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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2005/03/01

우리가 알아야 할 역사―뉴딜과 EPIC

출처 : ‘Dionysus's Table’, http://blog.naver.com/mdlp1965.do

 

 

정부에서 경기 활성화 대책이라고 ‘한국형 뉴딜’1)이란 것을 내놓았는데, 그 주요 내용은 결국 역대 정권이 예외없이 반복했던 건설산업 부양을 통한 단기처방이다. 그러면서도 정부는 ‘뉴딜’이라는 역사적 용어를 빌어 와서 뭔가 대단한 것인양 내세우고 있다.

뉴딜이 무엇인가? 대공황이 한창이던 1932년에 등장한 미국의 F. 루즈벨트 민주당 정권이 추진한 공황 대책이다. 뉴딜 정책에서 경기 부양의 주요 수단이 대규모 토목사업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원래의 뉴딜에는 이것만 있었던 게 아니다. 부도 상태에 있던 민간 은행들에 대한 연방정부의 강력한 통제, 의료보험․연금 등 복지제도의 도입, 그리고 무엇보다도 산업별 노동조합의 건설과 교섭권을 보장하는 노동법 개혁이 추진되었다. 루즈벨트 정권의 뉴딜과 견주어봐도 노무현 정권의 ‘한국형 뉴딜’은 왜곡과 소심의 극치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더 깊이 들여다보면, 뉴딜 자체도 썩 만족스러운 역사적 경험은 아니었다. 루즈벨트 정권이 비록 집권 초기에 일련의 개혁을 추진한 것은 사실이지만, 대법원의 위헌 판결과 일부 자본가 세력의 거센 반발 때문에 초기의 개혁은 급작스럽게 중단되었다. 더구나 미국이 뉴딜 정책 덕분에 대공황을 극복했냐 하면, 그렇지 않다. 30년대 중반까지도 장기 불황 양상이 계속되다가 유럽에서 전쟁(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나서야 군수산업을 중심으로 경기가 살아났다. 자본주의는 세계전쟁이라는 더 큰 야만을 통해서만 대공황이라는 야만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이 뉴딜 시기에 미국에서 뉴딜보다 훨씬 더 진보적인 개혁을 추구한 정치운동들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저명한 소설가이자 사회주의 운동가인 업튼 싱클레어(Upton Beall Sinclair, 1878∼1968)의 ‘캘리포니아 빈곤 퇴치’(End Poverty in California, 약칭 EPIC, 원래 epic은 ‘서사시’라는 뜻이다) 운동이다.

싱클레어는 미국 육류 가공업의 노동자 착취와 악덕 행위들을 비판한 ‘정글’이라는 소설로 처음 명성을 쌓았다. 그 후 그는 단순히 노동 현실을 폭로하는 데 머물지 않고 미국 사회당의 열성적인 활동가로 나섰다. 그는 캘리포니아 주에서 수 차례 사회당의 공직 후보로 나서기도 했다.

그런 그가 대공황에 대한 대응으로 내놓은 게 ‘캘리포니아 주지사인 나는 어떻게 빈곤을 끝장냈는가: 미래의 실화’(1934)라는 가상 소설이다. 이 책에서 그는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부도났거나 부도 일보직전인 공장과 세금 체납 상태의 농장들을 인수해서 실업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 재원은 주로 대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일종의 부유세를 통해 조달하는데, 현금 형태가 아니라 주정부 산하 공장과 농장의 가동에 필요한 현물 재화·서비스 형태로 징수한다. 그리고 이들 공공 사업장은 화폐가 아니라 물물교환 형태로 노동자들에게 생활 수단을 제공함으로써 자본주의 경제로부터 독립된 새로운 경제 영역을 창출한다.

싱클레어는 이 제안을 지지하는 대중운동으로서 EPIC 운동에 나섰다. 이 운동은 효과적인 선전 활동에 힘입어 삽시간에 대중의 열렬한 지지를 이끌어냈고 캘리포니아 주 곳곳에 EPIC 클럽이 건설되었다. 여기에는 당시 막 등장한 산별노총 CIO의 활동가들, 협동조합 운동가들, 사회주의자들, 진보적 지식인들이 쇄도했다. 급기야 싱클레어는 민주당의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 후보를 뽑는 예비 선거에 뛰어들었고, 당시까지 예비 선거에서 공직 후보 지망자들이 얻은 득표로는 가장 많은 표를 얻어 민주당 주지사 후보에 선출되었다.

캘리포니아 주의 자본가들은 주지사 선거에서 그를 떨어뜨리려고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게다가 민주당 지도부조차도 그의 당선을 바라지 않았다. 뉴딜 정책의 장본인인 민주당 소속 루즈벨트 대통령은 자당 후보인 싱클레어가 아니라 공화당 후보를 지지한다고 노골적으로 이야기했다. 결국 주지사 선거에서는 공화당 후보가 승리했고, EPIC 운동은 역사의 한 장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뉴딜이 추진되던 그 시기에 뉴딜보다 훨씬 진보적인, 사회주의적 대안이 추진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주목해서 봐야 할 점이다. 특히 경기 활성화 대책을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실험을 시도하는 방향에서 추진한 점을 주목해야 한다. EPIC 운동은 첫째 거대한 공공부문의 창출을 통해 생산 활동과 고용을 다시 촉발함으로써, 그리고 둘째 이 부문 내에서 협동과 연대에 기반한 새로운 경제 질서를 창출함으로써 단순한 공황 대책 이상의 의미를 확보하려 했던 것이다.

그럼, 우리라면 어떤 대안을 만들고 추진할 수 있을까? 그 논의를 위해서 우선 싱클레어 자신의 주장을 살펴보자. 아래의 글은 싱클레어가 EPIC 운동이 한창이던 1934년 10월 13일에 발표한 것이다. 짧은 분량이지만, 그의 제안의 골격을 이해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캘리포니아 빈곤 퇴치’ 운동이 캘리포니아 민주당 예비선거 역사상 최대 득표를 거둔 것은 우리 민중들이 더 이상 고통을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공황이 시작된 지 벌써 6년째다. 캘리포니아 주민들 중 125만 명이 공공 자선 사업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일주일에 고작 한 시간이나 두 시간의 일거리밖에 얻지 못하거나 친척, 친구들에게 기대어 연명하고 있다. 이건 문명사회가 짊어지고 나가기엔 너무나 무거운 고통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우리가 어떤 입장을 취할지는 한 가지 요소에 달려 있다. 만약 우리가 민간부문이 저절로 ‘다시 살아날’ 것을 믿는다면, 어떻게든 참고 견디면 된다. 하지만 결국에는 과연 ‘번영’이라는 게 다시 돌아올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만약 그게 저절로 가능하지는 않으리라는 걸 확신한다면, 우리의 입장은 완전히 바뀔테고, 철저하고 과감한 새로운 해결책을 향해 마음을 열게 될 것이다.

나는 지난 수년간 캘리포니아 주민들에게 이 불황이 항구적 공황임을, 쉽게 지나가지 않을 것임을 주장해왔다. 나는 공황의 연구, 그 원인과 해결책의 연구에 오랜 시간을 쏟아왔다. 따라서 나는 나의 주장이 나름대로 권위를 지닌다고 자부한다. 나는 31년 전부터, 그리고 그 이후 줄곧, 이번의 특수한 공황이 ‘항구적’인 것임을 예견함으로써 이러한 권위를 입증했다. 나는 이번 공황이 과잉생산에서 비롯된 것이라 주장한다. 즉각 소비되는 식료품과 의류 등 소비재뿐만 아니라 오랜 감가(減價) 기간을 필요로 하는 거대한 기계와 공장들이 과잉생산 상태에 있는 것이다.


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요즘 미국 국민들에게, 현 체제가 유지되는 한, 천만 명의 실업자는 결코 다시는 일자리를 얻지 못할 거라고 말하고 다닌다. 지난 수년간 나는 캘리포니아 주민들에게, 영구 실업 상태에 있는 125만 명에 대한 부조로 각 도시와 군, 그리고 주 전체가 파산지경에 내몰릴 것이라고 말해왔다. 나는 수천에서 최고 1만5천에 이르는 사람들이 참여한 150여 차례의 대중 집회에서 이것을 주장해왔다. 나는 30만 부 가량의 팜플렛과 5백만 부 가량의 주간지를 통해 이를 주장해왔다. 그 결과, 8월의 예비선거에서 45만 명이 예비선거에 참여해 나를 민주당 주지사 후보로 선출했다.

그럼,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오늘날 미국 국민들에게 이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없다. 만약 우리가 정연한 해결책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우리도 곧바로 독일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는 두려운 상황에 빠지고 말 것이다. 나는 일생 동안 민주주의를, 민중이 스스로를 통치할 권리와 능력을 믿어왔다. 이제 나는 내 고향 캘리포니아 주의 주민들에게, 우리의 정치·산업 혹은 사회체제의 붕괴와 폭력 없이도 평화적이며 인간적인 방식으로 대공황을 점진적으로 치유할 방안과 그 기술적 절차를 제안하고자 한다.

EPIC(캘리포니아 빈곤 퇴치) 운동은 우리 주의 실업자들이 생산적 노동에 배치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들이 생산한 모든 생산물은 생산자들 자신에 의해 소비되거나 물물교환 방식으로 거래될 것이다. 물물교환 과정에서는 도매 영수증 혹은 노동증명서 등등의 명칭을 부여받은 증서가 이용될 것이다. 주 정부는 실업자들이 질 좋은 토지와 기계 설비에 접근할 수 있도록 충분한 자본을 제공해야 한다. 그래서 이들이 일자리를 얻고 스스로를 부양하며 더 이상 납세자들에 의존해 살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 EPIC 운동은 이것이 민간부문에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을 것이라 주장한다. 왜냐하면 실업자들은 이미 민간 산업 영역에서 완전히 방출된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실업자들을 위한 새로운 협동 체제를 계획하고 있다. 이것이 항구적으로 유지될지 여부는 대공황의 항구적 성격에 대한 나의 확신이 과연 옳은 것인지에 따라 판가름날 것이다. 만약 호황이 다시 도래한다면, 노동자들은 민간부문으로 다시 돌아갈 것이다. 그 과정에서 결코 아무런 부작용도 없을 것이다. 호황이 도래하기 전까지 실업자들은 아무튼 뭔가를 생산할 테고 국가는 이를 복리를 위해 사용할 테니까 말이다.


새로운 협동 체제


우리 주의 긴급 상황에 대처하고 새로운 협동 체제를 수립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우리는 이른바 EPIC세(稅)를 제안한다. 이는 공시가격 10만 달러 이상의, 즉 실질가격 25만 달러 이상의 자산에 대한 누진세다. 이는 우리 주의 대기업과 공공서비스 기관에만 부과될 것이다. 과세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 ‘현금이 아니라’ 주 정부의 선택에 따라 현물 재화나 서비스 형태로 징수해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실업자들이 생산 활동에 착수하는 데 필요한 대부분의 원자재와 공공 서비스 일체를 확보할 것이다.

우리는 ‘중앙 계곡 프로젝트’(Central Valley Project) 같은 거대한 관개 및 전력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다. 우리는 5만 명의 실업자들을 이 공사에 투입하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이들의 식량을 대기 위해, 공사가 완료되고 나서 물과 전력을 공급받을 수 있는 이용권을 담보로 농민들로부터 잉여 곡물을 확보하자고 제안한다. 우리는 EPIC세를 통해, 공사에 필요한 목재/시멘트/석재/자갈/철강 등등, 그리고 조명/화력/전력/운송수단을 확보할 것이다. 공공근로청(Public Works Department)이 이 프로젝트를 담당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캘리포니아의 산업이 다시 작동하게 될 것이다.

 

 

1) 한국형 뉴딜정책, 땅 판다고 경제가 살아날까?

대안은 시장에게 빼앗긴 국가(더 정확한 표현은 사회)의 책임성(연대성)을 복원하는 일이다. 현재 가장 타당한 경제정책은 대대적인 저소득층에 대한 소득보전과 사회복지투자이며, 그 재원은 조세개혁(자본소득세 강화를 통한 부유세 도입)과 국채발행을 통한 세수확대로 마련해야 한다.


뉴딜정책이 한국에도 수입(?)되었다. 뉴딜(New Deal)은 1930년대 미국자본주의에 몰아닥친 대공황의 덫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극약처방이었다. 당시는 수요공급의 자동조절기능(이른바 '균형')을 '신'처럼 여기고 있던 신고전파 경제학이 지배하던 시기였기에 이단아 '케인즈(J. M. Keynes)'의 대규모 재정투입 아이디어는 파격적인 경제정책이었다. 바로 그 케인즈가 2005년 한국에서 부활한 것이다. 그러나 사실 우리나라는 이미 이러한 국가주도의 재정정책이 사용되고 있었다. 다만 규모가 문제였다.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정책이 도입되면서 재정보다는 금리중심의 영미식 거시경제운용이 득세하였는데 여기에 다시 다른 형태의 재정투입이 혼합된 것뿐이다.


한국형 뉴딜정책은 왜 추진되는가

한국형 뉴딜정책 즉, 종합투자계획은 한마디로 '균형' 재정상 한계에 봉착한 정부재정을 뒷받침하기 위해 민간자본을 끌어들이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으며, 이를 위한 목표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5%로 맞추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건설경기의 급속한 침체를 막는 것이다. 이를 종합하면 건설경기의 회복을 통해 일자리 40만개를 확보하고, 그 파급효과가 경기 전반에 미치도록 하는 것이다.


변양균 기획예산처 차관은 2004년 말미에 "(정부는) 내년 공공부문에서 올해보다 10만개 늘어난 4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1/4분기에 연간 일자리 창출 목표의 60%인 24만∼25만개, 상반기에 연간 목표의 80% 이상인 32만∼33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낼 계획"이라고 한 적이 있다. 이를 위해 "내년(2005년) 상반기 내수 부진을 보완하기 위해 연간 169조원의 재정 중 100조원을 집행할 예정이며 특히 1/4분기에 50조원의 자금이 시중으로 흘러들어가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정으로만 이러한 성과를 내기에는 한계가 있기에 민간자본을 유치한다는 발상이 곧 종합투자계획인 것이다(정부는 GDP의 1% 내로 적자국채의 발행을 제한한다는 국가재정법을 준비 중이다. 이를 추계하면 국채발행제한은 약 7조원 가량 된다).


정부가 택한 전략은 민간투자를 유인하는 것과 사회공공시설을 조기에 확보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를 위한 부동자금은 현재 정부통계에 따르면, 금융기관 단기수신(6개월 미만) 395조원, 상장기업 및 코스닥 등록기업의 현금보유액 약 44조원, 연기금 여유자금 200조원, 생보사 운용자산 164조원으로 파악된다. 이 부동자금 즉, 투자가능자금 가운데 일부를 사회간접자본 및 공공시설에 끌어들여 투자를 촉진한다는 전략이다.


민간자본은 어디에 투자되나

투자대상은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될 수 있다. 공공시설, 고속도로, 임대주택이 그것이다. 그 외 IT 분야나 공기업 투자가 있으나 이것은 정부부처나 공기업의 예정된 사업비로서 종합투자계획에 끼워 맞춰놓은 것에 불과하다. 우선 기존의 도로나 철도와 같은 전통적인 사회자본(SOC) 이외의 새로운 사회공공시설에 투자를 유치하겠다는 것이다. 그 대상은 학교나 병원시설, 노후수도관, 노인의료시설, 도서관, 군 주거시설, 기능대학시설, 경찰서 개축 등이다. 작년 말 여야의 대치상황 속에 통과된 몇 안 되는 법률 중의 하나인 민자유치법의 개정으로 가능해진 대상들이 대부분이다. 다음으로 고속도로는 전통적인 SOC 투자 대상이다. 정부의 계획은 고속도로 운영권을 담보로 새로운 재원을 조달(ABS, 즉 자산유동화증권 발행을 통한 자금조달)하여 도로를 더 짓겠다는 것이다. 이 밖에 현재 추진 중인 3개 고속도로사업을 민자사업으로 전환하고, 민간제안 도로사업도 조기에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임대주택도 동일한 방식이다. 대형건설사, 연기금, 부동산투자신탁회사(REITs)를 끌어들여 임대주택을 건설하되 이들이 적정수익률을 확보할 수 있도록 택지공급가를 인하하고, 세금을 감면하는 등의 특혜를 제공할 방침이다.


한편, 정부는 BOT(건설-운영-이전) 등 기존의 민자유치방식에 BTL(건설-이전-임대) 방식을 새롭게 추가했다. 이 방식은 민간자본이 시설을 건설한 후 이를 정부에 임대하고 정부가 지급하는 임대료를 통해 수익을 취하는 방식이다. 민간업자가 가져가는 수익률은 국채금리에 1∼2% 정도 추가로 지급하는 식으로 정해진다. 추가수익률은 민간업자간 경쟁을 통해 최대한 낮추겠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이 밖에 기업도시건설법의 통과(2004. 12. 9)로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기업도시 건설이 추진될 예정이며, 강북 재개발과 신도시 건설사업도 현 정부의 대표적인 건설경기 부양책으로 볼 수 있다.


한국형 뉴딜정책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인가?

역사적으로 어느 자본주의 국가를 보던 사회공공·복지투자는 정부의 몫이다. 뉴딜정책의 원조인 미국에서도 대공황시절 사회공공투자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진 적이 있었다(그러나, 당시 뉴딜정책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공공투자 이외에도 노사관계합리화, 빈민지원대책 등 당시로는 획기적인 진보적 성격의 사회정책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에도 투자주체는 정부였지 민간자본은 아니었다. 그 이후로도 대다수의 자본주의 국가에서 재정정책의 담당은 국가의 몫이었다. 예외가 있다면 1980년대 이후 신보수주의의 기치를 든 영국과 같은 영미식 신자유주의 국가였다. 결과적으로 재정경제부는 수많은 나라들 중에서 영국의 민자유치사례를 도입한 것이다.


책임있는 국가의 경제정책이라면 스스로 재정정책을 감수해야 한다. 특히 사회복지투자가 미미했던 우리의 경우 더더욱 그러하다. 국방 등 다른 예산을 줄여서라도 당장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다. 즉, 지출구조를 변경하는 방식으로 사회적 투자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복지분야를 제외한 다른 곳에 예산을 우선 배정한 후, 사회보장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늘어나자 궁여지책으로 민간자본을 끌어들인 것이다.

그러나 민간자본이란 무엇인가? 단기간에 최소 비용으로 최대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민간자본의 특성이다. 따라서 국가는 민간투자가가 사회복지영역에 투자할 때는 기회비용(다른 곳에 투자했을 경우 얻을 수 있는 기대수익)만큼 수익률을 보장해야 한다. 즉, 정부는 국채이자 이상의 수익을 보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복지시설은 서민들이 이용하는 곳이라 수익성이 낮다. 적자는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따라서 추가부담의 짐은 국가재정(즉, 조세부담율 인상)으로 돌아가고 만다. 결국 복지로 쓰여야 할 돈을 엉뚱한 곳에 쓰고 급한 김에 민간업자의 돈을 빌려 쓰다 보니 노동자, 서민의 추가부담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그러나 최근 정부는 법인세, 소득세 등 세금인하를 단행했다).


백번 양보해서 예산이 경직되어 있고, 사회복지시설을 짓는 것이 시급한 일이라 민간자본을 유치한다고 하자. 그 일은 공공성보다는 수익성을 중시하는 재무적 투자자(보험회사, 투자신탁회사와 같이 돈을 불리는 일을 업으로 하는 회사)에게 맡기기 보다는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연기금에게 위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민연금의 수익은 어차피 가입자인 국민에게 돌아갈 터, 따라서 공적연기금이 이 일을 맡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국민연금의 3대 투자원칙은 공공성, 수익성, 안정성이다).


투자대상도 고속도로 같은 SOC보다는 보육시설과 같은 복지시설에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할 것이다. 서민들이 무료로 또는 낮은 비용으로 의료, 보육, 교육, 노인시설 등 복지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면 소득보전효과가 뚜렷이 나타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정부가 성장률에 투자를 맞추려다 보면 마구잡이식의 투자계획이 나올 수 있다. 즉, 교통량이 적은 도로건설에 돈을 쏟아 붓고, 군시설, 경찰서 같은 당장 급하지 않은 공공시설을 짓는 비효율이 발생할 수 있다. 정부발표대로 SOC 투자가 장기적으로 성장잠재력을 높인다는 것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 그것을 해야 하는지는 다른 문제다. 즉 공공성 확보와 아울러 자원배분의 우선순위도 같이 고려해야 한다는 말이다.

아울러 투자대상을 정할 때도 엄격한 심사과정이 필요하다. 건교부나 재경부에만 맡기다간 우리의 귀중한 세금이 낭비될 수 있다. 따라서 정부심의시 소관위원회에 지역시민단체와 노조 등 감시주체가 참가해야 함은 물론 국회의 엄격한 사전, 사후통제를 받아 정부의 비효율성과 공무원과 민간업자의 유착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


진정으로 정부가 해야 할 일들

정부는 성장률 5%보다 일자리 40만개가 더 중요하다고 얘기하고 있다.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일자리 40만개 창출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실상은 기대 이하이다. 공공부문에서 만드는 일자리 5만개를 제외한 나머지 41만개의 일자리는 정규직이 아닌 건설일용직이나 단기 임시직같은 비정규직이다.

이러한 정책은 실업률을 낮추는 단기적 효과가 있을지언정 노동자의 삶을 장기적으로 책임지는 올바른 방향은 아니다. 정부여당은 성장률 5% 달성으로 2006년에 치를 지방선거에서 생색을 낼 수 있을지 몰라도 이것은 노동자, 서민의 진정한 삶과는 무관한 것이며 경제양극화를 해소하기에는 턱도 없는 미봉책이다.


종합투자계획은 기본적으로 건설투자를 통한 단기적 경기회복정책이다. 이는 '땅만 파면' 일단 총수요가 늘어나서 경제가 성장한다는 전형적인 우파 케인즈주의적(Keynesian) 단기부양책에 다름없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거시경제적 총량(GDP 성장률)을 높인다는 측면에서는 가시적일 수 있으나 현재 우리 경제의 핵심과제인 양극화를 해소하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 과연 이 정책으로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가 해소될 수 있을까? 오히려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서민의 가계부채가 해소될 수 있을까? 수천만원의 빚을 떠안고 사는 노동자, 서민들이 임시직 일자리 하나 얻었다고 해서 불황의 터널 속에서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는 데는 별반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정부정책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저소득층의 가계부채 해소와 즉각적인 현금소득 지원이다. 365만명에 이르는 신용불량자들, 평균 3천만원에 이르는 가계부채로 신음하고 있는 가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 서민들의 삶의 질 향상과 내수활성화는 비관적이다. 따라서 정부는 '도덕적 해이'를 거론하지 말고 신용불량자의 시민권과 노동권을 회복시켜주는 특단의 조치를 내려야 한다. 공적자금을 풀어서라도 가계부채의 실질적 경감조치가 필요할 때이다. IMF 구제금융시기 재벌기업에게 베풀었던 그 특혜를 이제 서민에게 돌려줄 차례다. 노동자, 서민의 소비 진작을 통한 내수활성화에 실패한다면 그토록 주류 언론과 자본가들이 떠드는 투자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은 더더욱 회의적이다.


신용불량자 해소, 가계부채 경감, 노동자의 57%에 이르는 비정규직 철폐 등 이러한 근본적인 양극화의 원인에는 접근하지 못하면서, 성장목표량(5%)에만 매달리는 정부정책으로 인해 양질의 일자리는 더욱 줄어들고 노동력을 값싸게 착취할 수 있는 일자리만 양산될 것이며, 그에 따라 소득 및 자산의 양극화는 더욱 악화될 전망이다.

 

노동자, 서민의 대안은 무엇인가

궁극적으로는 민간자본 유치를 통한 건설경기 부양은 우리 경제가 직면한 현실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없다. 한국형 뉴딜정책은 건설분야 위주로 대략 5조원 내외가 투자될 것이므로 적극적인 내수활성화 정책이라기보다 성장률 5% 달성이라는 끼워 맞추기식 성격이 강하다(대통령은 작년에도 일자리가 40만개 창출되었다고 하지만 우리의 현실을 둘러보라). 따라서 경제불황의 구조적 성격을 제거하지 못하여 내수확충에 실패할 공산이 크며, 경기침체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이다.


대안은 시장에게 빼앗긴 국가(더 정확한 표현은 사회)의 책임성(연대성)을 복원하는 일이다. 현재 가장 타당한 경제정책은 대대적인 저소득층에 대한 소득보전과 사회복지투자이며, 그 재원은 조세개혁(자본소득세 강화를 통한 부유세 도입)과 국채발행을 통한 세수확대로 마련해야 한다. 경제학적으로도 사회복지투자정책은 노동자에게는 실질가처분소득(real disposable income; 세금을 제외하고 실제 쓸 수 있는 소득)이 증대되는 효과가 있다. 기업으로서도 사회적 비용을 국가가 부담함으로써 임금인상 압력에 대한 부담을 덜어 가격 및 기술경쟁력을 높이는 장점도 있다. 거시경제 전체로 보아도 서민층의 소비증대로 내수회복효과가 즉각 이루어지는 장점도 있다(부자들은 추가적인 소득이 생기면 저축이나 투자를 하지만 빈민이나 서민층에서는 억제되었던 소비지출로 즉각 이어질 것이다). 그에 따라 빈곤과 소득양극화의 문제를 점차 해소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단순히 이론적으로만 제시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전후 서유럽과 북유럽의 선진자본주의 국가가 약 30년간 지속적으로 번영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노사간의 분배구조에 대한 지속적인 개선노력과 사회보장 등 사회적 비용의 국가부담, 그에 따른 사회 전체의 안정적인 생산성 향상이 있었기 때문이다(이것이 바로 분배를 통한 성장이다).


노무현 정부는 이러한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재정지출의 구조변경과 세수증대를 통한 재정확충에는 별 관심이 없고 오로지 '땅만 파면' 일자리가 생긴다는 1930년대식 사고에 갇혀 있다. 연기금을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에 쏟아 부으면 경기가 살아날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결국 증시와 부동산경기에 대한 정권의 질기고 질긴 집착을 버리지 않는다면, 노무현 대통령은 경제에 실패한 대통령, 빈민을 확대재생산한 대통령이라는 기록만을 남기고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하고 말 것이다. ‘노동사회’ 2005년 2월호, 통권 96호, 조진한(민주노동당 제2정책조정위원회 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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