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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겁쟁이다.

요 며칠 사이 후배들에 대한 아이들의 갖가지 의견이 터져 나왔다.
선배한테 인사를 안하고, 시끄럽게 떠들고,
선배대접을 안하고, 기본적인 생활태도가 바로 서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우리 후배들의 생활태도는 우리가 1학년일 때보다 났다.
하지만 우리보다는 선배를 덜 무섭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건 사실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위계질서를 완화하길 원해왔기 때문에 후배들이 이런다고 거부감은 없다.
그렇다고 그들이 우리를 무시한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모이기 좋아하고, 모이면 남이야기 좋아하는 아이들은 벌써 일을 벌였다.
벌써 기합날짜도 잡히고, 무슨 이야기를 해 줄지도 다 정했다.
 
나도 작년에 기합을 받았다.
한여름에 땀이 뻘뻘 나도록 엎드려뻗쳐를 했고, 앉았다 일어났다를 했다.
기합을 받고 난 뒤 아이들의 반응은 당연했다.
다들 힘들어서 쓰러졌고, 자신들이 뭘 그렇게 잘못했기에 이렇게 힘들게 기합을 받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던 아이들이 이제 자신의 후배들에게 똑같이 하려고 하고 있다.
후배들에게 불만이 쌓인 것은 물론이고, 좀 있으면 후배들이 후배를 받기 때문에 우리가 교육을 제대로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후배의 후배 그리고 또 후배의 후배 까지 철저한 선후배관계로 위계질서를 확립하게 될 것이다.
 
누구는 말한다. 모 유명대학의 어떤 학과가 유명한 것은 그 과의 선후배 관계가 칼 같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난 그렇게 동의하지 않는다. 가장 정확하고 가까운 나의 언니가 다니는 대학은 선배에게 선배라고 부르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한다. 그리고 그 대학은 사람들이 익히 말하는 명문대이다.
 
물론 이렇게 돌아가는 형태 자체가 화나지만,
제일 화가 나는 건 나 자신한테다.
아이들이 이런 이야기를 시작하고 불려 나갔지만 난 한마디 제대로 하지도 못했다.
 
나는 겁쟁이다.
사실은 기합같은거 주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런 위계질서가 안 좋고 사라져야 한다고 외치고 친구들을 설득시키고 싶지만 나에겐 그런 힘이 없다. 용기가 없다.
게다가 난 반장이라는 이유로 후배들에게 기합을 준다는 사실을 내 입으로 전하고 왔다.
내가 나를 용서하지 못한다.
 
나는 너무 두렵다.
지금 밖에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운동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데,
난 이 학교 안에서 조차 부조리한 현실을 개혁할 노력을 하지 않는다.
내가 그렇게 함으로써 받게 될 부당대우와 사람들의 달라질 시선들이 너무나 무섭다.
 
나는 겁쟁이다.
결국은 아무 일도 하지 모했다.
예정대로 후배들에게 기합을 주고 위계질서를 전수하는 선배가 된다.
나를 아는 사람은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 블로그에 이렇게 글만 올린다.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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