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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07/11
    최명익의 <무성격자>에서
    김지씨
  2. 2005/05/06
    노래를 모으다...(1)
    김지씨
  3. 2005/04/24
    나는 왜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김지씨
  4. 2005/02/16
    루시퍼와 큰 타자 - <콘스탄틴>을 보고...(2)
    김지씨
  5. 2005/01/19
    씁쓸한 만남
    김지씨
  6. 2005/01/10
    끝없는 보고에 시달리다.
    김지씨
  7. 2005/01/08
    가족을 지키면 복을 준다고? 누가?
    김지씨
  8. 2005/01/08
    이문구에 대하여
    김지씨
  9. 2005/01/03
    내무교육지침서라...
    김지씨
  10. 2005/01/03
    드디어 시작이다.(1)
    김지씨

최명익의 <무성격자>에서

읽다가 섬뜩한 느낌이 들어 옮긴다. 어쩜 요즘 나랑 이렇게 비슷한 생활을 하고 있는지 정말 놀랄 따름이다. 70년의 시간격차 따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취하였던 이튿날 겨우 일과를 치르고 나서는 혼탁한 머리와 떨리는 다리로 번잡한 거리를 망령과 같이 방황하는 것이었다. 방황하던 길에 혹시 서점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그것은 학생 생활의 습관 중에 오직 남은 한 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그 습관은 회구적 감상으로 물들여진 것이다. 연구의 체계와 독서의 플랜을 흩트려버린 지 오랜 지금은 전과 같이 어떤 필요한 책을 찾으러 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망연히 들어선 시선은 높고 넓은 서가에 비즛이 들어찬 책 뒤 등에 클래식한 명조체의 활자와 금시에 먹물이 들을 듯이 새로운 감각의 육필 문자 위를 흘러 지나갈 뿐이다.

 

그같이 막연한 시간에 혹시 그전에 존경하고 사랑하던 반가운 사람이 신장한 전집이 보이면 한때 매혹하였던 계집의 체온 같은 감각적 회상을 느끼기도 하였다. 혹시 전에 본 문헌에서 저자의 이름만을 기억하던 신간을 뽑아들고 목차를 내려보기도 하였으나 자기와 그 책 사이를 이어가기에는 너무나 큰 미싱 링크가 있음을 발견할 뿐이었다. 그 책을 다시 제자리에 채우고 서가를 쳐다볼 때에는 술에 불은 지방 덩어리인 몸으로는 아무리 부딪쳐도 도저히 무너트릴 수 없는 장벽을 대한 듯이 답답함을 느꼈다.

 

그러나 한 걸음 물러서서 다시 바라보는 서가는 땀과 피의 입체인 피라미드나 만리장성의 위관을 보는 듯한 숭엄함과 기쁨을 느끼기도 하였다. 그리고 자기도 이 문화탑에 한 돌을 쌓아보겠다는 야심을 가졌던 것이 먼 옛날 일같이 회상되었다. 그러한 전날의 야심은 한 순간 찬란한 빛으로 밤하늘에 금 그었던 별불같이 사라지고만 듯하였다. 밤하늘에 금빛으로 그려졌던 별의 흐른 자취가 사라지면 우리의 눈은 그 자리에 검은 선을 보게 되고 그 검은 선마저 사라지면 부지중 한숨을 짓게 되는 것이다.

 

 

그저께 동네 서점에 들러 슬라보예 지젝의 신간들이 쏟아져 나온 것을 발견하고 한숨지었을 때 내 심정이 바로 이 느낌이다. 한때 지젝의 책들을 꼼꼼하게 따라 읽어보겠다고 거창하게 맘먹은 적이 있었으나, 지금은 단 한권의 책조차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다. 이 술에 불은 지방 덩어리인 몸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나... 가끔 들르는 서점 또한 사치스런 습관에 불과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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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모으다...

같이 근무하는 한 친구가 차를 샀다. 차에서 들을만한 노래가 없다고 해서 나보고 노래를 CD로 좀 구워달라고 한다. 그래서 이것저것 노래를 골라보았다. MP3로 다운받아 둔 노래가 별로 없어서 가지고 있던 CD를 복사하다보니 시간이 꽤 걸렸다. 이왕 시간이 많이 걸린 김에 그동안 내가 좋아했던 노래들을 한 번 모아보기로 했다. Favorite라는 이름의 폴더를 하나 만들어 그곳에 노래를 모아보니, 모아둔 한곡한곡마다 사연이 있음을 알게되었다.

 

다른 사람들도 다 마찬가지겠지만, 난 어떤 노래를 듣다보면 과거 어느 시절에 묻혀있던 한 순간이 불현듯 떠오르는 경험들을 한다. 예를 들어 난 심신의 <그대 슬픔까지 사랑해>라는 노래를 들으면 그 노래를 줄창 들었던 중학교 수학여행 때의 버스 안이 생각난다. 뿐만 아니라 강산에 <그래도 9월이다>라는 노래를 들으면 암울했던 2000년의 봄 그리고 여름이 생각난다. 실연의 상처로 자기혐오의 늪에 빠져서 매일매일을 술에 쪄들었던 그해 봄과 여름. 난 그래서 그해 9월을 그렇게 기다렸던 것 같다. "생각난다"라는 표현은 그렇게 정확하지 않다. 몸으로 느낀다고 할까. 난 강산에의 그 노래를 들을 때 그 노래를 듣던 과거의 그 시간의 경험이 그대로 되살아남을 느낀다.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어 뒤척거릴 때 느껴지던 자취방의 더러운 이불들의 촉감, 머리 맡에 놓아두고 마시던 이온 음료의 맛 등등.....<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한 장면과 흡사한 경험이랄까.

 

이런 면에서 Favorite 안에 모아놓은 노래들을 듣는 것은 결국 과거 기억의 한장면, 한장면을 되새기는 경험인 듯 싶다. 재미있는 건 살다보면 그 폴더 안에 새로운 곡들이 추가된다는 거다. 또 새로운 추억들이 생기고 그 추억만큼 노래도 늘어난다. 얼마 전에 임관파티를 준비하기 위해, 군악대에 저녁마다 들러서 후보생들과 함께 밴드 연습을 한 적이 있다. 훈련소라는 삭막한 환경 속에서 매일매일 밴드 연습을 하며, 후보생들과 함께 재미나는 시간을 보냈다. 그때 난 내가 <브레스트 오프> 에서 지휘자 역할을 했던 피트 포슬스웨이트가 된 듯 했다. 날 둘러싸고 있는 주변 환경은 날 슬프게 만들었지만, 밴드 연습을 하러가는 그 시간만은 나에게 행복감을 주었다. 매일매일 조금씩 후보생들의 연주가 그럴 듯해질 때마다 난 내가 직접 연주를 하는 것마냥 기분이 좋았다. 나중에 임관파티를 할 때 그 밴드가 다른 후보생들의 환호를 받을 때 난 나름대로 가슴이 벅찼다. 그때 후보생들과 함께 불렀던 노래가 윤도현의 <잊을께>였다. 

 

한 4년 전만 하더라도 난 윤도현을 열광적으로 좋아했었다. 대학 졸업할 때쯤에 맘 맞는 형들과 함께 자주 가던 라이브 술집을 빌려 졸업기념 공연을 했는데, 그때 불렀던 노래들이 주로 <가을 우체국 앞에서><너를 보내고> 등등의 노래들이었다. 하지만 요즘의 윤도현을 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왠지 가벼워진듯하고, 말랑말랑해진 듯도 하고... 2집 때의 치열함이 없다고나 할까. 그때는 좋아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지만, 요즘은 개나 소나 좋아하는 가수가 된 데 대한 아쉬움도 있고. 그래서 비교적 최근의 곡인 <잊을께>를 내가 좋아할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후보생들과 호흡을 같이 했던 기억들이 남아서 그런지, 그 노래를 듣고 있으니 왠지 가슴이 아렸다. 이미 임관해서 이곳을 떠나버린 그 녀석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해서.

 

그러고 보면 꼭 좋은 노래라고 해서 기억에 남는 것은 아닌가 보다. 별로 좋지 않은 노래라도 오래 기억이 나기도 한다. 지금 내가 자주 부르고 있는 군가들도 아마 나중에는 오래 기억에 남을 듯 싶다. 땀에 쩌들었던 빨간 모자와 입안을 금방 버석거리게 만드는 연병장에서 피어오르는 먼지들과 그리고 목이 쉴대로 쉬어 금방이라도 죽어갈 듯한 처절한 목소리로 귓청을 때리던 후보생들의 음성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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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요즈음은 새로운 보직을 시작해서 여러모로 심신이 피곤하다. 300명이 가까운 후보생들에게 40여 품목의 보급품을 나누어주는 일은 내 성격과 정확히 반대되는 일이다. 나야 항상 '사는데 뭘 그렇게 다 갖추어놓고 사나, 그냥 뭐 한 두개 없는 채로 살지 뭐...'라는 식의 적당주의로 일관해왔다. 하지만 이번 일은 치약하나 잘 못 세어도 결국 내 책임으로 돌아오는 일이라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분명히 정확하게 셌는데, 나누어주고 보면 왜 이렇게 항상 부족한지 알 수가 없다. 내일도 또 부족한 게 뭔지 어디에 숨었는지, 결국 그건 누구 탓인지를 밝히기 위해 동분서주해야한다. 이런 빌어먹을...

 

문제가 발생했다. 결국 몇 가지 보급품이 빵꾸가 났다. 제길... 보급품을 나누어주던 조교하나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 숫자가 안 맞다면서 나에게 그 책임을 다 덮어씌우려 했다. 물론 결국은 내 책임이 되겠지만, 그런 조교의 말투가 기분을 확 상하게 했다. 욱하는 마음에 뭐라고 한마디했다. 기분 더 잡쳤다.

 

군대에 들어와서 이런 빌어먹을 놈의 책임소재를 가리는 일에 진절머리가 난다. 누구의 책임인지를 서로서로 떠넘기려는 분위기. 나 또한 그런 일에 매우 익숙해져 있다. 내 책임은 절대 아니라는 식의 태도들. 그 과정에서 난 사소한 일에만 분개하다가 어리버리하게 책임을 다 뒤집어 쓰기 일쑤다. 이런 일이 반복되니 난 이곳의 일이 맞지 않음을 매번 느낀다.

 

물론 여기만 그렇겠는가. 어디 직장을 취직해도 이런 일은 마찬가지일거다.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항상 답답하다.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게 아니라고 했던가. 군대는 군대에만 있는게 아닌가 보다.

 

답답한 마음에 시집을 펴들었다. 김수영의 시 중에 뭐 '나는 왜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운운하는 시가 있다는게 떠올라 찾아 읽었다.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 김수영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30원을 받으러 세번씩 세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로

가로놓여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 14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스들과 스펀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릴 일이 있었다

너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펀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 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있다 절정 위에는 서있지

않고 암만 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장이에게

땅 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장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들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1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1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그러니까 나 또한 이렇게 옹졸하게, 별 다른 의미도 없이 반항한다. 결국 나 자신의 피곤함과 귀찮음과 몇 푼의 돈때문에 조그만 일에만 분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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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퍼와 큰 타자 - <콘스탄틴>을 보고...

시간을 때우기 위해 영화를 보는 것처럼 불쌍한 일도 없지만, 얼마 전 나는 정말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극장에 들어갔다. 사람으로 북적거렸다면 짜증마저 났을 터이지만, 몇 명 없는 사람으로 인해 모처럼 조용해진 극장을 위안삼아 걸려있는 여러 영화를 죽 훑어보았다. 오직 커다란 스크린에 어울릴 법한 영화를 보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콘스탄틴>이란 영화를 골랐다. 보고 난 뒤의 느낌은? 뭐 나름대로 시간을 보내기에는 나쁘지 않은 영화였다라고 할까. 영화 자체가 매우 훌륭하다거나, 뭐 배우가 멋있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난 영화를 보고 난 뒤에 위에서 말한 "뭐 나쁘지 않군"이라는 반응보다 더 흐뭇한 기분이 계속 남아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도대체 그 느낌이 뭘까라는 의문이 계속 남아 있었다. 

 

내 생각에 <콘스탄틴>은 기독교적인 선, 악 구도를 나름대로 재해석한 영화인 듯 싶었다. 하느님과 사탄이라는 절대선, 절대악 사이에서 인간은 그들의 영향력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단, 한 가지 단서가 달려있는데 저승세계의 선과 악은 그리스 신화의 신들이 했던 것처럼 직접 영향력을 행세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반드시 그들은 그들과 인간의 혼혈종을 통해서만 이승의 세계로 개입할 수 있었다. 이렇게 묘한 균형을 이루던 중, 사탄 즉 루시퍼의 아들이 하느님의 충복인 가브리엘과 손잡고 사탄의 눈을 속여 지상에 강림하려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가브리엘이 왜 인간 세계를 모두 지옥으로 만들어 버리려는 루시퍼의 아들에게 손을 내밀어 주었냐고? 인간은 고통이 심해질 수록 선한 본성이 드러나기 때문에 보다 심한 고통 속에 몰아넣어 인간의 선한 본성을 극대화시키겠다는 어이없는 착각을 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주인공인 퇴마사 키아누 리브스는 이 시도를 깨기 위해 자살을 시도해서 자신의 영혼을 호시탐탐 노리는 루시퍼를 불러내고, 그 찰나에 아들의 시도를 알게된 루시퍼는 말썽꾸러기 아들을 데리고 가버린다. 

 

뭐 이러저런 이야기를 다 빼고 대충 이런 이야기인데, 여기서 내가 제일 맘에 들었던 것은 루시퍼의 형상이다. 루시퍼는 배트맨 포에버에 나올 법한 짙은 화장을 하고, 흰색 양복을 쫙 빼입은 제비족처럼 차려입고 등장했던 것이다. 물론 말투는 리마리오를 빰칠 정도로 느끼하고...ㅋㅋㅋ 뿐만 아니라, 주인공이 희생을 통해 지옥에서 천당으로 방향을 급선회하자, 비겁하게 폐렴에 찌든 폐를 주물럭거려 그를 다시 살려낸다. 다시 살면서 나쁜 짓을 더해서 꼭 지옥으로 오라고 말이다. 영화 전체의 대전제를 구성하고 있는 한 축인 절대악, 그 절대악을 상징하는 인물이 이런 식으로 등장했을 때 난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에 계속 남아 있던 흐뭇함은 바로 이 루시퍼를 처음 보았을 때의 그 즐거움 때문이었을 거다.

 

그런데 오늘 라깡과 지젝에 관련된 글을 읽다가 난 이 루시퍼를 연상시키는 부분이 있었다. 그 부분은 다음과 같다.

 

 

"상징계에 의해 소외된 주체는 자신의 삶을 결정지은 대타자가 '정답'을 갖고 있다고 믿고 끊임없이 대타자에게서 그것을 찾으려 할 것이 아니라, 대타자도 주체가 찾는 '숨겨진 보물'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경험을 함으로써만 소외를 극복할 수 있다."

 

  홍준기, 지젝의 라캉 읽기 -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을 중심으로

 

 

라깡에 의하면 주체는 상징계에 의해 필연적으로 소외를 겪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상징계는 주체를 이러저한 주체로 미리 규정(호명)한다. 그러나 항상 그 규정은 어긋날 수밖에 없기에 그 결여가 소외로 경험된다. 그 소외를 벗어나려면? 먼저 환상효과를 노린다. 즉 상징계를 구성하는 대타자에 대한 환상을 품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 즐거운 해결책은 대타자 또한 결핍 덩어리임을 깨닫는 것이다. 거기서 주체는 집착에서 벗어나 "분리"된다.

 

선과 악이라는 절대적 대립 구도에 매달려, 끊임없이 한 쪽 편을 신성화하고 반대쪽 편은 배제하는 식으로 살아간다면 주체는 끊임없이 환상을 재생산하는데 집착할 수밖에 없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방방곡곡 외치고 다니는 전도사들처럼. 하지만 절대악이 위에서 말한 "루시퍼"처럼 결점가득한 모습으로 나타난다면 신성불변의 대립 구도의 한 축을 어이없이 무너지고 말 것이다. 그리스의 신들이 결점 투성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에 인간들이 보다 즐겁게 살 수 있었다는 생각도 들고.

 

대타자와 주체의 관계 문제는 비단 종교의 문제에 해당되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나 또한 군대라는 상징계 속에서 이미 군인 혹은 군인을 길러내는 훈육관이라는 위치에 호명되어 있기에 그 역할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군대라는 감시체계에 적응하지 못해, 군대라는 빅브라더 혹은 라깡식으로 말하자면 "대타자"가 끊임없이 나를 감시하고 있을 것이라는 강박관념에 시달렸었고, 군대로부터 소외되지 않기 위해 이상적인 군인을 길러내는 훈육관의 역할이라는 환상과 그것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현실 사이에서 여러 가지 심리적 압박감을 느껴왔었기 때문이다. 이제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그런 심리적 압박감은 교관으로 생활하는데도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환상에서 벗어나 분리될 때 오히려 이곳에서의 일도 잘 풀리는 것 같기고 하고.

    

아무튼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라깡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내가 쉬고 있을 때, 경쟁자의 책장은 넘어가고 있다"가 아니라 "내가 쉬고 있을 때, 경쟁자도 쉬거나 딴 짓을 하고 있다"라는 즐거운 사고방식이 아닐까. 어쨌거나 이런 생각과 더불어 <콘스탄틴>에 등장한 루시퍼는 나에게 즐거운 기억으로 한동안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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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한 만남

요즘 경기가 워낙 좋지 않아서인지 군대에 남아있으려고 하는 사람이 많다. 옛날에는 억지로 말뚝을 박게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새는 나가라고 등을 떠밀었으면 떠밀었지 제대 말년의 장교나 부사관들을 남겨두려고 애쓰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 제대가 가까워 오면 사람들은 너도 나도 복무기한을 연장하려고 신청하며, 보다 더 길게 군 생활을 지속하기 위하여 장기복무를 신청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성공률은 날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장기복무하기가 어려워졌다는 현상과 더불어 불경기로 인해 찾아온 또 한 가지 현상은 군에 입대하는 여성들의 숫자도 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군대의 민주화와 함께 남녀평등 바람이 군에도 불어와 차츰 군 내 여군의 숫자를 늘이는 추세도 추세지만, 여러 가지로 취업이 힘든 여성들은 장기적으로 일자리를 보장해줄 수 있는 군으로 눈을 돌리는것 같다. 사실 군인 또한 공무원이니 고용의 안정성 측면으로 따지면다를 점은 하나도 없다.

내가 맡고 있는 소대에도 여자 후보생이 몇 명 있다. 나는 그들을 담당하고 있다는 이유로 이런 저런 신상명세서를 들추어볼 권리를 가지고 있다.(물론 남자 후보생들의 신상명세서도 마찬가지의 운명을 겪는다) 나도 인간인지라 남들의 과거를 살펴보는 일에 흥미가 없을 리 없다. 흥미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소대원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으라는 유,무언의 압력이 들어오기 때문에 좋든 싫든 난 그네들에 대한 신상명세서 및 여러 가지 자료들을 뒤적거려야만 한다. 이번 차수에도 어김없이 난 신상명세서를 펼쳐보게 되었다. 그렇게 신상을 살피다 보면 가끔 생각지도 못한 인연들을 만나게 되는 수가 있다. 중학교 후배라거나, 혹은 내가 돈을 벌기 위해 나가던 학원의 학생을 발견하게 될 때, 난 아무튼 세상이 별로 넓지 않다는 삶의 관용구들을 떠올릴 수 있게 된다. 이번에도 또한 마찬가지 가냘픈 삶의 인연을 하나 발견했다. 근데 이번 인연은 약간은 씁쓸한 기분이 들게 하는 인연이었다.

 

난 기본적으로 교사가 되고 싶다는 희망을 마음 한켠에 가지고 사는 사람이다. 무작정 교사가 되는 것만이 내 희망은 아니다. 물론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 좋은 선생님이라고 하면 너무 막연하니까, 일종의 역할 모델을 하나 설정하고 살아야 한다. 그래서 나에게도 그런 역할 모델이 되는 좋은 선생님들이 몇 분 있었다. 그 중에서도 광동고등학교에 있는 송승훈 선생님, 즉 승훈이 형(^^)은 대학시절부터 쭉 비교적 가까이에서 지켜본 좋은 선생님이다. 대학 다닐 때는 선,후배 관계로 학회를 통해 이것저것 많이 배우며 살았고, 지금은 교직에 진출해서 승훈이 형이 펼친 다양한 활동들을 직,간접적으로 접하면서 나중에 나도 이러저러한 활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데 많은 도움을 얻고 있다. 학생들에게 책을 읽히고, 글을 쓰게 만들고, 그것을 통해 삶을 가꾸게 하는 형의 노력들은, 책을 좋아만 하고 그것을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해 무지한 나에게 깨달음을 줄 때가 많다. 언젠가 학교 근처에 있는 형의 집에 놀러가서 그때 학생들이 쓴 글들을 읽어보고 감탄한 적도 있었다. 형이 끌어낸 학생들 마음 속의 숨은 말들이 날 놀라게 만들었다.  

 

이번에 여자 후보생 신상명세서를 뒤지다 보니 그 승훈이 형이 있던 광동고등학교 졸업생이 한 명 있음을 발견했다. 난 송승훈 선생님을 아느냐고 물었다.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한 40명 쯤 되는 인원의 모임에서는 어쨌거나 이런 식의 인연을 있기 마련이구나라고 난 생각하고 지나쳤다. 그런데 기분이 영 찜찜했다. 승훈이 형이 보다 넓게 사고하고, 모든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고 비판하며, 그것을 글로 표현하는 방법들을 가르쳤을텐데, 난 그와 반대로 모든 사고를 정지시키고, 복종하게 하며, 로봇처럼 움직이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 내 기분을 그렇게 다운시킨 것이다. 내가 이런 교육방식을 선호한다면 모르겠지만, 나 또한 누구보다도 자유롭게 사고하고,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교사가 되고 싶기에 난 더욱 우울해졌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인연이 있겠지만 이런 식의 인연을 악연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물론 군대에서의 훈련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믿는다. 그리고 지금 내 모습을 보고, 좋아하고 따르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지금 연기하고 있는 역할로 만나고 있는 인연들은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아닌 듯 싶다. 그래서 이와 같은 인연은 나를 더욱 씁쓸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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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보고에 시달리다.

어제 당직을 섰다. 당직이 끝나면 당연히 보고를 하게 된다. 내 위로 있는 줄줄이 늘어선 상관들에게 그 전날 일어났던 상황들을 난 꼬치꼬치 보고해야 한다.

 

그들은 나에게 꼼꼼하게 되묻는다. "얘는 어디가 아프지? 그리고 어제 어떤 시설물을 어떻게 고친거야?" 내가 대답을 조금이라고 허술하게 한다치면 대번에 욕이 날아온다. 심지어 난 내가 근무하는 곳의 창문 개수까지도 세어가지고 들어간다.

 

난 오늘도 보고를 마치고 나오면서 생각한다. "왜 이런 일을 해야하지?" 도대체 궁금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아니 간 밤에 일어난 모든 일을 다 알아야 하나? 그냥 제발 내버려두면 안되나? 

 

혼자서 좀 곰곰히 생각해본다. 아마도 이건 상하관계로 구성된 조직의 특성일거라고.가장 위에 서 있는 한 사람의 시선 안에 그의 모든 조직이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그 조직은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과 자기가 전혀 관여하지 않은 일임에도 조직을 책임지고 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그 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깨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따위의 감정들로 엉켜진 끝없는 층층구조.

 

그러다 갑자기 무서워진다. 나도 이런 구조에 어느덧 익숙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모든 일을 내가 맡아서 직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고생만 직싸게 했었다. 이제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어느덧 시키는 것이 더욱 편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난 이제 내 아래에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에게 일을 떠맡기고

감시하는데 더 익숙해져 있다. 아니 어쩌면 더 정교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남들이 하지 않는 수많은 장부들을 만들어 떠 넘기고, 엑셀을 이용하여 그 결과들을 통합해서,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 또한 "관리"라는 이름의 허울 좋은 떠넘김에 맛을 들이고 말았다.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모임을 만들 때, 사람들은 그 전까지 익숙한 방식으로 모임을 구성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나에게 익숙한 방식은 바로 이러한 방식이 되고 말았다. 과거에 학회나 자발적 모임에서 겪었던 경험들은 차츰 사라지게 되었다. 이것은 군대를 겪은 한국 남성들의 비슷한 경험이라는 극단적인 일반화까지도 머릿 속에 떠오른다.

 

언젠가 에릭 홉스봄의 <극단의 시대>를 읽었을 때의 기억이 난다. 자본주의에 대항해서 새로운 사회를 만들려 했던 사람들이 도대체 왜 그 자본주의보다 어쩌면 더 억압스러운 사회를 만들어 버렸냐는 딜레마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었다. 그때 누군지 이름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당시 소련 사회를 만들었던 주역 중의 한 사람이 임종할 때 했던 말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는 그 당시 그것밖에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수 년에 걸친 전쟁끝에 새로운 사회를 만들 기회가 주어졌지만, 그들이 알고 있던 방식은 전시동원체제밖에 없었다고...

 

나 또한 그렇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이곳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만들 기회가 주어지더라도 결국엔 익숙한 비극적 방식대로 삶을 꾸릴 수밖에 없는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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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지키면 복을 준다고? 누가?

좀 오래된 영화이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 중에 하나는 <귀여운 여인>이다. 그 영화를 보고 있으면, 행운이라고 하나도 없을 것 같은 세상에서 복권이나 하나 당첨된 듯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왕자건 공주건 누군가가 다가와 나에게 행복을 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는 사람들의 기분을 잠시나마 즐겁게 해준다. 그런데 같은 이유로 나는 그 영화를 좋아하는 것만큼이나 또 싫어한다. 모든 사람에게 복권에 당첨될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세상에 가난한 사람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현실의 완강함을 에둘러서 무마시켜 버리는 영화의 술책이 얄밉다.
"신동엽의 러브하우스"를 볼 때에도 <귀여운 여인>을 볼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뜻밖의 행운에 감동하는 모습을 볼 때, 나의 눈시울은 뜨끈해진다. '아! 착하게 살면 복을 받는구나...'라는 뒤늦은 깨달음도 함께한다. 그런데 말이다. 눈시울이 뜨끈해지는 것까지는 좋지만, 보고 난 뒤에 찝찝한 맛이 남는 것도 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착한 사람들이 복을 받는다'는 만고불변의 진리에 무슨 찝찝함이 있는가 하고 자문해본다. 내가 나쁜 놈이라서 그런가?
일단은 내가 떨떠름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떤 사람들이 "러브하우스"의 혜택을 얻느냐를 생각해보기 때문이다. 가만히 살펴보면 선택되는 집은 대부분의 경우 아주 집안 식구가 많거나, 장애우가 있거나 해서 정상적인 가정을 이루기가 힘든 상황을 가진 가족이 대부분이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따뜻한 사랑으로 힘들지만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신동엽이 찾아가 복을 주게 된다. 물론 집의 구조가 형편없는 곳이 선택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전 집의 열악한 상황은 바뀐 집의 삐까뻔쩍함에 대비되어 그들에게 주어진 행복을 더욱 빛나게 하는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건 말이다. 한 마디로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가족을 지키면 복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어도 가족을 지키기만 하면 복을 줄까? 과연 누가 줄까? "러브하우스"에 따르면 이 땅 수백만의 가족들 중에 이렇게 복을 받는 이들은 일주일에 하나다. 가족으로 인해 벌어지는 모든 문제들은 일주일에 한 번 보여지는 그들의 행복한 웃음 속으로 묻혀버리고 만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을 더 짜증나게 하는 것이 있다. 이른바 소년 소녀 가장들이 주로 많이 나오는 프로그램, 즉 불행한 사람들의 삶을 다큐멘터리 식으로 엮은 프로그램과 이 "러브하우스"를 비교해볼 때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볼 때 시청자들은 불행한 그들을 동정한다. 하지만 그 속에는 '휴∼ 나보다 더 못한 사람들도 있구만' 하는 안도의 한숨이 배어있음을 무시할 수 없다. 이건 또 무슨 얘긴가? "러브하우스"가 보여주는 행복한 웃음은 가족을 유지한 자들에 대한 행복한 보상으로, 소년, 소녀 가장들의 불행은 결여된 가족의 비극성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서로서로 잘 엮어져 있다.
내 생각이 이러하니 신동엽이 곱게 보일리 없다. 대마초 사건도 있고 해서 그런지 모른다. 대마초를 피웠으면 피웠지, 왜 이런 프로그램으로 이미지 쇄신을 하려하는지 짜증스럽기도 하다. 얼마 전에 구속된 모 대학 미대교수처럼 당당히 대마초할 권리를 달라고 하면 안되나? 내가 신동엽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거다. "니가 무슨 권리로 행복을 주니? 응?"

(2003.03.31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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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구에 대하여

얼마 전 여자 친구로부터 이문구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전해듯고 약간 쓸쓸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대학을 막 들어왔을 때 이문구의 <관촌수필>을 접하고 문학이 사람을 이렇게 감동시킬 수도 있구나라고 생각했었다. 의뭉스러운 사투리로 자기 주변의 사람들 이야기를 풀어내는 그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삭막한 공업도시에서 살아온 나에게 입담 좋은 아저씨 한 분이 생긴 것 같아 마음이 푸근해지곤 했었다. 그 이후로 나는 이문구를 언제라도 찾아뵐 수 있는 시골에 계신 아저씨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기에 이문구가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는 소식은 나에게 고향이 사라졌다는 느낌을 주었다.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에서 극적으로 나타나 있는 고향상실의 슬픔이 나에게도 간접 체험된 것이다.

물론 동인문학상을 둘러싸고 전개된 최근 그의 행적은 나에게 또 하나의 슬픔을 주긴 하였다. 하지만 나는 그에 대해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실망도 하지 않았다. 나는 <우리동네>나 <관촌수필>에서 농촌 문제에 대한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발견하기보다는 주변 사람들에 대한 푸근한 관심을 발견하였고, 그것을 그의 세계관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나는 단지 그를 시골에 계신 맘씨좋은 아저씨 정도로 판단하고 있었을 뿐이다. 맘씨 좋다는 것과 정치적으로 올바른 판단을 내린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가 아닐까. 그래서 나는 그의 이름 앞에 붙은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장이라는 명칭은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그에게는 전근대적 사회가 가지고 있었던 특유의 단어들, 즉 "인심", "후덕", "의리" 등의 단어가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스승인 김동리를 끝까지 저버릴 수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와 같은 스승을 어찌 버릴 수 있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정치적 상황은 이런 사람들까지 저항세력으로 만들어 버렸던 것 같다. 하지만 그에게 이런 짐은 너무 무거운 것이 아니었을까? 문학하는 사람들은 현실을 바꾸는 실천이 본업이 아니다. 만약 행복하게도 문학하는 것과 실천하는 것이 일치할 수 있다면 그것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 두 가지가 배치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소설가는 소설쓰기로 돌아설 수밖에 없다.

이런 생각들을 하다보면 문학에 과도하게 사회적인 기대를 부여하는 시선들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느끼게 된다. 문학하는 사람들은 결국 문학에 대해서만 날카롭고, 명민하다. 그리고 문학적 실천에만 능동적인 경우가 많다. 문학은 이제 문학이라는 좁은 공간 속으로 숨어들고 있을 뿐이다. 이문구의 죽음을 보며 문학에 대한 사회적인 짐들은 이제 벗겨버려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문학은 이제 문학일 뿐이다.(2003.04.01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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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무교육지침서라...

내가 근무하는 곳은 군인을 만드는 곳이다.

빨간 모자가 땀에 절을 때까지 뛰어다니고,

그 빨간 모자가 땀에 절었다고 욕을 먹는 곳에서 난 매일매일 근무하고 있다.

군대갔다 온 사람들은 잘 알거다. 빨간 모자들이 어떤 인간들인지.

 

요즘 내가 주로 하고 있는 일은 "내무교육지침서"라는 책을 가르치는 일이다.

그 책을 난 농담삼아 "'감시와 처벌'의 부록"이라고 부른다.

그 책은 신체를 어떻게 규율해야하는가를 세세하게 잘 써놓은 책이다.

내무실에 들어와서부터 나갈때까지의 모든 행위를 센티미터까지 규정한 책.

그런 책을 매일 난 가르치고 있다. 시범까지 보여가면서...

 

거리를 자연스럽게 걷고 있을 때도 

내 팔은 앞으로 45도, 뒤로 15도 이상 뻗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매일매일 내 몸은 규율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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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시작이다.

그렇게 많은 구박을 받고서 나도 이런걸 하나 만들었다.

진주라는 컴컴한 곰굴 속에서 한 줄기 광명을 보았다고나 할까?

그래도 난 인간이 되기 위해서 더 많은 쑥과 마늘을 먹어야 한다.

매일매일 날 곰으로 만드는,

아니 곰보다 더 무서운 마귀로 만들어 가는 일과를 견디기 위해,

그리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

난 이 곰굴 속에서 웹 상의 여러 사람들의 생각을 씹어 삼키며

그 쓰디씀을 감내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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