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중절, 책임과 애도

어디서 누구한테 들었는지 가물거리는데, 화장터에서는 납골을 위한 화장과 다르게, 따로 모아서 화장하는 시신들이 있다고 한다. 여러 병원에서 오는, 아직 태어나지 못한 채 죽어야 했던 아이들.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 아이들이 어디로 가서 어떻게 되는지. 폐기물로 취급되지 않고 나름의 절차를 따라 이 세상과 이별할 수 있는 기회를 누렸다니,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나는 왜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을까. 임신중절을 한 후 천도제를 지내는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누군가는 떠나보낸 것이 못내 죄스러워 몇 년이 흘러도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어떤 책임감의 차이인 듯했다. 나는 임신중절수술이라는 사건에 대해 나의 책임을 크게 느끼지 않았다. 한번도 출산과 양육을 원해 보지 않았고 그만큼 노력했기 때문일 듯한데, 어쨌든 이건 조금 더 생각해보자. 

제사를 올리는 여성들의 책임감은, 스스로 원한 것일 수도 있고 여러 상황으로 강요당한 것일 수도 있다. 세상은 임신도 출산도 양육도 임신중절까지도 여성의 책임으로 만들어버리니까. 그러나 어떤 이유로든 책임을 느끼는 여성은 아이를 애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헌법재판소가 낙태를 죄로 정한 형법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것은 그저 입법적 변화에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재생산에 대한 권리와 책임 사이에서 사회가 자신의 몫을 얼마나 발견해낼 수 있느냐가 관건. 

예를 들어. 해마다 날을 하루 정해 한 해 동안 태어나지 못하고 죽어야 했던 아이들을 애도하고 위로하는 자리를 국가가 마련할 수 있을까? 사회가 책임을 진다는 의미는 이런 시간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 않겠나. 

 

덧. 임신중절이라는 사건에 관해 책임을 그리 느끼지 않았던 건, 자랑스럽진 않지만 부끄럽지도 않은, 차라리 조금 의아한 것. 다만 내가 별로 책임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던 게 큰 행운이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그래서 말할 수 있었던 것. 말하기 어려움에 대해. 낙태가 죄라면 범인은 국가라고. 행운을 기억하자. 더이상 행운이 아니어도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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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7 14:40 2019/07/27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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