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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도 주류 경제학 반성하는데…"

 

 

미국도 주류 경제학 반성하는데…"
  [기고] "규제 없는 자본주의가 낳은 재앙의 역사, 기억해야"
 
  2008-02-20 오후 1:42:09
 
   
 
 
  칼 마르크스의 이론을 전공한 김수행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의 후임 논란을 다룬 기사가 게재된 뒤, 다양한 반응이 쏟아졌다. (☞관련 기사 : "아직 마르크스를 버릴 때가 아닙니다")
  
  다양한 이론을 접하며, 복잡한 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학생의 반응도 있었다. (☞관련 기사 : "경제학 교수들은 왜 택시기사 분신에 침묵하는가")
  
  하지만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곳은 역시 학계다. 단지 마르크스 경제학, 서울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비주류 학계 전체의 문제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강국 일본 리츠메인칸 대학 교수가 최근의 사태에 대한 소회를 적어 보냈다.
  
  이 글에서 이 교수는 "규제되지 않는 자유로운 자본주의의 모순이 대공황으로 이어진" 역사를 다시 꺼냈다. 그리고 그는 "1980년대 이후, 노동자와 국가에 비해 자본과 금융의 힘이 강화된 현실"을 지적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심각한 양극화와 빈곤, 금융 불안을 낳았다. 그래서 이 교수는 고삐 풀린 자본의 움직임을 견제하려는 문제의식이 담긴 비주류 경제학이 여전히 소중하다고 지적했다.
  
  금융 위기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양극화가 심화된 현 상황은 오히려 진보적인 문제의식에 기반한 경제학 이론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다음은 이강국 교수의 글 전문이다. <편집자>
  
  김수행 교수님이 퇴임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문득 드는 생각은 세월의 흐름과 시대의 변화에 관한 것이었다. 90년대 초 내가 서울대 경제학과 대학원에 들어갔을 때도 이미 80년대 후반의 민주화운동의 열기는 많이 사그라져 있었다.
  
  마르크스 공부하던 학생들, 이제는 새로운 흐름을 고민하고 있지만
  
  하지만 당시만 해도 절반을 넘는 대학원생들이 정치경제학을 비롯한 비주류경제학을 전공하고자 했고 김수행 교수님은 많은 학생들을 아버지처럼 맞아 주셨다. 전공하고자 하는 분야의 교수님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당시의 대학원생들은 선후배가 세미나를 조직하여 함께 학습을 했고, 한국사회경제학회는 다른 학교의 교수님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열린 공간이었다. 선생님의 수업들과 그 치열한 토론들로부터 자본주의의 운동과 모순에 대해 배웠고 가난과 불평등의 문제를 과학적으로 고민할 수 있었다.
  
  세월과 함께 우리들의 관심도 다양해져서 선생님만큼 굳건하게 마르크스와 정치경제학을 공부하기보다는 대부분 최근의 경제학의 새로운 흐름과 문제들을 고민하고 있지만, 여전히 언제나 세상의 낮은 곳을 향하는 초심은 바래지 않았을 것이다. 최근에도 가끔씩 학교를 들르면 여전히 선생님 아래서 논문을 쓰고 있고 비주류적인 연구에 많은 관심을 가진 대학원 후배들을 만날 수 있다.
  
  시장 만능주의가 득세한 분위기와 마르크스 경제학자의 쓸쓸한 퇴임
  
  그러나 이제 시대는 전과 많이 달라서 이전과 같은 인기는 말할 것도 없고 비주류경제학에 관한 관심도 점점 사라지고 있는 듯하다. 이미 현실사회주의가 붕괴했고, 1997년 경제위기 이후 한국 사회도 더욱 보수적으로 변한 것을 생각하면, 비주류적인 경제학은 이미 낡은 논의이며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생각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저성장과 양극화의 문제가 더욱 심화되어 소위 민주정부 10년 동안에 진보에 대한 실망이 더욱 커진 것도 관련이 없지 않을 것이다.
  
  이제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새 정부의 탄생을 목전에 둔 이 때에, 후임도 확실치 않은 채 학교를 떠나시는 김수행 선생님을 생각하면 묘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시장만능주의가 사회를 지배하는 시대의 시작과 선생님의 퇴임이 겹쳐지는 것이다.
  
  세계화와 무한경쟁을 향해 모두가 정신없이 달려가고 있는 시대, 대학생들조차 사회문제가 아니라 영어공부와 취직준비에 목을 매는 시대. 이 자본과 시장의 시대에 선생님과 같은 학자들이 차지할 자리는 점점 더 없어지는 것일까.
  
  '워싱턴 컨센서스' 신자유주의 정책의 전면화
  
  잠시 자본주의의 역사를 되돌아보자. 규제되지 않는 자유로운 자본주의의 모순이 대공황으로 이어졌고 2차 대전 이후 케인즈주의 복지국가로 대표되는 경제사상과 제도의 변화가 자본주의의 황금기의 기반이 되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이후 전개된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 이후 1980년대부터는 세계화와 함께 시장의 자유로운 작동을 찬양하는 경제학의 흐름이 큰 힘을 얻게 되었다.
  
  여러 개도국들에서도 금융위기 이후 구조조정과 함께 워싱턴 컨센서스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들이 득세한 지 오래다.
  
  이는 물론 노동자와 국가에 비해 자본과 금융의 힘이 강화된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이렇게 작금의 우리 사회를 덮치고 있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라는 파고는 우리만의 일이 아니며 대부분의 다른 국가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시대에 자본주의의 미덕과 경쟁력, 그리고 시장의 아름다운 균형과 행복한 결과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가 약해지고 진보적인 비주류경제학의 흐름이 약화된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세계화와 양극화'…'세계적 금융 위기'의 가능성
  
  하지만 세계의 현실을 냉정하게 둘러보고 미래를 성찰해보면 이는 잘못된 생각인 듯하다. 왜냐하면 현재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물결은 불평등과 빈곤, 그리고 경제의 불안정 등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점들에 대한 비판을 더욱 중요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1980년대 이후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임금격차가 커지고 부와 소득의 분배가 악화되었다고 보고된다.
  
  이는 물론 기술변화도 반영한 것이지만, 급속하게 진행되는 세계화와 개방 그리고 신자유주의의 진전이 중요한 요인이었다.
  
  그리고 세계화와 함께 선진국과 후진국의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으며, 2004년에도 무려 10억에 가까운 세계인구가 하루 1달러도 되지 않는 소득으로 살아가고 있을 정도로 세계의 가난 문제는 심각하다.
  
  또한 금융자본의 국제적 이동과 버블을 배경으로 여러 국가들이 경제위기로 고통을 겪었고 미국 등 선진국의 금융불안도 심화되고 있다.
  
  결국 시장근본주의와 세계화의 소용돌이가 세계를 휩쓸수록 체제의 모순과 갈등이 새로이 심화되고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나타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진보적 경제학의 문제의식은 더 절실해졌다"
  
  많은 이들은 지금, 고삐 풀린 시장을 전 세계 시민들의 지혜로 제어하고 현재의 세계화 과정을 적절하게 개혁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한국만 보아도 경제위기 이후 가난과 격차 그리고 경제적 불안이 더욱 심각해져 안정적 성장의 기반이 약화될 지도 모른다.
  
  이러한 현실은 선생님이 평생 동안 천착하셨던 정치경제학의 비판적인 문제의식과 이에 기초하여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대안적인 노력들을 더욱 주목받게 할 것이다.
  
  선생님이 퇴임 후 정치경제학을 강의하시는 사회과학대학원에 등록하는 일반인들의 수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올해 2월에도 여러 학생들이 선생님의 지도로 서울대 경제학부의 박사학위를 받게 될 것이다.
  
  선생님이 퇴임하는 지금은 정치경제학이 약화되고 한 시대가 종언을 고하는 때가 아니라, 개혁과 대안적 변화를 위해 진보적인 경제학의 문제의식이 보다 중요해지는 시기인 지도 모른다.
  
  <뉴욕타임스> "주류경제학의 지나친 강조가 창의적인 정책 논쟁 가로막는다"
  
  2007년 7월 <뉴욕타임스>는 미국의 비주류경제학(heterodox economics) 이야기를 다루는 한 칼럼을 실은 적이 있다.
  
  이 기사는 미국의 대학 내에서 자유시장을 옹호하는 주류경제학의 믿음에 대한 회의와 비판적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고 보고했다.
  
  이 글에 따르면 이제 유수의 경제학자들도 정부의 시장개입은 나쁘고 자유무역은 좋은 것이라 주장해야 공인된 경제학자로 받아들이는 주류경제학의 과도한 주장이 경제학의 발전을 저해하고 창의적인 정책논쟁을 가로막고 있다고 강조한다.
  
  최근에는 여러 학자들이 주류경제학의 방법론에 기초해서도 이단적인(heretic) 결론을 보고하는데, 이들의 고민은 비주류경제학의 문제의식과도 그리 멀지 않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미국, 일본에서도 비주류 경제학은 살아 있다"
  
  미국에서는 또한 그 수는 비록 많지 않지만 필자가 공부했던 매사추세츠 주립대학교(University of Massachusetts)와 같은 대학들에서 여러 비주류경제학자들이 꾸준히 마르크스경제학의 현대적인 적용에 대해 연구하고 또 비판적인 입장에서 세계경제를 분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유학시절 교수들 그리고 동료들과 세계의 금융위기와 신자유주의에 대해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경제발전에서 민주적인 정부의 진보적이고 적극적인 역할에 관해 난상토론을 벌이던 기억이 새삼 새롭다.
  
  이 곳 일본의 경우도 여전히 많은 대학들에서 전공필수과목으로서 마르크스경제학을 가르치고 경제사 등도 전공과목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학생들도 이러한 과목들에 커다란 흥미를 보이며 주류경제학과 비교하며 균형잡힌 세계관을 만들어가고 있다.
  
  양극화와 빈곤의 현실,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러나 한국의 경제학은 미국에서 그대로 받아들인 주류적인 입장이 너무나 지배적인 듯하다. 경제사와 경제사상사조차도 강의에서 사라져가는 우리의 현실은 학문의 다양성이라는 관점에서 보아도 꽤나 편협해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당연히 양극화와 빈곤 문제를 비판하고 약자를 대변하는 목소리를 찾아보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경제학자는 무릇 '찬 이성과 더운 가슴'을 함께 지녀야 한다고 배웠다. 어떤 경제학을 전공하고 있든 경제학자라면 세상을 보다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의지는 공통적일 것이다. 우리의 경제학계도 세계화 시대에 더욱 심각해지는 문제들에 관한 비주류경제학의 문제의식들을 받아들이고 생산적인 논쟁 속에서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그리고 선생님이 떠나신 후에도 서울대 경제학부가 다양성에 기초한 학문의 발전과 사회개혁을 위한 경제학의 기여를 위해 커다란 역할을 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이강국/일본 리츠메인칸 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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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도 40년 전에는 '서열 의식'이 견고했다&quot;

 

 

덴마크도 40년 전에는 '서열 의식'이 견고했다"
  [덴마크에서 살아보니ㆍ<14>] 서열사회에서 평등사회로…'68혁명'이 계기
 
  2008-02-20 오전 8:03:09
 
   
 
 
  앞서 게재된 "명문대? 우리 애가 대학에 갈까봐 걱정"와 "의사와 벽돌공이 비슷한 대접을 받는 사회" 등 두 글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일부 독자들은 편집자에게 보낸 메일을 통해 "우리와 너무 다르다. 지구 상에 이런 사회가 있다는 게 믿겨지지 않는다"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독자들은 "덴마크가 연재물에 소개된 것과 같은 복지 체제를 갖출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와 전혀 다른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며, "한국 사회에서 이런 모델이 실현되기는 힘들 것"이라는 의견을 전하기도 했다. 서열을 중시하는 유교 문화를 꼽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서열 의식'이 깨지지 않는 한, '평등 의식'에 기반한 복지 사회로의 이행은 요원하다는 지적이 뒤따랐다. 그리고 이런 이행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대체로 회의적인 분위기였다.
  
  하지만 '덴마크에서 살아보니' 필자인 김영희 씨는 "덴마크 역시 1950년대까지는 우리처럼 서열 의식이 강했다"라고 설명한다. 덴마크라고해서 원래부터 '평등 의식'이 강했던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김영희 씨는 1968년 학생혁명이 분기점이 됐다고 지적했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소규모 학생 시위가 세계를 휩쓴 신좌파 열기로 번진 1968년 5월 혁명이 덴마크 사회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 김영희 씨는 덴마크에 '평등 의식'이 급격히 확산된 것은 1970년대부터라고 설명했다. 불과 한 세대만에 사회 전체가 환골탈태한 셈이다.
  
  이런 역사는 오늘을 살아가는 한국인들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보다 평등하고, 살기 좋은 사회로 거듭나는 일은 저절로 되는 게 아니라는 교훈이다. 다음은 '덴마크에서 살아보니' 14회분이다. <편집자>
  
  자녀가 행복한 삶을 살기 바라는 것은 한국부모나 덴마크 부모나 다름이 없을 것이다. 한국 부모가 아이들의 교육에 그렇게 열성적인 것은 좋은 학교를 나와서 좋은 직업을 갖는 것이 바로 행복한 삶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좋은 학교' '좋은 직업'이라고 말 할 때의 '좋은'이라는 말에는 은연중 어떤 서열의식이 뒤에 숨어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사실 한국사회에서 이 서열이라는 것은 숨 쉬는 공기처럼이나 어디에나 뻗어있다.
  
  가정에도 서열이 있고 학교 내에서도 교장 평교사 학생이라는 서열이 있고 학생들 사이에도 등수라는 서열이 존재한다. 고등학교가 평준화 되었다고는 하지만 강남학교와 강북학교 사이에 서열이 있고 대학 간에 있는 서열은 말할 것도 없다.
  
  직장, 직업에도 서열이 있어서 이는 바로 사회적 신분과 보수로 이어지는데 서열이 높은 쪽일수록, 즉 상위권일수록 혜택을 많이 받고 안락한 삶을 살게 된다.
  
  사정이 이러니 부모들은 아이를 상위권에 밀어 넣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상위권, 하위권으로 나누는 서열의식, 그리고 불평등이 있는 한, 초인적인 학습시간과 과외열풍이 사라질 수 없다.
  
▲ '방과 후 클럽' 활동으로 토끼를 돌보는 덴마크 학생. 아이들이 경쟁에 시달리지 않고, 자유롭게 자랄 수 있게 된 계기는 '1968년 학생 혁명'이었다.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로의 이행은 거저 이뤄진 게 아니었던 셈이다. ⓒ김영희

  부모가 다 같이 일하는 덴마크 가정에서 부부 사이는 물론 부모와 아이들과의 관계도 상당히 대등한 편이다. 아이들도 인격체로 간주하여 항상 아이들의 의견을 묻고 존중한다, 말 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아이가 매사에 스스로의 의견을 말하도록 격려를 한다.
  
  학교에서도 교장은 교사보다 우월한 존재가 아니라 행정적인 업무를 맡아서 처리하는 대표쯤으로 인식이 된다. 또 교사는 학생을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이해를 시켜야 한다. 학생들은 우열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 능력과 소질이 다른 존재로 파악된다. 학교간의 서열은 거의 없고 직업에 따른 사회적 신분과 보수의 차이도 심하지 않다.
  
  이처럼 서열이 거의 없는 평등한 사회이니 상위권에 진입하기 위해 모든 희생을 할 필요도 없고 덴마크 부모들은 아이가 방과 후 학교나 클럽에서 마음껏 놀아도 걱정이 없는 것이다.
  
  덴마크 부모의 바람은 '아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교육을 받고 그 분야로 나가 직장을 얻는 것' 이라고 한다. 즉 하고 싶은 일, 능력에 맞는 일을 하면서 만족감을 얻는 것을 행복한 삶이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덴마크에도 1950년대 까지는 우리와 같은 서열의식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1968년 학생혁명을 기점으로 1970년대부터 평등의식이 급격히 확산돼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우열을 가리기보다는 인간 능력의 다름을 인정하고. 개성을 인정하여 동등하게 여기는 평등정신이 우리에게도 절실히 필요한 것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필자 이메일 : kumbikumbi2@yahoo.co.kr
   
 
  김영희/'과천 품앗이'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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