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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혁명은 TV에 나오지 않는다

혁명은 TV에 나오지 않는다 Revolution will not be televised
 미디어

기관지노힘  제47호
김명준 (노동자의 힘 회원)

p54_1.jpg p54_1.jpg(67 KB)


혁명은 TV에 나오지 않는다
Revolution will not be televised


2003, 아일랜드, 74분, 킴 바틀리/돈챠 오브리에인
2003, Ireland, 74min, Kim Bartley and Donncha 'Briain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그래, 바꿀 수는 있다. 다만 바꿔내기가 쉽지 않고, 지켜내기란 더욱 어려울 뿐이다. 미국의 텃밭 라틴 아메리카에서 베네수엘라 민중들은 바로 지금 그 힘겨운 변혁의 시기를 거치고 있다. 지난 제7회 서울 국제 노동영화제에서 소개된 <혁명은 TV에 나오지 않는다>는 이 베네수엘라를 무대로 차베스라는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를 주인공으로 삼아서, 혁명과 반혁명, 정치투쟁과 미디어, 군부와 계급투쟁의 문제를 정면에서 제기하는 다큐멘터리다. (필자의 시각으로는) 작년 우리나라에 소개된 어떤 영화보다도 역동적이며 극적이다.
사실, 영화의 출발은 원래 소박한 것이었다. 아일랜드의 두 다큐멘터리 감독은 차베스라는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에 대한 인물 다큐멘터리를 찍을 생각으로 베네수엘라로 향했다. 하지만 2002년 4월11일, 우연히도 터져 버린 쿠데타와 그에 대항한 민중의 봉기는 작품의 성격을 완전히 뒤바꿔버렸으며, 쿠데타 직전의 7개월과 쿠데타 이후 48시간만에 이루어진 드라마틱한 복권과정은 혁명의 연대기로 재탄생하게 된 것이다. 특히, 상업방송이 총격사건 현장의 상황을 철저하게 왜곡보도하며 기득권을 대변하는 장면, 쿠데타 세력이 정권을 장악한 직후 대통령 관저에 모여있을 때 대통령궁 경호를 맡은 특수부대원들이 민중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총부리를 돌리는 장면 등은 정말 충격적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세계 각국에서 이구동성으로 격찬을 받았다. "두려움을 모르는 영화제작자가 정확한 시간에 정확한 장소에서 만들어낸 모범적인 작품이며, 각각의 시퀀스들은 강렬한 긴장과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시네마 베리떼이다."(버라이어티, 2003년 7월) 그 결과,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작품은 TV에 나오지 않았던 혁명을 TV로 진출시키는데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 지금까지 이 작품은 급진적 색채가 진하게 배어있는 작품치고는 보기 드물게도 BBC, ZDF(독일), Arte(프랑스/독일), NPS(네덜란드) 등 세계 각국의 주류 방송 채널에서 방영되었으며, 베네수엘라 현지에서는 올해 4월에 상영되었다.
하지만, 이 예기치 않은 성공은 바로 그 성공 때문에 격렬한 반발과 증오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차베스의 변혁에 저항하는 기득권 세력과 그 동조자들은 이 작품을 묻어버리기 위해 전세계적인 캠페인을 벌이고 있으며, 그 압력은 이메일의 발송 정도에 그치지 않고 있다. 얼마 전 캐나다에서 있었던 앰네스티 영화제에서 이 작품은 상영작의 하나로 선정되었다가 영화제 직전 갑작스럽게 최종 상영작 명단에서 탈락되었다. 반대파들은 이 상영 취소가 자신들의 비판이 정당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증거라고 환호했지만, 사정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상영 프로그램을 확정한 이후, 앰네스티 본부는 베네수엘라의 앰네스티 지부로부터 심각한 내용의 메시지를 받게 된다. 그것은, 만일 이 작품이 상영될 경우 베네수엘라 앰네스티 지부를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격렬한 투쟁이 진행중인 - 그래서 차베스 정부의 평화적인 대응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죽고 있는 - 베네수엘라에서 이 협박은 충분히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보였고, 결국 앰네스티는 오랜 고민 끝에 감독의 양해를 구하고 상영을 취소하기에 이른다.
정말, 혁명이 TV에 나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진행중인 혁명이라면 더욱 그렇다. 격렬한 사회적 격변기를 담아낸 작품은 그것이 담아내는 대상만큼이나 격렬한 투쟁의 한가운데에 놓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디어는 분명 전쟁터이다.
차베스 정부도, 그리고 베네수엘라의 민중도 바로 그런 현실인식에 기초해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수개월 전 차베스 정부는 3백만 달러를 공동체 미디어에 대한 지원금으로 내놓았다. (사실, 쿠데타를 막아내는 과정에서 베네주엘라의 독립 매체인 공동체 TV는 큰 역할을 했고, 당시 공동체 TV가 기록한 화면들은 <혁명은 TV에 나오지 않는다>에서 사용되기도 했다.) 그리고 유력한 대안적 매체인 인터넷을 활용한 비상업적 미디어의 활동도 서서히 힘을 얻어가고 있다.
과연 이러한 노력들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보수파들의 쿠데타 시도와 일상적인 사보타지를 얼마나 막아낼 수 있을지는 아직 판단하기 힘들다. 다만, 미디어가 얼마나 사회적 변혁의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그러기에 미디어에 대한 총체적인 전략과 실질적인 투자가 얼마나 필요한가를, <혁명은 TV에 나오지 않는다>는 입증한다.
덧붙여 또 한가지 중요한 초점은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있는 한국의 미디어 운동이 어떻게 베네수엘라로부터 교훈을 얻고, 거꾸로 지난 20여 년의 우리 경험에 기초해서 어떤 비판적 지원을 제공할 수 있을지, 그래서 그 과정에서 어떻게 국제적 연대를 발전시킬 것인지의 문제이다. 세계화의 시대에, 한 나라에서 고립적으로 진행되는 사회적 변혁이 얼마나 쉽게 붕괴되고 심지어 역사에서 지워지기까지 하는지, 우리는 지난 20세기 내내 지겹도록 경험해왔기 때문이다.

* 추신: 한가지 아쉬운 점은 아직 이 작품이 국내에서 배급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어쩌면 1월31일 서울 광화문의 영상미디어센터에서 저녁 6시에 개최되는 서울국제노동영화제 첫 번째 월례 정기 상영회가, 한국에서 이 작품을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박스))

감독: 킴 바틀리 / 돈챠 오브리에인
킴 바틀리는 주로 아프리카와 남미의 위기 혹은 갈등 상황을 소재로 국제기구들을 위해 단편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온 여성 감독이다. 돈챠 오브리에인은 최근 1년여에 걸쳐 성직자가 되기 위한 교육 과정에 참여한 세 명의 청년들을 소재로 한 작품 <신학교>를 완성한 바 있다. 그는 최근 아일랜드 출신의 극지 탐험가 톰 크린을 소재로 한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베네주엘라의 혁명과 반혁명
세계 4위의 석유수출국이며 미국의 주요 석유수입국 중 하나인 베네수엘라에서, 민주적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된 우고 차베스는 부정부패를 종식시키고 국민의 80%에 달하는 빈곤층에게 석유 이익을 재분배할 것을 약속했다. 그의 약속은 기득권층과 관료적 노조집단에 대한 선전포고를 의미했고 그 결과 차베스는 대통령이 된 첫날부터 베네수엘라 내외로부터 강력한 적들을 직면하게 된다. 영화 속에 담겨진 쿠데타는 그러한 기득권층의 가장 노골적인 도발이었고, 차베스의 복귀는 민중의 반격의 결과였다. (보다 자세한 정치적 분석은 원영수의 글을 참조하기 바람: 노동자의 힘 2호, 6호, 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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