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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 목록(2012~2018)

《사상의 분단--아시아를 방법으로 박현채를 다시 읽다》가 공식 출간됨으로써 6년여 기간 동안 진행된 공부가 일단락된 느낌이다. 공교롭게도 이와 같은 일단락과 동시에 망명을 가듯 쫓겨서 공부의 기지를 대만으로 옮겼다. 2014년 여름 떠난 뒤 거의 4년만에 살려고 다시 돌아온 대만에서의 첫 날, 설잠을 자고 나서 다시 잠 들지 못하는 상황이다. 기존의 공부와 관련해서는 《사상의 분단》 중문판(간체/번체)과 영문판 출판 작업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국문판 작업의 번역 이상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요구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것은 아마도 '운동'일 듯 싶다. 내가 국문판 머리말에서 던진 바와 같은 권역적 국제주의 사상운동. 이 운동은 사실상 '내용'을 더 채우기 보다는 오히려 '생산적 대화'를 더 많이 만들어가는 노력이다. 내 이름 아래 놓인 한 권의 책 또한 '방편'적이었을 뿐이다. 이를 더욱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오히려 중문판과 영문판의 출간이 매우 필요하고 중요할 것이다. 고유성, 폐쇄성, 소유의 논리에 갇히지 않는 실천을 위해서 그렇다.

2012년~ 2018년 6월

♦ 학위 논문

2016. 6,《朴玄埰思想的當代意義:以陳映真文學為參照點[박현채 사상의 당대적 의의: 진영진 문학을 참조점으로]》,國立交通大學社會與文化研究所博士論文(문학박사)。

2009. 7,《移工運動形成與工運中的民族主義論述:韓國和臺灣之比較[이주노동자운동의 형성과 노동운동의 민족주의담론: 한국과 대만의 비교》,台灣世新大學社會發展研究所碩士論文(사회학석사)。

 

♦ 저서 

2018,《思想的分/斷:巫祭陳映真與朴玄埰》,forthcoming.

2018, 『사상의 분단: 아시아를 방법으로 박현채를 다시 읽다』, 서울: 나름북스.

 

♦ 논문

2017, “A Regional Reference to Chen Yingzhen's Literature: A Perspective from Korea," Frontiers of Literary Studies in China 2017, 11(4): 637-665. (trans. by Liu Yihung)

2017, “陳映眞 문학사상이 분단 한국에 주는 참조적 의의”, 『중국현대문학』 제80호, pp.21-48.

2013,〈錢理群的「另一種歷史書寫」〉,《人間思想》第二期,頁284-298。[연광석/이홍규 엮음, 연광석 옮김, 전리군과의 대화(한울, 2014) 에 한국어판 축약본 수록]

2012,〈朴玄埰先生的思想特徵: 以“民族民眾論”為主〉,《區域》(汪暉、王中忱主編)第二輯,頁226-245。

 

♦ 평론 및 잡문

2017, 〈남한 신식민/분단 체제와 '민주수업'의 불가능성〉, 《문화연구》5(2),pp. 130~147.

2017, 〈南韩新殖民/分断体制与“民主课”的不可能性〉, 《热风学术(网刊)6》,pp. 115-123.;9월 19일《新國際》에 전재됨(http://www.newinternationalism.net/?p=2891#more-2891).

2016, 〈重新尋找新殖民分斷體制下生活的智慧〉,《人間思想》第十二期2016年春季號,頁50-58。

2014, 〈化歷史為力量:閱讀《無悔—陳明忠回憶錄》〉,《人間思想》第七/八期2014年夏冬號,頁342-345。

2014, 「서평: '역사를 감당한다는 것'/핵심현장에서 동아시아를 다시 묻다』(백영서 지음/창비/2013)」황해문화, 2014 봄호, pp 401~411.

2013,〈二二八、五一八與六四:冷戰與失語〉,《人間思想》第五期2013冬季號224-231。

2013,〈聽《安蒂岡妮》訴說歷史性:尋找新的語言以及烏托邦〉,《牯嶺街小劇場文化報》No. 33,頁4-5,原收於《苦勞網》公共論壇,2013年9月18日。

2013, 「서평: '유럽의 자기 반성인가, 아니면 또 다른 유럽중심주의인가?'/중국은 무엇을 생각하는가』(마크 레너드 지음/장영희 옮김/돌베개/2011)」, Aporia Reivew of Books, Vol.1, No.1, 2013년 9월(http://aporia.co.kr/bbs/board.php?bo_table=rpb_community&wr_id=32).

2012,〈書評:重返馬克思和恩格斯的當前思考/《破門而入》(汪立峽/唐山/2012)〉,《破報》2012.12.27。(轉載於《立報》、《人文與社會》,《苦勞網》等)

 

♦ 편저

2014, 연광석/이홍규 엮음, 연광석 옮김,전리군과의 대화(한울, 2014).

 

♦ 학회/토론회 발표

2017. 12. 22, “신식민/분단체제와 박현채의 문학 콤플렉스”, 충남대 통일교육사업단/북한대학원대학교 SSK연구센터 공동학술회의, 북한대학원대학교(서울).

2017. 8. 28, “남한 신식민/분단체제와 ‘민주수업’의 불가능성”, 한국정치정보학회/북한대학원대학교 SSK연구단 공동학술회의, 북한대학원대학교(서울).

2017. 8. 5, 〈經濟學者的去殖民文學思考—以南韓民族經濟論者朴玄埰的文學情結為例〉,“转折的时代——40、50年代之交的汉语文学”中國社科院文學研究所國際研討會,北京鑫海錦江大酒店。

2017. 7. 28, “Thinking on the New Direction of ‘Inter-Asia’—Through the Conjuncture of Bandung 60,”(Panel name: In Search of a New Direction for the ‘Inter-Asia’ Method; Organizer: Gwang-Seok, YEON), Inter-Asia Cultural Studies Conference, Seoul, Korea.

2017. 1. 16, “A Reflection on the Inter-Asia Intellectual Movement: Bandung as a New Momentum,” Summer School of Sam Moyo African Institute for Agrarian Studies, Harare, Zimbabwe. (in English)

2016, 「新殖民性과 中國文化大革命」, '중국 문화대혁명 50주년 토론회', 성균중국연구소 주최(성균관대학교 국제관 90208, 20160527).

2014, 「陳映真 문학의 탈식민 실천」, 2014 현대중국학회 추계학술대회 사회/문화 세션(인천대학교, 2014 1014).

 

♦  강연, 콜로키움  및 집담회 등 발표

2018, 陳映眞 문학사상이 분단 한국에 주는 참조적 의의」,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32차 워크숍, 일본학연구소 일본학도서관, 20180427.

2017, 「경제학자의 탈식민주의적 문학 사유--민족경제론자 박현채의 문학 콤플렉스를 중심으로」, 한국문화사회학회 2017년 9월 콜로키움, 서강대학교 정하상관 215호, 20170929.

2016, 「21세기 대만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회변혁노동자당 정치캠프, 20160806(충북 옥천).

2016, 「다시 新殖民-分斷體制를 살아가는 智慧를 찾아서」, 성공회대 노동사연구소 특별집담회, 20160129.

2015, 「"타이완을 아시나요?"」, 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동아시아평화찾기' 연속강의 두 번째, 20151102. [http://www.krhana.org/html/notice.html?uid=103; http://blog.krhana.org/307]

2015, 「홍콩, 이중 식민의 특수성과 한국:  홍콩을 의미 있는 타자로 인식하기 위한 작업 가설」 , 참세상연구소 주례토론회, 20150224.[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category1=38&nid=98794]

 

♦  학술회의 조직

2015, 「2015 국제 로자 룩셈부르크 대회: '아시아 사회주의와 유럽사회주의'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등, 20151127~28), 전체 기획 및 아시아 사회주의 부분 조직. 제5세션 통역.

2015, 「아시아 사회주의 워크숍: 홍콩/대만」(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20150227), 기획 및 동시통역.

 

♦ 강의

2016, 성공회대 중어중국학과 <중국어I연습>, <중급중국어연습>(2016상반기)

2015, 성공회대 중어중국학과 <중국어회화I연습>(2015하반기)

2015, 성공회대 중어중국학과 <중국과 세계> (2015 상반기)

 

♦ 번역

[단행본]

2017, 呂途, 『중국 신노동자의 형성: 도시와 농촌 사이에서 길을 찾는 사람들』, 정규식, 연광석, 정성조, 박다짐 공역, (나름북스, 2017)[중문판/ 呂途, 《新工人:迷失與崛起》(北京: 法律出版社, 2012)].

2015, 曹征路,민주 수업(나름북스, 2015)[중문판/ 曹征路, 《民主課》(台北: 台灣社會研究雜誌社, 2013)].

2014, 전리군과의 대화 (한울, 2014).

2014, 白承旭,《文革的政治與困境:陳伯達與「造反」的時代》(交通大學出版社,2014)[한국어판/ 백승욱, 『중국 문화대혁명과 정치의 아포리아』(그린비, 2012)]

2012, 錢理群, 모택동 시대와 포스트 모택동 시대 1949~2009 다르게 쓴 역사(상/하)(한울, 2012)

 

[단편]

2016, 陳光興, 백원담 대담, 「중국과 비중국」, 『황해문화』2016년 가을호(통권 92호), pp.12~52.

2016, 嚴海蓉, 베리 사우트먼, 「홍콩 본토화와 메뚜기론: 신 세기의 우익 포퓰리즘」, 『황해문화』2016년 가을호(통권 92호), pp.106~141.

2016, 陳信行, 대만정부의 '비중국 요인' 조절과 양대국 사이의 '신남향 정책'」, 『황해문화』2016년 가을호(통권 92호), pp.86~105.

2016, 陳光興, 「반둥/제3세계 기행노트」, 『황해문화』2016년 봄호(통권 90호), pp.247-280.

2015, 曹征路,白元淡 대담, 「민주수업의 문화대혁명 성찰과 그 후」, 『중국현대문학』제75호(2015년 겨울호), pp.267~290.*통역 및 녹취 정리.

2015, 白元淡,〈1960-70年代亞洲的不結盟/第三世界運動和民族•民眾概念的創新〉,《人間思想》第11期(2015年冬季號),pp.46-95.

2014, 宋竟東,〈我不是韓國人〉,《苦勞網》,20140709(http://www.coolloud.org.tw/node/79270).

2014, 孫歌, 「'이념'으로서의 평화와 '사상'으로서의 평화」, 『황해문화』83호(2014 여름호), pp.119-129. 

2014, 錢理群「문혁의 질문과 그 복잡성을 마주하며」, 『황해문화』83호(2014 여름호), pp. 223-235.[중문판/ 錢理群,《人間思想》第五期(2013冬季號),頁289-296。]

2014, 錢理群, 「꿈과 같은 인생[人生如梦]」, 연광석/이홍규 엮음, 전리군과의 대화(한울, 2014) .

2013, 藍適齊, 「‘반공’의 희망에서 망각된 전쟁으로: 대만의 한국전쟁 기억」, 백원담 외, 한국전쟁과 냉전 아시아의 탄생(문화과학사, 2013).

2012, 白樂晴,〈2013年體制與變革性中道主義〉,《人間思想》第二期,頁4-20。

 

[극본]

2017, 王墨林,《脫北者》窮劇場和Shiim劇團共同製作作品劇本。

2013, 王墨林,《安蒂岡妮》2013年牯嶺街小劇場年度作品劇本。

2013, 鐘喬,《天堂酒館》2013年差事劇團年度作品劇本。

 

♦ 봉사

2016, 3~ 7월 : 하이디스 노사 협상 노조측 통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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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폭력 담론의 탈역사성

미류님의 [4.3, 문재인 추념사, 그리고 -] 에 관련된 글.

이제 4.3도 좌/우, 진보/보수를 넘어선 '정의', '민주', '인권' 등의 보편주의적 담론을 통해 적극적 탈역사화의 대상이 되고 있다. 다시 말해 4.3도 신식민/자유주의적 정권과 운동체제에 의해 포섭되는 것 같다. 1987년, 1980년에 적용되었던 보편주의적 탈역사화 민주/자유 담론이 1948년의 4.3까지 먹어치우려는 형국이다. 영화 '1987'은 반공주의에 대한 자유주의의 단죄를 통해 더욱 내재화된 자유주의적 반공주의라는 시대적 지배이데올로기를 잘 보여준 바 있었다.

 

희생당한 이들은 아무런 이념적 지향이 없는 '양민'이었다는 탈민중적 접근, 그리고 책임은 당시 있지도 않았던 '국가'에 있다는 탈민족적 접근이 결합되고 있다. '양민'이 없었겠느냐마는 역사 속의 민중이 어찌 양민이기만 했겠는가. 민중을 학살한 우익이 있었지만, 어찌 그들이 추상적 국가의 대리인이었겠는가. 반공주의적 자유주의에게 해방정국이 탈식민을 둘러싼 신식민-제국/자유주의와 민족해방-사회주의 사이의 각축장이었음은 어떻게든 지워야 할 역사였던 것이다.

 

국가폭력이라는 가상, 그리고 구조적 폭력이라는 가상은 '국가'와 '구조' 자체가 가진 추상성/보편성으로부터 폭력의 원인을 찾는다는 점에서 현실을 이론에 환원한 결과물이다. 국가이론 또는 자본주의 구조비판이론, 나아가 페미니즘 이론 등등에서 자동적으로 폭력의 원인이 제시된다. 물론 이는 1990년을 전후로한 가상적 국가화에 의해 완성된 인식론적 전환이 학술이론에  반영된 구체적 표현이다. 그렇게 '폭력'은 탈역사화되고, 동시에 '탈주체화'된다. 그러면 '폭력'이 어떻게 존재하는지, 무엇인지, 누구의 것인지 모호해진다. 심지어 지식담론에서 폭력은 이론을 증명하는 사례로 동원 및 이용된다. 때로는 날조될 수도 있다. 있지도 않은 폭력이라도 만들어서 이론을 증명하고자 하는 이론주의는 엘리트주의/포퓰리즘의 동일성에 기대어 어떤 폭력을 과장할 수도 있고, 어떤 폭력을 지울 수도 있다. 특히 우리 상황에서 이론주의는 운동체제와 결합되어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진정한 문제는 이론의 규제하에 파악된 폭력과 실제 폭력 사이의 거리가 작지 않다는 것이다. 이론에 의해 파악된 폭력과 그 주체가 '비정상적 개인/집단'이자 사법적 단죄의 대상에 머물게 되고, 그러한 비난과 처벌이 이론적 관점에서조차 구조적 전환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 거리에 있을 것이다. 이는 현실에 대한 이론의 패배라 할만 하지만, 엘리트주의적 이론은 자신의 포퓰리즘적 지지기반을 들어 반성보다는 보완하면 된다는 변명으로 일관한다. 현실에서 잡히지 않는 이론적 '구조'이지만, 이를 내려 놓는 순간 스스로 진정한 현실을 대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식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최악이다.

 

그러나 대중 및 운동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최선일 수 있다. 그럴 것이다. 대중 운동의 관점에서 현실의 모순에 대한 인지, 그것의 해결을 위한 실천은 그 상황하의 지식담론을 참조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역사적 지식의 역할은 그러한 운동에 대한 평가에 있지 않다. 더욱이 운동에의 편승은 비윤리의 극치다. 지식의 역할은 오히려 그 운동이 지식담론을 참조하여 나아간 부분, 나아가지 못하고 막힌 부분에 대한 역사적 성찰을 지식 장역에서 전개하고 축적하는 것에 있다.

 

폭력은 이론적 '구조'에 기인하지 않는다. 폭력은 그것이 폭력적 장치를 경유한다 하더라도 궁극적으로 역사를 갖는 사람들 내부/사이의 폭력이다. 보편적 좌/우의 구도는 이론적 산물이지만, 역사적 좌/우의 구도는 역사를 반영한 현실 내부의 힘의 균형을 드러낸다. 결국 역사 안에서만 폭력은 정확하게 인지될 수 있고, 또 정확하게 처리될 수 있다. 조정로의 '민주수업'은 그런 의미였다. 역사 안에 서기 위해서는 실천을 통한 '교육'이 필요했고, 그리고 교육을 통한 윤리 주체의 형성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실천을 통한 교육이 가능하려면 교육에 동원되는 사상적 준비가 먼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문화대혁명에서는 모택동 사상의 풍부성이 결정적이었다. 

 

결국 사상의 회복이 관건이라 할 수 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사상운동이 전개되어야 한다. 대대적으로... 그럴 때, 폭력은 이론의 도구로 전락하지 않고, '민주수업'을 통해 궁극적으로 사람들 사이의 진정한 화해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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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해를 회고하며...

뉴욕, 아프리카, 대만을 거쳐 서울로 돌아온 것이 2017년 2월 6일이었다. 그리고 3월부터 새로운 직장에서 일을 했고 이제 1년을 채워간다. 십년 만에 4대보험을 제공하는 직장을 갖게 되었고, XX교수라는 비정규직 타이틀도 얻었다. 그리고 무엇을 했나?

 

설 연휴를 보내며 지난 한 해를 회고해보니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박사학위 논문을 증보한 <사상의 분단>이라는 책의 중문판과 국문판 초고를 마무리했고, 그 가운데 일부를 영어 논문으로 내고, 또 일부는 이런 저런 자리에서 발표를 했으며, 그 연장선에서 제출한 정세비평이었던 <신식민/분단 체제와 민주수업의 불가능성>이라는 글이 중문/국문으로 저널에 게재되기도 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한 걸음도 더 나가지 못했다. 아프리카를 경유한 대륙간 상호참조의 문제의식은 1년전 상태 그대로이고, 박현채 연구 또한 전혀 심화되지 못했다. 인터-아시아의 공백으로서 설정했던 북한에 대해서는 전혀 다가가지 못했다. 오히려 동력을 잃었다는 측면에서 보면 퇴보다. 실천적 지식생산의 의지는 꺽였고, 삶은 역동성을 잃었으며, 인적관계는 위축되었다. 그래서 고민을 담은 단상 조차 쓰여진 바가 거의 없다.

 

이 상태를 유지해야 할 어떤 이유도 찾지 못하고 있다. 유일한 이유라 하면 아마도 돈일텐데, 지금 한번 꺽이면 앞으로 끝 없는 추락만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는 강한 위기감이 든다. 결단의 순간이 왔고, 이제 그 결단을 한다. 스스로 삶을 먼저 바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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