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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수업의 불가능성

주체적 역사 복원의 계기인가? 또는 역사 단절의 공고화인가? 두 갈래로 큰 방향을 나눠 본다면 2016년 겨울 한국의 흐름은 시작부터 후자로 정향되어 있었다. 다시 말해 '민주 수업'이 될 가능성 보다는 '민주 수업'을 불가능하게 하는 담론적 선긋기가 너무도 명확했다. 그게 아니었다면 이러한 '규모' 자체가 불가능했었을 것이다.

 

광장이 '민주 수업'의 장소가 되려면 적어도 1945년과 1950년을 우리 사상운동 담론 안에 다시 들여와야 한다. 장기적인 제약조건이었던 외재적 억압의 효과를 무시할 수 없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를 핑계로 우리 내부의 단절을 합리화할 수 없다는 점이고, 이런 맥락에서 '민주'를 둘러싼 지식담당자들의 위선, 오만, 태만, 관성, 자기합리화는 '민주 수업'의 불가능성을 구성하는 핵심 요인이 된다.

 

결국 1987년에서 한 발짝도 못 나갔고, 오히려 퇴보했다는 짐작이 이제 확신으로 전환된다. 그리고 1987년을 낳았던 1960년대의 여전한 구속력 또한 확인된다. '대중'적 분노를 낳는 모순과 대립은 1960년대의 구속력 범위를 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가상'적이다. 사례들은 무수히 많을 것이다. 이번 시위에서 역사교과서는 이러한 가상적 모순의 대표적 사례 가운데 하나다. 한편 농민의 트랙터 상경시위는 매우 드문 예외로 간주될 수 있다.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 및 관련 간첩사건은 예외가 될 수도 있지만, 매우 제한적일 것이다.

 

정치의 주체가 '살아 있는 자들'만으로 제한될 때, 살아 있는 자들은 오히려 진정한 정치의 주체가 되기 어렵다. 그들은 단지 살아 있는 자들이 아니라 '살아 남은 자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살아 남은 자들'은 그들을 살리기 위해 죽은 이들을 기억하지 못하며, 그들이 '살아 남은 자들'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지금 그들은 그저 시혜적 '민주'가 호명한 역사 없는 '추상'적 주체일 뿐이다. 

 

광장에서 사람이 모여도 민주수업이 되지 못하는 이 상황은 하나의 부정적 추세를 갖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는 듯 하다. 마치 계속 마셔도 목이 마른 음료수와 같은 것이다. 또는 통증의 원인은 밝혀지거나 제거되지 않은채, 반복해서 통증의 완화를 위한 진통제를 먹고 있고, 점점 더 많이 먹어야 한다. 이런 조건에서 사람들의 호흡은 점점 짧아진다. 그리고 '역사'의 장역이 갖는 공간 또한 무화된다.

 

이 악순환을 끊고 역사를 다시 만날 계기가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어르신이 안 계시기 때문이다. 조정로의 소설 민주수업의 안 씨 어르신 같은 분들을 찾아가 뵈어야 한다. 살아 계시지 않아도 아직 우리 안에 책으로 글로 남아 있다.

 

지금 상황에서 '역사'를 부여잡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아마도 '마녀사냥'의 대상이 되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신앙'을 가지고, 그로부터 확신과 용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두려울 것이 없다.

 

역사는 곧 신앙을 준다. 신앙은 확신을 낳고, 확신은 용기를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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