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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지키면 복을 준다고? 누가?

좀 오래된 영화이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 중에 하나는 <귀여운 여인>이다. 그 영화를 보고 있으면, 행운이라고 하나도 없을 것 같은 세상에서 복권이나 하나 당첨된 듯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왕자건 공주건 누군가가 다가와 나에게 행복을 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는 사람들의 기분을 잠시나마 즐겁게 해준다. 그런데 같은 이유로 나는 그 영화를 좋아하는 것만큼이나 또 싫어한다. 모든 사람에게 복권에 당첨될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세상에 가난한 사람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현실의 완강함을 에둘러서 무마시켜 버리는 영화의 술책이 얄밉다.
"신동엽의 러브하우스"를 볼 때에도 <귀여운 여인>을 볼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뜻밖의 행운에 감동하는 모습을 볼 때, 나의 눈시울은 뜨끈해진다. '아! 착하게 살면 복을 받는구나...'라는 뒤늦은 깨달음도 함께한다. 그런데 말이다. 눈시울이 뜨끈해지는 것까지는 좋지만, 보고 난 뒤에 찝찝한 맛이 남는 것도 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착한 사람들이 복을 받는다'는 만고불변의 진리에 무슨 찝찝함이 있는가 하고 자문해본다. 내가 나쁜 놈이라서 그런가?
일단은 내가 떨떠름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떤 사람들이 "러브하우스"의 혜택을 얻느냐를 생각해보기 때문이다. 가만히 살펴보면 선택되는 집은 대부분의 경우 아주 집안 식구가 많거나, 장애우가 있거나 해서 정상적인 가정을 이루기가 힘든 상황을 가진 가족이 대부분이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따뜻한 사랑으로 힘들지만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신동엽이 찾아가 복을 주게 된다. 물론 집의 구조가 형편없는 곳이 선택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전 집의 열악한 상황은 바뀐 집의 삐까뻔쩍함에 대비되어 그들에게 주어진 행복을 더욱 빛나게 하는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건 말이다. 한 마디로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가족을 지키면 복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어도 가족을 지키기만 하면 복을 줄까? 과연 누가 줄까? "러브하우스"에 따르면 이 땅 수백만의 가족들 중에 이렇게 복을 받는 이들은 일주일에 하나다. 가족으로 인해 벌어지는 모든 문제들은 일주일에 한 번 보여지는 그들의 행복한 웃음 속으로 묻혀버리고 만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을 더 짜증나게 하는 것이 있다. 이른바 소년 소녀 가장들이 주로 많이 나오는 프로그램, 즉 불행한 사람들의 삶을 다큐멘터리 식으로 엮은 프로그램과 이 "러브하우스"를 비교해볼 때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볼 때 시청자들은 불행한 그들을 동정한다. 하지만 그 속에는 '휴∼ 나보다 더 못한 사람들도 있구만' 하는 안도의 한숨이 배어있음을 무시할 수 없다. 이건 또 무슨 얘긴가? "러브하우스"가 보여주는 행복한 웃음은 가족을 유지한 자들에 대한 행복한 보상으로, 소년, 소녀 가장들의 불행은 결여된 가족의 비극성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서로서로 잘 엮어져 있다.
내 생각이 이러하니 신동엽이 곱게 보일리 없다. 대마초 사건도 있고 해서 그런지 모른다. 대마초를 피웠으면 피웠지, 왜 이런 프로그램으로 이미지 쇄신을 하려하는지 짜증스럽기도 하다. 얼마 전에 구속된 모 대학 미대교수처럼 당당히 대마초할 권리를 달라고 하면 안되나? 내가 신동엽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거다. "니가 무슨 권리로 행복을 주니? 응?"

(2003.03.31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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