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만 빼고, 정말

'민주당만 빼고' 투표하자면 민주당으로서야 발끈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득달같이 고발하거나, 취하하면서도 굳이 시비를 걸어 제 수준을 드러낼 필요까지 있나. 몇일간의 소란 끝에 남긴 게 '정말 민주당만 빼고' 투표해야겠다 마음먹은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지켜보며 더불어민주당이 혹시라도 만회할 의지가 있다면, 나는 진심으로 '민주당만 빼고' 전략을 제안하고 싶다.
이번 사건으로 드러난 것은 민주당의 불안이다. 민주당이 대단히 민주주의 머리띠 둘러멘 정당도 아니지만, 200자 원고지 10매 분량 칼럼에 형사고발이라는 칼을 빼어들 정도로 경력 없는 정당도 아니다. 칼럼의 내용 역시 표현의 자유 침해라는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규탄해야 할 내용은 아니었다. 오히려 '뭐라도 걸리기만 해보라'며 화풀이 하고 싶던 차에 하필 칼럼이 딱 걸려든 것이 아닐까 싶다. 민주당은 왜? 여러 악재가 쌓인 탓도 있겠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자유한국당이 비례용 정당 창립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으로서는 21대 총선에서 자유한국당과 비교해 압승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다. 선거법 개정안을 패스트트랙에 앉혀놓고 질질 끄는 동안도 그랬다. 선거법 개정의 의미를 자신의 성과로 포섭하기보다 자신에게 돌아올 의석 수 계산에 골몰해 개정 취지를 퇴색시키는 역할을 자임했다. 지난해 민주당은 승리를 자축할 수 있었다. 다른 야당의 힘을 빌어 공수처법을 만든 데다가, 비례연동제를 아주 복잡하게 만들어놓은 덕분에 한국당보다 우세한 결과를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이제 웃을 수 없다. 한국당이 대신 웃는다.
비례용 정당을 만들어 득의양양하는데 허를 찔린 민주당은 화내는 것 이상 할 수가 없다. 지지율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악재들은 민주당에만 쌓이는 것은 아니니 언제든 만회가 가능하다. 그러나 비례용 정당은 만회하기 쉽지 않은 새로운 조건이다. 선거제도의 규칙을 근본적으로 무시하는 시도였지만 선관위가 이미 인정해버렸으니 이 조건을 받아들여야 한다. 지역구 투표에서는 한국당을 앞지를 가능성이 있지만, 비례의석에서 한국당이 가져갈 몫이 커지는 만큼 전체 의석 수에서 불리하다. 종로구의 이낙연 황교안 빅매치 정도를 제외하면 이목을 끌만한 것도 없다. 그러니 똥줄 타는 게 너무 당연하다.
그래서 '민주당만 빼고'! 울그락불그락 하는 시간은 이제 끝내고 과감하게 비례 의석 포기를 선언하면 어떤가. 현행 선거제도는 지역구 의석 수가 많을수록 비례에서 배정받는 몫이 줄어들게 된다. 이걸 억울해하지만 말고 정당투표가 사표가 될 정도로 지역구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겠다는 결의를 밝히는 거다. 매우 흥미진진하지 않겠나. 예상하지 못한 전술, 자신을 거는 협상 같은, 민주당이 오래동안 보여주지 못한 것들을 다시 보게 된다면 말이다. 정당투표를 통해 민주당보다 왼편에 있는 정당들이 국회에 더 많이 진출하는 것은 의미도 크니 설득력도 있다.
민주당이 이 글을 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혹시 보게 되더라도 나는 고발하지 마시라. 의미도 흥미도 주지 못하는 민주당에 나름 아까운 시간 들여 제안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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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6 21:33 2020/02/16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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