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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87년 7월 5일 회사의 감시를 피해 현대엔진 노동자들이 울산 옥교동에 있는 한 디스코텍으로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100여명의 노동자들이 디스코텍에 모이자 홀 중앙에 '경축 현대엔진(주) 노동조합 결성대회'라는 글씨가 적힌 플래카드가 걸렸다. 그렇게 만들어진 현대엔진 노조위원장에는 만29세의 청년 권용목씨가 선출됐다. 노조 결성대회를 무사히 마친 권용목씨는 점심시간이 되자 연단에 올라가 노동자 1000여명이 모인 가운데서 보고대회를 진행했다. 키165cm, 몸무게 57kg의 왜소한 체구의 검은 뿔테 안경을 쓴 권용목의 입에서는 장쾌한 열변이 쏟아져 나왔다. "이제 일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게 된다는 자부심을 가져도 좋습니다. 상여금 차등제가 없어지고 공해수당을 받게 된다는 기대를 가져도 좋습니다. 이제 사람답게 살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가져도 좋습니다. 한국노동운동의 전환점으로 기록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현대엔진노조를 시작으로 현대미포 조선소에 노조가 생기고, 이어서 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 현대정공에 노동조합이 잇달아 결성됐다. 그리고 마침내 8월 8일 현대그룹노조 협의회가 결성됐다. 87년 8월 18일 4만여명이 넘는 현대노동자들이 중공업 운동장에 구름처럼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들은 이어 '현대중공업 민주노조 인정', '임금인상 즉각실시', '휴업철회'를 요구하며 남목 고개 마루를 넘어 공설운동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들 앞에는 4500명의 중무장한 경찰들이 가로막고 서 있었다. 그러나 이날 폭력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손에 든 각목과 주머니 속에 넣고 있던 돌멩이를 노조대표들에게 반납했다. 그 노동자들을 지도한 사람은 바로 현대그룹노조협의회 권용목 의장이었다. 그리고 정부에 노조인정을 약속 받게 된다. 현대그룹 노동운동의 살아있는 신화 권용목. 그는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를 몸으로 쓴 장본인이었다. 노동자들의 열기도 뜨거웠지만 현대그룹의 반격 또한 만만치 않았다. 89년 1월 현대중공업 노조의 장기파업 128일을 넘기고 있었다. 1월 8일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현대중전기 노조대의원 대회가 벌어지고 있는 현장에 새벽 2시 30분쯤 복면을 쓴 사람들이 나타나 각목, 야구방망이, 곡괭이 자루 등으로 대의원들을 무차별 폭행했다. 그리고 새벽 5시쯤에는 권용목씨 등 4명이 잠을 자고 있는 현대 해고자복직실천협의회 사무실에 야구방망이와 각목을 든 20여명의 괴한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누가 권용목이냐'고 물어가며 구타했다. 당시 현대그룹노조협의회는 "이 사건은 현대그룹의 조직적 음모에 의한 테러"라며 "정주영 명예회장과 정몽준 회장의 연루의혹을 밝히라"고 촉구했다. 당시 보수당인 신민주공화당조차 "경영주가 정당한 노동운동을 탄압한 표본적 사례"라며 "이 사건의 배후를 비롯, 전모를 철저히 파헤쳐 관련자를 형사처벌해야 한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정몽준 회장은 사건이 발생하기 이틀 전인 1월 6일 항공편으로 울산에 내려와 중역비상대책회의를 열고 조업정상화를 촉구하는 등 3박4일간 울산에 머무르다 1월 9일 서울로 올라간 사실이 드러났다. 게다가 테러사건에는 정몽준 회장이 지원하고 있는 현대중공업 조기축구회 전·현직 간부들가 연루돼 있음이 확인됐다. 깡패들에게 구타를 당한 권용목 의장은 당시 팔에 깁스를 하고 집회에 참석해 정주영 명예회장과 정몽준 회장은 의혹을 밝히라고 촉구했다. 2000년 민주노총 초대 사무총장을 역임했던 권용목씨가 3년 만에 다시 사람들 곁으로 돌아왔다. 민주노총 사무총장을 물러난 직후인 97년 그는 환기통 청소업을 했지만 IMF 여파로 망했다. 그리고 중국에서 몇 개월을 떠돌다가 다시 사업을 한다고 캄보디아에 나가 있다가 그 사업도 여의치 않아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게 1999년 9월 무렵이었다. 당시 국민회의는 신당 창당 준비와 함께 2000년 4.13 총선을 대비해 각계각층의 인사들 영입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는 여권의 신당 추진위원으로 영입됐다. 지금 민주당 노무현 후보 비서실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신계륜 의원이 그를 신당으로 끌고 오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새천년민주당은 '동진 정책'의 일환으로 권용목씨를 울산 중구 조직책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민주당의 생각과 권용목씨의 '희망사항' 사이에는 엄청난 괴리가 있었다. 민주당은 울산 동구 출마를 권유했지만 권씨의 생각은 달랐다. 권용목씨는 결국 지구당 창당대회를 연기하고 조직책을 반납했다. 그는 출마를 꺼리는 이유에 대해 “민주노동당 후보가 지역구에서 당선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이 울산인데 내가 출마하면 과거 노동계 동지들과 경쟁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고 말했다. 당시 권용목씨는 민주노총이 만든 민주노동당에 가지 않고 신당을 택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지금 엄청나게 세상이 변하고 있다. 지금 한 명 당선시키고, 8년 뒤에 10명 당선시켜서 뭘 할 수 있겠냐. 민주당 김말룡 의원을 보면 노동자를 위해서 헌신했지만 어려움이 많았다. 구조가 그랬기 때문이다. 집권여당에 들어가서 주어진 공간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다면 낫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권용목씨는 민주당이 전국구를 줄 것이라고 믿었지만, 상황은 그렇게 녹녹치 않았다. 민주당 비례대표 몫으로 노동계의 자리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박인상 한국노총 위원장에게 자리가 돌아가는 정도였다. 비례대표를 약속 받았다고 생각하고 민주당에 입당한 배석범 민주노총 전 부위원장과 권용목 민주노총 전 사무총장은 결국 비례대표를 배정 받지 못했다. "이용만 당하고 버림받을 것"이라는 노동계의 비아냥거림은 현실이 되고 말았다. 비례대표가 좌절된 이후 권용목씨는 또 떠도는 신세가 됐다. 2002년
권용목씨는 새시대개혁연대 대표로 행사에 참석했다. 권용목씨는 인사말을 통해 "우리의 지도자 이인제 고문님과 함께 모든 것을 내바쳐 함께 할 것"이라며 "이제는 길거리의 투쟁이 아니라 내가 서있는 분야에서 참여민주주의 구현을 위해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2002년 11월 12일 국민통합21 노동특위 발대식장에 그는 다시 얼굴을 내밀었다. 행사장에는 이런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국민가치 실현을 위한 새로운 노동문화, 국민통합21 노동특위가 열어갑니다." 권용목씨는 이 자리에서 만난 <오마이뉴스>기자에게 "2년간 러시아에 있었다"며 "1700ha 땅에 약용식물을 재배하려고 한다"고 자신의 근황을 밝혔다. 권용목씨는 국민통합21 노동특위의 정책위원을 맡았다. 그는 단상 위에 올라가 이렇게 말했다. "한 시대을 접고 새로운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옛날에 '자본론'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100여 년 전에 씌여진 책이었음에도 책 속에 묘사된 방직공 노동자의 모습은 당시와 다를 바 없었다. 산업시대의 요구는 값싼 제품을 많이 생산해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대립과 갈등이 있었다. 하지만 세상이 지식기반사회로 변했다. 생산력의 확대는 새로운 가치를 요구하고 있다. 좋은 물건, 편리한 물건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은 대립과 갈등으로 만들 수는 없다. 자발적 참여와 창조적 생각이 있어야 한다. 또한 동북아 경제변화에도 대처해야 한다. 위기와 기회가 공존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의 모습을 보라. 우리도 힘을 모아야 한다. 그런데 남북으로 동서로 노사로 대립하고 있다. 통합은 시대적 소명이다. 그것을 누가 해줄 수 있나? 바로 그 얘기를 하려고 한다. 남북과 동서, 노사의 막힌 곳을 뚫어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번 대선은 향후 5년을 좌우한다. 국민과 우리 아이들을 위해 정몽준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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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무죄 무전유죄" 사실로 입증 | ||
기업인이나 정치인 횡령은 집행유예, 돈없고 빽없는 일반인 횡령은 징역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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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만 기자, gojm0725@naver.com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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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없는 것은 더이상 죄가 아니다?" "하지만 현실은 사실과 다른것 같다" 그동안 말로만 돌았던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사실로 입증돼 파장을 불러 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이 그동안 구설수에 오르던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것을 처음으로 정확한 숫치와 근거를 바탕으로 한 조사 결과를 발표해 많은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끌고 있다. 노 의원은 16일(수) "기업체 대표이사와 배달원 횡령사건을 비교분석한 자료를 통해 기업체 대표들의 “횡령액은 717배나 많은데 실형을 사는 비율은 10.4%p나 더 낮다며, 이와 같은 분석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 의원은 이 자료에서 “2002.1월~2005.8월 서울중앙지법의 횡령사건(형법 355조1항 업무상횡령 및 특정경제가중처벌법 3조1항 횡령) 판결문 461건을 정밀 분석한 결과, 배달원과 종업원 34명의 평균 횡령액은 636만원이고 실형을 산 사람은 15명(44.1%)에 이르는 반면, 기업체 대표이사급 83명의 평균 횡령액은 46억원에 달하는데도 실형을 산 사람은 28명(33.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노 의원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기업체 대표이사의 평균 횡령액이 배달원·종업원보다 717배나 많은데도 불구하고, 실형을 산 사람의 비율은 10.4%p나 더 낮은 셈이다. 노 의원은 또 “징역형을 선고받더라도, 기업체 전현직 대표이사들은 집행유예로 풀러나는 비율이 59.4%(69명 중 41명)에 이르러, 배달원·종업원의 37.5%(24명 중 9명)보다 21.9%p나 더 높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노 의원은 “비디오방에서 일하는 강씨는 21만원 및 카메라폰 1대(시가40만원 짜리를 중고업자에 1만원에 매도)를 생활비 및 유흥비로 소비한 죄로 징역 8개월에 처해졌고, 중국집 배달원 정씨는 음식대금 773,550원을 생활비로 소비한 죄로 징역 10개월에 처해 지는 등 무전유죄의 대표적 사례"라고 주장했다. 노 의원은 반면 “공적자금 수천억원이 투입된 현대전자산업(현 하이닉스반도체)으로부터 227억원을 횡령한 김영환 대표이사 및 146억원을 횡령한 김주용 대표이사는 기업의 관행, 故 정몽헌 회장의 지시에 따른 것 등의 이유로 집행유예 처분을 받았고, 회사정리절차에 있던 한신공영을 인수해 340억원을 횡령한 최용선 대표이사는 실형전과(實刑前科)가 없고 범행을 자백했다는 등의 이유로 집행유예 처분을 받았다"며 법원의 판결에 강한 불만을 나타 내기도 했다. 노 의원은 또 “크게 횡령한 사회고위층은 집행유예로 풀려나고, 소액을 횡령한 힘없는 서민들은 실형을 사는 사법현실 앞에서 서민들은 절망과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밖에도 노의원은 “횡령죄를 범한 종업원·배달원 34명 중 사회봉사·보호관찰 처분을 받은 사람은 8명으로 23.5%에 이르는 반면, 기업체 전현직 대표이사는 83명 중 4.8%인 4명만 사회봉사·보호관찰 처분을 받아, 그 차이가 18.7%p에 이르렀다”고 밝혀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사실임이 입증 됐다. |
조선공산당과 남로당 당수 박헌영 (1) | ||||||||||||||||||||||||
『이정 박헌영 일대기』 / 임경석 / 역사비평사 / 200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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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법 공방> 산재보험의 사회보장화 | |||||||||||||||
“업무상 재해 + 통근재해 = 산업재해” | |||||||||||||||
업무시작, 집 떠나면? 회사 와야?…출퇴근하다 발생한 사고, 산업재해인가 | |||||||||||||||
법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세상의 모든 사건을, 사람들의 모든 행위를 법의 규율로 재단할 수는 없다. 그만큼 법은, 문구로 정리된 것보다 더 많은 해석론을 낳기도 한다. 수많은 학설과 학설이 부딪히면서 새로운 통합 학설을 만들고, 그것이 또 사법부에 반영돼 법 해석의 흐름을 바꾸기도 한다. 노동법 영역에서도 그렇다. <매일노동뉴스>는 매달 한 차례씩 각각 진행되는 한국노동연구원 노동법?법경제포럼과 서울대 노동법연구회 정기세미나에서 발표되는 논문들과 토론내용을 지상 중계하는 ‘노동법 공방’ 꼭지를 신설한다. <편집자주> H사에 근무하는 노동자 김아무개씨. 평소 회사가 제공하는 통근버스를 이용해 출퇴근을 하던 김씨는, 어느 날 늦잠을 자 급히 택시로 출근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이 경우, 김씨는 산재보상 혜택을 받을 수 있을까. 현행 판례를 엄격히 적용하자면 김씨는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왜, 그 이유는 뭘까. 산재보험제도는 사용자가 재해보상 책임을 담보한다는 것을 전제한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의 행위가 업무상 행위이고, 이 업무상 행위로 인해 발생된 재해에 해당하느냐 여부에 따라 산재보험제도의 적용이 결정된다. 여기서 질문. ‘업무상 행위로 인한 재해’라는 것은 무엇으로 판단하는 걸까.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에서는 ‘업무상의 사유’로 인한 재해를 그 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 번만 질문을 더 하자. ‘업무상의 사유’는 또 뭔가. ‘업무상의 사유’에 대해 학설과 판례는 △업무와 재해와의 ‘상당한 인과관계’를 근거로 △‘업무기인성’과 ‘업무수행성’을 판단의 중심에 놓고 △사용자의 지배?관리 하에서 근로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재해인 것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사용자의 지배?관리 하에 있지 않은 여타의 행위는 ‘업무성’이 부인되고 업무상 사유에 해당하지 않게 돼 결과적으로 업무상 재해가 되지 않는다. 다시 돌아가 김씨의 경우를 보자. 이 경우를 산재로 보기 어려운 이유는, 자신 고유의 사정과 판단으로 택시를 타고 출근한 것을 ‘사용자의 지배?관리 하에서 있었던 행위’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법원 판례는 통근하는 행위 그 자체와 업무 간의 밀접불가분성은 인정하지만 사용자의 지배?관리라는 ‘업무상 사유’를 전제로 할 경우 사용자의 지배?관리 하로 ‘들어가기’ 위한 출근, 또는 지배?관리에서 ‘벗어나’ 주거지로 퇴근하는 행위는 업무상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통근행위 그 자체는 업무성이 없고 사용자의 재해예방의무가 미치지 않는 것이어서 통근재해는 업무상 재해가 아니며, 따라서 산재보상의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원칙론이 판례에서 확립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통근재해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는 학설은, 최소한 통근행위를 하는 도중에 발생한 재해에 대해서도 업무와의 연관성 내지 관련성은 업무수행의 경우에 준할 정도의 동등성이 인정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노상헌 전남대 교수(법학)는 지난달 15일 열린 서울대 노동법연구회 정기세미나에서 ‘통근재해에 관한 판례법리와 산재보험의 사회보장화에 대한 검토’ 논문을 발표했다. 노상헌 교수는 이 논문에서 통근재해를 ‘사용자의 지배?관리 아래’라는 ‘업무성’에 천착하고 있는 기존 판례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사회보장적 관점에서 통근재해를 판단한 판례를 소재로 산재보험의 사회보장화의 의미를 검토했다. 어떤 경우의 통근재해가 업무상 재해일까 노 교수에 따르면, 통근재해의 업무상 재해 여부를 따지는 판례 입장은 대체로 같다. 판례는 △사업주가 제공한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경우 △사업주가 이에 준하는 교통수단을 이용하도록 하는 경우 △그 밖에 통근과정이 사업주의 지배?관리 하에 있다고 볼 수 있는 경우에 한하여 인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회사가 묵시적으로 이용하도록 한 교통수단을 이용하던 중 발생한 사고인 경우(대판 99다24744), 다른 출근방법과 다른 경로를 선택하리라는 것을 기대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그 출근방법이 업무의 준비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 경우(대판 2005두4458), 업무상 집결장소가 지정돼 있고 그 장소까지 가는데 다른 대체교통수단이 없는 경우(서울행판 2000구31409) 등이, 판례가 ‘업무성’을 인정하는 특별한 사정에 해당된다. 통근재해에 대한 법 규정은 산재보험법 시행규칙 제35조(작업시간외 사고)가 거의 유일한데, 이 조항에서는 근로자가 출퇴근하는 도중에 발생한 사고로 인해 사상한 경우로서 △사업주가 소속 근로자들의 출퇴근용으로 제공한 교통수단의 이용 중에 발생한 사고일 것 △사업주가 제공한 교통수단에 대한 관리?이용권이 근로자 측에 전담돼 있지 아니할 것 등의 요건을 충족할 때만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된다고 쓰고 있다. 다만, 이 경우도 업무와 사고 간에 상당인과관계가 없으면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없다고 했다. 노 교수는 “종래 대법원 판결은 산재보험법 시행규칙(제35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통근재해인정과 아무런 차이점을 발견하지 못할 정도로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노 교수는 “다만 하급심에서는 최근 들어 종래부터 일관되게 제시해 오던 법리를 유지하되 사회보장적 관점에서 그 적용범위를 넓히고자 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2001년 12월13일에 선고된 서울행정법원의 판례(2001구29373)를 소개했다. 사건은 이렇다. 쓰레기처리 용역작업을 하는 청소차량운전사인 근로자 갑이 다음날 평상시보다 1시간 일찍 출근(오전 5시)하라는 비상지시를 듣지 못한 상태에서 술을 마셨고, 밤 10시께 귀가해서야 집 근처 사는 동료로부터 비상지시사항을 전달받았다. 이에 갑은 다음날 새벽 3시30분께 자신의 승용차로 회사로 가던 중 도로 빙판에 미끄러지면서 약 2m 높이 다리 밑으로 추락해 상병을 입었고 이를 이유로 산재 요양승인신청을 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에서는 갑의 사고인 통근 중 재해는 음주운전(운전 당시 혈중알콜농도 0.087%)이며, 업무와 무관해 사업주의 지배·관리하의 업무상 사유에 의한 재해라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불승인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서울행정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서울행법은 음주운전이 통상 운전업무의 위험성과는 별개로 오로지 갑의 음주가 원인이 돼 교통사고가 발생한 것이라고 볼만한 뚜렷한 자료가 없고, 사용자의 비상지시사항 이행을 위해 사고 당일 평상시보다 일찍 출근하는 과정에서 교통여건상 자가용승용차를 운전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고려할 때 사고 당일의 출근과정이 사업주의 지배·관리 하에서 업무수행 중 그에 기인해 발생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 판결에 대해 노상헌 교수는 “기존 판례의 판단 틀, 즉 출퇴근 중 ‘사업주의 지배?관리’라는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산재보험법 입법취지와 출퇴근이 갖는 사회적 의미, (통근재해를 공무상 재해로 인정받는) 공무원과의 형평성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전제하고 결론을 냈다는 점에서 특징”이라며 “이는 ‘사회보장적 관점’에서 산재보험의 보호범위를 확대하고자 하는 견해로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업무상 재해’ 아닌 ‘산재’로 인정할 수도” 다수의 학설은 통근행위가 업무와 밀접히 연관돼 있다는 데 중점을 두고 통근재해를 업무상 재해로 포섭하려고 한다. 즉, 학설은 사용자의 직접적인 지배?관리 아래 있지 않더라도 기본적으로 산재보상의 ‘사회보장적’ 성격을 중시하고 도시화와 교통환경의 열악화에 따른 통근재해의 증가, 그리고 통근재해가 개인의 생활상의 위험을 넘는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판례는 통근경로와 수단의 선택은 노동자 사적 영역에 속한다는 이유로 사용자의 지배·관리 아래 있었는지 여부에 따라 통근재해의 업무성을 달리 판단한다. 노상헌 교수는 “통근행위는 업무밀접성과 사적영역이 교착한다는 점에 문제의 본질이 있다”며 통근재해를 △기존 판례법리에 의해 인정되는 업무상 통근재해(즉 사용자의 지배·관리 아래에서의 통근재해) △사회보장의 관점에서 인정될 수 있는 통근재해 △생활상의 위험으로 노동자가 부담해야 할 통근재해 등 3가지 영역으로 나눴다. 이어 그는 “두 번째, 세 번째의 경우는 업무상 재해는 아니다 하더라도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통근행위에 대한 위험을 ‘업무상 재해’가 아닌 ‘산업재해’로 인정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부분과 노동자의 사적 영역에서 부담해야 할 부분으로 구분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지적에는 이런 고민이 깔려있다. 학설에서 얘기하듯 통근재해를 업무상 재해로 포섭한다면, 바로 통근 중에 있는 노동자는 ‘업무수행 중’이라는 주장도 펼 수 있게 돼 △통근시간에 대한 사용자의 임금부담 의무 여부 △통근비용 사용자 부담 여부 △통근 중 노동자에 대한 사용자의 업무수행 명령 가능 여부 등의 문제가 혼재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산업재해에서 업무상 재해가 아닌 입법적으로 ‘통근재해’의 개념을 만들어 이를 산재보험법에서 보호하자”고 제안했다. 쉽게 말해 ‘업무상 재해 + 통근재해 = 산업재해’라는 개념을 만들자는 것이다. 물론 이 제안에 대해서도 산재보험법에 포섭할 것이 아니라 특별법 형태로 제정하자는 반론을 펼 수도 있다. 기존의 업무상(이라고 인정되는) 통근재해를 제외한 통근재해, 즉 현재 보호받지 못하는 통근재해에 대한 새로운 사회보험을 만들 수도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 새로운 사회보험에는 사용자를 참여시킬 수 있는 근거가 미약하다”고 일축했다. 이어 “통근재해는 근로생활이 수반하는 사회적 위험이 현실화된 것이어서 사용자가 부담해야 할 책임이 분명히 존재한다”며 “또한 산재보험법에서 ‘업무상’의 개념은 책임을 사용자에게 귀속시키기 위한 근거가 아닌 산재보험의 보호범위를 획정하는 기준으로 역할하는 것이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상 재해보상보다 넓게 인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산재보험의 사회보장화, 가능한가 통근재해의 산재보험화는 곧잘 산재보험의 사회보장화 주장과 동일시되기도 하는데, 사회보장화에 대해 사용자쪽은 현실적으로 ‘시기상조’라며 반대하고 있다. 사용자쪽은 통근재해를 산재보험으로 포괄하라는 노동계의 주장을 곧, ‘산재보험의 사회보장화’라고 보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재정부담 문제 등을 감안하면서 사회보장제도로서 산재보험의 역할을 높이기 위해 업무상 재해 인정 범위를 단계적으로 확대하겠다는 것과, 중장기적으로 통근재해를 보상대상에 포함시킬 계획이라고 발표했지만 아직 ‘계획’일 뿐이다. 노상헌 교수는 일본의 사회보장화 논의를 토대로, ‘사회보장적 관점’은 산재보험의 보호범위를 확대하기 위한 견해일 뿐 사용자쪽이 우려하는 ‘사회보장화’와는 관점을 달리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물론 일본에서의 논의도 ‘종결’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2가지 점에서는 성과가 있었다고 학계에서는 동의하고 있다. 우선은 산재보험이 사용자의 책임보험 성격이 있다는 것과 다른 사회보험급여와 생활보호보다도 산재보험급여의 수준은 높게 설정돼야 한다는 급여의 우위성을 분명히 확인시켰다는 점이다. 또한 산재보험의 이 같은 기본 성격이 산재보험의 사회보장화론에 부정적 견해를 보이게 했다는 것이 제2의 성과라는 것이다. 학계의 다수는 산재보험의 사회보장화가 건강보험이나 국민연금 등 다른 사회보험과의 관계에서 산재보험급여 수준의 하향화라고 이해하면서 반대했다. 또한 보험재정에서 사회보장화의 논리적 귀결인 국고부담의 확대는 사용자의 재정부담 책임을 모호하게 하는 것으로 안이하게 도입해서는 안 되고, 하물며 근로자의 보험료 부담은 안 된다고 주장했다. 노상헌 교수는 “통근재해의 산재보험화는 변화하는 사회·노동환경에 산재보험이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함이지, 이것이 사용자쪽이 주장하는 산재보험의 사회보장화를 의미하는 것은 나리”라고 말했다. 사용자가 주장하는 전통적 의미의 업무상 개념에 통근행위가 포함될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를 업무상 재해와 구별, 통근재해로 보호하는 것이지 이를 갖고 산재보험의 성격이 변질됐다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노 교수는 “산재보험의 사회보장화가 사용자의 책임을 전환시키거나 희석시키고자 하는 의도를 경계하는 일본의 다수학설의 태도는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결론적으로 노 교수는 “근로기준법의 재해보상책임 담보라는 산재보험의 입법취지에 엄격하게 구속될 필요 없이 산재보험의 현대적 과제에 대응하기 위해 통근재해의 산재보험화를 위한 제도설계는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통근재해의 산재보험화가 결코 산재보험의 사회보장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혹시 사용자 주장과 같이 통근재해의 산재보험화가 산재보험의 사회보장화를 의미한다하더라도 이를 이유로 국고부담을 확대하거나 근로자에게 일부 부담을 줄 수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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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기자 goforit@labortoday.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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