 반성해야”

이명박 전 시장에 대한 비판은 그를 지지율 1위의 대선후보로 자리잡게 한 국민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김 씨는 “여권이 지리멸렬하면 그 표는 당장 이명박 전 시장에게 붙는다”며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개인적인 약점이 보일 것이다”고 예상한 후 “그럼 국민들은 ‘과연 이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에 빠질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가 그 동안 추구했던 많은 정의, 정말 피로써 만들어왔던 그것을 버리고, 이 사람이 밥 먹여줄 것 같은 이유 하나만으로 더티하게 부동산 플레이를 한 이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야 하는지에 대해 국민들은 고민할 것이다”며 “그래서 소설에서 우리 국민들을 비판한 것이다”고 밝혔다. “솔직히 이명박 전 시장보다 국민들이 더 원망스럽다”고도 했다.

김 씨는 또 “우리에게는 악몽 같은 기억이 있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고 나서 한반도에서 전 국민적 데모가 있었다”며 “‘조선의 은인을 살해한 안중근 불한당을 죽여라’고 외치며 데모를 했다. 그것은 역사적 사실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악법 중의 악법인 유신헌법에 대해 당시 국민의 90%가 지지한 것도 그것과 비슷한 이야기이다”고 지적한 그는 “부동산 망국이 어쩌고저쩌고 욕하면서도 더티한 부동산 플레이로 돈 번 사람을 대통령 후보 1위로 뽑고 있는 현실, 이런 것을 반성하자는 차원에서 소설을 썼다”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로서 당연히 할 일을 했다”고 밝혔다.

젊은 세대에 쓴 소리도 나왔다. 소설에서 주요 인물을 모두 젊은 세대들로 내세우기도 한 김 씨는 “지금 우리 젊은이들은 <20대 재테크에 미쳐라> 같은 책이나 보고 있고, 달콤한 개인의 행복에만 빠져 있다”며 “그런 그들에게 간단치 않은 조국의 현재와 미래를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지금은 찬란하지만 모두 신기루에 불과”

소설 속에 등장하는 ‘대선 전략 보고서’가 제시한 여권 후보 승리 가능성과 관련해서는 우선 “손학규 전 지사가 여권으로 가야 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고 지적했다. 김 씨는 “(현재) 여권은 지리멸렬할 수밖에 없다”며 “여권이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다른 인물을 데리고 오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적합한 인물로서는 “대통령이 되려는 욕구가 강한 사람”을 들었다. 김 씨는 “고건 전 총리에게는 그것이 없었다”며 “대통령 후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투쟁 경력이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여권의 잠재적 대선후보로 주목받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에 대해 “일단 밥상이 다 차려지면 숟가락 들고 먹을 수는 있지만 밥상 차리기가 어렵다”며 “그런 사람은 안 된다”고 평가했다.

김 씨는 또 여권의 경우 “인물이 안 되면 바람으로 이겨야 한다”며 “경선을 얼마나 극적으로 만들어 내느냐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반면 한나라당 경우 “너무 확실한 후보라서 시간이 지날수록 지루해 질 것이다”며 “지금이야 찬란해 보이지만 모두 신기루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 데일리서프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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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STIE boys

 

 








Beastie Boys' Discography

Licensed To Ill

Paul's Boutique

Check Your Head

Ill Communication

Hello Nasty

Sounds Of Science
과거의 곡들과 함께 보는 비스티 보이스의 역사




80∼90년대를 가로지르며 힙합과 락에 기초한 다양한 사운드를 선보였던 비스티 보이스(Beastie Boys). 이들이 이전까지 자신들의 음악세계를 정리하는 앨범 [SOUNDS OF SCIENCE]를 발표하였다. 팬들에게는 꿈의 컬렉션이 될 이 앨범에는 데뷔앨범 [LICENSED TO ILL]에서부터 최근작 [HELLO NASTY]에 이르는 역작들에서 골라낸 히트곡들을 포함하여 구하기 힘들거나 미공개 트랙들이 고루 실려있다. 초창기 그들의 싱싱한 사운드에서부터 최근의 리믹스 곡들까지 두루 섭렵한 앨범의 곡들을 따라 이들의 역사와 함께 하드코어 랩의 역사를 들여다보도록 하자.

현재 가장 유행하고 있는 음악씬은 무얼까?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짐작할 것이다. 통칭 랩코어로 분류되는 랩과 락의 크로스오버 씬…. 현재는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콘(Korn)을 필두로 수많은 신진 아티스트들이 계속 등장하며 자리다툼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때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았던(백인과 흑인이라는 인종만큼이나) 두 장르가 섞여지면서 이제는 하나의 거대한 씬
으로서 자리잡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씬에 지대한 공헌을 한 선조격인 밴드가 있으니 바로 비스티 보이스이다. 이들은 최근 자신들의 그간 행적을 정리해 보려하고 있다. 엄청난 성공을 가져다주었던 데뷔앨범 [Licensed To Ill] 이전 작품부터 작년에 발표한 최근작 [Hello Nasty]까지….
앞으로 발매될(창고 주: 12월 18일 현재 수입음반에 이어 라이센스본도 발매되었다) [Sounds Of Science]라는 타이틀의 이 앨범에는 그의 역작들에서 골라낸 히트곡들을 포함하여 구하기 힘들거나 발매되지 않은 곡들, 42트랙을 모아놓아 비스티 보이스 팬들에게는 꿈의 컬렉션이, 랩코어 팬들에게는 초창기 하드코어 랩의 팔팔한 사운드를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었다. 80년대 초 블랙 플래그(Black Flag), 배드 브레인스(Bad Brains) 등의 하드코어 펑크의 매력에 심취했던 보
이들은 후에 흑인들로 구성된 랩그룹 런 디엠시(Run-DMC)에게서 강한 영향을 받아 좌충우돌 사운드를 펼쳐내며 대중적으로 큰 호응을 얻어내었던 것이다. “하드코어와 힙합은 전혀 다르지 않다. 그 자세는 같은 것이다.” 라는 비스티 보이 마크 D의 말처럼 그 시대 하드코어와 랩은 메인스트림에 맞서는 언더그라운드 씬에서 각자의 분노와 에너지를 표출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두 장르 모두에 관심이 많았던 비스티 보이스는 이들의 경계를 무시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가 처음부터 환영받았던 것은 아니었다. 랩이라는 것이 소수의 흑인들 사이에서 불려지던 언더그라운드 음악이었던 시절, 백인들이 더구나 기타와 베이스를 들고 방방 뛰면서 하드코어 펑크사운드에 랩핑을 한다는 것은 단지 웃기는 구경거리나 비난의 대상이 되던 때도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밴드의 이러한 태도를 어줍잖게 B-보이들을 흉내내는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이들의 재미있는 무대매너와 그루브하면서 활기찬 사운드는 사람들의 가슴을 움직이는 것이었고 86년 데프 잼(Def Jam)에서 발매한 데뷔앨범 [Licensed Ill]로 굉장한 성공을 거두게 된다. 헤비 메틀리프와 랩이 조화된 싱글곡 'Fight For Your Right (To Party)'를 비롯해 'No Sleep Till Brooklyn', 'She's On It' 등이 히트하며 최초의 차트 1위 랩앨범이라는 영광까지 차지하게 된다. 이는 당시 새로운 형식의 힙합을 하여 인기를 모으던 런 디엠시와 함께 랩 역사상의 중요한 전환점들 중 하나로 기억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후로도 이들은 하드코어 펑크와 힙합 외에 소울, 펑크(Funk), 재즈에서 레게, 컨트리, 보사노바까지 다양한 장르를 자신들만의 방법론으로 끌어들이는 지칠 줄 모르는 실험정신을 이어왔다. 이렇게 80년대와 90년대를 가로지르는 그들의 행각은, 최근의 현상으로 향하는 가장 직접적 음악사로서 남을만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떼로 몰려다니며 터프함을 자랑하는 듯한 남성호르몬 과다증의 이미지와는 달리 그들은 그랜드 로열(Grand Royal)이라는 유명아티스트들이 많이 소속되어있는 자신들의 레이블을 운영하고 있으며 티벳의 독립을 위한 밀라레파(Milarepa) 운동 등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도 깨어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데뷔앨범 [Licensed To Ill]에서부터 최근작 [Hello Nasty]에 이르는 역작들에서 골라낸 히트곡들을 포함하여 구하기 힘들거나 발매되지 않은 곡들이 고루 실려있다.
  B-사이드 콘서트 곡 'Skill To Pay The Bills', 비디오로만 나온 'Body Moving'의 리믹스 곡, [
Check Your Head]에 수록되었던 'Jimy James'의 오리지널 버전을 비롯해 발매된바 없는 'Country Mike's Theme'와 앨범에 수록된 유일한 신곡 'Alive'까지… 뉴욕과 LA를 오가며 만들었던 여러 곡들이 무려 42트랙이나 빼곡히 들어차 있는 것이다. 이 장에서는 각 곡에 대한 추억을 얘기하는 멤버들의 목소리를 통해 이들의 역사와 나아가 하드코어 랩의 역사를 생생히 전달하고자 하였다.




사진제공/EMI (기사제공 : [Hot 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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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품단가 후려치기'가 사람을 죽였다

 

 

 

'납품단가 후려치기'가 사람을 죽였다
영세부품업체 사장 자살 … <중앙>-네이트, "노조 때문" 왜곡
 
 
 

"지속적인 경영악화와 눈덩이처럼 커지는 부채의 현실 앞에,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중압감에 어찌할 수 없는 길을 선택합니다.(중략) 저희 제조업 단가 현실과는 너무나 힘이 듭니다. 바보같은 인간이지만 저혼자 호의호식하려하지 않았습니다. 제조원가 너무나도 현실성이 안되네요."

납품단가 인하로 인한 경영악화에 시달리던 영세업체 사장이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1일 오전 8시께 경남 창원시 대산면에 있는 한 자동차 부품업체 사무실에서 이 회사 대표 송모(48·창원시 동정동)씨가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출근한 회사 직원 김모(28·여·김해시 진영읍)씨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조사결과 숨진 송씨는 지난 2000년부터 창원시 대산면에 직원 10여 명을 두고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소규모 하청업체를 경영해왔다. 최근 경영악화로 인한 자금압박에 시달리던 중 1일 두 장의 유서를 남긴 채 스스로 목을 매 숨진 것으로 밝혀졌다.

   
 
 

숨진 송씨의 바지 주머니에서 발견된 유서는 최근 중소영세업체 사장들이 환율인하와 납품단가로 인해 얼마나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가 적혀 있었다. 유서에서 송씨는 "제조원가가 현실과 터무니없이 맞지 않아 경영악화가 지속됐다"고 적었다.

경찰에 따르면 송씨는 지난해까지 비교적 잘 판매되던 부품을 생산하다가 그 수요가 줄어 외국업체로부터 하청을 받기 시작했는데, 최근 환율이 급격히 내리고 원자재비도 갈수록 높아져 고민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오히려 납품 단가는 낮아져 적자폭이 계속 늘어났다.

송씨는 어려운 회사 상황에서도 직원들의 임금체불을 막기위해 노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송씨는 "누구든 저와 같은 전력은 밟지 마세요. ○○야 정말 할 말이 없다"며 숨을 끊는 순간까지도 직원들부터 걱정했으며 "외국인 꼭 챙겨주세요. ○과장 부탁해요"라고 적어 평소 송씨가 가진 외국인 노동자를 향한 따뜻한 마음도 읽을 수 있었다.

끝도없는 대기업 납품단가 후려치기

송씨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대기업의 '납품단가 후려치기'다. 지난 2005년 1월 현대자동차는 '비상경영'을 선포하면서 제주도에 하청업체 임원들을 불러놓고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해 현대자동차노조와 부품업체인 금속노조가 강력하게 항의했었다.

지난 1월 29일 ㈜만도는 2007년 사업계획 설명회에서 "지난 현대자동차에 납품단가 인하를 800억 맞은 게 맞느냐?"는 노조 간부의 질문에 "CR을 맞은 건 맞지만 액수를 알려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하청업체에게 얼마나 때렸냐?"고 묻자 "현대차에 맞은 50%의 단가인하를 요청했다"는 대답을 들었다.

즉, 현대자동차가 환율인하를 이유로 1차 하청업체에게 단가인하를 때리면 1차 업체는 1차 업체에게, 2차 업체는 3차 업체에게, 3차는 4차 업체에게 납품단가 후려치기를 하고, 결국 영세업체 노동자는 최저임금을 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금속노조 만도지부는 회사에게 "하청업체에 납품단가 인하를 하지 말라"고 요구했지만, 회사는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다"며 이를 거부해왔다. 죽음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해 4월 19일 현대·기아차 그룹 계열사 노조와 자동차 부품사 노조, 금속노조 등 1200여명의 노동자가 양재동 현대차그룹 본사 앞에 모여 '납품단가 후려치기 중단'을 요구했었다. 그러나 현대·기아차 그룹은 수년 째 계속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

노조 매도에 고결한 죽음마저 이용하는 중앙일보

송씨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환율하락과 제조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납품단가 인하다. 해마다 계속되고 있는 대기업의 납품단가 인하와 불공정거래로 인한 경영악화를 견디지 못해 그는 결국 목숨을 끊었다. 2장 짜리 그의 유서에도 명백하게 씌여있다.

그런데 <중앙일보>는 2일자 '현대차 협력업체 사장 목매-주변선 `귀족노조 파업 등으로 자금난'이라는 제목을 달아 그의 죽음이 노동조합 파업 때문이라고 왜곡했다. 유서 어디에도 노동조합에 대한 얘기는 없었다. 그러자 <중앙일보>는 친구의 말을 인용해 사건의 본질을 왜곡하고, 노조를 매도하는 데 고인의 죽음까지 이용한 것이다.

이보다 한발 더 나아가 악의적인 보도를 한 곳은 네이트다. 네이트는 이 뉴스를 눈에 '화제기사' 머리에 올려놓고 제목도 굵은 글씨로 뽑았으며, <중앙일보>의 제목 '현대차 협력업체...' 앞에 '파업'을 붙여 마치 현대차 파업 사태가 협력업체 사장의 자살과 관련이 있는 듯한 편집 태도를 보였다.

끝도 없이 계속되는 대기업의 납품단가 후려치기에 대해 '불공정거래'로 강력하게 처벌해야 할 정부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지난 해 12월 28일 정부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대표자를 청와대로 불러 상생회의를 한다고 했지만 대기업의 범죄행위를 눈감아주고 있다.

사람을 죽음으로 내모는 대기업의 납품단가 후려치기를 막기 위해 결국 노동자가 나서야 한다. 원청노동자와 하청노동자가 하나의 산별노조로 뭉친 금속노조는 올해 중앙교섭을 통해 '원하청 불공정 거래 중단' 등을 요구할 계획이다.

   
 
 

"산별교섭에서 불공정거래 중단 요구할 계획"

금속노조 김창한 위원장은 "중소기업 육성은 전체 산업을 건강하게 하는 힘인데 하청업체의 납품단가 후려치기로 노동자들의 고통뿐만 아니라 회사의 기술개발이 이뤄지지 못해 큰 문제였는데 이제는 사람까지 죽게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원청회사 노동자의 임금을 줄이면 하청회사는 더 옥죄려고 할 것"이라며 "자본의 몫을 줄이면 원하청 불공정거래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억울한 죽음을 막기 위해서는 재벌의 배를 불리고 불법비자금을 만들기 위해 계속되고 있는 대기업의 납품단가 후려치기를 노동자의 힘으로 근절해야 하는 것이다. 

 
2007년 02월 02일 (금) 16:33:26 박점규 현장기자 bada995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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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리얼해서 무서운 메디컬 드라마

 

 

 

너무 리얼해서 무서운 메디컬 드라마
<하얀거탑>은 어떤 드라마?
텍스트만보기   조은미(cool) 기자   
 
 
ⓒ iMBC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정도로 숨죽이고 지켜봤다."
"소름 끼치게 재미있다."
"친구한테 보라고 권하게 재방 좀 편성해 달라."


MBC주말드라마 <하얀거탑> 시청자게시판엔 벌써부터 기대가 넘쳤다.

지난 6일 시작한 MBC주말드라마 <하얀거탑>(안판석 연출, 이기원 극본)은 시작하자마자 빠르게 굴러간다. 2회 만에 주요 인물들은 이미 링 위에 올라갔다. <하얀거탑>은 본격 메디컬 드라마다. 병원 이야기라고 해서 의사와 간호사들의 좌충우돌 로맨스를 기대하면 오산이다. 우리나라 최고 대학병원 외과 과장 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권력 싸움이다.

여기에 병원 생활이 실제처럼 펼쳐진다.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지금껏 보지 못한 병원 드라마인 건 틀림없다. 이 드라마를 본 한 대학병원 의사는 말했다.

"이 드라마는 의사들에겐 공포물이다. 너무 리얼해서."

의사들에겐 너무 리얼한 공포물?

드라마 배경은 우리나라 최고 대학병원인 명인대 의대 병원이다. 병원 외과 과장(이정길)이 곧 퇴임한다. 하지만 후임인 장준혁(김명민)에게 그 자리를 물려줄 생각은 없다. 장준혁은 천재적인 외과 의사다. 소문도 자자하다. 과장은 자기보다 잘난 그가 싫다. 또 다른 의사 노민국(차인표)을 거기 앉히면 퇴임 뒤, 다른 자리가 보장된다.

장준혁은 실력만 최고인 게 아니라 최고가 되고 싶다. 그게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명인의대 병원 외과 과장이다. 변수는 이 병원 실세인 부원장(김창완)이다. 그는 권모술수에 닳고 닳은 달인이다.

하지만 일이 꼬인다. 그가 오진한 환자를 장준혁이 몰래 수술한다. 인간적인 내과의사인 최도영(이선균)이 부탁해서다. 그런 장준혁을 부원장이 그냥 둘 리 없다. 장준혁은 이 난관을 어떻게 돌파할까? 외과 과장 자리까지 오를 수 있을까? 천재 외과 의사의 야망의 끝은?

<하얀거탑>은 본래 소설이다. 야마자키 도요코가 쓴 일본 소설이다. 1969년에 발간됐다. 철저한 취재 뒤 사실성 높은 소설을 쓰기로 유명한 신문 기자 출신 소설가가 썼다. 소설은 단순히 의사들 이야기를 넘어 묻는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이 소설이 <하얀거탑>의 원작이다. 일본에서도 드라마로 만들었다. 그것도 두 번이나. 1978년과 2003년이다. 일본에서 2003년 만든 드라마는 명작으로 손꼽힌다.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했다. 안판석 PD도 "처음 봤던 그 드라마가 잊혀지지 않는다. 워낙 명작이다"고 말했다.

원작의 힘일까? <하얀거탑>엔 벌써부터 인간관계에 대한 통찰을 드러내는 대화들이 넘쳐난다. 과장님 사모님조차 행여 부원장 사모님보다 튈라. 애써 수수한 옷을 고르며 말한다. "대장보다 튀어봤자, 남는 건 불똥 밖에 없는 거야."

 
▲ 9일 오후 경기도 이천 세트장에서 외과 과장(이정길)과 부원장(김창완)이 장준혁(김명민)을 지방으로 내려보내는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장면이 촬영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15억 들인 세트장까지 사실성에 공들여

한국판 <하얀거탑>은 일단 사실성 있는 드라마인 건 틀림없어 보인다. 드라마의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서 의사들로 꾸려진 자문단도 있다. 안판석 PD는 "의료적인 요소를 2006년 상황에 맞게 번안했다. 완전히 다르다"고 했다.

실제 지난 주말 방송에선 사실적인 수술 장면이 방송됐다. 외과의사 장준혁은 환자 목숨이 경각에 달리자, 환자 가슴을 열어 심장을 마사지 했다. 이때 실제 사람과 흡사한 환자 모습의 '더미'가 사용됐다. 2500만원 가량 하는 고가 소품이다.

이 드라마가 실감나는 데는 세트장도 한몫한다. 명인대학병원 모습은 6개월 동안 15억원을 들여 경기도 이천에 만든 1200평짜리 세트장에서 모두 촬영한다. 수술실, 병실, 중환자실, 연구실까지 세밀하게 만들었다. 정교한 병원 그대로다. 맹장 수술 정도야 당장 해도 될 정도다.

김창완씨는 말했다. "딴 생각 없이 연기만 할 수 있는 세트장이다. 자전거 타고 여행하다 보면 산에 미치고 강에 빠지고 하는 그런 느낌이 드는데, 이 세트장에선 정말 '하얀거탑' 속에 푹 빠지는 느낌이다."

배우들도 탄탄하다. 김명민, 이선균, 송선미 같은 젊은 배우들뿐만 아니라 김창완, 이정길, 변희봉, 정한용, 양희경 같은 중견 배우들이 뒤를 받친다. 벌써부터 배우들 연기를 칭찬하는 목소리가 높다. 김창완은 지금껏 우리 드라마에서 보지 못한 새로운 악역 캐릭터를 선보였다.

불륜도 불치병도 없는 드라마, 될까?

 
▲ 6개월간 15억원을 들여 경기도 이천에 만든 1200여평의 명인대학병원 세트장의 수술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특히 야망을 쫓는 장준혁을 연기한 김명민은 발군이다. 안판석 PD는 "김명민은 분석력이 상당히 뛰어난 배우"라며 "그에겐 인간의 복합성에 대한 깊이 있는 명상 같은 게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복잡한 인물인 장준혁을 표현하는데 적역이라는 것이다. 김창완도 김명민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KBS <대조영>, SBS <게임의 여왕>과 맞붙는 <하얀거탑>은 지난 주말 평균시청률 11.4%, (TNS미디어 집계)을 기록했다.

안판석 PD는 "이 드라마는 좋은 드라마"라며 "좋은 이야기라는 덴 자신 있다"고 딱 잘라 말했다. 하지만 불륜, 출생의 비밀, 불치병, 재벌2세 없는 드라마를 찾기 힘든 현실에서 <하얀거탑>은 성공할 수 있을까? 볼만한 드라마가 없다는 볼멘소리가 심판대에 오르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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