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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워낭소리

늙어가는 것은 슬프다.

죽어가는 것은 슬프다.

홀로 있는 것은 슬프다.

 

한 생명의 죽음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은 그것이 언제이든, 그것이 어떤 생명이든 나를 고통스럽게합니다. 영화를 보는 중간중간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소의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극장의 그 한 구석 자리가 너무 고통스러워 뛰쳐나가고 싶었습니다.

 

소 등 곳곳에 생긴 상처에는 파리가 꼬이고 그 안타까운 등을 70년 세월 흙을 파오던 고된 노동의 손이 어루만집니다. 늙은 소와 늙은 할아버지.

 

30년을 함께 일하고 어느새 함께 병들어 죽음을 앞에 둔 old partner.

고통스런 소의 죽음앞에 왜 한 줄기 눈물조차 흘리지 않고 왜 한 줄기 쇳소리 한숨조차 쉬지 않으냐고 할아버지께 따져 묻고싶지만 그것이 그렇게 살아온 그네들의 인생임에 어쩔수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노동하고, 살아온 사람들이 왜 이렇게 가난하게 병들어 살아야 하는 걸까요?

평생을 새벽부터 밤까지 흙파는 고된 일을 하며 그저 정직하게 농약 한 번 안 치고 살아온 이 소와 할아버지가 왜 이렇게 가난하게 살아야만 하는 세상일까요?

 

영화가 말해주듯, 물질 중심적이고 탐욕적인 우리의 삶이 가난한 그들의 삶을 더욱 고통으로 몰아넣는 것은 아닐까요? 남보다 내가 더 잘 살아야한다. 나 하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 더 부유해 질 수록 더 행복하다. 정말 우리는 남보다 내가 더 많이 가지면 행복할까요?

 

우리의 교육 속에서는 어떤 가치관을 가르치고 있나요?

남보다 더 좋은 점수를 받아 남보다 더 좋은 대학에 가야 남보다 더 좋은 직장을 갖고 남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질 수 있고 그래야 내 삶이 행복하다......

 

끊임없이 경쟁하고 줄세우며 상대를 짓밟는 이런 교육이 되풀이 되는 한 열심히 정직하게 사는 사람들은 여전히 고통 받으며 살아가야 할 겁니다.

 

우리, 사람사는 세상 입니다.

좋은 대학을 안 나와도, 영어를 잘 못 해도, 열심히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행복한 세상이 되야하지 않을까요?

 

우리, 사람사는 세상이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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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

약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

 

약자를 위한 조직도 없다.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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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8

오늘 오후.

직장 동료가 어떤 음악을 틀어놓고 이런 얘길했다.

 

일본에 무슨 그룹이 있는데

1999년에 여자 보컬이

무슨 병으로 죽었다.

 

 그 말을 듣는순간

난 여자가 부러웠다.

 

죽었다는게

부러웠다.

 

이런 느낌

오랜만이다.

 

세상에서

무엇을 배워야할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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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해~

오늘도 아침일찍 출근했다.

메일 확인하고 . . .

레디앙, 참세상, 프레시안 등 언론사에 기웃거리다가. . . .

할 일이 없다.

 

이거 참 심심하다.

여전히 나에겐 일을 주지 않고있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주지 않을테고

 

심심해. . . .

빨리 집에가서 자고싶다.
출투를 시작한 이후

난 부쩍 삶의 의욕을 잃고

많이 게을러졌다.

 

그냥 자고 싶다.

계속계속~

 

참 권력이라는게 . . . .

그와 나는 똑같은 인간인데. . . .

그는 권력을 가지고 있고 나는 아무힘도 없다.

그의 지시에 따라서 동료들은 내게 일을 주지 않고

(믿었던 동료의 이런 모습을 봐야하는 것도 상처다

그렇다고 그들을 나쁘다고 비난할 수도 없다)

힘없는 나는 뭐 그냥 당하고 있어야지

그와 나는 똑같은 인간이 아닌가보다.

 

아까는 날 도와주시기로 한 분이 지지방문(?)을 해주셨다.

참 고맙다.

그분들이 참 힘이된다.

자기 일이 아닌데도 자기일처럼 분노하고, 기꺼이 도와주겠다고 팔 걷어부치시고

참 고맙다.

나는 또 그분들을 어떻게 도와야할까.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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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또 뭐하지?

나는 새로운 직장에 정식채용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출근을 하기로 했다.

이른바 출근 투쟁

 

사측에서는 내게 일을 주지 않는다.

다들 일에 열중하고 있는 사무실.

내 주 업무는 청소와 설거지다.

그리고 할 일이 없다.

 

인간적인 모멸감을 느낀다.

마치 내가 무능한 잉여인간인 것처럼 느끼게 한다.

 

회의시간, 사측은 내가 맡고있던 업무를

빨리 인수받아서 하라고 동료에게 재촉한다.

 

내 곁에는 나뿐인 것 같다.

 

매일 나와서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고

내게 호의롭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고

 

내게 일을 주지 말라고 지시한 사람은

웃으며 사람들을 만나고. . . .

 

모멸감을 느낀다.

나는 무능한 인간인 것 같다.

 

언제까지 이렇게 갈지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지. . . .

 

내일은 또 출근해서 뭘 할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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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하니까 가난한거다.

두 달동안 월급 육십만원을 받고 일했다.

이제나 저제나 정식채용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결국 난 일자리를 잃었다.

무능해서

이런 개같은 일이

 

핸드폰 요금 18만원과 카드 값 60만원을 내지 못해 둘 다 끊겨버렸다.

그들의 말이 맞았다.

무능하니까 가난한거다.

그들의 말이 맞는 세상,

무능한 20대 여자는 어찌살라는거지?

살지 말라는건가??

 

다음주 월요일이 되면 난 또 이력서를 프린트해서 사진을 붙이고

여기저기를 찾아다니면서 면접을 보러다닐 것이다.

급하다.

당장 생활비가 없다.

당장 밥값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직장인지 제대로 알아볼 새도 없이(알아봐봤자 별수도 없겠지만)

나같이 무능한 인간을 고용해주는 직장에 새 출발의 기대(이번에는 잘 될거야!!) 같은 것을 안고 취직하게 되겠지.

하지만 그렇게 얻은 일자리가 어떨지는 뻔하다.

저임금, 중노동, 고용불안, , , , ,      기타등등 , , , ,

또 힘들게 다니다가.

육개월쯤 후에 그만두고.

또 실업자가 되어.

생활고에 시달리며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으며 돌아다니다가.

비슷한 직장에 들어가서.

힘들게 다니다가.

육개월쯤 후에 그만두고.

실업자가 되어

생활고에 시달리며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으며 돌아다니다가.

비슷한 직장에 들어가서.

.

.

.

.

.

.

.

.

.

 

 

 

대딩들이여!! 나같이 살기 싫으면 열심히 공부하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자격증을 따고

토익 만점을 받고 올 A 성적을 받고

어학연수도 다녀오라!!

등록금이 비싸다고 투정부릴 시간이 없다!

죽도록 공부하라!

그리하면!

나보단 쪼끔 나을 것이다 ㅎㅎㅎㅎㅎㅎ

 

 

 

-미안합니다. 갑작스런 실직의 충격으로 제정신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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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마음이 아프다

울산에서는 100m 높이의 굴뚝위에서 두 동지들이 추위와 배고픔에 고통받고 있고

 

제발 .......  건강히 내려오시길.........

 

가자지구에서는 어린이들이 매일 죽어가고 있다.

 

이 끔찍한 학살의 상처는 그네들에게 돌이키지 못할 인생의 고통으로 남을 것이다.

 

 오늘 아침 전해받은 시사인에서는 청년 실업으로 인해 20대 범죄와 자살이

 

증가하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

 

너무 마음이 아프다.

 

슬프다.

 

내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에

 

더 아프다.

 

나 자신에게 어떠한 고통스러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때에도

 

세상은 참 고통스럽다.

 

슬프다.

 

슬프다.

 

나는 어쩌면

 

어쩔수 없이 우울증을 달고 살아야하는 사람인가보다.

 

아니 어쩌면

 

어쩔수 없이 우울증을 달고 살아야하는 세상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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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행美行 - 7차> 예비 비정규 노동자, 10대와 20대를 만나다(프레시안)

"꿈이요? 안 가지는 게 차라리 나아요"

[美行] 예비 비정규 노동자, 10대와 20대를 만나다

 

이 기사는 "미행(美行) :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미디어 행동 네트워크"의 첫 번째 프로젝트인 지역 순회 사업, '미디어 게릴라들이 비정규 노동자들을 만나다'의 일환으로 작성되었다. '미행'은 블로거, 만화가, 노동자, 작가 등 다양한 미디어 생산자들이 함께 모여 비정규 노동의 현실을 고민하는 프로젝트 팀이다. 미행의 지역 순회 사업은 진보신당과 함께 진행된다.

지난 12월 26~27일 '미행' 팀을 따라 경북 구미와 경산에 다녀왔습니다. 10대 실업계 고등학생 친구들과 20대 대학생들을 만나 학교생활과 비정규직 등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어요. 저 역시 그 친구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학교생활을 했기 때문에 많은 부분 공감하고 같이 답답해하고 그랬답니다.

저는 '88만원 세대'입니다. 대학을 나왔지만 지방대 예능계열 학과를 졸업했고, 별다른 계급상승의 욕구도 없었기에 여성 고졸 학력 직업들과 알바를 전전했습니다. 늙으신 부모님한테 삐대고 살만치 뻔뻔스러운 성격도 못 되서 급한 대로 이 일 저 일 해댔죠. 당장 먹고 살 돈이 없는데 그럼 어떡해요.

그 결과, 평균 4개월의 근무기간, 평균 90만원의 월급, 4대 보험? 뷁!!

이런 초라한 사회생활의 성적표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계속된 실직으로 인한 불안정한 생활과 빈곤 때문에 꽤 심각한 우울증에 아주 심각하게 시달리기도 했었죠. 지금 20대들이 처한 이 곤란한 경제 상황은 그들의 주머니 사정이나 인생 설계에만 악영향을 미치는 게 아닙니다. 정서적인 측면에 주는 상처도 커요. 사회 부적응, 우울증, 대인 기피증 등 여러 신경 질환과 자살 충동으로 젊은이들을 몰아넣습니다. 흔히 '우리 사회의 미래'라고 거창하게 칭송받는 젊은이들이 병들어가고 있는 겁니다.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특별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 이상 제가 그랬던 것처럼 질풍노도의 청년기를 보낼 운명을 앞두고 있는 10대, 20대 친구들을 만나고 왔어요. 이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그 짧지 않은 시간 내내, 하루 종일 편의점에 서서 시급 2,500원 받으며 식사도 제공받지 못 하고 지긋지긋하게 밀려드는 바코드들을 찍어대던 그 시절 나의 악몽, 등록금을 벌기위해 끊임없이 강도 높은 노동을 감내해야했던 내 친구의 악몽, 학자금 대출로 졸업 전부터 1000만원, 2000만원씩의 빚을 지게 되는 동기들이 하나 둘 씩 늘어가는 우리의 악몽이 망령처럼 내 머릿속을 떠돌았습니다. 그들과의 만남은, 그래서, 그렇게도 힘이 들었습니다.

▲"지금 20대들이 처한 이 곤란한 경제 상황은 그들의 주머니 사정이나 인생 설계에만 악영향을 미치는 게 아닙니다. 정서적인 측면에 주는 상처도 커요." ⓒ프레시안


구미. 무엇보다 죽은 독재자의 고향이라는 사실 때문에 매우 보수적 일 거라 예상되는 곳이었는데, 그 지역의 실업계 고교생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교복을 입은 남학생 두 명, 커플인 듯 어울리는 한 쌍, 중소기업에서 인턴으로 근무 중인 남학생 한 명, 고등학생 인 줄 알았던 젊은 취업 담당 선생님 한 분이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고졸이란 최종 학력으로 취업을 해야 하는 현실을 맞닥뜨리고 있는 이 친구들은 비정규직을 바로 자신들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비정규직이란 상시적인 고용불안 그 자체. 구조조정이 단행될 시 가장 먼저 희생되는 노동 약자들로 기억되고 있었습니다. 한 친구의 부모님께서 그런 고용 불안에 시달리느니 차라리 공사판 노가다를 하는 것이 낫다고 말씀하셨다는 얘기. 빈부가 고착화 된 사회에서 가계를 통해 대물림되는 비정규직의 아픈 모습입니다.

현실에 대해 너무나 냉정하게 인식하고 있는 이 친구들과의 대화 끝에 우리는, 우리들의 잊혀진 로망인 10대의 감성 같은 것에 굉장히 목말라졌습니다. 그래서 물어보았습니다.

"꿈이 뭐에요?"

돌아오는 답변, 꿈은 꾸어봤자 어차피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다. 차라리 현실을 빨리 직시하는 게 낫다. 먹고 살기도 벅찬 세상에 꿈은 필요 없다. 평생 가지고 갈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싶다.

취직, 먹고 사는 것, 이것 외에는 무엇도 바랄 수 없는 10대들. 우리 사회는 왜 젊은 그들에게서 꿈을 약탈했을까요? 그리고 언제까지 우린 이런 약탈에 고요히 동조하고만 있을까요? 꿈은 사치라는 젊은 그들에게, 어떤 미래가 있을까요? 우리 사회는, 미래가 있을까요?

구미의 전교조 사무실에서 10대들을 만나고 우리는 밤길을 달려 경산에 이르렀습니다. 대구 지역의 대학생들을 만났어요. 인터뷰에 응해 준 다섯 명의 대학생들 가운데 연극의 꿈을 가진 한 친구 외에 누구도 졸업 후 진로에 대해서 '이렇다'라고 말하지 못 했습니다. 모두들 그저 막막하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거나 학원 강사를 하고 있는 선배, 동기들의 얘기만 늘어놓을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모두들 그저 막막하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거나 학원 강사를 하고 있는 선배, 동기들의 얘기만 늘어놓을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프레시안
곧이어 2008년 대한민국 대학 사회의 숨 가뿐 일상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등록금이 매년 가파르게 오르기 때문에 일단 학교에 입학한 이상 최대한 빨리 졸업하는 게 가장 돈이 적게 들게 되죠. 그래서 남학생들은 종종 대학 4년 과정을 먼저 마치고 군대에 입대합니다. 어떤 가난한 학생들은 휴학을 해서 등록금을 벌어 수업을 듣고, 돈이 떨어지면 또 휴학해서 등록금을 번 후 또 학교를 다니는 식으로 대졸 학력 쟁취를 향해 진격하고 있고요. 비정규직 노동자인 아버지와 알바를 하시는 어머니께서 당신들의 노후에 대한 준비는 전혀 못 하시고 사범대를 다니는 자신에게 마치 투자하듯 학비를 대주신다는 하소연(?). 이렇듯 비싼 대학 졸업장을 딴 지 채 몇 년 안 된 저로서도 새로 듣는 얘기가 뭔가 하나씩 나올 때마다 '이럴 수도 있구나'하는 흥미진진함에 어느새 피곤함도 잊어버리고 열심히 경청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학교를 졸업한 후 고 몇 년 사이에 또 대학생들의 형편은 더 악화 된 듯 보였습니다.

2006년도에 편의점에서 시급 2500원을 받으면서 야간 알바를 했다는 여학생의 이야기는 참 화나더군요. 어떻게 밤새 일을 시켜놓고 시급 2500원을 줄 수 있는지. 또 사장에게 최저 시급을 요구해봤자 결국 싫으면 나가라는 얘기밖에 들을 수 없는 힘없는 알바생의 현실이 토해져 나왔습니다.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비정규직이 나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열심히 노력하면 구질구질 하기 짝이 없는 비정규직 따위는 되지 않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어요. 다른 대학생들이 다 실업자나 비정규직이 될지라도 나는 자격증 많이 따고, 토익 공부 열심히 하고, 학과 성적 관리하고, 거기에 보험으로(!) 공무원 시험도 준비하고 있으니까 말이죠. 어떻게든 나 하나는 잘 먹고 잘 살 수 있게 될 거라고 맹목합니다. 이것은 힘든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마음과 대학생이라는 특권 의식에서 발로하는 것입니다. 사방 천지에 널려있는 고깟 대학생이 뭐라고 말예요.

보다 깊은 원인은 우리 모든 국민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는 공교육에 있습니다. 초·중·고 12년의 공교육 과정 동안 공동체, 연대라는 가치보다는 경쟁, 우위, 승리라는 가치만을 배워온 결과입니다. 이 치열한 경쟁에서 나 하나만 살아남으면 된다는 사고가 머릿속 깊숙이 박혀있는 거죠. 저처럼 경쟁에서 도태된 다수의 삶은? 물론 알바 아닙니다. 그치들도 자기들이 다 각자 알아서 살아가는 거죠.

베이징 올림픽이 한창이던 그 때 어느 일간지에 이런 만평이 실렸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들의 기쁨은 내 일처럼 함께 기뻐하고, 기륭 노동자들의 고통은 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상관없다는 듯 무심한, 사람들이 자기 편한 대로 들이대는 이중 잣대에 대한 슬픈 꼬집음. 이 편협한 이중 잣대의 가장 큰 피해자는 20대인 당사자이면서도 끝내 그 편협함 안에서 스스로들에게 계속해서 상처를 입히고 있는 그들입니다.

모든 이야기가 끝났습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 친구들도 당장 먹고 살기위해 아무데나 취직해서 고용불안과 저임금에 시달리며 그냥 하루하루 버텨내는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나처럼 꿈도 희망도 없이 매일 술이나 퍼마시며 지내게 될 날이 오게 되지 않을까. 마음 한 켠이 어두워졌습니다.

취업을 앞둔 그 여고생이 월급 40만원을 받고 미용실에서 일하지 않게 되길 바래봅니다. 유아 교육을 전공한 그 여대생이 월급 60만 원을 받고 어린이 집에서 하루 종일 아이들을 보살피는 중노동에 시달리지 않게 되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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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정 블로거·진보신당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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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아름답다.

저는 지금 비행기 안입니다.

제주도 가는 길이에요.

아침이 밝아오고 있는 이 시간, 비행기 한 구석의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따사로운 햇빛을 받으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햇빛에는 참 오묘한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새벽 4시에 일어나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잠도 거의 못 잤습니다.

공항까지 오는 차안에서 몹시 피곤하고 기분도 별로였습니다.

2박 3일동안 잘 지내고 올수 있을까 싶었죠.

그런데 조금전에, 투명한 아침 햇살이 내 얼굴 표피에 와 닿자마자 그냥 또 이유없이 미소가 번지고 맙니다.

 

비행기 탑승 과정에서 많은 20대 들이 일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건 정말이지 직업병 같은거라 어쩔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어떤 고용형태로 어떤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지 궁금해지더군요.

고객에게 품격있는 서비스를 제공해야한다는 강박관념때문에 겉으로는 예쁘게 화장한 얼굴로 친절한 척

하고 있지만 사실 그네들 역시 비정규직 20대의 벅찬 삶을 끌어안고 버둥거리고 있지나 않은건지 궁금해졌습니다. 

 

비행기가 이륙했습니다. 창 밖 세상이 대각선으로 기울었습니다.

저 아래로 세상이 보입니다.

문득 김포 공항 이착륙 항로에 있는 기륭 골목이 떠올라 저 밑에서 거기 함 찾아볼까?  하는 이상한(?)생각도 했습니다.

비행기는 금방 구름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음~ 저는 지금 하늘을 날고 있습니다.

비행기가 좌회전(?) 우회전(?) 할 때마다 약간씩 무섭네요.

 

제주도입니다!!

바다입니다!!!!  그토록 오랜시간 그리워했던, 마냥 그리워만 하게 될 줄 알았던 푸른 빛 바다입니다.

 

제주도에 도착하고 우린 제일먼저 4.3 유적지 북촌 너븐숭이에 갔습니다. 푸른 바다를 등지고 서있는 위령비와 아픈 역사 이야기를 들으니 가슴이 아픕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4.3사건이 국가 공권력이 저지른 비극적인 사건임을 인정하고 제주도민께 머리숙여 공개 사과를 했다는 설명이 들려옵니다. 새삼 노무현 아저씨가 그리워집니다. 그때가 그립습니다. 너무 너무. . . . .

 

그리고 우린 돌하르방 공원에 갔습니다.

숲을 따라 나무와 작품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술가들이 제주도의 상징인 돌하르방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조각해 놓았습니다.

 

공원에 들어서자마자 돌하르방의 코를 만지면 아들을 낳는다는 유언비어가 빛의 속도로 살포됩니다.

이동갈비 사장님이 유난히 아들에 집착하시는군요.

 

오호라~ 남근석이 나왔습니다.

아저씨들이 무지하게 좋아합니다.

근데요. . . . 남근석이니까. . . . . .     여자들이 좋아하는게 자연스러운 것 아닌가요?

음~ 우리 나라에 게이 인구가 이렇게 많았나 새삼스러워집니다.

아니면 돌로 만든 그  다.른.놈.의.물.건.을 보고 우리의 아저씨들이 갑자기 벅차오르는 자신감(!)에 그토록 기분이 좋아들 지셨던 걸까요.

 

공원을 돌아보며 마음이 치유됨을 느낍니다.

숲과 나무와 돌하르방과 여러 작품들이 어릴 적 한 두번 느껴보았던 엄마의 따뜻한 품처럼

나를 안아줍니다.

제주도의 아름다운 자연에 대한 예술가들의 애뜻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매미 떼의 습격을 받아서 쓰러졌다는 한 가녀린 나무를 어떤이의 작품이 받치고 있습니다.

어떤이의 거친 손으로 나무를 자르고, 다듬고, 못질을 한 그것은 해학적인 사람의 모양을 하고

그 한쪽 손으로 나무를 단단히 잡아받치고 있네요.

그저 맥없이 쓰러진 얇은 나무 하나, 한가닥 숨쉬고 있는 생명을 살리겠다고 어떤이는 열심히

그 나무사람을 만들었을 겁니다.

 

저는 그래서 예술가들이 참 좋아요.

우리들 사는 세상의 아픔, 상처, 고통들을 그들은 아름다운 작품으로 표현해냅니다.

마음 한가득 따뜻함 품고 공원을 빠져나옵니다.

 

다음에 우린 성산일출봉에 갔습니다.

너른 잔디밭, 저 위에 봉우리, 맑은 바람, 바다.

행복했습니다.

이럴때 사랑하는 그이가 내 곁에 있다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요.

그의 잘나지 못한 얼굴, 희미한 채취, 몹시 너털거리는 웃음, 나를 안아주던 그 단단한 가슴이 생각났습니다. 전화로나마 목소리만 들어도 이토록 좋은데. . . . . .   보고싶다.

 

다음 코스인 승마장 가는길. 제주의 시골풍경이 펼쳐집니다. 검은 흙, 당근 밭, 검은 돌담.

뭍에서만 자란 내겐 너무나 이국적인 풍경입니다.

오후 햇살을 받아 금빛으로 반짝이는 저 많은 억새들을 하염없이 바라봅니다.

말에 올라탔습니다.

눈앞에 푸른 초원이 있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그저 또 하염없이 바라봅니다.

어쩜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요. 

 

승마장에서 카우보이 모자를 줬어요. 그 모자를 쓴 제 모습이 몹시 미소년스럽습니다.

쉽게 볼 수 없는 이 미소년 스타일의 저를 간직하고 싶어서 나른한 오후 햇살받으며 셀카질에 빠져듭니다. 음~ 무지 만족할만한 예쁜 소년의 사진이 나왔습니다. 나름 또 혼자 좋아라합니다.  

   

첫째날 해가 저물었습니다.

술을 좀 많이 먹고^^;

좀 늦게잤습니다.^^;;

 

다음날 아침입니다.

피곤함과 귀찮음에 아침도 거르고 주차장 버스앞에 집결했습니다.

바람이 붑니다.

참 따뜻하고 부드러운 바람이 붑니다.

그냥 또 기분이 좋아져서 괜히 혼자 통통 거리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소인국 테마파크'라는 데를 갔습니다.

우리의 기행과 어울리지 않게 참 통속적인 관광지입니다.

입구부터 저는 불만이 많았습니다.

들판에 살고 있던 숲과 갖가지 생명들 다 쫓아내고

거기다 콘크리트 깔고 졸속으로 만든 이상한 미니어처들 구경이나 하라니,

그리고 출구와 연결된 기념품점에 들러서 돈이나 펑펑 써대게하는 

이런데가 참 싫었습니다.     

 

다음에 우린 주상절리에 갔어요.

용암이 바다와 만나 급속도로 식으면서 다각형 모양으로 쪼개졌다는군요.

정말 흔히보기 힘든 돌의 모양이었어요.

 

사람들이 주상절리를 구경하기 쉽도록 높은 곳에 나무로 만들어놓은 전망대에서서

나는 가만히 바다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저기, 저 멀리, 아득한 아래에,

살아있는 바다가 마치 아라비아 신화에 나오는 사나운 괴물처럼 꿈틀거리고 있었습니다.

그 용맹스런 생명력의 바다가 나를 집어삼킬것만 같은 아찔함에 나는 가끔씩 몸을 떨었습니다. 

그 바다는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두려웠습니다.

 

그 바다안에서 해녀들이 물질을 하고 있습니다.

털코트를 입고 있어도 추운 이 계절, 저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오직 삶을 살아내야하므로

전복이며 해삼 등속의 것들을 따기 위해  바다보다 더 사나운 생명력을 가진 여인네들이  끊임없이

물속을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이들의 물질하는 모습에서  민중의 여인들을 봅니다. 

노동하고. . .   노동하고. . .  노동하고. . .

합당한 댓가를 받지 못할지라도,남편에게,아들에게 많은것을 빼앗기거나 모든 것을 양보당할지라도

살아야하므로 또 그 거센 바다를 찾는 이들의 물질은 끝이 없습니다.

그네들의 노동이 아름답게 아프게 다가와 나를 작게 울립니다.

 

주상절리를 돌아보고 나옵니다.

너무나 훌륭한, 정말이지 완벽한 명당에 자리잡은 선술집에서 회한접시 하지 못하는게 너무 아쉬워

못내 시선을 거두지못하고 돌아서나왔습니다.

 

강정마을 부근의 식당에서 흑돼지로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왠 고기를 이렇게 많이 시켰는지 테이블마다 태반이 남습니다.

남겨져서 버려질 그 고기들이 너무 아까워 저는 입안에 마구마구 집어넣었습니다.

게중에는 제가 많이 먹기 때문에 그다지도 와구와구 입에 들이밀었다고 오해(?) 하시는 분들이 계실텐데요. 저는 버려질 음식들이 너무 아까워서 지구와 제주 흑돼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다지도 많이 먹은겁니다.

 

물론 제가 눈에 띄게 많이 먹는 스타일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건 아닙니다.^^';

그덕에 제주에서 보낸 2박3일동안 배가 육안으로 구분할 수 있을만큼 더 나오는 비극을 맞이했습니다.

흑돼지를 좀 덜 사랑해 줄 걸 그랬나? 이제와서는 좀 후회가 되긴합니다만. . . .

암튼 대추리 이민강 아저씨는  입에다 막 집어넣고 있는 제가 뭐가 그리도 좋으셨는지

다른 테이블에서 남은 고기랑 고추까지 자꾸 갖다 주십니다.

아저씨 감사했어요.

 

그리고 하나더,

바쁜 서빙시간, 손이 모자란 어느 제주도 아주머니께서 저에게 한마디 하십니다.

"젊은 총각, 공기밥 좀 저리로 옮겨줘"

참고로, 저는 머리 길이가 꽤 짧은 여자입니다.^^

 

식사를 하고 이번 여행에서 제가 가장 기대했던 일정인 강정마을에 다다랐습니다.

현재 해군기지 반대 투쟁을 하고 있고요.

여러 언론보도에서 굉장히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표현을 많이 접했습니다.

그래도 의심많은 저는, 그냥 기자들이 과장해서 그런표현을 한 줄 알았더랬습니다.

그런데 정말 아름답더군요.

마치 화가가 숱한 고민과 번민의 나날들을 거쳐 한 폭의 그림안에 완벽하게 아름다울만한 위치에   

피사체 하나 그려넣은 듯이,

곡선을 이룬 해안선과 돌과 섬들이 완벽하다싶은 아름다움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곳, 저곳, 여기, 저기 사방 팔방 어디를 보더라도 평화롭고  따뜻한 기운이 전해져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해변마을에 콘크리트를 들이붓고 사람죽이는 전쟁연습하는

해군기지를 만들겠다네요.

버스를 타고 제주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가끔씩있는 해군기지라는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강정마을을 저렇게 만들어버리겠다니 많이 안타깝습니다.

정말 군부대가 더 필요한 걸까요?

왜 더 필요한걸까요?

백수가 태반인 20대들에게 2년동안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려는 애국애족의 순수한 마음으로?

군부대 주변에 성매매 산업 육성해 번 돈으로 지역 경제를 활성화 하기 위해서?

아니면 북한이랑 한 판 붙어서 이겨먹으려고? 정말 한 판 붙게??

 

우리는 숙소로 돌아왔고 저는 20대 초반의 대학생들 틈새에 끼기를 포기한채 초저녁부터 줄창 잤습니다.

 

 다음날,

우리는 먼저 한라산 어승생악 방문자 센터에 갔습니다.

숲속에서, 우리 가이드인 고제량님이  문제를 내십니다.

삼촌의 울끈불끈한 몸처럼 쌔끈하게 잘 빠진 느낌의 나무는 무엇일까 맞춰보시오.

근데요 고제량님 나무는 생각이 안 나고 울끈불끈한 몸 같다는 저 표현만 생각나는데 어쩔까요? ^^;

돈 열심히 모으고 모아 언제 함 또 제주도 가겠습니다. ^^;;

 

어딘가 이동하는 차안에서 고제량님이 해주셨던 제주도의 설화가 생각납니다.

설문대할망이 제주도를 만든 이야기. . . .

언젠가 그 설화가 입에서 입으로 퍼지기 시작한 이래 대대로

할머니께 재밌는 옛날 이야기 해달라고 무릎베고 누워 곤히 들으며

똘망똘망 새초롬히 눈빛을 밝혔을 아이들.  그리고

할머니가 되어 이제는 자신을 닮은 아이를 자신이 그러했듯 무릎에 뉘여놓고

가슴 한 가득 사랑하는 마음으로 설문대할망 얘기를 전해주었을 그 많은 할머니들.

그렇게 사랑을 타고 오늘까지 이어져 내려온 이야기.

그렇게 살아왔을 제주도인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참 예쁘더라구요.

 

마지막 날의 일정을 숨가쁘게 보내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2박3일동안 너무나 그리웠던 내 사랑과의 만남!!

으헉~                     *^________^*

난 자기가 너무 좋아!

 

2박3일 동안 옆에서 저 참 잘 챙겨주시고 잘 놀아주신 상규 아.저.씨.

음~ 사회 통념상 본인은 아저씨가 맞는데 자꾸 오빠라고 우기시면. . . . .

다음에 어르신이라고 불러드리는 수가 있어요. ㅡ,.ㅡ

아저씨 덕분에 많이 즐거웠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추억거리 만들어주신 이은우 대표님이랑 우리 소장님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 *(^ ^)**(_ _)*

제주도 기행 실무 맡아서 고생 너무 많이 한 성철씨 푹~~~~ 잘 쉬어요.(헉, 왠지 약간 무섭게 들리는^^;;;)

 

제주도가 이렇게 아름다울 줄 몰랐어요.

바람은 따사롭고 소와 말은 초원에서 풀을 뜯고 억새는 빛이 나고

바다는 사납도록 강인했습니다.

 

제주도에 한 번 또 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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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3

우리 사회에서 존경할만한 어른을 만난다는 것,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적개심에 가득찬 반공주의자이거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강철같은 심장으로 무장한 채 인정사정없이 돌진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예외적인 경우는 있기마련이라서 가끔은 저같은 젊은이들을 감동시키는 어른들을 만나게됩니다.

 

얼마 전 모 오락프로그램에 소설가 황석영씨가 나오셨죠.

천만원에 달하는 등록금 때문에 젊은이들이 자살하는 세태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토로하셨습니다.

청소년들에게는 꿈을 가져라, 너의 꿈을 바라보며 살아라,  사람은 누구나 오늘은 산다 하셨습니다.

 

달변과 함께 쏟아져나오는 그의 따뜻함에 저는 감당하기 벅찰만큼 감동을 받았습니다.

 

가슴이 참 시렸습니다. 상처투성이, 미움투성이인 제 가슴을 어느 따뜻한 손이 다정히 어루만져 주는 것 같았습니다.

 

황석영이라는 사람이 참 부러웠습니다.

훌륭한 어른이라는 자질을 타고난 사람인 것 같아서 많이 부러웠습니다.

 

우리 근현대사의 많은 곡절들을 몸으로 겪으며 그 아픈 시간들을 묵묵히 견뎌낸 그의 삶이

나에게 자꾸 말을 걸었습니다.

 

너는 어떻게 살아내고 있니.

 

팍팍한 세상,  점점 강철 같아지는 것만 같은 내 가슴이 따뜻함으로 채워졌습니다.

그렇게 덥혀진 가슴으로 또 세상 살아가게 됩니다.

차갑지 않게 따뜻하게. . . .   혹은 뜨겁게. . . .

 

그처럼 묵묵히.  미움없이, 분노없이, 폭력없이, 무거운 삶을 견뎌내고 싶습니다.

 

그와는 달리 훌륭한 어른의 자질을 타고나지 못한 저는 최소한 우리 사회의 많은 이들이 그러한 것처럼 추한 어른이 되긴 싫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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