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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07

또 사랑에 빠졌다. 나 정말 왜이러니?

내게 사랑은 언제나 힘들고 슬픈, 그런 거였는데. 어쩌다보니 또 이렇게 되버렸다.

게다가 그는 내 기피대상 1호 바쁜 남자다. 그리고 사는 곳도 멀다.

으흐~ 이 난관을 어찌 헤쳐나가야 할지.

그를 만나게 된 이후로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고민이 많다.

 

28살이 된 후, 나는 더이상 사랑이라는 관계에 있어서 행복같은건 바라지도 않게 되버렸다. 그냥 너무 아프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그를 좀 덜 힘들게 했으면 좋겠다. 그가 나로 인해 좀 덜 힘들었으면 좋겠다.

 

그는 내가 그리도 좋은지 동네방네 나랑 사귄다고 소문을 열심히 내고 다닌다.

사실 나 쫌 이상한 앤데 그는 아직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래서 더욱 고민스럽다.

 

늘 사랑이란 걸 그리워하지만 막상 다가오면 두렵고 슬프다. 그리고 결과는 예상대로 늘 아프다.

 

나랑 비슷한 여자가 있다.

프랑스의 전설적인 여가수 에디뜨 삐아프.

나를 감히 그녀와 비교한다는게 몹시 겸연쩍하긴 하지만

그녀도 꽤나 사랑에 결핍돼 평생을 사랑만 쫓아다니다 결국 혼자 쓸쓸히 죽었다.

이렇듯 불행한 또 불쌍한(내 판단에는)  삶을 살았으면서도 그녀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속

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노년의 그녀는 이렇게 얘기한다.

"사랑하세요. 사랑하세요. 사랑하세요. . . "

사랑으로 인해 그토록 많은 상처를 받았음에도 그녀는 여전히 사랑만을 갈구한다.

사랑, 그 황홀한 느낌에 중독되어 있었던 것이다. 슬프게도.. ....

난 진심으로 그녀를 동정한다. 그녀의 삶이 참 가엽다.

 

나도 그렇게 될까봐 무섭다.

나 정말 그렇게 살기 싫은데 내 삶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녀와 많이 닮아있다.

 

글 쓰는 김에 내 연애이야기 좀 한번 해볼까?

그와 나는 기륭 농성장에서 만났다. 난 그날 거기에서 너무 슬펐다. 아무도 모르게 연신 눈물을 닦아내고 닦아내고 닦아냈다.

그리고 농성장에서 우리는 막걸리를 마셨다. 당원들을 만나면 참 할 말이 많다.

 

우리 자리에 어떤 사람이 왔다. 

우리는 계속 얘기했고 그 사람은 잠시 있다 막 돌아다녔다.

그러다 가끔씩 와서는 집에 안 가냐고 자꾸 물었다.

난 처음엔 막차까지 시간이 좀 남아 있으니 더 있겠다고 얘기했다가

술 더 먹고 가겠다고 했다가 자고 가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남이사 집을 가던가 말던가 뭔 상관이야.

기집애는 싸돌아 다니지 말고 빨리 집에 쳐 들어가란 얘긴가?'

어쨋든 "집에 안 가요?" 소리만 듣다가 그날은 그렇게 헤어졌다.

 

그런데 어머나 그 다음날 저녁, 그에게 전화가 왔다. 평택에 놀러올테니 술 먹잔다.

난 엉겁결에 그러마고 했다. 그리고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 남자 변탠가? 여기까지와서 나 술먹여 놓고 함 어떻게 해보려고 그러는건가?

아니면 나한테 관심이 있나? 그렇진 않은 것 같은데.. 

음~ 전자일 가능성이 높아.....'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다. 무슨 핑계를 대고 파토를 낼까?

열심히 생각했다.

 

하지만 몇일간의 자체 조사 결과, 그가 평택까지 와서 나를 만나려는 이유는 비정규직 투쟁에 동참시키려는 의도인 것이 유력해졌다.

 

정말이지 마음이 한결 놓였다.마음을 푸욱~ 놓고 그와 통화를 했다.

이번 주에 있는 경기도당 사무실 개소식에서 만나서 얘기하자고 했다.

그는 무척 당황하더니 대뜸 말했다.

나한테 관심있어서 함 만나보고 싶단다.

사실 티는 안 냈지만 난 속으로 무지 기뻤다.

나 아직 죽지 않은 것이었다!

난 여전히 매력적인(?) 미녀(??)였던 것이다!!

 

그후로 그의 전화를 기다렸다.

이제나 저제나 언제쯤 나를 좋아한다던 그를 볼 수 있을까?

그사람이 어떻게 생겼었지?

내 희미한 기억에 내가 좋아할만한 스타일이긴 했던 것 같았는데. . . .

 

그를 만났다.

기륭의 그 어두침침한 농성장에서 봤을땐 20대로 보였는데. . .

음. . . 그렇군.

배운게 많은 그는 자꾸 어려운 단어를 쓴다.

음. . .   음 . . .

횟집의 밝은 불빛에서 보니 날나리 활동가의 고단한 생활이 엿보인다.

음. . . .

 

난 점점 취해갔다.

취하니 그의 팔뚝이 꽤 섹시해 보인다.

맨날 나이 40먹은 두아이 아빠인 우리 소장님 팔뚝만 보다가 37세 미혼 남성의 팔뚝을 보니

그렇게 싱싱할 수가 없다.

시간이 지나니 더 취했다.

그가 조승우로 보인다.........

 

그는 내게 해독제(숙취해소제) 2캔을 사줬다.

그리고 날 집에 넣어줬다. 안 그래도 되는데. . . ; 굳이 뭐. . .  왜?;;

 

몇일 뒤 우린 다시 만났다.

같이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장난을 치면서 

그는 나에게 완전히 빠져버렸다.

 

나는,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가 해준 맛있는 밥도 좋고

같이 얘기하는 것도 좋고

그의 팔베게도 좋다.

 

맥주 시킬 때 꼭 신경써서 내가 좋아하는 카스 주문하는 걸 잊지 않는 것도 좋고

바쁜 와중에도 잊지않고 나 챙겨주는 것도 좋고

너털거리는, 얼핏 보면 무지하게 착한 사람일 것 같은 그 웃음도 좋다.

 

항상 지금처럼 그가 건강하길. . .

힘든 현장에서 너무 상처받지 말길. . .

용역 깡패들이 때리려고 쫓아오면 맞지말고 요리조리 잘 도망다니길. . .

 

그리고

 

나 때문에 너무 힘들게 되지않기를.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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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에어쇼에 다녀오다

지난 10월 11, 12일 송탄의 K-55 미공군 기지에서는 에어쇼가 열렸습니다.

토요일, 여느 날처럼 바닥과 합일이 되어서 끝없이 뭉기적거리고 싶었던 저는, 에어쇼 염탐(?)의 역사적 사명을 띄고 따뜻한 전기장판의 치명적인(!) 유혹을 뿌리치며 일어났지요. 날씨도 참 좋더군요. 마음이 즐거워졌습니다.

 

행사장인 두리틀 게이트까지 송탄역에서 셔틀버스가 운영되기 때문에 편하게 갈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참 많았습니다. 게이트 앞에는 몇몇 노점상들이 먹을거리를 팔며 축제 분위기를 띄우고 있었고 사람들은 손에손에 주민등록증을 들고 줄지어 검문을 받고 있었습니다.

아, 그런데 이 사람들이. 운전면허증은 안 된다는 겁니다. 불행히도 제 지갑 속엔 달랑 운전면허증만이 얄궂게 들어있었구요. 살짝 기분이 나빠졌습니다. 사전에 충분히 공지를 했어야지 여기까지 와서 갑자기 이러면 입장도 못 하고 그냥 돌아가라는 거냐구요. 운전면허증은 왜 안 되냐고, 미리 공지를 했어야지 않냐고 따져 물었지만 원형탈모증 증상이 있던 그 대머리 아저씨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주민등록증이 없어서 되돌아가는 시민들이 일부 있었지만 늘 그렇듯, 이런 퐝당한 상황에서도 항의하는 건 저 혼자 뿐입니다.

 

그래서 그곳에 갈 때와 똑같은 절차를 반대로 걸쳐서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내 방 서랍 안에서 내 나이 18세 때의 모습이 봉인되어 있는 주민등록증을 챙겨 다시 출발했습니다. 그때는 오후라서 사람들이 더 많더군요. 참 많은 사람들이 송탄역에서 내려 셔틀버스에 올랐습니다.

 

암튼 그럭저럭 해서 드디어 입장을 하게 됐습니다. 공항 검색대처럼 네모난 장비도 지나고 CSI에서 봤던 것처럼 무슨 청소기같이 생긴 장비로 몸수색도 받고 그랬습니다. 소지품 검사를 받을 때는 마침 가방 안에 가지고 있던 평화센터 안내 팜플렛과 소음 관련 스티커 때문에 살짝 쫄았지만, 통과되었습니다. 부대 안으로 입장해서는 빨랫줄 같은 걸로 표시해놓은 길을 따라 한참을 걸었습니다. 잘생긴 군견들도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고요. 저 멀리 행사장이 보였습니다. 여러 가지 다양한 무기들을 전시해 놓고 사람들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열심히 구경하고 있습니다.

 

길게 늘어선 각종 부스에서는 미군 부대 내의 각종 위원회나, 단체들이 먹을거리를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핫도그, 햄버거, 바비큐, 김밥, 라면, 맥주 등 여러 가지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에 저도 군침을 좀 흘렸죠. 그런데 말이죠. 제가 그 날 아침 배달된 신문에서 본 환율은 달러당 1300원대였습니다. 그즈음 1400원대로 진입한 적이 없었죠. 그런데 현장에서는 달러당 1500원을 적용해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폭리를 취하고 있는 듯해 또 기분이 살짝 나빠졌습니다.

행사장 내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즐거워보였습니다. 가족단위로 돗자리를 깔고 앉아 맛있는 음식도 나눠먹고 연인들끼리 친구들끼리 여유로운 휴일을 만끽하는 모습이었죠. 헬기, 전투기, 전차, 저 멀리에는 패트리어트 미사일까지 온갖 무기들에 둘러쌓인 채 말이에요. 미군 밴드의 신나는 연주는 더욱 흥을 돋궜지요.

 

혼자 이것저것 구경도 하고 정말 예뻤던 머핀도 사먹고 그러면서 유유자적 시간을 보냈고 드디어 에어쇼가 시작되었습니다.

 

가까이에서 들으니 이륙시 전투기 굉음이 엄청나더군요. 몸을 울리는 진동도 엄청났구요. 사람들은 열심히 구경했습니다. 망원렌즈를 준비해서 열심히 사진을 찍던 사람들도 많았구요. A-10, F-16, 블랙 호크, 아파치 헬기 11대가 날아올랐습니다. 그들이 보여준 에어쇼라는 건 별거 없었습니다. 크지도 예쁘지도 않은 폭죽 같은 것만 연신 터트렸어요. 그냥 전투기들 날아다니고 폭죽 몇 개 터트리고 작은 폭격 시범과 인명구조 시범 이런 게 다였습니다. 볼거리는 별거 없었어요. 그런데 말이죠. 이 미국 사람들이 잘 하는 게 바로 이런 겁니다.

 

전투기들이 ‘슈우욱~’ 날아오릅니다. 활주로를 따라 촘촘히 늘어선 스피커에서 ‘두두두두~’하며 장엄한 음악이 흘러나옵니다. 마치 헐리웃 영화의 한 장면처럼 멋있는 그림이 연출됩니다. 그러면서 멘트가 이어집니다. ‘미군은 지금도 전 세계에서 평화를 지키고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주십시오.’

 

또 ‘두두두두두~’하는 배경음악과 함께 ‘꽝! 꽝!’ 소리를 내며 폭격 시범을 보입니다. 처음엔 빨간 불이 일다가 시커먼 연기가 원모양으로 퍼져 오릅니다. 헬기에서 몇 몇 미군들이 내려오더니 인명 구조 시범을 보입니다. 그러면서 또 멋진 멘트가 이어집니다. ‘여러분이 적진에 둘러쌓일 때 미군이 여러분 곁을 지킨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바로 이겁니다. 그들이 에어쇼라는 걸 하는 이유죠.

 

이라크 전쟁에서만 미군 병사가 4200명이 넘게 죽었습니다. 미국에서 반전 여론이 일고 있는 이유죠. 하물며 이라크의 민간인 사망자 수는 집계조차 되지 않습니다. 이라크 현지로 파병된 미군의 소원은 이 지옥 같은 곳에서 살아서 나가는 것이고, 민간인의 소원은 이 지옥 같은 곳에서 살아남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런 전쟁을 하고 있는 곳이 이라크만이 아니구요.

 

이런 아픔들을 외면하고 전쟁 무기를 그럴듯한 쇼로 위장해 시민들에게 선전하는, 평화를 위해서 전쟁을 한다는 끔찍한 논리를 멋지게 포장해 전달하는, 그 현장의 한 가운데서, 수 천명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는 참 외로웠습니다. 이 싸구려 쇼 뒤에 가려진 수많은 사람들의 슬픈 피를 기억하는 이는 나뿐인 것 같았습니다.

 

이 전투기들의 굉음을 들을 때마다 죽음의 공포에 질려야 하는 아이들이 생각났습니다. 얼마나 두려울까. 그들의 소원대로 그 지옥에서 살아남은 후에, 평생동안 그 고통스런 기억과 함께 살아야 하는 그 삶들은 또 얼마나 고단할까.

 

그 곳 현장에 있던 많은 사람들도 지구 반대편에서는 전쟁으로 인해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겁니다. 또 한 번쯤, 전쟁의 참상에 대한 언론 보도를 보며 측은지심도 가져봤을 겁니다. 부디 지금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이 멋진 모습보다 그 측은지심이 더 강한 힘을 갖고 있기를 바랄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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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륭에 다녀왔어요!

그냥 아무것도 없이 얼굴 한 번 비추는 것 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는 걸 잘 알면서도 이제껏 한 번도 가질 못했습니다. 바쁘고 피곤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번에도 거기까지 간다는게 좀 귀찮기도 하고 해서 그냥 가지 말까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기륭에서 보자는 지인과의 약속을 이미 여러번 파토낸 까닭에 이번에는 꼭 가야 한다는 어떤 의무감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굳은 의지를 가지고 약 두시간에 걸친 여정 끝에 그곳, 기륭에 도착했죠.

 

직접 와보니 농성장은 생각보다 작고 평범한, 그저 그런 골목길이었습니다. 컨테이너와 천막, 경비실 위의 철망 각종 단체의 깃발과 연대 메시지가 담긴 현수막들에는 4년이란 시간의 아련한 고단함들이 묻어났습니다. 94일간 단식을 하셨던 김소연 분회장님의 모습이 보입니다. 정말이지 뼈만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발언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참 씩씩했습니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 걸까요.

 

문화제는 시종일관 밝게 진행되었습니다. 조합원님들, 연대 방문한 사람들 모두는 작은 일에도 크게 웃고 떠들며 아주 즐거워합니다. 그렇게 즐거워하지 않으면 이 힘든 싸움 버텨낼 수 없기에, 이 고단한 나날들을 견뎌내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생각에 그들의 즐거움이 마음 아프게 다가옵니다.

 

기륭 네티즌 연대 1기 운영진이 해산하고 2기 운영진이 출범한다고 인사를 합니다. 앞으로 고생 많이 해주시기 바랍니다. 무모한 아빠들이라는 그룹(?)이 나와 노래를 합니다. 두 분다 애아빠시라는데 오른쪽 분은 애아빠라는 사실이 차마 믿기지 않을 정도로 완전 훈남입니다. 그 분 쳐다보는 사이 노래가 끝납니다.

 

문화제가 끝나고 막걸리를 한 잔씩들 합니다. 평소에는 입맛에 맞지않아 잘 안 먹던 홍어 무침이 너무나 맛있습니다. 당원들과 여러 얘기를 나눕니다. 당원들을 만나면 참 할 말이 많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사이 에세이스트 김현진씨와 인권 운동가 박래군 아저씨가 보입니다. 수줍음 많은 저는 술기운을 빌려 김현진씨에게 다가가 당신 책도 샀다고. . . 글 잘 보고 있다고 한 마디 했습니다. 그녀는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몰라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2차를 갔습니다. 노래를 하고 맥주를 마시고 그뒤부턴 기억이 선명치 않습니다. 일군의 사람들이 맥주를 사들고 들어왔습니다. 박래군 아저씨가 제 옆에 앉으시는군요. 이미 술에 기분좋게 취한 저는 래군 아저씨에게 술 주정 같은 걸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저씨는 계속 자기는 노래 못 해서 안 할 거라고 말 하면서 연신 곡목록을 찾습니다.

 

노래방을 나와 좀 걸었습니다. 귀가하시려던 래군 아저씨가 잡혀 오는 모습이 기억납니다. 그리고. . . .

어제 끝까지 같이 있었던 여성 멤버 정주영씨가 인사를 하고 출근길에 오릅니다. 나는 지금 찜질방 여자 탈의실 375번 옷장 앞에서 찌그러져 자고 있습니다.

 

주위의 권유대로 수면실로 올라가 잠을 청합니다. 누군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어제 같이 놀던 분들입니다. 오늘 하루 종일 비가 온다며 우산을 들고 오셨습니다. 기륭으로 가잡니다. 장투 사업장에 아침부터 술냄새 풍기며 가는게 너무 민망했지만 사양 못하고 따라나섭니다.

 

기륭 농성 천막 안에 누웠습니다. 천막의 반은 각종 투쟁 용품들이 쌓여있고 반은 전기 장판이 깔려있습니다. 한 쪽 벽에 10월 일정이 쓰여있는 화이트 보드가 걸려있습니다. 무슨 집회, 무슨 집회, 무슨 회의, 무슨 회의, 교섭 또 교섭. . .  이런 일정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너무 슬펐습니다. 그냥 평범한 아줌마에 불과했던 이분들을 시위 전문가로 만든 세상이 슬펐습니다. 마침 비도 처량맞게 오는 천막안에서 주체할 새도 없이 눈물이 주루륵 흘러내립니다.

 

한 여성 노동자가 94일간 단식을 했습니다. 한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데도 자본가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4년간, 그분들 말대로 안 해 본 것이 없을 겁니다. 이제 무엇을, 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언제까지 이렇게 고단한 싸움을 해나가야 하는 걸까요. 4년 했으니 10년 마저 채울까요? 그러면 정규직화 쟁취할 수 있는걸까요? 너무 막막했습니다.

 

평범하고 허름한 어느 골목. 천막을 치고 컨테이너를 들여놓은 그곳에서, 김포 공항 착륙 항로이기에 쉴새없이 비행기 소음이 들리는 그곳에서, 오랜시간 싸워온 그 분들께 저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 언론 보도를 통해 낯이 익은 한 조합원님께서 설거지를 하고 계십니다. 저를 보며 학생 밥먹고 가야돼지 않냐며 잡으십니다. 그 마음. 감사하게 받고 떠났습니다.

 

그저 건강하시기만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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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2

자기 목숨보다 소중한 아이를 둘이나 낳고도. . .

그렇게 큰 집에서 호의호식 하면서 살면서도. . .

자살하는군요.

. . . . . . .

 

 

 

 

나도 데려갔으면.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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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글을 쓰다!!

요즘 참 아무생각없이 살았다.

일이 바쁜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신문 볼 시간도 없으면서 책도 못 보고 정말 아무 생각이 없어졌다.

그러다 며칠전 하루 8시간 근무를 반상근으로 돌리면서 책을 좀 볼 여유가 생겼다.

마지막 몇 페이지 남겨둔 88만원세대를 마저 읽고 참 우울했다.

정말 마지막 10페이지 정도 됐나? 고것만 읽었는데도 사람 참 우울하게 만든다.

모든 페이지가 우울한 전대 미문의(!) 책이다.

 

생각해보니 올해 초에 막 글쓰기에 재미를 붙이면서 열심히 썼을때는 일이 없어서 팽팽 놀고 있을 때였다.

그때는 글 쓸 여유가 좀 있었는데 출근하면서부터 책도 못 보고 마음에 여유가 없어지면서 거의 글을 못 썼다. 그렇다고 일이 바빴냐. . .    그것도 아니다. 역시 나의 나태한 정신력이 문제인건가~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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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곳 없는 88만원세대는 거리가 좋다!

요즘 저는 작은 시민단체에서 일하면서 부모님이 청춘을 다바쳐 뼛골빠지게 일해서 마련하신 집에 얹혀살고 있습니다. 부모님과 사이가 좋지 않은 저는 정말이지 이 곳에서 독립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답니다. 오죽하면 추석 연휴에 아침부터 pc방와서 라면먹고 있겠어요.

 

편하게 집에서 담배도 피우고 백수 남친도 불러서 밖으로 돌아다니며 돈 쓸 것 없이 데이트 하고, 샤워할 때 화장실에 옷입고 들어가서 벗고 또 옷 입고 나올 필요 없이 걍 편하게 홀딱 벗고 화장실로 입장하고, 제가 좋아하는 현미밥도 마음껏 해먹고 그렇게 살고 싶어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제가 이 집으로부터 독립할 방법이 없어요.

경제적인 능력이 없거든요. 월세 방 한 칸 얻더라도 보증금 1000만원은 있어야 되는데요. 뭐~ 일반적인 사람들은 이런걸 쪽팔려 하는 것 같던데 저는 이 나이 되도록 단돈 만원도 모아놓은 돈이 없답니다.

 

글구 보증금을 어찌어찌 마련해서 월세 20만원짜리 방을 얻는다해도 이것저것 공과금까지(핸드폰요금 포함) 합하면 평균적으로 나가는 비용이 30만원인데요.  별다른 능력 없는 88만원 세대는 유지할 수 없는 가계랍니다.  

 

저는 정말로 명박씨가 말하는 부모 등골 빼먹는 나약한 젊은이인가봐요. 사실 요즘 저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내가 이러고 살고 있는게 사회의 책임인가 나의 책임인가 헷갈릴 때가 있답니다.  

 

이렇듯 내 몸 하나 편히 쉴 곳이 없는 저는 요즘 부쩍 거리로 나돌아다닙니다. 이 거리라는 것이  번쩍번쩍한 간판 불빛아래 잘익은 고기 냄새와 술취한 사람들 냄새 북적북적한 그런 거리를 말하는게 아니고요.

각종 투쟁 현장과 선전전, 행사,회의들을 말하는 겁니다. 

 

괜히 마음 불편한 집에 들어가 있는건 싫고, 돈이 없으니 딱히 갈 데도 없고 앞서 나열한 곳에 참여하고 있으면 재미와 감동이 있으니 가장 좋습니다. 이리하여 갈 곳 없는 88만원 세대는 그저 거리를 방황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전 그게 좋답니다. 이것저것 배우는 것도 많고 느끼는 것도 많고, 현장의 그 많은 신념과 희망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만난 많은 사람들. . .  연대만이 희망인 우리들. . . .

 

하지만 한 편으론 마음 한구석에 짐을 들여놓았습니다.

나는, 경제적인 능력이 없는, 한마디로 무능한 나는 어떻게 생존을 유지할 것인가.

언제까지 부모님께 빌붙어 살아야하나.

언제까지 마음 둘 곳 없이 거리를 떠돌아다녀야 하나.

 

이 사회는, 자신의 미래인 젊은이들에게 언제까지 이렇게 가혹할 것인가.

젊은이들은 언제까지 이런 고문을 견디고만 있을것인가.

 

피곤하다는 이유로 '88만원세대'라는 책을  근 반년에 걸쳐(^^;) 엊그제 다 떼었습니다.

몹시 우울했지요. 이놈의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사람 우울하게 만든다고 애꿎은 책 탓을 해댔지만,

사실은 그것이 진짜 현실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절망가득한 사회에서 조금이나마 희망을 만나고 위안을 얻고 싶은 마음에 저는 그다지도 현장들을 쫓아다니나 봅니다.  추석연휴가 끝나면 기륭에 갈 생각입니다.

 

어느 가난한 20대는 희망을 만나기위해 언제까지 거리를 방랑해야만 하는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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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0

토요일 밤

오랜만에 거리가 아닌 집이다.

그동안 참 많이 쏘다녔다.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무한도전을 정시에 보려고 했건만

올림픽이다.

 

나처럼 올림픽에 관심없는 사람은

TV 보기가 참 불편하다.

모처럼 집에 들어앉아 가장 친한 친구인(^^;) TV 좀 팔자늘어지게 보려고했다.

 

한 경기를 한  채널에서만 하면 안되나??

꼭 똑같은 경기를 두세채널에서 동시에 생방송 해야하는건가?

 

더이상 축제도, 정당한 경기도 아닌 올림픽을

보고싶지 않다.

 

오랜만에 집에서 편안한 토요일을 보내니

좋긴 좋다.

 

지금 MBC드라마 채널에서 지난 무한도전 방송을 하고 있다.

좀비 특집이라는데

다수의 사람들이(좀비 역할인가?) 모여 도망가는 모습이 보인다.

무의식중에 그 사람들이 시위대로 보인다.

지금 그들은 거리에서, 기륭전자에서 어떤 밤을 보내고 있을까?

궁금하다.

 

백골단에 쫓겨 뛰어다니고나 있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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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4

8월 2일 오후 5시 20분, 청계광장엔 이미 백여명의 성난 군중이 모여있다. 백골단을 풀고 최루액을 쏘고 인도로 도망가도 끝까지 쫓아가 잡아내겠다고 한껏 엄포를 놓았음에도 이들의 분노는 식을줄 모른다.

 

여기저기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들린다. 전운이 감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왜 여기에 있는가

 

잠깐 화장실 다녀오는 사이 어김없이 전경들이 청계광장을 막았다.  이제 나도 시위현장에 좀 익숙해진 듯하다. 전에는 무서워서 전경들근처에 가는 것도 꺼렸는데 이제서야 비로소 그들 곁에서 그들의 표정을 보고 대화를 듣는다. 

 

시위대는 폭력경찰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친다. 한 전경이 옆에 있는 동료에게 이런 말을 건넨다. "진짜 폭력이 뭔지를 보여줘야겠구만. " 이 무서운 정서에 몸이 후드득 떨린다. 어느새 그들은 이토록 폭력에 무감해진걸까?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세상에 살고있다.

 

가두행진을 시작한다. 전경들이 막은 까닭에 난 본대와 합류하지 못하고 혼자 서울시내를 걸었다. 폭도들을 진압하기 위해 전경들이 무리를 지어 나를 스쳐지나간다. 나는 혼자인데 무장한 그들은 떼를 지어 뛰며 고함을 지른다. 무슨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방패를 사용하는 듯한 '퍽퍽' 하는 소리도 들린다.

 

오랫동안 걷고 길을 물어 드디어 본대와 합류한다. 아는 얼굴이 보인다. 이제 좀 안심이 된다.

 

우리는 계속 걷는다. 어디로 가는건지, 언제까지 걷는건지, 모른다. 이미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홀로 걸으며 많은 생각을 한다. 정권이 이 사회를 어디까지 몰고갈건지, 이명박 정권이 언제까지 버틸건지, 이명박 이후에는 어떻게 될런지.  혹, 박정희 이후가 그랬던 것처럼, 전두환 이후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바람보다 못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건 아닌지.   이미 민주주의는 후퇴했고 그 후퇴한 민주주의가 다시 진보하려면 또다시 기나긴 시간을 고통속에 보내야하는건 아닌지 , 우려스럽다.

 

명동이다. 앞뒤로 경찰이 포위했고 우린 그저 퇴로를 머릿속에 그리며 진압 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난 또 겁에 질려 표정관리가 안 된다. 주위에서 그만 들어가라고 권하고 바로 옆에 있는 명동역 간판이 유난히 빛나보이지만 역시 여기서 물러나긴 싫다. 이것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민으로써 가진 오직 하나뿐인 자존심이다. 

 

시위대는 걷기 시작한다. 명동성당 앞이다.  멜로디언과 리코더 등 소박한 악기들로 구성된 악대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연주한다. 눈물이 난다.

 

지금, 여기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가 유린당하는 현장을 온몸으로 겪어내고있다.

나는 잊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가진자들이 그 천박한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위해 비무장한 시민들을 방패와 몽둥이로 공격하고  갖가지 싸구려 수단들을 동원해 탄압하는 이 만행을 잊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현장에서 보아왔던 그 수많은 어르신들처럼,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살겠다. 

힘들고 고단한 길이지만 어쩔수 없다. 내 마음속 깊숙이 소소하게 간직해두었던 작은 꿈인

자유를 위해 나는,  갈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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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폭도가 아니다

8월 1일 저녁 7시 KBS 본관앞. 침탈 의지가 없는 시민들로부터 KBS를 지키기 위해 전경들이 몇 겹으로 에워쌌다. 우리는 KBS를 공격하러 온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들은 손에 초 하나 든 우리를 폭도로 규정하고 시위대보다 몇 배나 더 많은 전경들을 배치시켰다. 오늘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공안정국이 실감난다.

 

일단 퇴로를 확보한다. 내 뒤쪽에 드넓은 여의도 공원이 있으니 여차하면 무조건, 아주 열심히 뛰면된다. 겁이 많은 나는 언제나 집회의 후미, 혹은 가장자리를 차지하고 앉는다. 선두에서 고생하시는 분들께는 너무 죄송하지만 난 아직 그분들만큼 용감하지 못하다.

 

오늘 집회를 시작하기도 전에 나는 겁에 질려 일찌감치 집회 참가 포기까지 생각해보았다. 오늘은 정말로 맞을 것 같다. 나 혼자와서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기에 더 두려웠다.

 

시위대의 수도 너무 적었다. 아니 전경의 수가 지나치게 많았다.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표정 관리가 안 된다. 정말 쫄아서 머릿속에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그래도 여기서 물러나긴 싫다. 무섭다고 이대로 물러나면 이 정권이 국민을 얼마나 우습게 알겠는가. 정부가 국민을 두려워해야지 국민이 정부를 두려워해선 안 된다. 이것이 국민 주권주의 이고 헌법 1조 1항의 정신이다.  참내, 이 정권은 시계롤 거꾸로 돌리고 돌려 나마저도 중학교 사회 시간으로 돌려놓는다.

 

네모난 교실에서 단편적으로 습득한 지식을 이제 온몸으로 체득한다.

 

암튼 이렇게 떨고있던 차에 하늘색 단체티를 맞춰입은 범청학련 통선대가 등장한다. 평소에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조직인데 이럴때 보니 너무 반가워 박수를 치며 환호한다.

 

문화제가 시작된다.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여의도 공원내 잔디밭에 앉아있다가 KBS 본관앞 본대로 자리를 옮긴다. 문화제가 차질없이 진행되며 긴장이 좀 풀렸다.

 

TV에서 보았던 다인 아빠가 보인다. 저녁식사를 하지못해 라면이라도 얻어먹어야지 했는데 오늘은 음료수만 나누어준다. 아쉬운 마음에 음료수라도 한 컵 얻어먹는다. 박봉인 시민단체 간사가 휴가를 가니 밥 한끼 사먹을 돈도 아깝다.

 

문화제가 반이상 진행되었을 때 칼라 TV가 나타났다. 생면부지 모르는 사람들 틈에 끼어있다가 칼라 TV를 보니 반갑다. 어디갔다 이제 왔는지 하여간 반갑다.

 

10시, 문화제가 끝나고 행진을 시작한다. KBS가 청와대라도 되는냥 전경들이 꽁꽁 싸맸다. 이제 곧 낙하산 투하할 요충지이니 소중히 지켜줄만도 하다. 안 쳐들어간다, 이놈들아. 욕이 절로 나온다.

 

난 이쯤에서 빠져나온다. 여의도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시사인의 고재열 기자를 봤다. 사실 우리 초면은 아닌데 그는 나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지난달 시사인 거리 편집국에 잠깐 들러서 얼굴도장 찍었었다. 그리고 공짜로 시사인 한 권 받아들었었지 ^^

 

그에게 다가가 시사인 잘 보고 있다고 열심히 잘 하시라고 한마디 건네고 싶었지만 숫기없는 나는 그냥 돌아선다. 그는 내가 시사인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까? 맘 같애서는 지금 메고있는 배낭속에 있는 시사인 46호 고재열 기자 기사에 사인이라도 받고 싶었지만 음~ 역시 못하겠다.

 

시사인 기자들 중에 내가 얼굴 아는 기자는 주진우, 고재열 정도인데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 잘 생겼으면서 말도 재밌게 잘 한다는 것이다. 난 정말 그들이 좋다.

 

역시 후회된다. 고재열 기자와 몇마디라도 대화 나눠보는건데 . .  . . . .

 

경찰쪽 주장에 의하면 채증 사진이 많이 확보돼 있다고 한다. 그걸 기초로 대량으로 지명수배를 내리겠다고 한다.  이제부터는 집회 참여시 마스크를 착용해야겠다.  내가 지명수배자가 되면? 나야 상관없는데 연로하신 부모님이 걱정이다.

 

경찰이 내 글도 보고 있으려나? 나도 2년쯤 후엔 인터넷 신뢰저해 사범이 되려나? 그럼 민주화 투사 되는건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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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권의 시계가 엄청 빨리 거꾸로 돌아간다.

 

인터넷을 독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이명박이. . . . .  

계엄령을 선포해 군부대를 동원하여 전국의 모든 PC 방을 폐쇄하고 모든 인터넷 선(정확한 용어를 모름)을 끊어버린다.

 

이거 무슨 공상 과학 추리소설 같지만,

워낙 상상을 초월하는 인물이라

이런일도 진짜 할 것 같다.

 

엊그제 백골단 부활 하는 거보고 확신했다.

2년쯤 후엔 국어 맞춤법을 현행 '습니다'에서 '읍니다'로 개정할 거라고

 

그의 정권하에서는

'설마' 가 현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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