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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상반기를 마치며...

새해를 맞은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덧 2013 상반기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와 있다. 지난 포스팅이 1월 2일이고, 얼마 되지 않아 블로그를 잠정 중단했었는데, 한바퀴 돌아 다시 블로그에 글을 쓰게 된 셈이다. 중간에 페이스북도 기웃거리고, 특히 모종의 '초국적성'이 주는 매력 때문에 이중 언어 글쓰기의 실험을 해보기도 했다. 물론 요즘 나는 한국어 보다는 중국어로 개입해 들어가는 글쓰기가 좀더 익숙하다. 언어적 기술의 측면 보다는 맥락적 측면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조금은 너무 멀리나간 것이 아닌가... 이러다가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운 생각도 좀 든다. 암튼 근래 들어 한국적 맥락과의 괴리감이 더욱 커지는 느낌은 분명히 있다. 그것은 내가 나의 이야기를 꺼낼 때 암묵적으로 전제되는 것들이 늘어가고 있기 때문이고, 그런 것들을 명료하게 전달할 수 있는 언어 담론적 도구가 한국어로 존재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암튼 페이스북 경험은 이 정도로 마치기로 했다. 그 안에서 전개되는 주류적 사회관계의 반복이 가져오는 모종의 자기검열과 약간의 스트레스가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반 년 동안 무엇을 했나 회고를 해보니, 조금은 참담하다. 계획대로 하지 못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처음부터 계획을 잘못 세웠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1) 자잘한 번역들을 조금 했고, 백승욱 교수의 <중국문화대혁명과 정치의 아포리아> 중문판 번역을 마쳐서 초고를 넘긴 상황이다. 가을이나 겨울에 대만 <맥전麥田> 출판사에서 나올 예정이다.

2) 자격고사는 이번 학기에 <이론> 과목을 마무리 하려고 했으나, 주제설명을 쓰는 정도에서 만족하게 되었다. 지난 주말 종강 기념으로 4명의 박사생의 발표회가 있었고, 나는자격고사 주제설명의 제목으로 정한 <후식민/후냉전 지식상황에 대한 성찰: '대만을 방법으로'>을 발표를 했다. 진광흥 선생의 참조체계의 다원화를 심화하는 방향으로 내부 참조점 사이의 비대칭성의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진 선생과 사전 논의 없이 급작스럽게 발표를 해서 진광흥 선생도 조금 난처해하는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대체적으로 긍정적 평가들이 많았다.

3) 자격고사 주제설명을 발표하면서 논문 주제에 대해서도 간단히 소개를 했다. 그런데 이 부분은 여전히 자신이 없는 편이다. 주제가 여전히 많이 흔들리고 있다. '대만'을 방법으로 냉전의 적극적 축이었던 중국과 한국의 학술체제에서 주변화된 사상가를 발굴하여 상호 참조하고, 이로부터 아시아 내부의 국제주의적 사상자원의 공유를 시도하고, 나아가 이를 다시 '민족'적 차원에서 전유하려는 시도로 선택된 '전리군'과 '리영희'라는 사상가의 비교 연구라는 주제를 확정짓지 못하고 있다. 거기에는 나의 문제의식에 본래부터 내재하는 '진영진'과 '박현채'를 다시 부각할 것인지의 문제가 있다. 그렇게 되면 주제와 구도 등이 다시 짜여질 수 밖에 없다.

 

한편 대만에서 최근 《민주의 수업民主課》라는 소설이 출판되어 문혁과 관련한 논의들이 조금 있었다. 마침 내가 번역한 전리군 선생의 <모택동 시대와 포스트 모택동 시대>, 백승욱 선생의 <중국문화대혁명과 정치의 아포리아> 모두 문혁을 심도있게 다루는 책이어서 관심을 갖고 읽고 있는 중이다. 이 책의 출판기획을 맡은 진신행(陳信行) 교수는 내가 번역한 백승욱 선생의 중문판 초고를 읽고는 두 책이 짝을 이룬다고 나에게 이 소설의 한국어판 번역을 제안하기도 했다. 백 선생의 책이 역사를 바탕으로 이론적으로 심화된 사유를 보여준다면, 소설의 경우 문학적으로 역사의 풍부한 모순을 표현해냈다는 평이다.

 

이 소설과 관련한 좌담회 사회를 보았던 진 교수는 이 소설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책을 소개했는데.

 

"민주란 무엇인가? 민주는 세상에 대해 감히 분노하고 욕할 수 있는 자신감이고, 평등하게 참여하여 유효하게 말할수 있는 일상적 분위기이며, 또한 스스로 주인이 되는 책임감이다."

 

나에게 이 구절은 사실 백승욱 교수가 발리바르로부터 가져와 제기하는 문혁에서의 정치의 아포리아의 문제, 즉 '구조의 변혁'에서 전제되는 '해방의 정치', 그러나 초래되는 '무정부주의 및 극단적 폭력'의 문제('책임'과 '윤리')를 표현하는 또 다른 방식으로 읽힌다.

 

암튼 인연이 된다면 또다시 한번 번역을 감행할지도 모르겠다. 특히 소설이라는 장르의 번역은 부담이 아주 큰데, 일정한 준비가 필요할 듯 싶다. 고민을 좀 해보자. 그래도 남은 반 년은 아마도 자격고사 두 과목을 마무리하는 데 주력하게 될 것이고, 소설 번역을 시작하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연말에 논문계획서도 나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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