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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시키니까 하네, 딸들이라고."

 

 밥을 먹은 걸 정리하던 언니와 나에게 삼촌이 말했다.

 

 엄마와 아빠는 밖에서 밥을 먹고 오셨다. 엄마는 늦게 들어오심에도 불구하고 언니와

나를 위해 따뜻한 밥을 지어서 상을 차려주셨다. 그런 밥을 맛있게 먹고 언니와 나는

당연하게 먹은 걸 정리하고 있었는데...... 삼촌은 엄마에게 반찬을 어떻게 정리할 지

를 묻는 우리가 엄마가 시켜서 정리한다고 생각했나 보다.

 

 뭐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무래도 괜찮다. 사실 나는 밥을 할 줄도 알고 내가 상을 차

릴 수도 있다. 하지만 엄마가 오늘 상을 차릴 때 꼼짝 않고 티비를 보면서 미안해하기

만 하고서 한 손도 거들지 않았다. 삼촌 말을 듣고 약간은 반성을 했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책임 질 수 있어야 한다. 자기가 먹을 것은 자기가 만들어 먹어야

하며, 자기가 먹은 것은 자신이 치울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자신이 돈을 벌어서 사 먹

는 다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돈을 벌지 않는 이상, 혹은 사먹기만 하면서 못 사는 이

상은 그렇게 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

 

 나에게도 당연하다. 물론 세상의 기준으로 미성년이지만 나는 나를 책임지는 방법을

알고 있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데 혼자 있으면 잘 그러면서도 엄마가 있으면 엄

마에게 맡겨 버리곤 한다. 참 나쁜 딸이라고 나중에 반성하면서도 막상 엄마가 밥을

해 주실 때 내가 한다고 나서기는 참 힘들다.

 

 그런데 엄마한테 매일 밥을 얻어먹으면서도 하나도 미안해하지 않고, 도와주려는 생

각조차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바로 아빠다. 어렸을 때 나는 엄마만 만날 밥하고 청소

하고 설거지를 해서 아빠는 그런 걸 못하는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어릴

때는 가끔 엄마가 아프면 가끔 밥도 하고 청소도 하고 그러는 아빠였다.(지금은 엄마

가 못하면 딸들이 하니까.)

 

 뭐 아빠는 밖에서 돈을 벌고 엄마는 집에만 있으니까 집안일을 하는 거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사회생활을 하신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인가 2학년 때

부터 일을 하기 시작하셨다. 하지만 엄마도 똑같이 일을 하는데 집안일은 항상 엄마의

담당이었다. 언제나 부당하다고 생각했는데 엄마는 아무 불만 없이 집안일을 하셨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집안일을 가르쳐 주시고 하게 하셨다.

 

 아빠는 절대로 자기 밥을 자기가 차려먹지 않는다. 내가 있으면 차려달라고 하고, 엄

마가 반찬을 다 만들어 놓고 꺼내서만 먹으라고 해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차려 줄 사

람이 없으면 안 먹거나 시켜먹는다. 엄마가 없으면 아빠는 도대체 어떻게 살까? 아무

리 사 먹어도 우리 아빠는 집밥을 못 먹으면 안 되는 사람 같던데. 그런데 막상 엄마가

없을 때에 아빠 스스로 밥 해먹고 잘 산다고 생각하면 정말 울화통이 터진다.

 

 내가 아빠가 해 준 밥을 먹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라. 아빠가 자기 자신을 책임 질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아빠에게 그런 걸 요구하지 않고 묵묵히 밥을

해주는 엄마에게도 약간은 화가 난다. 또 생각해 본다. 과연 엄마는 우리 중에 아들이

 있었다면, 그 아들에게 집안일을 시켰을까? 그리고 그걸 아빠가 뭐라고 하지는 않았

을까?(내가 보기에 아빠는 남자가 주방에 들어가면 안 된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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