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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노조가 그녀들을 울렸다.

오늘 금속노조 대대 소식을 듣고

 

그토록 굳건하게 싸우던 쌍용차 가대위 동지들이

 

하나 둘씩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함께 있던 나도 너무 아파서 같이 많이 울었다.

 

금속노조는 오늘,

 

경찰과 구사대와 깡패들과 그렇게도 강하게 맞서 싸우던 그녀들을 울게 만들었다.

 

이 나라에 희망이 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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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김수경 아저씨

 

저는 진보신당 창당 초기때부터 평택에 적을 두고 활동해왔었습니다. 부모님이 평택에 사셔서 저도 거기 얹혀 살았었거든요. 한 달에 한 번 정도 정기적으로 모임을 해왔는데, 대부분의 지역이 그렇듯 40대 이상의 아저씨 당원들이 다수였습니다. 그 중에는 지금 쌍용차 노조에서 간부로 활동하고 있는 분도 계시고 옥쇄 파업에 참여하고 계신 분도 계십니다.
 
창당 초기, 우리는 그냥 모든 게 다 재밌고 신났습니다. 전 태어나서 처음으로 선거 운동도 했고, 심상전 전 대표 사무실 개소식에도 가고, 한 당원님 댁을 선거 사무실로 등록해 엄청 큰 현수막도 달았습니다. 아파트 베란다를 다 가릴만큼 정말 큰 현수막이었는데 불행히도 그 아파트가 16층이어서 밑에서는 그냥 이불 널어놓은 것 같이 보이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동지’라는 말은 영 어색하고 입에도 안 붙어 아저씨, 아저씨 하며 열심히 중장년층 당원들을 따라다녔죠. 그렇게 따라다니던 아저씨 당원들 중에는 김수경 아저씨가 있었습니다.
 
아저씨는 심상정 진보신당 전 대표를 주군으로 모셨습니다. 어딜가나 심상정 심상정, 심지어 사무실 자기 자리 벽에도 심 전 대표 사진을 붙여놨다고 하시더라구요. 아저씨는 참 재밌는 분이셨습니다. 언제나 사람들을 유쾌하게 해주는 재주가 있으셨어요. 왜 그런 분들 있잖아요. 특유의 재치와 밝음으로 사람들이 좋아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사람.
집에 담궈놓은 술이 엄청 많다며 남자 친구와 꼭 놀러오라고 그러셨는데...
그런 아저씨가 지금 옥쇄 파업에 참여 중이십니다. 파업 초기에 아저씨는 ‘투쟁은 내 체질’이라며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재밌고 즐겁게 하루하루를 지내셨어요. 힘들어도 힘들다 말하지 말라며 주위의 지친 동료들을 격려하고 ‘체력은 투쟁력’이라며 밥도 맛있게 잘 먹고 잘 지내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당원들과 지지 방문을 가면 반갑게 맞아주시며 재밌게 이 곳 저 곳 안내도 해주셨습니다. 농담삼아, 희망퇴직 신청하면 3천만원 더 준다는데 빨리 신청하시라고 하면 그런 소리가 어딨냐며 택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평소엔 그냥 옆 집 사는 재밌는 아저씨 같았던 분이 이렇게 싸움이 벌어지자 열심히 참여하시는 모습이 정말 대단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전 정말로 아저씨는 ‘투쟁 체질’ 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파업이 길어지면서 점점 아저씨는 지친 모습을 보이십니다.
깊은 새벽까지 지지 방문 간 당원들과 얘기 나누시던 아저씨가 11시만 되면 피곤함에 그냥 어디라도 누우십니다. 점점 격해지는 상황에서 힘들어하는 동료들의 얘기를 하시며 아저씨 도 말수가 적어지셨어요.
 
그리고 오늘 아침, 구사대가 투입됐습니다.
전경들은 공장의 출구를 막았고 여기저기서 산발적인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가족 대책위의 어머니들도 이제 정말 한계에 다다른 듯 그동안 쌓여왔던 많은 것들을 쏟아내십니다. 공장안에서는 노동자들이 쇠파이프를 들고 결의를 다지고 있습니다. 더운 날씨에 관제데모에 동원되어 각지에서 모여든 구사대는 머가 그리 좋은지 실실 웃습니다. 재밌나 봅니다. 사진 기자들은 싸움이 나는 곳마다 우루루 몰려들어 연신 사진을 찍어댔습니다.
 
저 공장안, 어디선가, 아저씨도 복면을 하고 쇠파이프를 들고 싸움을 준비하고 계실텐데......
그냥 자꾸 나쁜 경우가 생각나 마음이 안 좋았습니다.
너무나 걱정이 됩니다. 자기 남편, 동생, 오빠, 형을 쌍용이라는 전장에 보낸 남은 가족들의 마음은 또 어떨까요. 정말이지 제 가족에게 이런 일이 생긴다면, 저는 파업 참여를 말리고 싶을 것 같습니다.
 
사회 각계 각층에서 많은 사람들이 시국 선언을 하고 쌍용에 대한 공권력 투입을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기어이 그들은 공권력을 투입했습니다. 이제라도, 단 한 명의 부상자가 나오기 전에, 이미 두 명의 희생자면 충분한 것 아닙니까. 공권력 투입을 중단하고, 해고는 살인이라 부르짖는 노동자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일을 멈추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수경 아저씨 댁 진열장에서 저를 어여뻐해줄 주인과 손님을 움전히 기다리고 있을 그 술을 빨리 먹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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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기억

나를 해고하지 못 해 안달하던 사람들과 같이 일 하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아직도 가끔 아니, 자주,

 

그 때의 기억이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

 

 지금은 그들과 웃으며 사이좋게 지내고 있지만, 지내고 있는 척 하지만,

사이좋게 지내야하기 때문에 어쩔 도리 없이 웃으며 얼굴 보고 있지만, 

그들이 내게 준 상처는,

앞으로 오랜 시간이 지나도 아물 것 같지 않다.

 

특히 요즘 쌍용 투쟁에 적극 결합하면서

그 시절 나의 고통스러운 기억이 더욱 생생하게 떠오르는 듯 하다.

 

가족대책위의, 고통받고 있는 아줌마들을 보고 있자면

그들의 고통 속에서 내 고통의 기억이 피어오른다.

 

그래서 나는 쌍용에 더욱 몸을 던질 수 밖에 없는 듯 하다.

그 고통이 얼마나 견디기 힘든 것임을 잘 알기에

단 한 사람의 연대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잘 알기에 . . . .

 

그 때의 해고의 기억이

아직도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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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6일 오전 9시, 비오는 용머리 농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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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한국에서 민족주의는 진보다?

도대체 언제까지 한국에서 민족주의는 진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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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일이 아니다. 연대해야 한다.

나는 지방대 연극영화과 출신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에서 꽤 많은 시간을 문화와 예술에 대한 꿈을 가지고 살아왔다.

지금은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고, 소득이 적은 관계로 문화,예술을 많이 접하고살지는 못하고 있지만

여전히 애정을 가지고 있다.

 

국립오페라 합창단의 집단 해고....

그리고 싸움....

 

노조가 전무후무하다시피한 문화예술계에서

이렇게 싸우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기뻤다. 

힘을 실어주고싶다.

게다가 얼마전 내가 당했던 비정규직 해고라니....

 

남 일이 아니다. 연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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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일이 아니다. 연대해야 한다.

파리에 있는 진보신당 당원들은 하루아침에 유례없는 방식으로 전원 해고된 한국의 국립오페라단 합창단 소식을 접하고,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통해 그들의 복직을 위한 연대활동을 벌이고 있다.

우리가 이곳에서 만난 거의 모든 사람들 - 공연예술노조 위원장, 파리 오페라 합창단 단원들, 라디오 프랑스 오케스트라 단원들 등 - 은 우리의 설명을 들은 지 3분 만에 정황을 파악하고, 이 놀라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연대와 지지의 뜻을 즉각 표했다.

   
  ▲ 지난 2월 국립오페라합창단원들이 공공-운수-건설 노조 결의대회에 나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사진=공공노조)

프랑스 예술가들의 조언

공연예술노조에선 하루 만에 지지 성명서를 발표해 주었고, 바스티유 오페라의 합창단원은 거의 대부분 주저 없이 서명해 주었으며, 한국 오페라 합창단 단원의 복직을 지지하는 거리콘서트에 대한 논의도 자체적으로 진행중이다.

그리고 그 모든 프랑스 예술가들은 한결같이 정명훈을 만나서 지원을 호소할 것을 조언했다. 그들이 보기에도 정명훈은 한국에서 가장 강력한 예술 권력자의 한사람이었기에.

그가 2004년 국립오페라 합창단과 까르멘 공연을 한 후, 자기가 만난 최고의 합창단이라고 극찬했던 바로 그 합창단의 해체 소식에 예술가의 양심을 발휘해주기를 우린 바랬다. 정명훈은 또한, 1994년 그를 부당 해고한 오페라 바스티유극장 측과 힘겨운 소송을 했던 경험을 갖고 있기도 하다.

당시 오페라 바스티유 극장의 노조로부터 상당한 지원을 받으며 뼈아픈 경험을 이겨낸 그였기에, 비슷한 사안에 대하여 그가 충분히 이해하고 자신의 힘을 보탤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비록 이명박과 막역한 사이이긴 하나, 예술가의 순진함에 기인하는 불행한 사건일 것이라고 애써 짐작하며.

3월 20일, 그를 만나기 위해 그가 지휘하는 라디오 프랑스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보러 샤틀레 극장에 갔다. 두 시간에 걸쳐 진행된 그 콘서트는 완벽하게 우리를 고무시켰다. 나와, 함께 간 성악을 공부하는 학생당원은 이토록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내는 사람의 정신이 맑지 않을 수 없고, 정의와 진리를 담지 않을 수 없다는데 전적으로 동의했다.

정명훈의 이토록 아름다운 음악

공연이 끝나고, 극장 뒤편으로 가서 그를 기다렸다. 오래지 않아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우린 한국 사람들이고 선생님께 간곡히 부탁을 드리고자 하는 일이 있어서 찾아왔다고 운을 떼자, 그는 대뜸 비서를 불러서 그 사람한테 말하라고 했다.

그의 비서에게 우리가 가져간 서명운동 용지를 보여주며, 한국에서 일어난 사태를 설명했다. 그녀는 정명훈이 아마도 이 사실들은 모를 것이라고 했다. 한국에서 오페라 합창단원들이 그의 형을 통해 정명훈의 지원을 호소했던 것을 우린 알고 있었지만, 그 비서의 말을 믿고 싶었다.

그가 다음날 아침 비행기를 타고 떠나기 때문에, 이 내용을 전달해 주고 그에게 서명하도록 할테니 아침에 호텔에 와서 찾아가라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불어로 된 문서를 보고, 한국어였으면 더 좋았을 뻔했다고 언질을 주었다.

한국의 합창단원들은 문화부, 오페라단과 담판을 벌이는 중요한 날인 다음 주 화요일까지 이 모든 서명을 받기를 원하고, 그는 내일 아침 떠나고... 우린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근처 사이버까페에 가서 한국어 본을 출력하여 밤에 호텔에 전달하기로 했다.

서명보다 더 중요한 건 그의 생각이고, 지지의 발언이다. 중요한 사람들과 중요한 저녁식사 약속이 있어서 갔다는 정명훈씨가 지금쯤 와 있으리라 생각하고, 뫼리스 호텔에 도착했더니 그는 1층 레스토랑에서 몇몇 사람들과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호텔서 쫓겨날 뻔하다

기왕 온 김에 단 3분이라도 그에게 우리의 육성으로 절박한 현실을 전하고 그의 예술가적 양심에 호소하고 싶었기에, 우린 그에게 전달할 문서를 들고 기다렸다. 그러다가 호텔의 한 직원이 우리에게 누구와 약속이 있냐고 묻고, 그렇지 않다면 나가달라고 요구했다.

돈 많은 현대의 귀족들의 충실한 심복 같은 그들은 물리적으로 우리를 쫓아낼 판이었다. 실랑이 끝에 겨우 정명훈에게 남길 메시지와 한글로 된 사건의 개요를 설명하는 문서를 남기면 호텔측에서 그 문서를 전달하기로 하고, 글을 거의 다 쓸 무렵, 마침 그들의 긴 만찬이 끝이 났다. 정명훈은 우릴 발견하자마자 다가왔다.

조금 전 비서에게 전한 문건을 손에 쥐고 흔들어 대며, “도대체 이게 뭐예요. 이게 뭐하자는 일이예요?” 나는 그의 말을 한국에서 일어난 사태의 경악스러움에 대한 표현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그건 완벽한 오해였다.

그는 도대체 왜 그깟 합창단 하나 없어진 일이 뭐가 대수라고 지금 여기까지 자길 찾아와서 우리가 이러고 있는지를 묻고 있었다. 기자도 아니고, 에이전시도 아니고... 도대체 우리를 어떤 사람들로 분류할지를 모르는 듯했다. 단 한 번도 누군가가 사회적 연대 따위를 요청해 온 일은 없는 사람처럼.

약간의 설명 끝에 대충 감 잡은 그는,
“이 합창단이 없어졌다고, 그 합창단을 살려야 되겠다고 지금 여기 와 있는 거예요? 그 사람들이 도대체 얼마나 노래를 잘하는 사람들이기에. 그 사람들을 꼭 구해야 돼요? ”

"도대체 얼마나 노래를 잘 하기에"

“선생님이랑 함께 공연했고, 2004년에 프랑스에도 없는 최고의 합창단이라고 극찬한 바 있는 합창단입니다. 그냥 합창단 하나가 아니라, 국립오페라단에 있는 한국에선 유일한 상설 오페라 합창단이 없어진다는 사실이 안타까워서 그 상황을 전하고 선생님의 도움을 청하고자 온 것입니다.

이 합창단을 없애고, 더 좋은 사람들을 뽑겠다는 것도 아니고, 아예 상설합창단을 없애고, 앞으로 모든 공연을 건별로 대학생 단체 같은 곳과 계약해서 공연하기로 한답니다.”

오페라 합창단이 간직하고 있는 그의 찬사는 지나가는 립서비스였는지 그는 자신의 그 합창단에 대한 칭찬을 기억초자 하지 못했다.

   
  ▲ 지난 3월 문광부 앞에서 복직촉구 집회 중인 국립오페라단원들(사진=공공노조)

“뭐요? 언제 같이 공연했다구요? ”하고 되물었다.
“한국은 합창단 해체해도 다음 날이면 노래 잘하는 사람 500명 금방 모입니다. 한국에서는 합창단 때문에는 아무 문제없어요. 그런데 대체 왜 해체했다는 겁니까, 이유가 뭐래요? ”

“그야 물론 경영효율, 예산 절감이 이유죠. 표면적인 이유는 상설 합창단을 둘 수 있는 규정이 없다는 거고.”

“거봐요. 예산이 없다는 거 아닙니까. 그 예산 당신들이 어디서 만들 거예요? 다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하는 건데. 당신들이 나서서 지금 뭐하는 거예요?”

"당신들이 나서서 지금 뭐하는 거예요?"

“아니요. 오히려 오페라단 예산은 올해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돈이 없는 게 문제가 아니라 예산 집행의 우선 순위를 잘못 두고 있는 게 문제죠.”

“이봐요. 내가 서울시향에 있는데 거기서 일 년에 5~6명씩 해고당해요. 여기만 해고당하는 사람들 있는 거 아니예요. 지금 온 나라가 다 그러구 있는데, 합창단 하나 없어졌다고... 이 사람들이 여기까지 와서...그리고, 도대체 나더러 뭘 하라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에 서명하라구?”

우린 오페라 바스티유에서 단원들이 서명한 서명지를 보여주며, 거의 모든 합창단원들이 서명했다, 한국에서 국회의원들이나 정부에서 오로지 프랑스에서 진행되는 서명운동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프랑스에서의 지원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 같다고 말했다. 6페이지에 빼곡히 담긴 바스티유 오페라단원들의 서명을 보면서도 그의 태도에는 티끌만한 변화도 없었다.

“그거 백날 해봐야. 아무 소용없어요. 내가 한국 가서 이거 알아 볼 거예요. 오페라 단장한테 물어보죠. 어떻게 된 건지.”

그의 말이 맞다. 그가 마지못해 형식적으로 서명을 (할리도 없겠지만) 한다한들 아무 의미도 없다. 이제 그의 본심을 알았으니, 우린 더 기대할 것이 없다. 그리고 그가 사건의 정황을 묻게 될, 해고 당사자 오페라 단장한테서 어떤 대답이 나올지는 너무나 뻔했다. 그는 그들의 세계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을 터이다.

"촛불시위, 그게 말이나 됩니까"

늦은 밤이니 빨리 투숙할 것을 종용하는 동행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까지 자신의 궁금증을 해결하고 싶어했다. 우리가 초반에 자기 소개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시 한 번 남의 일을 위해 한밤중에 그에게 달려온 우리를 외계인을 보듯하며, 왜 남의 일에 나서서 이러고 있는지를 알고 싶어했다.

우리는 운동을(militant)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국 오페라의 발전을 위해, 예술가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함께 일하는 세상을 위해서 연대하고 있다고 말하자, 그제서야, 그는 우리의 정체를 알아차렸다는 듯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까, 당신들이 그 100만 명이나 촛불 들고 거리에서 서서 미국 쇠고기 안 먹는다고 시위하는 그런 사람들이란 말이죠? 40년 전에는 미국에서 뭐 안 갖다주나 하면서 손벌리고 있더니, 이제 와서는 미국산 쇠고기 안 먹겠다고 촛불 들고 서 있는 그 사람들. 그게 옳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게 말이나 되는... 알았어요. 알았어.”

촛불을 든 시민들을 천민으로 묘사한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의 망언이 언뜻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그의 말투와 어휘는 한나라당 의원들에게서 익히 접해오던 그것과 닮아있었다.

“그렇게 불쌍한 사람들 돕고 싶으면 저기 아프리카나 가서 도와줘요. 여기서 그러지 말고.”
이 대목에선 우린 둘 다 경악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저 사람이, 그토록 수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아온 위대한 예술가 정명훈인지, 바로 조금 전 우리의 영혼을 황홀하게 감싸주던 음악을 선사하던 그 지휘자가 맞는지.

정명훈과 주성영

잠시 멍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과 같은 예술가들을 거리의 불쌍한 걸인 취급하는 저 인간은 과연 누구란 말인가. 내 눈빛에는 어쩔 수 없이 그에 대한 무한한 경멸이 담길 수 밖에 없었다. 그 눈빛을 읽었는지, 정명훈은 제대로 역정이 났다.

“도대체 제 정신을 좀 차리세요. 공부 좀 하란 말이야. 세상이 그런게 야니야. 이 계집애들이말야. 한 밤 중에 찾아와서.”

비속어까지 서슴지 않는 그를 향해, 나는 그에게 제대로 적합한 말인 “정신차리라”는 말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당신이나 정신 차리세요!”

그는 거의 우리를 때릴 듯이 씩씩거리며 “불쌍한 사람들 돕고 싶으면 아프리카에나 가라구.” 다시 한 번 아프리카를 들먹이며 코앞까지 다가와서 소리 질렀고, “기도하라구, 기도” 하는 말을 끝으로 올라갔다.

그의 마지막 말.
“기도하라”.
그에게도 이명박이 서울을 봉헌했던, 그래서 그를 도왔던 하느님이 있었나보다.

"기도하라구, 기도"

나와 성악하는 학생은 분노와 충격으로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간신히 추스르며 걸었다. 그녀는 울었다.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던 그 예술가가 저토록 상상할 수 없는 사상의 오물을 잔뜩 머리에 품고 있다는 그 사실을 우린 소화하기 힘들었다. 예술 전체에 대해, 인생 전체에 대해 거대한 사기를 당한 듯한 기분이었다.

   
  ▲ 지난 3월 문광부 앞에서 복직촉구 집회 중인 국립오페라단원들(사진=공공노조)

문득 호텔로 오기 전, 샤틀레 극장 주변 까페에서 만난 라디오 프랑스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말이 생각났다. 우린 거기서 만난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한국에서의 사태를 설명했고, 그들은 모두 경악하였으며, 적극적으로 서명운동을 전개해줄 것을 약속했다.

우리가 혹시 정명훈에게 당신들이 동참을 호소할 순 없느냐는 제안에는 단호히 불가를 표명했다. 정명훈은 정치적 사안에는 늘 거리를 두다는 거였다. 그러면서 곁들이는 말이, “당신들 지금처럼 파업하면 한국에선 감옥에 가.”라고 정명훈이 라디오 프랑스 단원들에게 말했다는 거다.

그동안 어떻게 저 고매한 예술가가 이명박과 손발이 맞아 수년간 파트너십을 이룰 수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한 방에 해결되었다.

그는 세상에 태어나서 도대체 어떤 책들을 읽었을까? 그는 연대나 인권, 노동자의 권리 따위의 개념을 송두리째 결핍하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합창단원이나 오케스트라단원은 그저 자신의 위대한 예술을 위한 사소한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듯한 발언. 다 갖다 버려도 다음날 얼마든지 손쉽게 충전할 수 있는 건전지라도 되는 듯.

그 사고의 경박함은 이명박, 유인촌, 이소영과 그가 한 치의 차이도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사상의 '오물종합세트'

물론 우리가 늦은 시간까지 그를 기다린 결례를 범하긴 했다. 그러나 조용히 옆의 로비에서 기다렸고, 그가 우리를 마주친 시간이 1시였던건, 그들의 긴 만찬이 끝난 시간이 1시였기 때문이었다. 또한 짧은 시간에 자료를 읽어야 할 그가 한국어로 된 자료를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그는 초반에 “한국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약속도 안 잡고 무례하게 무조건 사람을 기다리고 끼어든다”면서 우리를 한참 나무랐다. 언짢았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가 잠시 3분 정도 우리의 설명을 듣고, 알겠다 읽어보겠다고 하며 서명지를 들고 객실로 올라갔어도, 우린 그의 수면을 단지 3분 정도 지체시킬 뿐이다.

긴 얘기를 한 건 그였고, 우린 그가 쏟아내는, 사상의 오물 종합선물세트 같은 공포극을 어이없이 바라보았다. 천국에서 지옥으로 우린 너무 빨리 넘어갔고, 그것의 연출가가 같은 사람이란 사실에서 정신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은 엄청난 혼란을 느꼈다.

1994년 바스티유 오페라에서 부당하게 해고당했을 때, 그는 노조의 지원을 받아 함께 싸웠고 그래서 승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현재 지휘하는 서울시립합창단에는 노조가 없다. 그가 취임하면서 “음악하는 사람들이 무슨 노조냐”면서 노조에 대해 못을 박았기에 단원들은 감히 노조를 만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무노조 경영 삼성과 비슷하다.

그가 현재 지휘하는 라디오 프랑스 오케스트라에도 그가 지휘했던 바스티유 오페라에도 강력한 노조가 있다. 한국에서 가진 제왕적 권력이 거기에선 당연히 없는 탓이다. 2007년, 오페라 바스티유는 열흘이 넘는 강도 높은 파업을 하기도 했다. 무려 4만9천명에 달하는 고객들에 대한 환불사태가 있었다.

노조 안되는 한국 예술가, 노조 되는 프랑스 예술가?

이곳의 예술가들이 지금의 안정적인 대우를 받으며 -합창단 연봉은 한화로 약 8천5백만원 내외, 오케스트라 단원은 1억원 내외이며 은퇴까지 맘 편히 일할 수 있는 정규직이다 - 세계 최고 수준의 음악을 안정적으로 선보일 수 있었던 것은 예술노동자들에게 자신의 창작기반을 위협하는 경영자의 어떤 요구에도 당당히 맞설 수 있는 강력한 연대와 투쟁의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며 그들의 권리를 인정하고 정당히 대우하는 이 사회의 예술노동자에 대한 존중이 수반되었던 까닭이다.

가장 강력한 지원을 기대했던 정명훈을 통해 전원해고 사태를 가능하게 했던 문화 통치자들의 사고의 핵심을 오히려 들을 수 있었다. 문득, 그가 정직하고 양심있는 예술가였더라면, 지금까지 한국에서 일어난 그 수많은 문화예술계에서의 사건에서 그 어떤 입장 표명도 하지않고 지내올 순 없었을 것임을 상기시킬 수 있었다

정명훈은 아름다운 소리를 이끌어내지만 그 소리의 구체적인 주체는 연주자들과 합창단들이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한 예술가로 대우하지 않고, 소모품 정도로 간주하는 그는 더 이상 존경을 바칠 수 있는 예술가가 아니다.

그는 권력자의 그늘 아래 안거하면서, 그가 나눠주는 달콤한 권력을 마음껏 휘두르며, 세상의 어두운 구석에 대해서는 외면하는 우리 시대가 만든 신화의 슬픈 이면이었다. 우리가 쇼크를 받는 수고를 감수했을지언정, 그럴싸하게 포장된 무관심을 드러내기보다, 촛불 발언부터 '계집애' 발언에 이르기까지 낱낱이 자신의 가면을 벗어준 정명훈이 차라리 고맙다.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줄 막강한 권력자의 마술지팡이 같은 것은 없다. 그 어떤 친절한 권력도 우리에게 보다 나은 삶을 선물해 주진 않는다. 예술노동자들 스스로가 보다 넓은 연대의 틀에서 그것을 쟁취하려고 나서지 않는 한. 연대의 정신으로 적극적으로 서명에 동참했던 모든 프랑스 예술가들이 정명훈의 발언을 접하였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몹시 궁금하다.

정녕 예술은 인간을 구원할 수 없나

 

정명훈이 일하는 라디오프랑스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그가 아프리카 아이들과 함께 웃고 있는 사진이 보인다. 유네세프 친선대사로 있으면서 그는 여기저기서 불우한 아이들을 위한 음악회를 가지기도 했다.

불우한 아이들을 위한 콘서트를 여는 자비를 베풀수 있을지언정, 수십 명의 예술가들이 일을 할 수 있는 터전을 빼앗기고 거리에 나앉아도 채워 넣을 예술가들이 얼마든지 있으니 아무상관 없다는, 구세계의 모순에 온전히 빠져있는 자기중심의 거룩한 예술가. 어마어마한 질문 하나가 남는다. 정녕 예술은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단 말인가.

 
2009년 03월 23일 (월) 00:15:11 목수정 webmaster@redia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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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승리

진상조사위 2차 회의를 3. 19. 오후  7시부터 중앙당사에서 개최하였습니다.

위원 전원이 참석하여 박미정 당원과 경기도당 임원들의 서류 및 진술을 청취한 후 위원들의 전원 찬성으로 다음과 같이 권고하기로 하였습니다. (이 건 인사문제와 관련하여 경기도당이 혼선을 야기하였다는 전제하에 권고를 한 것입니다)

1. 경기도당은 이 건 인사문제와 관련하여 박미정 당원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표한다.

2. 박미정 당원은 경기도당에서 상근자로 일하고, 급여 등은 중앙당 또는 경기도당 상근자에 준하여 처우하며, 경기도당은 박미진 당원에 대한 정식 채용 절차를 조속히 밟을 것을 권고한다.

3. 중앙당은 파견당직자 관련 규정 및 시,도당 상근자에 대한 근로계약서 등 처우에 관한 여러 규정을 마련하여 인사 등이 원활하게 운영되도록 노력한다.

4. 박미정 당원 급여 문제에 대하여 논의하여 1, 2월 및 향후 지급할 기준을 권고하였습니다. 

위와 같은 권고안을 박미정 당원이 수락하고, 경기도당 김형탁 대표는 회의 말미에 구두로 사과하였고, 박미정 당원은 사과를 수용하였습니다. 김형탁 대표는 진상조사위원회의 권고를 조속히 도당 운영위원회를 개최하여 수용하는 방향으로 노력하기로 하였습니다. 

이 사건 문제에 대하여 통 크게 결단을 내려 분쟁을 해결하고 미래를 위하여 힘차게 출발하는 경기도당과 진보신당이 될 수 있도록 관계되는 동지들의 이해를 깊이 구하면서 여러 고심 끝에 권고안을 제출한 진상조사위원회의 결론을 수용할 것을 바랍니다.

진상조사위원회 김상하 위원장이 정리하여 제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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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신당 - 절망

1%대의 지지율을 받는 정당 안에서, 힘 있는 사람들에게 줄서고, 눈치보고,

 

그러면서 약자는 또 그대로 당하고 . . . . .

 

그러고 있다. . . . .  

 

진보의 절망이다.

 

출투를 하는 내게서 일을 빼앗고

 

부당해고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고

 

2월 임금 체불 17일차다.

 

임금 체불도 아주 당당하게 요구하더라. . . .

 

그리고 이 모든 행위에

 

그럴싸한 논리를 갖다 붙인다.

 

어제는

 

지역 정치를 한 자리씩 한다는 분들이 모여

 

관료주의의 끝장을 보여주었다.

 

모든 것에 절차가 우선하고,

 

절차가 맞네 , 안 맞네를 1시간동안 회의하고 그러다가

 

유감 표명을 하는데 당사자에게 하네, 당원에게 하네,

 

당사자에게 하면 우리가 책임을 독박 쓰네 그러다가

 

아무 결론도 없이 끝났다.

 

그 결과

 

나는 하루하루 아프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더 보내야한다.

 

이런 당의 모습을 봐야하다니

 

절망의 나날이다.

 

하루빨리 이 일이 정리되고

 

탈당했으면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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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체불 12일차

이 싸움을 해오면서 그들이 내게 주는 메시지는

너는 무능하다.

그러므로 이런 대우를 받아도된다.

 

사측에서는 아직도 내 2월 임금을 주지 않고있다.

주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일뺏기

부당해고

임금체불

 

정말 훌륭하다.

 

난 스트레스가 심해서

몸이 많이 안 좋다.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난다.

 

2월 임금은 줘야지...

그래야 밥도 사먹고 담배도 피우고 출퇴근도 할 수 있는데....

 

사측에서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굶어죽는 꼴을 봐야 속이 시원하려나?

 

너무 화가난다.

너무 화난다.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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