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학교에서 비오길래 우산을 쓰고 길을 걷다가
어느 건물에 들어가려고 했다.
그 건물의 입구에는 마치 갑자기 비가 왔다는 듯이
우산이 없어서 나가지 못하고, 그저 밖을 보고 서 있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 중에 내가 아는 후배 두명이 있었는데,
나에게 우산을 씌워달라고 했다.
그리고 어디까지만 데려다 달라고 했다.
나는 이제 그 건물에 들어가려는 것이었고,
그 녀석들은 그 건물에서 나와서 다른 곳으로 가려는 것이었다.
그래서 안된다고 했다.
더군다나 내 손에는 보드게임이 있었기 때문에
그러다가 보드게임이 젖으면 안되는 상태였다.
그 녀석들이 가려는 다른 곳에는
그 녀석들이 쓸 수 있는 우산이 있을테니,
차라리 내 우산을 둘이서 쓰고 가서,
둘 중에 한명이 다시 우산 들고 나한테 오면 되지 않냐고 제안했지만,
그 녀석들은 다시 돌아올 수 없기 때문에, 그건 곤란하다고 했다.
어쨌든 아는 후배의 부탁을 거절했더니,
이번에는 그 옆 쪽에 있는 내가 모르는 사람이 나에게 우산을 빌려달라고 한다.
자기는 요앞 주차장까지만 잠깐 갔다 오겠다고 한다.
나는 그 주차장이 어디쯤인지 안다. 갔다 올라면 아무리 빨라도 3분은 걸린다.
그리고 주차장까지 가면 차타고 그냥 가버릴 지 어떻게 아나?
그래서 가볍게 씹어줬다.
"나는 이 건물에 들어가려고 하거든요."
나는 유유히 우산을 들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우산을 들고 들어가면서 생각했다.
저 사람은 자기에게 필요한 것이
나에게도 필요하다는 것을 머리로만 알고 있는 게 아닐까?
그리고 나는 자기에게 필요한 무엇을 말하는 어떤 낮선 사람들의 미래를
어느 순간부터 일방적으로 믿지 않게 된 것이 아닐까?
어쨌든 내가 빗속으로 보드게임을 들고 가던 나름 위태한 상황이라는 것은
나를 제외한 그 누구의 고려대상도 되지 않았다.
그 짧은 순간에 느낀 또 한번의 소외.
댓글 목록
아침
관리 메뉴
본문
그 짧은 순간에 자신의 need에 충실한 건 축하할 일이죠. 다른 사람들의 고려대상이 되지 않았어도 자신의 고려대상이 되었다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부가 정보
ScanPlease
관리 메뉴
본문
아침 // ㅎㅎ 그렇게 볼 수도 있군요~ 이 덧글을 보니까, 괜히 기분이 좋아지는데요.ㅋ부가 정보
거한
관리 메뉴
본문
왜 난 빌려주고 싶은데도 빌려달라고 안 하지. 무섭게 생겨서 그런가.부가 정보
ScanPlease
관리 메뉴
본문
거한 // 불쌍한 이미지로 보였을 지도 몰라요. 벼룩의 간을 빼먹을 수는 없다는 심정으로 빌려달라고 말 못한 것일 지도 모르죠.ㅋ (실제로 불쌍한 이미지로 보인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에요.)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