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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이 제 2의 미디어 혁명을 일으킨다

아이폰이 제 2의 미디어 혁명을 일으킨다

한국지역정보개발원 <지역정보화지>

이광석

얼마전 애플에서 ‘아이패드’(iPad)라는 터치스크린 전용 테블릿 피씨를 내놨다. 아이폰이 출시됐을 때 그 경이로움에 비하면, 기술적으로 그리 큰 새로운 스마트 장치로 보긴 어려웠다. 그래서인지, 실망만큼 애플의 주가가 동반 하락했다. 보통 해외 전자제품 매장에서의 신제품 디스플레이 갱신 속도가 일년에 보통 4회 정도라 한다. 우린 거의 계절별로 매번 새로운 디지털이나 가전 신상품들이 가판에 깔리는 시대에 살고 있는 셈이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듯이, 아이패드가 일단 e북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기 때문에 이렇듯 곧 나올 후속 아이패드 버전들에 기대를 걸어도 좋을 듯하다.


‘아이폰’의 전세계적 영향력에 비해 좀 못미치더라도, 아이패드는 주춤했던 디지털북 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 몇 년 아마존닷컴의 ‘킨들’(Kindle) 정도가 e북 리더기 시장의 대부분을 점유했었다. 킨들은 사실 아이패드와 그 기능성을 비교하면 형편없다. 터치스크린 기능도 없는데다 종이책을 흑백 화면에 옮겨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가격대비 기능도 훨씬 떨어진다. 아마존닷컴이 주요 거대 출판사들과의 e북 가격 협상에서 항상 우위를 점하다 이번에 타격을 받은 것도 아이패드의 등장과 맞물려있다.         

 

아이패드와 같은 터치스크린형 테블릿은 우선, 킨들류의 e북 리더기 기능을 넘어선다. 우리가 보통 책을 사서 읽는다 하면, 당연히 부드러운 종이의 질감을 느끼고 이로부터 눈의 피로를 덜고 생각날 때 종이 여백에 손쉽게 낙서를 하거나 귀퉁이를 접고 길을 걷다 나뭇잎을 꽂아넣을 수도 있는 개인적 정서상의 이유 때문이다. 아이패드와 같은 개인 테블릿들이 미래 독자들에게 선사하려하는 것은 종이책에서 느끼는 만족도를 스마트 전자기기에서도 채울 수 있도록 구상하는데 있다. 예를 들어, 엄지와 검지로 페이지를 휙휙 넘기다가 궁금한 정보가 나와 콕 누르면 그의 신상명세가 나오고 관련된 이미지들을 풍부하게 볼 수 있고 이와 관련한 비디오를 잠깐 시청하거나 이를 타인에게 메일로 보내는 등의 기능들이 가능하다. 먼 미래 얘기가 아니라 사실상 이미 테블릿 피씨에서 실현되는 기능들이다. 그야말로 무궁무진하게 텍스트 아래 다른 텍스트들과 사진, 동영상 등이 연결되어 향상된 인터랙티브한 e북 인터페이스를 제공한다면, 아이패드의 미래도 가히 혁명적일 수 있다.

 

애플의 아이폰이 국내에 들어오기까지에 국내에서 참 말들이 많았다. 필자는 여러 지면을 통해 한국 휴대전화 시장에 아이폰을 도입해야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던 사람 중 하나였다. 국내 아이폰이 들어왔을 때 피해를 입을 사업자들은 여러 경로로 이를 막으려 했지만, 난 우리의 디지털 장래를 위해서는 필히 그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애플의 기술을 빨리 배울 필요가 있다고 얘기했다. 물론 난 기술 결정론자가 아니다. 기술 결정론이라 하면, 아이폰과 같은 기술이 인간과 우리 사회를 바꾸는 동력이라 믿고 그 반대의 경우는 별로 따지지 않는 기술숭배주의적 시각을 지칭한다. 그것이 국내 시장에 몰고올 기술적 효과를 분명히 봤지만, 난 한국인들의 자유로운 디지털 문화가 아이폰 기술 지형에 미칠 미래 파장에 사실은 더 흥분했다. 후자의 조짐은 곧 올 것이고, 지금은 예견된대로 그 기술적 파장만은 쉽게 감지된다.

 

아이폰이 미친 영향력의 가장 큰 변화는, 무선 인터넷의 이용방식이다. 이제까지 무선 인터넷은 집에서 무선공유기를 달고 노트북의 실내 공간 이동 목적으로 많이 쓰였다. 하지만, 아이폰의 등장으로 무선 인터넷 환경은, 아이폰 등 무료 접속과 이용자 서로간 정보공유의 출발 지점이 되고 있다. 아이폰 이전에 분당 인터넷 사용료로 재미를 봤던 이동통신회사들의 입장에서 보면 속이 뒤틀린 상황이지만, 소비자 복지 측면에서 본다면 대단한 진전이다. 사실 미국에서 벌어졌던 시민사회내 무선인터넷과 정보공유운동이 없었다면, 사실상 아이폰의 성공은 반쪽짜리였을 것이다.

 

한 사회의 문화적 성숙도가 아이폰의 발전에 발판이 됐던 것이다. 두 번째는, 아이폰의 국내 등장으로 우리는 이동통신 콘텐츠 개발의 형편없는 현주소를 파악하는 계기가 됐다. 전세계 휴대폰 판매 점유율 1, 2위라는 순위가 사실상 허울임이 판명됐다. 하드웨어의 발전도 중요하지만, 휴대전화도 소위 ‘어플’(리케이션)이라 불리는 응용 프로그램들에 의해 좌우됨을 배웠다. 이제까지 국내 업체들은 대체로 휴대전화 신모델만을 시장에 내어놓으면서 구형 모델 소비자들의 어플 접근 제한을 하거나 쓸만한 어플도 없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이는 어플 개발 환경이 폐쇄성을 갖는다는 점도 문제다. 누구든 원하면 콘텐츠 개발에 참여할 수 있고 구글 ‘안드로이드’와 같이 개방형 플랫폼을 응용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그나마 최근에 우리도 정신을 차려 이와 같은 개방형 시스템을 도입 중이다.

 

세련된 디자인 외장과 향상된 기술 스펙을 갖춘다는 것이, 요새같이 무섭고 빠르게 휴대전화 기술 발전의 속도가 이뤄지는 때는 필수는 될 수 있을지언정 충분 조건은 아니다. 휴대전화 제작 전문 디자이너들이 모여 앉아서 소비자들에게 소구할 휴대전화 디자인에 신경쓰는 일도 중요하지만, 결국 문제는 어떻게 소비자들이 이를 갖고 최대의 만족감을 느끼게 하느냐에 그 성패가 달려있다.

 

애플의 아이폰은 이 점에서 다른 터치 스크린폰과 다르다. 전혀 가격대비 월정액 금액이 싸지도 않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휴대전화에 비해 성능이나 디자인이 앞서지도 않는다. 설사 애플의 터치 스크린 인터페이스의 구성 능력이 우리보다 뛰어나도, 우리의 기술 수준을 고려하면 금방 따라잡을 수 있는 사안이다. 그런데도 우리에게 모자란 것 혹은 없는 것은 뭘까? 아이폰에는 잘 알다시피 수천수만의 유·무료로 제공되는 어플들이 들러붙어 있다. 수없이 많은 어플들은 아이폰을 통해 소비자 개개인에게 맞춤형 스마트 기기가 된다. 이제 전화의 기능은 부차적이다. 아침이면 유튜브 순위를 따지고, 구글맵으로 맛집을 찾아나서고, 저장해둔 PDF파일을 읽을 수도 있고, 만화 e북을 보기도 하고, 막간을 이용해 여러 장르의 게임을 하기도 하고, 무선 인터넷망을 통해 해외에 스카이프로 전화를 하기도 하고, 음악과 동영상을 보고듣고, 사진을 찍어 바로 인터넷으로 친구에게 쏘아보내고, 그날 스케줄 관리도 하는 등 그 기능이 끝이 없다.

 

한국 기업들은 아직도 아이폰이 만들어내는 성공의 원리를 읽는 눈이 부족하다. 그 성공의 근거는 바로 소비자들의 디지털 정서 파악이다. 아직도 많은 나라들에서는 한국을 ‘인터넷 천국’이라 말하고 인용한다. 이와 같은 평가는 우선 일차적으로 초고속 인터넷이라는 물리적 환경 조성이라는 국가적 노력이 있어서였다. 하지만, 한국인들 특유의 자유로운 정보 공유와 상호 소통의 문화가 그 속에서 꽃피지 않았다면 불가한 얘기다. 현재 우리의 휴대전화 문화의 새로운 2.0 버전에는 사실상 이 교훈이 빠져 있다. 제조업체는 기기 자체의 하드웨어 생산과 디자인에만 과도하게 집중했고, 이동통신사들은 보다 자유로운 콘텐츠 서비스를 제공하기 보단 이용자들의 이용 방식을 철저하게 통신료로 환산하는 잘못된 서비스 정책을 펴왔다. 이용자들의 문화에 대한 관대함과 배려가 없이는 아이폰과 같은 기술이 절대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말아야 한다. 예전처럼, 기기와 달라서 국가가 나서 단순히 콘텐츠 장려하자는 슬로건 내온다고 다 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아래로부터 자유롭게 놀 수 있는 판들을 마련해야, 독창적 콘텐츠들이 서서히 나올 수 있음을 잊지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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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12. 정치적 성숙이 영국의 디지털 정책을 일구는 힘이다

정치적 성숙이 영국의 디지털 정책을 일구는 힘이다

 

2009. 12. 월간 통

 

이광석

한국이 브로드밴드 인터넷 정책에서 성공했다며 정책결정자들이 우쭐해할 때 놓치는 것들이 많다. 미국과 영국 등이 먼저 90년대 중반이후 내놓은 초고속 인터넷 사업을 당시 우리가 벤치마킹하던 시절에서 이젠 그들이 우리의 성공신화를 배우는 시절이니 우쭐할만도 하다. 그런데, 지난 10월호에서도 봤지만 버락 오바마 정부 이래로 미국내 브로드밴드 구축 정책의 움직임과, 올해 영국의 <디지털 브리튼(Digital Britain)> 정책 보고서가 주는 공통된 함의를 우리 정책결정자들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 같다. 사실상 이 두 나라에서 디지털 정책의 핵심으로 소외된 계층의 참여와 통합(inclusion)을 그 기본 정책 명제로 삼고 있다는 점을 쉽게 지나친다.


<디지털 브리튼Digital Britain>은 이미 1월에 영국 문화미디어체육부(Department for Culture, Media and Sport, DCMS)의 핵심 전략 보고서 형태로 중간 발표 후 6월에 나온 최종보고서이다. 대략 5개월 정도 중간 보고서 내용을 각계 시민 구성원들로부터 조언을 듣고 검증을 받아 최종본을 만들어낸 것이다. 한 나라의 디지털 미래 청사진에 시민 참여와 통합의 화두를 제 1과제로 삼는 일은 여간해서 쉽지 않다. 일자리 창출과 산업연관 효과에 정책 목표가 압도당하는 대개의 현실에 비춰보면 놀랄만한 정책 입안의 과정이다.

 

전통적으로 영국의 방송 체제는 ‘공공서비스’(public service) 개념에 입각해 있다. 우리식 방송 소유구조에 맞춘 공/민영 이원구조에 비춰보면 훨씬 더 포괄적인 수준의 공공 개념이다. 영국에서 방송을 하는 주체는 공영이건 민영이건 ‘공공서비스’ 의무를 지닌다. BBC와 같은 공영방송은 물론이거니와 광고 시장으로 먹고 사는 민영방송도 정도 차이는 있지만 공공서비스의 의무와 책무를 진다. 영국에서는 일반 민영방송에도 강한 공적 책무를 정부와 의회가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공영성 구현의 핵심에는 BBC가 존재한다. BBC의 대부분 재원은 수신료에 근거하고 정부와 의회로부터의 간섭을 배제하기 위해 영국 왕실에서 발급하는 칙허장과 협정서에 의해 자체 규제기관인 BBC트러스트(Trust)의 감독을 받고 있다. 오프콤이란 우리식 방송통신위원회와 같은 규제기구가 존재하지만, BBC에 대한 일반적 규제 권한은 없고 생산된 프로그램 내용물에 대한 일부 규제 정도만 허용하는 정도다.

 

BBC는 이렇듯 의회와 정치권으로부터의 독립, 시청료를 통한 자체 재원의 확보, 양질의 공익적 프로그램과 콘텐츠 개발로 크게 성공한 방송 모델이다. BBC의 이와 같은 역할은 <디지털브리튼> 구성에서도 대단히 중요하다. 디지털 소외 계층의 참여와 통합의 방식에 전통적 공익 매체의 철학을 그대로 반영한다. 현재 영국은 인터넷 초고속망에 대한 일반 기업 공급업자들이 망건설을 유보하면서 산간벽지나 시골 등 전국가구의 3분의 1이 네트워크망의 혜택을 전혀 입지 못하고 있다. 이를 본 BBC는 시청료의 약 2억 파운드(4천억원 정도)를 초고속인터넷망 사업에 투자하겠다 밝혔다. 또한 BBC의 가장 성공적인 인터넷 콘텐츠서비스 사업인 아이플레이어(iPlayer)에서는 방송후 7일 이내의 거의 모든 프로그램을 VOD로 무료 시청할 수 있는 시스템을 확보하고 있다. 서비스 개시후 1년간 (2007년 12월~2008년 12월) 2억 7천여건의 프로그램 전송할 정도로 급성장하고 있다. 결국 전통적 공영방송으로서 BBC 모델이 새로운 디지털 영역에서도 그대로 이어져 공익성을 살리는 방식으로 사업 다각화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소외없이 보다 많은 이들의 방송 접근권과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않는 방송 액세스를 보장하려는 노력이 인터넷 방송 사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미 국내에서도 <디지털 브리튼> 보고서 내용에 대한 소개가 크게 이뤄졌다. 하지만, 이를 소개한 언론과 정부 기관들은 영국 디지털 정책의 핵심을 보지 못한다. 디지털화를 통한 이익과 장점들을 국민 골고루 공평하게 누리고, 이들 모두에게 디지털 참여와 통합을 통한 접근성 향상에 기대를 걸고 있음을 강조해야 한다. 예를 들어, 사실상 기업들의 디지털 영역에서의 독주를 막기 위해 보고서에서 ‘산업적 행동주의’(industrial activism)란 용어를 쓰는데서도 잘 알 수 있다. 산업 발전이나 일자리 창출에도 국가가 시장 개입을 통해 공익 서비스를 확대하기 위해 개입해야한다는 주장이다.

 

디지털 전환과 관련해서도, 2012년 영국의 디지털 텔레비전 보급률이 95%까지 이뤄질 것이란 전망치가 나온다. 이미 2001년부터 영국 정부는 디지털 전환을 주도하면서 대국민 홍보와 관련 사업자들(방송사, 가전사 등)과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디지털 전환 기구 ‘디지털 UK'를 운용해왔다. 이 또한 디지털 전환의 논리를 시민 후생과 보편적 서비스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다.

 

땅 면적이나 유구한 역사를 따져보면 비슷해 보이는데, 참 서로 많이 다르다. 우리는 물리적 망 사업에서 크게 성공했지만, 서투른 디지털 전환 추진에다 시민들의 디지털 참여와 통합은 사실상 시장과 산업논리 챙기고 난 뒤에 여유되면 뒤돌아보는 목표치가 아니던가. 그래서 더욱더 의회 민주주의의 오랜 전통으로부터 방송의 공익성이 흔들림없이 보장받고, 디지털 신규 정책과 사업에서조차 그 민주적 전통과 재정적 기부로 전이되고 힘이 되는 영국 사회가 한없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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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11. 아이폰 국내 도입에서 정보공유 정신을 보라!

+ 작년 아이폰이 들어오기 전에 제가 썼던 글이네요. 아직도 우리가 정신 못차리거나 유효한 내용들이 많아 보입니다.+

 

아이폰 국내 도입에서 정보공유 정신을 보라!

 

2009. 11. 월간 통

 

이광석

   아이폰이 국내에 들어온다. 어렵사리 들어오는 기기이니 즐겁게 받아들이고 이제는 긍정적인 측면을 보자. 이제까지 국내에 들어왔던 웹2.0 기업들이 크게 시장에서 재미를 못보거나 철수한 것에 너무 즐거워할 이유도 없다. 그들에게 한국의 특수한 토양이 맞지 않았지만, 우리의 시장 폐쇄성도 그들을 내치는데 한몫했다. 그들이 들어왔다 나가는 것도 자축할 것만은 아니란 얘기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면 기본적으로 게임의 룰만은 공정해야 한다. 여기서 물론 ‘우리’는 정부나 사업자들일 수도 있지만, 일반 소비자이자 시민들이다. 기본은 공익이고, 이들을 중심에 놓고 판단해야 한다.

 

   아이폰이 국내에 들어오는데 이제까지 문제가 됐던 것은 정부보다는 우리의 이동통신업계의 뜨뜨미지근한 자세였다. 기존에 무선인터넷 영역을 상업화하여 이로부터 수익을 크게 얻는 구조를 쉬 버리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아직까지도 이통사는 고민 중이다. 그러나, 소탐대실이라 하지 않았던가. 당장 눈앞의 작은 것을 버리면 앞으로 적어도 수십년 이상은 한국사회의 모바일 어플 콘텐츠업계의 활성화와 다종다양한 신생 서비스가 생길 것이다. 이찬진 사장이 아이폰 전도사로 나서고 한국인터넷기업협회가 아이폰 수입을 허하라 성명서를 내는 판이다. 눈앞의 이윤보다 시장 성장의 가능성을 봐야 한다. 

 

   무엇보다 아이폰은 시장의 논리이기 전에 정보 공유의 논리로 커 왔다. 그것이 미래 경제 모델인 ‘리믹스’(remix) 경제의 모습이다. 돈을 벌더라도 정보재가 지닌 공유 문화의 철학을 따라야한다는 것이 리믹스 경제의 요체다. 이 법칙을 거스르곤 미래에 성공은 고사하고 쪽박 차기 알맞다. 이미 작년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나온 보고서에서도 이를 인정했다. 구글을 롤모델로 삼는 삼성도 ‘프리경제’(freeconomy)하에서 이용자들의 문화적 패턴을 읽고 그 속에서 이윤을 창출하는 박리다매의 신경제 모델을 내놓은 적이 있다.

 

   자 아이폰은 무엇인가? 전화보다 어플리케이션의 부가 기능이 중심이 되고, 그러자면 무선 인터넷이 중심에 서는 모바일 기기다. 매달 전화비를 내지만 미국 소비자들 대부분은 무선 접속 공간에 노출돼 있다. 게다가 AT&T가 자사의 3G차세대 모바일망을 스카이프 인터넷전화(VoIP)에 개방한다는 발표는 그냥 이뤄진 것이 아니다. 시장 이윤도 이윤이지만 최소한의 망 개방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용인된다는 점을 주목하라. 이것이 시장을 죽이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미국은 대다수의 가정들이 무선 인터넷 네트워크를 공유한다. 어떤 사람들은 옆집과 자신의 와이파이 대역을 함께 나눠 쓰기도 한다. 미국인들은 우리의 무선인터넷을 ‘와이파이’라 부른다. 이는 철저히 공유의 철학에 기반한다.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오스틴 등은 무선인터넷 천국으로 꼽힌다. 이 도시들이 천국인 이유는 시민단체들과 시당국이 무료로 시민들이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핫스팟(와이파이 안테나 반경이 미치는 구역)을 공원, 도서관, 카페 등에 무료로 계속해서 구축해 나가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에서도 기업들이 이 틈을 그냥 놔두질 않는다. 좀더 고품질로 이 분야에 진출하고, 우리의 ‘와이브로’(WiBro)처럼 와이맥스(WiMAX)라는 기술이 와이파이를 보완해 나옴으로써 시민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와이파이에 위협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전파 거리나 전송 속도에서 상업용에 비해 무선인터넷은 한참 처진다. 그래도 시민들을 위한 와이파이의 자유정신은 건재하다. 연방 정부와 주정부, 각급 공공 기관들에서조차 무선인터넷을 공익에 근거한 정보격차 해소방안으로 삼고 있다. 미국에서 광통신망 건설이 우리처럼 확대되지 못한 상황에서 무선인터넷이 근 몇 년간 이를 보완하는 인터넷 접속로 구실을 했다. 마치 우리의 인터넷방 문화처럼 미국에서 무선인터넷은 느리지만 누구나 무임승차할 수 있는 인터넷 서비스로 자리매김했던 것이다.
 

이처럼 공유 모델에 의해 자리잡은 무선인터넷을 이용해 덕을 본 것은 애플의 아이팟이나 아이폰이다. 개방된 무선망에 휴대용 터치스크린 폰 이상 잘 들어맞는 기기는 없다. 애플은 이미 오래 전에 말 많던 누리꾼들의 ‘불법’ 음악공유 문화에 상업 모델을 적용시켜 성공했던 전례가 있다. 애플은 곡당 저가의 요금으로 그리고 아무 기술적 잠금장치없이 내려받기가 가능한 아이튠 음악제공 서비스를 진작에 실시해 큰 성공을 이뤄냈다. 애플이 그 험한 마이크로소프트사의 공세에도 무너지지 않은 까닭은 애플의 문화 적응력에 있다. 이번 기회에 우리도 아이폰 도입에서 이처럼 기술 개발과 서비스에 있어서 공유와 개방의 철학을 배워야 한다.

 

  물론 스티브 잡스가 모든 측면에서 비상업적 개방성을 지향하는 인물은 아니라는 것을 알만한 사람은 안다. 그도 전문경영인이요 이윤을 따라 움직인다. 허나 무선인터넷에 대한 커뮤니티 차원의 운동 그리고 주정부 차원의 정책적 지원 등이 결국 오늘의 아이폰 명성이나 개방형 기술들을 낳았음을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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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뻔뻔한 미디어 농장 9차 포럼

지난 <뻔뻔한 미디어농장 8차 포럼>은 디지털 전환에 따른 방송 주파수의 회수/재배치 문제, MMS(Multi mode Service)도입 문제 등 현행 '방송통신 주파수 현황과 쟁점'을 다뤘습니다. 공공의 자원인 주파수가 보다 많은 사람을 위해, 보다 효율적인 방식으로 이용되도록 하는 것은 중요한 공공 정책 영역일 것입니다.

그런데, 주파수는 거대 방송사나 통신사가 독점하는 방식으로밖에 사용될 수 없는 것일까요? 주파수는 '희소'하기 때문에 '소수'의 운영자에게 배분될 수밖에 없고,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운영자가 공공적으로 활용해주기를 기대하는 것밖에 없 것일까요? 이미 해외에서는 기술, 정책적으로 주파수의 희소성을 극복하는 가운데 보다 공공적인 전파 활용이 모색되면서 누구나 활용할 수 있도록 일정 주파수 대역이 개방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한 정책이 제안되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이미 공동체 라디오 운동의 경험이 있습니다.

'공공적 전파 정책' 못지않게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우리 스스로' 주파수를 활용하는 것입니다. 한국 내에서는 그 가능성!에 대한 검토조차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뻔뻔한 미디어농장 9차 포럼>에서는 공공재인 전파를 공유하며 자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사회, 문화적 조건은 무엇인지에 대해 토론해보고자 합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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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뻔뻔한 미디어 농장 8차 포럼

<뻔뻔한 미디어 농장 8차 포럼: 방송통신 주파수 활용 현황 및 쟁점>

 

 

 


최근 아이폰 출시를 계기로 국내 무선망 이용 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역으로 생각하면, 그동안 국내 무선 인터넷
환경은 통신망을 독점하고 있는 이동통신사의 폐쇄적인 정책으로 자유로운 이용이 제약을 받고 있었던 것이지요. 2012년에는 아날로그 방송이 중단되고 디지털 TV로의 전환이 완료된다고 합니다. 과연 디지털 TV로 전환한다고 해서 수용자가 더 나은 방송 프로그램을 향유할 수 있을까요? 혹여 무료 보편적 서비스는 더욱 축소되고, 소외 계층의 방송 접근권이 위축될 우려는 없을까요?주파수 정책은 이용자들의 방송/통신 환경을 규정할 많은 정책들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기술적/정책적 전문성으로 인해 '공공의 자원'인 주파수를 어떠한 목적으로 사용할지, 어떻게 배분할지, 어떠한 규제 정책이 필요한지에 대해서 공론화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뻔뻔한 미디어 농장> 8차 포럼에서는 현재까지의 국내 방송통신 주파수 활용 현황과 디지털 전환에 따른방송주파수의 회수/재배치 문제,  MMS(Multi mode Service) 도입 문제, (가칭) 송신공사 설립 문제,라디오 디지털 전환 문제 등 주파수를 둘러싼 쟁점을 다루고자 합니다. 또한, 이후 포럼을 통해 공공적인 주파수 정책/모델에 대한 토론을 이어나갈 예정입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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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인터넷 코리아, 정말로 괜찮니?

인터넷 코리아, 정말로 괜찮니?

 

[시사IN 125호] 2010년 02월 06일 (토) 09:15:35 이광석 (미디어 평론가)

 

대한민국에서는 신권위주의적 정치권력에다 기술에 대한 도구적 접근이 합해져 각종 디지털 악법과 정책이 난무한다. 인터넷 실명제는 대표적인 ‘인터넷 악법’이다.

 

 

 

요새 국제 뉴스를 보면 일부 국가의 인터넷 통제에 대한 욕망이 남의 일 같지 않다. 중국에서는 반체제 인사들의 구글 계정에 대해 정부 당국이 나서서 해킹을 지원한다는 의혹이 커지면서 미국과 외교 분쟁으로까지 비화할 조짐이다. 사실 이제까지 중국 공산당의 검색 금칙어 등 인터넷 내용 검열 요구에 구글이 순순히 응해온 것에 대해 전 세계 비난 여론이 거셌던 터였다. 지난해 구글 소유의 유튜브가 한국의 인터넷 실명제가 표현의 자유를 막는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고자세와는 다른 사뭇 실망스러운 태도였다. 아무튼 이번 중국 내 해킹 건으로 말미암아 구글도 정신이 좀 깰 듯싶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인터넷 상황도 폭풍전야라는 느낌을 준다. 지난해 12월부터 오스트레일리아 정부가 인터넷 내용 규제 법안을 무리하게 강행하면서 녹색당, 시민단체, 지식인과 사회 각계각층 인사들의 반발을 샀다. 급기야 누리꾼들이 인터넷 ‘블랙아웃’(홈페이지 초기화면을 시커멓게 표시하고 그 위에 정부 검열에 저항하는 문구를 새기는 행위) 주간까지 선포하면서 커다란 시민 저항에 직면하게 됐다.

누구보다 오스트레일리아 인터넷의 내용 검열을 주도하는 인물은 오스트레일리아 정보통신부 스티븐 콘로이 장관이다. 그는 아이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인터넷 필터링과 ‘부적절한’ 사이트에 대한 블랙리스트 작성을 골자로 한 내용의 규제 법안을 밀어붙이려 한다. 시간이 갈수록 내용 규제에 대한 여론이 그와 정부 쪽에 상당히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전 세계에 유례가 없는 인터넷 실명제

   

얼마전 해커들이 호주 정부 사이트를 해킹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들은 호주 정부에서 추진하는 내용 검열에 대한 저항을 홈페이지 해킹으로 표현했다.

이 일로 얼마 전 오스트레일리아 학자들의 초청을 받아 울런공 대학에서 연사로 나선 적이 있다. 당시 워크숍 주제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들의 인터넷 통제와 검열’이었다. 물론 오스트레일리아 정부의 인터넷 필터링 법안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가 주된 관심사였다. 그들이 내게서 듣고 싶었던 얘기는 한국의 인터넷 검열 사례였다. 한국 인터넷 현실에서 자신들의 미래를 점쳐보고 이에 대비하자는 심산이었다.

실제 오스트레일리아는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 수준만 따지면 한국에 비해 한 수 아래다. 그렇다보니, 과거에 우리에게 일어난 인터넷의 논쟁적 이슈들이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이제 속속 사회의 중심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들의 인터넷 내용 규제 논쟁이 10여 년 전 국내의 ‘내용등급제’ 도입 때와 너무도 닮았다. 아직은 희망이 보이는 그들에게 나는 국내 인터넷 검열의 사례를 들었다. 일제강점기의 주민등록 시스템이 어떻게 개인의 신상 정보를 관리하는 표준으로 쓰이는지, 이것을 중심으로 어떻게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인터넷 실명제’가 연동되는지, 우리의 인터넷 ‘내용등급제’가 어떻게 사전검열 효과를 발휘해왔는지, 국정원 등 정보기관에 의한 인터넷 패킷 감청이 어떠한지, 촛불정국 이래 ‘삼진아웃제’와 ‘사이버 모욕죄’ 등이 누리꾼의 표현의 자유를 어떻게 침해하는지 따위를 소개했다.

그래도 아직은 악법을 피할 수 있는 그들의 논쟁을 부러워하면서, 필자는 돌아오는 내내 우리 인터넷 현실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가만 따져보면 우리처럼 전방위에서 인터넷을 억압하는 법안과 정책이 도입되는 나라가 도대체 있을까 싶다. 신권위주의적 정치권력에다 기술에 대한 도구적 접근이 합해져 각종 희한한 디지털 악법과 정책을 낳아왔다.

지난 1월25일, 국내 인터넷통신망법에 규정된 인터넷 실명제에 반발한 몇몇 누리꾼이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이제까지 이 악법이 얼마나 누리꾼에게 재갈 구실을 했는지 사회 전체에 공론화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듣자하니,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인터넷 실명제를 성공한 IT정책 사례로 해외 공식 석상에서 자랑하고 다닌다는 말이 들린다. 어이없고 한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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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액트

한국의 미디액트까지 미디어센터 사업에서 배제됐네요. 참, 세상이 어찌 가고 있는지... 아래는 관련 미디액트 성명서의 상황 설명 부분이고, 그 아래는 유명한 미디어운동가인 도로시 키드의 한국 미디액트에 대한 지원 메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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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액트 스탭들은 영화진흥위윈회(위원장 조희문, 이하 영진위)의 영상미디어센터사업을 (사)한국독립영화협회로부터 위탁받아 지난 2002년부터 설립 운영해왔습니다. 그러나 2009년 말 재계약을 앞두고 영화진흥위원회가 미디어센터 사업의 운영 주체를 공모제를 통해 다시 선정함에 따라 지금까지 미디액트를 운영해온 현 운영진이 탈락하고, '(사)시민영상문화기구'(이사장 장원재)라는 단체가 새로운 운영자로 선정되었습니다. 선정 결과에 따라 지난 8년 동안 열정적으로 영상미디어센터를 운영해온 미디액트 스탭들은 2010년 1월 31일을 기점으로 모든 사업과 서비스를 중단하고 이 공간을 떠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이번 영진위의 어이없는 공모 심사 결과에 대해 미디액트 스탭 일동은 분노와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From: Dorothy Kidd [mailto:kiddd@usfca.edu]


Dear friends:

Lee Myung-bak's New Right government in S. Korea is taking disturbing steps to limit freedom of expression, shut down independent media, and defund media, arts, and cultural organizations across the country. The latest blow is an attack on public media center MediAct, which has played a key part in the democratization of Korea's media system since the end of the dictatorship, trained thousands of people in media production, and developed many successful media policy proposals to open up Korea's mediascape to diverse voices.

Please take action now to express international support for MediAct.

More information below.

       MediAct in Korea has long played a vital role to support alternative and independent film and video production, a critical citizens’ media monitoring movement, and an independent, democratic trade union movement since the late 1980s wave of democracy movement in Korea. They have also collaborated with many of us around the world.

   However, in the past two years, the mediascape and culture sector in South Korea has undergone some drastic changes under the Lee Myung-bak regime/New Right that has taken power as of 2008.

   Now MediAct is facing the crisis of a shut down with the massive and politically motivated budget cutting by Korean government. Thus, we need international voices to condemn the Korean government's attack against the independent media environment in Korea.


1) Sign http://www.gopetition.com/online/33662.html
Media and democracy in South Korea: Save Mediact

2) For updates: Join ACT NOW to save MediAct & Independent Media in Korea! facebook page: http://www.facebook.com/home.php?#/group.php?gid=273091817582&ref=nf

3) Call KOFIC's Chairman Cho, Hee Moon  82-2-958-7521
or email: mentor21@kofic.or.kr
cc: snowmt@kofic.or.kr

More info:

Mediact website: http://www.mediact.org

English Intro:
http://tinyurl.com/ygtsoq5

Related Interviews:
http://tinyurl.com/yk36j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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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rothy Kidd
Associate Professor
Department of Media Studies
University of San Francisco
2130 Fulton St.
San Francisco
94117-1080
415-422-5061
kiddd@usfc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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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대한 늬우스’를 6000원 내고 보라고?

‘대한 늬우스’를 6000원 내고 보라고?

 

 

[122호] 2010년 01월 13일 (수) 17:49:32      이광석

 

 

600억원이 넘는 세전이익의 흑자를 내는 KBS에, ‘대한 늬우스’ 수준으로 전락한 KBS에, 전 세계에 유례가 없는 ‘상업적 국영방송’의 길을 걷는 KBS에 별다른 이유도 없이 수신료를 더 내라고?

 

 

 

새해 벽두부터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현재 2500원 하는 KBS 수신료를 6000원 수준으로 인상하자는 말을 꺼냈다. 그는 현 수준보다 두 배 이상이 넘는 수신료 인상액을 제시하면서 “상식선상에서” 수신료 인상이 이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상식선상에서’ 이렇게 인상하게 되면 “7000억~8000억원 규모의 광고가 민간시장으로 이전되는 효과”가 있으리라 장담한다. 그 어느 누가 봐도 비상식선상에서 나오는 막말이다. 정부가 시민의 주머니 털어서 KBS 광고 수입 없앤 비용을 조달받고, 그 돈으로 조·중·동 종합편성 채널 진출에 나눠주면서 레드카펫 깔아주려 한다는 말이 이제 기정사실화됐다.

KBS 김인규 사장 또한 신년사에서 수신료 인상을 올해 KBS의 ‘숙원 사업’으로 내세웠다. 우리의 수신료는 영국·독일·일본의 공영방송사에 비해 수십 년간 정체 상태다. KBS의 수신료 의존율은 40% 미만에 불과하다. 이제 외국처럼 수신료를 정상화해 서비스를 개선하자고 한다. 일견 수치상으로 보면 최 위원장이나 김인규 사장의 말이 명분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와 달리 KBS 현실을 보라. 600억원이 넘는 세전이익의 흑자를 매년 경신하면서 승승장구한다. 그에 발맞춰 KBS 방송은 최근 몇 년간 ‘대한 늬우스’ 수준으로 전락하고 있다. 전 세계 유례없는, 명실 공히 공영도 상업 방송도 아닌 ‘상업적 국영방송’의 큰길을 걷고 있다. 그런데도 이처럼 요상한 정체성을 지닌 KBS에 별 큰 이유 없이 수신료를 더 내란다. 가뜩이나 생활고와 만성 실업에 치여 우리네 삶이 울상인데, 마치 명분 없는 ‘인두세’처럼 정부가 또 한번 서민을 갈취할 태세다.

   
수신료 인상은 김인규 KBS 사장(위)의 숙원 사업이다.
조직의 독립성·자율성부터 확보하라

방송법 제64조에 명시한 바에 따르면, 텔레비전 수상기를 소지한 자는 대통령령에 따라 수상기 등록과 수신료 납부 의무가 있다. 안다. 또한 법적으로 수신료의 결정 또한 KBS 이사회의 심의·의결 후 방송통신위원회를 거쳐 국회의 승인을 얻어 확정된다. 다 좋다. 그래서 이제껏 우리나라 시청자는 전기세에 통합고지되어 나오는 수신료를 군소리 없이 꼬박꼬박 내왔다. 물론 시민이 크게 한 번 수신료 징수에 분노해 이를 뒤집은 적이 있다. KBS가 1986년 군부독재의 ‘나팔수’를 자처하면서 정신 못 차리던 시절이었다. 그때 시민의 분노를 지금도 파악 못하면 비슷한 일이 또 찾아올 수 있다. 

우리나라의 수신료 징수는 일본의 NHK와 비슷하게, 공공복지 서비스를 위해 시청자가 일종의 부담금을 내야 한다는 관점에 기초해 있다. 즉 수신료를 준조세적 성격의 공적부담금으로 본다. 예서 우리는 ‘공공복지 서비스’라는 단서 조항을 주목해봐야 한다. 방송법에 규정된 시청자의 수신료 납부 의무란, 먼저 전파를 사용하는 주체의 서비스 의무 이행이 적절히 이뤄질 때 계약 조건이 성립한다는 얘기다.

KBS가 공영방송이라면 그 격에 맞춰 상업주의나 청와대 등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 독립된 운영과 편성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그도 없이 수신료만 챙기면 대국민 갈취요 사기다. 게다가 시청자의 주머니를 털어 수신료까지 올려 그 자금으로 또 다른 궁리를 한다면 이는 도둑 심보보다 더 나쁘다.

KBS가 지금의 ‘상업적 국영방송’ 비슷한 외양을 정리하려면, 수신료 인상 문제 등으로 새해부터 국민의 심사를 어지럽게 해선 곤란하다. 당장 내부적으로 개선해야 할 것이 얼마나 산적해 있는가. 진정 KBS가 ‘공영방송’의 이름값을 하려면 외압으로부터 조직의 독립성 보장을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시사보도 프로그램 등에서 탐사 저널리즘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교양·오락 프로그램의 다양성 확보와 질적 향상 등에 힘써야 한다. 이와 같은 노력 없이 일방적으로 수신료 인상을 제안하다가는 외려 시청자의 ‘수신료 거부운동’이라는 전 국민의 저항을 부르기 십상이다. “상식선상에서” 암만 봐도, 수신료 인상은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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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 과욕

하루종일

만두를 빚고

먹고

또 먹었다.

 

저녁에

탈이 나

화장실을 두 번

찾은 후

고통이

잦아들었다.

 

만두 과욕이

새해

작은 가르침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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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색 바랜 색깔론 피해자, 김제동·임헌영·마은혁

[시사IN 115호] 2009년 11월 26일 (목) 09:28:22 

 

 

색 바랜 색깔론 피해자, 김제동·임헌영·마은혁

 

 이광석

 

일부 보수 언론은 ‘부끄러운 친일’을 사죄하기는커녕 <친일인명사전>을 ‘좌파사관의 친일사전’으로 몰고, 언론 관련법 처리에 반대하며 농성한 민노당 당직자에게 공소기각 판결을 한 판사를 ‘좌편향’이라고 공격한다.

 

 

풍경 하나. 방송인 김제동은 얼마 전 한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세상의 어떤 일이든 97%는 내부에 있고 사실 3% 정도는 외부 요인을 가지고 있다”라는 말을 했다. 그의 말은 프로그램 하차의 외압 논란을 일거에 허물어뜨리는 힘을 가졌다. 그랬다, 역시 그릇이 달랐다. 그는 스스로의 모자람을 지적했다. 그래도 난 1%도 아니고 3%라는 그의 숫자에 영 마음이 쓰였다.

지난해 가을부터 KBS에서 보도탐사 프로그램이 갑자기 폐지되고 사회를 보던 가수나 앵커가 하차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 상황에서는 누구나 KBS <스타 골든벨> 마지막 방송에서 흘린 그의 눈물과 이내 그가 겸손하게 숫자화한 3%에 씁쓸함을 갖게 된다. “웃음에 좌우도 없다”라는 그의 말에서 아이러니하게 우리 모두는 그에게 닥친 정반대의 쓴 현실을 봤다.

풍경 둘. 지난 11월8일 민족문제연구소는 일본에 ‘충성혈서’를 썼던 박정희 전 대통령, 동아일보 창업주와 조선일보 사장의 친일 행적 등 일제강점기 시절 4389명의 친일 행적을 담은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했다. 2001년 12월부터 시작해 8년 만에 이룬 쾌거다. 광복 이후 일제에 적극 공모했던 이들에 대한 역사적 심판이 부재했던 우리가, 이제라도 친일 행적에 대한 기록을 남겨 역사의 반면교사로 삼는다는 점에서 뜻깊은 일임에 분명하다.

유신 시절로 돌아간 듯한 보수 언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친일인명사전>(위)을 ‘좌파의 사전’으로 깎아내렸다.

한나라당의 친박계 한선교 의원이 한 라디오 방송에 출현해 박 전 대통령의 친일 논란을 일축하며 민족문제연구소를 ‘좌파연구소’라고 맹비난했다. 연구소 설립의 기원이 됐고, 지금은 작고하신 친일연구가 임종국 선생이 들으셨다면 기가 찰 소리다. 생전에 효창동 백범 김구 기념관에서 연설하던 모습이 아직도 내겐 또렷하다. 그는 영락없는 민족주의자였다. 대체로 그의 청중은 나이 지긋한 독립운동가 집안의 후손쯤 되는 그런 분들이었다. 그런 그의 평생 유지를 받들어 어렵게 이룬 연구소와 사전 제작을 싸잡아 ‘좌파’라 하니, 이에 무슨 대꾸를 하겠는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스스로의 ‘부끄러운 친일’에 사죄라도 하는 것이 기본이거늘, 오히려 “대한민국 정통성 훼손을 노린 좌파사관(의) 친일사전”(동아일보 11월9일자)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써댔다. 게다가 임헌영 연구소 소장의 과거 ‘남민전 사건’ 투옥 전력을 ‘좌빨’로 몰아가기까지 했다. 유신시대에 조작된 공안사건으로 이미 판결된 내용을, 이들은 마치 유신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똑같이 읊조린다.

풍경 셋. 서울남부지방법원의 마은혁 판사가 요새 곤혹스럽다. 언론 관련법 처리에 반대하며 국회에서 점거농성을 한 혐의로 약식기소된 민주노동당 당직자들에 대한 정식재판에서 모두 공소기각 판결을 한 것이 문제가 됐다. 당시 농성 중이던 민주당 쪽은 입건조차 않고 민노당 쪽만 약식기소한 것은 “검사의 공소권 남용에다, 형사소송법 위반”이라며 기각했다. 누가 들어도 타당하다. 그러나 조·중·동은 “편향적인 돌출 판결”이자 “판사의 이념이 개입”됐다고 난리다.

 조·중·동은 마 판사가 ‘우리법 연구회’ 소속에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에게 후원금 10만원을 낸 것을 “좌파 편향 판사의 좌파 정치인 후원회 참석”이라며 ‘시뻘건’ 이념 딱지를 붙인다. 끝내 동아일보는 마 판사가 “사회주의 혁명조직 핵심 멤버”(동아일보 11월12일자)였다고 주장한다.

누구를 만나고 누구와 친하게 지내고 어디 선언에 어떻게 연명을 하고 무슨 글을 썼고 언제 무엇을 했고 어떤 자리에 참석했는지, 이 모든 것이 정치 이념으로 재단되는 사회가 또다시 반복된다. 이념의 굴레에 갇힌 이들은, 세 가지 풍경 속 주인공 각각에서 보이는 소박한 웃음·정의·형평이란 희망의 메시지를 읽으려는 시늉조차 없다. 색 바랜 ‘이념’으로 단죄하는 이들의 목소리만 드높다. 세상이 정말 거꾸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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