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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 비정규 현장위원 인터뷰

『인터뷰』
파업투쟁의 중심에 서있는 현장위원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현장위원


현대차 비정규직노조의 투쟁을 유심히 지켜보면, 전과는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파업지침이 일괄적으로 내려질 때도 있지만, 각 사업부별로 다른 것과 파업현장에서 일군의 무리들이 수시로 이야기를 하다가 조합원들 사이로 흩어지는 모습이다.

변화된 모습의 중심에는 현장위원이 있다. 비정규직노조는 올해 들어 기존의 소위원을 현장위원으로 명칭을 변경하면서 이들의 주체적 활동에 주목해왔다. 이들은 조합원들과 수시로 대화하면서 그를 바탕으로 각 사업부에 맞는 전술을 논의하며, 비정규직노조의 결정사항을 조합원에게 전달하고 토론하고 있다. 이들의 주체적 활동이 강화되면서 비정규직노조 임원들과 각 사업부 대표들이 ‘현장위원의 등쌀에 못살겠다’는 행복한 투정(?)을 부리고 있는 모습이 종종 발견된다.

1, 2, 3, 시트 사업부의 현장위원을 만나 그들이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현장위원들은 현장에서 수시로 대화하고 토론하고 있다.



“차근차근 밟아가서 현장에 힘이 들어간 것이다”
1공장 사업부 현장위원 최상아

최상아 1공장 현장위원은 비정규직노조 결성초기부터 결합해 활동을 해오고 있다. 첫눈에도 보기 좋은 인상을 가진 그는 수줍은지 짤막하게 이야기해 인터뷰가 쉽지 않았지만, 짧은 말속에 조합원에 대한 믿음이 묻어나왔다.

가입 초기부터 활동했으면 사측의 탄압과 회유에 힘들었겠다는 말에 그는 “세상을 바꾸려면 협박정도는 넘어서야 하는 것 아니냐”며 짧게 이야기한다. 그는 “노조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았지만, 나서는 사람이 없어 가입당시부터 소위원을 했다”고 한다.

올해 투쟁의 특징에 대해 물어보자 비교적 길게 대답을 한다. 그는 “작년의 경우 불법파견의 문제로 투쟁을 일정중심으로 진행한 반면, 올해는 차근차근 밟아가면서 간담회를 비롯해 조합원과 수많은 대화를 통해 단체교섭의 중요성을 알려냈다. 작년 투쟁으로 서른명이 넘는 조합원이 징계를 당하면서 나서면 다친다는 인식이 있었다. 하지만 지노위에 조정신청에서 쟁의권 획득까지 모든 과정을 (조합원에게) 보고하고, 징계자들이 복직과 징계도 약화되면서 현장에 힘이 많이 들어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어떻게 투쟁이 진행돼야 될 것이냐는 물음에 “결론은 조합원이 판단하는 것이 아니냐”며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조합원들이 파업을 더 해야 한다며 성화다”
2공장 현장위원 노덕우

노덕우 2공장 현장위원은 비정규직노조를 인터넷을 통해 자기 발로 걸어들어 왔고, 올해 총대를 메고자(?) 비정규직노조 현장위원을 하고 있었다. 그는 비정규직의 파업으로 현장이 멈춰서는 것을 보며 “우리가 파업해서 라인이 섰다는 자체가 마음이 뿌듯하고 할 수 있다는 긍지가 생긴다”고 했다.

2공장은 가장 늦게 파업에 돌입했는데 그는“우리는 현장을 먼저 구성하고자 했다. 현장위원들은 조합원과 간담회과 개별면담을 통해 의견을 묻고 조직을 해왔다. 개별교섭을 하면서 업체장들이 ‘바지사장이라 우리가 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을 현장에 전달했고, 그들을 믿고 일해 온 조합원들의 분노가 폭발하기 시작했다. 현장위원이 출투를 시작하고 조합원들도 참여를 하며 쟁의권을 확보해왔다. 몸으로 부딪쳐 깨지더라도 우리가 한다는 조합원의 의지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며 그 과정을 설명했다.

그는 “2공장은 올해 처음으로 파업을 들어갔는데, (지금까지) 몸싸움자체를 한 경험이 없었다. 그런데 대체인력 싸움에서 대가리가 깨져가면서도 조합원의 생각이 더욱 확고해지고 있다. 전술적으로 시기조정을 하려해도 조합원들이 더해야 한다며 성화다. 조합원의 생각을 받아 싸움에서 승리할 것이다”고 자신감있게 말했다.


“정규직조차 우리의 생존권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
3공장 교섭위원 정윤석

3공장은 신차투입으로 7월 1일 108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계약해지를 당했다. 집으로 돌아간 사람들도 있지만, 40명 정도가 남아 농성투쟁을 시작했다. 현재 12명은 일하던 업체로 복귀했고, 나머지 농성자들의 복직도 조만간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정윤석 3공장 현장위원은 그 과정을 이야기하며 “농성이 시작되고 전술변화에 대한 논의가 한참 진행될 때 25명 복직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내부적으로 논의해 한명이라도 살려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해서 그 제안을 받았다. 그런데 정규직 대의원회에서 알아보니 12명의 공정만 있다는 것이다. 재논의가 3일 동안 격렬하게 진행됐고, 농성투쟁이 무너질 위기까지 갔었다. 우리는 아무런 요구도 못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받아야 하는 것밖에 안 됐다. 우리와 한마디 없이 진행한 것이 많다. 작년 정규직이 비정규직노조 집단가입을 시킬 때 고용보장을 이야기했는데, 해고자들 대부분이 열성조합원이었다. 힘이 없어서 하청관리자도 무시하는데, 정규직대의원들도 우리의 생존권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며 정규직 활동가에 대한 생각을 털어놨다.

하지만 그는 “3공장 안에서만 싸우면 농성투쟁이 고립된다고 생각했다. 대시민 선전전과 삼보일배 등도 구상했지만, 복귀문제가 거론되기 시작해 공장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2공장에 선전전도 가고, 타공장 투쟁에 꾸준히 결합했다. 타공장 사람들이 열심히 싸우는 모습에 ‘쟤네들이 정리해고된 애들이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성과를 많이 본 것 같다.
그리고 농성장에서는 파업 장소에 우리가 많이 불려 다닐 줄 알았다. 그런데 너무 잘 싸우더라. 20명이 150명의 관리자들과 대치하는데, 주눅 들지 않고 싸우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든 되겠구나는 생각을 했다. 3공장도 라인을 끊어야겠다고 생각해, 적은 인원이만 25일 거점사수투쟁을 진행했다. 사측이 방심했는지 관리자가 100명도 안되었고, 40분 라인이 멈췄고 120분 동안 가다서다를 반복했다"며 그간의 투쟁을 설명했다.


"원청의 불법대체인력 투입, 이해할 수 없다“
시트사업부 현장위원 이상완

시트 2부는 대체인력저지 투쟁에서 주·야간 함께 모여서 진행하면서 탄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초기에는 A조만 조직돼 있었다. B조는 파업과정에서 조직됐지만, 짧은 시간에 전조합원이 파업에 돌입했다.

이상완 시트사업부 현장위원은 B조에 속해있다. 그 과정에 대해 그는 “작년 단체가입을 했었지만, 원청에서 폐업하면서 업체를 두 개로 가르고, 탈퇴하지 않으면 자르겠다고 협박을 해왔다. B조는 겁을 먹고 하나둘씩 탈퇴하면서 무너졌다. 그런데 A조가 쟁의권을 획득하고 투쟁이 이어지면서, A조가 ‘우리를 대신해 싸울 수 없는 것이고 우리 권리를 찾자는 것인데 함께 해야 한다’고 의기투합해 6월 말에 단체가입을 했다. 그래도 파업은 어렵지 않느냐 했는데, 열외 한명 없이 파업에 돌입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합법파업임에도 원청에서 불법대체인력을 투입해 현장을 막고 있다. 몸싸움 없이 하고 싶은데, 대체인력을 뽑아내야하니까 몸싸움이 일어나고 있다. (사측의 이런 행위를) 이해하지 못하겠다. 원청은 많은 인원이 카메라까지 들이대고 있지만, 우리는 맞을 뿐 아무것도 없다”며 현대차 사측에 대한 분노를 거침없이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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