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조양호 회장 이사 연임 안이 부결됐다. '자본시장 촛불혁명'이라는 승리의 환호와 '연금사회주의'라는 패배의 진단이 양쪽에서 떠들썩하다.

기업의 리스크가 되어버린 이사를 퇴진시킨 것에 연금'사회주의'씩이나 되는 이름을 붙이는 상황은 안타깝다. 국민연금이 입장을 정하기 전부터 해외 투자 기관들이 반대 입장을 정했고(외국인 지분 24.76%, 국민연금 11.7%), 마침 대한항공 재벌이 자신의 경영권을 방어하려고 높여놓은 이사 진입 문턱(2/3 이상이 찬성해야 연임 가능)에 자기가 걸려 넘어진 셈이다. 사회주의적이라기에는 오히려 매우 자본주의적인 결과.

그래서 '자본시장 촛불혁명'이라는 환호도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박근혜를 끌어내려도 내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알 수 없었던 것처럼, 대한항공의 주가가 오른 것 외에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우리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대한항공 노동자들은 괴롭힘으로부터 자유로워졌을까, 자신의 존엄과 권리를 지키기 위해 기업 경영에 개입할 수 있게 됐을까? 재벌 일가의 갑질에 경악하고 분노했던 우리는 또 다른 누군가가 같거나 다른 방식으로 갑질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게 됐을까? 

이번 일은 대한항공 직원연대를 비롯해 주주 의결권을 조직하려고 애썼던 참여연대 등 여러 단체들의 노력과, 장고 끝에 반대 의견을 내기로 한 국민연금의 결정이, 재벌 총수의 위치를 휘청거리게 하는 역사를 썼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사건이다. 그러나 남은 과제를 주주 행동주의 강화나 스튜어드십 코드의 활성화로만 설명하기는 너무 아깝다. 소유권을 보유한 만큼 의결권을 행사하고 경영에 참여하는 것은 문제의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 일하는 사람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부정할 수 있는 경영'권'이 있는 것처럼 여기는 인식, 그래서 노동자의 권리를 옥죌수록 경영이 잘되는 것인 양 겁박하는 자본이 그대로인 한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모두가 기억하듯 조양호 퇴진이라는 결과는, 사장이라도 노동자를 모욕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공분과, 그것을 변화의 힘으로 이끌어간 노동자들의 저항이 있어 가능했다. 이걸 이어가야 하지 않을까. 일하는 사람이 더 많은 권리를 누리는 것이 사회가 추구해야 할 '경영'이라는 인식을 만들기. 실제로 그럴 수 있도록 기업에 '사회적' 개입의 경로를 더 다양하게 두텁게 만들기.

오너가 피땀 흘린 결과물인 것처럼 오인되는 기업이 언제나 공적인 위치에서 공적인 수혜를 받으며 공적인 기능을 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기업의 공적인 성격을 반영하는 소유와 경영의 구조를 상상하게 될 때쯤이면 '혁명'이라고 불러볼 수 있지 않을까. 어디선가 물길이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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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8 20:35 2019/03/28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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