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2019.2.27.

철원은 27만 발이나 쏟아진 폭격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한다. 건물의 흔적이라도 남아 있는 것이 네 개. 지금의 철원은 한국전쟁 이후 새롭게 읍으로 형성된 것이라고 한다. 남과 북이 대치한 한국전쟁이라 전쟁경험과 피해도 대칭적일 것처럼 느껴지지만 전혀 다를 수 있겠다는 걸- 연극 <탈북자>를 보면서 처음 깨달았다면- 새삼 깨달았다. 노동당사 앞에는 '분단시계'라는 조형물이 있어서 분단 이후 지금까지 몇 시간 몇 분 몇 초가 흘렀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분단의 시작을 1945년 8월 15일로 세고 있었다. 해방과 함께 분할점령이 시작되었다고 해도 그때 한반도의 분단이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까? 해방된 하나의 국가를 만들려는 노력이, 신탁통치에 대한 왜곡된 논쟁과 이승만의 반공국가 수립 추진 등으로 좌절된 것에 대한 평가를 건너뛰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남북 각 정부의 수립 이후로도 다시 한국전쟁이라는 사건을 빼고는 분단을 설명할 수 없을 텐데, 분단의 시작일이란 남과 북이 함께 역사를 쓰지 않고서는 정할 수 없는 것 아닌가. 햇수도 날짜도 확정적이지 못한 상태로 역사를 되짚어야 하는 것이 분단인으로서 사는 것일까? 노순택 사진가가 말한 "남한인도 아니고 북한인도 아닌 분단인으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일까 막연했는데, 어쩌면 우리는 이미 분단인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남한인으로 산다고 믿어야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2018.3.6.

"김정은이 남한 오는 거 아냐?" 어제 뉴스를 보다가 내뱉은 말. 대북 특사가 도착하고 잠시 후 김정은을 직접 만났다는 보도를 신부님네서 같이 보던 중이었다. 너무 앞지른 얘기라는 듯한 ㄷ의 반응에 별 근거는 대지 못했다. 전환의 계기에는 뭔가 새로운 디자인이 필요하다는 정도의 감각이었다. 오늘 저녁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남북정상회담을 한다는 속보가 떴다. 작년부터, 지금의 변화는 비가역적이다. 

 

2017.8.3. 

<분단폭력>에서. 2014년 7월의 '통일의식조사'. 남한주민 75%가 북한의 무력도발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 북한주민들도 마찬가지. '남한의 무력도발 가능성'에 대해 '있다'는 응답이 63.7%. 핵무기 '위협'에 대해서도 비슷. 

위험의 실제를 넘어서는 불안도 그 자체로 실제다. 불안에 대해, 남과 북, 그리고 미국이 만들어내는 몫을 따져물을 수 있어야. 

 

2017.1.21.

예비군 훈련을 거부하는 사람들 역시 병역 거부를 선택하는 사람들과 비슷한 비난을 듣는다고 한다. 요약하자면, 당신과 당신의 가족들을 지키기 위한 국방의 의무를 내팽개치는 무임승차자라는 비난이다.
우리의 삶을 지키는 데에 국가가 어떻게 실패해왔는지 드러나고 있는 지금에도 여전히 나라를 지키는 것이 우리를 지키는 것이라는 등식은 견고한 듯하다. 나라를 지킨다는 것조차도 전쟁 능력을 갖추는 것으로만 등치된다. 그러나 전쟁에 대비하는 것밖에 삶을 지킬 방법을 모르는 국가란 얼마나 초라한가.
군사훈련이 사라지면 평화가 오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군사훈련이 전쟁을 만들어내는 근본적 원인이 아닌 것도 물론이다. 그러나 군사훈련을 거부하는 것은 평화를 이루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행동을 찾기 위한 간절한 질문이다. 법원은 병역이나 예비군 훈련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네 신념을 입증하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병역거부선언은 신념의 증명이 아니라 사회적 질문으로 읽혀야 하지 않을까?
여전히 한반도는 '정전' 중이며 위기는 더욱 고조되고 있다. 그래서 전쟁에 대비하는 군사훈련이나 무기 확충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래서 더욱 전쟁이 아닌 방법으로 평화를 이루기 위한 치열한 모색이 필요하다. 병역이나 예비군훈련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이해받기 어려운 시간을 보내며 살아내는 일상이 얼마나 치열한 행동인지, 너무 늦기 전에 사회가 알아차리면 좋겠다. 병역거부는 평화에 대한 답이기보다 평화를 여는 질문이라는 것을. 우리 역시 답해야 하는 질문이라는 것을.

* '애국'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의 몸자보 "촛불은 인민, 태극기는 국민"도 기억하기. 

 

2016.12.21.

"사건이 나고 1년쯤 지나고 친한 선배집에 갔습니다. 핸드폰으로 중국집에 짜장면 배달을 시키던 중에 선배가 전화를 끊으라고 했습니다. 내 핸드폰번호를 통해 자기가 사는집 주소로 음식 배달을 시키는게 불편하다고 했습니다. 그 일이 있고나서 다른 사람 집에 놀러가는 사실 자체가 불이익이 갈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다른 사람들 집에 놀러가는 것도 자중하게 되었습니다."

받아놓고 한참 지나 읽게 된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 소식지에 실린 이야기. 사건을 겪은 사람들은 감옥에 갇힌 사람만이 아니다. 이 사건이 인권의 문제인 이유도 특정한 사상이 비난당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인권이 던져야 할 질문은 이런 것. '사상'을 문제 삼는 사건들은 사회 구성원들의 관계를 어떻게 변형시키고 있는가? 그것은 인간의 존엄을 어떻게 훼손하고 있는가?
'사상'이라는 것은 사람으로부터 분리되어 검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녀가 만나는 사람, 즐겨듣는 음악, 관심 가지는 책,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입장, 사람을 대하는 태도... 이렇게 사람을 구성하는 분리불가능한 일부. 그러니 사상의 자유라는 것은 인간의 자유에 다름 아니다.
사실 한국사회에서 공안탄압으로 만들어지는 사건들이 정말 '사상'에 대한 것이냐는 질문도 여전히 필요하다. '북한'을 핑계로 국정원이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는 나라. 그래서 이런 사건을 사상의 자유 주장만으로 돌파할 수 없는 것도 분명한 현실.
전화가 불편하다는 선배나, 그래서 자중하게 된 후배나, 문제는 관계에서 드러나지만 해결은 관계를 통해서만은 불가능하다. 이 문제를 우리 모두의 문제, 즉 체제의 문제로 이해하고 함께 바꾸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만큼 이런 사건이 발 붙이지 못하게 되는 것 아닐까. 통합진보당 해산과 관련해 김기춘-박한철의 부당한 행동에 대한 단죄부터 제대로 되면 좋겠다.

 

2016.8.25.

탈북, 북 체제 위기가 아니라 남 체제 무능을 보라

 다소 선정적인 제목이지만 하나의 실마리를 얻은 듯. 

 

2016.7.7.

오늘자 한겨레에 정영환 교수를 인터뷰한 기사가 실렸다.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반론서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 출판 기념 강연회에 입국을 불허당한 사연. 
그는 '조선적'을 가지고 있다. 전에도 입국금지 조치가 있었던 터라 조선적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겪는 문제들은 들은 적 있는데 조선적의 존재를 고민하게 된 건 얼마전 문화연대 주최로 열렸던 서승 선생님 강연을 들은 후다. 
흔히 '남도 북도 아닌 사람들'이라고 규정하는 것에 대해 정영환 교수는 '북이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서승 선생님은 그보다 더 적극적으로 말했다. '남이기도 하고 북이기도 한 사람, 아니 분단을 온몸으로 거부하는 사람들'이라고. 
일본에서 '조선적'이 무국적이 되는 이유는, 그들이 대한민국 국적을 선택하지 않는 반면, 일본이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적을 선택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조선적을 사실상 북한을 선택한 사람들로 이해하기도 한다. 
하나의 조국에 대한 신념이나 기대는 이미 낡은 것일 수도 있다. 분단 문제를 포함해 동아시아 평화를 모색할 때 이미 두 개의 국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두 개의 국가 중 어느 하나의 선택을 강요당하는 역사는 명백히 현재적이다. 조선적은 지나간 역사를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현재에 저항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상 북한을 선택'하는 것이더라도 유지할 수밖에 없다. 현재에 저항하는 것은 북한에 대한 인정을 내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정부가 김정은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했다는 소식이다. 이런 조치에 '인권'이 활용된다는 것이 수치스럽다만 부들부들 떤다고 달라질 문제도 아니다. 
유엔을 앞세운 북한인권몰이와 박근혜 정부가 앞장서는 단절의 조치들이 만들어내는 문제는 결국 우리의 현재다. 조선적만큼 온몸의 무게로, 현재에 저항하기를 선택하는 우리의 과제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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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1 13:49 2019/03/01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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