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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02/02
    펌 - 뭘까요?
    동동이
  2. 2005/02/02
    사는 방법 - 채식주의와 양심적병역거부(3)
    동동이
  3. 2005/01/31
    일하기 싫어 모드
    동동이
  4. 2005/01/31
    '시선'에 대한 글(2)
    동동이
  5. 2005/01/31
    고민해보기 2
    동동이
  6. 2005/01/31
    고민해보기
    동동이
  7. 2005/01/31
    성서(3)
    동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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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건이
    동동이
  9. 2005/01/21
    꺄울(1)
    동동이
  10. 2005/01/20
    오늘은(5)
    동동이
2005/02/02 17:32

펌 - 뭘까요?

[재반론] 문화관광부 저작권과 이준협씨의 '저작권법엔 '펌 행위' 금지없어'에 대한 재반론 본인이 기고한 '저작권법은 사이버보안법'에 대해 문화관광부에서 1월 27일치 '왜냐면'을 통해 반론을 보내주셨다. 안타깝게도 문화관광부가 문제의 핵심을 이해하고 있지 못한 듯하여 재반론을 하고자 한다. 본인의 글은 저작권 자체를 부정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네티즌들 역시 저작권 보호 자체는 인정하고 있다. 영리를 목적으로 타인의 저작물을 이용하는 것에 대한 규제를 찬성하며, 음악 서비스 등의 유료화 자체를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저작권 보호라는 명분으로 인간의 기본권인 문화적 권리·표현의 자유·커뮤니케이션 권리를 과도하게 침해해서는 안된다. 빈대를 잡기 위해 초가삼간 태우는 것을 합리화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준협씨는 '타인이 공들여 만든 저작물을 공짜로 사용하는 것이 일반인들의 상식이고 공정한 이용인지 되묻고 싶다'고 했는데, 본인이 언제 무조건 공짜로 이용하자고 했는가? 문제의 핵심은 '디지털 환경에서의 사적 이용의 범위'이다. 현행 저작권법은 사적 복제의 범위를 '가정 내에 준하는 한정된 장소'로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인터넷 환경에서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인터넷은 사적인 공간이자 공적인 공간이다. 내 미니홈피는 나와 지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임의의 이용자가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임의의 이용자가 접근할 수 있다는 이유로 소통을 제한한다면, 사적인 소통과 교류 역시 제한될 수밖에 없다. 더불어 현행법은 단지 '복제'만을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인터넷에는 적용될 수 없다. 즉, 현행 저작권법은 디지털 환경을 전혀 고려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그래도 저작권법은 보호되어야 한다'는 주장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것은 논쟁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화관광부가 만일 비영리적이고 개인적인 교류행위를 할 경우에도 일일이 저작권자의 허락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떳떳하게 그렇게 주장하라. 본인은 여전히 그러한 정책은 문화에 대한 무지이자 개인에 대한 과도한 규제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동채 문화관광부 장관을 비롯하여 문화관광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의 홈페이지에서 기사들을 무단 전재하고 있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하나? 그들은 자신들은 사전 허락을 받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들이 무슨 법을 제정했는지도 모르는 것인가?) 정부가 펌행위를 금지한 것이 아니라는 반론은 말꼬리잡기에 불과하다. 이준협씨 논리대로라면 정부는 아무것도 금지한 것이 없다. 저작자가 허락하면 이용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사전 허락을 받을 필요가 없는 것에 대해, 사전 허락을 받지 않으면 이용할 수 없다고 엄포를 놓는게 금지가 아니면 무엇인가.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모든 경우에 창작자의 사전 허락이 필요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님을 밝혀둔다. 다만, 비영리적이고 개인적인 교류의 경우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제 정부가 아니라 법이 금지하는 것이라고 할텐가? '저작권 사냥꾼'에 대해서 사실 왜곡이라 하는데, 신문 기사와 블로그 등을 검색해보라. 적어도 수많은 네티즌들이 저작권 사냥꾼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번 묻고 싶다. 문화관광부는 현행 저작권법의 규제가 진정 상식이라 생각하는가? 정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가? 네티즌들의 불만이 그저 공짜로 이용하게 해달라는 투정으로만 보인단 말인가?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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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02 17:17

사는 방법 - 채식주의와 양심적병역거부

양심적병역거부 얘기. 우리나라에는 양심적병역거부말고도, 불법적인 병역기피말고도, 군대 안 가는 사람 댑다 많다. 암튼 내 주위에는 병역특례로 병역을 마친 사람들이 유달리 많으니까. 병역특례를 받는 사람들은 (내가 알기에는) 군대대신 회사를 (군대보다는 더 오랫동안) 다니고, 4주간 군대훈련을 받는다. 양심적병역거부가 제도화된다면 군대대신 회사나 사회봉사를 하고, 4주간 훈련대신 4주간 군대말고 다른 훈련을 받으면 되겠지. 방위도 마찬가지 아닌가? (방위란 단어 아직 쓰나?) 군대대신 동사무소로 출근하는 거잖아. 이렇게 양심적병역거부 제도화에 대해 댑다 쉽게 생각했다. 그래서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아닐 것 같은 사람들이 적대적인 반응을 보이면 좀 이해하기 어려웠다. 어쩌면 이렇게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내가 군대에 안 가는 사람이기 때문일거다. + 여담이지만 군대에 안 가는 사람인 것이 엄청나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하낫도 모를 때도, 군대에 나만큼 안 맞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조직생활에 안맞고 같이 하는 것 잘 못하고 못 맞추고 느리고 굼뜨고 기타등등... 초등학교다닐때는 운동회가 고역이었다. 운동회때면 항상 모든 학년이 맞춰서 하는 매스게임이나 등등을 하는데, 처음 연습시작할때는 키가 커서 선생님들이 제일 앞줄에 세웠다가 다음날이면 셋째줄이나 넷째줄로 쫓겨나곤 했다. =ㅂ= 군의문사 얘기를 들으면 남의 얘기같지 않다. 흑흑흑.. 그런데도, 내가 군대를 가야 하는 사람이 된다면, 그것도 영장이 지금 나왔다면,, 양심적 병역거부 선언을 할 수 있을까. 아마 못할 거다. ( ..) 그냥 미안한 마음을 갖고 군대에 가겠지. 예전에는 '한국적 상황이라는 특수한 상황' 혹은 양심적병역거부라는 방법이/을 없었기 때문에/몰랐기 때문에 억울한 마음으로든 사람이/남자가 되기 위해서라든 모두 군대에 갔는데, 이제는 양/심/적/병/역/거/부라는 다른 방법이, 그것도 엄청 높은 수준의 결의를 요구하는, 그것도 굉장히 원칙적인, 방법이 생겨버린거다. 나는 졸지에 평화주의자이긴 하지만 혹은 라지만 높은 수준의 결의를 요구하는 방법은 하지 못하는 평화주의자가 되었다. + 이제 많은 사람들이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하지만, 아직도 양심적 병역거부가 쉬운 방법이라고는 말하지 못할 것이다. 사실 예전부터 채식주의에 대해 꺼림직한 느낌이 있었는데; 이런 것이었다. 나는 자본주의를 반대하지만 혹은 라지만 환경이나 생태계를 고민한다지만 채식주의를 실천할만큼 높은 수준이 안 되는 것이다. 채식주의 앞에서 이렇게 나의 한계가 명확하게 드러나버린다. 그래서 나는 채식주의에 대해 꺼림직한 느낌을 갖고 있던 것이다. 뭐 결국 이런 정도 녀석밖에 안 되는 것이다. 나는. (역시 타협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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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31 17:04

일하기 싫어 모드

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otz 일하기 싫어라. 랄라♡ * 그림은 여기서 퍼왔습니다. 일하기 싫어 모드의 그림이 댑다 많아요. *_* http://onsoon.net/htm/Oekaki-1.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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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31 14:46

'시선'에 대한 글

* 이 글은 동동이님의 [고민해보기 2] 에 관련된 글입니다.

2. '시선'에 대한 글 // 내 글에 내가 트랙백. 콜록콜록,, 것도 퍼온 글들 콜록콜록콜록,,, the evil eye, 흉안, 악마의 눈 apotropaic talisman for protection against the Evil Eye in Greece흉안(evil eye)이란, "흉안"을 가진 자가 아이나 가축이나 작물등에 붙이는 일종의 저주이다. 흉안이라는 미신은 세계적인 것은 아니지만 오래전부터 널리 퍼지고 있다. ... 민속학자 중에는, 흉안에 대한 믿음은 원시적인 생물학에 뿌리를 갖고 (응시한 자와 응시된자의 사이에는 지배와 복종의 관계가 나타난다.)있다고 믿고, 응시되는 것을 싫어하는 인간의 특징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출처는 여기입니다. 전체글도 여기서 볼 수 있습니다. => http://www.rathinker.co.kr/skeptic/evileye.html '회의주의자들의 사전' 꺄울 멋있어라 => http://www.rathinker.co.kr/skeptic/index.html "오로지 연인들만이 한점의 두려움도 없이 서로를 응시할 수 있다//데즈몬드 모리스" 만화에서 본 글이다. >.< 굉장히 강렬해서 기억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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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31 14:42

고민해보기 2

* 이 글은 가난뱅이님의 [만화캐릭터와 서양컴플렉스...?] 에 관련된 글입니다.

만화캐릭터들, 특히 순정만화 캐릭터들은 서양컴플렉스의 결과물이야, 라는 비판일지 비난일지는 많이 들어봤다. 이런 말 듣고 나면 혹해서 >.< 오오 그렇구나, 하고 댑다 쉽게 그런 낙인을 찍어버린 것은 아닌지싶다. 사실은 그래도 이 수준은 졸업하고 순정만화가 서양컴플렉스면 스포츠만화는 현실성있냐, 무엇의 컴플렉스냐, 쳇,,이라고 좋아하는 것을 옹호하는 수준까지. 단지 여기까지. 음.. 이런 글 보면 댑다 부러워요. >.< 1. '타자'에 대한 공포? 혐오감?? 2. '시선'에 대한 두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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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31 14:14

고민해보기

* 이 글은 씨앗님의 [마지막 과외] 에 관련된 글입니다.

"개인의 올바른 선택만으로 논의를 몰아가는 것이 가지는 위험성" 고민해보기 그림이 없어 그림이 o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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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31 13:57

성서

0. 관리해야 할 페이지가 여러 개인 것은 점점 더 귀찮아진다. 진보넷에만 해도 꼬마게시판에 블로그까지 있구, 뉴저네트워크에 사진 안 올린다고 용욱이오빠에게 맨날 구박받고, 사실은 다른 곳에도 다니는 커뮤니티도 있고 블로그도 있다. >.< 닉도 달라서 헷갈린다. >.< 점점 다중인격의 세계로 나아가는 듯. 진보블로그를 다니다가 어느 분의 블로그에서 성서와 동성애얘기를 한 것을 읽고 나두 예전에 비슷한 고민을 했던 것이 생각나서 꼬마게시판에서 퍼왔는데, 문제 두개. 1. 공동체에 있던 것 여기에 또 퍼와도 되나. 온라인 쓰레기가 아닐까. 2. 트랙백주소를 까먹었다. otz 나중에 다시 찾으면 트랙백걸께요. ^^* 찾았습니다. => 이 글이 생각난 원래 글입니다. =) 1. 얼마전에 성서에서 동성애를 어떻게 언급하고 있는지를 분석한 책이 나왔다고 들었다. (대부분의 책은 읽지 않고 듣기만 한다. =ㅅ= )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와 다르게, 성서에서 동성애를 직접 죄악으로 언급한 것은 없다는 내용이었다. 기독교도로 20여년을 살았지만 아직 성서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 (역시 듣기만 했다. =ㅅ= ) 띄엄띄엄 읽다가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는 것이, 돼지고기와 비늘이 없는 생선을 먹지 말라는 금령이다. (뭐 이외에도 기억도 나지 않는 숱한 금령이 있지만) 이슬람교도 돼지고기를 먹지말라는 율법이 있는데, 사막에서 사는 유목민족에게는 돼지고기를 먹는 것이 상당히 위험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었다. (역시 들었다. =ㅅ=) 뭐 기후나 이런 등등의 문제로 체질에도 맞지 않고, 완전히 익혀먹어야 기생충이 없어지는 돼지고기는 유목생활에 적당하지 않는다는 분석이었는데. 성서라는 것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고 역사나 사회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은, 사회학적으로는 당연한 분석이겠지만 기독교도로서는 좀 슬픈 대목이다. 아마도 동성애에 대한 부분도 마찬가지일것이다. 동성애나 여성의 성욕 등, 가부장제를 근간으로 하는 사회를 뿌리부터 흔들 위험이 있는 것은 사회적으로 금기시되었겠지. 같은 금령이라도 돼지고기를 먹지말라는 금령은 그저 책속의 금령으로만 남아있지만, (성서를 받아들인 대부분의 사회를 위협할)동성애는 생생한 금령이 되는 것이다. 신약 이후 2000년 동안 예수님은 '창녀'를 용서했지만 사회는 '창녀'를 용서하지 않았다. 2. 신약에서 제일 좋아하는 인물이 베드로였다. (신약은 읽었다.) 아마도 베드로를 상당히 인간적인 인물로 해석해준 어느 신부님의 강론을 듣고서였던 것 같다. 사실 신약에서 베드로는, 신앙고백을 정말 열정적으로 하는가하면, 절대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루 사이에 결국 세번이나 뒤집고, 그러면서도 잡혀간 예수님 근처를 (멀리 도망도 못 가고)빙빙 돌면서 비슬비슬 따라다니고, 결국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나자 도로 가서 어부생활을 하다가, 교회의 수장이 되고 순교하는 인물이다. 그런데도 신약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서간문의 주인공은 그가 아니다. 바오로다. 학자들은 바오로가 당시 상당히 공부를 하고 학식을 쌓은 사람이고, 베드로는 그저 어부였을 뿐이라고 분석한다. 같이 성령을 받고 교회일을 하지만 맡은 영역이 다르고 하는 역할이 달랐던 것이다. 신부님 강론대로 해석하자면 다른 역할을 맡으려고 다른 사람을 선택한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성령을 받았지만 같은 능력을 지니지는 못한것이다. 그리고 신약의 대부분은 기독교의 정신을 절대적이고 시적인 언어로 정리한 바오로의 서간을 담고 있다. (베드로의 서간도 둘 있지만 바오로의 서간만큼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ㅅ= ) 베드로가 그 시절 어떻게 교회를 지도했는지, 사람들을 조직하고 격려하고 다독였는지 확실히 아는 사람은 없다. 이제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아주 아주 옛날의 어쩌면 잊혀진 이야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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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25 00:53

물건이

1. 책상뒤로 립글로스가 떨어졌다. 그럼 당연히 책상아래에 떨어져있을 줄 알고 책상밑에 기어들어갔는데 없었다. =ㅂ= 책상아래 쌓여있던 상자도 다 빼고, 책상도 조금 앞으로 빼보고, 책상뒤로 늘어진 전선들도 다 흔들어봤는데 안 나왔다. 책상뒤에 4차원의 신세계로 가는 구멍이라도 있나부다. 2. 오늘은 주말내내 충전한 전화기를 책상위에 올려놓고 전화가 오면 다 받았다. 근데 오늘따라 전화가 미친듯이 오더니, 저녁에 선배랑 통화하고 있는데 꺼져버렸다. =ㅂ= 그냥 난 전화기랑 상성이 나쁜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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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21 15:00

꺄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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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20 19:17

오늘은

1.

나는 원칙적인 인간은 아니고 그저 정치적인 인간일뿐이다. 인권운동에는 정말 맞지 않아. ㅠ_ㅠ

 

 

2. 여섯시반에 헤어져 다들 사무실로 돌아가면서, 정말 우울한 인생들이라고 낄낄거렸다.

 

3.

그림

 

 

4. 까먹고 있었던 좋은 일 하나.

바닷바람은, 차갑고 날카롭고 달았다. 나 고소공포증이 있었나봐, 라고 중얼거리는 레이를 보는 것도 재밌었다. (싱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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