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陳光興의 탈식민주의decolonialism

陳光興교수는 지금 북경에서 중국/인도 사회사상의 대화 관련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이메일로 근래에 진행하고 있는 개별 연구의 상황에 대해 보고를 했고, 개인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문제를 하나 건넸는데, 대만사회연구계간에서 기간의 관련 글을 모아 출판한 '포스트/식민 연구 독본'의 편집자의 말을 참고하라고 전해왔다. 나는 역사의 종축과 횡축, 특수와 보편을 연결짓는 문제를 미조구치 유조 선생 내부의 긴장과 관련해서 던졌다. 미조구치 유조는 정말 '근대'를 버리면서 옥시덴탈리즘의 위험을 감수하려고 했을까? 진 선생이 언급한 글은 상술한 독본의 서론으로 쓰여졌고 제목은 '이중의 초극'(Double Overcoming)이다. 몇 단락을 발췌해 번역해둔다. 참고로 이 책은 상/하권으로 2010년 11월에 출판되었고 각각 열 편씩 포스트/식민 연구와 관련한 글들을 모아 실었다. 진광흥 교수는 서론에서 전반부에 간략한 자신의 이론적 시좌를 밝히고 이어서 각 글에 대해 간략한 논평을 하고 있다.

 

'현대문제'와 '식민문제'는 비판적 학술사상계에서 본래의 애매모호한 분리상태에서 점차 합류되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이론에 내재한 논리적 필연성에서 온 것이 아니라 세계 역사의 동력을 대면하면서 필요하게 된 접합에서 온 것이다. 특히 양측의 동력이 하나가 되어 있는 제3세계 지역에서 '현대'에 대한 욕구와 '식민'의 악몽은 거의 분할할 수 없는 것이자 한 몸의 두 얼굴인 기본적 정신 상태이다. '식민'이 전/식민지에서 운용될 수 있던 것은 단순히 폭력적 기제(무력, 자본)가 전제가 된 것일 뿐이 아니라, 현대성이라는 이름의 호명과 동원이 피식민 주체에 의해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반식민운동도 현대를 추구하는 힘 속에서 진행되었다. 그래서 상호 침투하면서 모순적인 이 두 종류의 거대한 추세는 과거의 두 세기 동안 우리의 주체성의 형성을 제약하였다. 이른바 포스트 식민의 세계 속에서 '현대'가 이데올로기, 가치, 욕망 그리고 실천으로서 가져온 폭력과 억압 그리고 차별은 더욱 명확하게 부단히 출현하고 우리로 하여금 반드시 대면하지 않을 수 없게 하고 있다. 작금의 사상적 곤경을 성찰함에 있어 '식민을 초극'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현대를 초극'하는 것을 의미한다.

 

분석의 층위에서, 역사와 시간좌표 범주로서의 '현대'(예를 들어, 고대, 근대, 현대, 당대) 역시 점차 의문시되고 있다. 진화론적인 분류방식은 현재를 기준으로 과거를 재단하며, 목전의 시각을 가장 우수한 문명적 최고점으로 보는데, 공격하지 않아도 서서히 스스로 무너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폭로된 것은 바로 이데올로기로서의 '현대'(영어 modern의 또다른 중국어 번역은 '摩登'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이다. 이는 과거와 달리 자신의 우월성을 주장한다. 옛 사람들에게 있어 그들의 시대는 당시의 현대였을까? 만약에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시간적 관계를 정립하도록 해야하는가? 결국 유럽 대륙의 진화론적 시간 의식이 본토화 및 상대화되는 동시에, 현대의 초극 역시 필연적으로 식민주의 세계관을 초극하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여기에 동원되는 것이 아시아와 제3세계이다. 유럽 역시 상대화되는 가운데, 아시아와 제3세계 역시 새롭게 역사화되어야 한다. 이러한 역사화는 다시 '보편'을 매개로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아시아 내부의 상호참조가 방법으로 제시된다. '방법으로서의 아시아'는 그런 맥락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흥미롭게도 중간에 사카이 나오키의 80년대 말의 글 '현대성과 그 비판: 보편주의와 특수주의의 문제'에 대해 논평하고 있는데 당시 미국 학술계에 대한 나오키의 개입의 선구성 등을 이야기한 후에 다음과 같은 분기를 보여주기도 한다. 핵심은 일종의 방법론적 '역사화' 그리고 '탈정치' 또는 '탈보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잠시'의 적정시간은 얼마일까.

 

20년후 사카이의 비판적 개입을 다시 읽으며 이론적 패권이 비교적 느슨해졌음을 느끼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론이 무엇의 인식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유럽중심주의적 이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동시에 보편주의는 여전히 늘 제3세계 학술사상계에 의해서 적수의 담론을 지나치게 특수하다고 경계하고 의문시하는 데 동원된다. 지식 생산이 광범위한 위기에 직면한 가운데 서로 다른 역사적 경험의 대명대방大鳴大放이 아마도 사상해방의 중요한 루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잠시 보편주의와 특수주의의 평가틀을 옆으로 걷어내고, 보편성은 모두 일종의 모험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어쩌면 점차 보편주의의 대동세계로 나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미조구치 유조를 다시 인용하면서 글을 맺는다. 조선/남북한의 식민/탈식민/현대화의 문제도 그렇게 간단히 이해될 수 있는 것 같지 않다.

 

미조구치 유조 교수는 『중국의 충격』(동경대학출판회, 2004)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청말 이래로, 수천 년 동안 세워진 중국 왕조 체제의 붕괴는 비교할 수 없는 큰 일이다. 이는 몇 백년에 거쳐 다시 조정되고 적응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지진이 이미 끝났지만 지금까지 여전히 여진 속에서 중건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시각에서 보면 모든 현대 문제는 모두 서로 연관되어 있다. 식민주의, 자본주의, 민족주의, 본토주의, 현대화, 문화동일성, 계급정치, 성차, 인종차별, 그리고 비교적 최근의 세계화 담론 등등은 모두 독립적으로 이해될 수 없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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