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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오카 세이슈의 아내 - 마스무라 야스조(1967)

 

이번 6회 여성영화제 상영작이다.

 

60년대에 만들어진 영화라고 믿겨지지 않을만큼 현재의 시대상황을 잘 반영하고 있으며, 영화 중간중간에 삽입된 유머러스한 부분도 현재의 관객들에게 무난하게 받아들여지는 재미있는 영화다.

 

영화의 무대는 18세기 말의 일본으로 화타와 같은 명의를 꿈꾸는 의사 하나오카 세이슈와 그의 아내 카에, 시어머니 오츠기가 영화를 끌어가는 주인공이다. 카에는 어린 시절부터 사모했던 하나오카 가문의 오츠기를 사모하여 그의 며느리로 들어간다. 시어머니 오츠기는 인자하고 현숙한 부인이지만(그리고 카에도 처음에는 그런 줄로만 알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오츠기의 아들과 가부장제적 질서에 대한 집착은 카에에게 당황스럽게 비춰졌다.

 

세이슈가 에도에서 화란의 의술을 배우고 돌아오는 장면에서 보이듯이 극중의 여성들은 세이슈의 세속적 성공을 위한 도구다. 어머니 오츠기, 아내 카에, 그리고 결혼하지 않은 두 여동생들 모두 세이슈를 위해 가사노동과 세이슈의 에도유학비 마련을 위해 매진한다. 특히 오츠기와 카에는 자신을 스스로 착취하고 파괴하는 정도를 자신의 세이슈에 대한 사랑의 강도를 측정하는 바로미터로 삼으면서, 서로에 대해 우위를 점하려고 경쟁한다. 이들의 경쟁은 세이슈가 만든 마취약의 최종실험을 위해 자원을 하는데서 정점에 달한다.

 

외과수술을 위해서는 전신마취를 해야하는데 당시에는 환자들이 수술을 고통을 잊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마취약이 존재하지 않았고, 전신마취만 가능하다면 나름의 멸균법을 통해 외과수술을 해서 많은 생명을 구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네덜란드의 의술을 접했던 세이슈의 생각이었던 것이다. 서로 자신을 실험대상으로 삼아달라고 애원하자 세이슈는 오츠기와 카에 모두를 대상으로 실험을 하여 마침내 전신마취제 개발에 성공하고 세계최초의 마취수술에 성공한다. 그러나 실험과정에서 마취약의 부작용으로 인해 카에는 실명을 하게 되고, 아들과 며느리에 의해 자신이 속은 것을 안 오츠기는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난다.

 

한편, 세이슈는 당대의 명 외과의로 승승장구하여 부와 명예를 거머쥐게 되고, 결과적으로 마취약 개발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카에는 뭇 사람들의 존경을 받게 된다. 감독의 생각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은 세이슈의 누이동생이 종양으로 죽는 장면인데, 자발적으로 자신을 파괴해가며 가부장제적 질서에 경쟁적으로 순응하는 여성들의 어리석음을 여성(세이슈의 누이동생)의 입을 빌려 통렬하게 비판한다.

 

아멜리 노통은 그의 소설 [사랑의 파괴]에서 사랑을 자발적인 자기파괴과정으로 그려내고 있다. 어떤 인격적 실체에 대한 비합리적(?) 끌림으로 인해 가학과 피학의 행위가 발생하게 된다고 말이다. 물론 노통의 소설에서는 나와 엘레나라는 두 여성이 등장하고, 그러한 자기파괴과정의 수혜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모호하게 처리되고 있지만, 이 영화의 감독 마스무라 야스조는 가부장제와 그 안에서 경쟁적으로 발생하는 자기파괴과정의 수혜자가 결국 남성임을 분명하게 지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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