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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03/14
    임시저장 2(4)
    동동이
  2. 2005/03/10
    호칭 문제(8)
    동동이
  3. 2005/03/10
    프라이버시
    동동이
  4. 2005/02/15
    차가운 파도를 봤습니다.(4)
    동동이
  5. 2005/02/15
    또 중얼중얼(2)
    동동이
  6. 2005/02/15
    활동이란 것이 뭐지?(6)
    동동이
  7. 2005/02/10
    ★물병자리Ⅱ 젊음과 편안함의 주간 1월 31일- 2월 7일(1)
    동동이
  8. 2005/02/07
    욕하기(4)
    동동이
  9. 2005/02/07
    전쟁
    동동이
  10. 2005/02/02
    잠이 깨버렸다.
    동동이
2005/03/14 16:42

임시저장 2

노무현정권 집권 3년차를 바라보며 노무현정권이 집권 3년차를 맞이하고 있다. 2002년 12월, 뜨거운 논쟁과 지지위에 탄생한 대통령이었다. 그해 가을에 97년에는 함께 진보정당선거운동을 했던 선배와 토론을 했다. 자신의 '개혁(이란 단어 싫지만)에 대한 의지'를 노무현에게 투영하며 그를 지지한다고 했다. 고졸, 사법고시, 인권변호사, 87년 6월 항쟁, 청문회 스타, 당내 지지기반이 거의 없는 그가 노사모와 온라인이라는 당 바깥의 열렬한 지지를 업고 민주당 대통령후보가 되었고,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었다. 사람들은 아직도 극적인 것을 바라는 것 같다. 사람들은 삶이 세상이 극적으로 뒤바뀌는 것을 보고 싶어하는 것이 아닐까. 97년 대선이 끝난 아침에, 집에 배달되어온 신문은 1면 사진으로 보랏빛 수건을 머리에 두른 어머니들에게 둘러싸인 김대중 당선자를 실었다. 그래서 나는 (순진하게도) 김대중 정권때 다른 것은 몰라도 국가보안법은 폐지될 것으로 믿었다. 양심수는 적어도 없어지리라고 생각했다. 98년에는 처음으로 '후배'가 구속되었다. 2002년 노사모의 기억. 노사모의 누구의 얘기인지는 잊어버렸지만, 당시 대통령후보와 함께 지방의 한 소도시에 내려갔는데, 비가 오는 저녁에 노란 비옷을 입은 사람들이 첫 번째 만난 육교에 가득 모여있었다고 했다. 두 번째의 육교에도 노란 비옷을 입은 사람들이 가득 모여있었다고 한다. 세 번째 육교에도, 네 번째 육교에도. 당시 이 사람들의 열망은 '개혁'으로 모아질 수 있을 것이다. 80년대에는 대통령후보가 연설한다면 수십만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고도 하지만, 이 지지를 업고 노무현은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할까 궁금했다. 그래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기대도 했다. 2003년 2월, 정권을 준비하며 노무현은 강금실법무부장관과 김두관행자부장관과 이창동문화부장관을 준비했다. 2003년 4월, 1월 배달호 열사부터 시작되었던 수많은 노동열사의 행렬에 노무현은 "자살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시대는 지났다"고 말했다. 2003년 4월, 국회에서는 파병동의안 처리에 대한 논의가 한창 분분했다. 국회를 전경차가 빙 둘러싸고 있었고, 그 바깥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2003년 여름, 부안의 기억. 2004년 초봄, 총선을 앞두고 16대 국회는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했고, 한달 동안 다른 아무 얘기도 할 수 없었던 탄핵국면에 접어들었다. '직접 민주주의'를 외쳤던 외침은 기억이나 되고 있을까. 10월에는 뜬금없이 헌법재판소가 '관습헌법' 얘기를 해서 노무현정권에게 기회를 한 번 더 줬고, 겨울로 접어들 무렵에는 노무현과 열우당은 국가보안법폐지안, 사립학교법개정안, 언론개혁법, 과거청산법을 묶어서 4대 개혁입법정국을 연출했다. (이제 화나려고 한다.) 역시 개혁입법정국 동안 다른 아무 얘기도 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각 법안이 진보진영의 각 영역에서 오랫동안 싸워왔던 내용인 다음에야. 가끔은 하루하루를 때운다. + 1월쯤 썼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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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3/10 17:36

호칭 문제

저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에 대한 호칭이 고민이어요. 고등학교다닐때는 선배들을 모두 언니라고 불렀는데요. 대학에 들어가서 남자선배가 처음 생기면서 어떻게 부를까 고민하다가 선배님이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오빠라는 말을 듣고 싶어했던 선배들의 협박과 회유에 굴복해=ㅂ= 한학기만에 남자선배들을 모두 오빠라고 불렀거든요. 호칭에 대해 고민하기 귀찮으니까; 80년대 학번 선배들도 모두 오빠라고 불러서; 학교다닐때는 꽤나 귀여움받는 후배노릇을 하면서 살았던 것 같습니다. (단지 오빠라고 부른다는 이유만으로.. 음. 그러나 정말 귀여웠을까) 이것은 진보넷에 있을때도 이어져 진보넷에서 만난 저보다 나이많은 분들은 모두 오빠라고 불렀어요. 그때 있던 다른 여성활동가들은 다들 형이라고 했는데 저만 혼자 오빠. =ㅂ= 저보다 나이어린 사람에 대한 호칭은, 2000년 겨울을 경계로 ~씨와 존대말로 바뀌었습니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암튼 그때가 경계에요. 그래서 그 경계전에 만난 정우는 아직도 저에게 정우라고 불리고 있지요. 하지만 그 후에 만난 정우친구인 회승씨나 대식씨에게는 존대말인데 정우에게는 반말이어요. ( '') + 정우야, 억울하면 너에게도 정우씨라고 불러줄께. ^^ 근데 암튼;; 오빠라는 호칭도 20대 중반에서 20대 후반으로 넘어가는 2002년쯤 되면서부터 애매해져서; 그때부터는 저보다 나이많은 사람을 새로 만나는 일도 줄어들고(저두 나이를 먹었으니까 ^^ ) 이제는 새로 만나는 나이많은 사람들을 부르는 호칭이 고민이어요. 언니라는 호칭과 달리 오빠라는 호칭은 참 애매해지는군요. (어째서 애매한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없음;) 약간 나이가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씨, 라고 부르는데요. (인권활동가들은 나이를 별로 안 밝히니까 편함) 사실은 제가 진보넷에 들어왔던 초창기부터 고민이 되었던 사람은 인권운동사랑방의 모님입니다. ^ㅁ^ 학교 선배들에게는 79학번선배까지 오빠라고 불러봤지만, 모님은 아무리 봐도 그보다도 더 나이가 들어보여서; 게다가 당시에는 저에게도 가까스로 사회의식;;이라는 것이 생기던 터라; 다른 단체 활동가에게 오빠라고 부르는 것은 매우 이상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직도 모님에 대한 호칭을 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ㅂ= 부를 일이 있어도 굉장히 어줍게 부르고 있습니다. ;; 다들 형이라고 부르던데.. 저도 형이라고 버릇을 바꿔볼까요? (그러면 사실 많은 문제가 해결되지만) 아아 어려워요. =ㅂ= 그리고 암튼, 나이가 어중간하게 많은 다른 활동가들. ~씨라고 부르는 것을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있구요. 어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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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3/10 17:16

프라이버시

어제 시설조사하러 가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캠코더 촬영을 맡았는데, 시설의 내외부 모습이나 면담하고 있는 모습을 찍었거든요. 자료와 증거확보를 위해 필요하다고 하지만, 프라이버시 침해겠지요. 보도할 생각으로 찍은 것은 아니지만, 사생활을 침해당했다는 생각이 들테니까요. 생활하고 있는 공간을 촬영하는 것은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이기도 하구요. 예전에 진보넷의 어떤 술자리에서, 취재할때 취재원의 프라이버시를 완전하게 보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논쟁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사실 취재원의 프라이버시를 완벽하게 보호할 수 있는 취재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프라이버시권이라는 것은 어느정도 상대적인 것이라서, 다른 인권이 그러한 것처럼,,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 법률로 제한할 수 있겠지만, 이렇게 부득이한 조사라든가, 취재라든가는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지, 명쾌한 기준이 있다기보다는 사실 사안에 따라 다른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상대적이다, 라는 생각이 상당히 위험한 것은 알고 있지만, 명쾌한 기준이 생각나지 않네요. 그리고 진정서류를 꾸밀때도 진정하시는 분께 서명을 하시라고 했더니 지장을 찍으시겠다고 하시더군요. 제가 우물우물(ㅠ_ㅠ)하며 지장을 찍는 것보다는 서명하시는 것이 낫지 않겠냐고 했는데 글씨를 잘 못 쓰신답니다. 그 분은 저에게 이런 고민거리를 안겨주신 것을 모르시겠지만; 얼마전에 신문에 보니 청송감호소에 계신 분들이 모두 장기기증서약서를 작성했는데, 서명이 아닌 날인을 해서 그 엄숙함이 더해졌다고; 합니다. 에휴, 참. 고민이어요,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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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5 16:35

차가운 파도를 봤습니다.

* 이 글은 노란리본님의 [못다한 이야기] 에 관련된 글입니다.

2월 첫째주에 인권교육네트워크 엠티를 갔습니다. (엠티 준비팀이기도 했는데 어디로 갔던 것이었는지 잘 기억이 안나요;; 엠티 준비팀은 준비부족으로 엠티 내내 지탄을 받았습니다. ^^ 그래서 내려오는 길에 해체했다, 고도 말했지요.;;) 가서 차가운 파도를 봤습니다. 사진은 토리가 찍어주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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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5 15:34

또 중얼중얼

* 이 글은 레이님의 [짜증나는 구글 이미지.] 에 관련된 글입니다.

예전에 엠티가다가 차 안에서 담배얘기와 패스트푸드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 즈음 나왔던 담배산업과 패스트푸드를 비판하는 내용의 책을 읽은 언니가 얘기를 해 줬는데, 비판의 요지는 두 산업이 다 지역농업을 단조롭게 만들어서 생태계를 해치고, 농민들을 수탈구조에 편입하고, 만드는 과정에 3세계와 어린이 노동력을 착취하고, 판매에 있어서도 '문화'를 이용한 공세로 3세계를 1세계에 종속시킨다는 (옛날이라서 기억이 조금 가물거린다. 그새 주워들은 얘기들이 덧붙여졌을 수도 있고. 그래도 대강 이정도 얘기였던 듯) 암튼 대략 이정도 얘기였던 듯. 역시 담배얘기때는 맞아요맞아요 하면서 얘기를 했지만 패스트푸드 얘기때는 별로 그럴 수가 없었다. 파파이스 치킨을 너무나 좋아하기 때문이다. =ㅂ= (흑흑 불쌍한 나.. 그런 걸 좋아하지 말던지, 그런 얘기를 듣지 말고 살던지.) 그후로 오래 시간이 지나서 지금은 예전만큼 파파이스 치킨이 맛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쩐지 두어달에 한번은 패스트푸드가 먹고 싶어진다. 두어달에 한번이 아닐지도. 걸어다니는 길이면 길마다 저렇게 금방 만든 햄버거사진을 커다랗게 붙여두었는데, 역시 배고플때면 쳐다보게 된다. (어쩐지 더 불쌍한 듯;;) + 사실 이 얘기, 옛날에 갈월동이야기에서도 한적이 있다. 제목이 기억이 안나서 검색은 못하겠지만;; 암튼 그 글을 읽고 김진균선생님이 파파이스 치킨을 사주신다고 학교로 부르신적이 있었다. 지희언니랑 학교에 같이 가서 연구실 구경도 하고, 학교에서 팥빙수먹고, 선생님이랑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파파이스 치킨집을 못 찾아서 찜닭을 먹고, 지리산에 혼자 가는 이상한 녀석이란 얘기도 듣고, 그러면서 내내 내일은 이 모임의 후기를 갈월동 이야기에 올려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압력도 받고, ,그랬다. 나는 할아버지들이랑 잘 못 지낸다. 대학다닐때 교수님들과도 잘 못 지냈고(아니 그 이전에 우리 과에는 할아버지 교수님은 없었지만) 통일운동하면서 이상한 할아버지들도 너무나 많이 만났고(서명부스차리면 꼭 달려와서 마구마구 시비하는 무서운 할아버지들. 시비는 걸지만 내 얘기는 절대 듣지 않는다.) 김진균선생님은 내가 최초로 잘 지낸 할아버지다. 선생님 몇번 뵈면서 나두 이제 나이도 먹었으니 할아버지들과도 잘 지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했다. 하지만 왠걸, 나이들면서 더 고집불통이 되어 정말 할아버지들과는 절대 친하게 지낼 수가 없었다. 김진균선생님은 참 특별한 할아버지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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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5 10:53

활동이란 것이 뭐지?

왜 활동하지? 단지 단체를 유지하는 것이 활동은 아닐텐데. 활동가에게는 참 잡다한 것들이 요구된다. (인권활동가대회때 아무리 '활동가는 이래야한다?'수다방을 열었더라도) 세미나도 하고 청소도 해야 하고 논평도 쓰고 회의준비도 해야 하고 취재도 하고 기자회견도 준비하고 선전물도 만들고 사람들도 조직하고 자료도 찾고 말이 잘 안통하는 사람들이랑 만나서도 회의해야 하고 문서도 만들어야 하고 토론회때 발제도 하고 장시간 회의도 하고 재정도 정리하고 기사도 쓰고 우편물도 정리하고 차비걱정에 끼니도 굶고 소식지 발송 작업도 하고 행사때 머릿수도 채우고 인터넷도 써야 하고 회의록도 정리하고 짐도 나르고 단식도 하고 전화도 받고 단체에 따라서는 밥도 하고 아르바이트도 병행하고 사회도 보고 머 이런 것들을 그래도 하면서 활동도 하고 단체를 유지하는 것은 원하는 삶을 살고 때로는 세상이 바뀌는 것에 조금한 보탬도 되고 중얼중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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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0 22:36

★물병자리Ⅱ 젊음과 편안함의 주간 1월 31일- 2월 7일

라푼젤님 블로그에서 트랙백합니다.

 

★물병자리Ⅱ 젊음과 편안함의 주간 1월 31일- 2월 7일

 

물병자리Ⅱ는 중심이미지는 ‘젊음과 편안함’이다. 인간의 생으로 보면 70대 중반에 가깝다는 점에서 참 역설적이다. 사실 이 시기에 노인의 삶에는 아이들이 나타나게 된다. 이제 손자를 얻게 되면서, 노인의 원숙함과 지혜는 경이로 가득찬 아이의 세계와 맞물리게 된다. 게다가 이 나이의 노인은 젊은이처럼 충동적이다. 그래서 이 시기를 ‘제 2의 어린시절’이라고 이름붙일 정도이다. 휴식을 취하고, 느긋하게 생각하며, 시간여유도 많으니 이제 즐겨볼 만하다. 그러므로 물병자리Ⅱ를 구성하는 날들은 이제 남은 여생을 의미있게 보낼만한 방법을 찾아나가는 노인을 상징한다. 약간의 괴팍함과 완고함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또래의 친구를 새로 사귀고,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보편적인 생각을 가지려하고, 편안함과 행복을 극대화하는 등의 행동이 모두 이 시기에 나타난다.

 

“아둥바둥하지 말 것”. 이것이 물병자리Ⅱ의 모토이다. 물병자리Ⅱ가 하는 말을 들어보면, 그가 어떤 형태의 트러블도 원치 않으며 그걸 피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는 자신의 행복에 최고의 가치를 두며, 멀리볼 때의 행복 뿐 아니라 가까이 있는 행복도 중요시 여긴다. 가능하면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자기만의 갈 수 있도록 내버려두라고 요구한다. 그리고 남들에 대해서도 그렇게 내버려둔다. 애초에 그는 남을 지배하거나 간섭하는데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것이다.

그는 거장이 될만한 자질이 다분하다. 사무실에서든 연구실에서든, 빌딩에서든 부엌에서든 금방 모든 것에 숙달한다. 장인의 자질은 선천적인 것으로 별다른 노력없이도 쉽게 이루어낸다. 거기에 더하여 몇 년 동안 열심히 노력한다면 그의 기술은 완벽의 경지에 오른다. 사실 많은 물병자리Ⅱ에게 테크닉은 목표가 아니며, 단지 고도의 창의성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일 뿐이다.

모든 종류의 젊음, 즉 육체적, 정신적, 감성적인 젊음은 물병자리Ⅱ의 특징이다. 자기 나이보다 훨씬 젊어보이는 게 특징이다. 그는 채 스무살도 되기 전에 자신의 능력을 모두 개발해버리며, 그러므로 나이를 먹으면서 발전하는게 아니라 젊은 시절의 능력을 평생 써먹으며 산다. 게다가 ‘어린이’와 ‘어린시절’은 그가 평생동안 몰두하는 주제인데, 그건 물병자리Ⅱ이 부모가 되지 않았다 해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아이만의 독특한 자질, 즉 자연스럽고 충동적이며 직관적이고 개방적인 태도를 죽을 때까지 간직하고 싶어한다. 물병자리Ⅱ가 때로 정신적으로 철이 없으며 피상적이라는 얘기는 듣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일면 철이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피상적인 것은 전혀 아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물병자리Ⅱ에게 호감을 느끼며 그를 칭찬한다. 과연 그에게도 단점이 있을까 궁금해질 지경이다. 하지만 그의 장점인 이러한 인기는 또한 파멸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존경받는 데 집착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되면 모든 시간을 남을 즐겁게 하는데 바치며, 친구나 팬을 잃을까봐 자기의견을 강하게 주장하지도 못한다.

결국 물병자리Ⅱ는 좀더 현실적인 자기인식을 가지려 노력해야할 듯하다. 스스로를 잘 파악하고 자신이 가진 악마성을 제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밝은 면과 어두운 면 사이에 균형을 찾는 것도 가능해진다. 우리의 내면 깊숙이 악마가 숨어있을 때 꼭 맞서싸워 죽일 필요는 없다. 때로는 그 존재를 제대로 파악하고 자신의 친구로 만드는 것이 더 낫다. 사실 그것은 생명력의 원천이다. 그것을 깨닫고 항복함으로써 진정한 힘을 얻을 수 있다.

물병자리Ⅱ는 진지하고 심각한 관계를 싫어하며 가벼운 상태를 유지하고 싶어한다. 그렇다고 그가 가정을 꾸리거나,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거나, 결혼을 하거나, 변함없는 우정을 키우는 걸 꺼려한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다. 사람들과 거리를 두려고 하는 것은 단지 자율성을 보장받고 싶어서일 뿐이다. 그는 자신의 성격을 다른 사람의 성격에 동화시킬 생각이 전혀 없다.

물병자리Ⅱ는 나름대로 이상형을 갖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 이상형과 정반대의 사람에게 매혹된다. 참으로 모순되게도, 그는 깊이있고 심오하며 불안해 보이는 사람에게 자석처럼 이끌린다. 이런 성향은 그가 자신의 숨겨진 어두운 면을 사랑의 대상에 투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사실 이렇게 정서적으로 복잡한 성격은 물병자리Ⅱ에게 유혹적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 당혹스러운 것이다. 이런 관계 때문에 고뇌하고 고통스러워하는 물병자리Ⅱ를 지켜보면서, 사람들은 그가 보여줘왔던 낙천적인 이미지가 사실이었는지 의심스러워진다.

 

물병자리2의 강점 ; 기예가 뛰어난, 숭배받는, 세련된
물병자리2의 약점 ; 철없는, 번뇌하는, 관계를 끊어버리는

 

물병2에게 주는 어드바이스
자신의 내면 깊숙한 감정들을 무시하지 마라. 때로는 문제와 정면으로 부딪치는 게 더 나을 때도 있다. 지금 당장의 조그만 고통으로 미래의 더 큰 고통을 막을 수 있다. 다른 사람의 평가에 너무 방어적일 필요는 없다. 본래의 자기모습에 자신감을 가져라. 굳이 남을 즐겁게 해줘야한다는 생각은 버려라.

 

정말 별자리 이야기를 좋아해서요. ^-^;; 읽으면서 어쩐지 조금 찔리기도 하고, 머 그랬습니다. 하지만 약점으로 나와있는 '철없는'에 대해서는, 늙어 죽을때까지 철이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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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07 12:59

욕하기

욕은 1. 성과 관련된 것이거나 2. 상대를 저주하거나 3. 상대를 사회적인 소수자에 빗대어 모욕하거나 한다. 하지만 1번 유형은 성폭력적이고, 3번 유형은 모욕받은 상대뿐 아니라/가 아니라 실은 빗대는 대상인 사회적 소수자를 모욕하고 다시 한번 주변화한다. 그래서 고른 것이 2번 유형의 욕인데; 누가 나를 위해 정치적으로 올바른 욕을 만들어주거나 욕안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줘.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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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07 12:52

전쟁

요즘들어 하루이틀이면 꼬박꼬박 뉴스에 나오는 것이, 북한과 핵과 악의 축이다. 출처야 어쨌든, 신뢰성이 있든, 어쨌든 북한과 핵과 이란이든 파키스탄이든 연결을 하려고 애를 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머리를 스치는 것은, 전쟁의 가능성. 문제는 결국 중국과 자본이 될 것이다. (평화세력은 별로 문제가 안된다. 제길, 너무나 무력하다.) 중국이 코앞에서의 전쟁을 어떻게 볼지. 그리고 자본이 남한에 몰려있는 동안 전쟁은 없겠지. 이라크가 십년동안 경제봉쇄를 당하고 있던 와중이 아니었다면, 아프가니스탄이 자본이 몰려드는 땅이었다면, 폭격을 받지는 아니했을거다. (정말 무력하다, 젠장) 어제는 집에서 묵은 신문을, 하필이면 부시의 재취임식이 실린 신문을 봤다. 이 사람은 죽음을 알까. 죽음이 어떻게 사람들 사이를 갈라놓는지, 죽음이 지나가고 나면 다시는 보고 싶은 사람을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는 것을 알까. 연이은 죽음이 얼마나 사람을 피폐하게 하는지, 영혼을 황폐하게 하는지 알까. 하긴 그렇게 낫살이나 먹어서 죽음이 뭔지 모르는 것은 아니겠지. 죽음도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혹은 유색인종의 죽음은 별로 죽음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젠장, 정말 젠장맞을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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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02 22:47

잠이 깨버렸다.

더 자고 싶은데.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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