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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자 룩셈부르크

제6회 여성영화제 상영작이다.

마그레테 폰 트로타 감독 특별전 형식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 중 한 작품이었는데, 보는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책으로만 읽었던 로자 룩셈부르크의 일생을 영상으로 본다는 기대감을 안고 본 작품이었는데, 장면 장면마다 왜 이리 가슴이 불편한지 ...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가 단병호씨를 인터뷰하다가 그의 나이보다 팍싹 늙어보이는 외모에 불편함을 느꼈다고 썼는데, 오늘 본 로자 룩셈부르크가 내게 그랬다.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게 되면서 생각도 많이 변화하기도 했고, 나름대로 나 자신을 합리적인 사민주의자로 규정하곤 했는데, 대학 때 읽었던 맑스를 생각해 보면 왜 이리 창피하고도 답답하냔 말이다.

 

암튼, 영화에는 당시 맑시즘의 교황이라고 일컬어지던 카우츠키와, 베벨, 베른슈타인, 클라라 제트킨을 볼 수 있고, 리프크네흐트의 공원연설장면도 등장한다. 당시의 사진과 비슷한 외모의 배우들을 기용하고, 당시 연설장면을 재연한 것만 봐도 감독이 당시상황의 고증에 상당히 집착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가레테 폰 트로타 감독의 변 : 내 기억으로 1968년은 우리 모두가 정치적으로 긴장했을 때였다. 나는 그 때 로자 룩셈부르크의 책인 「사회민주주의의 위기와 개혁 또는 혁명」을 읽고 있었다. 나는 그 글 뒤에 숨어있는 여성을 생각하며 언젠가 그녀의 일생을 영화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또한 나는 로자 룩셈부르크와 레오 요기헤스의 관계를 알고 있었으며, 로자의 옥중 서신을 통해 그녀가 정치적 활동을 하고 있지만 여성으로서의 감성 또한 잃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2,500통의 서한을 썼고, 이 편지들은 영화를 만드는데 최고의 자료가 되었다. 서한들은 그녀가 얼마나 감성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했으며 따뜻한 여인인지, 그리고 동시에 얼마나 역동적이고 전투심이 넘쳤는지도 보여준다.
로자는 정말 완벽할만큼 선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인간보다 자연에게 더욱 가까운 ‘유대감’을 느꼈다. 그녀는 문학과 음악, 미술과 식물학(사실 식물학에 대해선 전문가였다), 지질학에 대해 관심이 높아 촘촘하고 깔끔한 글씨로 공책 가득 메모를 하곤했다. 그녀는 언제나 배우는 자세를 잃지 않았으며, 무슨 일을 하든 열정을 가지고 행했다. 그녀는 자신의 불행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녀 특유의 발랄함과 인내심으로 친구들을 격려하고 위로했다.
로자 룩셈부르크에 관해 모은 자료들이 너무 많아서 두 편의 영화를 더 찍어도 될 정도였다. 그녀는 평생을 바쳐 연구해도 아깝지 않을 여성이었다. 몇몇 역사가들은 내 영화가 매우 부족하다고 말한다. 나는 역사물을 만들거나 로자의 완벽한 초상을 그리는게 목표가 아니었다. 나의 영화로 인해 로자 룩셈부르크 대해 알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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