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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2/26
    책 두 권의 만남
    김지씨

책 두 권의 만남

  

1.

뭐였더라...옛날에 읽었던 소설 중에 작중 화자가 자신의 책을 반드시 두 권이상 같이 읽는 습벽이 있다고 고백한 소설이 있었는데...아! 아마도 주인석의 <검은 상처의 블루스>였나보다. 거기 보면 박태원의 구보씨의 맥락을 잇는 소설이 등장하고, 그 소설의 주인공 구보씨가 그런 고백을 했었던 것 같다. 그 부분에 십분 동의했던 것은 나도 그런 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습성은 어느 한 쪽에도 집중을 못하고 두 권 다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하는 결과로 대부분이어지지만, 어떤 경우에는 두 권이 무난하게 잘 겹쳐 행복한 만남을 이룰 때도 있다. 그럴땐 나름 뿌듯한 마음으로 오랜만에 불붙은 독서열을 다른 곳으로 이어가게 된다.


 

근간에 잘 겹친 책을 들어본다면,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 열린책들린다 플라워의 <글쓰기 문제해결 전략>, 동문선이 그 한 예가 될 수 있다. 소설이건 작문이건 글을 쓰는 것은 어떤 번쩍이는 영감만으로 쓸 수 없다는 사실을 두 권 다 잘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논술의 광풍이 학교를 몰아치고 있는 지금에 학생들에게 글쓰는 것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를 꺼낼 것인가에 대해 생각할 때 여러 가지로 참고가 될만한 책이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2.

요즘에는 또 무슨 미친 바람이 불었는지, 도시계획에 관련된 책을 붙들고 앉았다. 손정목의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와 <한국 도시 60년의 이야기>, 한울를 읽고 있다. 군대에서 훈련받을 때 편지에 이 책의 일부를 복사해서 넣어준 사람이 있었다. 그때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나서 책을 사서 읽기 시작했는데, 좀처럼 손에서 떼기가 어렵다. 지은이 손정목은 자신이 직접 겪었던 박정희 정권 시기 서울시 행정의 면모를 조금은 과격한 어조로 털어놓고 있는데, 읽으면서 오히려 내가 조심스러워질 정도로 막 말하는 경향이 없지 않으나, 한 점의 거짓도 없다고 자신이 머리말에 이야기했으니 믿고 그냥 재미있게 읽기로 했다. 사실 이 책은 무협지를 방불케할 정도로 속도감있게 읽히기 때문에 손에서 떼기도 어렵고, 좀처럼 다른 책을 겹쳐읽기도 어렵다. 다른 사람들과 책을 같이 읽기로 한 독서모임을 하면서도, 그 모임 관련 책은 제대로 읽지도 못하고 줄곧 손정목 책만 붙들고 있으니 사람들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있다.


 


 

어쨌거나 이 책을 서울의 도시개발 과정이 그랬듯이 미친 듯이 불도저처럼 읽어가다가 지하철 개발 부분을 읽는 순간 생각나는 책이 하나 있었다. 도시계획에 관련해서 내가 읽은 책이 몇 권이나 있겠냐만은 그 중에서 박용남, <꿈의 도시 꾸리찌바>, 이후라는 책이 생각났다. 비슷한 시기에 다른 길을 걸은 두 개의 사례가 겹치는 순간이었다. 브라질의 도시 “꾸리찌바”는 1950년대부터 도시계획을 준비하여 1970년대에 지하철을 포기하고 도시의 사정에 맞는 버스 중심의 도시교통 시스템을 만든다.


 

“돈이 많이 들고 개발을 위한 개발만을 일삼는 도시계획은 바람직한 도시계획이 아니지요. 다른 도시들이 얼마 되지 않는 예산을 도로 건설과 확장에 쏟아 부을 때, 우리는 그 돈을 시민이 살기에 편하고 쾌적한 도시를 만드는 데 써왔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도로를 뚫는 대신에 기존의 도로공간을 재배분하여 경쟁력과 이용 편의도가 낮은 버스교통을 경쟁력도 높이고 이용하기에 편하도록 바꾸어 놓았지요.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하면 선진국의 도시들처럼 지하철을 꾸리지빠 시의 도로 상에 구축할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대중교통의 혁신을 이룩했습니다.

- <꿈의 도시 꾸리찌바>, p.62


 


 

이에 비해 서울은 어땠을까? 사실 단순비교하기는 어렵다. 서울은 그야말로 미친 도시였기 때문이다. 손정목의 다음과 같은 언급은 전후에 서울시의 행정을 담당하기 위해서는 미치지 않고서는 어렵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1966~1980년의 15년 동안 서울에는 정확히 489만 3499명의 인구가 늘었다. 15년 동안 하루 평균 894명의 인구가 새롭게 늘었다는 계산이다. 토요일도 일요일도 없이 매일 894명의 인구가 늘면 매일 224동의 주택을 새로 지어야 하고, 50명씩 타는 버스가 18대씩 늘어나야 하고, 매일 268톤의 수돗물이 더 생산 공급되어야 하고, 매일 1,340kg의 쓰레기가 더 증가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1>, p. 13


 


 

이렇게 미친 듯이 몰려드는 인구를 상대하면서, 도시계획을 고민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전쟁 이후에 아무 것도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시작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전쟁 이후 폐허가 된 도시 위에 새롭게 이상적인 도시계획을 왜 세우지 못했냐는 힐문에 손정목은 그 당시의 입장에서 다음과 같이 반문한다.


 

폐허가 된 서울을 이상적인 도시로 설계해달라.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예산은 하나도 없다. 시민들이 굶주려 세금을 낼 수 없고 미국을 비롯한 유엔 각국이 우리를 원조해 주고 있지만 그것은 거의가 군사원조이며, 민간원조는 겨우 굶어죽지 않게 식량과 의약품 약간씩을 가져다 줘서 겨우겨우 연명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돈이 거의 안 들고 그러면서 이상적인 도시를 계획해달라. 물론 당신과 당신네 팀에게 지불할 사례비도 없다. 계획기간은 3개월 이내로 해달라...(중략) 이렇게 요구했다가는 그들 모두가 당장에 “미쳤어”라고 벌컥 소리지를 것임은 너무나 당연하다.

 -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1>, p.91


 


 

이런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당연히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해도 모든 것을 상황 탓으로 돌리기에는 웬지 석연찮은 점들이 많이 있었다. 지하철을 개발하는 과정만 봐도 그 당시 군부독재 정권 하의 개발과정이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참고로 지금 각 지방도시, 부산, 대구, 인천, 등지의 『지하철 건설지』를 펴보면 거의 예외없이 기본 목표의 첫 번째가 경제성이고 두 번째가 안전성임을 알 수 있다. 경제성이란 말이 대단히 좋게 들리기는 하지만 바로 “값싼 공법을 채택하고 모든 재료는 싼값으로 구입하며, 공기를 단축하고 해서 되도록 더 싼값으로 건설한다”는 것이다.

 - <한국 도시 60년의 이야기 2>, p.63


 


 

이때 당시 왜 지하철을 싸게 만들 수밖에 없었는지는 그 당시 개발독재 시대 경제의 최고 실력자였던 경제 부총리가 지하철 건설을 반대했기 때문에 1호선부터 국고 보조금을 줄였고, 그것이 관행이 되어 지방 지하철 건설에까지 이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는 다들 알고 있는 대구 지하철 참사로 이어진다.


 

개발독재라는 것은 그 당시의 한가운데 있었던 지은이 손정목도 뼈저리게 통감하고 있지만, 무조건식 개발이 앞장선다. 시민들에게 물어보고 자시고 할 것 없이 필요하다는 것이 있으면 상부의 몇몇이서 계획을 짜고 독려하고, 아래 사람들은 그냥 시키는 대로만 하라는 식이다. 심지어 담당자들도 모른채 최고위층 몇몇이서 결정하는 방식이었다. 서울의 지하철도 중앙정보부장의 건의로 결정되었다니 말다한 셈이다. 그렇게 해서 지금의 서울이, 그리고 또 다른 도시들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버스를 타고 가는 일이 많았다. 버스를 한참 타고 가다가 책 속에 등장한 건물이나 지명들을 만날 때면 일단 책을 읽는 재미를 느꼈다. 하지만 그와 함께 책 속에 등장한 이 모든 지명과 건물들의 성립 과정을 되새기다보면, 내 삶의 가까이에 있는 것들이 송두리째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발 밑이 흔들리는 듯한 두려움을 느꼈다.


 


 

3.

그런데 이 두 권의 책을 비교하면서 나는 개발 독재를 옹호하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위에서 말했듯이 우리 사정에 잘 살기 위해서는 개발 독재는 어쩔 수가 없었다는 식의 논리를 세운다. 하지만 독재를 한 가운데서 수행했던 사람들의 입에서도 그건 좀 심했던 것이 아니냐는 말을 들을 수 있다. 물론 그들이 열심히 살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 삶을 이루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이 결국에는 근본부터 뿌리채 흔들리게 된다면, 그런 개발이 무슨 소용일까?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나는 오늘 꾸리찌바의 개발기를 다룬 책을 또 다시 꺼내 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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