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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9/30
    "유전무죄 무전유죄" 사실로 입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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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6/09/29
    '투쟁'과 '실리' 조합원들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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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6/09/25
    '볼리바르' 혁명인가 아니면 노동계급 혁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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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6/09/21
    현자 비정규 현장위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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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6/09/10
    현자 비정규 임단투 파업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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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무죄 무전유죄" 사실로 입증

"유전무죄 무전유죄" 사실로 입증
기업인이나 정치인 횡령은 집행유예, 돈없고 빽없는 일반인 횡령은 징역형
고재만 기자, gojm0725@naver.com  
 
"돈이 없는 것은 더이상 죄가 아니다?"

"하지만 현실은 사실과 다른것 같다"

그동안 말로만 돌았던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사실로 입증돼 파장을 불러 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이 그동안 구설수에 오르던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것을 처음으로 정확한 숫치와 근거를 바탕으로 한 조사 결과를 발표해 많은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끌고 있다.

노 의원은 16일(수) "기업체 대표이사와 배달원 횡령사건을 비교분석한 자료를 통해 기업체 대표들의 “횡령액은 717배나 많은데 실형을 사는 비율은 10.4%p나 더 낮다며, 이와 같은 분석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 의원은 이 자료에서 “2002.1월~2005.8월 서울중앙지법의 횡령사건(형법 355조1항 업무상횡령 및 특정경제가중처벌법 3조1항 횡령) 판결문 461건을 정밀 분석한 결과, 배달원과 종업원 34명의 평균 횡령액은 636만원이고 실형을 산 사람은 15명(44.1%)에 이르는 반면, 기업체 대표이사급 83명의 평균 횡령액은 46억원에 달하는데도 실형을 산 사람은 28명(33.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노 의원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기업체 대표이사의 평균 횡령액이 배달원·종업원보다 717배나 많은데도 불구하고, 실형을 산 사람의 비율은 10.4%p나 더 낮은 셈이다.

노 의원은 또 “징역형을 선고받더라도, 기업체 전현직 대표이사들은 집행유예로 풀러나는 비율이 59.4%(69명 중 41명)에 이르러, 배달원·종업원의 37.5%(24명 중 9명)보다 21.9%p나 더 높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노 의원은 “비디오방에서 일하는 강씨는 21만원 및 카메라폰 1대(시가40만원 짜리를 중고업자에 1만원에 매도)를 생활비 및 유흥비로 소비한 죄로 징역 8개월에 처해졌고, 중국집 배달원 정씨는 음식대금 773,550원을 생활비로 소비한 죄로 징역 10개월에 처해 지는 등 무전유죄의 대표적 사례"라고 주장했다.

노 의원은 반면 “공적자금 수천억원이 투입된 현대전자산업(현 하이닉스반도체)으로부터 227억원을 횡령한 김영환 대표이사 및 146억원을 횡령한 김주용 대표이사는 기업의 관행, 故 정몽헌 회장의 지시에 따른 것 등의 이유로 집행유예 처분을 받았고, 회사정리절차에 있던 한신공영을 인수해 340억원을 횡령한 최용선 대표이사는 실형전과(實刑前科)가 없고 범행을 자백했다는 등의 이유로 집행유예 처분을 받았다"며 법원의 판결에 강한 불만을 나타 내기도 했다.

노 의원은 또 “크게 횡령한 사회고위층은 집행유예로 풀려나고, 소액을 횡령한 힘없는 서민들은 실형을 사는 사법현실 앞에서 서민들은 절망과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밖에도 노의원은 “횡령죄를 범한 종업원·배달원 34명 중 사회봉사·보호관찰 처분을 받은 사람은 8명으로 23.5%에 이르는 반면, 기업체 전현직 대표이사는 83명 중 4.8%인 4명만 사회봉사·보호관찰 처분을 받아, 그 차이가 18.7%p에 이르렀다”고 밝혀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사실임이 입증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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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과 '실리' 조합원들의 선택은

'투쟁'과 '실리' 조합원들의 선택은
대우차노조 20대 임원선거 전망…3년간 누가 GM대우차의 미래를 보장할까?
 
대우차노조의 미래를 3년간 책임질 20대 대우차노조 위원장 선거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29일 치러지는 20대 임원선거에는 10여개 현장조직이 각각 연합해 모두 4팀이 출마,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으나 당락을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20대 임원의 경우 산별전환 임기와 맞추기 위해 2년 임기를 3년2개월로 연장했기 때문에 지난 어느 선거보다 9,100여명의 조합원 표심이 신중해 질 수밖에 없다.

대우차는 1998년 이후 부도와 대규모 정리해고, 해외매각 등을 거친 뒤 지난해 인천대우차와 GM대우의 법인통합이 됐다. 따라서 차기 20대 집행부는 해외자본인 GM대우와 함께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 안정적 성장과 함께 조합원들의 고용안정을 담보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에 20대 임원선거에 출마한 4개 후보 모두 '고용안정'을 제1의 공약으로 제출했다. 공약과 관련해서는 크게 변별력을 지니지 않고 있다. 하지만 4팀 모두 위원장 후보자들이 역대 집행부에서 임원 또는 집행간부를 맡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당시 활동의 평가 역시도 조합원들의 주요한 판단근거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기호 1번 후보조는 현장조직 ‘현장희망’, ‘한길’이 연합해 출마했으며 이성재 위원장 후보는 현 위원장이다. 현장조직 ‘민주노동자회’, ‘자주노동자회’ 연합후보인 기호2번 김일한 위원장 후보 역시 17대 대우차 정리해고투쟁 당시 집행부 출신이다. 또 단일후보를 낸 기호 3번 ‘자주민주투쟁위원회’ 장순길 위원장 후보는 18대 집행부 당시 조직실장을 역임했으며 ‘전진하는노동자회’, ‘실천하는노동자회’ 연합후보인 기호4번 이남묵 위원장 후보는 16대 부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4개 후보조 모두가 조합원들에게 집행력에 대한 평가를 검증받았다.

이들은 이러한 집행력을 바탕으로 산별노조 전환이라는 과도기 속에서 대우차노조 조합원들의 고용안정을 보장하고 GM대우차의 장밋빛 미래를 그릴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조합원들은 어느 후보조를 선택할까.

기호1번 이성재 후보조는 지난 19대 임원선거에서 1차 투표 당시 23.7%로 결선투표에 진출, 2차 투표에서 50.6%를 얻어 당선됐다. 당시 현장조직 중 큰 영향력이 지니지 못한 '대민실노' '희망찾기' '통노회'가 연합해 출마해 당선 가능성이 적었음에도 ‘협상과 투쟁’이라는 이미지가 조합원들에게 각인돼 당선됐다. 그러나 올해 임단협 잠정합의안 1차 투표에서 52.2%로 잠정합의안이 부결된 데다 집행과정에서 노사화합, 노사상생의 이미지로 최근 비판적 평가를 받고 있다.

기호 2번 김일한 후보조는 지난 19대 집행부 1차 투표에서 출마해 20.1%를 득표, 3위에 그쳤다. 김 위원장 후보가 활동하고 있는 ‘민주노동자회’는 대우차 현장조직 중 가장 전투적 성향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실제로 17대 집행 당시 '정리해고투쟁위원회' 활동 등을 해 왔다. 따라서 GM대우로의 법인 통합이 완성된 지금, 조합원들이 전투적 성향의 집행부를 선택할 지는 미지수다.

기호 3번 장순길 위원장 후보조의 선거대책본부장은 이보운 18대 노조 위원장이 맡고 있으며 19대 임원 선거 당시 ‘자주민주투쟁위원회’ 소속 정연호 후보조가 출마해 12.3%를 득표했다. 장 위원장 후보는 기호 1번과 4번이 실리적 조합활동을, 기호 2번이 전투적 조합활동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과 달리, 중도적 합리주의를 표방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또 러닝메이트 후보들이 창원과 군산 현장조직을 포함하고 있어 각 공장의 의견수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기호 4번 이남묵 후보조는 지난 19대 임원선거 1차 투표에서 이성재 후보조에 0.1%로 뒤진 23.6%를 얻어 2위로 결선투표에 진출했으나 47.5%로 낙선했다. 대우차 현장조직 중 가장 높은 조직률을 보이고 있는 ‘전진하는노동자회’ 소속으로 안정적 지지기반을 확보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기호 2번 김일한 후보조보다는 기호2번 이성재 후보조와 같은 합리적, 실리적 평가를 받고 있다.

대우차노조 관계자들은 이번 선거가 지난 역대 선거보다도 당락을 예측하기가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17대 선거의 경우 해외매각과 정리해고 투쟁이라는 조합원들의 생존문제와 맞닿아 있었기 때문에 투쟁적 집행부가 선택된 반면, 18, 19대는 GM대우로의 인수과정에서 합리적 지도부를 선택하려는 경향이 보였지만 이제 법인통합이 완성된 이후 9,100여명의 조합원들이 '투쟁'과 '실리'에서 무엇을 선택할 지가 쉽게 그려지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마영선 기자  leftsun@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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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바르' 혁명인가 아니면 노동계급 혁명인가

[지금이 바로 기회이다] 그룹에게 보낸 편지

 '볼리바르' 혁명인가 아니면 노동계급 혁명인가?

 <이하의 글은 [사회 정의를 위해서는 지금이 바로 기회이다 운동](Fire This Time Movement for Social Justice, FTT) 그룹에게 보낸 국제볼세비키그룹(IBT)의 편지이다.>

동지들!

동지들은 최근 "베네수엘라의 혁명과 반혁명"이란 제목의 글을 발표했다([지금이 바로 기회이다], 2004년 9월/10월호). 이 글에서 후고 차베스는 "노동계급의 민주주의와 자결 투쟁"을 지도하는 "혁명가"로 묘사되어 있다. 그런데 이 글을 통해 차베스와 그의 "볼리바르 혁명"이 자본주의 체제에 가하는 위협을 동지들은 상당히 과장하고 있다.

물론 베네수엘라는 미국이나 캐나다의 간섭이 없이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신식민지 국가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제국주의자들의 관심은 이들의 말을 순순히 따르는 정권들에게만 해당된다. 역사는 이 점을 계속 반복해서 보여주었다. 2002년 4월 차베스를 제거하려는 반동 쿠데타는 이 점을 보여주는 완벽한 예이다. 이때 미국은 배후에서 쿠데타를 지원했다.

미국과 캐나다 지배계급의 중요한 부위들은 차베스에 적대적이다. 왜냐하면 차베스 정권은 한줌 밖에 되지 않는 베네수엘라 자본가와 지주들의 지배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극소수의 토착 자본가와 지주들은 제국주의의 베네수엘라 지배를 보장하고 있다. 1998년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래 차베스는 경작되지 않고 버려져 있던 토지의 일부를 대토지 소유주들로부터 무토지 농민들에게 이전시키는 등의 약간의 토지개혁을 시행했다. 그리고 베네수엘라 석유산업의 수익 일부로 사회 개선 프로그램을 확대했다. 이 조치들의 결과 수백만 명의 베네수엘라 인민은 "흑인과 인디오의 피가 섞인" 차베스 대통령을 서민의 옹호자로 간주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는 서로 화해할 수 없는 적대 계급인 자본가 계급과 노동계급으로 분열되어 있다. 이 인식이 베네수엘라 상황을 맑스주의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출발점이다. 농민, 빈민, 노동계급의 중요한 부위들로 구성된 "무산자들"은 차베스를 지지한다. 그리고 그는 군대 내에서도 명백히 지지 기반이 있다. 그러나 자신의 볼리바르 운동이 자본주의를 반대한다는 허세를 차베스는 부리지 않는다. 그는 소부르주아 민족주의자로 미 제국주의에 대해 베네수엘라 자본의 지위를  강화시키고 무산자들의 고통을 완화시키는 것을 통해 사회갈등을 완화시키려 한다. 그의 인민주의적 호소는 특권층과 그 하수인들을 소외시켰다. 그러나 그의 개혁 프로그램은 자본주의 착취체제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합리화시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는 아르헨티나의 페론, 이집트의 나세르 등 좌익적 언사를 늘어놓았던 제 3 세계 민족주의자들의 전통에 서 있다.

미국에서 랠프 네이더는 착취자들과 이들의 제국주의적 대외정책을 급진적인 것처럼 보이는 언사로 비판한다. 동지들은 [지금이 바로 기회이다]지의 같은 호에서 이렇게 말했다: "네이더는 종종 기업들의 행위를 비난하지만 문제의 근원을 제기하지 않는다. 그는 자본주의 체제 이외의 모든 것이 문제의 근원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의 불평등에 대한  차베스의 비난은 이와 유사하다. 동지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자본가 엘리트 가운데 더 거시적인 안목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차베스가 정권을 잡기 이전부터 수년동안 베네수엘라에서 활동했던 국제기업들은 차베스의 '극단적인' 조치들 다수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권과 계속 거래하기를 원한다. 이것이 다른 요인들 가운데 하나이다. 이 국제기업들은 차베스 정권을 안정적인 정권으로 본다. 이 정권은 이들의 투자와 상당한 이윤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한편 차베스가 없는 베네수엘라는 미래를 알 수 없는 혼란을 의미할 것이고 이것은 모든 것을 위험에 빠뜨린다."

 피델 카스트로의 일당 독재 국가는 노동계급에게 고유한 집단적 소유 형태 즉 쿠바 자본가 계급과 이들의 상전인 미 제국주의 부르주아 계급의 자산을 몰수한 소유 형태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차베스는 지금 존재하는 부르주아 국가기구를 사회정의의 도구로 이용할 생각이다. 그런데 맑스는 이렇게 말했다: 부르주아 국가기구는 억압의 도구이며 따라서 노동계급의 사회지배를 위해서는 분쇄되어야 한다. 타리크 알리는 차베스에게 자신의 정치철학을 요약해 보라고 요청했다. 이 요청에 대한 차베스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맑스주의 혁명의 교조적인 원리들을 나는 믿지 않는다. 우리가 노동계급 혁명의 시기에 살고 있다는 주장이 있는데 나는 이 주장을 인정할 수 없다. 이 주장은 수정되어야한다. 현실은 내가 옳다는 것을 매일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우리의 목적이 베네수엘라에서 사적 소유를 철폐하거나 무계급 사회를 건설하는 것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카운터펀치]지, 2004년 8월 16일

 러시아의 1917년 2월 혁명에서 혁명 대중은 봉기를 통해 짜르 체제를 타도했다. 그런데 혁명 대중이 아니라 좌익적 언사를 늘어놓던 임시정부가 정권을 잡았다. 이 정권이 바로 지금의 차베스 정권과 유사하다. 처음 러시아 국내의 볼세비키당 지도부는 "반동에 대항하는 한" 이 새 정부를 지지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망명지 스위스에서 귀국한 레닌은 주장이 전혀 달랐다. 논란에 휩싸였던 그의 "4월 테제"에서 레닌은 임시정부에 대한 어떤 지지도 거부하고 비타협적 반대를 주창했다. 그의 세 번째 테제는 의미가 확실했다: "임시정부를 지지할 수 없다." 이 강령으로 볼세비키당을 정치적으로 재무장시킨 레닌의 투쟁은 10월 혁명 승리의 필수적인 전제조건이었다.

1917년 8월 극우 반동 코르닐로프 장군은 임시정부의 "온건 사회주의자" 케렌스키를 정권에서 밀어내기 위해 무장 쿠데타를 시도했다. 이 역시 2002년 4월 차베스를 타도하려던 우익 쿠데타와 유사했다. 이때 볼세비키당은 코르닐로프 쿠데타에 대항해 케렌스키와 공동전선을 수립했다. 그러나 임시정부에 대한 태도에는 변함이 없었다:

 "지금도 케렌스키 정부를 지지하지 말아야한다. 임시정부 지지는 원칙에 어긋난다. 누가 이렇게 질문할 수 있다: 코르닐로프에 대항하지 않을 것인가? 물론 우리는 대항해야한다! 그러나 이것과 임시정부에 대한 정치적 지지는 전혀 다르다; 여기에는 분리 선이 명확히 존재한다. 일부 볼세비키들은 타협을 하면서 사태의 물결에 휩쓸리고 있다. 이들은 이 분리 선을 넘고 있다.

케렌스키의 군대가 하고 있듯이 우리는 코르닐로프에 대항해야하고 지금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케렌스키를 지지하지는 않는다. 이와 반대로 우리는 그의 약점을 폭로한다. 이것이 바로 차이이다. 이것은 미묘한 차이이긴 하지만 대단히 핵심적이고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차이이다."-- 레닌, "볼세비키당 중앙위원회에게", 1917년 8월 30일

 레닌이 구별한 군사적 지지와 정치적 지지 사이의 차이는 중요하다. 2002년 4월 쿠데타와 같은 것이 다시 발생하거나 제국주의자 및 그 하수인들이 차베스를 공격할 때 사회주의자는 차베스의 민족주의 정권과 군사적으로 동맹해야한다. 그러나 1917년 러시아에서처럼 자본주의 국가의 관리자인 정부에 대해서는 조금이라도 정치적으로 지지할 수는 없다. 노동계급의 완전한 정치적 조직적 독자성은 노동계급 사회주의 혁명의 절대적 전제조건이다.

지금까지 차베스가 실시한 제한된 토지개혁은 대지주들의 분노를 샀을 것이다. 그러나 이 조치는 농촌의 극악하게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크게 바꾸지는 않았다. 아직도 전체 농가의 3%가 경작 가능한 토지의 77%를 장악하고 있다. [르 몽드 디쁠로마띠끄, 외교 세계]지 2003년 10월호는 이렇게 보도하고 있다: 국토토지청의 토지 분배 조치는 너무 늑장을 부리고 있어서 농민들의 분노가 커지고 있다. 한편 대지주들이 돈으로 조직한 살인부대와 사병(私兵)부대들이 줄리아, 바리나스, 타키라, 아푸레 등의 도에서 활동을 이미 시작했다. 이 음흉한 집단들은 노동운동과 모든 피억압 인민을 위협하는 피비린내 나는 반동의 전위이다.

이 위험에서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베네수엘라 노동자와 농민들은 정당방위대를 조직해야한다. 국토토지청이 땅 부스러기를 나눠줄 때까지 끝없이 기다릴 것이 아니라 혁명가들은 빈농과 농촌노동자들이 대표위원회를 수립하고 도시 노동계급의 유사 조직과 연대하여 대지주들의 토지를 몰수하여 이 반동들의 권력을 분쇄하자고 촉구해야한다. 이 촉구는 농촌에 주둔한 병사들의 공감을 살 것이 확실하다.

경제를 노동자들이 통제하자는 주장을 차베스 정부는 가끔 호의적으로 인용한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소유체제를 보호할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모순이다. 왜냐하면 노동자와 자본가의 이해는 근본적으로 화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둘 중의 한 계급만이 사회를 지배할 수 있다. 최근 공장 폐쇄와 임금 체불에 항의하여 노동자들이 공장을 점거하는 사례들이 줄을 잇고 있다. 모든 공장과 직장에 민주적으로 선출된 노동자 위원회는 도시와 지역 차원에서 연합하고 농민 위원회와 연대하여 자본가들과는 독립적으로 생산과 분배를 조직하는 체제를 수립할 수 있다.

혁명적 사회주의 정당은 내외 자본가들의 생산수단을 몰수하고 모든 피억압 대중조직들과 연대하는 노동자 위원회의 통치를 주창할 것이다. 대도시의 공업 노동자들 속에 뿌리내린 레닌주의 전위당은 노동자 정부만이 베네수엘라의 무산 토착 인민들, 빈민, 기타 피억압 대중의 근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선전과 실천을 통해 보여줄 것이다.

권력 장악 투쟁을 위해 노동계급은 자신의 정당이 필요하다. 이 정당은 현재 차베스를 지지하고 있는 소위 "진보적" 부르주아 분파를 포함하여 모든 부르주아 분파들과 정치적으로 완전히 독립해야한다. 힘을 얻어 다시 상승하는 부르주아 계급에 대한 피할 수 없는 일전을 준비하며 베네수엘라 노동운동은 1973년 칠레 노동계급의 비극적 운명을 피하기 위해 자기 방어조직들을 수립해야한다. 그리고 계급 출신에 따른 군대 내의 분화를 적극 촉진하고 가능한 한 많은 수의 장교들을 중립화시켜야한다.             

베네수엘라 노동자를 비롯하여 자본주의에 의해 억압당하고 있는 모든 인민을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1917년 4월 레닌이 명시한 비타협적 계급투쟁 강령으로 무장한 전투정당을 건설해야한다. 이것이 노동자 권력을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혁명적 동지애를 보내며,

국제볼세비키그룹 올림

2004년 11월 27일

--- 'Bolivarian' or Proletarian Revolution?, [1917] No.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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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 비정규 현장위원 인터뷰

『인터뷰』
파업투쟁의 중심에 서있는 현장위원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현장위원


현대차 비정규직노조의 투쟁을 유심히 지켜보면, 전과는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파업지침이 일괄적으로 내려질 때도 있지만, 각 사업부별로 다른 것과 파업현장에서 일군의 무리들이 수시로 이야기를 하다가 조합원들 사이로 흩어지는 모습이다.

변화된 모습의 중심에는 현장위원이 있다. 비정규직노조는 올해 들어 기존의 소위원을 현장위원으로 명칭을 변경하면서 이들의 주체적 활동에 주목해왔다. 이들은 조합원들과 수시로 대화하면서 그를 바탕으로 각 사업부에 맞는 전술을 논의하며, 비정규직노조의 결정사항을 조합원에게 전달하고 토론하고 있다. 이들의 주체적 활동이 강화되면서 비정규직노조 임원들과 각 사업부 대표들이 ‘현장위원의 등쌀에 못살겠다’는 행복한 투정(?)을 부리고 있는 모습이 종종 발견된다.

1, 2, 3, 시트 사업부의 현장위원을 만나 그들이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현장위원들은 현장에서 수시로 대화하고 토론하고 있다.



“차근차근 밟아가서 현장에 힘이 들어간 것이다”
1공장 사업부 현장위원 최상아

최상아 1공장 현장위원은 비정규직노조 결성초기부터 결합해 활동을 해오고 있다. 첫눈에도 보기 좋은 인상을 가진 그는 수줍은지 짤막하게 이야기해 인터뷰가 쉽지 않았지만, 짧은 말속에 조합원에 대한 믿음이 묻어나왔다.

가입 초기부터 활동했으면 사측의 탄압과 회유에 힘들었겠다는 말에 그는 “세상을 바꾸려면 협박정도는 넘어서야 하는 것 아니냐”며 짧게 이야기한다. 그는 “노조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았지만, 나서는 사람이 없어 가입당시부터 소위원을 했다”고 한다.

올해 투쟁의 특징에 대해 물어보자 비교적 길게 대답을 한다. 그는 “작년의 경우 불법파견의 문제로 투쟁을 일정중심으로 진행한 반면, 올해는 차근차근 밟아가면서 간담회를 비롯해 조합원과 수많은 대화를 통해 단체교섭의 중요성을 알려냈다. 작년 투쟁으로 서른명이 넘는 조합원이 징계를 당하면서 나서면 다친다는 인식이 있었다. 하지만 지노위에 조정신청에서 쟁의권 획득까지 모든 과정을 (조합원에게) 보고하고, 징계자들이 복직과 징계도 약화되면서 현장에 힘이 많이 들어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어떻게 투쟁이 진행돼야 될 것이냐는 물음에 “결론은 조합원이 판단하는 것이 아니냐”며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조합원들이 파업을 더 해야 한다며 성화다”
2공장 현장위원 노덕우

노덕우 2공장 현장위원은 비정규직노조를 인터넷을 통해 자기 발로 걸어들어 왔고, 올해 총대를 메고자(?) 비정규직노조 현장위원을 하고 있었다. 그는 비정규직의 파업으로 현장이 멈춰서는 것을 보며 “우리가 파업해서 라인이 섰다는 자체가 마음이 뿌듯하고 할 수 있다는 긍지가 생긴다”고 했다.

2공장은 가장 늦게 파업에 돌입했는데 그는“우리는 현장을 먼저 구성하고자 했다. 현장위원들은 조합원과 간담회과 개별면담을 통해 의견을 묻고 조직을 해왔다. 개별교섭을 하면서 업체장들이 ‘바지사장이라 우리가 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을 현장에 전달했고, 그들을 믿고 일해 온 조합원들의 분노가 폭발하기 시작했다. 현장위원이 출투를 시작하고 조합원들도 참여를 하며 쟁의권을 확보해왔다. 몸으로 부딪쳐 깨지더라도 우리가 한다는 조합원의 의지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며 그 과정을 설명했다.

그는 “2공장은 올해 처음으로 파업을 들어갔는데, (지금까지) 몸싸움자체를 한 경험이 없었다. 그런데 대체인력 싸움에서 대가리가 깨져가면서도 조합원의 생각이 더욱 확고해지고 있다. 전술적으로 시기조정을 하려해도 조합원들이 더해야 한다며 성화다. 조합원의 생각을 받아 싸움에서 승리할 것이다”고 자신감있게 말했다.


“정규직조차 우리의 생존권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
3공장 교섭위원 정윤석

3공장은 신차투입으로 7월 1일 108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계약해지를 당했다. 집으로 돌아간 사람들도 있지만, 40명 정도가 남아 농성투쟁을 시작했다. 현재 12명은 일하던 업체로 복귀했고, 나머지 농성자들의 복직도 조만간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정윤석 3공장 현장위원은 그 과정을 이야기하며 “농성이 시작되고 전술변화에 대한 논의가 한참 진행될 때 25명 복직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내부적으로 논의해 한명이라도 살려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해서 그 제안을 받았다. 그런데 정규직 대의원회에서 알아보니 12명의 공정만 있다는 것이다. 재논의가 3일 동안 격렬하게 진행됐고, 농성투쟁이 무너질 위기까지 갔었다. 우리는 아무런 요구도 못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받아야 하는 것밖에 안 됐다. 우리와 한마디 없이 진행한 것이 많다. 작년 정규직이 비정규직노조 집단가입을 시킬 때 고용보장을 이야기했는데, 해고자들 대부분이 열성조합원이었다. 힘이 없어서 하청관리자도 무시하는데, 정규직대의원들도 우리의 생존권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며 정규직 활동가에 대한 생각을 털어놨다.

하지만 그는 “3공장 안에서만 싸우면 농성투쟁이 고립된다고 생각했다. 대시민 선전전과 삼보일배 등도 구상했지만, 복귀문제가 거론되기 시작해 공장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2공장에 선전전도 가고, 타공장 투쟁에 꾸준히 결합했다. 타공장 사람들이 열심히 싸우는 모습에 ‘쟤네들이 정리해고된 애들이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성과를 많이 본 것 같다.
그리고 농성장에서는 파업 장소에 우리가 많이 불려 다닐 줄 알았다. 그런데 너무 잘 싸우더라. 20명이 150명의 관리자들과 대치하는데, 주눅 들지 않고 싸우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든 되겠구나는 생각을 했다. 3공장도 라인을 끊어야겠다고 생각해, 적은 인원이만 25일 거점사수투쟁을 진행했다. 사측이 방심했는지 관리자가 100명도 안되었고, 40분 라인이 멈췄고 120분 동안 가다서다를 반복했다"며 그간의 투쟁을 설명했다.


"원청의 불법대체인력 투입, 이해할 수 없다“
시트사업부 현장위원 이상완

시트 2부는 대체인력저지 투쟁에서 주·야간 함께 모여서 진행하면서 탄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초기에는 A조만 조직돼 있었다. B조는 파업과정에서 조직됐지만, 짧은 시간에 전조합원이 파업에 돌입했다.

이상완 시트사업부 현장위원은 B조에 속해있다. 그 과정에 대해 그는 “작년 단체가입을 했었지만, 원청에서 폐업하면서 업체를 두 개로 가르고, 탈퇴하지 않으면 자르겠다고 협박을 해왔다. B조는 겁을 먹고 하나둘씩 탈퇴하면서 무너졌다. 그런데 A조가 쟁의권을 획득하고 투쟁이 이어지면서, A조가 ‘우리를 대신해 싸울 수 없는 것이고 우리 권리를 찾자는 것인데 함께 해야 한다’고 의기투합해 6월 말에 단체가입을 했다. 그래도 파업은 어렵지 않느냐 했는데, 열외 한명 없이 파업에 돌입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합법파업임에도 원청에서 불법대체인력을 투입해 현장을 막고 있다. 몸싸움 없이 하고 싶은데, 대체인력을 뽑아내야하니까 몸싸움이 일어나고 있다. (사측의 이런 행위를) 이해하지 못하겠다. 원청은 많은 인원이 카메라까지 들이대고 있지만, 우리는 맞을 뿐 아무것도 없다”며 현대차 사측에 대한 분노를 거침없이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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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 비정규 임단투 파업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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