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질문을 거부하기". 난민의 권리를 말하기 위해 난민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걸 해명해야 할 것 같은 위치. 난민은 누구인가, 난민은 어떤 사람인가 묻는 질문을 거부해야 할 때도 있다. 왜 한국에 왔는지보다 '지금 여기 있다'는 것에서 출발하기 위한 말하기. 

'진짜'임을 설명하려는 말들. 당사자조차도 '자격'을 먼저 증명해야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부담. 자격을 묻지 않는 말하기가 가능한 관계와 장소들의 소중함. '안전한' 장소. 물질적으로나 비물질적으로나. 

"혐오/차별 선동 세력들은 이러한 커뮤니티의 붕괴를 정말 가장 바라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 점을 간과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 <시스터 아웃사이더> 추천사에서, 로드의 말하기는 speaking

누군가로서 말하기 as : 제약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제약이 열림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 공개적으로 말하기 out / 토해내는 말하기 from / 누구의 편에 선 말하기 with / 누군가에게 말하기 to

 

#2. 

* 능력은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이기도. 역량 이론. 장애를 사회적으로 이해하듯이, 사회적 조건과 결과로서의 역량에 주목하기. (활동보조. 연결된 신체성. 움직일 능력이 있다고 해야. '능력'을 다르게 보게 된다) 내 점수는 사회의 점수. 정치와의 연결고리. 나한테 불공정하다는 감각을 평등에 닿게 하려면. 권리가 있다는 말만으로는 부족. 집합행동으로서 노동운동이 이뤄온 성과를 능력주의의 관점에서 되짚어볼 필요도. "평등의 경험과 정치적인 경험" 

* "평가 자체는 인간의 기본적 활동. 그것이 권력 관계에 놓일 때 문제가 된다." 

 

#3. 

진짜를 가려냄으로써 권리를 부정하려는 시도가 광범위할 때, 탈북민은 '진짜'가 무엇인지조차 분열적인 존재인 것은 아닐까. 적국에서 온 사람이다가, 같은 민족이다가, 체제의 선전자이다가, 열등한 사회와 문화로부터 온 인종이다가... 이런 조건은 탈북민의 인권 문제에 접근할 때 어떤 곤란함을 낳을 수밖에. 

연결의 중요성. "북한출신 주민 혼자의 자립에 머무르지 않고 지역주민과 협력하여 성취하는 자립으로의 전환이 필요". 사회복지 영역이라 그렇겠지만 장애운동과의 유사한 고민들이 많다. 차별경험이 서로 마주칠 수 있는 계기들도 찾아보자. 

특수주의로부터 벗어날 필요를 확인하고, 동등한 시민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하는 것은 분명. 그러나 동등한 시민으로서 산다는 것은 그의 고유한 경험을 온전히 존중할 수 있을 때 가능해진다. 북한에서 살았던 경험이 한국사회에 어떻게 전해지고 나눠져야 할까. 국가보안법 등 분단체제의 문제들이 '직접 피해'를 낳지 않더라도 직면할 수밖에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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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9 14:52 2018/12/09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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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성 2018/12/12 16:50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지리한 전쟁이 끝난 것으로 만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