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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비정규직운동 : 조합주의에서 사회주의로

비정규직운동 : 조합주의에서 사회주의로
현 시기 비정규직 운동의 성격과 사회주의자들의 과제


1. 서 문


비정규직 운동을 둘러싼 2006년 지금의 상황은 2002년과 유사하다. 2002년은 1999~2001년 비정규직 운동의 첫 번째 대중적 진출이 실패한 이후 숨을 고르면서 지난 국면을 평가하고 다음 국면을 준비하던 시기였다. 지금 상황도 그 때와 유사하게 2003~2005년 비정규직 운동의 두 번째 대중적 진출 이후 대열을 정비하면서 다음 발걸음을 옮기기 위해 지형지물을 살피고 나아가야 할 좌표를 그리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정규직 운동의 위상과 전망을 두고 운동진영 내부에서는 마치 오리가 수면 아래서 쉼 없이 발짓하듯 조용한 계급투쟁이 전개되고 있다. 비정규직 운동에 관한 운동진영 내 논쟁은 자본과의 적대전선 속에서 어떻게 전체 노동계급의 전투대형을 갖출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 계급투쟁일 수밖에 없다. 운동진영 내부에는 노동계급적이고 사회주의적인 입장만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부르주아적이고 개량주의적인 입장, 소부르주아적이고 중도주의적인 입장이 더 많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사회주의 노동자》는 2호, 3호에서 「대공장 사내하청 투쟁 3년, 평가와 과제」를 커버스토리로 다룬 바 있다. 이번 호 기획특집에서는 비정규직 운동을 둘러싼 그간의 논쟁과 쟁점을 돌아보고자 한다. 나아가 현 시기 비정규직 운동의 성격 변화와 전체 운동에서의 위상 그리고 사회주의자의 과제를 제출하고자 한다.


2. 새로운 물결?


비정규직 운동에 관한 과거의 논쟁이 생각난다.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대략 5년 전일 것이다. 당시 비정규직 운동은 갓 출발점에 있었고, 활동가들의 투신이 막 시작되려는 찰나였다. 비정규직 운동이 갖는 잠재력에 주목한 우리는 대공장 운동에서 비정규직 분야에 역량을 투입하자고 요구했다. 그러자 많은 다른 그룹 동지들이 그것에 대해 ‘정규직 운동을 포기하는 것’이며, ‘사실상 대공장 운동을 청산하는 것’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비정규직 노동자투쟁, 그 새로운 전진을 주목하자!」『노동해방』2005-10-05


《노동해방연대》(구 《미래연대》)는 5년 전, 정확히 말하면 6년 전 비정규직 운동에 관한 논쟁을 떠올리면서 다른 그룹들의 ‘정규직 운동을 포기하는 것이며 사실상 대공장 운동을 청산하는 것’이라는 비판을 회고한다. 그러면서 다른 그룹들은 2-3년 전부터 그 실천에서 사실상 자신들의 계획을 수용하고 있다며, “이것은 5년 전에 우리가 상당히 겸손한 방식으로 제기했던 바로 그 명제 - 각자 노동해방의 원칙을 가지고 실천하자. 객관적 상황의 흐름은 무엇이 올바른지를 증명해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 논쟁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고 하나의 흐름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 가 옳았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정당화하고 있다. 그러나 그 당시 논쟁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질 성격의 것이 아니었다. 당시 논쟁은 여전히 하나의 대립된 구도로 지속되고 있으며, 더군다나 지금, 2002년 상황과 유사한 2006년에 있어서는 더욱 더 그러하다. 비정규직 운동이 대중화되고 그 운동에 사회주의자들이 개입하고 있는 현실을 두고 ‘거 봐라. 그 때 우리가 말한 게 옳지 않았나’라고 자족할 수도 있겠지만, 당시 다른 그룹들의 정당한 비판을 진지한 자기평가 없이 사후적으로 손쉽게 넘어가서는 안 될 일이다.

《노동해방연대》는 2000년 중소기업과 비정규직의 투쟁(롯데, 새한, 게이츠, 임창, 동우공영, 통인가게, 영남금속, 동방제약, 베스콘, 일진, 마마, 고속철도공단, 이랜드, 광주금속 동명분회, 대우금속, 갑을전자 등)을 주목하면서 ‘새롭게 떠오르는 희망의 물결’, ‘남한판 이스트엔드 운동’으로 바라보았다. 숫자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비정규직의 규모, 열악한 임금과 근로조건, 계급구성에 있어서 젊은 연령층과 여성노동자의 우위 등이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운동의 성격을 ‘남한판 이스트엔드 운동’으로 규정했던 근거였다. 하지만 5~6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볼 때 과연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운동이 엥겔스가 주목했던 영국의 이스트엔드 운동을 재현하고 있는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더욱이 이 운동이 《노동해방연대》가 과거에 주장했던 바대로 “대기업 노동자 운동의 퇴행의 물결이 낳은 일종의 가장 더러운 거품”을 쓸어버릴 새로운 물결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숙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지난 5~6년의 경험은 오히려 비정규직 운동이 사회주의 운동으로 전진하지 못하고 조합주의 운동으로 후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중소기업과 비정규직에 기반을 둔 노동조합운동을 혁명적으로 이끌어 ‘제2의 87년’, ‘제2의 전노협’ 운동을 건설하자는 《노동해방연대》의 노선은, 한 마디로 말해 ‘혁명적 신조합주의’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 노선은 대공장 정규직 운동을 일종의 노동귀족으로 규정하고, “귀족화되고 결코 노동해방주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영국의 거만한 기존 노동조합들”과 유비하였다. 이들의 노선은 그 의도와는 무관하게 대공장 정규직 운동에 대해서는 실천적 개입과 지도를 유보하면서 선전활동으로 제한되는 것으로(때문에 당시 다른 모든 사회주의 그룹들은 ‘기권주의’, ‘청산주의’라 비판했던 것이다) 비정규직 운동에 대해서는 조합주의와 대기주의 경향을 물들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혁명적 신조합주의


어떻게 보면 《노동해방연대》가 주장했던 바대로 전투적으로 올라오는 새로운 운동에 자신의 배를 띄우고 그 물결을 따라 항로를 개척하고자 하는 것이, 유일하지는 않겠지만 유력한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대공장 정규직운동에 대한 개입과 지도를 기권한 데 있었던 게 아니라, 실은 대공장 정규직운동을 휘감고 있는 조합주의와의 투쟁에서 기권했으며 새로운 조합주의·전투적 조합주의·혁명적 조합주의에 자신의 배를 띄운 것에 있었다.

이는 6년 전 이 동지들이 주장했던 투쟁요구들에서도 드러난다. 당시는 IMF 이후 전 사회적인 구조조정이 노동자계급 전체의 목줄을 겨냥하고 있었으며 구조조정을 중심으로 계급적 전선이 형성되고 있던 시기였다. 그러나 이 동지들은 구조조정 반대투쟁을 전 사회적인 문제의식으로 확장시키고 그것을 전 계급적인 투쟁으로 밀어 올리는 대신, 구조조정 반대를 추상적이고 무정부주의적이라고 비판하며 “정리해고 철폐, 외주 용역화 격퇴, 노동강도 강화 반대”같은 명확하고 구체적인 요구를 내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한 주장이 민주노총과 소부르주아 기회주의 세력들의 ‘일방적 구조조정 반대, 해외매각 반대’와 같은 껍데기 요구들을 비판하는 효과를 가졌던 것은 사실이지만, 역으로 전선을 해체하고 단사주의와 조합주의에 영합하는 결과를 불러온 것도 사실이었다.

한통계약직 노동자들의 517일 투쟁에서 구조조정 저지투쟁과 비정규직
철폐투쟁은 끝내 만나지 못했다. (사진: 구 한통계약직노조 홈페이지)
《노동해방연대》(구 《미래연대》)의 혁명적 신조합주의는 투쟁요구안 뿐 아니라 전술과 조직노선에서도 그 조합주의적 경향을 드러냈다. 이러한 경향은, 2001년 말 운동이 다시 내리막길로 치닫자 더욱 노골적으로 나타났다. 그것은 바로 ‘조직적 퇴각론’이었다. 517일간의 영웅적인 한통계약직 투쟁에서 당시 이 그룹은 “‘정규직화 쟁취’도 노동조합의 중요성에 비한다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 어떤 식으로 결정이 내려지건, 한통계약직 투쟁은 ‘노동조합 사수와 강화!’라는 단 하나의 원칙에 충실해야 하며 그것이 포기된다면 나머지 모든 것들은 아무런 의미도 없게 될 것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라며 공공연맹과 함께 ‘조직적 퇴각론’을 주장했다. 한 마디로 조직을 남기고 투쟁을 접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목동전화국 점거투쟁 등 비정규직 철폐와 정규직화 쟁취를 선도적으로 요구했던 한통계약직 노동자들의 처절한 투쟁은 단지 한 사업장의 투쟁이 아니라 2000년 이후 끈질기게 이어져 오고 있었던 비정규직 투쟁의 구심이었다. 따라서 캐리어사내하청 투쟁 이후 한통계약직 투쟁의 승패 여부가 전체 운동에 미칠 영향은 결코 적지 않았고, 비록 패배하더라도 ‘어떻게△ 한통계약직 노동자들의 517일 투쟁에서 구조조정 저지투쟁과 비정규직 철폐투쟁은 끝내 만나지 못했다. 패배하는가’가 당시 정세에서는 매우 중요했다. 하지만 ‘조직적 퇴각론’자들은 투쟁 패배를 전제로 놓고 민주노조를 거점으로 질서정연한 퇴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이러한 논리는 ‘초기업노조건설’ 주장으로 이어졌다. 이들의 논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특수한 존재양식, 즉 고립성·이동성·분산성을 이유로 산별노조나 일반노조, 지역노조와 같은 조직형식을 무슨 특별한 대안인양 제출하는 것과 맥을 같이 했다. 그러한 논리들은 당면투쟁을 회피하는 기회주의의 근거로 작용했다.

산별노조는 민주노총 관료들에게 비정규직 투쟁을 외면하는 좋은 핑계가 되었다. 민주노총 관료들은 산별노조가 비정규직과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의 희망이라고 강변해 왔으나, 실제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일어나자 산별 전환이 되면 문제가 풀리니까 그 때까지 기다리라는 논리를 들이대며 비정규직 투쟁을 가로막았다. ‘조직적 퇴각론’에 이은 초기업노조건설 또한 2001년 말 대부분의 비정규직노조들이 장기투쟁으로 지쳐갈 때 투쟁을 접자는 관료들의 이데올로기로 나타났다. 당시 《노동해방연대》(구 《미래연대》)의 혁명적 신조합주의는 ‘우리가 하면 다르다’는 것 외에는 현실 운동에서 개량적 신조합주의와 구분되지 못했고, 그런 식으로 신조합주의 경향을 비정규직운동 안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그런데 이제 와서 “5년 전 당시에 우리의 주장에 격렬하게 반대했던 동지들의 상당수는 지금 비정규직 투쟁의 현장에서 때로는 조역으로 때로는 주역으로 마주치고 있다. 그들은 2-3년 전부터 그 실천에서 사실상 우리의 계획을 수용하고 있다”니.

■ 이스트엔드와 신조합주의

이스트엔드(East End)란 영국 런던 북동부 템스 강 북안에 있는 구역으로 산업혁명 후 공업지대와 항만지구가 형성되어 이곳에서 일하는 극빈노동자가 사는 빈민가로서 유명했다. 이에 연유하여 런던뿐만 아니라 각 대도시의 노동자를 중심으로 하는 극빈계급의 거주지역도 이스트엔드라 부르고는 한다.

19세기 후반 영국 노동운동은 대공장과 숙련공 노조를 중심으로 개량주의와 조합주의가 창궐했다. 이러한 시기에 1880년대 후반부터 이스트엔드에 거주하는 하층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신조합주의’라고 불리는 전투적 노조운동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북부 직물공업지역에서 여성노동자들 중심의 새로운 조합들이 결성되었고 이들은 기존 노조에서 소외된 많은 저임금노동자들을 받아들였다. 또 제강업 분야의 반숙련공과 부두노동자를 중심으로 하는 조직도 결성되었다. 특히 1889년 부두노동자들의 파업 등 전투적 노동운동이 성장하였다. 이는 80년대 후반의 호황과 고용증가, 노동구성의 변화, 치안당국의 유화적 태도, 고용주의 묵인 등이 작용한 결과였다.

당시 영국에 거주하고 있던 엥겔스 역시 이스트엔드 운동에 주목하며 이 운동이 낡은 조합주의자들의 부르주아적 편견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운동 전반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을 것이라며 큰 기대를 걸었다. (『잉글랜드 노동계급의 처지』독일어 제2판 서문)

하지만 1890년대에 신조합주의는 침체에 빠지기 시작했다. 전투적 노동운동에 위기감을 느낀 영국 자본가들이 1893년 불황기를 타고 전면적인 탄압 공세로 나왔던 것이다. 새로운 노동조합들 중 하역·건축·가스 분야의 노동조합들은 탄압에도 살아남았지만, 이전보다 더 강화된 자본가의 권한을 받아들이는 대신 노동조합을 인정받는 방식으로 타협해야 했다. 그리하여 점차 기존의 숙련공 노동조합의 보수적이고 분파적인 모습을 닮아갔다.


개량적 신조합주의


이런 혁명적 신조합주의는 비정규직을 미조직 조직화의 관점으로만 접근하는 민주노총 주류 이데올로기 집단의 개량적 신조합주의와 상당히 많이 닮아 있다. 그 중에서도 한국노동사회연구소를 중심으로 한 개량적 신조합주의자들은 2000년 ≪한국비정규노동센터≫(이하 ≪비정규노동센터≫) 건립을 통해 비정규직 운동에 대한 사상적, 실천적 영향력을 점차 넓혀왔다. 이들은 전형적으로 남한 부르주아 노동운동 경향을 대표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벗을 자임하는 ≪비정규노동센터≫는 지속적으로 남한 노동운동의 ‘낮은 노동조합 조직률’과 ‘미조직 노동자들의 조직화’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영국노총의 새 노조주의 운동, 미국 서비스노조의 ‘청소부에게 정의를’ 모델에 관한 윤진호 교수의 연구는 민주노총의 조직활동가 양성 프로그램, 전략조직화 사업 50억 기금 추진에 있어 이론적 바탕이 되었다. 비정규센터 기관지 『월간 비정규노동』은 “비정규·중소영세 노동자 조직화 경로로서의 지역일반노조”를 꾸준하게 특집으로 다루면서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민주노동당에 이론적 자원을 제공해왔다.

“비정규 노동자의 조직화는 초기업단위 조직을 통하여 실현된다. 지역일반노조이건 전국업종단일노조이건 비정규직의 조직화는 기업별 분단을 뛰어넘을 수밖에 없으며 직·간접 고용 비정규 노동자의 조직화도 과도기적인 독자 조직을 넘어서 진정한 산별노조의 건설을 통해 계급적인 단결로 나아가야 한다”며, ≪비정규노동센터≫는 이를 “사회운동으로의 지향 - 사회개혁 투쟁으로서의 비정규노동자운동”이라고 규정했다. 다양한 업종에 넓게 분포되어 있는 비정규직,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해 현장에서 분투하고 있는 지역노조와 일반노조 동지들의 활동은 존중되어야 하며, 현재의 조건에서 그러한 활동방식은 필요하기도 하다. 그러나 개량적 신조합주의자들의 노선으로써 제출되는 일반노조는 사실상 비정규직 운동에서 성장하고 있는 부문주의, 조합주의를 강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개량적 신조합주의자들은 2005년 들어와서 ‘노동시장에 따른 노동조합 조직화 모델’을 제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는 단일노조로, 중공업·조선은 지역노조로 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대공장 정규직 운동의 조합주의를 그 외피만 건드릴 뿐 정면돌파 대신 우회로를 걷자는 것이다. 왜냐면 비정규직 운동이 대공장 정규직 운동의 조합주의와 매 시기 충돌하고 투쟁하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조합주의의 혁신과 사회주의를 대안으로 삼는 게 아니라 기존의 조합주의 질서를 피해 새로운 조합주의를 위한 모델 찾기에 급급하기 때문이다.

개량적 신조합주의자들은 최근 들어서는 ‘지역별 조직건설안’을 하나의 노선으로 제출하고 있다. 지역별 조직건설안은 지역노사정협의회의 현실화 흐름과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 ≪비정규노동센터≫는 작년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에서 제기되었던 원청사용자성 인정투쟁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다자간 협상’ 그리고 이를 실질적으로 주도할 ‘민주노총 지역본부의 위상 강화 방안’을 제시한다. 지역별 사회적 합의기구를 통해 협조적 노사관계를 구축하자는 것이다. 이 개량적 신조합주의를 배경으로 제출되고 있는 비정규지역센터 사업과 김금수의 지역노사정협의회 구축 흐름은 ‘사회적 합의주의’라는 이름으로 노동운동을 잠식해 들어가고 있다.


3. 비정규직운동의 자주성


한통계약직 투쟁이 패배로 마감되면서 비정규직 운동은 잠복기로 들어섰고 사회주의자들은 평가와 전망 수립을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이 때 한라중공업 사내하청 문제로부터 캐리어사내하청 투쟁, 한통계약직 투쟁 등 지난 몇 년간의 뼈저린 경험과 실패로부터 다수의 사회주의자들은 ‘비정규직운동은 정규직운동의 엄호 없이는 홀로 생존하기 힘들다’, ‘장기간의 모색을 위해 현장에 뿌리내리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현중사내하청노조의 박일수 열사투쟁은 비정규직 스스로가 현장을 조직하고
자주성을 고양해야 한다는 임무를 제기했다. (사진: 현중사내하청지회)
2002년 모색기 동안 그러한 인식은 현실에서 다양한 논리와 방식으로 사회주의자들의 패배주의·대기주의적 실천양식을 정당화하는 구실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 권력을 향한 전진》(이하 《전진》)그룹은 비정규직투쟁이 노동조합운동 차원에서는 전혀 받아 안을 수 없는 것이라고 규정하였다. 대부분의 전투적 활동가들은 기존 정규직 운동 내 전투파들이 비정규직 문제를 받아 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투파조차 비정규직 투쟁을 받아 안지 못했고 오히려 이들을 탄압하는 사례가 나타나기도 했다. 이러한 모습은 한라중공업과 캐리어, 한국통신 등에서 나타났다. 전투적 조합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상 비정규직 투쟁을 받아 안을 수 없다는 것이 현실을 통해 확인된 것이었다.

《전진》은 또한, 비정규직 운동이 정규직 운동과 동떨어져 홀로 싸운다면 전체 운동의 발전은커녕 두 운동 모두 몰락과 붕괴에 처할 것이라는 점을 지난 투쟁의 교훈으로 삼았다. 두 운동이 분리된다면, 비정규직 문제는 서구처럼 시민사회운동으로 포섭되고 정규직운동은 노골적인 조합주의로 귀결될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대공장 정규직의 선진노동자 운동과 새롭게 올라오는 전투적 비정규직 운동이 합류하여 하나의 뚜렷한 정치적 경향 즉 사회주의 운동으로 결집할 것을 촉구하였으며, 사회주의자들의 당면과제 역시 그로부터 도출하였다.

《전진》은 1999~2001년 민주노총 관료들이 보인 전형적인 조합주의적 방식의 비정규직 노조 건설을 비판하고, 노조 건설은 새로운 조합을 ‘하나 더’ 만드는 데 목적을 두는 게 아니라 기존의 대공장 정규직 운동을 사회주의 운동으로 ‘재편’하는 사회주의자들의 전술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공장 속으로 비정규직투쟁을 도입해야 하며 노동조합질서를 뛰어넘어 대공장을 중심으로 생산계열로 편재되어있는 사내하청 뿐 아니라 외주노동자들까지 단결시킴으로써 대공장 운동을 계급적으로 혁신해야 한다. 이를 통해 대공장을 혁명운동의 관제고지로 만들고 그것을 중심으로 시민운동으로 이끌리며 원자화되고 있는 비정규직운동을 끌어당겨야 한다. ··· 비정규직 투쟁을 통해 대공장에 계급 의식적 운동질서를 재구축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새롭게 형성될 선진노동자들을 결집시켜내는 것, 이것이야말로 현 시기 혁명적 사회주의자와 선진노동자의 가장 중요한 당면 임무로 제기되어야 한다.

-「비정규직운동을 계급투쟁으로 대공장을 혁명의 관제고지로」
『노동자권력을 향한 전진』2호 2003-6-20

이는 선진노동자 운동 내 기회주의적 경향들은 사회주의라는 이념 자체에 대한 동의만으로 재편될 성질의 것이 아니므로, 대공장 사내하청투쟁이라는 실천적 잣대를 통해 선진노동자 운동 내에서 아직 건강하게 남아있는 계급의식적 활동가들을 재구축해야 한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전진》의 입장은 현실화되지 못했다. 오히려 2003~2005년 다시 고양된 비정규직 운동은 기존의 민주파 혹은 전투파 현장조직의 실상을 다시 한 번 적나라하게 드러냈을 뿐, 《전진》이 제기한 선진노동자 운동의 재편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파괴’를 통한 ‘창조’로 나아가지 못하고 확인사살에 그쳤을 뿐이었다.

왜 선진노동자 운동의 재편은 이루어지지 못했는가? 우선 대공장 선진노동자 운동의 붕괴와 타락 속도가 그들의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해체 일로에 있는 대공장 선진노동자 운동 속에서 비정규직 투쟁을 받아 안을 수 있는 정규직 운동 내 전술주체는 부재하거나 아주 미약했다.

반면에, 2003년부터 일어나기 시작한 대공장 하청노조 건설운동은 과거와 달리 대중적 운동으로 나타났다. 현대중공업과 같은 극단적인 예를 제외하고 자본은 하청노조의 건설과 생존을 어느 정도 용인해 주었다. 융합할 정규직 내 선진노동자 운동은 미약하거나 부재했고 사내하청 투쟁 자체로는 전(全)공장을 흔드는 투쟁으로 등장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사내하청노조들은 일정 규모의 조합원을 확보하고 퇴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속에서 투쟁을 계속 밀고 나갈 만한 사회주의자들의 주체역량도 미약했다. 특히 구체적인 현실투쟁과 사회주의 정치선동을 결합하지 못했던 것이 문제였다. 현실의 객관적 운동 상황과 사회주의자들의 주체 역량은 대공장운동의 사회주의적 재편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상은 기존 운동의 재편을 통해 사회주의 운동의 기반을 잡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며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대중투쟁 속에서 사회주의 정치선동의 활성화를 통해 차근차근 사회주의 운동의 기초를 밑바닥부터 형성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교훈을 남겨주었다.


비정규직 운동의 성격 변화


2002년 휴지기와 모색기를 거쳐 2003년 비정규직 운동은 다시금 노동자투쟁의 구심으로 떠올랐다. 현자아산사내하청지회가 노조 건설의 포문을 열자 그 열기는 울산으로, 광주로, 전국으로 이어졌다. 사내하청노동자들은 정규직노조가 나서주기만을 기다리지 않고 자신의 손으로 노조 깃발을 세우고 원청자본과의 투쟁에 나섰다.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기아자동차 등에서 속속 건설된 비정규직 독자노조는 그 출발부터 대공장 정규직노조의 조합주의와 충돌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자노조는 ‘현자비투위’의 독자노조로의 전환에 유감을 표명했고, 현중노조는 박일수 열사투쟁에 배신으로 일관함으로써 금속연맹에서 제명됐다. 1999년 한라중공업 권성원 집행부 시절부터 “지금까지 남한에서 비정규직투쟁의 의의는 단지 미조직노동자의 조직화라는 것에 머무르지 않았다. 비정규직에 대한 기존 정규직운동질서의 반(反)계급적 태도는 비정규직 투쟁이 ‘조합주의에 찌든 민주노조 운동의 혁신’이라는 과제를 부여받을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따라서 비정규직노조 대표자들의 준비모임이었던 ‘전국비정규노조대표자연대회의(준)’(이하 전비연)이 현대중공업 박일수 열사투쟁을 거치면서 기존 정규직노조의 조합주의와 관료주의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던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비공식적인 밀실협상으로 마무리된 것은 열사투쟁에 헌신적으로 결합했던 모든 동지들의 염원을 저버린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열사투쟁 과정에서 보인 대책위의 비민주성, 밀실교섭 등은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우리 운동의 풍토를 바꿔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비판에 목을 매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려는 진지한 자세와 꾸준한 노력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라고 봅니다.

-「“현장의 능동성과 자주성을 고양해야 한다” - 전비연(준) 홍영교 의장과
사노신의 이메일 인터뷰」『사회주의노동자신문』2004-4-14

2003년 이용석 열사, 2004년 박일수 열사 투쟁을 겪으며 “지역과 업종을 떠나 전국의 비정규직 노동자 공동투쟁이 필요하다”는 자각 속에 전국비정규직노조대표자연대회의(준)(이하 전비연)이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전국적 공동투쟁을 기획하고 조직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작업은 조합주의적 운동질서가 확고하게 자리 잡은 현실에서 결코 쉽지 않았다. 현중 박일수 열사투쟁에서 정규직노조는 비정규직 투쟁을 결코 허용하지 않겠다는 사측의 이해를 철저히 대변했으며 상급단체는 정규직노조 눈치 보기로 일관했다. 하지만 비정규직 주체들은 역량의 부족함을 한탄하기보다는 비정규직 스스로가 먼저 나서서 자본에 맞서 공동으로 투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민주노조 운동의 위기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져가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노조 운동을 아래로부터 혁신해야 함을 인식했다. 주체 역량의 미약함으로부터 각 단위노조들의 투쟁을 지도하고 묶어세우지는 못했지만, 전비연 활동을 통해 전체 운동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단일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그런데 2003~2005년 투쟁시기를 경과한 지금, 그동안 비정규직 운동을 하나로 묶어주었던 단일한 성격이 점차 엷어지고 있다. 2003년 10월 전국비정규노동자대회에서 “비정규직 철폐하라”를 외치며 산화해 간 이용석 열사의 죽음은 사회적으로 비정규직의 문제를 알림과 동시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비정규직 철폐’의 투쟁요구를 내걸고 투쟁할 것을, 연대할 것을 촉구하는 계기가 되었다. 각 노조가 처한 조건과 현안은 달랐지만 비정규직 철폐만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본질적인 문제임을 인식하고 연대투쟁에 나섰다.

2004년 겨울, 비정규직법 개악저지를 위해 전비연 소속 노조 4인의 동지들이
국회 앞 철탑 고공농성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사진: 현중사내하청지회)
하지만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인식되고 비정규직 내에서도 사내하청, 특수고용, 건설일용, 일반노조, 공공, 이주노동자 등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직 운동이 확대되면서 더 이상 ‘비정규직 철폐’라는 단일한 요구로 비정규직 노동자 전체를 묶기 어렵게 되었다. 전비연의 ‘비정규권리보장입법 쟁취’ 투쟁은 이러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 주었다. 전비연은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며 각자의 핵심 요구들을 병렬적으로 나열한 ‘비정규직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5대 요구’를 선전하며 법개악 저지 투쟁을 중심으로 투쟁을 집중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비정규직 운동은 특수고용을 중심으로 한 권리보장입법 투쟁흐름과 대공장 사내하청을 중심으로 한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흐름으로 크게 이원화되었다. 노동자로 인정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사용주들과의 투쟁도 중요하지만 노동3권 쟁취는 물론이고 유류비 보조, 부당과적 해결, 불법다단계 근절 등 현실문제 해결을 위한 대정부투쟁과 교섭을 필요로 했다. 하기에 법제도개선 투쟁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했다. 한편으로 만 명 이상의 조합원이 있는 큰 노조들도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조직률이나 정책역량, 노조운영경험 등 노조의 물질적 기반이 취약하여 민주노총의 지원이나 대정부 교섭틀 마련에 의존하는 경향을 드러내기도 했다.

반면에 사내하청노조들은 현장 기반이 취약하기도 했지만, ‘원청사용자성 쟁취’, ‘파견법 철폐’가 아닌 불법파견 정규직화 요구에 갇혀 전국 투쟁에 결합하지 못했다. 사내하청노조들은, 비정규권리보장입법 쟁취 투쟁에서 보인 민주노총의 국회 중심의 대응(민주노총은 비정규직 주체를 배제한 채 노사정대표자회의를 통한 의견 접근에 공을 들이는데 골몰했다. 투쟁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엄호하고 이 투쟁의 힘으로 정권․ 자본과 정면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투쟁사업장들을 교섭압박용으로 동원했다.)과 전비연의 국회 회기 중심의 대응 흐름에 대해 타당하고 건강한 비판들을 제기하였지만 이에 걸맞는 실천투쟁을 조직하지 못함으로써 자신들의 주장에 힘을 싣지 못했다.


사내하청 운동의 한계


비정규직 운동 내에서 전투적·계급적 입장을 제기하려 했던 사내하청 운동의 한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짚어보자. 독자노조건설투쟁 - 비정규직법개악저지투쟁 - 불법파견정규직화투쟁을 거쳐 오면서 사내하청노조 대표자들이 가졌던 문제의식은 이러했다.


홍영교 : 대공장 사내하청노조가 많은 주목을 받고 출범했지만 과연 전체 비정규직 투쟁에서 간접고용노동자 부분이 무엇을 했는지 고민해봐야 한다. 이번 불법파견 투쟁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모습이 있다. 너무나 자기중심적인 투쟁 상을 가지고 있다. 정규직화 투쟁이 아니라 비정규직 철폐투쟁의 선봉에 서야 하는데 직접고용 문제에만 집중하고 있다. 비정규직 철폐투쟁에 집중하여 전국적인 노동자들의 이해를 받아 안아야 하는데 자기 현장의 문제만 바라보는 게 아닌가 한다. (중략)

홍성호 : 금타 정규직화와 직접고용의 사례를 봤을 때, 정규직화 된 사람들과 직접고용 된 사람들이 어제까지만 해도 동지였는데 오늘은 적이 되는 경우가 발생했다. 이런 것을 봤을 때 일부 정규직화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분명히 검토되어야 한다. (중략)

조성웅 : 하반기 정세에서 연대회의는 자신의 실력을 전투적으로 밀어왔다. 열우당, 크레인 점거투쟁은 모두 민주노총 압박전술이었다. 그 선에서 목표가 정해진 점에서 자신의 독자적인 활동을 제한했다는 한계점을 지니고 있다. … 자신의 현장을 조직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첫째는 손배문제를 민주노총이 안받음으로 인해서이다. 둘째는 이 투쟁을 확대하기 위한 자기계획이 없고 형식적으로 대표자 회의 거쳐 민주노총 계획으로 입안되는 구조... 어찌 보면 평화로운 측면으로 이루어졌다. 정치적으로는 합의주의에 포섭될 가능성, 정치적 허약함을 보여주었다.

-「[좌담]비정규직운동의 자주성,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사회주의노동자신문』2005-1-15


자본의 가공할 탄압과 원청노조의 노골적인 배신에도 불구하고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조의 크레인점거투쟁, 현자 비정규직의 불법파견 정규직화투쟁, 기아 비정규직지회의 라인점거 독자파업, GM-대우창원 비정규직지회의 고공농성 등 대공장 사내하청 투쟁의 불꽃은 2003~2006년 쉬지 않고 작렬했다. 하지만 투쟁주체들이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던 바대로 사내하청노조들은 결정적인 약점과 한계를 안고 왔다.


GM대우 비정규직 해고자들이 고공농성을 돌입하자 지난 4월 1일 창원공장
정문 앞에서 공장진격 투쟁이 벌어졌다.

첫째, 단사 안에 갇혀 비정규직운동의 일부이자 주도체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울산지역의 경우 현대자동차에 부품을 납품하던 업체가 폐업돼 고용보장을 요구하며 사활을 건 투쟁을 전개한 대덕사지회가 있었다. 대덕사지회는 현대자동차의 이중개발을 계기로 업체가 폐업돼 공장과 현대자동차 정문에서 농성을 전개했다. 바로 정문 앞에서 공동의 적인 현대자동차 자본을 상대로 투쟁을 전개한 대덕사지회의 농성이 진행되었지만, 현자울산비정규직노조는 적극적으로 연대하지 못했다. 당시 5공장 조합원들이 휴게실을 점거하고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을 지속하는 등 비정규직노조 투쟁 중이었지만 연대투쟁을 통해 현대자본을 압박하는 투쟁으로 확대하지 못했다.

현자울산비정규직노조 뿐만 아니라 사내하청노조들은 눈앞에 보이는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이 아니라, 당시 벌어지고 있던 법개악저지투쟁에서 자신의 문제뿐 아니라 전국적인 노동자들의 이해를 받아 안아 선봉에 서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우리가 이기면 전체가 이기는 거다’라는 식의 왜곡된 대공장주의가 정규직운동에서 비정규직운동으로 흘러들어간 결과였고 사내하청 주체들의 목적의식적인 전망과 계획의 부재 탓이기도 했다.

둘째, 정규직노조와의 관계에서 비정규직 운동의 자주성을 올곧게 세워내지 못했다.

“19세기 말 영국 탄광노동자들이 자신들은 9시간 노동제를 쟁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전국의 노동자 형제(자매 - 인용자)들과 함께 10시간 노동제 쟁취를 위해 투쟁의 대열에 동참했던 높은 계급의식을 현 시기 남한의 대공장 노동운동에 불어넣을 수 있을 때, 중소영세 사업장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든든한 엄호부대를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내하청 운동은 정규직 조합주의를 혁신해서 계급 의식적으로 이끌지 못했고, 비정규직 운동의 자주성은 역설적으로 정규직노조에 대한 의존성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었다. 기아 화성공장이나 현자 울산공장에서 모범적인 원하청 연대투쟁의 사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몇몇 선진적이고 전투적인 정규직 활동가들의 연대였지 정규직 운동과 비정규직 운동의 융합이라고 보긴 힘들다. 오히려 현자노조 이상욱 집행부를 포함해 대공장 정규직노조는 사내하청의 연대 호소에 괄시와 외면으로 일관하는 속에서 사내하청노동자들은 단사 안에서 쟁취한 조그만 떡고물에 만족하며 서서히 정규직 정서를 닮아가고 있다.

셋째, 정치적으로 ‘전투적 조합주의’를 넘어서지 못했다.

구조조정의 일방적인 희생양이었던 금속의 비정규직노동자들은 사실 남한 비정규직운동의 첫 번째 주자였고 비정규직 운동의 초기 주체를 형성했다. 이들은 전체 계급운동의 가장 선도적 부분이라고 스스로를 자임했고, 추상적이고 모호하나마 조합운동을 뛰어넘어 노동해방을 지향해야 한다는 의식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 운동 역시 금속대공장의 선진노동자 운동처럼 전투적 현장주의를 넘어서지 못했고, 그로 말미암아 명확하게 사회주의적인 지향을 자신의 것으로 하지 못했다. 비정규직 철폐는 자본주의에서는 불가능하다는 모호한 인식을 넘어서지 못하는 가운데 비정규직 철폐, 동일노동 동일임금 같은 전투적 구호를 제기하는데 머물렀다. 비정규직 운동이 전투적 조합주의에 자신을 한정시키는 것은 썩어 고름이 터져 나오는 조합주의에 새살을 덧붙여주는 격이 될 것이다. 이것은 결국, 불법파견 정규직화투쟁에서 나타났던 것처럼 명확한 목적과 좌표에 의한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대중의 정서에 영합해 들어가는 활동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 운동과 사회주의


현 시기 비정규직 운동이 확대되면서 그 내부에서는 단사(업종)주의, 개량주의, 조합주의 경향이 스멀스멀 자라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을 지금 극복하지 않으면 비정규직 운동은 기존 운동의 조합주의적 경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비정규직 운동은 끊임없이 내부투쟁을 통해 스스로를 쇄신하고 사회주의 사상과 노동자 계급의 규율로 단련해야 한다. 또한 정규직 운동에 대해 한편으로 비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기대하고 의존했던 그동안의 관성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비정규직 운동의 선도적 주체들은 조합주의에 맞서 헌신적으로 투쟁하고자 하는 적지만 소중한 정규직 활동가들과 적극적으로 연대해야 한다. 또 자신보다 더 열악한 임금과 노동조건 아래서 노예와 다를 바 없는 임금노동으로 살아가는 90%의 대다수 노동자들과 전체 운동의 대의를 위해 기꺼이 투쟁의 선봉에 서야 한다.

비정규직 운동은 이제 사회주의 운동의 기치를 선명히 해야 한다. 비정규직 운동은 그동안 신조합주의 뿐 아니라 사회개혁운동, 반(反)관료주의 전투적 현장운동, 반(反)신자유주의 불완전노동운동, 빈곤철폐를 위한 사회운동 등 다양한 내용으로 규정되어 왔다. 부르주아와 소부르주아들은 자신의 계급적 이해관계에 따라 비정규직을 활용하고 비정규직 운동을 종속시키고 있다. 비정규직 운동이 선택해야 하는 것은 더 이상 다른 계급의 이해도 아니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해만도 아니다. 현 시기 비정규직 운동은 전체 노동계급의 정치 강령과 투쟁요구안을 내걸고 전진해야 한다.


4. 사회주의자들의 과제


이제 현장의 사회주의자들은 정규직, 비정규직을 막론하고 ‘전체 노동계급의 전위’라는 하나의 이름을 가지고 더욱 더 확고한 정치적 입장과 명료한 선전선동, 헌신적인 대중조직화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 지난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파업투쟁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에 현장 제조직들이 공투체를 형성하여 적극적으로 연대했던 것은 현장공동투쟁의 위력과 가능성을 보여준 소중한 계기였다. 또 현장조직·대의원 활동가들과 비정규직지회 활동가들이 모여 전 공장적인 지형과 정세를 함께 분석하고 파업투쟁 전술을 공동으로 기획·집행·평가했던 경험은 현장에서 사회주의자들의 실천이 어떻게 조직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준 작은 선례를 남겼다.

기아자동차비정규직지회 현장위원이 정규직의 연대를 호소하는 선동 내용을
지회 조합원들에게 교육하고 있다.
하지만 ‘조합운동 차원에서의 공동전술팀’에 머물러 있는 우리 운동의 현실을 또한 냉정하게 직시해야 하며, 현 시기 사회주의자들의 과제가 무엇인지 깊이 각인해야 한다.

사회주의자들은 대공장 사내하청 운동을 초점으로 해서 전체 비정규직 운동이 사회주의 운동으로 전진할 수 있도록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사회주의 운동으로 전진한다 함은 비정규직 운동이 자신의 깃발에 명확한 강령을 새겨 넣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지 않을 수 없다. 비정규직 문제는 비정규직만의 문제라는 부문주의적 사고, 운동의 목적을 오로지 노조의 확대로만 바라보는 조합주의 사고를 벗어던지고 전체 노동계급의 입장을 견지할 때, 비정규직 운동은 비로소 민주노총과 대공장 정규직 운동을 혁신하는 수단 혹은 먼 미래의 ‘새로운 물결’이 아니라 현 시기 ‘전체 노동계급 운동의 선진부대’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선전·선동해야 한다.

사회주의자들은 당면 투쟁을 위한 선진노동자들과의 공동전술팀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야 한다. 정규직, 비정규직이 아니라 선진노동자이자 사회주의자로서 함께 모여 사회주의를 학습하고 토론하고 조직하는 현장모임을 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은 현장에서의 구체적인 실천과 선동활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사회주의 학습과 정치토론이 현장에서 대중을 만나고 현장투쟁을 조직하는 과제와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 현장에서의 학습-토론-조직이 첫 번째 과제와 연동하여 현 시기 사회주의 운동의 당면과제와 결합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 속에서 사회주의자들은 현장에서의 구체적인 활동에 전 계급적인 의의를 불어넣고 사회주의적 이론과 정책 및 요구안을 정식화하고 제시하는 작업을 체계화해야 한다. 당면 투쟁에 대한 지지와 지원도 중요하겠지만, 현재 새롭게 성장하고 있는 운동을 사회주의 노동운동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강령-전술-조직 모든 측면에서의 작업에 ‘톱니바퀴’가 되어야 하며 현장 상황을 핑계로 사회주의자로서의 조직적인 활동을 등한시하거나 주저하는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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