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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성주의 비판에서 연장된 '역사'의 문제...

일전에 페이스북을 통해서 '반지성주의' 논쟁이 전개된 바 있다. 최초의 문제 제기는 내가 했지만, 진정한 발단은 조강(趙剛) 선생의 새책 발표회를 취재한 破報pots기자의 기사에 대한 성노동자단체의 활동가의 반공개적 비판이 페이스북에 올려졌던 일이다. 기사에는 조강 선생이 대만 사회운동의 반지성주의에 대해 비판하는 부분이 있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해 페이스북에 한 줄로 '반지성주의 비판에 대한 xxx의 반응이 곧 반지성주의이다'라고 일갈했고, 이로부터 논쟁이 전개됐다. 그후 페이스북을 타고 논쟁이 이리저리로 전개되었고, 나는 대만의 반지성주의 비판의 역사적 맥락에 대해 참조할 글로 '카웨이보'卡維波 선생의 <인민민주 20년 후>라는 글을 제시했다. 거기에는 대만의 '인민민주'파의 이론/사상적 결함으로 서구중심주의적 탈역사화, 그로부터 초래된 이론과 실천의 분리 및 반지성주의에 대한 비판적 논술이 전개되어 있다. 흥미롭게도 카 선생이 논란의 초점을 전환하는 글을 페이스북 노트에 올리면서, 그 글은 반지성주의 비판의 대상이 되는 쪽에 서서 그들을 옹호하는 것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나는 당일 <반지성주의 비판에 대한 한 가지 보충>이라는 글을 페이스북 노트에 올렸고, 다시 한번 운동가의 '도덕적 우위' 및 경험주의 등에 대해 비판하며, 지식의 층위로 내려와 논의할 것을 요구했고, 지식인과 대중의 구분의 필요성, 동시에 지적 차이의 극복이라는 무한한 과제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그런데, 문득 이 문제와 '역사'와의 흥미로운 접점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지난주 <후식민/후냉전 지식상황에 대한 성찰>을 발표하면서, 대안적 지식방식으로 "역사 속으로 들어가 역사의 가능성과 개방성을 열어내어, 주체적인 역사해석의 시간과 계보를 세우고, 능동적인 역사/현실 인식을 획득하는 것"을 제시했다. 이는 "역사를 감당하여 '자기역사화'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시간'의 문제가 모호하다.

 

'역사'의 전개 속에서 분석을 위한 시간과 공간의 변동이 출현하고, 이는 새로운 '지식'의 근원이자 기초이고 또 근거가 되지 않는가? 이러한 역사 속의 '시간성'/'공간성'을 파악하지 않고, 보편적 시간과 공간을 도입하는 것이 곧 '탈역사화'이고, 그것은 다시 말해서 진정한 '반지성주의'가 된다. 즉 보편주의는 곧 반지성주의인 셈이다. 이는 엘리트주의와 포퓰리즘의 결합으로 표현될 것인데, 대체적으로 '이론수입상'의 역할을 하는 지식인들의 '탈역사화', '엘리트주의', '보편주의'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 같다. 따라서 '탈역사화된 보편/특수주의'에 대한 비판은 주체적 시간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제이다. 그러한 대안적 지식실천 안에서 지식의 형성 및 공유, '주체'의 능동성 및 변혁적 전망의 가능성도 확보된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이런 맥락에서 남한의 80년대에 대한 약간의 성찰에 대해서도 이번에 발표했다. 식민-냉전과 현대성-현대화라는 역사에 대한 진정한 성찰과 관련해서 이런 맥락에서의 성찰이 부재한 것 같고, 그것은 역사적 단절과 80년대의 모종의 전환을 거치며 형성된 것이라는 요지이다. 당장 평가하기에는 여러 이해관계 등등이 얽혀 있어 더욱 간단치는 않은 문제이다. 매우 긴박한 과제임에도 불구하고...

 

 

 

 

對反智主義批判的一點補充

 

我認為「反智主義」和「唯智主義」是二元對立的概念。因此兩者都內涵著負面意義。似乎有些人認為可以把反智主義和唯智主義,看作正面或中立的概念,但我覺得,要那樣使用,乾脆用別的概念比較好。因為這裡「主義」基本上內涵著排他性,因此都成為批判的對象

 

我認為,我們需要反思既定的去歷史化的「知識」,同時也需要批判知識分子對有意義的知識討論的拒絕。

 

就前者而言,比較代表性的,就是我們之間已經比較熟悉的對西方普遍主義普世價值的反思。因此,進行對陳映真的不同閱讀、跨越普遍主義的亞洲內部互相參照,都有意義。而且,我們面對「殖民」-「冷戰」歷史所造成的如此去歷史化的知識狀態,也需要進行全面的批判,也需要通過個別「歷史」重新去發掘思想資源。而且,為了與群眾分享如此的思想,也需要新的「方法」和「實踐」。在我看來,如果搞混如此反思知識的工作和「反智主義」,就會轉移討論的焦點。

 

就後者而言,似乎被誤解為對「運動」的批判,但事實上對「反智主義」的批判,就是知識分子內部的批判。我所運用的「反智主義」這個概念,就關係著一種狀況:以反思去歷史化的知識為前提的知識討論,不能走向與群眾分享,進而形成不被普遍主義所異化的內在於歷史/現實的主體,反而變成道德批判的對象。道德批判的根據,大體上來自「運動」外部的旁觀者這樣的「身份論」,其背後就有一定的「經驗主義」,進而也有把「理論」和「實踐」分開來的思考。這次,我首先提出兩個前提:「有用的知識」是存在的;而且,從人學的角度來看,「知識的差異」需要不斷被克服。在這樣的前提下,我認為,「知識分子」和「群眾」需要區分,而「知識分子」的反智主義,則成為批判的對象。而且,其後果就是有用的知識無法與群眾所分享,因此「群眾」的主體化也不能實現。

 

毛澤東曾經對此提出「包辦代替」這樣的批判。在我的這樣的思維裡,原則上不存在理論和實踐的分離,因此也不存在任何身份論,雖然知識分子內部會有情勢性的分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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