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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02시 30분

  • 등록일
    2007/05/23 03:05
  • 수정일
    2007/05/23 03:05
어제 한 과목 종강을 했다. (이 과목은 기말고사도 없다.) 이제 네 과목만 종강을 더 하면 되고, 그 중에 또 한 과목은 오늘 종강한다. (물론 이건 기말고사가 남지만...) 그 과목의 종강은 약간의 서운함이 깃들여져 있었다. 내가 학교를 떠나는 것에 대한 아쉬움 같은 건 전혀 없지만, 그 과목 종강은 정말로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강사가 암수술을 받아야 하기 때문. 마지막 수업이 끝날 때, 나는 강사에게 힘이 될 수 있는 말 한마디라도 해주고 나와야겠다고 생각만하다가 끝내 아무 말도 못하고, 강의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아무런 할 일 없이 전산실에서 멍하게 앉아 있고, 시간을 때우다가 집에 가야겠다고 전산실을 나왔는데, 학교에는 아직 장터가 많이 열리고 있었다. 그 중에 채식장터도 있었고, 나는 그것을 보고나서 같이 먹을 사람이 없어서, 어쩌지 못하고 있었는데 또 마침 우리과 애들도 장터를 하고 있더라. 그래서 애들이랑 술을 막 먹고, 날이 어두워지자, 자리를 정리했다. 00학번 어떤 친구와 01학번 어떤 친구랑 셋이서 이 00학번 친구네 집에 가서 또 놀자고 00학번 친구네 집 근처에 있는 전철역까지 갔는데, (나는 우리 집에 올라면, 그쪽 전철역으로는 갈 이유가 없는데...) 00학번 친구가 자기 피곤하다가 나보고 거기서 헤어지잔다. 그러면서 01학번 친구랑 둘이서 어깨동무하고 가지 않던가. (이 01학번 친구도 그 동네에 사는 모양이더라)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다시는 저 녀석이랑 술을 먹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툴툴대면서 돌아서서, 지하철을 타고, 집까지 왔다. 집에 오면서 아채가게에서 가지와 순두부를 샀다지. 어쨌든 방문을 열었고, 사온 것들은 냉장고에 쳐 넣고, 나는 바로 뻗어버렸다. 그리고 지금 (02시 30분) 일어났다. 일어나서, 00학번 친구가 피곤하다고 거기서 헤어지자고 한 것은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그 때, 계속 술 마시러 갔으면, 지금쯤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여튼 다시는 저 녀석이랑 술을 먹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것을 내 머릿속에서 재빨리 취소시켜 버렸다. 오늘 또 마시자~


갑자기 지난주 금요일의 어떤 기억이 생각났다. 길에서 누군가를 정말 우연히, 그리고 무려 6년만에 만났다. "잘 지내?" "너가 이름이 뭐더라..." "○○○요" "나는 ○○○○에 다니고 있어." "저는 학교 다니고 있어요." "졸업하면 뭐할거야?" "졸업하면 놀아야죠." "너가 몇 학번이더라." "99요" "연락하는 99 친구들은 있고?" 그 속에서 말하는 99 친구들이 누굴 의미하는 지 알면서도, 나는 그 사람이 의미하지 않은 다른 99 친구들을 생각하면서 대답했다. "저는 연락 안하고 지내요." 그렇게 말한 걸, 그날 버스를 타고 학교로 가면서, 두고두고 기억해냈고, 그리고 후회했다. 그리고 어제, 그때와 비슷한 시각에 다시 그 길에서 그 사람이랑 매우 닮은 어떤 사람을 보고, 나는 그 사람인 줄 알고, 가까이가서 얼굴을 들여다 봤으나, 아니었다는 거지. 그 민망함이란.ㅋ 하지만 민망함보다도 중요한 게 있어. 나는 그 사람을 다시 보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애써 외면하지 않으려고 했을까? 그걸 나도 모르겠다는 거야. 금요일에 이야기했던 내용에서 조금이라도 진전된 이야기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은 기대가 그런 미련 같은 것이 아직 나에게 남아있었다는 것. 그것밖에는 아무것도 모르겠다. 또 언젠가 만날 날이 있겠지. 연락처를 교환하지 않은 것은 잘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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