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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근무

회사 나왔다.

 

이른바 '사회생활'을 시작한지 두 달 정도, 두 번째 일요일 당직이다.

 

여의도역에 내려, 걸어오면서 계속, 내가 읽고 생각했던 것에 대해, 생각했다.

 

한자로 표기해야 의미가 더 잘 전달되는 문장들, 일상에는 도무지 쓸모없는 내용들, 수면제나 냄비받침의 훌륭한 대용품, 문학은 뭘 할 수 있나? 도대체?

 

물론 나도 알고 있었다. 구체적인 현실에 대한 감각이 모자라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원론에 집착했고 그걸로 되었다고 스스로에게 이야기하곤 했다. 물론, 주위사람들은 지겨워했지. "저 새끼 또 저 소리야."

 

이제 두 달.

 

난 그동안 얼마나 변했을까?

 

매일 저녁마다 저녁을 준비하고, 옆지기 퇴근시간에 마중을 나갔는데 이제는 못한다. 츄리닝에 대충말린 머리로 어떤 곳이든 들어가고 나왔는데 이제는 못한다. 이것저것 많이도 쓰고, 말도 많았는데, 인제 귀찮다.

 

한적한 일요일 근무.

 

두 달.

 

이제 일이 좀 익숙해지기도 했으니, 그동안 소원했던 활자들을 좀 만나볼까.

 

앞으로 스물 두 달.

 

도서관 구석에 박혀, 화성에서 외계인과 만났다는 소식에도, 태평양 한가운데 뽕나무밭이 생겼다는 소식에도 그냥 그렇게 앉아 있던 박노인이, 잘 해나갈 수 있을까?

 

근데 도대체, 왜 땀도 안 흘렸는데 매일마다 겉옷을 갈아입어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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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해석

이거 얘기를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스러운데...

 

아버지가 사회에 늦은 첫발을 내딛은 박노인에게 해주신 이야기.

 

'학교의 열등생이, 사회의 우등생이다.'

 

의 의미는,

 

학교에서 잘나가던 놈들은 자기가 잘 나가니까 아부를 안하는데,

 

잘 못나가던 놈들은 자기가 모자란걸 아니까 아부를 열심히 한다.

 

쳇.

 

아름다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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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단상

처음으로 일요일 근무를 했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간간히 경비가 지나가면서 '저놈 못보던 놈 같은데'라는 눈길을 보냈다.

 

쳇, 당신이 제복을 입지 않았다면, 나도 당신에게 "어떻게 오셨습니까?" 했을거라고요.

 

아무튼, 1단에서 몇번인가 연패를 해서 1급으로 떨어졌다. 다시 5연승 뒤에 1패 1승 1패 1승인가 해서 다시 1단이 되었다. 세상의 미친 속도는 바둑에도 영향을 미쳤다. 단 1시간 만에, 나는 여섯집 반이 늘었다.

 

그렇게 아침부터 3시 정도까지 바둑을 두고, 컵라면을 끓여먹고, 전화를 두 통 받고 집에 왔다.

 

일요일이다.

 

입사한지는 한 달이 조금 넘었다. 그러니까 내가 츄리님 이외의 옷을 입게 된 것이 꼭 그만큼 된다는 뜻이다. 왜 츄리닝을 입으면 안되는거지? 나는 츄리닝을 입는 순간 야수로 변하는 인간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쳇, 덥다.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여러 몹쓸 물건들이 지구를 덥게 하듯, 긴 면바지와 적당히 단정한 남방은 나를 덥게 만든다.

 

아, 월요일 쯤에 컨펌을 받아야 하는(전문용어 한 번 써봤다. 정확한 스펠이나 표기따위는 모른다. 가서 보여주고 OK받는걸 컨펌 받는다고 하는 것 같다.) 기사를 반 절 정도 쓰다가 집에 와서 다 썼다. 언제나 그렇지만, 아주 짧은 글을 금방 써내기 위해, 나는 오랜 시간 우주를 고민한다. 잡지왕, 몰래카메라, 피아노의 숲 13권, 켄이치 24권, 그리고 '불가능한 도약, 공간이동'이라는 모르는 용어가 제법 많아 흥미로운 책의 몇 장. 옆지기가 기사를 보고 볼 만 하다고 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회사가 동의할지는, 미리 걱정하지 말자.

 

언제쯤이면 생활이 정리가 될까? 지난 한 달동안, 나는 회사 일 이외에 다른 일은 거의 하지 못했다. 요리도 거의 못했고, 계획했던 방충망 설치도 안됐고, 지붕에 여름나기용 방열판(거창한것 아니다. 옥탑방의 경우 은박 돗자리를 지붕에 깔아주면, 방 안 온도가 상당히 덜 오른다는, 소문) 설치도 멀다.

 

그래도 일요일. 천지창조는 일단 저질러 버렸으니 쳇, 모른척 쉬어버려야 하는 일요일.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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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무조건 자게 하는 고참이 더 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말인즉슨, 그냥 편하게 쉬라면 신병들은 쉬지 못한다. 그냥 무조건 자라는 고참이 그래서 좋다는 것인데,

 

역시 남한 사회는 군대.

 

제일 높은 사람이 거의 매일 집에 늦게 간다. 쳇,

 

물론, 퇴근에 대해 아무런 강제조항은 없다. 뭐라고 하지도 않고 이를테면, 자유롭다. 그러나,

 

입사한지 아직 한 달도 되지 않은 나는,

 

도무지 선배님들처럼 자유로울 수가 없는 터.

 

(그래도 한 시간 이상 더 앉아 있지는 않았다.ㅡ.ㅡ;; 쳇, 그래도 불만있는게 맞다. 내가 정권잡으면 5시면 회사에 전기 끊는다.)

 

그렇게 적당히 눈치보고 어쩌고 하던 끝에, 오늘 드디어.

 

가야 할 때를 알고, 가 주시는 분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퇴근시간이 되니 칼처럼 퇴근을 하신다.

 

사실 그동안 제가 가진 불만은 혼자 생각이었어요. 자유롭게 퇴근하는 즐거운 우리회사.

 

 

 

 

 

 

 

 

 

 

 

 

 

 

근데 오늘 당직.

 

특히나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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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거탑

뭔가 좀 걸리는건,

이주완 과장 딸.

내가 아는 활동가들과는 뭔가 좀 다르다.

뭘까?

아직 2부 보고 있는데,

언젠가 지나가면서 나중에 나올 변호사가 나오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는데,

'인권변호사'라고 벽에 써붙이는 인권변호사 사무실이 있나?



아무튼, 이제 나도 일을 하니 먹어도 될까.

거기다 비정규직이니까 놀고먹던 때 보다,

좀 더 편하게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아무튼, 쳇.

왜 바지를 접어입으면 안된다는거지...



내가 보기엔 예쁘기만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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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이전에 집회장 갈 때와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쳇, 가는 방향이 다르잖아. 그 때는 국회의사당 방향, 지금은 ****방향.



여의도에는 회전문이 참 많다. 걸음은 빠르고, 점심 시간도 짧다.

적응 중이다.



출입증에 박을 사진을 찍었다. 아저씨가 묻는다.

"어디?"

"***입니다."

"호오. 좋은데 가셨네 연봉도 좋고..."

"계약직입니다. 파견."

"흐으음...그래도 좀 있으면 정식으로 입사하겠네..."

'법이 바뀌어서 이제는 2년 지나면 무조건 잘려요 아저씨.^^;;' 하려다 그만 뒀다. 생각보다 크게 나쁘지 않다. 아직은.
 
아무튼, 비정규직 노동제한법은 어느 몹쓸 종자들이 만들었나 싶다.



이틀 출근했는데, 두 번 다 점심을 빠방하게 먹었다. 촌놈 출세했다.



언제쯤 여의도를 걷는게 아무런 감흥이 없게 될까...

드문드문 드는, 내가 여기에 일하러 오기 시작할 무렵 누군가 죽었다는 기억이 사라지게 될까...

합격을 통보받고, 사랑방에서 보내준 평화의 볍씨 핸드폰 고리를 USB로 바꿨다. 미안해요. 그래도 소중하게 보관할께요.



월급날이 좀 묘한 날짜다. 왜 말일이 아니지? 여유가 되는대로 후원하던 곳에 연락을 넣어봐야 겠다.(대충 그 언저리가 되는게 안전하지 않을까?) 노동당, 환경정의, 사랑방, 일다, 언니네트워크. 일다는 제대로 들어가고 있는지도 다시 물어봐야 한다. 아무튼, 일하는 사람이 되었으니, 몇 곳 더 후원할 수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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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첨

이제부터 평일에는 츄리닝 못입고 다니게 되었음. 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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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선생님들의 블로그들을 돌아보다 접한 소식.

커트 보네거트 사망 (소식 전해주신 노정태님에게 감사)

"제 5 도살장"이라는 소설을 추천받아 읽어본 적이 있다. 오랫동안 마음을 흡족하게 만드는 소설을 만나지 못했었는데, 정말 좋았다. 그리고 그가, 노구를 이끌고 반전집회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는 소식도 좋았다. 집회장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조세희 선생님 처럼.

#1

학부시절 김형은 유물론자로써, 죽음 다음의 세상에 대해 신뢰하지 않는다고 했다. 박노인은 뭐가 있기는 있을터이나('그러면 씨발 세상이 너무 불공평하잖아.'라는 너무나 순진한 생각에서) 알 수가 없는 노릇이며, 공선생님의 괴,력,난,신을 논하지 말라하신 가르침을 쫓아 별 말 하지 않았다.

얼마전에 누군가의 장례식에서 김형을 만났다.

"형, 아직도 그렇게 생각해요?"
"지금은 그냥 생각 안하려고 해"

죽은 그 사람은, 지금 천국에서, 신의 왼편에 앉아 있어야 옳다. 좋은 사람이 일찍 사라지는 세상은 슬프다. 지난 겨울의 일이라, 아직 완연한 봄이 오지 않은 지금, 그 생각나면 나는 조금 운다.

태사공이 말한다. 세상에 천도가 있느냐 없느냐.

#2

대충 요약하자면, '수수하게 태어나서, 수수하게 공부하다, 수수하게 장가가서, 수수하게 시키는대로 살다가, 옆 집 똥개 죽을 때 죽어라.'

감옥에서 보낸 서간문으로 읽을 만 한것으로 주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꼽는데, 채광석의 "그 어딘가의 구비에서 우리가 만났듯이" 또한 못지않게 훌륭한 책이다. 앞에 요약한 것은 김형이 자주 인용하던 채광석의 싯구절.

채광석의 그 책을 나는 지금 대학 1학년 때 읽었는지 고 3때 읽었는지 조금 헷갈린다. 고3 때 읽은 책이라면 "전태일 평전"과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한겨레21'과 더불어 나를 극우민족주의에서 구원시킨 책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전신전화국 가까이에 있던 그 도서대여점에서 빌려본 그 책들이 아니었더라면, 끔찍하다.

그 책의 마지막에 김현인가 김윤식인가가 쓴 발문이 있었는데, 그가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나는 채광석이 아직 살아있는 사람이라 생각하며 책을 읽었던 것인데, 그 때 느낌이 참 묘했다. 조금 울었던 것도 같다.

역시 요약한 내용. '딸이 어머니에게 와서 묻는다. 감옥에는 나쁜사람이 갔다온다는데 아버지는 감옥갔다왔으니 나쁜 사람이냐? 아버지는 자신이 왜 감옥에 갔다왔는지를 천천히 곱씹다 결국 생각한다. 그가 꿈꾸었던 것. 자유. 밥. 사랑'

내일 책 다시 사야겠다.

#3

얼마전엔 집회중에 어떤 사람이 국가권력에게 맞아죽은 일이 있었다. 두 명이나. 알려진 바에 의하면 많은 사람들이 저항의 표시로 자신의 생명을 내어 놓았으며, 인정받지는 못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짹짹'

요 며칠 전에는, 어떤 사람이 자신의 몸에 불을 놓았다. 사진을 보고, 혹시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닌가 싶어 이곳저곳 확인하려 헤매다녔다. 나는 왜 그가, 내가 생각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에 잠시나마 안도했을까, 그리고 한참을 괴로웠으나,

국민은행 794002 - 04 - 026736 예금주 이봉화, 핸드폰으로도 후원이 가능하다.(클릭)

아무튼 나도 당신도, 아주 큰 빚을 지고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조금씩이라고 갚아나가자.

#4

세상이 불공평하지 않다면, 죽음에 슬퍼할 필요가 없다.

슬픔따위는 전혀 없는 세상. 죽음이 더이상 슬프지 않은 세상. 일단은, 죽지들 마시라.

비가 오려다 말고 해서 그런가, 이야기가 이상한 쪽으로 자꾸 간다. 아무튼, 죽지들 마시라.

#5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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