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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

  • 등록일
    2007/03/28 23:39
  • 수정일
    2007/03/28 23:39
학교에서 비오길래 우산을 쓰고 길을 걷다가 어느 건물에 들어가려고 했다. 그 건물의 입구에는 마치 갑자기 비가 왔다는 듯이 우산이 없어서 나가지 못하고, 그저 밖을 보고 서 있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 중에 내가 아는 후배 두명이 있었는데, 나에게 우산을 씌워달라고 했다. 그리고 어디까지만 데려다 달라고 했다. 나는 이제 그 건물에 들어가려는 것이었고, 그 녀석들은 그 건물에서 나와서 다른 곳으로 가려는 것이었다. 그래서 안된다고 했다. 더군다나 내 손에는 보드게임이 있었기 때문에 그러다가 보드게임이 젖으면 안되는 상태였다. 그 녀석들이 가려는 다른 곳에는 그 녀석들이 쓸 수 있는 우산이 있을테니, 차라리 내 우산을 둘이서 쓰고 가서, 둘 중에 한명이 다시 우산 들고 나한테 오면 되지 않냐고 제안했지만, 그 녀석들은 다시 돌아올 수 없기 때문에, 그건 곤란하다고 했다. 어쨌든 아는 후배의 부탁을 거절했더니, 이번에는 그 옆 쪽에 있는 내가 모르는 사람이 나에게 우산을 빌려달라고 한다. 자기는 요앞 주차장까지만 잠깐 갔다 오겠다고 한다. 나는 그 주차장이 어디쯤인지 안다. 갔다 올라면 아무리 빨라도 3분은 걸린다. 그리고 주차장까지 가면 차타고 그냥 가버릴 지 어떻게 아나? 그래서 가볍게 씹어줬다. "나는 이 건물에 들어가려고 하거든요." 나는 유유히 우산을 들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저 사람은 자기에게 필요한 것이 나에게도 필요하다는 것을 머리로만 알고 있는 게 아닐까? 그리고 나는 자기에게 필요한 무엇을 말하는 어떤 낮선 사람들의 미래를 어느 순간부터 일방적으로 믿지 않게 된 것이 아닐까? 어쨌든 내가 빗속으로 보드게임을 들고 가던 나름 위태한 상황이라는 것은 나를 제외한 그 누구의 고려대상도 되지 않았다. 그 짧은 순간에 느낀 또 한번의 소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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