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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수청동은 전쟁 중, 이라는 속보 끄트머리에..

 

"참세상 동지들 오산수청동 취재와 주세요... 저희들은 너무 억울하고 분합니다. 화성경찰은 미친개 입니다. 아무런 죄도 없는 잡혀간 것도 억울한데 개처럼 취급받고 폭력을 저지를 화성 경찰을 반드시 응징합시다.

5월 4일 11시 오산수청동 현장에서 경찰의 폭력만행을 규탄하는 기자회견
5월 4일 1시 화성경찰서 폭력만행 규탄 집회
꼭 참여해주세요. 그리고 취재해 주세요...."

 



몰라서 못 갔고.

알았더라도 못 갔을 거다.

 

...

 

1년쯤 전, 그러니까 참세상에서 활동을 시작하고 두어 달쯤 흘렀을 때..

내 가장 큰 고민은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맺기를 어떤 식으로 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꽤 오랜 시간을 한 현장에 밀착해서 작품을 만들어내는 다큐 감독이라면 모르겠으나,

여러 현장을 다녀야 하고 그리 긴 관계를 맺지 못 하는 작업패턴 속에서,

친밀한 관계는 어느 순간 죄스러움만 낳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꼭 오세요'라는 절박한 눈빛에도

나는 애매한 대답으로 일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몸도 마음도 약해빠진 나란 인간은..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과 고통 속에 버려진 이들을 만나가며

오랫동안 버텨낼 재간이 없기 때문이었다.

 

참세상에 들어올 때, 지원동기를 묻는 질문에 나는 이렇게 답했었다.

주류 카메라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목소리를 낼래야 낼 수 없는 이들의 목소리를 담는 일을 하고 싶다고..

그렇게 말할 때는, 고백컨대 미처 몰랐다.

이 정도로 강한 신념과 체력과 집중력을 요하는 일인 줄을..

 

반복적인 속보 작업을 하다 보면, 속보에서 마저 하지 못한 이야기를 좀더 긴 호흡의 작업으로 좀더 깊이있게 담아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다가도,

정말 끊임없이 여기저기 터지는 문제들과 혹독하게 유린당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대면할 때면, 다른 작업에 대한 욕구는 그야말로 욕심이 아닌가 싶어질 지경이다.

 

나는.... 숨 돌릴 틈도 없이 바삐 살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이다.

나는.... 피곤하면 쉬어야 하고, 때로는 책을 읽어야 하고, 또 영화를 봐야 하는 사람이다.

나는.... 그런 내 욕망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얼마간 타협은 할지언정...

 

이런 생각이 잘못 된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생각조차도 죄책감이 드는 건,

내가 정말이지 야만적인 사회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내가 한 번에 해낼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은 이상,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집중할 것에 집중하자고 생각하면서도,

적지 않은 시간을 죄책감에 시달린다.

 

수청동에도 다시 찾아가 봐야할텐데.

크게 다치셨다는 소사 철대위원장님도 뵈야 할텐데.

'경찰들이 방송차 끌어내면 저 뛰어내릴 거예요, 그 때 잘 찍으세요'라고 결연한 표정으로 말을 건네던 인천 지역 철거민의 비장함을 너무도 또렷이 기억하는데.

 

죄책감. 무기력함. 욕망. 피로. 내가 선택한 의무. 또다른 욕망.

 

모든 것이 뒤엉켜 나를 괴롭힌다.

 

p.s 다시 잘 울기 시작했다. 그래, 울자. 실컷 울고, 내 "소중한 삶의 밑천들"인 "눈물의 힘" 을 빌어 "겨자씨만큼이라도 그릇된 세상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무언가 지불"해야 할 것이며, 그것이 "일종의 대리체험이며 면죄의식"이 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경계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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